NEWS ON AIR
-
- 3代의 감 따기
- 2020년 12월 담임목회 사임 후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면서 이듬해부터 가을에 감을 따고 있다. 올해도 감을 땄다. 20여 년 전 어머니께서 이 집을 사서 오신 후 종로 묘목상에게 어린 감나무를 사서 마당에 심었다가 아버지께서 집 밖 귀퉁이로 옮겨 심으셨다. 올해 4년째에는 이전처럼 감나무에 비료를 주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어머니가 막걸리 등 양분을 주셔서 그런지 깨끗하게 감이 열렸다. 이전에는 감 주위에 흰 것들이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감이 탐스러웠는지 동네 어떤 사람이 두 번이나 따는 것을 어머니 아는 분이 소리쳐 내쫓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손타기 전에 어머니, 아들과 함께 감을 땄다. 이사 올 때 감나무 잎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해 어머니는 잘라버리시려고 했는데 나는 살려 두자고 했다. 그 결과 서울에서 감을 따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아버지도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잘 익은 감을 맛있게 드시니 다행이다. 70여 개는 딴 것 같다. 대봉이라 익혀 먹어야 한다. 매년 감 따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단톡에 어떤 사람이 감의 효능에 대해 올려 공유해 본다. "감" 많이드세요!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놀라운 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은 종합 영양제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과일이죠. 감 1개에는 사과 9.5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있는데 이는 최고의 천연 종합 비타민 과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비타민 A는 시각 유지에 필요한 로돕신을 만드는 영양소인데 이 비타민 A가 감 1개에 성인이 하루 섭취해야 할 양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눈을 많이 쓰는 수험생이나 노안으로 눈이 나빠지는 경우에 시력 보호용 과일로도 좋습니다. 감의 주성분은 당질(15~16%)인데 포도당과 과당의 함유량도 매우 높으며, 비타민 C와 A 그리고 탄닌, 칼륨,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입니다. 감은 최상의 건강 과일이라 해도 지나침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최상의 건강 과일이 흔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무시하고 비싼 과일만 사드시고 있겠죠! 사과 10개 먹는 것보다 감 1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증명하고 있어요. 잘 모르셨죠? 감은 자연 치유제로도 최상의 특급 과일이며 피부에도 최고랍니다. 심폐(心肺)를 녹여주며 갈증을 멈추고 폐위(肺痿)와 심열(心熱)을 치료합니다.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吐血)을 멎게 해 주는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입니다.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기침, 만성기관지염, 고혈압, 심장 질환 등에도 효능이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풍 예방약으로도 쓰입니다.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감 많이 드세요.
-
- 교회 분란 때라도 거짓말하지 말라
- 2020년 55살, 담임목회 15년 만에 위기가 왔다. 나를 반대하는 자들이 모여 나를 내보낼 모의를 했다. 이들을 설득해 보려고 7개월을 끌다 결국 목회를 접었다. 그 교회는 총회장을 역임한 원로목사가 있었는데 10여 년 만에 후임 담임목사 4명이 모두 중도 사임당했고, 나도 15년 만에 사임당했다. 이때 그들은 내가 나가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교회를 먹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나는 그 당시 용산에 위치한 교회의 평수도 몰랐다. 이 일 이후 알아보니 대지가 300평이었다. 그 당시 공시지가가 평당 2천만 원이니 토지 가격은 60억이었고 실거래가로 하면 100억이 넘을 수도 있는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목사인 내가 교회를 먹으려고 했다는 말에 대해 나는 지금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나에 대해 온갖 모함을 하고 거짓말을 했다. 나를 내보내려고 별별 짓을 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을 목회할 의욕이 나지 않아 옳고 그름을 떠나 주변 목사들의 만류에도 목회를 포기한 것이다. 십계명 중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말씀한다. 그럼에도 교회 분란이 일어나면 거짓말이 판을 친다. 현재 분란을 겪고 있는 어느 교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자들은 목사가 교회 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은 “100억을 담임목사가 먹었다”고 거짓말하기도 하고, 교회 토지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유용하기 위해 “목사 명의로 통장을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버젓이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다는 말인가? 한 번의 거짓말이라도 들통나면 나머지 모든 주장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세상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분란이 일어나면 신앙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혈기를 부리고 고함을 치고 폭력을 행사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자들이 있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지상에 있는 교회는 불완전해서 원치 않는 분란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다면 이미 명분을 잃어버린 것이며 마귀 짓을 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거짓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 세계선교연대, 제111차 포럼 개최
- 제111차 세계선교연대(대표 최요한 목사, 세선연) 포럼이 11월 2일 오전 10시 30분 명동 소재 프린스호텔 별관 컨벤션홀 2층에서 열렸다. 최요한 세선연 대표가 “최근 쓰러져 머리가 10센티미터 찢어지며 피를 많이 흘리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응급실로 가서 처치를 받았다. 이후 또 넘어져서 다쳤다. 백 세 시대라 백 세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고 인사말 했다. 이선구 이사장이 “저도 최요한 목사처럼 질병이 생겼는데 바울처럼 은혜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기도행전을 통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 불씨가 되살아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요즘은 목사들이 많이 배워야 담임으로 부임하다 보니 기도가 많이 약해졌다. 우리나라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또한 대한노인회 기독교신우회가 다시 회복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인사말 했다. 예배는 총회신학원 원장 강 장렬 목사의 인도로 시민단체 총재 고종욱 장로가 기도, 지부협 사무총장 이교현 목사가 왕하 9:32 봉독, 조윤하 전도사가 바이올린 연주 · 찬양 사역자 정은영 전도사가 특송했다. 전 장신대 총장 민경배 목사가 '한국의 일제-그 역사의 정통사'란 제목으로 “일제 치하에서 일제보다 공산주의자에게 8배 더 죽임당했다. 백제에서 일본에 문물이 넘어갔고 천황의 핏속에 백제의 피가 섞여 있다. 백제 공주 5명이 일본에 가서 결혼했다. 일본에 1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들이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 아베의 조상에는 한국 계통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한국과 손잡고 싶었던 일본의 인물들이 있었다. 찬송가에도 일본인의 곡이 4개 들어가 있다. 영국 일간지는 한국이 기독교를 힘입어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썼다. 한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기독교를 통해 함께 발전하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헌금기도, 찬양 사역자 김은아 집사가 헌금송, 국제선교신문 사장 김주덕 장로가 광고 후 세선연 이사장 이선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선교포럼 및 사역 소개는 세선연 대표 최요한 목사의 인도로 샘물교회 최태선 목사가 기도, 선교사들 일동, 방근숙 찬양 사역자가 찬양, 문인교회 박재천 목사가 시 낭독, 국제선교협의회 회장 이종득 장로가 “선교사님들을 위해 최요한 대표, 이선구 이사장이 귀한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것이다. 복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복음을 위해 목숨 걸고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말 했다. 사역소개 태국 안용원 선교사가 “치앙마이에서 탈북자 사역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주님의 은혜로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게 되어 감사하다. 가나 신자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지저스 미션 교회 개척 사역을 통해 100여 개의 교회를 건축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이들을 위해 농장을 운영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일본 배정원 선교사가 “홋가이도에서 16년째 사역하고 있다. 일본인을 전도하는 것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사모가 하는 식당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일본을 전도해야 한다”고, 필리핀 김문순 선교사가 “코로나 시기에 들어와 최요한 목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남편 목사에게 현지 사역을 더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후 남편이 사지마비로 인해 1년 6개월간 치료받고 회복 중인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다”고 사역 소개했다. 태국 송용자 선교사가 “태국 선교는 200년이 됐지만 교세는 미비하다.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교회와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태국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필리핀 강진석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37년째 사역하고 있다”고. 탄자니아 황선희 선교사가 “5년 계획으로 새로운 사역을 하고자 한다”고, 필리핀 모정철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30여 년 사역하며 대학 사역을 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자, 신학교 진학률이 조금 떨어졌다. 학부모, 학생 전도에 힘쓰고 있다”고, 최종표 목사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는데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탁명진 원장이 “귀한 자리에 와서 감사하다”고, 일본 박영애 선교사가 “대마도에 사정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있는데 매주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이병기 장로가 “복음이 황무지 같은 대한민국을 개발했다.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다.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한 후 주기도로 은혜로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
- 월기총 제111 정기총회를 위한 첫 준비기도회
- 월드기독교총연합회(이사장 정진희 목사, 이하 월기총) 제11차 정기 총회를 앞두고 첫 번째 준비기도회가 11월 1일 오후 7시 송내열방교회(김정우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1부 개회예배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월기총은 지난 2014년 10월에 기도 가운데 설립됐고, 모든 기관을 아우르는 연합회다. 이제 12월에 정기총회를 하는데 오늘은 이를 위한 첫 준비 기도회다. 월기총은 언론 활동을 통해 든든히 세워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기관, 단체와 MOU를 맺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환영사, 지용길 목사가 기도, 김복례 이사가 눅 1:1-4 봉독, 윤정순 · 손찬헌 목사가 특송했다. 월기총 상임총재 김정우 목사가 ‘사실 보도 비전 제시’란 제목으로 “군에서 주님을 만나 종이 되겠다고 서원 후 목회하다 27년간은 내가 목회했다고 회개하고 14년 전부터 택시 운전하며 전도하며 목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두 번의 큰 사고로 인해 택시 운전을 그만뒀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으나 성령의 도우심이 없어 결국 주님을 배신하게 됐다. 반면 바울은 복음을 몰랐다가 회심해 복음을 전하게 됐다. 누가는 의사로서 복음을 자세히 기록했다. 월기총도 성경을 사실대로 가르치는 일에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설교 후 이준원 목사의 헌금기도 ·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제2부 특별기도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1. 오는 12월 월기총 제11차 정기총회 임원 취임식 책자 만들기 위하여 2. 오는 11월5일(화) 오전 10시 30분 인천사랑밭교회(권태일 목사)에서 월기총 사랑밭 한인구조단 연합성회 기자간담회를 위하여 3. 월기총과 함께하는 사랑밭 한인구조단 제1차 고문, 총재, 회장단, 청장년 각 10명, 언론사주, 유튜버, 경력기자 포함 30명 모집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주기도로 마쳤다. 광고 및 기도제목 1. 오늘 맛있는 식사 및 성전 제공과 은혜로운 설교를 해 주신 김정우 목사님과 지명숙 목사님, 그리고 순서를 맡아 주시고 참석하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2. 취재차 오신 기자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3. 오는 11월5일(화) 오전 10시 30분 인천사랑밭교회(권태일 목사)에서 월기종 사랑밭 한인구조단 연합성회 기자간담회가 열립니다. 4. 월기총과 함께하는 사랑밭 한인구조단 제1차 고문, 총재, 회장단 청장년 각 10명, 언론사주, 유튜버, 경력기자 포함 30명 모집을 위하여 5. 매주 토요일 10~12시 대한교회 세미나실에서 대한CTV 시험방송 기자간담회와 기자단, 이사진 구성을 위하여 기도와 동참을 바랍니다.
-
- 인천대교(주), ‘사랑의빨간밥차’ 부평역 무료급식 후원 및 봉사
- 인천대교㈜가 10월 31일 경인전철 부평역 북광장에서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의 ‘사랑의 빨간밥차’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노숙인 및 홀몸노인 등 220여 명에게 따뜻한 무료급식과 생필품 나눔 봉사를 했다. 인천대교㈜는 매년 3회 이상 기부금을 전달하고 밥차에서 봉사를 실천해 오고 있으며, 올해에도 3월, 6월, 10월에 노숙인 및 홀몸 어르신들에게 ‘사랑의빨간밥차’에서 임직원들이 참여하여 기부금을 전달하고, 직접 소외계층들에게 따듯하고 맛있는 식사 봉사와 설거지 봉사를 했다. 사랑의빨간밥차 이선구 이사장은 “18년째 서울역, 부평역, 주안역, 계양구, 서구 및 전북지부(전주, 군산, 정읍, 고창) 등에서 사랑의빨간밥차로 소외계층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생필품 나눔을 제공해 오고 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천대교(주)와 같은 후원자와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메르스, 사스, 신종 플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랑의빨간밥차를 운행하여 무료급식과 생필품 나눔을 할 수 있었다”라며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기부해 주시고 봉사해 주신 인천대교(주) 박종혁 대표이사님과 모든 임 · 직원님들께 오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오늘 봉사에 참여한 인천대교(주) 임 · 직원들은 “그동안 인천대교(주)는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다양한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랑의빨간밥차에 와서 봉사할 때 느끼는 것은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에게 효도한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인천대교(주) 임 · 직원들은 사랑의빨간밥차와 지역 사회를 위한 기부 및 사회공헌 활동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인천대교(주)는 ESG 경영의 하나로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소외계층들에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
-
-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 교회론의 비교』, 심포지엄 개최
-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 교회론의 비교』 심포지엄이 10월 31일 오후 2시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있었다. 기독교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는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심포지엄은 총신대학교 통일개발대학원,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가 공동 주최했다. 하광민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국민의례 후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이 “요즘 청년들은 통일에 큰 관심이 없다.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을 위한 통일 과목을 개설했는데 많이 수강하고 있다. 총신대학도 통일 선도대학으로 선정되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개회사, 박성규 총신대 총장이 “총신대는 평양에서 시작했기에 통일에 사명감으로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일성은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기독교를 국가에 접목해 사이비 집단처럼 되었다고 본다. 오늘 심포지엄이 한국교회가 통일을 준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사 후 남 원장이 박 총장에게 덕소에서 재배한 참기름, 들기름 세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제1세션은 남성욱 연구원장이 좌장으로, 제1 발표는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사회정치생명체론에 나타난 북한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종교성은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와 유사하다. 기독교의 구원과 영생의 사상은 주체사상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제2 발표는 박재은 총신대 신학과 교수가 「기독교의 교회론과 기독교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 기독교의 주체성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이다. 바빙크는 ‘기독교회의 토대는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가 신적 법률에 따라서만 다스림 받는 국가 공동체 겸 종교 공동체로 등장하는 구약성경이다’라고 했다. 교회는 부름을 받은 공동체로 구별되어야 하며 교회에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사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라고 발표했다. 토론 이어 이종민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와 조정연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했다. 제2세션은 양창석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가 좌장으로, 제1 발표는 지성호 함경북도지사가 「북한 주민들에게 사회정치생명체론의 의미」란 주제로 “북한은 정치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 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으면서도 김정일, 김정은 지도자에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 교회 구조가 북한과 같기에 탈북민들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종교 집단과 유사하다. 북한 주민들도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제2 발표는 주연종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겸임교수가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의 교회론 비교」란 주제로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나누고 공산주의는 무력으로 나눈다. 북한은 기독교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북한을 종교적 정체성을 내포한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 속성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와 향후 통일 과정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요소”라고 발표했다. 토론 이어 하광민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와 김혜원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하는 것을 끝으로 심지포임을 마무리했다.
-
- 교회 분쟁으로 고통받는 교인들에게...
-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고 영적 전투를 지속하기에 교회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게 되어 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살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공동체도 그러했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성령의 역사를 직접 확인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것을 이용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의해 움직여지는 불순종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요하게 도전하고 공격한다. 기자는 수없이 많은 분쟁하는 교회들을 경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과 장소와 교회 규모가 다름에도 하는 짓이 비슷하다. 그들끼리는 한 번도 만나거나 의논한 적이 없는데도 참 많이 비슷하다. 치명적인 공통점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노회의 정치꾼들이 개입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집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순하고 상대방처럼 악한 방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집에 강도가 들면 온 몸을 던져 강도를 막아내야 하는 것처럼, 정당하게 대응하여야 교회를 지켜낼 수 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연약한 성도들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한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하고는 담임목사가 부임한 후 교회가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며 교회를 분란의 깊은 늪에 빠지게 한다.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지킬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교회가 심각한 분쟁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자신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지키고 연약한 성도들을 잘 살펴서 위로와 격려를 통해 견고하게 붙잡아 주어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단단하게 결집되어 행동한다. 그런데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외부에서는 결집된 세력들이 교회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고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더 힘을 받는다. 따라서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배 참석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잘 가져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아이들의 영혼이 다치는 것을 이용한다. 그래야 부모들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의 분란이 그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고 다음세대가 교회를 등지는 결과를 낳는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믿음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교회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쳐야 하고,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키고 아이들에게도 교회를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어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언제나 말을 먼저 하고 많이 한다. 그들은 그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일단 문제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분란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고 감출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견고하게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의 전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분란은 가능한 없어야 한다. 그러나 발생했다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교회를 지켜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영적 전쟁이므로 믿음으로 반드시 승리하여야 한다. 힘들고 고단하고 귀찮고 두려워 피하면 교회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에 의해 심각한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위로와 격려를 통해 함께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지켜야 한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한 교회들은 분란을 딛고 더욱 견고하게 잘 세워져 하나님께 멋지게 쓰임 받고 있다.
-
- 총회활동, 목사는 교회 돈으로 장로는 자기 돈으로?
- 총회에 여러 목사와 장로들이 드나든다. 총회를 섬기기 위해서다. 임원, 부장, 부원 등 직책이 다양하다. 총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여러 부대비용이 든다. 차비부터 식대, 혹은 임원 등록비 등 크고 작은 돈이 든다. 이때 대부분의 목사는 교회 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그런면에서 교회가 재정을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원해도 총회 정치를 하거나 총회를 섬길 수 없다. 반면 장로는 대부분 사업을 하기에 본인 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나는 노회 서기까지만 했기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교회 규모도 크지 않았기에 총회 정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장로들도 노회나 총회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총회 정치를 하고 있는 한 장로에게 “목사의 총회 활동 비용은 교회가 담당하고 장로의 총회 활동 비용은 본인 스스로 담당해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예전에 어느 교회에 분란이 일어났다. 담임목사와 장로 간의 알력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돈 문제였다. 장로는 자신이 총회 정치를 하는데 교회가 재정적으로 도와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회에서 거절했다. 그러자 다른 문제를 걸어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다. 어느 장로는 목사는 총회 정치를 할 때 교회 돈을 사용하는데 왜 장로는 교회 돈을 사용할 수 없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과연 총회 정치를 하는 장로를 위해서도 교회에서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가?
총회더보기 +
-
김병중(Th.D) 10-11 17:15
제109회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
제109회 총회를 시작하는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가 10월 11일 오후 2시 총회회관 5층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서기 임병재 목사의 인도로 회계 이민호 장로가 기도 했다.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시 42:1-5를 본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고난 앞에 각자의 반응을 보면 믿음이 드러난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확정하는 것이 낙심을 이기는 방법이다. 또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맡은 바 일을 감당하자. 총회 일을 할 때 재정적인 압박이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섬기도록 하자”고 설교 후 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각 상비부장과 임원들의 발언이 있었다. 조무영 헌의부장은 “원칙대로 바르게 하겠다”고, 임홍길 규칙부장은 “일이 많은데 예산이 줄었다. 전년도 만큼 예산 조정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이재천 재판국장은 “재판국이 욕을 제일 많이 먹고 구설수가 많았다.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신뢰 회복을 하며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김희근 은급부장은 “은퇴 목사님을 열심히 잘 섬기겠다”고, 이형만 교육부장 “교육부가 늘 하던 일 잘 감당하고, 정치부에서 내려온 것들을 잘 받아들이겠다”고, 김인환 학생지도부장은 “할 일이 많은데 기도하며 감당하겠다. 면려부랑 통합하게 되어 있는데 명칭 변경이 필요하지 않은가 고려 중이다”라고, 최효식 전도부장은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유광철 군선교부장은 “군선교 부흥에 박차를 가하겠다. 이를 위해 군선교 정책 연구소가 필요하며 노회가 군인교회를 입양하는 것과 군인사병선교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광염 구제부장이 “도울 수 있는 예산이 정해져 있어 나눠줄 때 오히려 민망할 때가 있다. 또 재정 집행이 늦어 시기를 놓친다. 폭우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는데 지원 제한이 있어 못 도왔다. 앞으로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여성구 경목부장이 “저는 경찰 가족이다. 경찰은 물질을 나누지 않고는 복음화될 수 없다. 경찰은 13만 명이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베풀어야 한다. 방문을 요구하는 경찰서가 많은데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김상기 농어촌부장이 “진심을 다해 섬기겠다. 올해 부부수양회는 국내에서 해 예산을 절약해 참석자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박의서 신학부장은 “총회 때 모 장로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해 목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랐다. 총회의 신학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직책을 감당하겠다”고, 박종국 면려부장은 “올해 예산이 줄었다. 학생지도부와 면려부가 통합됐는데 이를 위해 회의비 증액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경태 사회부장이 “어려운 목사와 성도들을 잘 섬기겠다”고, 고관규 순교자기념사업부장이 “순교자 가족들을 잘 위로했으면 하고, 순교자기념주일을 잘 지켰으면 한다”고, 김성환 고시부장이 “총회의 미래를 위해 고시를 엄격하고 흠 없이 잘 관리하겠다”고, 오광춘 재정부장은 “추경에 예산보다 많은 액수가 올라왔다. 부장들이 부족한 예산을 채워 운영해 주었으면 한다”고, 조승호 정치부장은 “존경받는 어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박용규 총회총무가 “상비부 회의에 총회 직원들을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부에서는 꼭 필요할 때만 불렀으면 좋겠다”고, 이민호 총회회계는 “교회들에서 세례교인 헌금이 늦게 올라와 예산 집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김종혁 총회장이 “과거 고 정필도 목사님은 할 수 있는 헌금을 하고 나머지는 빌려 온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말하면 교인들이 나머지를 채웠다. 본인이 먼저 헌신하니 다 해결됐다. 상비부장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교회 부흥을 통해 세례교인 헌금을 많이 내도록 하자. 함께 기도하며 책임을 감당하자. 총회 파회 후에는 상비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 교단의 중요한 자원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발언 후 합심기도하고 장봉생 부총회장의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아울러 불참자들을 대신해 다른 임원이 꼭 참석해 논의된 사항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총회를 출입하는 교단 목사 기자로서 109회 총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동영상과 기사를 올립니다) -
김병중(Th.D) 10-03 13:50
간이 부은 연봉 6500여만원 총회 직원 일탈 경악!...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총회 모 간부의 일탈이 일파만파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것도 제109회 총회 현장에서 벌어졌기에 이 소식을 접한 온 총대들은 경악하며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가 된 총회 직원은 국장급으로 총신신대원 88회이다. 이 직원의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1) 올해 중간감사에서 감사부의 지적을 받아 한차례 징계를 받았다. 평소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지적돼 징계를 받은 것이다. 2) 평소 불필요한 해외출장과 잦은 자리비움, 총회자료 유출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3) 총회 임원회에서 가결된 『직원직제개편 업무규정』이 총회에서 통과됐는데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긴급동의안을 획책했다. 이 간부는 신대원 동기들과 주변 지인 총대들에게 긴급동의안을 서명케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직접 총회 장소를 다니며 긴급동의안 서명을 받았다. 『직원직제개편 업무규정』은 현재 총회 사무국의 국체계를 팀체계로 전환해 2년 임기 팀장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하자는 것이다. 현재 기업과 공무원 조직도 모두 팀체계로 전환해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팀조직을 총회 사무국에도 적용한 것이다. 이는 직원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간부직에 올라가면 안일해지고, 타성에 젖는 총회 조직의 악습을 바꿔 활력있는 조직이 되게 하는 조직전환이다. 이는 박용규 총회 총무가 모든 직원들을 개별 면담 후 도입한 제도로서 총회 조직의 활성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개편이다. 그런데 이미 진급해 무사안일 타성에 젖은 간부급들에게는 불편한 개편이 아닐 수 없다. 그러자 평소 문제 많던 이 간부가 총회에서 통과된 이 개편안을 뒤집는 쿠테타를 획책한 것이다. 총회 산하 지교회의 피같은 세례헌금으로 6500여만원의 넉넉한 봉급을 받고 있는 총회 간부의 일탈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선을 넘었다.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냥 넘어가면 제2, 제3의 똑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한다. 총회원들은 임원회의 대응을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고 이것으로 109회 총회의 향방을 가늠할 것이다. -
김병중(Th.D) 09-29 14:29
【109총회복기1】 정년 “노사분규”…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자
어느 분한테 들은 죠크다. “장로와 목사가 다투는 것을 네 글자로 줄이면?” 답은 “노사분규”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 할 말이 없다. 총회 때마다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는 안건이 있다. 바로 목사 정년 연장이다. 금번 총회에도 연장 건이 또 올라왔다. 21개 노회가 헌의했는데 약간 다르다. “정년을 73세로 또는 75세로 연장하자는 안, 미조직교회만 정년을 폐지하자는 안, 반대로 정년을 65세로 하향하고 70세에 완전히 은퇴하자는 안, 또 앞으로 3년간 연장 건은 다루지 말자는 안” 등이 올라왔다. 이에 정치부는 “정년 연장을 허락하되 지교회의 상황과 노회의 형편에 따라 지교회와 노회에 일임하여 시행함이 가한 줄 아오며”라고 보고했다. 이에 김종혁 총회장은 찬성 쪽 의견을 듣고 바로 고퇴를 두들겼다. 반대자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정치부 보고를 진행할 것처럼 하다가 결국 제동이 걸려 재론하고 연장안을 부결시켰다. 만약 김종혁 총회장이 정치부 보고대로 진행했다면 이후 총회는 난장판이 됐을 것이고, 모든 책임은 김 총회장에게로 갔을 것이며, 109회 총회는 출발부터 소란스러웠을 것이다. 일부 목사는 정년 연장, 또는 정년제 폐지를 원하고 있다. 반면 대부분 혹은 모든 장로는 정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교회의 대표인 목사와 교인의 대표인 장로가 싸우고 있다. 모 장로는 “교인들에게 물어보라. 모든 교인들이 정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교인들의 대표로서 정년 연장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 목사들은 왜 대부분의 교인들이 반대하고 있는 정년을 연장하려고 하는가? 현재 분위기는 어떠한가? 몇 년이라도 조기 은퇴하면 교인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박수를 보낸다. 예우도 후하게 해주려고 한다. 반면 정년을 다 채워 은퇴하면 데면데면하다.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년 연장을 한다고 하면 어느 교인들이 좋아하겠는가? 물론 교인들은 입에 발린 말로 “목사님이 좋아요. 은퇴하지 말고 계속하세요”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말에 속지 말기를... 장로들은 “교회가 젊어지기 위해서는 정년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목사가 나이들어가는 만큼 교회는 늙어가는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정년 연장은 노욕(老慾)으로 비춰진다.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이 완강히 거부하는 한 정년을 늘리거나, 정년제를 폐지할 묘안은 보이지 않는다. 매년 되풀이되는 노사분규는 꼴사납기만 하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면서 욕만 먹고 있다. 조기 은퇴하거나 정년까지만 하면 그래도 교인들은 박수 칠 것이다. 그러니 목사들이여, 박수칠 때 떠나자! 몇 년 더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
김병중(Th.D) 09-28 08:19
【제109회 총회】 넷째날-사진 · 동영상 모음
제109회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2024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울산 우정교회(예동열 목사 시무) 열렸다. 넷째날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
김병중(Th.D) 09-28 07:56
【제109회 총회】 셋째날-사진 · 동영상 모음
제109회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2024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울산 우정교회(예동열 목사 시무) 열렸다. 셋째날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
김병중(Th.D) 09-28 07:29
【제109회 총회】 둘째날-사진 · 동영상 모음
제109회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2024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울산 우정교회(예동열 목사 시무) 열렸다. 둘째날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
김병중(Th.D) 09-28 07:06
【제109회 총회】 첫째날-사진 · 동영상 모음
제109회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2024년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울산 우정교회(예동열 목사 시무) 열렸다. 첫째날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
김병중(Th.D) 09-27 08:15
【109회 총회】 정년 연장 안, 부결
올해도 정년 연장 헌의안이 부결됐다. 지난 9월 23일 울산 우정교회에서 개최된 제109회 총회 넷째 날 오전 정치부 보고에서 첫 번째로 다뤄진 정년 연장안을 처음에는 김종혁 종회장이 고퇴를 두들겨 통과시켰다. 그러나 다수 총대의 반대로 재론해 1시간가량 논쟁 끝에 결국 부결됐다. 이후 김종혁 총회장은 안건에 대해 반대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성급히 고퇴를 두드린 것에 대해 사과했다. 대다수의 장로 총대와 일부 목사 총대가 정년 연장을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도 총회 때마다 이 건으로 인해 논쟁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주장과 논리가 첨예하게 달라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계더보기 +
-
김병중 11-18 18:12
한장총 제40회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상임회장 천 환 목사 선출
(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11월 18일 오후 2시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제40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임원 선출,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을 통과했다. 이번 정기총회에서 한장총 현 상임회장인 정서영 목사를 제40회 대표회장으로 추대했고, 고신 증경총회장인 천 환 목사를 상임회장으로 추대했다. 개회예배는 상임회장 정서영 목사의 인도로 공동회장 권오헌 목사가 기도 후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부터 23절까지를 본문으로 '사방관계신앙'이란 제목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성탄절을 맞이하면 후회없이 한해를 마무리 할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성결해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선물, 믿음의 선물, 축복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사방관계신앙을 잘해야 이러한 복을 받는다"고 설교한 후 증경대표회장 황수원 목사의 축도 후 총무 고영기 목사가 광고한 후 개회예배를 마쳤다. 회무진행 총회는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의 사회로 "하나님의 은혜로 정기총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개회 인사 후 서기 조강신 목사가 회원점명 후 대표회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공동회장 김만형 목사가 개회기도 후 전회의록, 각종회의 보고, 사업 보고는 유인물로 받기로 하고, 강세창 목사가 감사보고, 회계 김충무 장로가 결산보고했다. 선거관리위원장 김종준 목사 사회로 대표회장 및 상임회장 선거를 해 당선증을 수여하고 당선 공포하고, 신구임원을 교체했다. 39회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가 "2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후로도 한장총을 위해 관심갖고 협력하겠다.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이임사 후 정서영 신임대표회장이 선서하고 "부족한 저를 대표회장으로 추대해 주신 뜻을 잘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취임사 후 신 임원 소개한 후 공로패와 감사패를 증정한 후 상임위원장 및 특별위원장을 임명하고, 신임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의 폐회기도로 정기총회를 마쳤다. -
김병중 10-20 07:11
종교개혁 기념, 한영훈 한장총 대표회장 메시지
종교개혁주일을 앞두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대표회장이 메시지를 발표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2022년 종교개혁 기념주일 대표회장 메시지 오는 10월 30일 주일은 루터의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505년 전 루터가 주창한 종교개혁은 그릇된 전통이나 잘못된 종교적 관습을 성경의 가르침대로 고치고 바로 잡는 것이었고, 성경 말씀에 의한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믿음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개혁 정신의 실천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꼭 필요합니다. 교회의 개혁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교세감소와 사회적 신뢰가 하락하는 오늘날 개혁교회는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며 한국교회는 거룩성과 공교회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심전력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여러 개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중심으로 성경적 교리를 확립하고, 성직 교권주의, 교회 안에 파고든 세속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스며든 성장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인본주의 등 온갖 세속주의를 배격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합시다. 개교회 중심주의와 교회의 분열과 파벌, 부패와 타락이 가져오는 갖가지 참상들을 바로잡고 교회 연합과 일치의 바탕인 공교회성 회복에 힘씁시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 노력합시다. 교회의 공공성이란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도록 더 높은 도덕성으로 떳떳해지며, 자기성찰에 엄격해지고,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종교개혁의 정신과 전통을 회복하고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개혁교회는 분열과 분쟁을 회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탐욕을 버리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교회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개혁하고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정신으로 나갈 때에 한국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와 나라의 위기를 능히 극복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2022. 10. 18. (사)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 -
김병중 06-06 00:25
강헌식 목사, 기하성 총회장 취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광화문) 제70차 총회장 정경철 목사 이임과 제71차 총회장 강헌식 목사 취임식이 6월 5일 오후 5시 평택순복음교회(강헌식 목사 시무) 대성전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총회 총무 기용성 목사의 인도로 총회 서기 백용기 목사의 기도 후 총회 회계 백 충 목사가 사도행전 1장 6절 부터 11절 까지 봉독한 후 평택순복음교회 찬양대가 찬양했다. 정경철 목사(제70차 총회장)가 '주님의 약속과 성취'란 제목으로 설교 후 총회 재무 김상찬 목사가 헌금기도하고 테너 하만택 집사(유럽 최고의 오페라 가수)가 헌금송했다. 2부 이취임식은 기용성 목사의 사회로 교단기 인수인계 후 정경철 목사가 "저는 부족했는데 강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셔서 이제 덕분에 저도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감사드린다. 우리 교단은 성령 교단이다. 원래의 명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임사하고 강헌식 목사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히 섬기는 총회장이 되겠다"고 취임사 했다. 취임 총회장 강헌식 목사가 이임 총회장 정경철 목사에게 공로패와 증서를 전달하고 이병옥 목사가 취임 총회장을 소개 후 강헌식 목사에게 취임패를 증정하고 각 기관이 꽃다발을 증정했다. 3부 축하 권면 격려는 총회 전 부총회장 송종철 목사의 사회로 하만택 집사가 축하송을 하고 갈릴리형제회 회장 김삼환 목사가 축하패를 전달하고(대신 전달함) 안산제일교회 원로 고 훈 목사가 축시를 낭송했다. 총회 증경총회장 함동근 목사가 "강헌식 목사님은 탱크 목사님이다. 탱크는 길을 가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간다. 탱크는 지치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다. 강 목사님은 성령이 원동력 되셔서 탱크 목사님이 되셨다. 그 동안 총회 일을 위해 많이 힘쓰셨다. 성령께서 언제나 원동력이 되셔서 앞으로도 강 목사님이 잘 달려가실 것이다. 더 힘을 얻으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큰 일 이루시기 바란다"고 격려사 후 강 목사가 금배지를 전달했다. 총회 정책위원장 백종선 목사가 "총회장의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강 목사님을 하나님이 세우셨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됐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았듯이 주님만 바라보며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교단 발전의 비전을 이루시기 바란다. 평택순복음교회 교인들은 강 목사님이 총회장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로 밀어드리고 영육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과 물질로 헌신해 주시기 바란다"고 권면하고,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이사장 안준배 목사가 "강 목사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과거 故 한경직 목사님을 도와 수련회를 진행할 때도 시종일관하셨고 목회자로서 부임한 교회에 늘 시종일관하셨다. 강 목사님은 늘 하나님의 부르심, 성령의 감동에 늘 순종하신다. 강 목사님은 1990년 4월에 평택순복음교회에 부임해 2달간 간절히 기도하시며 목회를 시작하셨다. 목사님과 함께 성령 운동을 하면서 미국에서 성회를 하게 됐는데 폭설이 내려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8 시간 지나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저는 겁이 나 못가겠다고 했는데 강 목사님은 약속했기에 가자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이처럼 강 목사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다. 강 목사님은 교단 총무로서 교단 일을 하며 예배 마지막 곡으로 신학교 때 은혜 받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늘 부르셨다. 강 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하셨지만 변함이 없으시기에 성령운동의 기수로 초지일관, 시종일관 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권면했다. 예장통합 증경총회장/명성교회 원로 김삼환 목사가 "주의 일은 주님이 하신다. 준비된 종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 목사님은 그릇이 깨끗하며 헌신된 정금같은 종이다. 강 목사님으로 인해 교단과 한국교회가 큰 발전을 이룰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을 기다리고 있다. 강 목사님이 그 역활을 하시리라 믿는다"고 영상으로 격려 및 축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이 철 목사가 "총회장 되신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교단장은 한국교회 회복에 대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한국교회가 어려움 당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하면 첫째는 한국교회에 갈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뜨거운 기도의 열정이 사라졌다. 두번째는 희생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기적이 됐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것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부흥은 어렵다. 강 목사님은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이기에 세움받으셨다고 생각한다. 열정과 희생을 통해 이루실 것이다. 귀한 사명 감당하는 강 목사님과 평택순복음교회가 되시기를 바란다. 성령 운동으로 시작한 감리교와 앞으로 함께 손잡고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일에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경동교회 원로/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화 목사가 "아라비아의 한 동네에 아들 셋이 있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양 17마리를 남겼다. 이들의 옆 친구는 가난해 양 한마리 밖에 없었다. 큰 아들은 양의 절반을 상속하고, 둘째는 3/1을, 셋째는 9/1을 상속하라고 했다. 이때 옆집의 양을 한마리 포함해 잘 나누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웃 친구의 양 한 마리가 없으면 양 17마리를 나눌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마리의 은혜로 한 마리는 예수님이시다. 강 목사님도 예수님처럼 한 마리 양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은 오순절 주일인데 강 목사님이 성령의 종이 되시기 바란다"고 축사하고, 오세아니아기하성 총회장 홍요셉 목사가 "강 목사님과 오래 교제해 왔다. 목사님은 VIP(Vision, Inspiration, Passion) 탱크이다. 여호수아와 같은 대장군이시다. 힘과 열정으로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셔서 어디에서도 이기게 하셨듯이 강 목사님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는다. 또한 선구자, 선각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실 줄로 믿는다"고 축사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장기철 목사가 "강 목사님은 종의 자세로 왕의 권세를 사용하실 분이시다. 섬기는 종이 되실 것이다. 강 목사님께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21대 대표회장을 역임하셨다. 그때 난감한 상황에서도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셨다. 성령의 일하게 하심을 따라 단체를 이끌어 가셨다. 그래서 평화롭게 감당하셨다. 총회장으로 큰 일 하실 것이라 기대하며 축하드린다"고 축사하고,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임다윗 목사가 "강 목사님은 부드럽고 온유하시나 포스가 있으시다. 보통 분이 아니시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으시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권능이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성령의 권능으로 탱크처럼 쓰임 받으시기 바란다. 사람을 얻는 자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무너진다. 강 목사님을 통해 교단이 크게 흥왕하시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평택시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 신용현 목사가 "고전15:10에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으로 총회장이 되셨기에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과 평택에서 30년을 함께 지냈다. 강 목사님은 긍정적이며 탁월하신 분이시다. 이처럼 좋은 지도자를 총회장으로 세운 교단에도 축하드린다"고 축사 후 평택시 정장선 시장이 "평택시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바이든이 평택 미군 기지를 방문했다. 이러한 때 강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든 평택 시민과 함께 총회장 되신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성공하는 총회장 되시기를 바라며 많이 협력해 드리겠다"고 축사했다. 다음은 영상 축사이다. 전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취임을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으로 지금은 애국운동에 앞장서고 계신다. 강 목사님과 교단이 함께 '예수한국 복음통일'에 큰 기여를 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택순복음교회도 더 크게 성장해 큰 역할 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상복 목사가 "총회장 되심 축하드린다. 교단 총무로 그동안 많은 수고를 하셨다. 평택 성시화, 경기도 성시화 운동에도 많은 일 하셨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셔서 총회장이 되셨는데 잘 준비된 총회장이시니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교단이 크게 발전될 줄 믿고 축하드린다"고 축사하고, 기하성여의도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가 "코로나 여파로 한국교회가 어려웠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 재정비하고 새로운 역사를 이끄실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목회에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신 목사님을 통해 승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고명진 목사가 "한 사람의 지도력이 한 시대를 좌우한다. 강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단에 선한 영향력이 있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기하성 신수동 총회장 우시홍 목사가 "총회장 되심을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교회를 성장 시키셨고, 부흥사의 큰 일을 감당하셨다. 총회장으로 교단의 위상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축사하고, 미하나님의성회 한국 총회장 김웅철 목사가 "강 목사님의 총회장 되심을 축하드린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귀하게 쓰시고자 큰 일꾼으로 세우셨다. 모든 임원, 회원들이 한 마음 되어 교단이 든든히 세워지기 바란다. 또한 큰 일 하시는 담임목사님과 협력해 큰 일 감당하는 평택순복음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미하나님의성회 한미 총회장 이병진 목사가 "강 목사님은 선한 목회자이시며 탁월한 지도자로서 세계선교에 많은 수고를 하시고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일하셨다. 강 목사님을 통해 교단이 발전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예수마을교회 담임 장학일 목사가 "강 목사님은 끈기와 열정이 있으신 분이시다. 교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총회장이 되셨다. 앞으로 잘 하실 것이기에 축하받아 마땅하시다. 교단을 위해 큰 일을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시기 바란다"고 축사하고, 대전중문교회 담임 장경동 목사가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마지막 때이기에 성령의 충만으로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 강 목사님의 리더십으로 교회와 교단에 크게 쓰임 받으시기 바란다"고 축사했다. 평택순복음교회 장로회장 이창근 장로가 광고한 후 수원순복음교회 원로 이재창 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총회장 이취임식을 마쳤다. -
김병중 03-16 23:09
'성령님과 함께 특별기도회 및 대토론회' 개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신수동측) '성령님과 함께 특별기도회 및 대토론회'가 청주에 소재한 순복음청원진주초대교회(담임 박성하 목사)에서 11월 15일 오전 10시에 있었다. 오전10시부터 11시까지 제70-3회 정기실행위원회로 모였다. 허중범 목사(제1부총회장)의 사회로 이경은 목사(부총회장)가 기도한 후 시편18편 1-3절을 본문으로 남종성 목사(증경총회장)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오전11시부터는 행정세미나와 교회세법세미나를 이기봉 목사(부총회장)가 사회하고 김행형 세무사가 강의했다. 오후1시부터는 행정, 조직, 재정, 복지, 학교법인에 대한 대토론회가 우시홍 목사(총무)의 사회로 회원들이 질의하고 강희욱 목사(총회장)가 답변했다. 오후 2시 30분 부터는 특별기도회를 전태식 목사(부총회장)가 사회하고 김낙귀 목사(순복음영성훈련원 원장)가 요한복음6장 67절을 본문으로 '너희도 가려느냐'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합심 기도 후 서안식 목사(증경총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모임을 준비한 순복음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참석자들의 코로나 접종 확인, 체온 체크, 마스크 및 일회용 장갑 착용 등 만전을 기했다.
기관더보기 +
-
김병중(Th.D) 11-02 15:53
세계선교연대, 제111차 포럼 개최
제111차 세계선교연대(대표 최요한 목사, 세선연) 포럼이 11월 2일 오전 10시 30분 명동 소재 프린스호텔 별관 컨벤션홀 2층에서 열렸다. 최요한 세선연 대표가 “최근 쓰러져 머리가 10센티미터 찢어지며 피를 많이 흘리는 큰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응급실로 가서 처치를 받았다. 이후 또 넘어져서 다쳤다. 백 세 시대라 백 세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고 인사말 했다. 이선구 이사장이 “저도 최요한 목사처럼 질병이 생겼는데 바울처럼 은혜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기도행전을 통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교회의 기도 불씨가 되살아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요즘은 목사들이 많이 배워야 담임으로 부임하다 보니 기도가 많이 약해졌다. 우리나라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또한 대한노인회 기독교신우회가 다시 회복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인사말 했다. 예배는 총회신학원 원장 강 장렬 목사의 인도로 시민단체 총재 고종욱 장로가 기도, 지부협 사무총장 이교현 목사가 왕하 9:32 봉독, 조윤하 전도사가 바이올린 연주 · 찬양 사역자 정은영 전도사가 특송했다. 전 장신대 총장 민경배 목사가 '한국의 일제-그 역사의 정통사'란 제목으로 “일제 치하에서 일제보다 공산주의자에게 8배 더 죽임당했다. 백제에서 일본에 문물이 넘어갔고 천황의 핏속에 백제의 피가 섞여 있다. 백제 공주 5명이 일본에 가서 결혼했다. 일본에 1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이들이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다. 아베의 조상에는 한국 계통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한국과 손잡고 싶었던 일본의 인물들이 있었다. 찬송가에도 일본인의 곡이 4개 들어가 있다. 영국 일간지는 한국이 기독교를 힘입어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썼다. 한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기독교를 통해 함께 발전하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헌금기도, 찬양 사역자 김은아 집사가 헌금송, 국제선교신문 사장 김주덕 장로가 광고 후 세선연 이사장 이선구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선교포럼 및 사역 소개는 세선연 대표 최요한 목사의 인도로 샘물교회 최태선 목사가 기도, 선교사들 일동, 방근숙 찬양 사역자가 찬양, 문인교회 박재천 목사가 시 낭독, 국제선교협의회 회장 이종득 장로가 “선교사님들을 위해 최요한 대표, 이선구 이사장이 귀한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것이다. 복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복음을 위해 목숨 걸고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말 했다. 사역소개 태국 안용원 선교사가 “치앙마이에서 탈북자 사역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나 유정미 선교사가 “주님의 은혜로 시설을 새롭게 단장하게 되어 감사하다. 가나 신자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지저스 미션 교회 개척 사역을 통해 100여 개의 교회를 건축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이들을 위해 농장을 운영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일본 배정원 선교사가 “홋가이도에서 16년째 사역하고 있다. 일본인을 전도하는 것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사모가 하는 식당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일본을 전도해야 한다”고, 필리핀 김문순 선교사가 “코로나 시기에 들어와 최요한 목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남편 목사에게 현지 사역을 더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후 남편이 사지마비로 인해 1년 6개월간 치료받고 회복 중인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다”고 사역 소개했다. 태국 송용자 선교사가 “태국 선교는 200년이 됐지만 교세는 미비하다.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교회와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태국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필리핀 강진석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37년째 사역하고 있다”고. 탄자니아 황선희 선교사가 “5년 계획으로 새로운 사역을 하고자 한다”고, 필리핀 모정철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30여 년 사역하며 대학 사역을 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자, 신학교 진학률이 조금 떨어졌다. 학부모, 학생 전도에 힘쓰고 있다”고, 최종표 목사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는데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탁명진 원장이 “귀한 자리에 와서 감사하다”고, 일본 박영애 선교사가 “대마도에 사정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있는데 매주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이병기 장로가 “복음이 황무지 같은 대한민국을 개발했다.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조력자를 구하고 있다.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한 후 주기도로 은혜로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11-01 22:25
월기총 제111 정기총회를 위한 첫 준비기도회
월드기독교총연합회(이사장 정진희 목사, 이하 월기총) 제11차 정기 총회를 앞두고 첫 번째 준비기도회가 11월 1일 오후 7시 송내열방교회(김정우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1부 개회예배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월기총은 지난 2014년 10월에 기도 가운데 설립됐고, 모든 기관을 아우르는 연합회다. 이제 12월에 정기총회를 하는데 오늘은 이를 위한 첫 준비 기도회다. 월기총은 언론 활동을 통해 든든히 세워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기관, 단체와 MOU를 맺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환영사, 지용길 목사가 기도, 김복례 이사가 눅 1:1-4 봉독, 윤정순 · 손찬헌 목사가 특송했다. 월기총 상임총재 김정우 목사가 ‘사실 보도 비전 제시’란 제목으로 “군에서 주님을 만나 종이 되겠다고 서원 후 목회하다 27년간은 내가 목회했다고 회개하고 14년 전부터 택시 운전하며 전도하며 목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두 번의 큰 사고로 인해 택시 운전을 그만뒀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으나 성령의 도우심이 없어 결국 주님을 배신하게 됐다. 반면 바울은 복음을 몰랐다가 회심해 복음을 전하게 됐다. 누가는 의사로서 복음을 자세히 기록했다. 월기총도 성경을 사실대로 가르치는 일에 앞장서기를 바란다”고 설교 후 이준원 목사의 헌금기도 ·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제2부 특별기도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1. 오는 12월 월기총 제11차 정기총회 임원 취임식 책자 만들기 위하여 2. 오는 11월5일(화) 오전 10시 30분 인천사랑밭교회(권태일 목사)에서 월기총 사랑밭 한인구조단 연합성회 기자간담회를 위하여 3. 월기총과 함께하는 사랑밭 한인구조단 제1차 고문, 총재, 회장단, 청장년 각 10명, 언론사주, 유튜버, 경력기자 포함 30명 모집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주기도로 마쳤다. 광고 및 기도제목 1. 오늘 맛있는 식사 및 성전 제공과 은혜로운 설교를 해 주신 김정우 목사님과 지명숙 목사님, 그리고 순서를 맡아 주시고 참석하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2. 취재차 오신 기자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3. 오는 11월5일(화) 오전 10시 30분 인천사랑밭교회(권태일 목사)에서 월기종 사랑밭 한인구조단 연합성회 기자간담회가 열립니다. 4. 월기총과 함께하는 사랑밭 한인구조단 제1차 고문, 총재, 회장단 청장년 각 10명, 언론사주, 유튜버, 경력기자 포함 30명 모집을 위하여 5. 매주 토요일 10~12시 대한교회 세미나실에서 대한CTV 시험방송 기자간담회와 기자단, 이사진 구성을 위하여 기도와 동참을 바랍니다. -
김병중(Th.D) 11-01 08:23
인천대교(주), ‘사랑의빨간밥차’ 부평역 무료급식 후원 및 봉사
인천대교㈜가 10월 31일 경인전철 부평역 북광장에서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의 ‘사랑의 빨간밥차’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노숙인 및 홀몸노인 등 220여 명에게 따뜻한 무료급식과 생필품 나눔 봉사를 했다. 인천대교㈜는 매년 3회 이상 기부금을 전달하고 밥차에서 봉사를 실천해 오고 있으며, 올해에도 3월, 6월, 10월에 노숙인 및 홀몸 어르신들에게 ‘사랑의빨간밥차’에서 임직원들이 참여하여 기부금을 전달하고, 직접 소외계층들에게 따듯하고 맛있는 식사 봉사와 설거지 봉사를 했다. 사랑의빨간밥차 이선구 이사장은 “18년째 서울역, 부평역, 주안역, 계양구, 서구 및 전북지부(전주, 군산, 정읍, 고창) 등에서 사랑의빨간밥차로 소외계층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생필품 나눔을 제공해 오고 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천대교(주)와 같은 후원자와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메르스, 사스, 신종 플루,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랑의빨간밥차를 운행하여 무료급식과 생필품 나눔을 할 수 있었다”라며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기부해 주시고 봉사해 주신 인천대교(주) 박종혁 대표이사님과 모든 임 · 직원님들께 오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오늘 봉사에 참여한 인천대교(주) 임 · 직원들은 “그동안 인천대교(주)는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다양한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랑의빨간밥차에 와서 봉사할 때 느끼는 것은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에게 효도한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인천대교(주) 임 · 직원들은 사랑의빨간밥차와 지역 사회를 위한 기부 및 사회공헌 활동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인천대교(주)는 ESG 경영의 하나로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적 책임 활동으로 소외계층들에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 -
김병중(Th.D) 10-31 19:37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 교회론의 비교』, 심포지엄 개최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 교회론의 비교』 심포지엄이 10월 31일 오후 2시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있었다. 기독교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는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심포지엄은 총신대학교 통일개발대학원, 고려대학교 통일융합연구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가 공동 주최했다. 하광민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국민의례 후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이 “요즘 청년들은 통일에 큰 관심이 없다.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을 위한 통일 과목을 개설했는데 많이 수강하고 있다. 총신대학도 통일 선도대학으로 선정되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개회사, 박성규 총신대 총장이 “총신대는 평양에서 시작했기에 통일에 사명감으로 앞장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일성은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기독교를 국가에 접목해 사이비 집단처럼 되었다고 본다. 오늘 심포지엄이 한국교회가 통일을 준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환영사 후 남 원장이 박 총장에게 덕소에서 재배한 참기름, 들기름 세트를 선물로 전달했다. 제1세션은 남성욱 연구원장이 좌장으로, 제1 발표는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사회정치생명체론에 나타난 북한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종교성은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와 유사하다. 기독교의 구원과 영생의 사상은 주체사상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제2 발표는 박재은 총신대 신학과 교수가 「기독교의 교회론과 기독교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 기독교의 주체성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이다. 바빙크는 ‘기독교회의 토대는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가 신적 법률에 따라서만 다스림 받는 국가 공동체 겸 종교 공동체로 등장하는 구약성경이다’라고 했다. 교회는 부름을 받은 공동체로 구별되어야 하며 교회에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사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라고 발표했다. 토론 이어 이종민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와 조정연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했다. 제2세션은 양창석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가 좌장으로, 제1 발표는 지성호 함경북도지사가 「북한 주민들에게 사회정치생명체론의 의미」란 주제로 “북한은 정치적 생명이 육체적 생명 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으면서도 김정일, 김정은 지도자에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 교회 구조가 북한과 같기에 탈북민들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종교 집단과 유사하다. 북한 주민들도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제2 발표는 주연종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겸임교수가 「북한의 사회정치생명체론과 기독교의 교회론 비교」란 주제로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나누고 공산주의는 무력으로 나눈다. 북한은 기독교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북한을 종교적 정체성을 내포한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 속성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와 향후 통일 과정에 있어서 참고해야 할 요소”라고 발표했다. 토론 이어 하광민 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교수와 김혜원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하는 것을 끝으로 심지포임을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10-28 18:12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짜장면 대접 행사
쌀쌀해지는 늦가을은 겨울을 예고하며 우리로 추위를 준비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때 누구보다 겨울이 두려운 자들이 있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사는 노숙자들은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삶의 외줄타기에서 떨어져 어려워하고 있으나 이들도 자립을 꿈꾸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사역하는 (사)한국노숙자총연합회가 이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짜장면을 대접하는 훈훈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11월 12일(화) 오전 10시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에 노숙자 300명을 초청해 예배드리고, 회관 앞 공원으로 이동해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짜장면을 만들어 제공하고 적은 액수지만 각 1만 원을 전달한다(초청 대상자 마감). 이 행사는 (사)한국노숙자총연합회가 주최하며 (사)한국기부재단, (사)한끼나눔, 열린복지랜드가 후원한다.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리며 후원을 원하는 분들은 대표 이주태 장로에게 전화로 문의해 주기 바란다(010-2351-6771). 또한 한국기독교회관 맞은편에 위치한 (사)한국노숙자총연합회 · 한국원로목자교회에서는 화, 목 점심시간에 각자 라면을 끓여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 무료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김병중(Th.D) 10-28 13:58
신임교단장·총무(사무총장), 축하감사예배
2024년 신임교단장·총무(사무총장) 축하감사예배가 10월 28일 오전 11시 코리아나호텔 7층 글로리아홀에서 있었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와 한국기독교장로지도자협의회가 공동 주최했다. 1부 예배는 대회장 김진호 목사의 환영사 후 상임회장 최병두 목사의 인도로 기감 만수감리교회 성중경 원로목사가 기도, 한국사명자선교연합회 김성애 여성총재가 행 27:20-26 봉독, 송암어린이합창단이 특송했다. 공동회장 권태진 목사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는 제목으로 “저는 과거 산아 정책에 찬동했던 것을 지금도 회개하고 있다. 본문에 바울의 말을 무시했던 선장은 큰 어려움을 당한다. 모든 문제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본다. 배가 난파했을 때 바울은 구원의 소망이 있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소망으로 삼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은 교회가 있는 한 망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도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자”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공동회장 민 승 목사가 ‘민족복음화 세계평화를 위하여’, 공동회장 노희석 목사가 ‘국가 안보와 대통령을 위하여’, 공동회장 김태곤 목사가 ‘한국교회와 자유평화 통일을 위하여’, 공동회장 김탁기 목사가 ‘신임교단장 총무 사명감당을 위하여’ 특별기도 후 직전대표회장 김동권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축하 및 기념패 증정은 한국기독교장로지도자협의회 이강욱 대표회장의 사회로 예장합동 길자연 증경총회장이 “창 1:28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셨다. 정치는 다스리는 것이다. 교단을 다스리라고 총회장, 총무로 세워주셨다. 신앙을 밑바탕으로 일해야 한다. 오늘 모임은 잘 다스리라는 소망을 담아 하는 것이다. 축하드린다”고 격려사 했다. 축사 전 국무총리 김황식 장로, 가정문화원 이사장 두상달 목사, 오세훈 서울시장이 축사했다. 축하패 전달 김진호 대표회장 이 예장합동 김종혁 총회장, 기감 김정석 감독회장, 예장합동 박용규 총회총무에게 축하패를 전달하고 김정석 감독회장이 대표 인사했다. 축하케잌 커팅, 사무총장 한동철 목사 광고, 회계 송성익 장로 특송, 임형국 서기 애찬기도 후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10-27 21:13
1027연합예배기도회, 동성혼·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표명
10월 27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10.27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에 주최측 추산 오프라인 110만, 온라인 100만이 넘는 성도들이 참여해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며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재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관계자들의 헌신과 많은 교회와 교인들의 참여로 이같이 대규모 집회가 착오없이 진행 됐으며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 됐다. 이날 흐린 가운데 초반에 비가 잠시 왔으나 곧 그쳐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안전사고에 대비해 시청 광장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참석자들을 분산 배치했다. 오후 1시 30분, 오세훈 서울시장의 영상 인사와 함께 시작된 예배는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1027 연합찬양대는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등의 찬송으로 예배의 문을 열었고, 참석자들은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의 생명 존중을 되새겼다. 예배는 정성진 목사와 오정현 목사의 개회사로 시작해 김승규 장로가 기도했다. 설교 시간에는 한국 사회의 신앙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첫 번째 설교자로 나선 박한수 제자광성교회 목사는 "대한민국의 하나님, 응답하소서!"라는 주제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가 되어야 함을 강하게 호소했다. 그는 동성애 반대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비판하며, 기독교의 신앙적 가치를 수호할 것을 강조했다. “이 시대의 교회가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댐이 터지기 직전에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보다 세속적 즐거움을 쫓는 시대적 풍조와 성적 타락을 지적하며,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따를 것을 강조했다. 이어 김양재 목사(QTM 이사장)는 “돌이켜 살아나라!”라는 설교로 창조질서를 지키고 가정을 보호하는 교회의 사명을 역설했다. 그는 가정이 사회의 근간임을 상기시키며, “사회적 악이 창조질서를 해치고 가정을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낙태 허용 등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토 등 무너지는 가정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가정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이어 교회와 가정이 협력하여 다음 세대를 보호해야 함을 다짐하며 성도들에게 “우리가 돌이켜서 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실 것”이라고 외쳤다.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명예 총장인 브라이언 채플 목사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신앙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 교회가 젊은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겸손히 나아갈 때 그분이 우리를 높이실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채플 목사는 기도의 힘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며, “기도로써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설교했다. 메시지 이어 영국의 안드레아 윌리엄스 변호사, 독일의 하일리 덕센 총장, 한동대 길원평 석좌교수 순으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다둥이 가정과 젊은이들이 나와 가정의 소중함과 바른 성인식이 필요함에 대해 말했다. 이어 선언문을 낭독했다. 한국 교회가 “창조의 나라”를 이루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회를 위한 기여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참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신앙적 뿌리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겠다고 결의했으며, 한국 교회가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지고 미래 세대를 위한 토대를 쌓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또한 한국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것을 다짐했다. “창조의 원리를 지키고 가정과 다음 세대를 보호하겠다”는 결의는 한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교회가 힘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큰 합심기도회 끝으로 에스더기도운동 이용희 교수, 진평연대표 김운성 목사, 예장합동 직전총회장 · 거룩한방파제 대표 오정호 목사의 인도에 따라 다같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한교총 대표회장 장종현 목사의 축도로 2시간에 걸친 예배와 기도회를 공식적으로 마무리 했다. 이후에도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일대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찬양하고 기도했다. 은혜가 충만한 얼굴로 자리를 떠나는 참석자들을 볼 때 교회와 국가에 소망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기 위한 1000만 기독교인 1027 선언문 주제: 오라 우리가 나라를 새롭게 하자(삼상11:14) 지금 우리는 가치관이 흔들리고, 가정과 사회의 기초가 무너져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부정하는 성 오염과 생명 경시로 가정과 다음 세대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에는 핵이, 어깨에는 수천조의 가계 빚이, 허리는 인구 소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교회는 무릎 꿇어 회개합니다. 아울러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 천만 기독교인은 대한민국이 생명의 나라, 자유의 나라, 창조의 나라, 기적의 나라가 되도록 섬기고자 합니다. 1. 생명의 나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생명을 경시하며 가정을 붕괴시키고 역차별을 조장하는 동성혼의 법제화를 반대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과 다음 세대를 마약과 중독, 각종 폭력으로부터 지켜내야 합니다. 가정을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2. 자유의 나라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신앙, 언론, 사상,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주목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의 신장을 위해 힘을 쏟겠습니다. 3. 창조의 나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 힘입어 사회의 전 영역의 역동성이 보장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영적 도약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식민 지배와 전쟁의 상흔을 딛고 경제대국의 은혜를 받은 나라로서 더 많은 나라들을 섬기고 돕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4.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역사에 유례가 없는 번영을 이룩한 기적의 나라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세대 간의 단절, 지역 간의 감정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해소될 것을 기대합니다. 자유 평화 통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기적같이 도래할 것입니다. 사회의 통합을 위해서도 교회가 앞장서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2의 기적을 꿈꾸며 교회가 가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5. 빛과 소금으로 섬기는 교회 한국교회를 세계 선교와 복음화의 전초기지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모든 현안에 참여하고 섬김으로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빛으로, 정화가 필요한 곳에서는 소금으로 섬기겠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요구> 1. 정부는 동성 결합을 사실혼 관계와 같게 취급하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위법한 자격 관리 업무 처리 지침을 즉각 개정하기 바랍니다. 2.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 정정을 허용하거나 동성 결합 합법화의 길을 여는 판결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3. 국회는 남자와 여자 이외 제3의 성 젠더를 인정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 같은 악법은 제정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4. 교육부는 초·중등 교과서에 있는 동성애를 조장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내용을 삭제하고 건강하고 교육적인 내용으로 대체해 주기 바랍니다. 주후 2024년 10월 27일 대한민국 1000만 성도 일동 -
김병중(Th.D) 10-24 15:30
10.27 연합예배, 자발적 · 비정치 역대 최대 규모..전환점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조직위원회는 10월 24일 오전 11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10.27 연합예배의 준비 상황과 행사 당일 발표할 주요 내용을 사전에 기자들에게 알리고, 이번 예배의 역사적, 사회적, 영적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종교개혁 507주년과 한국교회의 순수한 회개와 연합 이번 10.27 연합예배는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며,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함께 회개하고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주일을 선택한 이유는, 교회가 모여 예배드리는 가장 중요한 날에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순수한 예배를 드리며, 사회적, 영적 변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함이다. 이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새기며, 한국 사회와 교회가 새로운 부흥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미 깊은 시간으로 계획됐다. 조직위에 따르면 이번 10.27 연합예배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부흥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한 기도와 예배가 될 것이며,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덕적·윤리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한 나라로 변화되기를 기원하는 자리다. 10.27 연합예배에 10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모인다면, 한국의 복음주의 역사에서 세 번째로 큰 대부흥 집회가 될 것이며, 광화문에서 공식적으로 열리는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될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1973년 빌리 그레이엄의 여의도 광장 집회가 약 110만 명의 참석자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복음주의 집회로 평가받고 있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위기: 종교 자유와 기독교 정신 위협 최근 대법원은 동성커플에게 건강보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단순한 건강보험 정책 변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동성결혼을 사실상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은 해당 판결에 따라 내규를 수정해 동성커플에게 보험료를 지급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이를 위한 예산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판결이 건강한 가정의 개념을 흔들고, 기독교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 헌법상 가정의 보호와 전통적 결혼의 가치가 유지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그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수호하려는 단체와 개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설교를 한 목회자들이 체포되거나, 기독교인이 공공장소에서 성경을 소지한 상태로 연행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앙의 자유와 기독교 신앙을 표현할 권리가 점점 억압받고 있다는 신호다. 왜 지금 모여야 하는가: 한국 사회 위기 전환점 이제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와 기도로 한국 사회의 변화와 회복을 위해 나아가야 할 때다. 동성혼이 인정되면 어쩔 수 없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는 수순으로 갈 뿐만 아니라, 기독교 학교와 교회들이 성경적 가르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은 단순히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조직위원회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동성결혼의 합법화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단체와 개인에게 심각한 제약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기독교 학교와 교회가 성경적 가르침을 유지하는 것이 불법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 공동체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러한 법안이 통과된 해외 사례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전통적 관계와 역할이 무너지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자녀를 ‘아들’이나 ‘딸’이라는 전통적 성별 용어로 부르는 것이 금지되고 있으며, 부모는 ‘엄마’, ‘아빠’ 대신 ‘부모 1’, ‘부모 2’로 호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규정은 가정의 기본적인 개념을 흔들고 있으며, 학생들은 학교에서 점점 늘어나는 성별 선택 사항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미국의 한 주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성별이 31가지가 넘어선 곳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10.27 연합예배는 한국교회가 사회적 책임과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고,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결단의 자리가 되어야 하며,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기도하고,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독교 박해와 한국의 대응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차별을 받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한 교사가 해고되거나,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소지한 채 공공장소에 나타날 때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캐나다와 독일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전통적인 결혼관을 지지하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연행되거나 법적 처벌을 받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해외 사례를 근거로, 차별금지법이 단순히 소수자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와 성도들의 신앙 표현을 억압하고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회의 윤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예배 준비 상황과 경찰 협상 현황 현재 집회 허가는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의 세종대로 구간에만 내려진 상태이다. 현재까지 개별 참가신청 인원이 60만 명을 돌파, 실제 100만 명 이상 참여가 예상되므로, 해당 구간만으로는 수용이 불가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경찰과 협의하여 추가 집회 구간을 협상 중이다. (집회 허가 여부): 서울역-삼각지 구간과 추가 집회 장소에 대한 허가 여부는 결정되는 대로 공지될 예정이다. 추가 협상된 집회 구간: 경찰은 시청에서 을지로1가까지의 을지로 구간, 시청에서 청계천까지의 무교로 구간, 숭례문에서 염천교까지의 칠패로 구간을 추가 허가했다. (제3지역 집회 무대 설치 요청): 경찰은 인파 분산을 위해 제3지역 집회 무대 설치를 요청했으며, 사무국은 이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삼각지까지의 한강대로 구간 개방을 위한 요청 또한 지속 중이며, 기자간담회 당일 최종 허가 여부가 확정될 예정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종교개혁의 정신 이번 10.27 연합예배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부흥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한 기도와 예배가 될 것이며,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덕적·윤리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거룩한 나라로 변화되기를 기원하는 자리다. 참가 신청 및 추가 안내 사항 10.27 연합예배는 오후 2시 광화문, 시청, 남대문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며, 현재 70만 명의 참가 신청이 필요하다. 예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rebuild-kc.com에서 신청해야 도로 사용에 필요한 객관적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교회와 단체들도 동일한 절차에 따라 동참할 예정이다. 버스 주차 구역: 경찰과 협의된 공식 주차 구역이 안내되었으나, 예배에 참가하는 모든 버스를 수용하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포화 시 외곽 지역에 주차하도록 안내될 예정이다. 쓰레기 관리: 예배 중 발생하는 쓰레기는 개인이 직접 수거하여 깨끗한 예배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집회 허가 여부: 서울역-삼각지 구간과 추가 집회 장소에 대한 허가 여부는 10월 24일 기자간담회 당일 최종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교회는 이번 예배가 하나님 앞에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역사적인 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했다.
노회더보기 +
-
김병중(Th.D) 10-29 16:05
김형곤 장로부총회장, 취임 감사예배
제109회 총회 김형곤 장로부총회장 취임 감사예배가 10월 29일 오후 2시 김제노회회관에서 열렸다. 김제노회 127회 정기회 중 오후 2시에 드린 감사예배에 참석한 모든 노회원은 김형곤 장로의 부총회장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김형곤 장로부총회장이 “부족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부총회장의 꿈을 갖게 하셨고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지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변 분들이 도와주셨다. 정말로 감사드린다. 이제 전국을 다니며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회자 노후, 차별금지법 반대 등을 위해 애쓰고 있다.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 김종혁 총회장의 지도로 각 임원이 노회 때 취임 축하받도록 간소화해 주었다. 총회장을 도와 힘써 일하도록 하겠다”고 취임 감사 인사말했다. 조길연 한국 CE 동지회 회장은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함께 CE에서 많이 수고했다. 김형곤 장로는 불의에 대항하면서도 늘 인자했다. 총회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했기에 최선을 다해 감당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한국 CE 동지회는 계속해서 김 장로를 지지하며 기도하겠다”고 축하했다. 1부 예배는 부노회장 백영현 목사의 인도로 장로부노회장 방승남 장로가 기도, 서기 홍영록 목사가 고전 10:31-33을 봉독했다. 증경총회장 전계헌 목사가 ‘하나님의 사람, 이렇게 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김제노회에 김형곤 장로가 부총회장이 되는 선물을 주셨다. 또한 온 노회원들이 당선을 위해 수고해 좋은 결실을 보았다. 이제는 맡은 일을 잘 감당하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첫째,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바울은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타인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고 했다. 둘째,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총회를 섬길 때 여러 걸림돌이 있을 수 있다. 셋째,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한다. 자기의 유익을 먼저 구해서는 안 된다”고 설교했다. 이어 노회장 김찬홍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격려사, 축사 2부 격려와 축하 시간에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축하드리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란다. 성령의 인도로 영광을 드러낼 줄 믿는다”고 영상 격려, 호남협의회 회장 유웅상 목사가 “김형곤 장로의 부총회장 당선을 위해 힘써 기도하며 노력해 이렇게 취임감사예배를 드려 축하한다.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자세, 화합과 연합 정신, 리더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김형곤 장로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셨다”고, 전북신학원 이사장 서현수 목사가 “임원으로 건강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란다. 임원 일을 할 때 임원회 안에도 갈등이 많았고, 때로 린치를 당하기도 하며 욕을 먹기도 하고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알고 감당하시기를 바란다”고,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가 “친구같이 지내는 김형곤 장로를 축하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총회 임원들과 백령도 사곶교회에 함께 가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곳 성도들은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김 장로가 그러한 분이다. 109회 총회에 꼭 필요해서 세워진 분이라고 믿는다”고 축사 후 김형곤 장로의 인사말 후 김형곤 장로가 시무하는 대창교회 김영복 담임목사의 기도로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10-26 20:54
한남노회 장로회, 첫 세미나 성대하고 은혜롭게 개최
한남노회 장로회가 “한남장로들이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를 주제로 10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영종도 인스파이어호텔 세미나실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회원 120여 명이 참석했으며 강사는 양현표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와 안기성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SMTC 이사장 · 노회장 · 빛의교회 담임목사가 맡았다. 개회예배는 회장 김헌희 장로의 인도로 감사 최병원 장로가 “한남장로들이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주제 제창, 증경회장 이정철 장로가 기도, 부총무 김길태 장로가 사 60:1-22 봉독, 소프라노 김영희 사모가 ‘선한 목자’를 특송했다. 노회장 안기성 목사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란 제목으로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많이 인용하셨다. 본문은 우리에게 빛을 발하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발광체가 아니기에 받은 빛을 반사하면 된다. 이때 빛 되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빛은 어두울 때 더 드러난다. 그러므로 세상이 어둡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빛을 비춰야 한다. 세상은 죄와 어두움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했다. 장로로서 의인 됨을 지켜야 교회와 나라가 살 수 있다. 그러면 영광이 임해 빛을 발하면 어떤 복을 받는가? 첫째 부의 복을 받는다. 이는 사람의 복이다. 사람이 몰려들게 된다. 또한 이방인들도 오게 된다.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자들이 온다. 둘째 재물이 온다. 바다의 부, 이방 나라의 부가 온다. 비전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금도 주신다. 가축의 재물도 주신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는 반사하면 된다. 노아 홍수 때 짐승들이 자발적으로 방주에 왔듯이 하나님께서 필요할 것들을 불러들여 주신다. 신앙 안에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 그럴 때 19절 하나님께서 영원한 빛이 되어주시는 역사가 일어난다. 오늘 복된 세미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축사 전국장로회연합회 오광춘 장로가 “오늘 세미나가 전장연과 같은 주제라 감명 깊었다. 이번 회기에는 농어촌교회 리모델링, 보수하는 일을 했다. 많은 분의 헌신으로 15개 교회를 리모델링했다. 네팔에도 장로들의 순수한 헌금 1억 원으로 교회를 세웠다. 많이 협력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빛을 발하는 한남 장로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정채혁 전장연 선관위원장 이 “한남노회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은혜가 충만한 세미나가 되기를 바란다”고, 서영렬 증경회장이 “하나님의 은혜로 노회에서 여러 일을 맡았었다. 실명하기 전에는 눈의 소중함을 몰랐었다. 2022년 12월 출근 후 갑자기 실명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 후 전장연 수석부회장 후보들이 나와 인사하고, 증경노회장 이웅세 목사의 축도 후 총무 최우순 장로의 광고로 마쳤다. 특강 1은 김낙문 장로의 사회로 최정주 장로가 기도 후 양현표 교수가 ‘장로교회 정치 체제와 장로직분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교회는 영적이며 조직이기에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질서를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 네비우스에 의해 한국에 장로교회가 빠르게 발전했다. 칼빈이 초대교회에서 장로교회 구조를 발견했다. 장로 정치는 성경적이며 근본적인 정치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중식 후 오로라 쇼 등을 관람하며 휴식하고 최병원 장로, 김상엽 장로, 정 훈 장로의 사회로 찬양 및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다. 특강 2는 감사 김윤석 장로의 사회로 부회장 김하겸 장로가 기도 후 노회장 안기성 목사가 마 28:18-20을 본문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란 제목 “한남노회는 중부지역 선교사 파송 순위 3번째이다. 예수님의 지상 최대 명령은 선교이다. 선교는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파송된 선교사와 함께하는 것이다. 현지인 평신도 동역자가 중요하며, 현지인 사역자들이 중요하고, 단기 선교팀을 통한 지원활동이 중요하고, 집단 이주를 통한 집단 개종 정책의 효과를 내야 하며 장학제도를 통해 선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례 발표는 박윤제 장로가 ‘교회별 모범적 선교 지원 사례 및 발표’란 제목으로 했다. 특강 3은 감사 최병원 장로의 사회로 부회장 김승학 장로가 기도 후 노회장 안기성 목사가 ‘창조 속에 나타난 사역의 원리’란 제목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에 교회도 창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말씀 공동체이기에 말씀에 반응해야 한다. 교회는 사역 공동체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 공동체로 사람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회예배는 부회장 심재기 장로의 인도로 증경회장 고성기 장로가 기도, 부총무 김명곤 장로가 엡 2:19-22을 봉독 후 소풍교회 김창현 목사가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란 제목으로 “복음은 무명의 전도자를 통해 전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목회하고 있다. 또한 관계를 통해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교회를 잘 섬기는 장로들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증경회장 황인창 장로가 ‘나라의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증경회장 장남일 장로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명예회장 송정문 장로가 ‘교단과 한남노회를 위하여’ 특별기도 후 회장 김헌희 장로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세미나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1회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폐회사, 총무 최우순 장로가 광고한 후 부노회장 안해선 목사의 축도로 은혜롭고 유익한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10-15 22:46
광주전남노회, 제124회 가을 정기회 개최
광주전남노회 제124회 가을 정기회가 10월 15일 오전 9시 30 광주산수교회(임춘수 목사 시무)에서 열려 회무를 처리하고 윤영석 씨를 강도사 인허했다. 개회예배는 노회장 임춘수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최경주 장로가 기도, 노회장 임춘수 목사가 창 1:1-5를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제목으로 설교 후 부노회장 김종호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회무 처리 중 전남노회가 광주전남노회가 같은 회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법 회기 사용’이라고 109회 총회 때 문제 제기해 5인 위원회를 구성해 처리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임원회에 맡겨 대응하도록 결의했다. 또한 금번 노회 때 서만종 목사의 109회 총회 부서기 당선을 축하해야 하는데 총회 임원 모임이 백령도에서 있어 출타해 추후 축하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
김병중(Th.D) 10-15 22:12
목포서노회, 제138회 정기회 개최
목포서노회 제138회 가을 정기회가 10월 15일 오전 10시 목포영락교회(이경욱 목사 시무)에서 열려 회무를 처리하고 목사 안수식을 거행했다. 개회예배는 노회장 서현성 목사의 인도로 장로부노회장 송영문 장로가 기도, 부회록서기 윤준환 목사가 고후 8:16-24 봉독, 목포영락교회 찬양대가 찬양, 서현성 목사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설교, 서기 정상록 목사가 광고 후 서현성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 증경노회장 박창규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을 행한 후 회무를 처리했다. 오후 2시 목사 안수식은 노회장 서현성 목사의 인도로 증경노회장 유 면 목사가 기도, 증경노회장 모상규 목사가 행 20:17-35 봉독, 증경노회장 모상련 목사가 ‘목사가 할 일’이란 제목으로 “목회는 참는 것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이다.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것이다. 성도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김종호, 김진혁 강도사를 목사 안수 후 증경노회장 최광열 목사가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나였다. 나의 변화가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나의 변화가 본질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힘써야 한다. 주님과 복음에 최고의 가치를 둬야 한다. 우직하고 충성스럽게 달려가야 한다. 날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라. 영력 · 지력 · 체력이 있어야 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고 권면, 증경노회장 현상도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일인백성’이란 말이 있다. 한번 참으면 백 가지를 이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있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달려가시기를 바란다”고 축사 후 안수받은 김종호 목사의 축도로 목사 안수식을 마쳤다. 이어 전 총회사무총장 이은철 목사가 ‘출애굽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특강했다. -
김병중(Th.D) 10-15 00:20
중앙노회 제69회 정기회, 혜린교회에서 개최
중앙노회(노회장 박동규 목사) 제69회 가을 정기회가 10월 14일 오전 11시 부천에 소재한 혜린교회에서 개최되어 회원 70여 명이 출석한 가운데 회무를 처리하고 목사 안수식을 거행했다. 이날 김낙주 목사 측 이상철 장로 등이 혜린교회에서 노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소동이 있어 경찰이 출동했으나 큰 마찰 없이 노회가 진행됐다. 기자는 이상철 장로 주장은 영상에 담았지만, 중앙노회 · 혜린교회 측은 대응하지 않기로 해 그 입장을 영상에 담지는 못했다. 노회 후 중앙노회 직전노회장 김용제 목사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중앙노회 측 입장이기에 게재한다. “목사님 영상 잘 보았습니다. 69회 중앙노회는 영상에서 보듯이 이상철 씨 일당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70여 명이 출석하여 절차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식사 후에 4명의 목사 안수식을 거행한 후 사모님들과 함께 대하 파티와 티타임으로 친교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영상 속에서 이상철 씨는 중앙노회가 21 당회가 안 된다고 하는데 공식적으로 31 당회입니다. 중앙노회는 총회 조직에 없다고 했지만, 합동 총회 산하의 정당한 노회이며 서북지역노회 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김낙주와 이상철 씨는 혜린교회와 무관합니다. 일단 일천여 명의 성도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109회 총회에서 위법처리조사의 연장이 결의되어 현재 조사 처리 대상입니다. 자격 없는 자들이 목사를 욕하고 노회를 무시하고 정당한 노회의 회집을 훼방한 것은 총회 산하의 노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심각한 범죄입니다” 개회예배는 부노회장 장성우 목사의 인도로 회계 이창신 장로가 기도, 서기 강명구 목사가 창 49:8-12 봉독, 노회장 박동규 목사가 ‘지도자의 복’이란 제목으로 설교 후 증경노회장 최상배 목사의 축도로 마치고, 이어 경기시찰장 이수기 목사의 집례로 성찬예식을 거행했다. 중식 후 오후 시간에 이종범, 이경희, 추성룡, 양중보 4명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
김병중(Th.D) 10-14 21:33
경기서노회, 가을 정기회 모여
경기서노회(노회장 최성선 목사) 제30회 정기회가 10월 14일 안산동산교회(김성겸 목사 시무)에서 모여 회무를 처리하고 강도사 인허 및 목사 안수식을 진행했다. 개회예배는 노회장 최성선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박원호 장로가 기도, 서기 이승주 목사가 요 6:12-15 봉독, 노회장 최성선 목사가 ‘산을 선택하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설교 후 성찬식을 하고 직전노회장 이재춘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감사부, 헌의부, 정치부, 고시부 등이 보고 후 정회하고 중식한 후 강도사 인허 및 목사 안수식을 했다. 강도사 인허: 정동훈 조동혁 전호진 홍보석 김왕호 양주성 임호진 정민규 조영일 이요한 김태윤 이제훈 목사 안수: 이호경 노희얼 박상우 오세광 이보민 장재신 정광호 정보영 최태성 유성현 기예준 -
김병중(Th.D) 10-08 21:51
동서울노회, 교직자 체육대회 개최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10월 8일 오전 9시부터 제39회 동서울노회 교직자 체육대회가 하남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남전도회 연합회가 주관했으며, 동서울노회 교역자회 · 전도부 · 장로회, 여전도회 연합회, 주일학교 연합회, 국민일보, 기독신문, 장로신문이 후원했다. 명예대회장은 최선용 장로, 대회장은 김영성 장로가 맡아 수고했다. 동서울노회(노회장 강문진 목사)는 6개 시찰, 117개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강남시찰 22개 교회, 강동시찰 18개 교회, 광천시찰 20개 교회, 서초시찰 26개 교회, 송파시찰 17개 교회, 잠실시찰 14개 교회이다. 이날 경기는 축구, 릴레이, 단체줄넘기, 윷놀이 등으로 모든 회원이 참석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친목을 도모했다. 개회예배는 연합회 회장 김영성 장로의 인도로 장로 부노회장 손정호 장로가 기도, 서기 정형동 집사가 고전 9:24-27 봉독, 노회장 강문진 목사가 ‘신앙의 경주와 영광스러운 면류관’이란 제목으로 설교, 총무 정해석 집사가 광고, 증경노회장 박성은 목사가 축도했다.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회장 배원식 장로, 서울서북지역남전도회연합회 회장 신웅철 장로가 축사, 선수대표 이성호 목사가 선서, 노회장 강문진 목사가 개회 선언했다. 폐회예배는 수석부회장 남용우 집사의 인도로 명예회장 최선용 장로가 기도, 전도부장 신영호 목사가 빌 3:12-13을 본문으로 ‘전진하기 위하여’란 제목으로 설교, 회장 김영성 장로가 인사, 총무 정해서 집사가 광고, 증경노회장 박진석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 회장 김영성 집사가 시상, 진행위원장 정해석 집사가 경품 추첨했다. 윷놀이 릴레이 -
김병중(Th.D) 09-10 14:10
성남노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총 1억 4천만원 후원
성남노회원들이 9월 10일 오전 11시 30분 모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총장 박성규 박사)을 방문해 경건예배를 인도하고 후배들을 위해 총 1억 4천만원을 후원하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는 성남노회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중 하나로서 현상민 목사가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성남노회(노회장 장대은 목사)는 총신 발전기금으로 1억원, 원우들 식사비로 1천만원, 성남노회 소속 재학생들 장학금으로 2천만원, 기타 비용으로 1천만원 등 총 1억 4천만원을 후원했다. 박성규 총장은 “성남노회가 그동안 노회의 날 최고 발전기금이었던 2700만원을 넘는 1억원을 후원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말했다. 예배는 금광교회 김영삼 목사의 인도로 광주 사랑의 교회 오하준 장로가 기도, 성남노회 찬양대가 ‘여기에 모인 우리’ 찬양, 만남의교회 나영진 목사가 출 3:1-5, 막 12:13-17을 봉독했다. 성남 성산교회 현상민 목사가 ‘가이사의 것으로 흉내 내지 맙시다’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바로의 신발일 수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벗으라고 하셨다. 성령으로 시작한 목회를 육신으로 마쳐서는 안된다. 숨질 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한다. 저는 내년에 조기 은퇴 후 명예선교사로 후년에 라오스로 떠날려고 한다. 성남노회는 조기 은퇴 분위기가 있다. 모세는 모든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의 것으로, 가이사의 것으로 일할려고 했기에 실패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밖에서 찾지 말고 진정하게 주님을 의지해야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바로의 것, 가이사의 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내가 벗어야할 세상의 신발은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일을 해야한다. 신발을 벗고 노예가 되어야 성육신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돈’으로서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가이사의 것으로 섬기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믿고 구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으며 가이사를 의지하고 있다. 이 세상의 신발을 벗어야한다. 늘 자신의 신발을 벗어야한다. 성령으로 시작해 성령으로 끝내야한다”고 설교했다. 박성규 총장의 광고 후 동원교회 김창기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애찬을 나누고 성남노회원들은 잠시 소래교회에 들러 재학 시절을 추억한 후 귀가했다. 합동 교단에 속한 162개 노회가 1년에 한번 모교를 방문해 이처럼 학교와 재학생들을 위해 후원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합동 교단을 떠나지 않는 한 "한번 총신은 영원한 총신이다!"
교회더보기 +
-
김병중(Th.D) 10-30 21:57
절기헌금, 담임목사의 쌈짓돈인가?
매년 수천만원의 절기헌금을 자기 재량껏 사용했던 담임목사가 있었다. 이제는 20년을 채우고 원로로 물러났지만 담임목사 시절 부활절, 성탄절 헌금을 영수증 처리 없이 본인 원하는대로 사용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하는 의문과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내가 2005년 담임으로 부임했을 때 ‘20만원 이상 지출할 때는 당회를 거쳐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정이 있었다. 또 현재 광주 지역의 어느 대형 교회는 담임목사가 50만원 이상 지출을 하고자 할 때는 당회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종종 목사는 교회 재정을 자기 뜻대로 사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당회든, 제직회든, 공동의회든 절차를 밟아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매년 두 절기의 수천만원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임한 목사였지만 그 목사가 교회를 그만큼 장악(?)했다는 것이고, 교인들이 순진(?)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목사라도 교회 내에서 적절히 견제 받지 않고 전권을 휘두르다보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 목사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목사는 영수증 처리없이 매년 수천만원의 절기헌금을 사용했었다. 물론 좋은 일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떳떳하다면 돈은 마음대로 써도 영수증이나 지출 내역은 교회에 제출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후임목사는 절기헌금을 담임목사 재량껏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재정에 포함시켰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절기헌금을 아무 규제 없이 자기 재량껏 쓰는 것이 바람직한가? 과연 그 목사는 올바르게 재정을 집행했을까? 혹시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헌금을 유용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절기헌금 집행 내역은 그 당시 담임목사만 알뿐 교회도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
김병중(Th.D) 10-28 17:41
【북일교회】 거짓 주장하며 교회를 소란케 하는 반대자들
지난 주일 10월 27일에는 한국교회 210만이 함께 연합예배하며 기도하는 날이었다. 주최 측 추산 현장 참석 110만, 온라인 참석 100만으로 역대 최대 인원이 동원된 행사였다. 주 이슈는 동성혼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제화 반대였다. 주최 측은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를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에 원근 각처 전국 교회들이 함께 모였다. 악법과 싸우기 위한 거룩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익산의 북일교회는 여전히 담임목사 지지, 반대 교인들 간의 싸움, 언쟁이 계속됐다. 문제는 거짓을 주장하며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주일 이 진 담임목사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반대자 중 한 나이 먹은 집사가 쓰러졌다. 혹자는 부목사가 이 집사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분개의 댓글을 달았다. 하나 이것은 거짓이다. 본인이 스스로 넘어진 것이며 이때 경찰이 있어 이 사실을 확인했고, 교회 내에 설치된 CCTV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제 주일에 그의 가족들이 교회를 찾아와 항의성 시위를 했다. 이처럼 거짓 주장을 하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정당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주일마다 이렇게 1층 로비에서 반대자들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1층에 위치한 교육부서 아이들이 크게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처럼 반대자들의 소란으로 인해 다음세대 주일학교 아이들이 큰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일마다 교회를 소란스럽게 하는 반대자들은 진정 교회를 위하는 자들인가? 해치는 자들인가? -
김병중(Th.D) 10-22 19:12
【북일교회】담임 반대 측, 노회 수습처리위 지시 묵살 난동
이리노회(노회장 남길우 목사) 소속 북일교회(담임 이진 목사)는 매 주일 소란스럽다. 소수의 담임목사 반대 측 때문이다. 이들은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해 쓸데없이 크게 “아멘”을 외치는 등 예배 분위기를 망치고, 예배 후에는 교회 계단과 로비 등에서 교인들과 시비가 붙거나 담임목사에게 고함을 치고 난동(亂動, 질서를 어지럽히며 마구 행동함)을 부리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교인들은 동요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이 진 담임목사의 설교를 통해 큰 은혜를 받으며 굳건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 이리노회는 제83회 정기회를 지난 10월 10일 익산 천광교회에서 열고 북일교회 김화중 장로가 같은 교회 김정귀 장로를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반려하기로 하고, 북일교회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대책위원회를 설치해 다루기로 했다. 대책위원으로는 노회장 자벽으로 김승규, 박윤성, 윤광석, 정훈(이상 목사) 정삼영, 김준기, 황진수(이상 장로) 등 7인을 선정했다. 대책위원회는 3개월 안(2025년 1월까지)에 결론을 내서 보고하도록 했다. 이에 북일교회는 「북일교회 수습 처리위원회」의 지시 사항을 지난 10월 13일 주일부터 주보에 게재하고 있다. 지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리노회 「북일교회 수습 처리위원회」 지시 사항 - 정치 / 10장 노회 / 6조 노회의 직무 / 4항. 교회의 신성과 화평을 방해하는 언행을 방지하며(행 15:22, 24) 교회 실정과 폐해(弊害)를 감시하고 교정하기 위하여 지교회를 시찰한다. - 위 헌법에 의거하여, 「북일교회 수습 처리위원회」 종료 시까지 교회의 신성과 화평을 방해하는 상대 비방 및 욕설, 피켓시위, 서명운동 등을 금지할 것을 지시합니다. 「북일교회 수습 처리위원회」 위원장 박윤성 목사 서 기 윤광석 목사 그런데도 소수의 담임 반대 측은 예배 시 또 예배 후 교회 안에서 소란과 난동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 지난 10월 20일 주일에는 이 진 목사가 목양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반대 측은 “네가 목사냐?”며 시비를 걸며 몸싸움을 걸어 이 와중에 이 진 목사의 사모가 다쳐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이리노회 「북일교회 수습 처리위원회」가 담임목사 반대 측의 이런 난동을 어떻게 처리하고 교회를 안정화시킬지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
김병중(Th.D) 10-17 16:14
총회 헌의부장 조무영 목사, 교인들과 필리핀 단기 선교
중인교회를 목회하며 선교에 앞장서는 제109회 총회 헌의부장 조무영 목사가 교인들과 필리핀 단기 선교를 떠난다. 조 목사는 페이스북에 그 심정을 적었는데 함께 은혜를 나누며 기도하기 위해 기사로 만들어 게재한다. 이번 단기선교는 목회 31년 만에 처음으로 기획하고 떠나는 일정이다. 두렵고 떨린다. 설레고 기대된다. 원래는 청년들 중심으로 가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차질이 생기면서 장년층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열심이 특심이다. 찬양도 준비하고, 풍선아트도 만들어 보고, 단체 티도 2벌이나 찬조하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주의 이름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이번 일정에는 우리 교회가 건축한 4개의 지교회 중 2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전도할 것이고, 10 교회 정도를 돌아보며 격려하고자 한다. 관광은 아주 적은 시간만 할애할 것이다. 놀랍게도 어제저녁에 한 성도의 도네이션으로 현지 총회가 19일에 있는데 각 교회에 쌀을 주기로 했다. 이렇게 부족하지만, 미력하지만, 때마다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으로 말미맘아 은혜중에 진행되고 있다. 감사, 또 감사한다. 일시 / 2024년 10월 21일(월) ~ 25일(금) 장소 / 필리핀 클락, 뽀락, 수빅 목적 / 선교지 탐방, 2개처 교회 예배 및 전도, 8개처 교회 탐방 인원 / 12명 진행 / 독창, 워십, 풍선아트, 코리안 가스펠 송, 빵, 사탕, 라면. 기타 일정 / 예배- 예수평강교회(원주민, 수빅 파파야), 예수사랑의교회(현지인, 뽀락) 방문- 성은교회(원주민), 이나라로커버너트교회(원주민), 지평선교회(무슬림), 임마누엘교회, 망가찬교회, 파워템플교회, 사랑의교회, 예수생명교회, 기타 2 교회(이름이 어려워서 잘 모름), 학교 -
김병중(Th.D) 10-12 16:37
장봉생 부총회장 딸 군목과 결혼식...“사위는 내가 골랐다”
10월 12일 오후 1시 서대문교회에서 장봉생 부총회장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축하만 하고 바로 오려고 했는데 신랑은 공군 군목 대위이고, 주례자는 공군 군종목사 단장 대령(진)이었다. 나는 군종 51기 이기에 기수로 보면 모두 한참 아래 내 후배들이다. 그래서 일면식 없는 후배들이지만 더욱 축하하는 마음이 생겨 취재하게 됐다. 따님을 출가 시키는 장봉생 부총회장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장봉생 부총회장은 총회 군선교부장을 역임하는 등 군선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헌신하는 가운데 군종목사 파송식에서 현 사윗감이 맘에 들어 딸과 교제토록 중매해 1년 반만에 결혼하게 됐다고 했다. 군목 사위로 인해 앞으로 더욱 군선교에 헌신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군목으로 입대했던 1993년도 즈음에는 장기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군선교에 대한 관심이 늘고, 군에서 받는 여러 혜택도 있고, 장기 전역 후 민간교회에 잘 안착하기에 장기에 대한 관심이 많다. 장봉생 부총회장의 사위가 3년 단기를 하든, 장기를 하든 군선교를 잘 감당하고 그 앞길이 잘 열리기를 바란다. 내 군목 후배 황성준, 최석환 예비역 대령은 모두 군선교를 잘 감당 후 민간교회로 곧 임지를 옮겨 제2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장봉생 부총회장의 딸은 서대문교회에서 자라났기에 교회에 대한 애착이 큰데 이제 남편의 사역지를 따라가느라 정든 교회를 떠나가야한다. 그래서 서대문교회 청년부 담당 노태진 목사가 새가정을 축복하며 기도했고, 군 선배인 주례자 윤창길 목사는 성령충만해 행복한 가정이되라고 설교했으며 신부의 외할아버지인 손상률 목사는 새가정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길러주신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고 행진하는 것으로 가을날의 행복한 결혼식은 마무리 됐다. -
김병중(Th.D) 09-22 15:03
109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 말씀과 찬양이 충만한 젊은 명성교회
9월 23일부터 시작되는 제109회 총회 취재를 앞두고 하루 먼저 울산을 방문해 109회 총회장이 되는 김종혁 목사가 시무하는 명성교회에서 주일 낮 11시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만난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을 기뻐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전날부터 내린 많은 비가 여전히 내리는 가운데도 성도들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자 출석해 예배당을 채웠다. 예배 전 에이레네찬양팀은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찬양하며 연주했다. 찬양이 힘차고 은혜로웠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특이하게도 사도신경에 앞서 십계명을 먼저 고백했다. 십계명을 강대상 화면에 띄우지 않아도 교인들은 외워서 암송한다. 십계명을 예배 시간에 전 교인들이 암송하는 것은 처음 본 광경인데 매우 참신했다. 다른 교회들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신위식 장로가 예배 기도했는데 109회 총회장이 되는 담임목사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이어 김종혁 목사가 광고할 때 전 교인들이 총회를 위해 관심 두고 섬겨 달라고 부탁했다. 수요예배는 자체 예배 없이 우정교회로 가서 총회장 이취임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할렐루야 찬양대가 찬양했는데 앞서 한 찬양팀과 함께 매우 수준 높은 찬양이었다. 아마도 김종혁 담임목사가 음대 졸업자이기에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종혁 목사는 창 38:1-30을 본문으로 ‘유다집의 범죄’라는 제목으로 “유다는 자신만이 의롭다는 자만심이 있었다. 그리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엄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자기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임신한 며느리를 죽이려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 평가하지 말고 내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남에 대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유다가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남에 대해 정죄하지 말자. 그리고 죄를 범했다고 낙심해 있지만 말고 용서를 구하고 회복하자. 사도 바울도 그러했다. 그는 은혜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이어 다 함께 찬양하고 김종혁 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예배를 마쳤다. 예배에 참석한 기자도 큰 은혜를 받았다. 총회장이 설교를 잘하는 것은 총회적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총회장으로 외부 행사에서 설교하는 것은 교단을 대표해야 하는 것인데 총회장으로서 설교를 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도 총회장들이 설교를 잘했는데 김종혁 총회장도 그러하리라 확신이 들어 감사하다. 김종혁 목사는 성악 전공자로서 무엇보다 목소리가 좋다. 이것은 설교해야 하는 목사로서 타고난 큰 장점이라고 본다. 분명한 발음과 확신에 찬 저음의 음성은 총회장의 일을 감당하는데 플러스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시작하는 김종혁 목사의 109회 총회에 기대감을 실어본다. 1974년 10월 26일 설립한 명성교회가 5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도에 김종혁 담임목사가 109회 총회장이 된 것은 교회나 담임목사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며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 복이 총회와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충만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희년을 맞이하는 명성교회는 50살이지만 여전히 젊고 희망차다. 교회 곳곳에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이 넘쳐 난다. 그것은 교회의 장래가 밝다는 것이다. 총회의 미래도 밝게하는 총회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응원한다! -
김병중(Th.D) 09-03 17:44
새로남교회•오정호 총회장...총신신대원에 4억 인조잔디구장 · 표준주석 발간성금 1천만원 기증
오정호 총회장과 새로남교회가 4억의 비용을 후원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운동장에 인조잔디구장을 설치했다. 이를 기념하는 개장식이 9월 3일 오후 12시 30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운동장에서 있었다. 오 총회장은 “인조잔디구장에서 마음껏 운동해 영육이 건강한 신학생들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드린 예배에서 오정호 총회장은 1000만원을 표준주석 발간 성금으로 전달했다. 지난 5월 16일 새로남교회에서 있었던 총신대학교 개교 123주년 기념 '총동문의 날' 한마음 잔치에서 받은 자랑스런총신인상 수상금 500만원과 오 총회장의 사비 500만원을 더한 것이다. 감사의 글 이곳에 조성된 인조 잔디 구장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새로남교회(담임 오정호 목사/ 80회 동문/제108회 총회장) 온 교우들이 미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이끌 영적 지도자들의 전인적인 건강을 위해 헌신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주후 2024년 9월 3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총장 박성규, 신대원장 강웅산, 교수 • 직원 • 원우 일동(감사의 글 전문) 오정호 총회장은 작년 10월 10일 108회 총회장 취임 후 첫 공식 발걸음으로 총신대를 방문해 10억을 총신 발전기금으로 전달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총회장 임기에 총신신대원을 찾아 4억을 들여 설치한 인조잔디구장 개장식을 했다. 이처럼 오 총회장의 총신대학·신학대학원을 향한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과 헌신으로 드러났다. 예배는 “새로남교회 섬김의 날”로 경건훈련처장 주종훈 목사의 인도로 새로남교회 당회서기 오태석 장로가 기도, 새로나교회 교역자 일동이 오정호 목사 작사 · 이상진 목사 작곡의 ‘한 사람 되리라’를 특송했다. 오정호 총회장이 고전 11:1을 본문으로 ‘Imitation of Christ’란 제목으로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 주님을 닮아가야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야한다. 사랑해야 닮는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사랑하는만큼 주님을 닮아간다. 둘째, 깊은 교제 후에 동맹을 맺어야한다. 나누이지 말고 연합해야한다. 뼈속부터 주님, 총신을 사랑해 쓰임받자”고 설교 후 박성규 총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대운동장으로 장소를 옮겨 인조잔디구장 개장식을 했다. 신학대학원장 강웅산 교수의 사회로 학생·글로벌지원처장 김대웅 교수가 기도, 총회장·총장·보직교수 및 원우회·새로남교회 관계자들이 기념테이프컷팅, 제막식 후 박성규 총장이 시공사 ㈜스포테크사에 감사를 전달 후 오정호 총회장, 박성규 총장, 강웅산 신대원장, 김경석 원우회장이 기념 시축 후 오정호 총회장의 기도로 개장식 모든 순서를 마쳤다. 이어 새로남교회가 제공한 보쌈으로 원우들은 푸짐한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다. -
김병중(Th.D) 08-16 17:50
지역 재개발로 위협받는 교회...남의 일이 아니다
본지가 2 번 기사로 다뤘던 성남 상대원동 제2구역 소재 성광교회에 드디어 용역이 들이닥쳤다. 그동안 재개발 문제로 조합측과 갈등을 빚던 가운데 집행 가처분 소송을 통해 막아왔지만 용역들이 교회 주변을 둘러싸는 일이 생겼다. 교인들은 출입구를 봉쇄하고 용역과 대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3개 교회가 같은 어려움에 있는데 한 곳은 이미 예배당을 빼앗겨 길거리에서 예배하고 있고, 다른 한 곳은 극렬 대치 중이다. 이제 합동측 성광교회에 조합측의 마수가 뻗쳐오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는 순간 그 안에 있는 교회들도 폭력적으로 내쫓기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방관할 때 그 다음 차례는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총회 차원의 관심과 모든 목회자들, 교인들이 이 일에 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인물더보기 +
-
김병중(Th.D) 10-21 08:45
박재신 GMS 명예이사장, 지난 2년 회고 인터뷰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GMS 이사장으로 수고하다 물러났는데 소회는 어떠한가? -2년 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행복했다. 2년간 얼마나 많은 나라에 다녔는가? -GMS가 10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다 돌아볼 수 없어 평소 안 알려지고 소외된 곳을 중심으로 다녔다. 외롭게 사역하는 서부 아프리카 등을 다녀왔다. 39차례 업무차 출장했다. 개척할 때부터 재정의 30%를 선교에 사용했다고 들었다. -교회 본질이 선교이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고 표명하고 개척 때부터 재정의 10%에서 시작해 59%를 사용할 때도 있었고, 30%를 선교에 사용한다. 목사가 선교에 치중하면 목회는 어떠한가?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로 세웠기에 교인들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후계자가 세워지면 어떻게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분이 어떻게 할지는 내 영역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목회를 본질에 두면 단순하다. 선교에 올인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것이 38년 목회해 1,000명 이상으로 성장한 양정교회의 역사이다. 다른 방법론이 없다. 모든 것을 선교에 맞춰 두니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목회가 저절로 됐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사님은 교단에서 존경받을 만한 목사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의 뒷받침으로 일을 해왔다. 교인들이 지원하고 믿어주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
김병중(Th.D) 09-12 15:55
민찬기 목사가 남기는 말
서북지역노회협의회(대표회장 장순직 목사)가 9월 12일 오전 11시 30분 사랑스러운교회(배만석 목사 시무)에서 기도회로 모였다. 이 날 그동안 취재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민찬기 목사가 축사 순서를 맡고 짤막하게 말했다. ①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목회도 마무리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다. ② 정치라고 하는 게 친구도, 동기도 없고 어느 땐 사랑하는 친구가 등지고 떠나는 모습들도 보며 쉽지 않은 일이 정치였다. ③ 일반 정치보다 교회 정치가 훨씬 더 교활하다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다. ④ 그러나 이런 걸 다 내려놓고 나니까 편안하다. ⑤ 부러운 게 하나 있는데 서북지역협의회의 단결력이다. 그동안 총회 정치를 하면서 느낀 소회를 짧게나마 말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총회 정치를 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자들은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으면 좋을 것 같다. 다음은 민 목사가 한 말의 전문이다. 저는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목회도 이제 마무리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치라고 하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참 친구도 없고 동기도 없고 어느 땐 보면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나를 등지고 떠나는 그런 모습들도 보면서 참 쉽지 않은 일이 정치였다. 일반 정치보다 교회 정치가 훨씬 더 교활하다 이런 느낌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근데 제가 이런 걸 다 내려놓고 나니까 편안해요. 그런데 제가 부러운 게 하나 있어요. 서북지역협의회의 단결력입니다. 제가 서북지역한테 두 번 졌지 않습니까? 서북지역만큼 이렇게 단결력 좋은 그런 목사님들을 제가 못 본 것 같아요. 내가 서북지역에 여러 번 수련회 주 강사로 후원도 많이 했는데, 어쨌든 여러분들이 그런 단결력 그리고 서로 이렇게 돌아보고 오늘 목사님 메시지처럼 서로 기도하고 이런 것들이 참 많은데, 어쨌든 여기에 우리 잘 아는 친구들이 다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고 큰 하나님의 은총 입기를 늘 기도하면서 축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
김병중(Th.D) 08-23 11:57
박재신 목사를 통해 본, GMS이사장의 길
본 기자는 박재신 목사를 개인적으로 모른다. 2022년 9월 1일 GMS총회를 취재가서 처음 얼굴을 봤다. 이날 박 목사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만나본적이 없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 다가오는 9월 총회에서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나게 된다. 박재신 이사장을 개인적으로는 몰라도 취재 가서 그의 말을 들어보면 진정성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벌이는 만만만운동에 감동받아 2명 2년치 24만원을 일시불로 냈고, 또 다른 취재 현장에서 또 감동받아 월 1만원 후원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GMS 총회 선거를 앞둔 모습에 실망해 후원을 중단할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박 이사장은 선교에 “미친” 열정의 사람이다. 그는 1986년 양정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다. 교회 명칭인 양정교회는 ‘양의 우물’로서 교회에서 퍼올린 생수가 세계 열방까지 흘러넘치기를 소망하며, 선교로 목회의 물길을 내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주를 따르겠다고 서원한 후 독학하며 신학도의 꿈을 키웠고, 누가복음 6장 38절의 말씀을 모토로 양정교회를 개척하여 선교가 목적이 되는 목회를 시작하였다. 개척 당시부터 재정수입의 30%, 현재 매년 약 5-6억 원을 선교비로 우선 지출하고 있다. 13유닛 2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오늘도 선교지를 누비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15일 양정교회에서 있은 전주·전북 마마클럽 행사 취재차 방문했을 때 이날도 박 목사는 선교지 출타중이었으며, 교인들은 “자기들을 대신해서 목사님께서 열심히 선교현장을 누비셔서 오히려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 박 이사장은 교회를 비우고 자주 선교지를 방문한다. 그래도 이처럼 교인들은 전혀 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이처럼 담임목회자와 교회가 한 마음으로 선교에 매진하고 있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양정교회는 이사장으로 취임한 담임목사를 돕기 위해 GMS에 1억원을 후원했다. 추후 더 후원해 총 1억 8천만원을 후원했다. 이처럼 교회가 아낌없이 담임목사의 이사장 사역을 돕기에 박 목사는 온 열정을 다해 선교지를 누비며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GMS이사장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현 박 이사장을 볼 때 첫째, 선교에 미친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 목사가 교회 재정 수입의 30%를 선교에 사용할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선교는 자신들의 허리띠를 졸라메며, 희생하며 하는 것이다. 선교에 미쳐 먼저 자신이 희생하는 사람이 GMS이사장이 되어야할 것이다. 둘째, 교회가 재정적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어야한다. 아무리 담임목사가 이사장으로 뛰고 싶어도 교회에서 충분히 돕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사장으로 교회를 자주 비우고 선교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일에 대해 교인들이 이해하고 오히려 감사해하는 마음이 없을 때 자신의 목회도 힘들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전적으로 물심양면의 후원을 해야 제대로 이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박 이사장은 이 두 가지를 다 갖추었다. 이제 박 이사장은 때가 되어 물러나야하는데 이를 잘 계승할 사람으로 바통터치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족으로, 최근 박 이사장이 『예수 섬김 프로젝트』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것은 양정교회가 8000만원의 경비를 들여 선교사들에게 성지순례를 시켜주는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다. 얼마나 선교사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어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책 내용 일부를 소개해 본다. 예수 섬김 프로젝트를 마치고-박재신 목사 우리 교회는 '오직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36년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 결과로 선교사 13가정을 파송하였고, 세계 각 나라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 29명을 후원하고 있으며, 각 선교 단체 33기관을 협력하고 농어촌 교회 20곳을 후원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녹슬어 못쓰는 사명자가 아닌 닳아 없어지는 사명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묵묵히 여기까지 달려 오면서 선교 현장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로할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기도 하던 중 성지 순례를 보내드리면 좋겠다는 감동이 왔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기에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임직 받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다들 호응해 주셔서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수 섬김 프로젝트” 기독교 초기 선교 성지 탐방을 계획하여 출애굽 여정과 예수님의 행적, 사도 바울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돌아보며 파송 선교사님들이 바울의 마음을 새기고 힘을 얻기를 기대하며 준비 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필요한 경비 8,000여 만원이 성도들의 현금으로 모두 채워져 귀한 행사 를 할 수 있었다.(PP. 8-9). 주님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박종률 안수집사(양정교회 선교위원회 부위원장) 샬롬! 먼저 예수 섬김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프로젝트 여정 동 함께하지는 못하였지만 진행하는 과정 과정에 역사 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지면으로나마 인사드립니다. 작년(18년) 9월 마가복음 10장 40-42절의 말씀에 따른 '예수 섬김 프로젝트'를 임직자 중심으로 시행한다는 광고를 시작으로 5월까지 8개월간 성도들의 헌신과 사랑이 선교사님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모태가 되고, 선교사님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게 한 큰 힘이 되는 프로젝트였다고 봅니다. 또한 성지 순례 기간 동안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도님들과 선교사님들이 한마음으로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는 순례길이 되었고 하늘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순례길이었다고 믿습니다. 지나온 과정을 뒤돌아보면 작년 말까지는 예수 섬김 프로젝트를 성도의 입장에서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선교 부위원장직을 맡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역량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목사님께서 저에게 재정이 6천3백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 추가로 우리 교회에서 파송 경력이 있는 후원 선교사님들까지 예수 섬김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재정이 2천5백 정도 부족하다 하시면서 저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저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이제 막 선교 부위원장을 맡은 저로서는 역량이 미흡한지라 이 일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될 지가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선교사님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면 이런 마음을 품으셨을까 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져서 부족한 비용은 바자회를 통해서 충당하면 어떨까요 하는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주님께 의지하지 못한 저의 연약한 믿음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런 형편속에서도 지난 봄 바자회는 국내 위봉교회 리모델링을 위한 바자회로 진행하였고, 예수 섬김 프로젝트 시작일인 5월 27일을 앞둔 전 날인 주일 낮 예배시에는 부족한 재정 2천5백만원이 대부분 확보되었고, 6백만원이 부족하다는 목사님 광고 후 하나님께서 즉시 역사하셔서 당일 저녁예배 때 예비하신 헌신의 손길을 통해 빈틈없이 재정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이레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족함 없이 역사하신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이 모든 일이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와 성도들의 헌신과 선교사님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므로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pp. 11-12). -
김병중(Th.D) 04-22 20:05
문화 선교사, 정원준 목사 찬양 집회
문화 선교사 정원준 목사는 합동 측 목사로 공군 군목(황병산 포대, 공군 본부, 사천비행단) 전역 후 1999년도에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할렐루야 장로교회)와 멜번(우물교회)에서 한인 목회를 했다. 현재는 문서 선교와 더불어 찬양 작곡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또한 멜번 시내에서 아내와 함께 매주 찬양 버스킹을 통해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 사역을 하고 있다 소망인교회 집회 장면 정 목사는 지난 4월 21일 대전 유성에 소재한 소망인교회(한세완 목사 시무) 오후 예배 시간에 설교와 찬양을 통해 전도의 필요함과 순종을 강조했다. 정 목사의 집회를 원하는 분은 이메일 wonjunjeong2003@gmail.com, 카카오톡 David07 로 연락을 주시면 된다. 정 목사는 작년 7월 희망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책 소개 저자는 호주 최남단섬 타스마니아의 자연에서 배운 인생 수업을 우화라는 판타지 형식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따스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절망, 죽음 그리고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79편의 이야기 속에서 그 삶이 지혜를 전하는 것은 때론 사람이기도 하고, 우화라는 판타지 형식을 통해 전달된 자연에서 배운 삶이 지혜를 전해 주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시인과 창문 외 26편으로 구성, 사랑·행복·소망에 대한 자연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렐의 고목 외 27편으로 구성, 주로 지혜와 자기 계발에 대한 가르침으로 엮어졌다. 세 번째 이야기는 왜 사는가 외 26편으로 구성, 주로 소망…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서 얻어진 지혜를 전한다. 저자 소개 저자는 문화 사역자이면서 우화 작가로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 즉 해와 달과 별, 창문과 같이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의인화해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보여 주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이번 작품은 호주 최남단 타스마니아 섬에서 2년여의 시간을 통해 건져 올린 주옥같은 79편의 모음집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1999년에 호주 시드니 Hallelujah Presbyterian Church의 초청으로 호주로 건너가 선교 사역을 했으며, 현재 ‘Eternity’라는 밴드 이름으로 가스펠 싱어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주말에는 120여 개의 종족이 모여 사는 멜번 시티의 중심가에서 버스킹을 통해 각국의 사람들에게 영혼의 노래를 부르며, 또한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돼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작품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행복한 나무〉를 비롯한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에게는 포기란 없다〉와 삶의 지혜를 수록한 〈호주에서 보내온 희망편지〉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책 속으로 나는 그동안 자연의 언어를 통해 우리들이 지녀야 할 삶의 자세를 보았다. 먼저, 자연에는 우리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순수한 사랑과 희생이 있었다. 해가 전해 주는 동녘의 편지를 읽고 난 서녘의 붉어진 얼굴…, 노을의 모습에서 사랑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고 ‘군화와 구두’를 통해 탐욕으로 권력을 가질 순 있어도 진정한 사랑은 얻을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저녁 노을을 아름답다고 말해 주세요’라고 시인에게 부탁하는 창문의 말속에서 남을 배려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굶주린 초원매 새끼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얼룩 다람쥐의 죽음은 희생 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죽음 속에서 사랑을 울부짖는 부모의 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자연에는 절망에게 빼앗기지 않은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보았다. 때론 비와 함께 내게 ‘무지개’로 찾아오기도 했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과 가장 달콤한 것을 소유한 ‘꿀벌’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희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언제나 절망 뒤에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
김병중(Th.D) 04-19 01:21
인천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는, 구독자 550만명의 한국인 무슬림 유튜버 정체
최근 55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국인 무슬림 유튜버가 인천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토지 계약서를 공개했다. 여러 방송국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연합뉴스TV는 이에 대한 뉴스를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앵커] 최근 구독자 550만명을 보유한 한국인 무슬림 유튜버가 인천 영종도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고 해 논란입니다. 이미 토지 매매계약을 마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가운데, 땅을 판 전 주인은 계약 해지를 요청했습니다. 한웅희 기자입니다. [기자] 자신을 이슬람 신도라고 소개하는 한 유튜버. 구독자 550만 명을 보유한 이 유튜버는 최근 인천 영종도에 이슬람 예배당 '모스크'를 짓기 위한 땅을 샀다며 토지매매계약서를 공개했습니다. 한국인들을 위한 기도 장소와 선교 방송 스튜디오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후원도 요청했습니다. 유튜버가 매매계약을 체결한 땅입니다. 해당 유튜버는 이곳에 20~30평 규모의 작은 이슬람 예배당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슬람 사원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지만, 상당수는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박수현 / 인천 영종국제도시 주민] "여성 인권이라든지 이런 게 차별받는 나라(의 종교)기도 하니까 아이 가진 엄마들이라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 그런 종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지를 판 전 땅 주인은 "이슬람 사원을 지으려고 하는 줄 몰랐다"며 뒤늦게 부동산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습니다. [전 땅 주인 A씨] "계약은 했는데 해약하라고 그랬어요. 부동산에다가. 컨테이너 갖다 놓고 유튜브 방송 한다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알아보니깐. 그래서 그것도 안 된다고 (했죠.)" 관할 구청 역시 "해당 부지의 용도상 이슬람 사원을 지을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해당 유튜버는 현재 외국에 체류 중인 상태로 이달 말쯤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유튜버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한편, 대구에서도 경북대 무슬림 유학생들이 모스크를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항의로 완공이 지연되는 등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115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뻑가’라는 유튜버가 이 사람에 관련한 동영상을 올렸고 4월 18일 현재 62만명이 이를 시청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유튜버 다우드 킴(Daud Kim)은 무슬림 관련 동영상으로 인기를 얻자 계속 무슬림 관련 동영상을 올리고 있는데 사생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무슬림으로 개종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의 사생활도 정상적인 무슬림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해서 애도 있는데 이혼 당할 처지이다. 그런데 인천 한복판에 이슬람 사원을 짓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 개좌로 후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뻑가는 “본인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행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무엇보다 그 지역은 종교시설 허가가 어려운 지역이다. 이에 대해 다른 무슬림 개종인인, 360만 팔로워를 가진 문지혜 씨가 문제 제기를 하자 그녀를 저격하고 있다. 끝으로 뻑가는, 아마도 기독교인은 아닌 것 같지만, 이슬람이 얼마나 위험한 종교인가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보게 됐다. 이 사태에 대한 시의 적절한 내용이라 생각해 기사를 만들어 본다(영상에 다소 거친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한 편으로 경계하고 한 편으로 사랑”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총회는 매년 이슬람 대책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다. 관련기사링크: 영남지역 총회이슬람대책세미나 -
김병중(Th.D) 03-02 21:34
신상철 목사, 국회의원 예비후보 출마
신상철 목사가 다가오는 4월 10일 있을 제 22대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이를 위해 사무실을 열고 3월 2일 오후 3시 개소 예배를 드렸다. 예비후보 신상철 목사는 “먼길 오셔서 축하해 주시니 감사하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끝까지 완주해서 충성스러운 일군으로 보답하겠다. 늘 함께 해 주시기 바란다. 꼭 승리하겠다”고 인사말했다. 예배는 노시열 목사의 인도로 후원회장 굿모닝성령부흥사협의회 대표총재 정진오 목사가 기도 후 오산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서용선 목사가 마 67:9-10을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으나 죄로 인해 타락했다. 신자는 세상을 보며 애통하고 있다.그래서 이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자는 사회, 정치를 개혁해야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한다. 신자가 변화의 주체가 되야한다. 이 일에 국회의원으로 나서는 신상철 목사님께서 귀하게 쓰임 받기 바란다"고 설교했다. (사)청소년중독예방본부 이사장 홍호수 목사가 "신상철 목사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당선되시기를 바라고 적극 응원하겠다"고 축사, 한영부흥사협의회 상임회장 전하라 목사가 "하나님의 뜻이 신상철 목사님을 통해 이뤄지기를 바라며 계속 기도하겠다"고 격려사, 이화선목교회 이준영 목사가 "진보나 보수나 정치가 부패했다. 신상철 목사님이 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감당하기 바란다"고 권면, 운영위원 최호봉 고은요양원 원장이 "정치권이 어두운데 빛의 사자가 어둠을 물리치기를 바란다. 이번 선거가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사했다. 끝으로 참석자들은 예비후보 신상철 목사의 소신 발언을 듣고 “신상철 목사를 국회로!”를 외치며 환호하고 격려했다. 신상철 목사가 걸어온길 학력및 경력(현재) • 신동신 정보산업고등학교 졸업 • 근본총회신학교 & 연구원 졸업 • 서울한영대학교 Th.B / BW • 서울한영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 서울한영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 Ph.D •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수료 • 필리핀 영지국제대학교 대학원 졸업 Ph.D • 한반도복음화중앙협의회 부총재 (現) • 오산시기독교 총연합회 연합회장(現) •사) 민족복음화 운동본부 오산시 대표회장(現) •사) 경기도 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現) • 건강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연합 상임대표(現) • 월기총연합회 실무총재(現) • 지구촌기독교부흥선교협의회 실무총재 및 본원 학장(現) • 사단법인 남포월드협의회 성화재 (現) • 재)한국기독교부흥사단체총연합 수석회장(現) • 예장(한영) 부흥사협의회 대표회장 (現) • 오산평생학습사회도시위원회 단장(現) • 사) 한국교회 보수교단연합 상임회장(現) • 사) 한국교회 보수교단연합 윤리실사위원회 위원장 (現) • 새샘병원교회 원목 (現) • 더복있는교회 담임목사(現) 약력(과거) • 신동신정보산업고등학교 총동문회 제7대 회장 역임 • 서울한영대학교 총동문회 27대 회장 역임 • 서울한영대학교 신학대학원 총동문회 2.3대 회장 역임 • 예장(근본)총회 교역자협의회 부회장 6회 역임 • 청주 변화산 기도원 담임목사 역임 •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6년 역임 • 대한예수교장로회·한국총회 인천 노회장 역임 • 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총회 경기노회 노회장 역임 • 대한예수교장로회(한영)총회 총회장 역임 • 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연합회 총무, 서기. 이사 역임 • 사단법인 세계예수교총연합회 설립 이사 역임 • 사) 오산시 기독교 총연합회 부회장 역임 • 사)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 역임 • 한반도복음화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역임 • 재)한국기독교부흥사단체 총연합 대표본부장 역임 • 총신대학교 부속원격평생교육원 운영교수 역임 • 복있는교회 담임목사 역임 8년 수상 • 신동신 정보산업고등학교 공로상 제5202 호 • 명지대학교 총장 공로상 수상 제185호 • 서울한영대학교 교단장상 수상 제284호 • 서울한영대학교 대학원장상 수상 제2012-6호 • 총신대학교 원격평생교육원 우수 교수로 선정 수상 • 자랑스런 한국인회, 자랑스런 한국인 상수상 제 3035호 • 2022년 올해를 빛낸 사회공헌 • 2023년 1일 오산시 명예시장 위촉 • 2023년 자랑스러운 한영인 상 수상 제2023-001호 • 2023년 오산시 표창장 수상 제2023-001-568호 연구 및 저서 • 석사논문 : 순교자 손양원목사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 • 박사연구논문: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요소가 한국교회와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 신학박사논문: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을 통한 교회성장 전략에 관한 연구 • 행정학박사논문 : 교회 행정이 교회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 2018년 제4권 제2호(통권7호)한국상담복지실천학회지 134p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 운동을 통한 교회성장전략에 관한 연구" 논문 거재 • 2018.10.20. 고백록(내 안에 어거스틴이 있다) 2판 인쇄 -
김병중(Th.D) 02-16 01:50
【인터뷰】 전주·전북 마마클럽 리더 양정교회 이춘애 권사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양정교회(박재신 목사 시무)에서 모여 전주와 전북의 복음화와 국가와 다음세대, 선교 등을 위해 간절히 부르짖는 어머니들의 기도 모임이 있다. 바로 전주·전북 마마클럽(리더 이춘애 권사, 양정교회)이다. 마마클럽은 ‘마리아처럼 기도하고 마르다처럼 섬기는’것을 목표로 한 여성 기도 운동이다. 마마클럽은 어머니들의 순수한 연합기도운동으로 2008년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마마클럽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거룩한 도시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교회, 다음세대, 가정, 속한 도시, 나라, 북한,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자발적, 독립적, 중립적인 기도운동이다. 마마클럽은 복음적 통일한국과 선교한국을 준비하는 기도의 마중물이 되길 소원하며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 땅에 제 2의 대부흥을 주시기를 꿈꾸고 있다. 현재 30개 지역에 이 모임이 만들어졌다. 전주·전북 지역 마마클럽은 2019년도에 결성되어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양정교회에 모여 기도하며 연합기도회는 매월 셋째 목요일에 있다. 전주 지역 80여개 교회 여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특별히 이 지역에는 55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사모 합창단이 있다. 이 기도회 모임에 늘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양정교회 박재신 담임목사는 세계 선교에 헌신했다. 38년전 개척할 때부터 교회 예산의 30%를 선교에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는 예장 합동측 선교를 총괄하는 총회세계선교회(GMS) 이사장으로 2년째 재직중에 있다. 성도들이 “목사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목사님의 일을 해주신다”고 고백할 정도로 목양과 세계선교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선교지를 누비고 있다. 양정교회를 목회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화목해야하고 화목한 가운데 일치해 선교해야한다”고 가르쳤기에 그동안 교회에 어떤 분열도 없었고 성도간에 어려움도 없었다. 매주 양정교회에서 모이는 전주·전북 마마클럽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기적이 날마다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마마클럽 사명선언문 마마클럽은 마리아처럼 기도하고 마르다처럼 섬기는 자발적 독립적, 중립적인 어머니들의 연합기도운동이다. 마마클럽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거룩한 도시를 이루는 도시 연합기도운동이다. 서울마마클럽은 부산을 비롯한 각 지역 마마클럽과 영적인 연합을 이루어 한국교회와 다른세대의 부흥과 복음적 통일한국과 선교한국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십자가 군대이다. 하나, 우리는 모성으로 가정과 교회와 우리가 사는 도시와 나라를 품는 기도의 집으로 부르심을 받은 예수그리스도의 군사이다. 하나, 우리는 자신이 기도할 뿐 아니라 나에게 주신 기도의 불을 다른 이에게 옮기며 개교회를 위한 기도자들을 세우는 일에 힘쓴다. 하나, 우리는 기도를 통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 크고 작은 교회의 연합을 도모하며, 각 영역과 지역과 조국 대한민국과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힘써 섬긴다. -
김병중(Th.D) 02-15 00:50
【인터뷰】 목포와 중남미 복음화에 앞장서는, 상리교회 홍석기 목사
상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홍석기 목사는 18년 전 부임했다. 전임자 백영규 목사와의 인연은 홍 목사가 총신낙도선교회 대표 시절 백 목사를 고문으로 모신 이후 계속됐다. 백 목사는 그 당시 낙도선교회에 많은 후원을 해 주었고 이후 홍 목사는 상리교회 파송 브라질 선교사로 4년 2개월간 사역했다. 그리고 후임자로 부름 받았다. 홍 목사는 코로나 기간에 19명가량의 공무원이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했지만, 순교를 각오하고 예배와 기도회, 모임을 중단하지 않았고, 주변 교회도 이에 자극받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었다. 또한 목포서노회 노회장을 2번 역임하며 노회를 바르게 세우는 데 힘썼다. 현재는 GMS 중남미 지역위원장으로 섬기며, 브라질 선교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교인들과 함께 3번 브라질 현지를 방문하고, 현지에서 선교 센터를 운영하며 3가정을 파송하는 등 계속해서 중남미 선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 목사의 고향은 경기도 광명시인데 목포는 타지인에 대해 배타성이 없어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면서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복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 학력 · 총신대학교 · 총신대학 신학대학원(목회학 석사) · 총신대학 선교대학원(선교학 석사) · 미국 쉐퍼드 대학교(신학박사) 약력 · 육군 5015, 7136 부대 군목 · 총신낙도선교회 대표 · 총회 파송 브라질 선교사 · 목동 제자교회 부목사 · 미국 글렌데일 그레이스 교회 부목사 · 목포권기독교연합회 회장 역임 · 목포기독교포럼 회장 역임 · 목포서노회 노회장 역임 · GMS 총회세계선교회 중남미지역위원장 ·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기독신문 이사 · 상리교회 담임목사 정리: 빛과소금뉴스 김병중 편집국장(홍 목사와 대학, 신대원, 군목 동기)
사회더보기 +
-
김병중(Th.D) 05-24 00:15
용인여성합창단 창단45주년, 카페 음악회 개최
창단 45주년을 맞이한 용인여성합창단이 5월 23일 저녁 7시 30분 양평에 소재한 카포레 카페에서 음악회를 개최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음악회에서 자리를 가득매운 참석자들은 합창과 독창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먼저, 용인여성합창단이 난향/김성수, 바위섬/배창희, 보리밭/윤용하를 불렀고 지휘는 김성수, 피아노는 최효진이 맡았다. 단원 소프라노 강소이가 연/이원주, 메조소프라노 한진희가 나뭇잎 배/윤용하를 불렀다. 피아노는 홍정민이 맡았다. 남촌합창단이 초청되어 남 촌/김규환, 친구여/이호준, 사랑으로/이주호를 불렀고 지휘는 김성용, 피아노는 천예나가 맡았다. 성악가들이 초청되어 테너 손민호가 북한산/김성수, 소프라노 송정아가 뭉게구름/김성수, 송정아 · 손민호가 축배의 노래/G.Verdi를 이중창하고, 바리톤 오동국이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성수, 송정아 · 손민호 · 오동국이 삼중창으로 우정의 노래/E.A.Fenstad를 불렀다. 피아노는 홍정민이 맡았다. 끝으로 용인여성합창단이 Mother of mine/Bill Parkinson, 새야새야 파랑새야(곡중 솔로 이성자)/채동선 편곡, 내맘의 강물/이수인을 부르고 창단 45주년 음악회를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05-23 23:42
한국지엠과 협력사 모임 협신회, ‘사랑의빨간밥차’ 후원금 전달 및 무료급식 나눔 봉사활동
한국지엠과 한국지엠 협력사 모임인 협신회는 5월 23일(목) 부평역 북광장 ‘사랑의빨간밥차’(이사장 이선구 목사)에서 임원 및 직원 50여명이 후원금(5,000,000) 전달 및 무료급식 나눔 봉사활동을 했다. 한국지엠과 협신회의 후원금 전달 및 무료급식 나눔 봉사는 동반자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지난 2012년부터 사단법인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와 함께 매년 진행해 왔던 사회공헌 활동으로서, 지역 공동체에 나눔의 가치를 알리는 기회를 마련하고 상생협력을 바탕으로 한 동반성장의 일환이다. 이번 부평역 북광장 ‘사랑의빨간밥차’ 봉사에 토미 호시 한국지엠 구매부문 부사장, 방선일 한국지엠 구매부문 부사장, 아누차 한국지엠 구매부문 전무, 협신회 문승 회장(주, 다성), 노철호 부회장(케이엠앤아이), 윤관원 회장(JPC오토), 채창원 회장(크레아그룹) 등 50여 명의 임직원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하여 무료급식 봉사 및 설거지 봉사로 노숙인, 홀몸어르신 30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행사를 개최했다. 토미 호시 한국지엠 구매부문 부사장은 “무료급식 행사는 한국지엠과 한국지엠 협력사들이 지역 사회와 함께하고자 지속적으로 이어온 뜻 깊은 봉사활동”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지엠 구매부문 방선일 부사장은 “오늘 이 자리를 찾으신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오래 누리시길 바란다”고 밝히며, “한국지엠과 협력사들은 앞으로도 지역 사회를 위한 김장나눔 봉사, 연탄나눔 봉사, 복지시설 지원을 위한 연말 자선 행사 등 연속적으로 지역 내 다양한 공헌 활동들을 함께 하며 상생협력 기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 이선구 이사장은 “한국지엠과 협신회에서 매년 후원금을 주시고 봉사해 주시는 것에 항상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 그 힘으로 지난 메르스, 사스, 신종플루, 코로나 기간에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외계층들에게 무료급식을 할 수 있었다. 라며 앞으로 한국지엠과 협력사들의 무궁한 발전과 번성을 기원 드린다”고 말했다. -
김병중(Th.D) 10-11 07:16
이스라엘 현지 소식
이스라엘이 전쟁에 휩쌓인 가운데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수십년간 거주하고 있는 필자의 총신대학 동기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동기 단톡방에 게재됐다. 중동의 평화를 위해 다시 기도해야할 때이기에 소개한다. 샬롬 !!! 예루살렘에서 평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큰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저희 가정은 안전하게 일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오전에 예루살렘에 몇차례 공습경보가 있어서 계단밑으로 대피 몇번했고 9일에 더 두 차례 공습경보가 있어서 잠시 대피했었습니다 이번 상황은 아주 심각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의 민간인 피해가 너무 큽니다. 현재 이스라엘 사망자는 900명이 넘고 2700명 이상 부상했으며 100여명이 인질로 잡혀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하마스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 방어를 위한 공격의 명분을 주게되었습니다. 이게 좀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이란과 러시아와도 얽혀있는 (심지어는 중국) 복잡한 국제 정세와 연관되어 있는데 혹여나 하마스가 미군부대에 대한 공격이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면 아주 큰 전쟁으로 번질수도 있을듯 합니다. 현재, 임시 집계된 것으로 미국시민권자 4명 사망, 7명 행방불명입니다. 지금 당장은 공항이 폐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항공사가 운항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 평화를 원하는 유대인이 더 늘어나도록 … - 평화를 원하는 아랍인이 더 늘어나도록 … - 말과 혀가 아닌 실제 삶과 행동으로 이들을 사랑하는 진짜 기독교인들이 더 늘어나도록… 진심으로 기도 부탁드립니다. -
김병중 12-31 10:23
전광훈 목사, 징역 4년 구형 후 윤 대통령에게 선처 호소
검찰은 지난 12월 21일 결심 공판에서 2020년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전 목사는 그해 8월 15일 코로나로 인해 집회금지명령을 받았음에도 대규모 집회를 주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었다. 전 목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이 윤 대통령을 당선 시켰다고 공공연히 발언었했다. 투표율이 저조할 때 사람들을 차로 실어날라 투표 시켰다는 선거법 위반 사실도 자랑 삼아 말하기도 했었다. 또한 24만표의 저조한 차이로 윤 대통령이 당선되었기에 반대측을 대항하는데 자기가 적격자라고 하며 호위무사를 자처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랑제일교회 교인들과 추종자들에게 국민의힘당에 입당해 당원이 되어 당대표 선출 등에 관여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자기 딴에는 윤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집행유예를 받기 어려운 징역 4년이 구형되었기에 구속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문 대통령 때 구속이 될 때는 문 정권과 대립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탄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자기가 지지하는 윤 대통령에 의해 구속이 되면 뭐라고 말하지 입장이 딱하게 됐다. 그는 한 유튜브 동영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처를 구하는 발언을 해 현재 상황이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시각각 그의 숨통을 조여오는 목줄을 피할 수 있을까? -
김병중 09-27 22:18
【기획】한국 자살률, OECD 국가 중 1위..교회의 대안은 없는가?
9월 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생명의 소중함과 국가적, 사회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2003년 9월 10일을 ‘세계자살예방의 날’로 제정했다. 우리나라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에 따라 ‘세계자살예방의 날’과 같은 매년 9월 10일을 ‘자살예방의 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올해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2003년 이후 2번 빼고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갖고 있다.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로 나타났다. 9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며 한국을 제외하면 해당 통계에서 20명이 넘은 나라는 리투아니아(20.3명, 2020년 기준)가 유일했다. 지난해 한국의 자살 사망자는 총 1만3352명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157명(1.2%) 증가한 결과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를 뜻하는 자살 사망률은 26.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0.3명(1.2%) 증가한 결과다. 연령별로 보면,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였다. 지난해 전체 사망의 외인(사고나 타살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에 의한 사망률(인구 10만 명당)은 50.9명으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0명이 자살로 인한 사망자였다. 남녀별로 나눠 보면 지난해 남성의 사망의 외인에 의한 사망률은 69.5명이었고 이 가운데 자살 사망률은 35.9명이었다. 여성의 사망의 외인에 의한 사망률은 32.5명이었고 자살 사망률은 16.2명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 나눠 보면, 10대 이상 전 연령에서 사망의 외인에 의한 사망률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10대의 경우 전체 사망의 외인에 의한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명)은 10.1명이었고 이 가운데 자살은 7.1명이었다. 20대의 사망의 외인에 의한 자살률은 30.1명이었고 이 가운데 23.5명의 외인이 자살이었다. 30대는 34.1명 가운데 27.3명이, 40대는 38.5명 가운데 28.2명의 사망의 외인이 자살이었다. 전체 자살의 60~80% 정도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우울증 환자는 전국민의 5%(여자 5~9%, 남자 2~3%) 정도며, 전국민의 20% 정도는 일생동안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추정된다. 그 밖에 알코올 중독증, 정신분열증, 강박증, 불안 장애 등의 정신과적인 문제도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런데 정신질환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치료 가능한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게 아니라 뇌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감소해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므로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며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자살 대국이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40명꼴로 매일 자살하며 분으로 환산 하면 35분에 1명씩 자살하고 있다. 특히 60세 이상의 노년층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45명에 육박하고 75세 이상 자살률은 평균치의 3~4배를 기록하고 있다.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 중에서 약 40% 정도는 경제적 문제였고 20%는 신체나 정신적 장애로 인한 고통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살자의 50~80% 정도는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최근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10년간 1282건의 자살 원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20.8%), 심리불안(20.6%) 등 정신과 및 정신과 관련질환으로 인한 자살이 41.4%였다. 정신분열병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도 자살이다. 특히 정신분열병이면서 피해망상, 죄책망상, 지시환청 등 증상이 심할수록 자살을 결심하기 쉽다. 이들은 증상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죄책감 등 괴로움을 피하려고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알코올은 우울증, 인격장애 등과 더해져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정신과 질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살자의 약 50%가 술에 취한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알코올 의존자의 40% 정도가 평생 동안 적어도 한번 이상 자살을 시도한다는 보고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의존환자이면서 50세 이상 남성, 한번 이상 자살을 시도한 경험, 주요우울증 등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알코올 의존환자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살자들이 선택한 장소는 집과 그 주변이 57.4%로 나타났다. 이같은 행동은 자살자가 목숨을 끊는 순간에도 누군가 자신의 자살을 말려 주기를 원하는 심리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자살을 실행하기 전 자살자의 약 75%가 주변에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등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 가능성이 큰 정신분열병이나 우울증 환자의 가족들은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대화나 설득만으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병 환자의 자살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약물치료 등 전문의의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그런데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도 자살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최후의 탈출구지, 최선의 해법이 아님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자살자의 80% 정도는 주위 사람에게 자살의사를 넌지시 표현하거나 직접적으로 밝힘으로써 ‘구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살의 위험 징후는 다음 12 가지로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자살 위험을 염두에 두고 전문적인 도움을 청하는 등 조처를 취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 ▲극도로 우울하고 불안해하며 지쳐 있다. ▲자신의 죽음이 가족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자살할 생각이 있다고 말한다.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다 갑자기 차분해지고 편안해 한다. ▲최근 가족의 죽음이나 건강 상실 등 힘든 일이 있다. ▲가족 중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있다. ▲삶의 무가치 성을 강조하며 의기소침해 한다. ▲식사, 성, 수면 등 생물학적 욕구가 현저히 줄었다. ▲알코올 의존이 있다. ▲별거나 이혼, 사별로 혼자 살고 있다. ▲평소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아낌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자살도 예방 치료할 수 있다. 자살의사를 넌지시 또는 직접적으로 내비치면 피하지 말고 자살의 동기와 방법 등을 꼬치꼬치 캐물어 자살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게 해야 한다. 충분히 말을 들어주고 정서적으로 공감해준 뒤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평가해 주면 자살 결심을 돌이키는 경우가 많다. 또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당사자에겐 자살기도가 병의 결과임을 설명하고 전문의에게 상담·약물 치료를 받도록 권유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자살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즉시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급성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결심은 수시간 내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므로 응급 입원의 대상이 된다.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혼자 내버려두지 말고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자살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자살공화국인 우리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한국교회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생명을 어떻게 자살 시도자들에게 전해 그들을 살려야하는가? 한국교회는 자살 예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그들을 살리는 일에 노력해야할 것이다. 자살 시도자들을 살리는 것은 교회가 관심 가져야할 또 하나의 전도 영역이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샬롬'(평안)을 전하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의 사명이다. -
김병중 04-06 18:16
중도 연대,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정규 씨는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과 춘천시 문화콘텐츠과장을 상대로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를 춘천경찰서에 접수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 사 건: 2022-000532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 피의자: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 김규호 신청인: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정규 위 피의사건에 대한 춘천경찰서 2022. 3. 22.자 불송치 처분에 대하여 신청인(고발인, 이하 ‘고발인’이라고만 합니다)은 불복이므로 이의 신청을 제기함과 아울러 다음과 같이 이의신청 이유를 개진합니다. 다음 1. 피의사실의 요지 및 불송치 결정 이유 가. 피의사실의 요지 이 사건 피의사실의 요지는 1) 중도 역사유적지위에 레고랜드 놀이터를 짓는 반역적인 범법자들이 놀이터로도 부족하여 초대형 컨벤션센터를 유적지위에 짓겠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불법 부동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컨벤션센터는 일종의 공공기관 시설물이므로 강원도가 자기 소유의 부지였던 컨벤션센터 부지(춘천시 중도동 357-41번지 등을 포함하는 54,200m²(이하 해당부지))에 강원도비로 그냥 지으면 되는 것인데도, 주식회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에 공사비를 밀어주기 위해 해당부지를 평당 58만원에 팔고 다시 5배 이상 올려서 평당 304만원에 되사기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강원도민의 혈세가 탕진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부동산 범죄는 지난 수년동안 수차례나 자행되어 왔습니다. 피의자 김규호는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으로써 기획행정위의 심의와 강원도의회 본회의에서의 상기 불법사항에 대한 의결을 주도하였습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2) 강원도가 해당부지 중의 357-41번지 등을 평당 약 58만원에 판 시점이 2021.4.28.인데 5배 이상 올려서 다시 되사겠다고 도의회에서 심의한 시점이 2021.04월에 열린 강원도의회 제299회 임시회였으며 결국 의결 통과시킨 시점이 2021.05월에 열인 300회 임시회였습니다. 즉 거의 같은 시기 시점에서 강원도는 357-41번지 자기소유 토지를 평당 약 58만원에 팔았고 거의 동시에 357-41번지를 포함하는 인접부지인 컨벤션센터 부지를 평당 약 304만원에 되사기를 하겠다며 도의회에서 의결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관청이 주도하는 부동산 매매가격 조작입니다. 컨벤션센터 부지매입비 명목으로 이렇게 탕진되어지는 강원도민 혈세만도 499억입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나. 불송치 이유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요지는 상기 피의자의 배임의 범의 등을 찾기 어려워 고발을 각하한다는 입장입니다. 2. 불송치 결정 이유의 부당성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부당함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는 바입니다. 1)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배임의 범의를 찾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상기 피의자는 도의원으로써 “강원도민의 민의를 대변하고 잘못된 행정에 대한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배신하고 불법적인 컨벤션센터 부지매입비 499억을 통과시키는 의결을 주도하여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게는 막대한 재산상의 이익을 강원도민에게는 큰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이는 명백히 배임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2)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부지 매입 절차상 불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춘천 레고랜드 사업의 투자구조를 보면 강원도는 중도 땅을 현물출자하게 되어있으므로 그냥 1회에 걸쳐 현물출자만 하면 되는데도, 지난 수년동안 강원도는 자기 소유의 중도 땅을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 싸게 팔고 다시 수배를 올려서 되사주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밀어주며 천문학적인 도민혈세를 탕진해 왔습니다. 이러한 부동산 범죄가 한두 건이 아닙니다. 더구나 컨벤션센터는 레고랜드 놀이시설이 아니고 공공기관시설물이므로 강원도가 가기 소유의 부지에 그냥 컨벤션센터를 지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강원도는 자기 땅을 레고랜드 놀이시설 기반공사 시행사인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게 싸게 팔고 다시 공공시설 컨벤션센터 부지 명목으로 비싸게 사주며 혈세를 탕진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지 매입 절차는 명백히 불법입니다. 3)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강원컨벤션센터 신축사업 진행으로 인해 지역경제와 발전에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라고 하면서 범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습니다만, 고발인은 국가에 묻습니다! 국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부동산 비리를 저지르면서까지 경제효과가 의문시되는 컨벤션센터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까? 초대형 건축물인 컨벤션센터를 왜 선사유적지 위에 지어야 합니까? 문화재보호법 위반 아닙니까? 유적지위에 컨벤션센터를 짓는 방안에 대하여 지금 현재 문화재청에서는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 또한 절차상 위법 아닙니까? 또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관광지에 컨벤션센터를 짓는게 타당합니까? 이것은 오히려 관광지와 관광자원을 훼손하는 행위 아닙니까? 관공서나 비즈니스 구역에 짓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습니까? 4)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감정평가하여 매입한 것은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강원도가 중도동 357-41번지 부지를 판 시점과 피의자가 해당부지 매입을 심의 의결한 시점이 거의 동일하므로 즉, 감정평가하여보니 평당 304만원으로 5배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당연히 처음부터 땅을 팔지 말아야지요! 뻔히 오를 것을 알면서도 강원도 자기 소유 땅을 평당 58만원에 팔았다가 다시 304만원에 사겠다는 의결을 하여 도민혈세 수백억을 탕진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배임입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5)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고발인의 상기 진술을 보면 강원도민 혈세가 수백억 탕진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6)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마땅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도의회에 제출된 동의안과 도의회 회의록 그리고 피의자의 발언 기록 등은 명백한 증거자료입니다. 7)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없고”라고 하였으나, 피의자는 기획행정위원장으로써 컨벤션센터 부지 매입 안건이 기획행정위를 통과한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며 본회의에서도 의결되도록 주도하였으므로 피의자는 마땅히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결 어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피의자의 범죄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도,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또는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서 부당하게 불송치 결정을 하였는바, 고발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반드시 이 사건을 재수사하여 피의자를 엄히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별 첨 없음. 2022. 04. 05 . 위 신청인 오 정 규 (인) 춘천경찰서장 귀중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 사 건: 2021-007674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피의자: 강원도 문화유산과장 김 맹 기 피의자: 춘천시 문화콘텐츠과장 안 효 란 신청인: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 정 규 위 피의사건에 대한 춘천경찰서 2022. 2. 28.자 불송치 처분에 대하여 신청인(고발인, 이하 ‘고발인’이라고만 합니다)은 불복이므로 이의 신청을 제기함과 아울러 다음과 같이 이의신청 이유를 개진합니다. 다 음 1. 피의사실의 요지 및 불송치 결정 이유 가. 피의사실의 요지 이 사건 피의사실의 요지는 1) (피의자 김맹기에 대한 피의사실과 고발내용을 수정 보완합니다.) 피의자 김맹기는 중도적석총(강원도 기념물 제19호) 외곽경계로부터 300미터 이내의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 내에서 (주)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GJC)가 현상변경 허가를 득하지 않고 수년동안 무허가 불법공사를 해오다 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해줌으로써 행정절차를 위반하였고, GJC의 불법행위를 지원하였으며 또한 수년동안 무허가 불법공사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이를 단속하지 않는 등 관리감독 직무를 유기하였고, 행정적 실익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을 정당화 함으로써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였습니다. (형법 제91조, 형법 제122조, 문화재보호법, 절차법 등을 위반.) 피의자 김맹기의 2021.7.12. 사후 현상변경허가는 피의자 안효란의 2021.4.22. 사후 현상변경허가 신청에 따른 것이므로, 피의자 김맹기가 춘천시청의 적법한 행정행위를 방해하였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고발 사항을 취하합니다. 2) (피의자 안효란에 대한 피의사실과 고발내용을 수정 보완합니다.) 피의자 안효란은 상기 사건과 관련하여 GJC에 대해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조치하였으며 GJC를 고발까지 해놓고도 이후에 자신의 적법한 결정을 뒤집고 사업자인 GJC를 위해 사후 현상변경 신청을 대행해 준 것은 명백히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며 또한 사후 현상변경을 신청하고 공모한 것은 명백히 행정절차 위반입니다. (공직자윤리법, 형법 제91조, 형법 제122조, 문화재보호법, 절차법 등을 위반.) 나. 불송치 이유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요지는 상기 피의자들의 직무에 대한 의식적 방임·포기·거부를 찾을 수 없고 직권을 남용한다는 인식을 포함한 범의를 찾을 수 없어 고발을 각하한다는 입장입니다. 2. 불송치 결정 이유의 부당성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부당함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는 바입니다. 1)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강원도의 허가서 통보를 받아 춘천시는 그 허가서를 GJC에 통보하여 적석총 주변 공사를 재개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였으나, 강원도의 그 사후 현상변경 허가서가 바로 행정절차를 위반한 불법이므로 피의자들의 주장처럼 적법한 절차가 절대로 성립되지 않겠습니다. 2)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는 2021.4.22. 춘천시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신청을 받고”로 되어 있는데, 이는 춘천시청이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GJC의 무허가 공사에 대한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발동하였던 춘천시청이 스스로 자신의 적법한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춘천시청 자신이 고발까지 하였던 GJC의 무허가 범법행위를 지원하는 것이 되는 등 이중삼중의 자기모순 자가당착 상태에서 행정절차와 법질서를 심히 위반하고 있는 것이 되고 더구나 사업자인 GJC가 해야 할 현상변경 허가신청까지 대행하여 주는 공직자윤리법 위반까지 하고 있습니다. ( 행정절차 위반, 공직자윤리법 위반, 직무유기 등) 3)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 문화재위원들이 원상복구를 하지 않은 이유가“(단순누락)현상변경 심의관련 기반시설 허가사항 미신청”로 되어 있는데, 설사 현상변경신청 누락이라 치더라도 위법은 위법입니다. 형법 제91조 국헌문란의 방지를 위해서도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사후 심의는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위법행위이므로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즉각 취소하고 해당부지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해야 하겠습니다. 4)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 문화재위원들이 원상복구를 하지 않은 이유가“행정적 실익, 공공의 이익”때문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그러한 어떤 이익 때문에 위법이 정당화 되는 것이 바로 국헌문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을 정당화 하는 행위는 헌정질서문란 행위로 반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형법 제91조 위반 등) 사후 현상변경심의에 관련된 자들을 전부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반란행위를 추가하여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의 심의허가가 났으므로 불법공사는 아니다”라고 되어 있으나, 바로 그 사후 현상변경심의허가 자체가 행정절차를 위반한 불법이므로 GJC의 중도적석총 인근 공사는 불법공사가 맞다 하겠습니다. 6)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안효란은 GJC에 대한 고발조치를 전결한 사람으로써 직무에 대한 의식적 방임·포기·거부를 찾을 수 없다 ”라고 하였으나, 피의자 안효란은 무허가 불법공사중인 GJC에 대해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발동하고 심지어는 고발조치까지 하고서도 곧이어 GJC의 그 무허가를 지원하여주는 사후 현상변경허가신청을 한 자로써 스스로 자신의 정당한 결정을 뒤집는 자가당착 이율배반에 빠지며 직무유기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업자 GJC를 위해 사후 현상변경허가신청을 대행하여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7) 추가 고발합니다. 별첨1. 강원도고시 제2014-531호의 도면을 보면 범법자들은 중도적석총 도지정 문화재보호구역 외곽경계로부터 300미터이내 역사문화환경 원지형보존구역내에서 현상변경 허가를 득하지않고 무허가 불법공사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도지정 문화재보호구역 자체를 관통하는 도로공사를 하고 옹벽을 쌓는 등 문화재를 파괴하였습니다. 상기 피의자들은 문화재 보호 및 관리 책임자들로써 그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8) 법은 법이기 때문에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행정적 실익이나 공공의 이익을 핑계로 불법을 정당화 하는 것이 바로 형법 제91조 국헌문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정당화 하게 되면 국민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정당화 하게 될 것이며 결국 국가의 법질서는 무너지게 될 것이고 법치국가의 법치 또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법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결 어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피의자의 범죄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도,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또는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서 부당하게 불송치 결정을 하였는바, 고발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반드시 이 사건을 재수사하여 피의자를 엄히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피의자 안효란으로 하여금 당초 자신의 적법한 결정이었던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도록 사법부와 검찰과 경찰은 올바른 수사와 판결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4. 별 첨 - 강원도고시 제2014-531호.끝. 2022. 04. 06 . 위 신청인 오 정 규 (인) 춘천경찰서장 귀중 -
김병중 04-05 08:18
레고랜드에 짓밟힌 문화 유적지, 춘천 중도!
레고랜드에 짓밟힌 문화 유적지, 춘천 중도! 춘천시에 위치한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2022년 3월 26일 준공되었으며 2022년 5월 어린이날에 정식 개장한다. 레고랜드는 대한민국에 정식 개장하는 최초의 "외국 프랜차이즈 테마파크"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외국 테마파크 프랜차이즈들이 입점을 시도했으나 여러 이유로 줄줄이 무산되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테마파크가 레고랜드이다. 레고랜드 부지는 하중도의 5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레고랜드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레고랜드이다. 그런데 레고랜드를 지을 곳을 찾지 못해 그나마 춘천 하중도를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공사가 진행되던 도중 세계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바람에 엄청난 난관을 겪었다. 한반도 최대 규모 선사 시대 유적이 발굴되어 이를 갈아버리고 지을 것인지, 아니면 이를 보존할 것인지 논란이 심한 가운데 공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개장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중도 레고랜드 건설을 반대했던 '중도유적 보존 범국민연대회의'에서는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중도의 복원을 위해 싸울 것을 밝혔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 연대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역사문화분야 정책을 제안했다. 다음은 제안서 내용이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역사문화분야 정책 제안 영토보다 근본인 우리역사문화를 지켜냄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위한 제20대 대통령 정책과제를 첨부와 같이 요청 드리오니 국민의 간절한 뜻을 받으시고 반드시 정부 실행과제로 선포하여 주시기를 청원 드리는 바입니다. 별첨1. 우리 역사문화 말살시대를 멈추어야 합니다! 1. 춘천 중도유적을 원상복원하여 중도시국으로 만들어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관광명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2.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시 임나일본부론에 따른 일본서기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을 삭제하고 등재. 3.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 4.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신설된 “강원도 예맥역사문화권”에 “중도 전체”를 포함. 5.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추가로 신설 6. 대선과 총선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의 역사의식 검증절차를 제도화. 7. 역사청 신설. 별첨 2. 헌법 제9조 “전통문화 계승발전 민족문화 창달”에 입각한 제 20대 대통령 역사문화 분야 정책 과제 우리 역사문화 말살시대를 멈추어야 합니다! 1. 중도유적 원상복원! 1-1. 춘천 레고랜드는 헌법을 위반하고 수많은 불법과 비리로 얼룩져 있으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즉각 철거해야 함! 1-2. 중도유적 가치평가 재실시를 통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한 후 차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1-3. 중도 선사유적지를 중도의 천혜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관광명소로 만들어야 함! 1-4. 우리역사를 통사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중도유적을 수십년을 두고 정밀히 발굴조사해 나가야 함. 1-5. 중도시국 건설! 대한민국 안에 중도시국!을 건설하여 바티칸시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 명물로 만들어야 함! 2.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시 임나일본부론에 따른 일본서기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을 삭제하고 등재! 3.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 4.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신설된 “강원도 예맥역사문화권”에 “중도 전체”를 포함하여야 함! 4-1. 상기 특별법은 2020년 6월에 공표되어 2021년 6월부터 시행되었는데, 강원도만 누락되어 있어 강원도민들의 요구에 따라 얼마전 지역구 허영의원이 대표발의하여, 강원도를 예맥역사문화권으로 하여 특별법에 추가하는 개정 발의가 이루어 짐. 5.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추가로 신설해야 합니다! 5-1. 상기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신설하여 중도와 전국의 고인돌들과 암각화들을 고조선 역사문화권에 포함하여 영구히 보존하여야 합니다. 6. 대선과 총선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의 역사의식 검증절차를 제도화! 7. 대통령 직속의 청을 두되 어떤 정권이나 정부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학문과 학자들 위주의 우리민족사 보존과 발굴에만 목적을 두는 역사청 신설. 별첨 3. 레고랜드 건설로 파괴되고 있는 1만년 우리역사_춘천 중도유적을 복원하라 (중도유적은 왜 특별한 유적인가?) 1만년춘천중도역사유적살리기백만국민서명운동본부 중도유적 8000년! (로마유적 2000년!)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아낼 춘천 중도유적! 역사와 문화재는 그 나라의 영혼이요 심장이다! 고인돌이 무려 166기가 모여있는 선조들의 고대 현충원! 고인돌 집단군_ 지금은 해체되어 잡석 처리되어 비닐하우스에 야적되어 있다. 중도유적은 고대 도시유적이라 한다! 세계 최고의 관광자원! 춘천 중도유적! 중도섬(39만평) 전체가 유적지 그러나 중도유적지는 무참히 파괴당하고 있다! 1만년 우리역사와 중도유적을 파괴하는 레고랜드 몰아내자! 중도유적을 짓뭉개고 레고랜드를 짓고 있다. 영국 해적들에게 중도땅을 100년간 무상임대(할양)해준 최문순 강원도청! 중도는 제2의 홍콩이 되었다! ○ 춘천 중도(中島)유적은 왜 특별한 유적인가? 유물유적 몇점이 나온 유적지가 아니고 39만평 중도 전체적으로 1만여점 이상의 유물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고대 도시유적이 출현한 것임. 중도 고대 도시유적지는 중도 주변의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세계최고의 관광자원이며 후대들에게 만년 관광자원이 됨. 최고 8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유적부터 청동기, 철기,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 및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적들이 겹쌓여있는 층층이 유적지로써 매우 희귀한 유적지이며 우리민족의 1만년 역사를 통사적으로 관측해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역사유적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을 막아낼 우리역사의 증거 유적임. 고인돌이 무려 166기가 모여있는 선조들의 고대 현충원 또는 국립묘지임. ○ 영토를 빼앗길지언정 역사를 빼앗겨서는 안된다! 빼앗긴 영토는 힘을 길러 다시 되찾을 수 있으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그 민족이 해체되어버리므로 영원히 되찾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 강대국들의 역사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 증거인 유적이 있으면 역사왜곡을 못한다. 유적이 있으면 심지어는 왜곡된 역사를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다. ○ 온갖 불법과 탈법이 난무한 레고랜드 건설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중도유적 문화재 원형보존점수가 91.77점(기준점수 74.31점)으로 매우 높았음에도 원형보존을 하지 않고 개발을 허락한 점. 별첨 4. 대한민국 역사 청 신설에 대한 정책 제안 역사청의 신설은 왜 필요한가? 1. 배경 우리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일제의 정한론에 발맞추어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강변한 식민사관의 역사를 지금까지 교육의 현장에 그대로 인용하고 반영시켜 후대 역사교육을 시키다 보니 고대 우리 선조들의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던 위업과 발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륙을 누비며 위용을 뽐냈던 우리 동이민족의 홍익의 기상과 이치와 덕치의 높은 정신문화도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왜곡 변형되고 축소되어 이제는 더 이상 그 본질을 찾아보거나 흔적마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식민사관의 폐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 하나 선뜻 그 폐단을 외치는 자 없어 우리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민본의 이념마저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이대로 조상님들의 정신과 정맥을 잇는 올바른 과거사를 외면하고 식민사관의 폐단을 방치한 채로 제국의 식민사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 역사관을 바로잡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역사를 잃고 선조님들과 자신의 뿌리마저 망각한 채 치열하게 전개되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부초처럼 헤매다가 결국에는 우리의 맥과 역사는 허공 속에 사라지는 한낱 산울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2. 역사청의 역할 1) 우리역사 발굴과 연구. 2) 식민사관 척결과 역사편찬. 3) 올바른 우리역사와 문화 보전활동. 4) 우리문화 살리기 각종 행사 주관 및 주최. 5) 우리역사의 이론 정립과 학술대회. 6)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편찬과 보급. 7) 우리역사 찾기 문화탐사 및 탐방활동 지원. 8) 우리역사 알리기 대내외 홍보활동과 보급. 9) 향토문화와 향토역사의 체계적 관리 및 자료정리 보관. 10) 상시적인 남북 역사토론과 학술대회 개최로 민족통합의 기틀 마련. 3. 역사청의 구조 1) 대통령 직속의 청을 두되 어떤 정권이나 정부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학문과 학자들 위주의 우리민족사 보존과 발굴에만 목적을 두는 청. 2) 청장은 덕망 있는 민족주의 학자 중에서 우리민족사 발굴과 연구 및 업적에 몸 바친 자로 민족진영의 의견수렴과 추천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 3) 청 산하에 역사청의 역할에 따른 부서를 신설한다. 4) 청의 예산과 집행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한다. 5) 청의 예산과 집행 및 활동을 감시하는 감사과를 둔다. 6) 청의 효율적인 운영을 관장하기 위해 산하에 지자체별로 지청을 둘 수 있다. 7) 그 외 공직기관에 준하여 운영한다. 4. 역사청의 효과 1) 대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2) 우리의 새로운 역사관을 가짐으로써 민족통합의 바탕을 다질 수 있어 차후 통일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3) 나라의 위급이 닥쳤을 때 나라를 구할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4)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관과 위대한 민족유산을 물려줌으로써 후대 만대 세세토록 귀감이 될 수 있다. 5) 식민사관을 벗어난 진정한 역사해방과 민족문화의 광복을 찾을 수 있다. 6)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우리 민족사를 집대성함으로써 고대 찬란했던 선조들의 위업을 되찾고 독도문제나 동북공정에 강하게 대처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대마도나 간도 땅이 우리의 역사임을 역사적으로 밝혀 국제적으로 우리의 영토를 찾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얼을 심을 수 있다. 7) 세계 속에 올바른 우리역사관을 정립함으로써 우리의 독창적인 얼과 문화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5. 결어 결과적으로 우리문화의 발굴과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 첫 단추는 역사청의 신설이며 이는 그토록 소원했던 우리민족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민본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어 새로운 역사 새로운 우리의 미래를 갖게 될 것이며 남북통합에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후손들은 세계 최강국 통일된 나라에서 조상들의 은덕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게 될 것이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와 질서도 비틀어진 역사관을 바로잡는 데에서 시발하는바 반드시 지금 역사 청을 신설하여 우리시대에 우리민족의 적대적인 대립과 분열의 장벽을 허물고 그 비운의 역사를 끝내야 될 것이다. 새로운 미래의 시작은 역사청의 신설임을 명심하자.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진리임을 망각하지 말자. - 민족사학자 일동 -
논단더보기 +
-
김병중(Th.D) 10-26 14:51
1027연합예배, 전광훈 재 뿌리거나 숟가락 얹거나 우려
기대 반 우려 반인 1027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이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교계의 반응은 “필요하다”는 것과 “왜 하는가”하는 것이었다. 양분된 견해는 여전하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입되어 있는 한 동창회 단톡에서는 누군가 내일 행사를 생중계하는 방송사를 소개하자 몇 명의 회원이 반발하고 탈퇴했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행사를 진행할 때 교계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과 걱정은 이미 광화문 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전광훈 측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동화면세점 앞쪽을 매 주일 집회 장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인원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이미 전 측은 일간지를 통해 10월 27일 오전 11시에는 예배를 하고, 오후 2시에는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를 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결국 1027연합예배와 시간이 겹치고 장소도 겹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지난 10월 24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도 질의했을 때 “그들이 기도회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답했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기자는 전 측이 이 행사에 재를 뿌리거나 숟가락을 얹을 수 있다고 예견한다. 전 측의 입장에서 볼 때 이날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좋은 기회이며 먹을 게 많은 잔칫날이다. 전 측이 강력한 앰프를 사용하면 그 소음으로 1027행사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방해 받을 수 있다. 또한 저들이 저들의 시그니처인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기도회 집회 장소로 밀고 들어오면 1027행사는 결국 전 측의 모임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내가 전광훈이라도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순수한” 예배와 기도 집회는 전 측의 정치집회로 "오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 측 좋은 일만 시킬 것 같은 우려가 크다. 과연 1027 집회 측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며 우려스럽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내일 집회에 참석해야 할 것 같다. 내 예측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래본다. -
김병중(Th.D) 10-25 12:47
“목사 면직”, “노회 문제 제기”, "소송"....기자를 겁박하나?
한 통의 내용증명 문서를 받았다. 북일교회 사태에 관해 쓴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었다. 상대방이 문제 제기하는 것이야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관련기사링크: 북일교회 담임 반대 측, 노회 수습처리위 지시 묵살 난동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100 그러면 기사에 대한 것만 언급해야지 기자인 내 신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선 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관련한 전문이다. 총신대학교 신대원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목사님께서는 H노회 소속의 동암교회를 사임하신 후에 J노회 소속의 C교회에 소속하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관련하여 교단법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교단법은 목사님이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근거 규정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첫째, 목회자가 노회의 소속을 바꾸려면 타 노회 소속 교회의 청빙을 받아 이명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C교회의 청빙을 받으신 겁니까? 목사님이 C교회의 청빙을 받았다면 그 교회에서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둘째, 목사는 임직서약할 때 신자 목사'로 열심히 성도의 의무를 잘 감당하겠다고 서약했습니다. 목사님이 현재 출석하시는 교회와 그 교회에 얼마의 헌금을 했는지의 근거 서류를 가지고 계십니까? 주일을 범하고 헌금을 포함한 성도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면직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말미에 민형사상 소송을 걸고 내 신분에 대해 교단과 소속 노회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다. 이 무슨 겁박인가? 2024년 10월 31일까지 목사님의 답변이 없으시다면 저희는 민형사상 소송과 아울러서 목사님께서 교단 결의를 어기고 일방적으로 취재하여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키신 일과 목사님의 현재 신분에 대해 교단과 소속 노회에 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2024년 10월 24일 북일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 드림 이처럼 “목사 면직 ”, “민형사상 소송 제기”, “교단과 소속 노회에 문제 제기” 등등 다양하게 기자를 겁박하는 이들이 바로 ‘북일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정체인가? 저들이 궁금해하는 내 신상은 저들이 민형사상 소송을 하면 그때 밝히겠다. 그리고 그것은 목사 면직 사유가 아니니 그때 내가 그들을 “명예훼손, 협박”으로 맞 소송 할 것이라는 것을 경고한다. 끝으로 나는 북일교회를 이미 2번 취재하러 갔었다는 것도 밝힌다. -
김병중(Th.D) 10-07 16:20
총회 임원들은 공과사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109회 총회에서 GMS 선관위원회(위원장 이성화 목사) 조사처리위원회가 가결됐다. 이미 여러 언론들이 GMS 행정사무총장 선거와 관련해 선관위원장의 처신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로인해 조사 처리를 받게 된 것이다. 곧 임원회에 의해 조사처리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성화 목사는 지난 10월 6일 교회설립 4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가졌다. 초청된 인사는 김종혁 총회장을 비롯해 화려하다. 장봉생 부총회장, 권순웅 증경총회장, 박용규 총회총무 등등. 혹시나 이것이 앞으로 그가 받아야 할 조사 처리에 하나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임원들은 공사를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진행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순수한 선교 조직인 GMS의 명예를 실추시킨 당사자가 어떤 조치를 받을지 총회원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밝혀둔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
김병중(Th.D) 10-07 11:06
그래도 교회 세습은 안 된다
예장합동은 20여 년 전에 만든 70세 정년제를 상향하거나, 폐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예장통합은 만든 지 몇 년 안 된 세습금지법을 변경하거나 폐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말한다. 이 뭔 코미디인가? 그 당시 법을 만들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찬반 격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 지교회와 노회가 동의해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이 법을 폐지해 보려고 매년 총회 때마다 격론을 벌여야 하는가? 그나마 예장합동측 교회들은 세습금지법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합동교단은 세습금지법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 든 목사, 특별히 개척교회 목사는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세습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금지법이 없다고 해도, 아무리 봐도 교회 세습은 “아니다”. 교회는 목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인데 어찌 가업을 물려주듯이 세습한단 말인가? 어느 교회는 세습에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그 일로 인해 난리가 나기도 한다. 교회 세습은 요즘 사람들이 예민한 “공정과 상식”에 맞지도 않는다. 제사장들은 세습했다는 말은 하지도 말자. 어떻게 성경을 그렇게 취사선택해 왜곡할 수 있는가? 남 주기 아까우니 자기 자식 주는 게 아닌가? 평생 목회하고 마지막에 목회를 망치는 세습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목사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이다. 내 것인 양 마음대로 하지 말자. 그럼에도 여전히 "뻔뻔하게" 교회를 넘겨주는 아버지 목사들과 "즐거이" 넘겨받는 아들 목사들이 많으니 할 말이 없다. 있던 정년제 마저 변경하거나 폐지할려고 하는 합동교단은 과연 교회 세습 금지법을 만들 수 있을까? -
김병중(Th.D) 10-05 10:47
【단상】 행사와 예배를 방해하는 기자들(?)
지난 10월 4일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제44회기 회장 이 · 취임 감사예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모 장로가 사진을 찍으러 강단 앞으로 나가 있던 기자에게 “뒤에가서 찍으라”고 짜증 섞인 말을 했다. 그 기자는 계면쩍은 표정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앞에 나가 사진 찍는 일은 계속됐다. 요즘 나는 취재 갈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4년 전 신문사를 시작하면서 거금을 들여 카메라와 일반 렌즈, 망원렌즈, 플래시를 구입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우선 카메라는 무겁다. 망원렌즈까지 포함하면 어깨가 아플 정도다. 또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앞으로 나가야 한다. 망원렌즈를 사용한다 해도 앉은 자리에서 찍으면 작게 나오니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배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다행히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져 멀리서 줌으로 당겨도 잘 찍힌다. 요즘 교계 기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취재를 가면 사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자리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배와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자리에 앉아 있는 목사와 장로 등 참석자들은 기자들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나는 예배 때는 앉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필요할 때 자리에서 잠깐 일어나 찍고 바로 앉는다. 설교 중에는 결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지 않는다. 설교자와 회중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회 결의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정진모 목사가 쓴 『헌법 해설 문답서』에 “질의 262] 예배에 관한 총회결의를 알려주세요? 답변] 3) 기도 설교 찬양할 때 강단에 올라가 촬영을 금하는 것이 좋다. (45회 총회 결의)”고 나와 있다. 교계 기자들은 대부분이 목사이다. 그러면서 예배 방해자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행사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강대상 앞까지 나가 사진 찍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설교 중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일도 금해야 한다. 예배와 행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자들의 이런 행태가 고쳐지지 않으면 조만간 “기자 출입금지, 기자 사절”이라는 경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행사와 예배를 방해하는 기자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나부터 더욱 조심하며 취재에 힘쓰겠다. -
김병중(Th.D) 10-05 08:01
【단상】 겸손은 힘들다
태도가 바뀌고 말투가 바뀌었다. 선거에서 이겼고 마침내 고대하던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인가? 헛웃음이 난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얼마나 비굴하게 굴었는지를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치 자기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자기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한 듯이 군다. 1년 전에 조영남의 노래 “겸손은 힘들어”를 갖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 400여 건의 조회수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선거가 끝나고, 이취임식을 보면서 또다시 이 노래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렇지 역시 겸손은 힘들구나. 완장만 차도 사람이 변한다. 완장은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다. 필자는 과거 1993년 군종장교후보생으로 영천 3사관학교에서 3개월 군사 기초 훈련을 받았다. 이때 2주마다 소대장이 바뀌었다. 이때 나도 노란색 완장을 차봤다. 이것도 나름 “권력”은 권력이었다. 그래서 2주 후에 완장을 벗어줄 때 조금은 “아쉬웠다”. 이게 사람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완장을 차길 원하고, 완장을 차면 변하고, 완장을 벗으면 허탈해하고 소라게처럼 다른 완장 소라껍데기로 갈아타려고 한다. 완장은, 자리는 사람을 겸손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겸손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취임 자리에 대중가요지만 “겸손은 힘들어”가 들렸으면 좋겠다. 오락 기계 중에 두더지게임이 있다. 머리가 올라오면 망치로 때려 점수를 따는 게임이다. 완장 찼다고 머리를 들면 망치로 맞는다. 이 또한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다. 역시 겸손은 힘들다는 것을 대중가요도, 오락 기계도 일반 은총으로 가르치고 있다(이번 노래는 이미 해체된 리쌍 버전으로 올려본다). 이전 기사 링크: 겸손은 힘들어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1398 -
김병중(Th.D) 10-02 17:37
제109회 김종혁 총회장의 성공을 기원한다
109회 총회가 시작됐다. 김종혁 총회장은 전 총대들에게 큰절을 하며 회무를 시작했다. 이는 자신을 낮추며 전 총대를 존중하며 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총회장은 아무나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고, 총대들이 지지했다. 총회장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준비했겠는가! 무엇인가 하고싶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 총회장이 됐을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총대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큰 박수 속에 총회장에 당선됐는데 1년 후 이임할 때도 큰 박수를 받기 바란다. 김종혁 총회장은 4대 중점 사업을 발표했다. 첫째, 총회 장학재단 설립으로 일체와 연합을 이루겠습니다. 총회의 허락을 받으면 즉시 총회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수년 내에 300억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다음세대의 일꾼들을 길러 내려고 합니다. 총회가 적극 나서서 초중고등학생 청년들 중에서 장학생을 선발하여 매년 해외 연수를 보내어 다음세대 인재들을 길러내겠습니다. 총회 직영 및 인준 신학대학원의 목사 후보생들 중에서도 성적 우수자들을 선발하여 해외 유학으로 인재를 양성하겠습니다. 둘째, 미래교육원을 설립하여 총회 산하의 교육을 통해 일체와 연합을 이루겠습니다. 총회 미래교육원을 설립하여 온라인, 오프라인 교육으로 목회자 재교육, 장로 교육, 재판국원 후보자격을 위한 교육, 권사·집사 교육, 교사 교육, 특별편목 교육, 강도사고시 합격자 교육, 여성 사역자 재교육, 다음세대를 위한 다양한 교육 등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디지털 혁신 교육으로 총회의 일체와 연합을 도모하고 변화와 성숙을 이루겠습니다. 셋째, 복음전래 140주년 기념 전국대회로 총회의 일체와 연합을 이루겠습니다. 총회적인 행사로 “영광에 감사, 은혜로 재도약”이라는 구호 하에 <복음전래 140주년, 토마스선교사 백령도 한문성경배포160주년, 광복 80주년, 주일학교 설립 70주년, 기독신문 60주년, 구개혁합동 20주년 외에도 총회 산하 각 속회 및 부서> 등의 설립을 기념한 전국대회를 개최하겠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전국교회와 노회가 일체와 연합으로 하나됨을 선포하면서 총회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고자 합니다. 넷째, 총회 헌법과 규칙 및 각 시행령 등의 법제화로 총회의 일체와 연합을 이루겠습니다. 총회 임원회가 분쟁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헌법을 위반한 노회 분립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회 봉사 중에 금권 거래에 동참한 정황이 드러나면 즉시 규칙에 따라 총회공직을 제한하며, 5배를 배상하는 규정을 법제화하여 총회의 법질서를 세우려고 합니다. 재판국의 판결이 사법에서 무효화되면, 불법 혹은 금권 재판에 가담한 이들은 총대직을 영구히 박탈하며, 소송비의 3배를 배상케 하는 규정도 법제화하여 총회의 정의를 세우겠습니다. 모두 총회와 교단 발전을 위해 좋은 사업이라 생각한다. 짧은 총회장 임기 1년 동안 잘 이루기를 바라며 총회장학재단이 설립 되면 즉시 100만원을 후원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월 정액이 있다면 적은 금액이나마 이또한 매달 할 생각이다. 이미 총신대학과 GMS를 위해 매달 후원하고 있는데 총회를 발전시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김병중(Th.D) 09-13 00:02
총회 선거의 “영남 VS 비영남 프레임”...타당한가?
필자는 서울 토박이다. 아버지는 경기도, 어머니는 충청도 분이시나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 군목으로 4년간 경기도 북부지역에 살았던 것을 빼고는 지금까지 서울 시민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고향인 서울에서 살고 싶다. 그러다보니 영남, 호남, 충청권의 지역정서를 잘 모른다. 어쩌다보니 아내도 경기도 사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역감정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다. 단지 지방으로 가서 담임목회를 할려면 그 지방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는 말만 들어봤다. 하지만 담임목회 15년도 서울시 용산구에서 했다. 지역정서, 지역감정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담임목회를 중단하고 교계 기자가 되면서 부터였다. 총회 임원이 서울·서북, 중부·호남, 영남의 3개 구도로 돌아간다는 것도 기자가 되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협의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됐다. 그만큼 서울에서 살기에 지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총회는 지역의 인물들에게 골고루 섬길 기회를 주기 위해 3개 구도로 순환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지역과 인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향을 떠나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져 활동하다보니 생겨난 현상이다. 그래서 같은 지역권내에서 경쟁을 하지만 결국 고향 경쟁이 되어버린다. 노회 소속과 달리 후보자의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표의 향방이 달라지기도 했다. 금번 목사부총회장 선거를 바라보며 예측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영남 VS 비영남 프레임”이다. 공교롭게 총회장을 역임한 배광식, 권순웅, 오정호 목사와 109회 총회장이 될 김종혁 목사는 모두 고향이 영남이다. 그래서 만약 영남 출신인 장봉생 목사가 부총회장이 되면 모두 5명이나 내리 영남이 총회의 주도권을 가지기에 혹자는 이것을 “영남 패권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패권주의(覇權主義)”란 ‘권력을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자주 쓰이는 용어’로서 부정적인 뜻이 강하다. 또한 ‘패권(覇權, 그리스어: ἡγεμονία, 영어: hegemony)’이란 ‘어떤 집단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이나 지위이자 어느 한 지배 집단이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정치, 경제, 사상 또는 문화적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설명되어 있다. 이 또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영남에서 4명의 총회장이 나온 것에 대해 패권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총회의 다른 임원을 비롯해 총회장은 하나님과 총회를 섬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결코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 남을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다. 이것은 “종의 리더십”으로서 우리 모든 신자들이 특히 총회를 섬기는 모든 임원들, 기관장들, 상비부장들이 가져야할 기본 자세이다. 그동안 영남에서 4명의 총회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노회 지역과 후보자의 고향이 일치하지 않았기에 생긴 현상이었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금번 109회 부총회장 후보는 서울·서북지역 서울노회 장봉생 목사, 동안주노회 김동관 목사다. 공교롭게 장봉생 목사의 고향은 영남이고, 김동관 목사의 고향은 경기도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장봉생 목사가 부총회장이 되면 영남이 내리 5번이나 총회 교권을 쥐는 “패권주의”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측이요 비논리다. 서울노회가 서울·서북지역에 속하기에 이 지역에 속하는 노회의 모든 목사는 부총회장에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장봉생 목사가 출마했는데 공교롭게 그의 고향이 영남인 것뿐이다. 결국 의도치 않게 영남 출신 목사들이 총회장들이 되어온 것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영남 VS 비영남”으로 선거 프레임을 짜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프레임을 깨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 프레임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며 이는 총회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후보의 이력과 공략, 비전을 근거로 투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와 고향을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이유없이 이것이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유리하게 작용해서는 안된다. 세상 선거에서는 이기기 위해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지역 소외론", "지역 견제론" 등을 내세우며 지역으로 뭉쳐 표몰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한 총회에서마저 그럴 필요가 있는가? 지역을 떠나 후보 자체를 보고 투표하는 것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아닌가? 타고난 지역으로 “손해”를 보거나 “이익”을 얻는 일이 없는 선거가 되기를 바래본다. 총회 선거는 세상 선거와 달라야하지 않겠는가! 총회 선거 관련 기사 링크: ① 세상정치 vs 교단정치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1990 ② 민찬기 목사, 왜 서북협을 찾아갔는가?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1999
칼럼더보기 +
-
김병중(Th.D) 11-04 01:08
교회 분란 때라도 거짓말하지 말라
2020년 55살, 담임목회 15년 만에 위기가 왔다. 나를 반대하는 자들이 모여 나를 내보낼 모의를 했다. 이들을 설득해 보려고 7개월을 끌다 결국 목회를 접었다. 그 교회는 총회장을 역임한 원로목사가 있었는데 10여 년 만에 후임 담임목사 4명이 모두 중도 사임당했고, 나도 15년 만에 사임당했다. 이때 그들은 내가 나가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교회를 먹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어이가 없고 기가 찼다. 나는 그 당시 용산에 위치한 교회의 평수도 몰랐다. 이 일 이후 알아보니 대지가 300평이었다. 그 당시 공시지가가 평당 2천만 원이니 토지 가격은 60억이었고 실거래가로 하면 100억이 넘을 수도 있는 가격이었다. 무엇보다 목사인 내가 교회를 먹으려고 했다는 말에 대해 나는 지금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나에 대해 온갖 모함을 하고 거짓말을 했다. 나를 내보내려고 별별 짓을 다 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을 목회할 의욕이 나지 않아 옳고 그름을 떠나 주변 목사들의 만류에도 목회를 포기한 것이다. 십계명 중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고 말씀한다. 그럼에도 교회 분란이 일어나면 거짓말이 판을 친다. 현재 분란을 겪고 있는 어느 교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자들은 목사가 교회 재정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은 “100억을 담임목사가 먹었다”고 거짓말하기도 하고, 교회 토지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유용하기 위해 “목사 명의로 통장을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버젓이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다는 말인가? 한 번의 거짓말이라도 들통나면 나머지 모든 주장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세상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 분란이 일어나면 신앙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혈기를 부리고 고함을 치고 폭력을 행사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자들이 있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지상에 있는 교회는 불완전해서 원치 않는 분란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다면 이미 명분을 잃어버린 것이며 마귀 짓을 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거짓말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김병중(Th.D) 10-31 10:39
교회 분쟁으로 고통받는 교인들에게...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고 영적 전투를 지속하기에 교회에는 언제나 문제가 있게 되어 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살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공동체도 그러했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고 성령의 역사를 직접 확인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도 그러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것을 이용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의해 움직여지는 불순종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요하게 도전하고 공격한다. 기자는 수없이 많은 분쟁하는 교회들을 경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과 장소와 교회 규모가 다름에도 하는 짓이 비슷하다. 그들끼리는 한 번도 만나거나 의논한 적이 없는데도 참 많이 비슷하다. 치명적인 공통점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노회의 정치꾼들이 개입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집요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순하고 상대방처럼 악한 방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집에 강도가 들면 온 몸을 던져 강도를 막아내야 하는 것처럼, 정당하게 대응하여야 교회를 지켜낼 수 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연약한 성도들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약한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하고는 담임목사가 부임한 후 교회가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며 교회를 분란의 깊은 늪에 빠지게 한다.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지킬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교회가 심각한 분쟁 가운데 들어가게 되면 자신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지키고 연약한 성도들을 잘 살펴서 위로와 격려를 통해 견고하게 붙잡아 주어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단단하게 결집되어 행동한다. 그런데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외부에서는 결집된 세력들이 교회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고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더 힘을 받는다. 따라서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배 참석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잘 가져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은 아이들의 영혼이 다치는 것을 이용한다. 그래야 부모들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의 분란이 그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고 다음세대가 교회를 등지는 결과를 낳는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믿음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교회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쳐야 하고,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키고 아이들에게도 교회를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어야 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언제나 말을 먼저 하고 많이 한다. 그들은 그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일단 문제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분란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고 감출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견고하게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영들의 전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분란은 가능한 없어야 한다. 그러나 발생했다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교회를 지켜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영적 전쟁이므로 믿음으로 반드시 승리하여야 한다. 힘들고 고단하고 귀찮고 두려워 피하면 교회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에 의해 심각한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위로와 격려를 통해 함께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지켜야 한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한 교회들은 분란을 딛고 더욱 견고하게 잘 세워져 하나님께 멋지게 쓰임 받고 있다. -
김병중(Th.D) 10-30 22:40
총회활동, 목사는 교회 돈으로 장로는 자기 돈으로?
총회에 여러 목사와 장로들이 드나든다. 총회를 섬기기 위해서다. 임원, 부장, 부원 등 직책이 다양하다. 총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여러 부대비용이 든다. 차비부터 식대, 혹은 임원 등록비 등 크고 작은 돈이 든다. 이때 대부분의 목사는 교회 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그런면에서 교회가 재정을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원해도 총회 정치를 하거나 총회를 섬길 수 없다. 반면 장로는 대부분 사업을 하기에 본인 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나는 노회 서기까지만 했기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교회 규모도 크지 않았기에 총회 정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장로들도 노회나 총회 정치에 관심이 없었기에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총회 정치를 하고 있는 한 장로에게 “목사의 총회 활동 비용은 교회가 담당하고 장로의 총회 활동 비용은 본인 스스로 담당해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예전에 어느 교회에 분란이 일어났다. 담임목사와 장로 간의 알력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돈 문제였다. 장로는 자신이 총회 정치를 하는데 교회가 재정적으로 도와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회에서 거절했다. 그러자 다른 문제를 걸어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다. 어느 장로는 목사는 총회 정치를 할 때 교회 돈을 사용하는데 왜 장로는 교회 돈을 사용할 수 없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과연 총회 정치를 하는 장로를 위해서도 교회에서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가? -
김병중(Th.D) 10-23 12:50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의 폄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인들이 축하하고 있는 가운데 극우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은 대놓고 작가와 작품을 폄하하고 있다. 한강 작가가 광주 5.18과 제주 4.3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에 대해서는 좌와 우의 견해가 상극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역사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미완의 사건이다. 이해 당사자들과 후손들이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일부 보수 단체들은 “역사 왜곡 작가에게 노벨상을 줬다”고 주장하며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참으로 대단하다. 이런 일이 노벨문학상 수상 역사상 있었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좌우 이념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목사와 장로 중에도 이념에 경도된 자들이 있다. 성경이 절대 기준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성경 위에 있다. 그래서 성경도 자기 이념의 눈으로 보고 해석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경기”하는 자들을 보면서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의 모습이 측은하고 두렵다. -
김병중(Th.D) 10-23 07:09
문해력(文解力)의 위기
문해력(文解力) 또는 독해력(讀解力)은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즉 음성적 읽기를 넘어 의미적 읽기까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이 문해력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기사와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에 잘 쓴 기사가 있어 읽은 후 전문을 인용 소개한다. “쌤, 무슨 말이에요”… ‘불통’에 갇힌 교실[아이들의 문해력이 위험하다] “선생님, ‘완강하다’는 ‘완전 강하다’ 아닌가요?” 수도권 고등학교의 한 영어 교사는 최근 고교 3학년 수업에서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 ‘완강하다’가 ‘완전 강하다’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은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 “‘모색한다’는 ‘색깔을 따라 칠한다’는 뜻인가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이 교사는 “내가 영어 교사인지 국어 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한 글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글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올 2학기가 시작된 8월 중순부터 지난 6일까지 전국 초중고교 교사 2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생 조사를 병행한 결과 교사들은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최근 2~3년 새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자기표현과 소통까지 불편을 겪기에 더 문제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문해력 저하는 초등학생부터 발견된다. 조기 교육으로 한글을 뗀 덕에 글자는 술술 읽지만 단어와 문장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김민중 대구 월배초 교사는 “고학년이 북한 이탈 주민에서 ‘이탈’의 뜻을 모른다든지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재난’ 같은 상의어나 포괄어를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했다. ‘같이’를 ‘가치’로 쓰는 등 비교적 쉬운 맞춤법을 틀리거나 문장 주술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고학년도 쉽게 볼 수 있다. 교사들이 겪은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불통’ 사례는 끝이 없다. 성교육 관련 조사를 위해 ‘성적 문제’에 관해 질문이 나오면, 공부 성적을 의미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국어는 물론 수학·사회·과학 등 다른 교과 학습에도 걸림돌이다. 수학 계산 능력은 뛰어나지만 서술형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미숙 교사는 “‘대변’(마주 보는 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똥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며 “수학 개념은 단어와 직접 연결된 게 많다 보니 더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사회나 과학 교과를 가르칠 때도 기본 단어 설명에 수업 시간의 10~20분을 할애해야 한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단어를 모르면 진도를 나가기 버거워서다. ‘매질에 따른 빛의 굴절’을 설명하는데 왜 때리냐고 물어서 한참 설명하거나(초등 6학년 교사) ‘왕이 승하한다’는 표현을 몰라 역사 시험에서 오답이 속출(고교 1학년 교사)하다 보니, 교사들은 어휘 설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글의 주제를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만 글이 길어도 읽기를 피하거나 엉뚱한 주제를 적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 보호를 위해 주인공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글의 주제를 ‘자전거를 타고 싶다’로 답한다는 것이다. 황수진 인천 이음초 교사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의도를 알아내는 걸 어려워한다”며 “긴 글도 영상 요약본으로 접하니까 스스로 찾는 힘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해력이 떨어지면 표현력도 함께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독후감 숙제를 받은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요약 영상을 보거나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본 결과를 적어낸다. 초중고교에서 공통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스스로 느낀 점을 적으라고 하면 단순 표현만 나열한다. 34년차 초등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재밌다’, ‘싫다’, ‘좋다’는 정도밖에 표현을 못 한다. 글로 풀어서 쓸 능력이 안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연수 탕정중 국어 교사는 “친구들이나 부모님과도 메신저로 짧은 메시지만 주고받으니 대화를 통해 단어나 표현을 터득할 기회가 줄었다”며 “전반적으로 언어생활 자체가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저 수준 문맹률과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은 왜 하락한 걸까. 인터뷰에 응한 교사 20명 모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와 영상 매체 이용 증가’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15년차 이상 교사들은 스마트폰의 등장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극명하게 느낀다고 한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 노출이 급격히 늘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SNS)와 메신저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토론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8시간(479.6분)으로 2019년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와 유튜브 쇼츠(68.9%),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으로 이용률 2~4위가 모두 쇼트폼 콘텐츠 플랫폼이었다. 교사들은 흥미와 자극 위주의 영상 시청이 글 읽기 방해의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15초 안팎의 짧은 길이에 언어도 거의 없는 ‘릴스’와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한다. 배주호 초등교사는 “쇼트폼 콘텐츠가 많아지고 짧은 메시지로만 소통하면서 전반적인 주의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공백도 주요한 문해력 저하 요인으로 꼽힌다. 교사 20명 중 13명은 문해력 저하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화했다고 봤다. 경기도의 23년차 영어 교사는 “학교에 못 나오면서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습량이 감소했지만 상위권 아이들은 코로나 전후에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중하위권은 어휘력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교사의 절반 이상인 11명은 한자어와 어휘 교육의 감소도 문제라고 봤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개념과 용어는 한자어로 돼 있어서다. 중학교 1학년 박모군은 “국어 교과서에 ‘민초’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민트초코’인 줄 알았다”며 “처음 보는 단어 중에도 한자어로 된 단어가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어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기식 서울 면일초 교사는 “한자어가 3학년 이후 교과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정확한 뜻을 모른 채 대충 이해한다”며 “한자어 속뜻을 가르쳐 주면 이후 학습에서도 훨씬 쉽게 배운다”고 강조했다. 독서 교육이나 글쓰기 교육의 부족도 한 원인이다. 일기 쓰기가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나온 이후 주제 글쓰기 등 다른 방식의 교육을 도입하거나 독서 활동을 만든 학교들도 적지 않다. 안연규 구미 선산고 국어 교사는 “최근 문해력이 주목받자 문해력 문제를 푸는 기술을 연습하는 사교육도 생겼다”며 “학교에서 오래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김지예·김우진 기자. 2024-09-10 1면). 나는 오늘도 문해력의 퇴보를 막기 위해 재미난 유튜브를 끄고 다시 책을 집어 든다. 그러나 곧 다시 유튜브 세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 중년인 나도 이런 판이니 젊고 어린 세대야 두말하면 잔소리라 앞으로가 걱정이다. 유튜브가 세상을 좌우하고 문해력은 날로 떨어지니 똑똑한 바보가 늘어날 판이다. -
김병중(Th.D) 10-19 11:52
재야에는 숨겨진 고수가 많다...겸손하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어느 한 책을 소개하는 것을 봤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우선 책을 소개한다니 좋다. 1985년 대학에 들어가서 써클(지금은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선배들을 통해 ‘추천도서’라는 것을 받았다. ‘기독교 세계관, 역사, 철학, 인문’ 등등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굶주린 아이 젖먹듯이 그러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분야는 ‘추천 도서’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연 이 저자가 누구이며 어떤 책인가가 궁금해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다. 다음은 거기에 있는 소개 항목이다. 저자는 여르미라는 필명을 가진 16년 차 치과의사로 네이버 도서 1위 인플루언서로서 인문학 추천 도서를 냈다. 마흔을 통과하는 어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용기, 인문학의 쓸모! 사회가 시키는 대로 뚜벅뚜벅 잘 따라와 어느덧 ‘마흔’이라는 인생의 벽에 다다른 우리에게 인문학의 쓸모를 전하는 책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이 출간되었다. 마흔 무렵은 막연한 불안이 찾아오는 시기다. 반복되는 어제와 오늘에 지쳐 번아웃에 시달리기도 하고, 남은 절반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그리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문학’일까? 이 책의 저자는 16년 차 치과의사이자 연간 5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다독가, 그리고 3년째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그 ‘여르미 도서관’의 운영자다. “뼛속까지 이과 머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저자는 한창 치열하고 분주하게 살아가던 어느 순간, 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나보다 먼저 삶을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해답을 훔쳐 보고 싶었다는 것이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읽다 보니 모든 책은 인문학으로 통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 책 읽기는 ‘행복해질 자유를 얻는 일’이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는 일’이다. 인문학은 우리가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고,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되어준다. 모두가 인문학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런 책을 읽지 않으면 너무 아파서 살기 힘든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에는 《논어》, 《다산 산문선》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를 담은 책, 《총 균 쇠》, 《사피엔스》처럼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책,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알랭 드 보통의 《불안》처럼 인생이 던진 막막한 숙제 앞에 해답을 찾아가는 책 등, 마흔에게 권하는 인문학 필독서 50권을 엄선하여 실었다. 쉬운 책, 어려운 책, 얇은 책, 두꺼운 책, 오래된 고전부터 최근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책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어렵고 두껍다고 소문이 나서 아무도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 책도 일부러 넣었다”며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읽을 만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인생이라는 산의 중턱에서 숨을 가다듬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고자 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에 담긴 인문학의 위로와 용기가 큰 힘이 될 것이다. 저자는 5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1장…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를 발견하는 책 읽기 1.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2.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3. 《자기 결정》 파스칼 메르시어 4.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5. 《에밀》 장 자크 루소 6.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2장… 무력감을 느낄 때 책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 7.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8.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10.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11.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12.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13.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3장…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14.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15. 《피로사회》 한병철 16.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17.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18.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19. 《군중 심리》 귀스타브 르 봉 20.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21. 《액체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 4장… 역사와 종교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기 22.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23.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24. 《미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25. 《제국의 시대》 에릭 홉스봄 26.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27. 《팡세》 파스칼 28.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윌리엄 제임스 5장… 냉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 힘이 되는 책 읽기 29.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30.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31.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32.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33. 《바른 마음》 조너선 하이트 6장… 불안하고 흔들릴 때 마음을 다독여주는 책 읽기 34.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35.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36.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37. 《불안》 알랭 드 보통 38.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39. 《도덕경》 노자 40. 《논어》 공자 41. 《다산 산문선》 정약용 7장… 나와 타인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42.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43. 《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44. 《사람을 얻는 지혜》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 발타사르 45.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46.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47. 《심리 유형》 카를 융 48.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50. 《에디톨로지》 김정운 이중에는 읽었던 책들도 있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도 있고, 읽었는데 내용을 다 잊어버린 것들도 있다. 과연 저자는 이 책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직 의사가 매년 500권의 책을 읽고 이를 평가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니 드러나지 않은 재야의 고수다. 1년 100여권의 책을 볼까말까한 나로서는 “깨갱”이다. 이런 고수들에게 겸손하게 배워야겠다. -
김병중(Th.D) 10-18 00:01
【단상】 출판계를 살린, 작가 한강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와 『흰』을 오래전에 읽었고, 『소년이 온다』는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읽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아 책꽂이를 살펴봤는데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 댁으로 이사하면서 옥탑방으로 책들을 옮겼는데 정리하지 않았기에 자세히 찾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흰』은 뭔 소린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 또한 다시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5.18과 제주 4.3을 다룬 소설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타자 역사 왜곡이라고 외치는 극단주의자들도 간혹 튀어나오지만 모처럼 “국뽕”이 차오르는 감격과 함께 모든 국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처럼 서점가가 활기를 되찾고, 출판사와 인쇄소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한 그동안 외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작품을 번역본으로 읽다가 우리 글로 된 노벨상 수상작을 읽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던가! 독서는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에 의해 멀어지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만 해도 유튜브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신 TV는 거의 안 본다. 봐도 유튜브에 올라온 것을 골라 본다. 유튜브는 재밌다. 그래서 정신줄을 놓고 보면 귀한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다시 책을 집어 들고 보는 데 또 얼마 안 가 유튜브를 본다. 정신이 그만큼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만 해도 그런데 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젊고 어린 세대야 책과 독서가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학생들의 문해력(文解力)이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머리로 읽는 독서를 등한히 한 결과라고 본다. 국민들의 독서율이 매우 낮다. 지난 4월 18일 KBS 뉴스는 한국인의 독서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늘(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으로 전 조사가 이뤄진 2021년보다 0.6권 줄었습니다. 성인의 평균 독서 시간은 평일 18.5분, 휴일 25.0분이었고, 도서 구입량은 종이책이 1.0권, 전자책은 1.2권 등이었습니다.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종합 독서율(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비율)도 43.0%에 그쳤습니다. 이는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19∼29세)가 74.5%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68.0%, 40대가 47.9%, 60세 이상은 15.7%였습니다. 독서 장애 요인으로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았고,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다른 매체를 이용해서’가 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 11.3% 등의 순이었습니다. 소득에 따라 독서율에도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월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의 독서율은 54.7%, 월 소득 200만 원 이하의 독서율은 9.8%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성인과는 달리 학생의 독서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초·중·고등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5.8%로, 2021년 대비 4.4%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연간 종합 독서량도 36.0권으로, 성인보다 10배 넘게 많았습니다. 평균 독서 시간도 평일 82.6분, 휴일 89.0분으로 집계됐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에게는 ‘도서비’라는 것이 책정되어 있다. 나도 담임목회할 때 월 20만이었다. 그래서 원 없이 책을 사서 읽었었다. 이제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고 있다. 책을 사서 둘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기사 분류 항목에 【북토크】를 만든 것은 내가 읽은 책을 잊지 않기 위해 요약해 두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항목을 좋아해 주고, 심지어 어느 분은 여러 책을 읽어 보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독서해야만 개발되는 인지능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필수이다. 그래도 책 읽기가 싫은 사람은 참 안타깝다. 다행히 나는 아직도 독서가 즐겁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들이 너무나 많다. 죽을 때 더 많이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도 같다. 한강 작가의 책들이 노벨상 수상 직후 100만 부가 팔렸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독서 열풍이 오래 가기를 바래본다. 아직은 지하철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
김병중(Th.D) 10-12 00:41
【단상】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40년 전에 개척해 교회를 성장시키고 은퇴를 얼마 앞둔 한 목사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개척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싸돌아다니지 않고 교회를 섬길 계획 가운데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총회와 외부 활동을 많이 했던 목사였다. 얼마 전 김종혁 총회장은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에서 “어떤 분은 108회기 때 6개의 상비부에 들어가 있던데 늘 교회를 떠나 총회에 와 있는 것을 봤는데 언제 목회하는지 모르겠다”며 “교회는 줄고 해야 할 일은 많다. 총회 일을 하면서 교회가 부흥됐다는 말을 마칠 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목사는 일차적으로 목회를 위해 부름을 받았지, 총회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총회 일도 하나님의 일이기에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목사에게 있어서는 교회와 목회가 우선이다. 그런데 총회 정치에 맛이 들면 목회를 등한히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총회 일을 하다 보면 여기에 시간과 에너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자인 주님은 목동인 목사들에게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잠 27:23은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고 말씀하신다. 총회 일 하느라 너무 “싸돌아” 다녀서는 안 되겠다. 주님이 맡기신 목양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총회 일과 목회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종혁 총회장의 말처럼 “총회 일을 하면서 교회가 부흥”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총회원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고더보기 +
-
김병중(Th.D) 10-14 20:56
【기고】 109회 총회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09회 총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마쳤다. 총회에 대해 총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몇 자를 남기고자 한다. 금번 109회 총회는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기대 반으로 끝났다는 것은 1) 정년 연장, 여 강도사 인허 문제는 해결이 아닌 해법을 찾아서 결의했다는 점이고, 2) 회의 진행에서 총회장의 의사진행은 그대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가며 소통하면서 결의를 꾀하려고 했다. 그래서 찬, 반의 소통을 이루어 갔다. (이전 총회에서는 총회장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은 발언의 기회도 주지 않고 묵살하거나, 결의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볼 수 있는 여러 사례가 있다) 개혁신학적이어야 하는 우리의 삶에 정처 없음이 만연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총회의 결의가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게 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지게 했다. 그러나 우려 반은 또 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게 했다. 1)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 하였기에 우려 반이다. 우리 선배들은 오랫동안 주류와 비주류라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정치를 했다. 10여 년을 넘게 주류의 정치적 독식은 비주류의 이탈을 낳았고, 우리 총회 안에는 총회를 개혁하고 교회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기치를 걸고 교갱협이 출현되면서 교갱협 인사의 목사 부총회장 출마가 이루어지고, 교갱협 안에서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여 후보가 양립되면서 교회 영성목회의 후보를 내고 결국은 영성목회의 후보가 당선되면서 총회는 금권선거가 만연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러한 금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비뽑기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7년 전에 분열되어 나간 비주류가 ‘신학과 신앙이 같으면서도 다른 교단을 형성하였기에 이제는 합병을 하자’고 하여 교회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단 합병을 하였다. 그리고 제비뽑기 방식에서 절충형 제비뽑기 방식으로, 다시 직접선거로 선거방식이 바뀌면서 영성목회에 가입한 분들이 총회장이 되었다. 사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교갱협에 속한 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은 108회이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회기에 교갱협에 속한 목사가 총회장이 되지는 못하였다. 교갱협과 영성목회의 힘겨루기(?)는 109 회기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왜냐하면 합동포럼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전면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려 반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은 항상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총회의 헌의와 처리에 대한 우려이다. 한쪽에서는 잘 준비된 총회라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완전히 기획된 총회라는 평가도 한다. 내가 봤을 때는 총회 자체의 회의와 결의는 대체로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점수로 보면 B 학점이나 C 학점 정도는 되는 총회였다. 그러면서도 우려 반이 되는 것은 109회 총회가 한 집단과 단체에 카르텔화 될 소지가 농후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특보체제가 잘 운영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특보들이 총회장의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이 입이 되어 성경과 헌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말하고 시행하려고 한다면 109회 총회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거룩한 교회로 항해하지 못하고, 거룩한 산을 오르겠다고 돛대를 부러뜨려서 등산용 지팡이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총회장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할 때다. 지혜가 없으면 어떤 지혜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이번 총회는 그 어느 때보다 증경총회장과 부총회장의 발언이 많았다. 원로들의 지혜와 지식이 어려운 문제일수록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서는 어른들은 발언을 자제하고 또 필요에 따라 요청했을 때와 잘못 결의하여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발언하여 후배들에게 깨우침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우려가 된다. 왜냐하면 어른들의 발언은 조언이나 권고이어야 하지 참견이나 관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계속하여 어른 대접으로 발언을 주어서 결정해야 할 총대들의 발언에는 조금 소홀히 했다. 만일 직무상의 결정에 따른 결의를 다시 묻고 조언을 구한다면 총회는 개혁되지 않고 구태가 만연되게 될까 우려된다. 109회 총회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리추얼이 종말을 고할 것인지, 아니면 개혁되고 갱신되어서 리추얼이 힘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분기점에 있다. 항상 우리의 삶인 리추얼은 관습과 전통이라는 것으로 드러난다. 사실 관습과 전통은 겉으로는 동일하게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피상적 유사성은 우리의 인습주의 즉 전통을 해롭게 한다. 전통이 되어버린 관습, 특히 성경의 해석은 진짜인 정통을 죽이고 현실에서 숨통마저 끊어 놓는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여성 강도권에 대한 허용 결의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은 살아 있고 활동적이지만 그 전통 속에 있는 관습은 항상 수동적임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이제는 관습이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나서 전통을 이해하고 신학적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역사적으로 전통 속에 관습이 되어 버린 전통은 어느 순간 정통의 자리에서 내려와 관습이 되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판에 박힌 체 일상이 되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제109회 총회는 전통 속에 관습으로서 수동적으로 이해되는 여성의 역할을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려고 노력하며 고군분투하려는 모습이 총대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신학의 전통은 정통의 자리에서 관습이 되어 물러서게 될 때는 항상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각자가 책임을 지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상 지금의 전통이 된 정통은 한때는 분명 혁신이었다. 그런데도 전통이 되어 버린 정통은 혁신을 아니, 개혁을 마귀가 예수님을 싫어하듯 싫어한다. 혁신과 개혁이 정통이 되고 그 정통이 관습이 되면 우리들의 삶은 매너리즘의 늪에 빠지고 결국은 전통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 병적인 공동체적 반응을 하며 소통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되고 전통파와 개혁파가 대립하며 분열하고 적대시하게 된다. 그리고 어떠한 견해든지 우리들의 삶을 안정화하지 못한다. 금번 제109회 총회는 신학적 진영논리에 빠지지는 아니했지만 결국은 주일성수의 문제와 여 강도사 인허의 문제는 벌써 진영논리로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장신도 아닌 기장의 신학으로 이야기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다. 진영의 신학(조직신학)이 아닌 성경(성경신학)으로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결국은 진영의 논리로 서로가 무장하게 될 때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세속화될 뿐 아니라, 세속적인 삶 속에서 의미도 뜻도 모른 체 주술화 되고 마법화 된다. 진영의 논리로 여 강도사 인허의 문제를, 주일성수의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신학의 문제로 바라보고 신앙적인 답을 찾아가야 한다. 이러한 기로에 놓여 있는 총회가 금번 총회이다. 그래서 우려 반 기대 반이다. 결국 기대도 우려도 다 지나갈 것이지만 그래도 기대도 해보고 우려도 해본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나 타당성을 그리고 적합성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고 둔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깨닫지 못하고 정체성이 변하지 않는다. 제109회 총회에서는 신학적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변해야 된다는 기대가 총대들 속에 있음을 감지했다. 기대와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 15회 이상을 총대로 참석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은 우려도 기대도 다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총회가 그리고 그 결의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려는 아닌 것 같아서, 기대는 그럴 것 같아서이다. -
김병중(Th.D) 09-18 14:07
【기고】 정년제, 과연 성경적인가?
다음은 원 철 목사의 정년제 폐지를 주장하는 기고문이다. 본 기고는 빛과소금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성경말씀을 기본바탕으로 세워진 보수교단이며,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세워진 교단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 원리로 해서 가르치고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늘 염려하는 것들이 있다. 과연 우리 교단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이라는 것을 앞세워 정치와 사회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이 신앙의 기초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가슴에 품고 살려고 성도들도 몸부림치며, 목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목회하며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이 우리 교단에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고 몹시 아프다. 교회와 기독교를 보는 사회에서의 시선 때문에 정년제를 사수해야 하거나 정년제를 지금보다 5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습제도가 마치 죄인인 것처럼 보는 것 역시 사회시선을 의식한 것 같다. 이유는 사회가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이다. 심지어 정년을 연장하거나 세습을 하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를 비난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천주교는 75세 정년이 있으나 자율에 맡겨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은퇴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천주교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불교에도 아예 정년이 없는데도 불교를 비난하는 소리나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히 기독교만 정년제를 폐지하면 사회에서 비난할 것이라고 이유를 댄다. 왜 그럴까? 언제부터 사회시선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는지 교단이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의 판단의 기준이나 근본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것이다. 목회자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왔다. 이러한 신앙의 선배들의 숭고한 신앙을 본받아 지금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해 왔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선배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분들의 영향으로 우리 교단이 보수교단이라는 명분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신앙이 좋아서 합동이라는 교단이 태어났고 이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에서는 정년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제108회 총회에서 박00 목사는 정년제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발언하기를 정년제 연장을 해서는 안 되며 40대 50대의 80%의 젊은 목사들이 담임목사 근처도 못 가고 있다며 지금 400~500여명이 담임목사 되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은 담임목사도 한번 못하고 은퇴해야할 형편”이라며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과 보수 신학은 어디로 가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인간적인 관점과 사회적인 관점에서만 주장하고 시도하려고 하는가? 우리의 사역과 사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사역인지 아니면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젊은 세대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지 깊이 성찰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는(Baby Boom Generation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부터 1964년까지 베이비붐이 일어난 시기에 출생한 세대를 말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기도하면서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주여 이 몸 바쳐 주의 일을 하렵니다”라고 찬양하면서 수 많은 목회자들이 빈곤한 살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지하에 삭월세를 얻고 칸을 막아 살림을 하면서,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렇게 베이비붐 세대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기독교 부흥이 일어났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40대, 50대, 80%의 젊은 목사들은, 개척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기성세대가 70세가 되어 은퇴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선배들이 열심히 사역하여 이루어 놓은 부흥된 교회에 청빙 받아 안전하게 목회하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한 예로, 대형교회에 담임목사 청빙광고가 나오면, 100~200여통의 이력서가 접수된다고 한다. 중소교회가 청빙광고 하면, 생활비를 얼마 주느냐? 교인은 몇 명이냐? 사택은 몇 평짜리 아파트를 주느냐? 상여금은 얼마나 주느냐? 자가용은 제공하느냐? 월요일은 쉬느냐? 월요일에 출근하면 출근 수당은 주느냐? 새벽기도회에와 금요기도회를 하면 수당을 얼마나 주느냐? 부터 묻는다고 한다. 반면 시골교회가 청빙광고 하면 아예 이력서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교회와 소형교회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담임목사를 모시지 못하여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중소도시에서도 부교역자를 구하지 못하여 힘들다고 한다.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도 이대로 가면 2026년부터 목회자가 모자라는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교회들도 교육전도사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은 적은데 베이비붐 세대가 열정적으로 개척하며 교회를 세웠던 분들이 앞으로 10년동안 계속 은퇴하시기 때문이다. 지방도시나 시골에는 부교역자가 없어서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담임목사 타령이나하고 있는 세대를 볼 때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박00 목사가 말한 것처럼 기성세대 목회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듣기 좋은 말로서 군중들의 인기를 모으는 이야기로 남아서는 안 된다. 그 분은 역사학자로 알고 있는데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도시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유학 가는 신학생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유학파들이 40~50대에 주를 이루고 있다. 유학 다녀온 분들 가운데 신학을 더 깊이 연구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들고 교회를 개척하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도시의 기성교회의 후임자로 가려고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복음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심으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가서 성경과 신학을 배우고,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더 배워서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하기로 다짐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꼭 큰 교회의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대형교회 후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베이비붐 세대가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대안인가? 묻고 싶다. 제104회 총회에서 우리 대전중앙노회가 ‘정년제 연구위원회’를 두어 연구해서 보고하기로 제안하였다. 이를 총회가 받아들였고 결의해 주어 2년동안 정년제연구위원회(위원장 고영기 목사)가 조직되었고 신학자 4분에게 의뢰하여 그분들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를 가진 바 있었다. 2020년 4월 21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정년연구를 위한 공청회”에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자 서창원 교수, 실천신학자 양현표 교수, 구약신학자 이희성 교수 3분과 칼빈대학교 총장 김근수 교수가 그동안 연구한 것들을 발표하였다. 4분 중에, 한 분만 조심스럽게 사회의 관점이 있음으로 정년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73세로 연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고 서창원 교수, 이희성 교수, 김근수 교수는 성경적인 근거와 신학적인 근거를 들어 정년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보수교단들을 조사하여 본 결과 미국교단들도 정년제가 거의 없음을 보고하였다. 제108회기 신학부주최 대전중부지역 ‘교회와 신학세미나’에서 김길성 교수는 정년제에 대하여 ‘교회에는 2가지 직분이 있는데, 하나는 ’항존직‘으로서 영원히 있는 것으로서 목사나 장로가 은퇴하고 사역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목사를 목사로 장로를 장로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무’가 있는데 시무는 기간을 정하여 사역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총회에서 시무연한을 정해 놓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70년 사역을 하고 은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고 싶다. 시무 연한이 과연 성경적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공동체이다. 70세가 되면 사역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성경적으로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탕으로 보수를 지향하고 있으며 칼빈의 신학사상과 개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헌법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디로 가고 인간의 사상들이 지배하고 있는가? 헌법이 우선인가? 아니면 성경이 우선인가? 성경이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면 멈추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교단이 지향하는 신학정체성이 아닌가? 신학정체성을 부르짖고는 있으나 과연 신학정체성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왜 장로들은 연합하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정년제 연장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하는가? 그 이유를 나이가 들면 너무 시대적으로 낡은 생각과 열정이 사라져서 교회 부흥에 도움이 안 되므로 정년제를 65세로 하향해서라도 빨리 젊은 목회자로 담임목사를 교체하여야 교회가 신선해지고 젊어지고 부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성경적이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장로들이 이런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목사들이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결과이므로 먼저 목사들이 회개하여야 한다. 성경에 어디에 70세가 되었으니 은퇴하라는 내용이 있는가? 필자가 제안하는 ‘정년제를 폐지해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교단이 세워진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확실하게 믿고자 세워진 교단이다. 신본주의(神本主義)이며 칼빈의 신학사상을 따르고 있으며 개혁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정치 제13장 제3조 장로. 집사 임직서약 1항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으로 믿느뇨?” 이다. 구약에 아브라함을 가르켜 선지자라고 했고 모세 역시 선지자라고 했으며 120세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무엘선지자 역시 죽기까지 사역을 하였다. 구약의 제사장 예언자 대선지자 소선지자 사사 왕 모두 정년이 없는 종신직이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12제자들에게도 정년이 없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사역하였다.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 7집사들도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은사로 사역을 주실 때 사도 목사 교사들에게도 정년이 없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독 장로 집사를 임명할 때에도 정년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사도요한은 오히려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하고 96세에 순교하였다. 모든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직분에 맞게 사역을 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던 사가랴제사장 역시 늙었으나(눅 1:8~9, 18) 하나님께서 맡겨준 성전에서의 사역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오늘날의 목사와는 사역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역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왜 성경에서는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을 다하고 맡겨진 사역에 대해서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 2: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행 20: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사명을 선언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역자들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정년제를 시행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 디모데전서 3장에도 장로와 집사를 선발하는 기준에도 정년 규정이 없다. 항존직이란, 옛 헌법 정치 제4장 제4조 1항에 위임목사는 “한 지교회나 1구역(4지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終身)토록 시무한다.”고 되어 있다. 항존직(恒存職)이라는 말은 자신이 사직하거나 면직되지 않는 한 종신(終身)토록 시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창원 교수는 정년제법을 ‘제정하는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비신학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실천신학 양현표 교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주제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났으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건강지수가 현격히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정년제는 성경과 헌법 정신에 어긋났다’고 지적했다. 지금 현행대로 가면, 2029년부터 목회자의 수가 179명이 모자라며 교회수를 현재대로 유지하고 신학교 지원자들이 감소하는 경우 당장 3년 후인 2027년부터 목사의 수가 140명이 모자라며 2035년에는 무려 2,960명이 모자랄 것이라고 통계를 통하여 전망하였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부교역자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우며 각 노회마다 교회를 폐교하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전국신학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총신도 2021학년부터 정원미달이 되었으나 박성규총장이 열정적으로 홍보한 결과 미달은 겨우 면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2029년에는 100명정도 입학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는 성장이 퇴보하고 있으며 지금은 매년 3천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으며 교인 수가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박성규 총장 역시 신대원 입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시점에서 수요와 공급의 미달로 심각한 현실로 가다오고 있다고 하였으며 유럽의 뒤를 따라 문을 닫는 교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희성 교수는 우리 교단 헌법에는 1992년 제77회총회에서 정년제를 시행했으나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에서는 “목회자의 정년을 교단에서 규정하지 않고 개 교회에 일임하여 교회에서 정하는 것으로 한다”고 보고하였다. 대신교단은 현행 정년제가 성경적이 아님으로 성경말씀에 준하여 시행하기로 결의하고 단호하게 정년제를 폐지하였다. 개혁교단에서도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교단으로서 당연하게 정년제가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개혁, 대신을 비롯한 독립교단들은 일찍이 정년제를 폐지하였다. 이희성 교수와 김근수 교수가 미국장로교 10개 보수교단을 조사한 결과 9개 교단이 정년이 없음을 발표했으며 초창기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와 교회들을 세우고, 우리 총회를 세우고 우리 교단 헌법을 만들 때에도 미국교회의 성경적인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정년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후 우리 총회는 1992년 제77회 총회에서부터 정년제를 시행하였다. 미국 R.C.A.교단 만이 70세 정년이 있지만 “70세가 된 목사나 은퇴한 목사라할지라도 교회와의 계약에 의하여 위임의 형식으로 사역을 지속할 수 있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미국 남침례교회는 ‘목회자의 청빙에서 은퇴까지 전적으로 개교회의 특성과 자율성에 일임하기에 교단적으로 목사에 대한 헌법 규정이 없으며 목사 시무정년은 종신토록 시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년제 폐지를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은 대부분 정년제를 폐지하면 사회적인 관점에서 지탄받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필자가 정치를 잘 하시는 목사님에게 고견을 들으려고 정년제는 성경적이 아님으로 정년제를 폐지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목사님은 정치를 모르는구먼” 하면서 “정치적으로 안돼”하는 것이다. CTV에서 2주전에 “목사 장로 정년연장 필요한가?” 제109회 총회 특집 토론에서 함성익 목사와 박창식 목사가 패널로 나와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이 토론을 보면서 내가 왜 총회에 있어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왜 이분들은 통계를 중요시하고 사회시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목사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는 경청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야기는 왜 한 마디도 안하는가? 이들이 우리 교단의 대표하는 목사들이 맞는가?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신학정체성을 주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울 좋은 개살구와 같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대상은 하나님이고 성경이다. 우리의 헌법을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사회적인 것에 기준을 삼으면 안 된다. 지금의 우리 헌법은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70세 정년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렇다고 헌법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과 바탕으로 헌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성경말씀에 비추어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성경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성경적이요 개혁주의 정신에 부합한 것이다. 교회법을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과 성경말씀을 믿는 신본주의(神本主義)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전락하는 것으로서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모세가 성경을 기록했던 5500여년 전이나 사도들과 바울이 성경을 썼던 2000여년 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해서는 안 된다. 창조시대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와 기준을 따라야지 떠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정년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보수를 지향하는 신본주의 우리 교단이 단호하게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에 성경적인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 필자는 우리 교단 목사 장로들이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하였구나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하나님께서 배설한 천국잔치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상급받는 신실한 사명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바라기는 우리 총회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성경적이요, 보수적이며 개혁주의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매년 계속되는 정년제 폐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경으로 바로 세워지기까지는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정년연장이 아니라 폐지하여야 한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신본주의도 아니며 칼빈주의도 아니고 보수라는 말과 개혁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왜 해마다 수백 교회가 우리 교단을 탈퇴하고 떠나는지 생각해보라? 이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한다.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왜 눈치만 보고 있는가? 성경적으로 그 답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단이 정체성도 확립되고 세계 교단과 교회의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신학교도 본래의 신본주의 모습으로 살아날 것이다. 제109회 총회에서 현명하게 결단해 주기를 바란다. -
김병중(Th.D) 10-03 10:16
【기고】여성 안수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 안타까운 108회 총회의 갈지(之)자 행보 이번 108회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위원회는 여성들에게도 강도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안하였고, 이를 이의 없이 총회는 받아들였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총회가 획기적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진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총회 마지막 날 번복되었다. 없던 일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예 여성들이 안수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다른 이름의 직책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목사 안수는 아예 가능하지 않도록 못박아 버리는 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더더욱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교단을 떠나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러한 결정이 아쉬운 것은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 교단의 현행 헌법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안수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종종 여성안수를 주장하려거든 그런 교단으로 떠나가라고 겁박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며, 그 어느 것도(교단헌법과 교리교과서 등등)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못하기에, 모든 것이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라면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서 반박해야지, 교단 헌법으로 겁박한다면 너무 궁색해 보일 뿐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최고의 기준이며, 다른 모든 것은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성경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무오(無誤)한 것은 없으며, 실제로 우리 교단의 헌법은 여러 번 수정을 해왔다. 그리고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안에 있는 행위언약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질문이 들어왔을 때, 왜 신앙고백서를 따르지 않느냐고 정죄하지 않고 성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안수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라고 폄하해 버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서는 안 되고,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라고 하는 원칙은 아주 소중하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라고 하는 데까지 가야 하고, 성경이 금한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문제는 과연 여성에게 안수하는 문제가 시대 조류에 편승한 것인가이다. 여성에게 안수하자는 주장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과거에는 과거라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여성에게 안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성경은 분명하게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고 되어 있다. 그렇게 성경이 금하고 있는데, 여성 안수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즉 만일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믿는다면, 지금 당장 여성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역들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구역장도 안 되고, 세미나 강사로 세워서도 안되고, 교사도 할 수 없다. 만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 내에서 성직자로 세워질 수 없는 근거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로”(tota scriptura)의 원칙 때문이다. 성경 구절 한두 구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로의 원칙이 무너지고 성경의 한두 구절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모압과 암몬 민족은 하나님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들만 보면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 위배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 보면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모압 여인인 룻도 하나님의 회중 속으로 들어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경 한두 구절만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사역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점 때문에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는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가장 진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와 훌다를 지도자와 선지자로 세웠고,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내에서 예언(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치는 것)하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머리에 두건만 쓴다면 예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결국 성취시켰다. 즉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순절 때 이미 성취되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종종 예언과 가르침은 다르다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4:31에서는 예언의 목적이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12제자 중에 여성을 한 명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성도 12 제자 가운데 포함시키셨더라면 논란 자체가 정리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남자들만 제자로 세우셨다는 것이 여성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12제자 중에는 사마리아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더 나아가 이방인도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오로지 유대인만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한국 사람이 성직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되는 것일까? 개혁주의의 원조격인 칼뱅도 오로지 남자들만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칼뱅은 아주 뛰어난 신학자이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칼뱅의 입장이 모두 다 100%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뱅은 성경의 가르침이 비추어보아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우리가 칼뱅을 우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항상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면 결국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많다.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교단들이 주로 여성 안수를 시행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단이 모두가 다 자유주의화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CRC교단, 고신교단의 모교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화란개혁교회(31조파)도 여성 안수를 수용했다. 또한 한국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보수교단인 백석 교단과 여러 개혁 장로교단들도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철저하게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그 동안 이런 식의 반론은 참 많이 있었다. 주5일제 시행하면, CCM 복음송을 받아들이면, 외국과 무역을 하게 되면,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님이 주신 머리카락을 자르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인가일 것이다. 물론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미국의 PCA, OPC 교단과 같은 곳에서도 여성 안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PCA, OPC 교단도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보면,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던 것이 당시에 있었던 일시적인 명령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사역하는 것이 막혀 있었다는 사실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그 해석이 잘못될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천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가 순 엉터리일 뿐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셨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불변의 원칙은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비추어보아서 그동안의 전통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 된다(마 15:3).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 사역자가 있었고, 유니아라는 여성(롬 16:7)도 12 사도는 아니었지만 바나바와 같은 또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사도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의 입이라고 알려진 요한 크리소스톰(350-407)은 유니아에 대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인데, 그 가운데 뛰어난 자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영예의 노래인가!”라고 했다. 장로나 집사로 세우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장로의 자격에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한다(딛 1:6)는 구절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자녀가 없다고 해서 목사나 장로 임직의 결격 사유로 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자녀를 두었을 경우에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만일 그가 결혼한 남자라면”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을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구절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 교단 내에 여성 안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초대 교회 할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서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3. 현행 법으로도 강도사를 줄 수는 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는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잘 일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역을 막고 소수가 가진 그 힘을 행사하는 공동체이다. 광야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판권을 천부장, 백부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교단도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우선 총회는 여성 사역자들이 강도사 인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현행 헌법도 여성이 강도사가 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편 제14장에 의하면, 총회가 신학 졸업생을 고시하여 노회가 강도사로 인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총회가 결의하고 받아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사실 108회 총회 전에 이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었다. 108회 총회의 결정이 뒤로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목사 안수의 문제는 총회가 좀 더 심도 있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해야 한다. 그 옛날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는 반드시 할례를 시행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가져온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면서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을 통해 구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교단 내에는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존재한다. 세미나, 토론회, 전문 연구 등을 병행하는 것을 통해, 서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이웃 교단인 백석은 발 빠르게 여성 안수를 허용했고, 엄청난 교단적 발전과 신학교의 발전이 있었다. 사실 많은 여성 사역자들을 이웃 교단에 빼앗긴 것도 사실이다. -
김병중(Th.D) 05-15 08:16
동네작은학교 봄학기를 마치고
2023년도 다문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네작은학교 봄학기를 마쳤습니다. 초등부4-6학년 아이들이 한학기 동안 노래 교실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배운다는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아이들이 꿈을 꾸고 교사인 우리들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그런 학교를 꿈꾸며 한학기를 달려 왔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먼 타국에서 한국 땅을 향해 온 어머니들이 낳은, 다문화 자녀라 불리우는 이 아이들이 꿈을 노래하는 모습에서 룻도 생각나고 나오미도 생각 났습니다. 바울이 키운 영적 아들 디모데도 떠올랐습니다. 그도 이방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출신이었죠. 이류 취급 받고, 제국에서는 주변인 처럼 살아간 저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꿈을 꾸듯 달려 왔습니다. 살아 있음을 느끼며, 없는 길을 만들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달의 방학을 보내고 여름학기를 또 시작 합니다.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이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아이들 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세요. -
김병중(Th.D) 05-15 08:04
아버지 자리
"어버이날 선물" 어버이날인 오늘 막내딸은 늦었다고 아침에 학교태워달라고 눈치 줘서 엄마가 태워줬고 집으로 올쯤 냉면 먹고 싶다해서 아빠가 삶아 먹게했더니 깜짝 이벤트 해 주었습니다. 역삼동까지 가서 사온 어버이날 맞춤케익이라 하면서요. 노래를 듣는데 저는 자꾸 천국가신 어무이 생각나서 울컥했습니다 “아버지 자리” 1. 나는 가난한 농부의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45세였다. 줄줄이 딸만 낳다가 느지막하게 형과 나를 3년 터울로 낳았던 아버지는 그제야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다. 늦게 낳은 막내아들이 결혼 할 때 아버지는 이미 70대 중반이셨다. 워낙 나이차가 많다보니 내게 아버지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같았다. 그 시대 아버지상은 무뚝뚝하고 엄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밥상 한번쯤은 마당으로 던졌던 것을 자랑삼아 말하던 시대였다. 우리 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 아버지에게서 단 한 번도 따뜻함, 다정함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아버지는 가까이 하기에는 늘 먼데 계신 분이셨다. 배운 게 없고, 가진 것이 없던 아버지는 고단한 삶 속에서 종종 인상 쓰셨고, 걱정과 염려를 입에 달고 사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오래된 옛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물론 농협 대출 받았다. 대출 상품은 20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으면 되는 농민들에게 좋은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 집에 사는 기쁨보다 빚으로 인한 염려가 더 크셨다. 일찍부터 철이 든 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인할 수 없는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염려가 많으시고, 돈이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아버지의 속을 꽤나 썩인 형과는 달리 나는 착한 아이 코스프레 길을 선택해 속 썩인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어릴 때가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착하다’였다. 그때 형성된 착한 아이 이미지는 보름 전, 40년 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 세월이 흘러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 커리어도 어느 듯 30년이 가까워진다. 어느 날, 대학 다니는 막내딸이 용돈을 좀 달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선뜩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는데, 속 깊은 곳에서 울컥거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냐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 상이 내 모습 속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공납금이나 학용품 사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면 언제나 엄마가 대신하여 옆집으로 달려가 돈을 꿔와 주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난했고, 고단한 인생길을 사셨다. 하지만 언제나 정직하셨고 진실하셨다. 경우를 벗어난 행동과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셨다. 더군다나 인생 후반에는 믿음에도 큰 진전을 가지면서 새벽을 깨우며 항상 기도하셨다. 지금도 새벽예배 후에 소죽을 쇠면서 콧노래로 흥얼거렸던 찬송의 소리가 들린다. ♪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없이 살아 온지도 벌써 21년째다. 누나들은 내가 나이가 먹어갈수록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내가 나를 봐도 얼굴이 길어지면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요즘 아내가 나를 보면서 ‘미’라고 소리 내라고 한다. ‘미’라고 소리 내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상이 되기 때문이다. 인상 쓰신 아버지상보다 웃는 아버지상이 보기 좋다. 3. 언제부턴가 엄혹한 사회의 톱니바퀴에 끼인 채 제자리를 맴돌며 점점 주변을 서성이는 아버지들의 늘어나고 있다. 자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표현할 줄 몰라 함께 있으면 서먹해지는 아버지, 가족들의 대화에 당최 끼지 못해 가정에서조차도 왕따 되어가는 아버지, 아내 없인 금방 폐인이 되어가는 아버지. 그래서일까? 자식들 입장에서 어머니보다 멀리 계신 분이 아버지다. 5월만 되면 평소보다 더 아버지가 그립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다정다감하지 못한 못난 아들이었다. 또한 딸들에게도 친근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어제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친구 목사를 보면서 아버지의 자리를 생각했다. 멋진 아버지로, 친근하면서 웃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은 삶을 살기를 다짐해본다. -
김병중(Th.D) 05-15 07:49
밀린 숙제를 하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한 지 꼭 12,000일 되는 날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그동안 바쁜 관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나러 가려고 길을 나섰다. 먼저 2012년 7월 13일 금요일, 신경직 목사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벌써 올해로 만 11년 하고도 10개월째, 그리고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김선호 목사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지 만 6년하고도 2개월째, 두 친구를 보고 싶어서 각각 오산리에 있는 크리스천 메모리얼 파크와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는 청아공원을 찾았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신경직 목사를 보면서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묵상하고 아내와 사진 한장을 찍고, 나온 후 영산수련원에 새로 생긴 "아리아1968"이라고 하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점심겸 커피한 잔과 빵으로 점심을 먹은 후 많이 변한 영산수련원과 오산리 최자실 기념 금식 기도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트레킹 길로 한 바퀴 도는데 약 30분 정도 걸리더라). 그 옛날 오산리 최자실 기념 금식기도원에서 내가 먼저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후 이듬해 사랑하는 아내가 이곳 최자실 기념금식기도원에서 40일 금식기도를 끝낸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많이 변한 최자실 기념 금식기도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아공원으로 향했다. 청아공원에 도착하여 예전대로 기독교관 1층(내 느낌엔 지하 2층 같은 느낌이지만, 그곳에서는 1층이라고 부르더라)에 위치한 <은혜홀 파> 방으로 들어갔더니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김선호 목사가 보이질 않았다. 결국 사무처로 문의 후 3층의 <믿음홀 다>방으로 아들 예찬 군이 작년에(5주기 때) 옮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음홀 다 A1-02 > 김선호 목사가 새롭게 자리잡고 위치한 방이다. 김선호 목사의 사진을 바라보며, 잠시 옛 추억을 생각하다가 묵상기도를 한 후 아내와 간단하게 사진 한 장을 찍고 청아공원 주변을 잠시 걸었다. 누가 가보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요, 꼭 와야만 했던 것도 아니었으나, 마음속에 이 두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건, 참으로 무섭다. 끊을래야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인연인 것 같다. 특히 "친구"라는 관계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차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아내에게 이 두 친구와 지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잠시 이야기 해 주었다. 언젠간 나도 먼저 간 두 친구처럼 저렇게 추모공원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 있겠지...그때 잊지 않고 날 찾아줄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악착같이 친구들을 다 떠나보내고 오래 살아 남아야겠지...먼저 간 두 친구는 참 배짱도 좋다. 그렇게 먼저 가 놓고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숙제를 주는 것인가... 오늘 나는 두 친구가 내게 준 숙제를 처리하고 새로운 한 주간을 준비하러 집으로 향한다. -
김병중(Th.D) 05-07 22:55
『생활동반자법』, 무엇이 문제인가?
2023년 4월 26일에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했다. 국회의원이란 그 사람 자체가 곧 입법기관이며 법을 잘 만들라고 국회의원 본인과 보좌관에게 연간 약 8억 원의 세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세비 지원과 함께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한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 마땅한 책무이다. 그런데 이번에 용혜인이 발의한 법안을 들여다보면 나라를 위한 법이 아니라 나라를 해치고 가정을 파괴하며 우리의 미래 세대를 망치는 악하기가 이를 데 없는 나쁜 법이다. 용혜인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이란 도대체 내용이 무엇이며 그 속에 어떤 문제점이 들어있길래 그렇게 심각하단 말인가? 그리고 용혜인은 국회의원으로서 도대체 왜 그런 악법을 발의했단 말인가? “여기 새로운 가족이 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용혜인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의 정식 명칭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인데 해당 법안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권인숙, 김두관, 김한규, 유정주, 이수진 의원,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 공동발의자들 가운데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사람이며 그 법안은 지금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이처럼 그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일에 있어서 다 한통속이다. 『생활동반자법』의 골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성인 2명이 합의해서 동반자 관계가 되면 이들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것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 두 사람이 2021년에 각각 대표 발의했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과 큰 틀에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역시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 개념을 삭제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다수 국민의 반대에 막혀 현재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용혜인이 주장하는 가족의 권리를 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든지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은 결혼하면 된다. 결혼식까지도 필요 없고 단순히 혼인신고만 해도 된다. 만일 결혼과 혼인신고 하는 것이 싫으면 혼자 살든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같이 살면 된다. 그런데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것은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의 개념을 파괴하는 것이며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이것은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가족 개념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결혼제도를 파괴하려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용혜인은 왜 그런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또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까지 합세해서 공동 발의했을까? 용혜인이라는 사람을 따로 연구해보지 않았지만 이런 법안을 발의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젠더 이데올로기, 성 혁명 세력의 일원이거나 혹은 그들의 지지와 사주를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성 혁명 세력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신마르크스주의의 뿌리에서 나온 해체주의자들로서 국가와 교회와 가정이라는 기본 질서를 허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을 허무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데 성 혁명 세력이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정상 가족 신화”라는 표현이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가족 개념은 타파해야 할 “신화” 혹은 “미신”이다. 그래서 가정을 생명처럼 지키는 교회와 성경은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 성 혁명 세력은 집요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 해체를 추진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들은 우리나라에 이미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23개나 존재함에도 동성애 합법화를 포함한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저들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통해서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가정을 허물려는 자들이다. 저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조기 성애화하고 유년기부터 성적으로 문란하게 만듦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망치려는 자들이다. 그래서 5년마다 새로 만드는 교과과정에 성 혁명 사상을 집어넣으려고 하다가 우리에게 발각되었고 우리가 사생결단 투쟁해서 바로잡아놓은 상태이다. 금번에 용혜인이 개인적 소신으로 발의했는지 혹은 성 혁명 세력의 지침에 따라 누군가 만들어준 법안에 이름만 올렸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사실이 어떠하든지 『생활동반자법』은 절대로 제정되어서는 안 되는 악법이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에 이런 법이 제정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하나님 편에 서서 이를 막아낼 것이다. (※ 해당 법안은 용혜인 의원이 국회 소통관에서 발의한다고 발표했고 KBS와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했으나 막상 의안현황에는 검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적절한 발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다.) -
김병중(Th.D) 04-26 10:52
가짜목사 전성시대
가짜목사 전성시대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사람이 감옥에서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믿었고, 목사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하다. 어쩌면 복음의 능력이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생한 증거일 수도 있다. 한때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세상의 영화를 다 버리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한때 불교의 스님이었던 분이 개종하여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아주 흥미롭다. 그런 사람들은 당장 인기리에 초청되기도 한다. 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은 교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회심이 진실한 것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믿음은 시간의 검증이 필요하기에, 디모데전서 3:6에서는 직분자를 세울 때 “새로 입교한 자”를 함부로 세우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성급하게 목사가 되는 길이 열려 있다. 그렇게 양산된 목사들이 사실은 복음의 장애물이 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목사가 되었다던 그 사람은 여전히 도둑질을 멈추지 않는 경우가 있고, 목사가 되었다는 그 연예인은 불륜에 폭력에 온갖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목사가 되었다고 하고, 설교를 하기도 하고, 선교 사역을 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도 하는데, 그런데 그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일까? 바리새인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았지만 주님께서는 가짜 신앙이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 주변에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가짜 성도 가짜 목사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털을 입은 이리인지 분별하라고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니까 조심하여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사실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돈과 탐욕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하나님이란 그저 이 땅에서 탐욕을 추구하고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 빵을 먹고 배불렀던 무리들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사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가짜 목사들도 그렇게 믿을 수는 있다. 그래서 분별해야 한다. 가짜 목사의 비리와 행태를 종종 옹호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같은 영적인 식구니까 감싸고 돌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도 똑같은 부류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교회는 거룩성을 추구해야 한다(고전 5:11-13). 종교개혁자들은 참된 교회의 표지 중의 하나로 권징을 들었는데, 이는 거룩성을 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시대는 가짜 목사 전성시대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주님께서 그럴 것이라고 예언해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해야 한다.
책소개더보기 +
-
김병중(Th.D) 10-30 10:53
【북토크】 국어 교육의 문제...血의 淚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최초 근대소설이 ‘血의 淚’라고 배웠다. 풀이하면 ‘피눈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최근 봤다. 약 40여년의 간격이다. 한숨이 나온다. 血의 淚가 나온다. 왜 학교에서는 이 소설에 대해 설명만 하고 직접 읽게 하지는 않았는가? 나름 재밌게 읽었다. 일제치하에서 일본,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게 된 옥련이라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소설에 대해 가르치지 말고 소설을 읽게하고, 시에 대해 가르치지 말고 시를 읽게하면 소설이나 시에 대해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지나보니 참 한심한 학교 교육이었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글쎄다. 옥련이는 아무리 조선 계집아이이나 학문도 있고 개명한 생각도 있고, 동서양으로 다니면서 문견이 높은지라. 서슴지 아니하고 혼인 언론 대답을 하는데, 구씨의 소청이 있으니, 그 소청인즉 옥련이가 구씨와 같이 몇 해든지 공부를 더 힘써 하여 학문이 유여한 후에 고국에 돌아가서 결혼하고, 옥련이는 조선 부인 교육을 맡아 하기를 청하는 유지한 말이라. 옥련이가 구씨의 권하는 말을 듣고 조선 부인 교육할 마음이 간절하여 구씨와 혼인 언약을 맺으니,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이요, 옥련이는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 부인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압제받지 말고 남자와 동등권리를 찾게 하며, 또 부인도 나라에 유익한 백성이 되고 사회상에 명예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할 마음이라. 세상에 제 목적을 제가 자기하는 것같이 즐거운 일은 다시없는지라. 구완서와 옥련이가 나이 어려서 외국에 간 사람들이라. 조선 사람이 이렇게 야만 되고 이렇게 용렬한 줄을 모르고, 구씨든지 옥련이든지 조선에 돌아오는 날은 조선도 유지한 사람이 많이 있어서 학문 있고 지식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찬성하여 구씨도 목적대로 되고 옥련이도 제 목적대로 조선 부인이 일제히 내 교육을 받아서 낱낱이 나와 같은 학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려니 생각하고, 일변으로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제 나라 형편 모르고 외국에 유학한 소년 학생 의기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구씨와 옥련이가 그 목적대로 되든지 못 되든지 그것은 후의 일이 거니와, 그 날은 두 사람의 마음에는 혼인 언약의 좋은 마음은 오히려 둘째가 되니, 옥련 낙지 이후에는 이러한 즐거운 마음이 처음이라(pp. 84-85). -
김병중(Th.D) 10-16 23:35
【북토크】 표절은 도적질이다
표절은 자주 언급되는 일이다. 공직자 청문회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또한 대중가요도 표절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고, 목사들도 설교 표절로 곤혹을 치루거나 혹은 사임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표절은 남의 노력을 훔치는 도적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중세가 안착했다 표절이 문제인 건 단순히 타인의 지식을 가져다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작권(copyright) 개념에 저항하는 지식 공유 운동인 카피레프트(copyleft)도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어쨌든 간에 '좋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인데 표절이 이 과정을 방해한다. 표절은 인생을 건 총체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쉽게 학위 소지자가 되고, 이들이 지식 생산을 저지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 공부를 포함해 공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상, 읽기, 여행, 경험과 그 해석, 인간관계, 쓰기... 그중에서도 나는 '쓰기'가 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중 쓰기가 가장 어렵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 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 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 있는데,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이다. 이럴 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이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을 깨닫고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겪어야만 깨달을 수 있고, 이때 새로운 지식이 생산된다. 과학자는 실험을 반복하고, 글쓴이는 쓰기를 반복한다. 프로 운동선수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은 연습을 거듭 한다. 연습을 훈련이라고 하는 이유다. '훈'은 해석, 풀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몸에 도장을 ‘새길 만큼’ 익힌다는 뜻이다. 우리는 위대한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의 영광을 보지만 사실 그들의 영광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연습한 몸의 결과다. 연습이 예술(art, 기술)이다. 공부는 쓰기가 연습이다. 글쓰기의 좌절에 익숙한 나는 '완벽한 글은 없어도 완벽한 인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자주 빠진다. 나는 부동산 구입으로 인한 불로소득보다 표절로 인한 불로소득이 더 부정의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세금도 내고 비난도 받는다. 발품도 팔아야 한다. 표절할 땐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새로운 글, 익숙하지 않지만 뭔가를 시도하는 글, 논쟁적인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표절 문화는 우주로 떠나고 싶을 만큼의 절망이다. 한국 지식 사회의 절도 문화는 왜 이리 당당할 까.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세가 안착했다(pp. 138-140). -
김병중(Th.D) 10-03 14:50
【북토크】 윤락녀 생활 20년의 진솔한 이야기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윤락녀로 20년을 살았던 한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떤 책을 보다 추천 받아 읽게 되었는데 한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고 짓밟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20년 만에 그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니 다행이다. 한때 이혼남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생활을 살기 원했으나 그도 잠깐만에 폭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그녀의 피난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교회였기에 감사했다. 교회나마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자의 성(性)을 돈으로 팔고 사는 죄 많은 세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맞아서 울고 나도 맞아서 울었다. 그 날 이후 그 남자의 폭력은 더욱더 심해졌다. 하루는 결국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그 남자를 말렸고,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는 필사적으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갈 곳도 없는 나는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로 향했다. 사모님은 깜짝 놀라면서 교회에 딸려 있는 작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에 보일러를 켜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이불을 덮어쓰고도 내 몸은 심하게 떨렸다. 그 남자가 나를 찾아낼까 봐 겁에 질려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방이 따뜻해지고 어느덧 잠든 나는 밤새 앓았다. 꿈조차 꾸지 않는 어둠이 차라리 위안이었다. 내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돌아갈 곳 없는 내 처지가 슬펐다. 다시 그 남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은 괜찮냐고 묻는 사모님의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사모님은 그 남자의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단한 시집살이와 그 남자의 폭력으로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여러 여자들과 동거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큰아이에게 밥은 먹었냐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가 엄마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했다. 이제야 겨우 나에게 정을 주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의 배려로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했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모님은 나에 제 몸을 추스를 때까지 교회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모님이 친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다시는 그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몸이 회복되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팔순 노모가 교회로 나를 찾아와서 "여자가 함부로 집을 나가고, 어디서 배운 짓이냐?" 하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생선 가게가 너무 바쁘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맞아서 몸이 상한 나에게 가게가 바쁘다고 말하는 팔순 노모가 미웠다. 그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나는 더이상 가정부로, 하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팔순 노모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다 교회 사모님이 시킨 짓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돌아갔다. 며칠 후 술에 취한 그 남자가 교회에 왔다. 교회 앞마당에서 고함을 지르며 목사님을 불렀다.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죄송했다. 목사님은 그 남자를 조용히 달랬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 옥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역겹고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아가며 시장에서 일을 했고,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내 마음은 너무나 망가져 있었다. 그 남자와의 관계도 이제 끝이 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 남자와 살면서 시달렸던 폭력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 과거를 들먹이는 그 남자의 폭력에 힘들었지만 20여 년간 온갖 학대를 받았던 업소로 돌아가지 않으려 그 폭력을 참아냈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보탬이 된 시간보다 빛을 갚기 위해 산 시간이 더 길었기에 언제나 미안했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돌아가서도 많은 좌절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지긋지긋한 폭력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모님과 함께 그 남자의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품과 옷가지 몇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방과 욕실에서도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정리하고 싶어서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짐을 버렸다. 마을에 오일장이 섰는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시장 좌판에서 파는 운동복 한 벌과 5000원짜리 신발을 샀다. 그 남자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화장품과 속옷이 전부였기에 입고 다닐 옷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그동안 민폐만 끼치고 간다며 인사를 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었고 내 손에 차비를 쥐어주었다. 사모님은 늘 기도하겠다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에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이 메어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 채 버스 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상처로 남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이 되었다.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pp. 311-314). -
김병중(Th.D) 10-03 13:06
【북토크】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에 대한 책을 대출하면서 함께 대출받았는데 동명이인이었다. 책을 고르는데 실패했지만 내용은 성공적이었다. 살면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책이다. 실패를 가지고 책 한권을 썼다는 것도 대단한데 내용이 읽을만했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한 번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를 예배하라, 실패를 장례하라 “인생의 9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하타무라 요타로(도쿄대 명예교수, 실패학 창시자) 세계 실패의 날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Day of Failure)’이다. 우리도 이 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있다. 유래가 있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창업동아리인 ‘알 토이에스(AaltEs)’는 실패의 날 행사를 열었다. 벤처 성공의 경험이 아닌,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소개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털어놓는 행사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핀란드의 로비오 엔터테인먼트가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으로 성공하기까지 52개의 게임을 출시했다가 쫄딱 망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가 공유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창업동아리의 행사였지만 기업들이 참여했다. 다음 해에는 핀란드를 대표했던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핀란드 정부가 후원에 나서면서 실패의 날은 세계적인 운동이 됐다. 이미 적었듯 실리콘밸리의 표어는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 없다. 당연하게도 실패의 날과 비슷한 행사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열리고 있다. 실패를 공유하는 콘퍼런스 형식인데, '페일콘(FilCon)'이라 부른다. 2009년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정상회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창업자들이 참여해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희극성 무대일까.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패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숨겨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정직한 패배가 부끄러움이 아니듯, 성실한 실패는 결코 음습한 절망일 수 없다. 실패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실패를 드러내 보이고, 그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토론하고 그 경험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와 세상과 공유할 때 실패의 가능성은 축소되고, 성공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모두가 나서서 실패의 날을 기념해야 한다. 실패 장례식 이번엔 장례식이다. 실패와 이별을 고하는 장례식.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FuckUp Nignt)’의 일부다. '퍽업'은 '개판'이라는 의미다. 재밌게 표현하자면 '개판 쳐 본 사람들'끼리 모여 경험을 공유하자는 행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중 하나로 실패한 벤처기업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후원회사가 주류회사라는 점. 슬로건은 "장례식에 재미를"이다. 종교 행사가 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닉슨 매킨스라는 소셜 미디어 회사는 매달 ‘실패의 예배’를 개최한다. 고해 성사의 시간도 있다. 하지만, 공개적이다. 예배는 늘 박수와 함성의 찬양으로 끝맺는다. 축하파티도 있다. ‘클래시 오브클랜’, ‘클래시 로얄’등 모바일 게임을 히트시킨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은 2010년에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는데, 금액이 무려 10조 원에 달했다. 회사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실패 축하 파티”다. 프로젝트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 샴페인을 터뜨린다. 실패를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실패를 지원했을 때 더한 벤처 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밋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말이다. "구글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입니다." 실패 박람회도 있다. 2018년, 우리나라 행안부와 중소 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1회 행사의 모토는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실패의 경험이 사회의 자산일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어느 나라건 실패는 감추고 싶은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는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형식을 빌리더라도 실패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때둘 사회의 한 사회의 성공이 재촉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얀색 콜라, 보라색 케첩 ‘콜라 색’이 있다. 어떤 색인지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색깔이 없는 무색의 콜라가 있다면? 그걸 ‘크리스털 콜라’라고 불렀다. 1992년 펩시가 시장에 내놓았다. 첫해에는 반응이 뜨거웠는데 다음 해에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럼, 케첩의 색깔은 무슨 색이어야 할까. 2000년 하인즈는 보라색 케첩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나중에 징그럽다며 시장에서 쫓겨났다. 어디로 갔을까. 실패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미국 미시간주에는 실패박물관이 있다. 처음에는 실패 박물관이 아니었다. 신제품 작업소였다. 로버트 맥메스라는 이가 1960년대 말부터 신제품들만을 모으기 시작했다. 애써 모았더니 신제품의 80%가 실패한 제품이 되더라는 것. 7만 점 이상을 수장하게 되자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MBA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1990년 실패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실패학의 성지가 됐다. 2017년 6월, 스웨덴 헬싱보리에도 실패박물관이 개관됐다. 대표적인 전시품 중 하나가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 데이비슨이 1996년 출시한 향수인'핫 로드'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향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의 옷깃에 바람이 스쳐 가듯 향수는 실패했다. 박물관은 최고의 유산만 보존된 곳이 아니다. 아니, 실패 또한 인류 최고의 유산일 수 있다. 실패박물관은 인간의 본질인 실패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인간의 특성인 호기심을 수장하는 곳이다. 인간의 모험과 시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모든 박물 관이 그러하듯 실패를 기억하는 곳이다. 실패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곳이다. 간접 체험하는 곳이다. 실패의 경험을 컨설팅하고, 반면교사 삼는 곳이다. 실패가 인류의 자산이요, 지식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이다. 우리도 이제 실패박물관을 건립할 때가 됐다. 이를테 면, 2021년 궤도 안착에 실패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995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에서의 휴대전화 등등을 전시한다면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는 넘쳐날 것이다. 실패를 포상한다 미국의 신용정보회사인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Dun and Bradstreet)에는 '실패의 벽'이 있다. 안내문 내용이다. “1.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2.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쓰세요. 3.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하세요."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실패에 대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장이다. 실패를 배우는 방식은 이렇듯 다양하다. 단순한 고백을 넘어 아예 실패를 포상하는 기업들이 있다. 가장 큰 실패, 가장 훌륭한 실패에 상을 준다. 대표적인 회사가 일본 혼다 자동차가 시행 중인 '올해의 실패 왕’이다. 한 해 동안 가장 크게 실패한 연구원에게 수여한다. 상금은 우리 돈으로 약 1,000만 원 정도. 혼다의 창업자 소이치로 혼다가 말했다. "성공이란 당신의 일에서 그저 1%의 비율로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 99%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가 아닌 그 99%에서 가치를 찾아 내려는 것이다. 미국 3M은 2003년부터 '퍼스트 펭귄 어워드'라는 포상 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다. 다른 펭귄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맨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그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선구자 또는 도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어다. 그런데 수상자는 선구자도, 도전자도, 성공자도 아니다. 실패자다.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사람만이 수상 자격을 갖는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를 발표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한 말이 있다. "탁월한 실패에는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을 주어라" 왜 그랬을까. 실패를 공포와 손잡게 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버려서는 안 될 기업의 자산이다.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고무하고, 찬양하는 데서 모험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실패를 어떻게든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성공과 실패에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어서다.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지점이다. 첫째, 성공과 실패의 상대성이다. 어느 게 성공이고, 어느 게 실패일까, 성공과 실패라는 판정은 늘 공정하고 정확할까. 둘째, 성공과 실패의 시간성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시장에서 외면받아 실패라고 낙인찍히는 발명품들이 있다. 세상의 무지 때문에 실패한 이론들도 있다. 지동설 같은 경우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성공과 실패의 순환 혹은 부조화다. 한편에서는 실패였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성공으로 평가되는 경우다. 숨겨진 효능이 발견되는 의약품의 경우가 그렇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 있다. 독일의 상품명을 따서 일명 ‘콘테르간(contergan) 스캔들’이라고도 한다. 현대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1957년 산모들 입덧 방지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입덧 방지제로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성공이 성공이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한 실패였다.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1만 2000여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였다. 미국 FDA에는 켈시상이 있다. 1960년 탈리도마이드 약효를 끝까지 의심하고, 실패 여부를 끝까지 확인하면서 승인을 거부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FDA는 미국에서의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온전히 켈시 박사의 공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만큼은 이 약의 실패 사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성공과 실패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의학자들은 먼 훗날 탈리도마이드에서 다른 효능을 찾아낸다. 1998년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합병증 치료제로 승인한다. 2006에는 다발성 골수 종양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나의 약품이 어느 때는 성공이고 어느 때는 실패로, 또 어느 기관, 어느 학자, 어느 질병에 따라서는 성공으로, 실패로 인정되거나 평가받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pp. 114-123) -
김병중(Th.D) 09-23 13:33
【북토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재밌게 읽었다. 여러 철학자들, 사상가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거나 자기 뜻을 펼쳤는지를 돌아보는 책이다. 맹자가 오래 전 권력자 앞에서 폐위 운운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그의 목을 치지 않은 권력자도 나름 위대하다. 자기 생각, 뜻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나아졌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학식과 덕망으로 유명해진 맹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할 때였다. 그의 뒤로는 수레 수십 대가 넘는 긴 행렬과 제자 수백 명이 따랐다. 그 모습은 멀리에서 보기에도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그는 호탕하게 열국을 향해 진군했다.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가졌던 그는 왕들에게 이상 정치(왕도 정치)를 시행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만난 것은 53세 때였다. 혜왕은 자기 나라가 점차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사방에서 현인들을 초빙했다. 이에 맹자가 찾아가니 혜왕은 매우 기뻐하며 나라에 도움이 될 방법을 물었다. 맹자는 "만일 왕께서 어떻게 하여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주장하신다면 대부들도 반드시 어떻게 하여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할 것이며, 또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하여 나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위아래가 서로 자기의 이득만을 다툰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충고했다. 이어서 그는 "신하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여 임금을 섬기고, 자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어버이를 섬기고, 동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형을 섬긴다면, 그것은 인의가 아니라 이익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멸망하지 않은 경우는 여태껏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이른바 모든 일에 개인의 공명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폐해를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하루는 맹자가 왕에게 물었다. "형리가 자기가 맡고 있는 감옥 내의 질서를 바로잡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형리를 파면시켜야 한다." "나라 전체가 문란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왕은 다른 이야기로 말꼬리를 흐렸다. 맹자에 따르면, 군주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백성들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듣는 자는 마땅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왕이 자리에 연연하여 독재를 하거나 백성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살해되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임금과 신하의 의리 혹은 명분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둘 사이에는 벌써 군신간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pp. 86-88) -
김병중(Th.D) 09-22 00:19
【북토크】 예장합동 신학정체성 선언문
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9월 23일 개회하는 109회 총회를 앞둔 20일 총회장실에서 교단 목사 기자들과 마지막 세 번째 간담회를 가졌다. 끝날 시간에 기자들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 정체성 선언문 및 해설』을 한 권씩 선물했다. 많지 않은 내용이라 다 읽은 후 몇 가지를 언급하려고 한다. 첫째, 어려운 말이 사용됐다. 20페이지 ‘1. 하나님의 속성’ 아래로 일곱째 줄에 ‘완해불가’라는 말이 나온다. 네이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또한 121페이지 ‘1, 사회봉사’ 아래로 일곱째 줄에 ‘조응시킴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이 또한 잘 쓰는 말이 아니라 검색해 보니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말과 글의 앞뒤 따위가 서로 일치하게 대응함”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쉬운 말을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둘째,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다. 154페이지 ‘2. 신자의 죽음’ 아래로 셋째 줄에 ‘영광 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의 바라보며’는 ‘하나님의 얼굴을’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오타 하나는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트린다. 그런데 이 책은 초판 3쇄였는데 오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셋째, 논쟁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 127페이지 ‘3. 생명윤리’ 아래로 넷째 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죽인 자에 대하여 사형을 부과하라는 명령은 종말의 날까지 적용되는 보편적 명령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신자들도 사형제도에 대해 이견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다소 놀라웠다. 또 한 가지는 같은 페이지 아래로 아홉째 줄에 ‘인간의 생명은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되는 심폐사의 시점이 되었을 때 종결된다’ 그러면 의료계가 인정하는 ‘뇌사’는 거부하는 것인가? 이미 뇌사가 인정되고 있는데 심폐사만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합동교단의 신학이 무엇인지 말하는 선언문이다. 모든 목회자와 신자들이 배우고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절판’으로 나온다. 이유를 모르겠다. 총회 출판국의 대처가 필요하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와 이에 속한 모든 교회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로 믿어 왔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무한한 사랑이 모든 성도와 교회의 존립과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기초이자 능력임을 믿는다. 우리는 역사적 개혁신학이 성경의 명확한 진리를 가장 잘 표현한 신학 체계라고 믿으며, 우리 총회가 표방하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성경 대요리문답, 성경 소요리 문답)의 진술이 우리 교회의 공적인 표준 문서로서,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 교단과 교회들을 진리 가운데 지켜주시고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우리의 신학정체성을 선언하려 한다. 이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조와 초기술사회에 따른 세속화, 정경의 진리에 반하는 다양한 윤리적 도전에 맞서 우리가 견지해 온 신앙고백에 충실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신학정체성 선언의 목적은 보다 선명하고 확고한 신앙의 확인이 필요한 다음 세대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우리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우리가 지켜 온 역사적 신앙고백을 더 명확하고 쉬운 진술을 통해 재확인하는 데 있다. 주후 2024년 3월 4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총회신학정체성선언문 집필위원장: 김길성 서기: 임종구 위원: 김광열 김석환 김성태 김요섭 라영환 박윤만 박재은 신현철 이상웅 이상원 이풍인 주종훈 채이석 최재호 황성일 -
김병중(Th.D) 09-17 14:56
【북토크】 이야기 창조자, 작가...그 치열한 노력
명절 연휴를 맞아 모처럼 쉬지 않고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취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2년 9월 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34년 7개월 만에 퇴사한 문학전문 기자의 글 모음으로 400페이지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작가와 책을 알게 됐다. 계속해서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책들이 도서관에 있기를 바래본다. 이 책 제목처럼 이야기는 오래 산다. 한때 네러티브 설교 방법이 유행했다. 이 설교를 잘하는 방법의 하나는 소설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상상력이 계발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소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정이정 작가와의 인터뷰 글이다. 몇 년 전 이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었는데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내용이 길어 읽기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 작가의 글 쓰는 태도가 대단해서 소개해 본다. "저는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아무리 길어도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냅니다. 일단 초고를 마친 다음 1년에 걸쳐 말이 되게 다듬고 필요한 세부 사항을 취재해서 또 고치고 하면서 초고를 완전히 벗겨 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2년 터울로 신작을 발표하게 되네요. 이 소설도 빨라야 2013년 봄에나 책으로 나 올 것 같아요." 초고를 완전한 원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을 그릴 때에도 세 가지 정도의 다른 버전을 써 놓고는 그중 가장 나 은것을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2009)의 마지막 장면은 ①승민이 병원에 불을 지른다 ②산사태가 나서 상황이 정리된다 ③글라이더를 이용해 탈출한다. 세 가지 결말을 써 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 것을 택했고, 『7년의 밤』에서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장면도 그렇게 썼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정유정의 바람은 무엇일까? "‘정유정, 하면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요. 문단의 평가에는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화씨 451』(황금가지, 2009)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한 말 ‘나를 통해 세상을 타오르게 하라’를 10년째 책상에 붙여 놓고 있어요.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니 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니 하는 말들에는 마음이 상합니다. 저는 소설이 모든 이야기 예술의 샘이자 대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가인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2012년), (pp. 327-328). -
김병중(Th.D) 09-16 13:43
【북토크】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 책은 중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자전 에세이다. 1955년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난 그가 많은 우여곡절 속에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아울러 초등학교 동창인 '허즈우'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루원리'라는 여학생이 두 번의 사별 후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중년의 여인으로 변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딸을 위해 청탁하러 모엔을 찾아온 루원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추석 명절에 작은 조카가 결혼할 여자와 찾아왔다. 조카 나이가 벌써 34살이다. 아기 때 본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그 속에서 우리 모두는 늙어가며 추억만 쌓인다. 몇 시간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책은 또 다른 책으로 나를 인도한다. 독서가 취미인 것이 다행이다(인터넷 교보문고를 보니 이 책은 2012년에 나와 절판됐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야 할 듯하다.) 모옌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포크너, 찰스 디킨스와 비견되며 환각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창조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2007년에는 중국 문학평론가 10명이 선정한 중국 최고의 작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본명은 관모예로 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쓴다. 1955년 산둥성 가오미 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학업을 중 단하고 시골 생활을 하다가 1973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목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해방군 예술 단과대학에 입학해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그는, 1984년 발표한 「투명한 홍당무」를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마오둔 문학상과 다자 문학상을 비롯해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이라는 영예까지 안았다. 이 책 『모두 변화한다』는 그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지난 30년간 중국의 사회 변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첫 자전에세이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달빛을 베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장편소설 『열세걸음』, 『개구리』,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의 나라』, 『풀 먹는 가족』, 『풍유비둔』, 『맹그로브 숲』, 『탄샹싱』,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다. "류 선생님은 잘 지내셔?"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갔어."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쩌다가. 류 선생님은 이제 예순 살을 겨우 넘었을 텐데." "나는 과부 팔자인가 봐. 내가 기가 세서 사내를 잡아먹는 건지." "무슨 그런 말을"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어리 비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순간 나는 그녀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다만 술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그녀의 잔에 부딪칠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잔 안에 든 술을 몽땅 비우며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자.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사실 부탁이 있어서야." 그녀는 품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내 딸이야. 류 환환이지. 마오창 소년반 시험에 등록했고 벌써 2차까지는 시험에 붙어서 60명 안에는 들었어. 학부모들이 저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하는 모양인데... 그래서 나도 이 늙은 얼굴이 부끄러운데도 당신을 찾아온 거야." 나는 손으로 사진을 받쳐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류 환환, 입이 크고 눈도 큰 것이 류 선생님을 빼닮았다. 그래도 루원리 쪽을 훨씬 더 많이 닮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심사위원들로부터 류 환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루 국장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더니 그는 이런 회신을 보 내왔다. '모든 조건이 좋은 아이예요. 아마도 두 학생이 끝까지 남을 것 같은데, 그중 한 아이가 그 학생입니다." 나는 루 국장의 문자를 루원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말했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지?" 그녀는 목이 메는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고마워.., 고마...." 내가 말했다. "누구한테 뭘 고맙다는 거야? 당신 딸아이의 조건이 원래 좋았던 거야. 재능도 있고 표현도 잘했고. 시험도 아주 잘 봤다던데!" 그녀가 말했다. "요즘 일들 나도 알아. 고마워, 친구." 그녀는 가방 속을 더듬어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옛 친구, 내 동창, 고마운 친구야. 이거 만 위안이야. 약소하다고 거절하지 말고 루 국장이랑 다른 분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줘." 나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말했다. "알았어, 친구. 내 받아두지." (pp. 160-162)
설교더보기 +
-
김병중 03-29 09:46
“감사로 채워지는 인생!”(살전 5:18)
우리 신앙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과 뜻과 목적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보다 훨씬 큰 능력과 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일에 감사함이 주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언급합니다. 뜻이란 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지, 목적이 이 감사에 담긴 것입니다. 신자의 감사의 수준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감사는 어떤 일이 만족을 주거나 소원을 충족할 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대한 감사는 어려울 때나 슬플 때에도 고난 속에서도 감사를 할 수 있는 내면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감사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감사보다 깊고 넓은 의미가 담깁니다. 오늘은 우리가 성도라면 더 이해하고 누려야 할 감사에 대한 의미와 삶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런 깊은 감사를 체험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남겼던 감사의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들이 만나서 함께 즐거이 고백하고 노래했던 것이 시 136편에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고백했던 것은 바로 1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을 뵙고 경배할 때 마다 선포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감사가 그들의 신앙 가운데 형성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알게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인자 인애와 자비가 풍성함을 넘어 영원합니다. 끝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단순히 착하다 순수하다 라는 개념으로만 알면 너무 적게 안 것입니다. 선하심은 그 존재가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받으셔서 만족하게 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선으로서 그 분의 선하심은 피조물 안에 모든 선의 원천이 되십니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좋은 것, 즉 자연적, 도덕적, 영적 선의 원천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선은 윤리적으로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윤리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의 유익을 위해 즉 우리를 위해 호의, 은혜를 베푸시며 관대하게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 분의 선함에서 흘러오는 자비와 긍휼, 사랑, 인애들을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나옵니다. 영원하며 끝이 없으며 불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예가 바로 모성애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거나 규칙으로 정하여 윤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은혜가 나옵니다. 은혜란 호의와 구별되는데,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호의입니다. 그런데 받을 자격이 없는 원수 같은 사람을 용서해 주고 사랑하여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긍휼이 나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모든 비참함과 고통으로부터 건져주시는 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내가 나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인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성품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림 속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말할 수 없는 감사를 가져옵니다. 그 분의 선하심은 그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그들에게 정착할 곳으로 인도하시며 그 땅의 소산물을 수확하도록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절기를 통해 축제를 벌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 크고 놀랍습니다. 골 2:6-7절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떻게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옵니까? 하나님은 예수의 인격 안에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담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선하심을 따라 은혜와 진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즉 원수같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의 비참함에 거하는 우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으시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창기와 세리라도 영접하고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십자가를 통해 부어 주십니다. 가장 큰 사랑, 가장 큰 은혜, 가장 큰 긍휼이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즉 주님은 십자가에 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통해 흘러 나오는 사랑, 은혜, 긍휼, 자비를 담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십자가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였고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 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주 안에서 하신 일과 행하실 일이 크고 놀랍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사로 고백하며 살아갈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게 될 때 감사하는 인생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즉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감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주 안에서 살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골 2:6-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그 특성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넘치는 감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주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이 풍성한 사랑,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즉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과정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한 해 한 해 우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한해의 인생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한 없는 선하심과 자비를 담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현실의 가정과 일터, 직장, 그리고 삶의 터전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담아 우리를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이 땅의 소산물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얻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한 결과 얻은 열매는 하나님이 능하게 하시고 건강하게 견디게 하셔서 이룬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움이 함께 하신 결과 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례를 받고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하여 채워지는 것입니다. 한 살 더 먹고 한 해를 더 살아가는 것은 은혜의 삶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심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이 먹음에 대하여 한 해를 지내는 것에 대하여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일 것입니다. 왜 없겠습니까? 후회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삶의 내용가운데 포함된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인도는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치지 않는 사랑과 긍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서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지혜롭게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십니다. 엡 5:18-20절을 보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으로 충만함,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 삶은 말씀과 찬송으로 예배하며 모든 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과 감사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 찬송하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 봉사 하는 것입니다. 감사 헌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더불어 감사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하심 아래 삶을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거대하고 커 보이는 일을 성취하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어렵고 힘든 것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인도, 크고 놀라운 힘과 능력으로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현실 속에서 당신의 크나큰 은혜를 담습니다. 다른 꽃 길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완벽한 곳에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실수하여 눈물짓는 우리의 삶 안에서 감사의 고백을 통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일에 감사로 당신의 남은 인생을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고난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고백을 당신의 삶에 채워야합니다. 좋은 일은 당연하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감사함으로 그것을 행해야합니다. 할 수 있다면 감사함으로 받아야합니다. 이럴 때 때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기도 합니다. 1874년부터 1877년까지 3년에 걸친 심한 가뭄과 엄청난 수의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경제 공황에 빠졌습니다. 1877년 4월 27일, 미네소타 주 주지사 필스버리(Pillsbury) 씨는 모든 주민에게 '감사 기도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 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실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미네소타 주민 전체의 감사 기도는 하늘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들판을 덮었던 메뚜기 떼가 며칠 사이에 전부 죽었습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감사로 채워진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감사하는 감사촌 마을에 삽니다. 마치 아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는 존재로 함께 있는 것으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즉 있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Matthew Henry)라는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차려 일어 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집에 들어오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하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안 되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통해 놀랍게도 예수와 함께 사랑의 띠로 묶어 주신 성령의 충만한 일하심이 오늘 우리 모두의 인생을 감사로 채워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합시다. 항상 감사합시다. 매주 마다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과 기쁨을 나눕시다. 그리고 그 감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꽉꽉 채워내어 감사의 인생을 수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
김병중 03-18 16:16
성령으로 형제를 대하는 길(갈5:25 – 6:5)
신앙은 우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 수준과 색감이 결정되고 열매를 맺는다는 점을 늘 유의해야 합니다. 율법을 주신 중요한 이유도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르치고, 이웃 사랑의 수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선명한 색감을 갖기 위함입니다. 본문 5장 19-21절의 ‘육체의 일’은 성적인 문란함(음행 더러운 것 호색)과 관계 속에서 분열(원수 맺음, 분쟁, 시기, 분냄,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로 알고 보면 모두 <관계의 죄>입니다. 이어서 기록된 5장 22-23절 성령의 9가지 열매 또한 대부분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 모두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위하여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거해야 할 거대한 지뢰가 하나 있습니다. 26절 그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kenodoxoi 헬라어로는 한 단어입니다. “빈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 안에서 빈 영광의 의미는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가서 의를 성취하려는 태도’를 우선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수준까지 누군가 갔으니 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선 할례를 받고 율법을 하나하나 다 지키겠다는 시도를 하는 태도 그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모습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헛된 영광을 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경고하며, 그러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서로 비교하고 공격하며 원치 않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복음은 경쟁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파이를 하나 놓고 빠른 사람이 먼저 먹어버리는 그런 성격의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높은 정상에 힘 있는 자가 빨리 올라가는 형태로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며 복음을 크게 훼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앞서가고 성취하여 자신이 남보다 높아지고 인정 받으려는 모습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려는 모습으로 살다보면 두 가지 치우친 현상을 겪게 됩니다. 먼저는, 서로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26절 prokaleomai 는 ‘화나게 하다. 누군가에게 싸우자고 도전하다’란 뜻으로,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강한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목표와 생각으로 상대에게 압력을 가하여 상대를 오히려 화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화나게 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보다 더 나은 경험과 수준이 있다고 자신을 이해하며 곁에 있는 이들을 얕잡아 보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 문제를 주로 일으키는 이들이 놀랍게 아버지들일 수 있습니다. 사도는 엡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parorgizo) 말고 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아버지의 경험과 기준과 높은 생각이 어린 자녀에게 강요로 나타나면 자식을 때로는 화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노엽게 하다’라는 동사가 헬라어로 같은 단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말입니다. 영어로는 to provoke, to wrath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반대말은 행복 Happiness입니다. 지적하다가 둘 다 불편한 관계로 인해 불행해집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또 다른 모습은 투기하는 것입니다. phthoneo, envy 부러워하다 상대방을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보고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상대의 은사와 재능을 과대 평가하며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며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상태입니다. 상대를 노엽게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상대방에게 간섭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경우 상대를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려는 잘못을 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가 어떠하든지 관계 없이 무관심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런데 둘 다 헛된 영광에 집착한 모습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노엽게 하고 시기하는 태도와 정반대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는 이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계속해서 성령으로 행하려 애쓴다. 성령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자신의 죄와 무가치함을 보게 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또한 보여 주신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어떻게 하든 그들을 섬길 기회를 찾는다. 요약하면, 기독교적 관계는 경쟁이 아닌 섬김에 의해 지배된다.” 노엽게 하거나 시기하는 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형제를 대하는 첫 번째 방법은 1절, ‘범죄한 형제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으십시오’입니다. 갈라디아교회에서 범죄하듯 잘못한 이들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이들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보여준 두 가지 부작용은 너무 빠르고 강하게 비판하며, 부러워하여 관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는 그렇게 하지 말고 온유한 심령으로 관계에 문제를 가지고 오는 이들을 바로잡으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엡5:23)입니다. 온유함의 반대는 우월감을 갖거나 자아도취에 빠진 교만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가 그럴 수 있어?’하지만 누구나 그런 현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1절하,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 보고, 자신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앞으로 자신도 그 문제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범죄한 이를 부드럽게 대하지만,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비복음적인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쟁적이며 문제를 만들어내고 교회를 어렵게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비복음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을 뿐 미래에도 완전한 사람은 교회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복음적인 행동을 바로잡아주고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이 교회를 온전하게 하며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여러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은 교회를 바로잡아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부드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변화를 요청했습니다. 사도는 교회의 잘못을 간과하고 어떻게 해도 구원은 100% 보장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서신을 읽어보면 온유함으로 상대를 바로 잡으려는 마음으로 설득하고 호소하는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섬기는 모습으로.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대안을 제시하며.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신앙적인 자존감을 세워주며.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몬 1: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상대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성령으로 형제를 대하는 두 번째 방법은, 2절 ‘너희가 짐(baros)을 서로 지라’ 헬라어 baros는 ‘무겁고 큰 짐’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사람마다 다 짐이 있는데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가 짐을 잘 질 수 있도록 곁에 있는 이들이 더 많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 말씀이 좋고 매주 은혜를 받는다 해도 어느 시점에 가면 좌절할 수 있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짐을 교회를 통해 서로 져주는 기능이 살아 있어야 가벼워질 수 있도록 교회는 설계되었는데, 계속 혼자 무거운 짐을 안고 있고,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 견디기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남의 짐을 져 주는 생활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몸소 실천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순종입니다. 10여년 사역 도중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안식년 허락받아 이곳 저곳에 머물다가 지금은 제주도에서 두 달 쉬고 계신 목사님과 어제 통화를 했습니다. 매 주일 제주도에 개척된 약한 교회를 찾아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데, 섬기던 교회에서 익명으로 특별헌금을 보내주셔서, 지금은 주일마다 50만원씩 가져가 재정이 약한 교회에 헌금을 드리며 지원하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쉼에 초점을 모으고 목회 구상을 해도 충분한데, 목사님이 남의 짐을 져 주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머물고 계신 선교센터에는 중국인 신학생들이 머물던 곳인데, 목사님을 뵈러 온 지인 목회자가 상황을 보고 적지 않은 헌금을 드리고 안식년을 갖는 목사님도 헌금을 드리는 과정에서 그곳을 떠나려던 관리자인 선교사님이 그곳에 더 머물러 사역을 하기로 했다는 마음의 변화를 말해서 기뻤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며 서로 돕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원하셨습니다. 서로를 가장 잘 돕기 위해서는 자만심이나 열등감을 버리고 형제를 돕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두에게 고마운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으면 우리는 내가 가진 것으로 도울 수 있고 그렇게 서로를 돕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짐을 진 이들에게 볼 수 없는 삶의 태도입니다. 율법의 짐을 진 이들은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고 남을 판단하며 도움을 주기 보다는 어떤 원칙에 의해 살아가는 것으로도 숨이 가쁩니다. 그러나 남의 짐을 져 주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면서 자신도 행복하고 도움을 받는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율법의 짐 대신 남의 짐을 지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다시 한 번 헛된 영광을 따라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3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사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가운데,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와도 잘 나아가지 못합니다. 형제가 잘못할 때 자신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모습으로 형제의 약점을 대신 짊어지는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연약한 형제의 약점을 사랑으로 대신 짊어지려면 정당한 자기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한국 교회를 자주 거론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늘 놓칩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놓치면서 형제에 대해, 공동체에 대해 너무 예민하거나 무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형제를 대하는 길 세 번째 방법은 4절 ‘자기의 일을 살피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의 일을 살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상황과 다른 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상황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나치게 남의 일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3절이 자신의 존재가 어떤 상태인지 늘 점검하라는 말씀이라면, 4절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내가 할 일에 대해 주님 앞에 답변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주님이 우선 물으실 것이며 나는 그것을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내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은퇴목사님이 계신데, 늘 약한 이들을 도우며 시간을 쏟고 에너지를 집중하시다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로 인해 큰 곤욕을 겪고 은퇴하신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교회 일을 등한히 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초점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4절) 이 문장은 해석하기가 어려운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 있고 남에게는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남의 자랑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하면 각 사람은 자신의 자랑을 자신에게만 돌릴 것이지 다른 형제들에게 돌리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해석을 하게 되면 경쟁적으로 살면서 자기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일을 살핀 후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허풍떨지 않고 자신의 자랑을 자신의 것으로만 삼으라는 의미가 됩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하는데 나는 이 정도 밖에 못하는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하는데 누구는 왜 이 정도도 못하는가? 그런 생각과 비교의식이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주시는 정말 중요한 말씀이 4절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4절, 새번역) 남들이 어떠하든, 내가 가는 길을 걸어갈 이유가 분명하다는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사는 이들은 늘 자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가 남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는 그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만족하며 살아갈 힘이 있습니다. 5절, ‘자기의 짐(phortion)을 질 것이라.’ 남의 짐은 내가 들어주어야 할 무거운 짐으로 여겨지지만, 5절의 자기가 져야 할 짐은 헬라어로 작은 손가방 같이 작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 얼마나 힘들까 그런 마음을 갖고 누군가를 돕는 자리에 나아가야 하지만, 내 짐에 대해서는 스스로 작게 여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작은 짐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이 자기가 큰 짐을 들고 있고 아내가 작은 가방을 들고 걸어갈 때, 건강하고 사랑스런 남편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자신에게 아내가 든 가방을 달라 해서 들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어른은 임신한 며느리가 든 무거운 짐을 보면서도 작은 자신의 짐까지 맡기며 빈손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걸어다니면서도 피곤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는 일이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항상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후 변화와 환경문제,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 다음 세대가 우리가 하는 일을 잇는 문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바뀌고 있는 사람들의 심성의 어려움 등 정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자들의 경쟁적이고 자기의 거룩을 드러내려는 끝없는 허영의 모습으로 인해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의 시작은 놀랍게도 각각 자기의 크지 않은 짐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각자의 짐이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습니다. 그냥 배낭 정도의 짐입니다. 그 짐이 크지 않은 이유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우리 주님께서 져 주시는 은혜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을을 땀 흘려 보내야 하고 겨울을 밀어내며 봄이 올 모든 준비를 우리의 힘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위치에서 우리가 할 일을 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땀 흘려 두 달란트를 남기면 됩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와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잘못까지 거론하며 연대책임을 지라고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때론 남의 짐을 져야 하지만, 모든 짐을 우리가 다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5장 25절에 기록된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하게 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건강한 자아 정체성을 가지고 범죄한 이들을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짐을 서로 지는 사랑의 공동체를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십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성령께서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질 짐을 가볍게 하십니다.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고 함께 하시며 도우실 것을 성령은 믿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도 복된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으로 형제들을 대하십시오. 겸손한 모습으로, 다른 이들의 짐을 져주는 사랑을 베풀면서, 자신의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소원합니다. -
김병중 03-18 15:18
빈들에서의 감사(마태복음 14:13-21)
어느 날, 유대사회에 등장한 예수님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었고,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며 악을 행한 자들에게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에게는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그들의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많은 무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따랐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예수님은 각종 병든 이들을 고치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해가 중천을 지나 석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눈망울을 반짝이며 경청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때는 저물어 가는데 먹을 것이 없자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때가 저물었습니다.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시지요?”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요구에 거절하며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의외의 답을 들은 제자들은 난처해합니다. 이 많은 무리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준비한들 어디서 이 많은 이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사오겠습니까? 바로 그때에 순진한 한 제자가 “예수님 여기 도시락 하나가 있습니다.”라고 내 밉니다. 그 도시락은 어린아이의 도시락이었습니다. 아이가 1끼 먹을 수 있는 보리떡 5개와 작은 생선 2마리가 든 도시락이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의 도시락입니다. 예수님은 그 보잘 것은 도시락으로 그날 모든 자들이 배 불리 먹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날 그 기적을 맛본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날의 기적을 ‘오병이어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원동력일까요?어린 아이가 순진한 마음으로 내민 도시락일까요? 먹거리를 찾아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 어린아이 도시락을 갖고 온 한 제자의 부지런함일까요?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들의 열심일까요? 모든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19절 말씀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단어는 ‘축사’입니다. 축사란 무엇일까요?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감사기도’, NIV는 'thanks'입니다. 헬라어 ‘유로게오’(ευλογησεν)는 ‘감사를 드리다’입니다.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 도시락을 앞에 두고서 감사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기적의 원동력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감사기도가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행동이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곳은 빈들입니다. 빈들이란 광야요, 황량한 불모지요, 텅 빈곳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빈들에서는 절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빈들에서 감사했습니다. 오병이어는 아이 하나도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그에 비하면 그곳에 모인 자들은 장정만 5천명이었습니다. 어린이, 여자들까지 합치면 어림잡아도 2만 명쯤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보잘 것 없는 양식 앞에서도 감사했습니다. 빈들에서 감사한 예수님의 모습은 그날의 기적으로 해피엔딩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앞에서도 감사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모두를 배부르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 오늘 우리들의 삶이 마치 빈들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텅 빈 빈들 말입니다. 아무리 땀 흘리고 수고해도 먹고 살기가 참 힘든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워낙 가진 것이 없는 흙수저 인생이라 지금의 환경을 벗어나기란 요연해 보입니다. 언제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 주 수능시험을 쳤습니다. 수험생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했을 겁니다. 하지만 막상 시험을 치고 나면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아 낙심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또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해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취업 될 때까지 휴학하면서 대학생활을 마지못해 이어갑니다. 취업이 되어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꿈꾸는데 현실이 이런 꿈도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여 공시 생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썼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늘 기도하면서 소망하는 삶이 있지만 삶의 현장은 그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빈 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빈들이라고 불평하면서 살아야 되겠습니까? 빈들이라고 절망하면서, 남 탓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빈들이라고 인상 쓰면서, 좌절하면서 살아야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2. 빈들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책임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옷이 낡아지지 않게 입혀주셨습니다. 신발이 해어지지 않도록 신겨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먹여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들을 책임져 주십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만큼 물질이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난뱅이가 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내가 원했던 진로가 펼쳐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꽉 막힌 인생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삶을 벗어버리십시오. 오히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습관부터 가지십시오. 빈들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이 감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목회자로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자들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단 한명도 굶어 죽은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입을 옷이 없어서 얼어 죽은 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신을 신발이 없어서 발병이 나서 죽은 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빈들과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들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100% 책임져 주시구나!’ 그래서 저는 제 자녀들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걱정하지 말라고... 올해 우리 집 막내딸이 지난 주 수능시험을 쳤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친 후에는 아쉬움이 남고 자신이 꿈꾸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걱정도 찾아옵니다. 저희 부부는 항상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딸! 하나님이 네 길을 여신다. 걱정하지 말고 항상 힘내라” 듣기 좋아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제 인생을 여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딸들의 길을 왜 여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게 어디 우리 가정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러니 빈들과 같은 현실에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정말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놓고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감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인생을 주의 은혜로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세 가지인데, 첫째는 아무리 믿으려 해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감사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감사’를 ‘구원’의 수준만큼이나 높이 생각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구원 받은 백성이라면 감사는 필수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고 늘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저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가 있다면 그게 행복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내 삶에 행복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해서 감사 인생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
김병중 03-16 23:05
"하나님의 목적과 성공이 있는 삶"(여호수아 14:5-15)
여섯 살 된 남자 아이가 유치원에 처음 입학을 해서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집에서 하던대로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오줌'이라는 단어가 껄끄럽게 들린 선생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얘, 여자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지저분한 단어를 쓰지 말고 다음부터 화장실 가고 싶으면 '선생님, 휘파람이 불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 후로 아이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배운대로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휘파람이 불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이 아이가 잠을 자다가는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깬 겁니다. 혼자 어두운데 나가는 게 무서워서 옆에 자고 있던 엄마를 깨웁니다. 엄마를 막 흔들어 깨우며 "엄마, 휘파람이 불고 싶어요.". 엄마가 잠이 덜 깨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밤중에 휘파람 불면 뱀 나와요, 휘파람은 아침에 불고 지금은 그냥 자거라." 그런데 아 아이가 너무나 참기가 힘들어 다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나 지금 "나 도저히 못 참겠어요. 지금 휘파람을 불어야 되요." 그래, 엄마가 졸면서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럼 나가지 말고 엄마 귀에다 휘파람을 조용히 불어야 한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앞서 가는 선배들, 선생들, 지도자들이 잘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가 따라갈 귀한 지도자 갈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호수아서 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열 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장면입니다. 지금 20세 이상 된 사람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유일한 두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이고 갈렙의 나이가 85세인데 가나안 땅은 아직 싸워서 얻어야 될 땅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여호수아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좋은 땅, 이미 정복한 땅을 달라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요구한 땅은 가장 정복하기 어렵고 힘든 땅입니다. 힘 있고 강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민수기에서 열 정탐꾼이 보고 놀란 사람들이 바로 거인족 아낙 자손이었습니다(골리앗의 조상). 이곳 이름이 기럇 아르바로 불렸는데 그 의미도 얼마나 힘센 거인이 살았는지 이름도 “거인의 땅”입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땅을 요구합니다. 왜 갈렙은 이곳을 요구했을까요? 저는 이 갈렙의 모습에서 참 은혜를 많이 받았고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려고합니다. 첫째, 갈렙은 끝까지 믿음의 비전을 놓치지 않은 지도자입니다. 갈렙은 민수기 14장 이후 광야를 떠도는 38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가나안 땅에 대한 꿈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의식이 분명한 지도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꿈이 분명해졌고 이제는 목적지까지 확실히 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정한 보이지 않는 목표, 내 자신만을 위한 뜬 구름 잡는 목표는 바뀝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매일 이루어지지 않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낙심하고 불평하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지고 분명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마라톤의 세계 최고 기록은 독일 BMW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42.195㎞를 2시간 2분 57초에 완주하며 사상 처음으로 2시간 2분대에 진입한 데니스 키메토(30·케냐)입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모릅니다. 마라톤 선수가 2시간 10분 안에 42.195킬로를 뛰려면 100미터를 평균 17-18초 사이를 계속 유지하며 뛰어야 합니다. 그럼 마라톤 선수들이 전반부에 더 잘 뛸까요? 반환점을 돈 후반부에 잘 뛸까요? 예! 상식적으로는 전반부에 힘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잘 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빨리 뛰는 것은 반환점을 돌고부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골인지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시간이 지날수록 골인지점인 가나안 땅이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기대했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목적지를 분명히 알려준 사람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자기만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확신을 주고 같이 성공을 함께 나누어 갖습니다. 둘째로, 갈렙은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지도자였습니다. 갈렙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이유를 대라면 한두 가지, 하나님의 약속과 도우심 밖에는 없지만 정복할 수 없는 이유를 대라면 10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지금 갈렙의 나이 85세입니다. 그 땅은 가장 강한 사람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또 골짜기입니다. 무기도 변변한 게 없습니다. 전쟁을 해 본 사람도 없습니다! 등등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 갈렙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가 85세지만 40년 전과 똑같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땅을 당연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말 체력이 지금이나 그 때나 똑같습니까? 아니지요 다만 믿음이 똑같을 뿐입니다. 나중에 보면 이 땅을 정복한 후에 갈렙은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자기 조카인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을 통해 다른 지파의 땅 정복을 도와줍니다. 이제는 체력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땅만큼은 직접 정복합니다. 갈렙이 이렇게 직접 노년의 나이에 전쟁을 한 것은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땅이 40년 전 백성들이 포기한 땅이었는데 그 때 갈렙은 정복할 수 있다고 당당히 외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지만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도 분명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는, 이제는 백성 전체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별로 싸워야 합니다. 이제는 여호수아가 다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제일 많은 갈렙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가장 어려운 땅을 정복하므로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하니 너희도 할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과 은혜로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갈렙같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강한 군대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마치 갈렙은 이미 이 땅을 정복한 사람처럼 달라고 합니다. 또 여호수아도 마찬가지로 마치 정복한 것처럼 이제 가지라고 허락합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아낙자손이 들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이것을 가리켜 떡 줄 사람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신앙을 김칫국 신앙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김치국은 많이 마실수록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이런 김칫국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믿음의 지도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갈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말씀이 8,9,14 절에 3번 나옵니다. 그런데 갈렙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는 말이 나오는 본문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특징짓는 단어들이 나오는데 예를 들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 노아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앙, 요셉은 형통한 신앙처럼 그 사람을 특징짓는 단어가 나오는데 한마디로 갈렙의 신앙 특징은 온전히 좇은 신앙입니다. 좇았다는 말의 히브리 원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하나는 만족시켰다는 뜻이고, 하나는 붙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의미 같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붙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믿음을 이렇게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찰떡 신앙, 주님께 찰떡처럼 달라붙어 만족시키는 사람이 진정한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찰떡 신앙을 가진 사람이 김칫국 신앙, 곧 성공의 신앙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가나안 정복이 천국에 들어가는 상징이면서 또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이루는 성공적인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갈렙은 85세의 노인이지만 바로 우리의 모델이요 거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후배와 자녀들에게 바로 이런 모델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갈렙처럼 살아가면 주님의 성공을 얻을 뿐 아니라 나의 성공도 같이 얻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 누가 가장 좋습니까? 예!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갈렙 자신과 유다 지파가 제일 좋은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성공도 이루는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성공만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성공은 이루어도 결코 하나님의 목적은 이룰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열심히 사는 교포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이민을 오셨는데 목사님이 근황을 물어봅니다. 집사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저요 요즘 미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래요? 뭘 하시는데요? 저 요즘 청소 열심히 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만났습니다. 집사님 요새는 뭘 하십니까? 제가 요새는 미국을 누비고 다닙니다. 뭘 하시는데요? 제가 요새 봉제 공장에서 열심히 바지를 누비고 있습니다. 이 분이 이제 자리를 잡고 기술을 배운 겁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또 만났습니다. 집사님 요새는 뭐하십니까? 제가 요즘은 미국을 주름잡고 다닙니다. 하루 종일 세탁소에 옷을 주름잡고 있습니다. 그 분이 이제 돈을 모으고 기술을 배워 사업을 하게 된 거지요. 중요한 것은 미국을 쓸고 다니든 누비고 다니든 주름잡고 다니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미국 교포들뿐이겠습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내가 왜 열심히 일하느냐?를 알고 사는 겁니다. 그 목적을 알고 살아야 올바른 성공도 할 수 있습니다. 잘 막고 잘 입고 잘 살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내가 사는 모습을 통하여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삶이 있어야 진정한 성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갈렙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참된 성공을 이루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학더보기 +
-
김병중 08-10 00:23
복음주의와 개혁주의(2)
II. 개혁주의 복음주의가 이신칭의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것으로부터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절단성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했듯이 개혁주의도 처음 사용된 의미에서 후에 범위가 확대되어 개념규정을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1. 개혁파와 개혁신학: 그 역사적 시작 본래 개혁신학은 천주교회를 오직 성경에 근거해서 개혁하자는 종교개혁 사상 중에 처음에는 루터파 사상과 비교하여 좀 더 성경적인 방향의 생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대개 그 대변자인 쯔빙글리나 칼빈과 그와 생각을 같이 하던 분들의 생각을 지칭하여 개혁파(Reformed)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에는 루터파와 영국 교회(성공회) 사상 일부와 개혁파에서 분리된 알미니안 사상과 비교하여 좀 더 명확하게 이런 방향을 지향해 나간 생각을 개혁파라고 하였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개혁주의라고 지칭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the Roman Catholic Church)의 신학과 실천을 개혁하자는 종교개혁(Reformation) 운동 중에서 한편으로는 루터파 교회(Lutheran Church)와 조금 생각을 달리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례파와 견해를 달리하는, 그러다가 자신들의 입장도 개혁파로 인정해 달라는 (그리고 함의상 자신들의 주장으로 개혁파 사상으로 삼자는) 항론파(the Remonstrants, 이를 후에 일반적으로 알미니우스주의라고 언급하게 된다)에 반하여 나름대로 성경에 충실한 사상과 그런 교회를 지향해 가는 것을 개혁파라고 하며, 그런 사상을 가지는 교회를 개혁파 교회라고 한다. 그러므로 프랑스 개혁파 교회들과 그들이 흩어진 유그노의 전통 속에서 나타난 사상, 그리고 스위스의 취리히와 제네바에서 시작되었고 그런 전통을 개혁파라고 한다. 개혁파의 신학이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이다. 개혁신학을 가진 교회들을 개혁파 교회라고 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개혁파 운동 또는 (칼빈은 이런 용어가 나타나는 것을 싫어했을) 칼빈주의(Calvinism) 운동이라고도 표 현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를 지향하는 교회를 개혁(파) 교회라고 하였고, 스코틀란드에서는 스코틀란드 교회(the Church of Scotland)라는 장로교회가 형성되었다. 그들이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그들의 후예들로 구성된 (Reformed Church in America나 Christian Reformed Church 같은) 개혁교회와 (미국 장로교회와 같은) 장로교회가 따로 존재하게 되었지만, 이들의 신학과 사상은 근본적으로 개혁신학이기에, 이들 모두를 개혁파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처음 온 선교사의 한 분인 언드우드(Underwood)는 개혁파 교회(RCA)의 신학교인 뉴 브룬스윅(New Brunswick) 신학교 출신이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장로교의 선교 지원을 받아 장로교 선교사로 와서 우리나라에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개혁신학을 가진 교회이므로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구분은 원칙상 없다.1) 2. 개혁 교회 안에 나타난 잘못된 다양성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서구의 교회와 그 신학의 변화가 일어났다. 좀 더 성경에 충실해 가려는 좋은 의미의 변화는 모든 사람들이 환영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이상한 변화들이 온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프란시스 툴레틴(François Turrettini, 1623–1687) 이후 그의 아들 쟌-알퐁스 툴레틴(Jean- Alphonse Turrettini, 1671–1737)을 비롯한 제네바 교회의 변화와 같은 변화, 처음 성경에 충실한 모습에서 점점 변화해 간 화란 개혁파 교회의 모습, 비슷하게 성경을 온전히 믿는 것을 벗어난 스코틀란드 교회와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개혁파 교회 안에 성경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과 성경을 비평적으로 보자는 사람들이 같이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단적으로는 개혁파 교회 안에 있지만 자유주의적 방향을 취해 나가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같은 분도 있게 되었고, 그것을 너무 지나치다고 하면서 비판하지만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 보다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는 역동적 사상을 제창하는 신정통주의 입장을 주장하는 칼 바르트(Karl Barth)와 그에게 찬동하는 분들도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에서 아주 소수파인 개혁파 교회 안에 정통주의적 개혁신학을 가진 분과 슐라이어마허적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분들과 본래 스위스 사람인 바르트의 영향을 받는 분들이 있게 되었다. 더 소수인 프랑스 개혁 교회에서도 역시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게 되었으나 정통 개혁파 사람들은 너무 소수가 되어, 프랑스에서는 “개혁파”하면 정통주의 개혁파가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2) 마찬가지로 개혁파적인 종교개혁을 이룬 스위스 교회는 개혁파 교회인데, 그 안에 정통파 사람들과 자유주의적 생각을 가진 분들과 바르트와 같은 신정통주의적 입장을 가진 분들이 같이 있게 되었다. 상황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교단으로 따지면 어디나 그런 결과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개혁파 교회들인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안에 잘못된 의미의 다양한 신학이 있게 되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3. 우리가 지향하는 정통파 개혁주의 개혁파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루터파 입장을 지지한 분들이 17세기에 루터파 정통주의(Lutheran Orthodoxy)를 확립한 것과 비슷하게, 개혁파 입장을 드러낸 분들이 개혁파 신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학문적으로 철저화한 17세기의 개혁파 정통주의를 지칭하는 역사적 용어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천주교회 신학이나 동방정교회 신학과 다르고, 루터파 정통주의와는 다른 신학으로 개혁파 정통주의를 언급한다. 이런 역사적 개혁파 정통신학과 연관하면서 17세기에 있는 그 모습으로만이 아니라, 16세기 개혁파 입장에 충실한 입장을 17세기에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잘 체계화한 것과 같이 18세기에도 일부가 데까르트의 철학적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그런 비판적 태도로 카르테시안(Cartesian) 신학을 추구하여 결국에는 합리주의를 추구하여 19세기의 본격적인 자유주의로 나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개혁파 정통주의 입장에 충실한 신학을 유지하며 발전시킨 분들이 있었다. 19세기에 성경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신학을 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개혁파 정통주의를 유지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20세기에도 여전히 그런 입장을 유지한 분들이 있고, 21세기에도 여전히 개혁파 정통신학 입장에서 신학을 하는 분들이 있다. 예전과 같이 대다수가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고 점차 소수가 되어간다는 문제가 있고, 입장이 다른 분들과 대화하면서 일부 철저하지 못하는 입장을 드러내는 분들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개혁파 정통주의에 철저히 서서 신학하시는 분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는 개혁파 정통주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3) 4. 개혁파 정통주의의 기본적 주장4) 내용적으로는 개혁파 정통주의는 철저한 “성경주의”(biblicism)를 뜻한다. 우리들이 내세우는 것으로도 그러하고, 다른 신학적 입장을 지닌 분들이 개혁파 정통주의를 그렇게 부르면서 조롱했던 것으로 보아서도 우리들은 성경주의를 지향한다. 단지 우리가 어떤 이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바와 같이 성경을 우상 숭배하듯 하는 성경숭배주의자들이거나 성경을 “종이 교황”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개혁주의는 신학에서나 교회에서나 일상생활에서도 성경에서 자증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 신학은 ‘바른 신학’이라고 하였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바른 교회’라고 하였으며,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생활을 ‘바른 생활’이라고 설명하면서 표현하기도 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성경의 사상에 충실한 신학을 하여 성경에 대해서든지, 하나님에 대해서든지,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지 성경이 말하는 바에 철저히 따라 가되, 그 일을 우리의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하는 이성”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거룩한) 감정”과 “성령님을 따르는 의지”로 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가려고 하는 것이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인격적인 작업이고, 전생애적 작업이기에 이런 개혁신학적 작업은 항상 지속되어야 하며, 우리 시대의 교회가 이전 시대의 성경에 신실한 교회들의 모범을 따라서 계속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전교회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일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성경을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가는 교회 공동체가 같이 감당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이 신학은 교회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한편으로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하는 매우 이론적인 작업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존재 전체가 동원되어 하는 매우 실천적 작업이다. 따라서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한 후에 신학은 매우 이론적이며 동시에 매우 실천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1)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 먼저 성경에 온전히 따르는 개혁주의의 신학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도 철저히 따르기 원하는 성경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에 대한 가르침 받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철저히 따르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포괄적인 주권을 강조하게 된다. 어떤 분들은 개혁파 사상의 유일한 특성으로 하나님의 전포괄적 주권에 대한 인정을 언급할 정도로 이것은 개혁주의의 가장 큰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절대적이어서 하나님을 대립하여 서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언 하는 것이 개혁주의이다.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이 잘 표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이란 이 세상에 하나님 자신 이외에 어떠한 다른 궁극적 권세도 없으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 그것을 대적하는 모든 반대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2) 죄에 대한 철저히 성경적인 이해 성경에 철저한 사상에서는 어디서나 “죄”가 심각한 문제로 드러난다. 죄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공격하고, 하나님께서 내신 법 을 어기고 자신을 주장해 가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러 신학 중에서 개혁신학이 죄의 심각성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죄를 자신을 주장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일의 철저성에서도 그러한다. 그래서 개혁신학은 다른 건전한 신학과 함께 죄를 그저 “선의 결여”(privatio boni) 정도로 표현하는 어거스틴의 표현 방식이 너무 소극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죄는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적 태도요 행위라는 것을 잘 지적한다. 죄는 하나님의 주권을 상대화시켜 보려는 모든 인간의 시도로서 그 어떤 형태의 죄도 다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죄를 (천주교회에서와 같이) 대죄(cardinal sins)와 소죄(가벼운 죄, venial sins)를 나누지 않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라 생각해 보면 죄는 그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해 가는 무시무시한 일이기에 죄인은 누구나 형벌 받아 마땅한 존재다. 인류 최초의 “처음 죄”(the first sin) 때문에 있게 된 "본래적인 죄책"(original guilt) 과 "본래적인 부패성"(original corruption)을 원죄(original sin)라고 부르면서 그것의 심각성을 가장 깊이 의식하는 사상도 철저히 성경을 따르려고 하는 개혁신학적 사상이었다. 물론 원죄는 천주교회도 말하고 루터파도 말하고 알미니우스주의자들도 다 말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인식하는 정도는 다 다르다. 펠라기우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원죄를 부인하여 아담의 죄된 모범이 후대에 죄를 쉽게 지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지만 그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선조들의 잘못된 모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펠라기우스 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죄의 부패성을 철저히 인정하지 않은 일이 많았고, 그것이 후대의 잘못된 신학사(新學史)를 만든 것이다.5)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사상들을 일일이 비판하는, 하나님 주권을 대변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개혁신학의 철저히 성경적인 구원론을 형성한다. (3) 철저히 성경적인 구원론 우리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우리 신학의 일차적, 근원적, 최종적 근거)과 구원 받은 우리의 경험(우리 신학의 간접적, 보충적 근거)에 비추어 볼 때 누구나가 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혼자의 힘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고백 해야 한다. 즉,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면, “구원 문제에서의 하나님 독력주의(獨力主義, monergism)”를 말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많은 생각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오래된 신인협력주의[synergism] 사상을 지닌 천주교회에서처럼) 성경만을 철저하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에 대해서 우리식으로 생각하면서 이를 좀 더 “합리주의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다가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에 속한 사람들도 주의하지 않으면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잘못되어 갈 수 있기에 우리들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개혁파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반어적(反語的)인 상황의 하나는 개혁파 사람들 가운데서 알미니우스주의(Arminianism)가 나왔다는 것이다. 화란 개혁파 교회 안에서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생각과 사상에 대해서 검토해 보도록 요청 받은 제네바 유학 출신의 야곱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 10. 10– 1609. 10. 19)가 내면적으로 그들에게 동의하면서 공식화 되게 된 “항론파”(Remonstrants)가 그의 이름으로, 즉 “알미니우스주의”(Arminianism)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이다. 이것에서 보여 지듯이 이런 사상이 정형화 된 것에는 그의 내적인 공헌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개혁파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우리가 참으로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을 보증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가 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잘 배운 후에 생각하기를 어떤 사람은 주께서 선택하셔서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않으셔서 구원하지 않았다고 하면 마치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분 같은 인상을 받으실 수 있으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해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어떤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을 믿을 것이니 그 믿음을 미리 보고서, 더 나아가서 그들의 선행을 미리 보고서 선택하시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소위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을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알미니우스적 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더 강화시킨 것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속[소위 보편 구속, universal atonement]을 이루셔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고,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읽다보니 그야말로 그리스도는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선포하는 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런 복음이 선포 될 때에 각기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사상에서는 인간은 타락하기는 했어도 전적으로 타락하지는 않아서 복음이 들려 오면 스스로 복음을 선택하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복음 선포와 함께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도 그 은혜를 인간이 받을 수도 있고 저항할 수 도 있는 은혜(resistable grace)라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보편적인 복음 선포를 위해서 생각하고 말한다고 하면서도 과연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피를 흘려주셨어도[보편 구속, universal atonement] 궁극적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보편구원(universal salvation)은 아님] 는 것을 잘 의식하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때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가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않은 것이고, 혹시 그것을 의식한다고 해도 그렇게 말해야만 인간의 선택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의 효과를 구원의 근거로만 만들고, 유효한 구원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혁파 교회는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것은 실제적인 구원을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피흘려 주신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받는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중생에 의해서 변화되었기에 주님을 믿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은(엡 2:1, 렘 17:5) 스스로 자신의 능력으로 주님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유효한 구속이 중생으로 이루어 여기서 나로 믿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 구속에서 나온 이 믿음은 영원 전에(엡 1:3-5)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하신 선택을(로마서 9:11-13 참조)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을 따라서 우리의 구원이 철저히 그리스도의 구속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라고 믿기에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오직 은혜”(Sola Gratia)를 선언한다. 이를 철저히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그런 우리들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직 믿음”(Sola Fide)을 강조한다. 이신칭의를 참으로 바르게 믿어야만 이런 구호들이 말하는 바를 제대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서 배운 것 이기에 “오직 성경”에서 배우고, “오직 성경” 대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산다. (4) 개혁주의적 삶에 대한 강조 구원에 대해서 철저히 성경적인 이해를 가진 개혁신학은 구원받은 성도로 사는 삶에 대해서도 철저히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입장을 제시하고 그것을 강조해 왔다. 여기서 개혁주의가 (초기 근본주의와는 다른) 좁은 의미의 근본주의와 어떻게 다른 지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좁은 의미의 근본주의는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것을 철저히 믿으려고 하는 점에서는 개혁주의와 같지만, (1) 신앙을 강조하면서 학문에 대한 관심이 적어 반지성주의적(反知性主義的) 형태로 드러나며, (2)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고 오직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만 집중하며, 따라서 (3) 전도 이외에는 이 세상에 대해서 상당히 무관심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입장이다. 이런 좁은 의미의 근본주의는 성경을 철저히 믿으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혁파와 의견을 같이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3가지 점을 중심으로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믿되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아가는 근본주의를 성경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바른 대안이 역시 “개혁파 사상과 삶”(이것을 흔히 Calvinism이라고 한다)이 라고 할 수 있다.6) 이것은 과거의 개혁주의가 성경에 충실해서 이점에 있어서 좋은 입장을 잘 견지해 왔다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과연 개혁파인지를 판가름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기본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활동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살게 된다는 것을 개혁신학은 성경에 근거해서 강조해 왔고 또 늘 그렇게 해야만 한다. 따라서 구원받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세상 안에서 사회적 문화적 활동에 힘써 나가는가, 아니면 좁은 의미의 종교적이고 소위 교회적인 일에 집중하므로 이 세상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게 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진정 개혁파적인지, 아닌지가 드러나게 된다. 개혁파 성도는 그가 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믿으며 참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활동한다. 그 일상의 일의 상당 부분이 직장에서 하는 활동이고, 이 세상 속에서 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개혁파적인 이해에 의하면, 이 세상은 우리의 사역의 무대이다. 물론 이 세상은 하나님에게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때로는 상당히 적대적이지만 바로 그 세상에서 그 세상의 사람들을 잘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에로 끌어 들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는 보도록 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목표이기 때문에 개혁파적인 성도는 이 세상의 삶의 영역에서 매우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 대개 이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은 (1) 자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하거나, 아니면 (2) 이 세상에서 귀한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적 가치를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개혁파 성도들은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서 열심히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 성도는 먼저, 우리들이 과연 자신들의 유익에 대해서, 또한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심이 없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거나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개혁파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 그리스도인들은, 칼빈 때로부터, 철저한 자기 부인(self-denial)을 늘 강조해 왔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의 모든 활동이 개혁파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이런 철저한 자기 부인을 토대로 하여 행하는 이 세상의 사회적 문화적 활동에 대한 적극적 관여와 활동은 오로지 하나님 나라를 잘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이 세상이 마땅히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성장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일들을 좀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하려고 하게 된다. 일단은 자신의 직업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개혁파에서는 루터와 함께 우리의 직업을 “소명”(vocatio)으로 의식하면서 하나님 께서 나를 불러서 시키신 일을 가장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성령님의 의도대로 하여 가려고 애쓴다. 여기에 개혁파의 진정한 모습이 있다. (5) 폭 넓은 문화 활동과 문화 변혁 활동에 대한 강조 지난 절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개혁파 성도는 삶의 영역 전반에서 하나님께서 철저히 순종하려 고 하기에 직업과 관련된 일을 할 때도 그 활동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활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논의했다. 우리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이 직업 활동에 드려지기에 직업에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지 않고,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섬겨 가지 않는 사람은 결국 삶의 대부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삶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 백성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직업의 영역에서만 하나님을 섬겨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직업 활동 이외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을 섬겨가야 한다. 그것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직업 영역 밖에서의 문화 활동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취미나 특기 등에 해당하는 활동이다. 또한 여가를 어떻게 사용할 것 인가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한다. 이 영역은 이 세상도 오늘날 많은 분들이 점점 더 강조하여 가는 영역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좋아서, 또는 건강을 위해서, 또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하여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런 목적만을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들도 여가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건강을 위해서, 또 사람들과의 사귐을 위해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런 활동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런 여가 활동도 우리들은 이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키기 위한 활동의 한 부분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문화 변혁 사역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우리가 전문 분야로 하는 직업 영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직업 이외의 관심 분야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문화 변혁은 주로 전문가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전문가들만 있고 그들이 생산하는 문화 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다면 실제적인 문화 활동의 유지나 변혁이 잘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러므로 문화 영역 전반에 대한 우리들의 비전문가적 참여도 전문가들의 활동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직업 활동 이외의 시간인 여가 시간에 즐기는 활동도 그저 단순히 자신의 유익이나 건강 증진이나 스트레스 해소 등의 목적만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 과연 어떤 문화가 주도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지를 생각하면서 교양인으로 문화생활에 폭 넓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문화 영역에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으니 그 중의 한 영역을 택하여 지속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그 일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아마튜어로서의 연륜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지닌 후에는 이런 분들도 웬만한 전문가의 식견에 가깝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런 분들이 상당수 모여서 전문가들의 활동을 누리고 감상하고 비평도 하는 집단이 되어 갈 때 이는 아주 강력한 문화 변혁 그룹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이고 하나님 나라적 관점에서 문화에 참여하여 나간다면 이 세상의 문화가 좀더 바른 방향으로 변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문화 영역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거나, 문화 영역에 대해서 불신자들의 향유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문화를 향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믿지 않는 분들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분들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려고 하는가를 비교해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영화를 선택하여 본다고 할 때 불신자의 영화 선택과 신자의 영화 선택에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여가를 보내는 영역에서 참으로 성경적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며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파 성도들답게 사는 중요한 방식이다. 여가는 전혀 허용하지 않는 일중독자(workholic)로 사는 것이나, 여가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직업 활동에서와는 달리 순전히 자아에 몰입하기 위해 여가 활동에 치중하는 것도 기독교적이거나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부디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 여가도 즐기되, 그 일이 이 세상의 문화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7) 그것이 진정 개혁파 성도다운 모습이다. (6) 성경적 교회에 대한 강조 개혁주의는 항상 이 땅 가운데 성경적 교회를 드러내는 일을 강조해 왔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적 교회를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일과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 다. 첫째는 그 교회의 모든 것이 성경적이려고 하려는 일에 큰 관심을 지닌다. 교회의 예배 나목회나 행정이나 교육이나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이 성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따라서 그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지금도 통치하시니 하나님이 주관하여 가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교회와 관련된 하나님의 주권과 주도성을 인정 함]. 셋째는, 그 하나님을 믿으니, 열심을 품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열심]. 이 세 가지는 성경에 따른 개혁파적인 교회가 이 땅에 강력하게 나타날 때마다 그 성도들이 나타낸 특성들이다. 따라서 우리들도 교회와 관련해서도 (1) 성경적이려고 해야 하고, (2)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며, 따라서 (3)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둘째와 세 번째 특성을 먼저 다루고자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주도권을 인정하기에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가장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큰 열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칼빈주의자들은, 예전에 어떤 교수님이 잘 표현한대로, 열정 칼빈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개혁파 신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그것도 개혁신학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교회를 주께서 세우시고, 지금도 통치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섬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열심히 하는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이라는 말의 뜻이다. 우리의 교회에 대한 이해도 ‘성경적’이어야 하고, 우리의 교회 섬김도 ‘성경적’이어야 한다. 그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진정한 개혁주의자들은 항상 교회 일에 열심인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참으로 개혁신학의 후예들이다. 천주교회의 잘못된 교회 이해와 교회 섬김 이해를 성경적으로 개혁한 분들이 바로 개혁자들이었으니, 우리도 그 분들의 열심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교회를 성경적으로 세워 가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 일단 성경이 말하는 대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라는 성경적 교회관을 분명히 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 성도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전”이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고,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이해를 분명히 하여8) 다른 잘못된 교회 이해를 극복해야 한 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가 성경적이 되게끔 하며,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절하는 것이 되게끔 하는 데 모든 힘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배 형식만 고친다고 되는 것이나 사용하는 용어를 조금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意識)이 전반적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 삼위일체 하나님께 그 엄위에 부합한 경배를 한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 중생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온전한 의를 가지고서만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내신 예배의 원칙을 잘 배워서, 진정 하나님께 적절한 성경적이며, 영적 예배를 하는 일에 힘쓰게 된다.9) 우리 교회들이 이런 예배를 드리는 참된 개혁파적인 교회이기를 원한다. III. 나가면서: 복음주의의 개혁주의의 바른 관계성 따라서 우리가 말한바 정통파 개혁주의는 ‘복음주의적 개혁주의’라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이는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파나 바르트와 같은 신정통주의적 개혁파가 아닌, 참으로 정통주의적 개혁파, 복음주의적 개혁파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복음주의에는 다양한 신학과 운동들이 다 포함된다. 우리가 배제한 바 있는 비복음주의적 복음주의를 제외하고도, 다양한 생각들이 복음주의 안에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웨슬리를 그의 의도대로 철저히 따르면서 성경을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그 말씀을 듣고 회심한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에 잘 표현된 이신칭의의 복음을 참으로 믿고, 그런 믿음으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분들은 복음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웨슬리적 알미니안도 복음주의 안의 한 부분이다. 온 세상에 있어서 20세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다양한 오순절 교회도 복음주의의 한 부분이다. 또한 미국의 바이블 벨트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속하고 있는 세대주의도 복음주의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복음주의는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으로 믿고 실천하며 사는 다양한 그리스도인들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현상으로서의 복음주의를 우리는 잘 관찰해야 한다. 또한 1930-40년대에 복음주의가 미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와는 달리 1970년대 이 후로 변화된 복음주의도 일단 이런 복음주의 현상 속에 있다. 코든 콘웰신학교의 데이비드 웰 스 교수께서 잘 분석한 바와 같이 근자의 복음주의는 아주 무의식적으로 세속적 복음주의, 따라서 재구성된 복음주의, 무의식적으로 현대성(modernity)과 후-현대성(post-modernity)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철두철미 실용주의로 옷 입은 복음주의”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근자의 복음주의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는 세속화와 현대성에 비판해 온 복음주의가 무의식적으로 현대의 문화에 완전히 잠식당한 모습은 그야 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웰스가 잘 표현한 것과 같이 근자의 복음주의는 “고전적 복음주의자들이 지은 집 밖에 있는” 것이다.10) 복음주의가 사실 복음주의 밖에 있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우리들은 이런 점을 잘 관찰한 웰스 교수의 탄식을 잘 듣고 그와 함께 탄식하면서, 복음주의가 새롭게 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복음주의를 참된 복음주의답게 하는 일을 잘 해내 고 있는 데이비드 웰스와 그의 젊은 후임자라고 할 수 있는 리쳐드 린츠는 철저한 개혁파 신학자이다. 그런데 그들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복음주의를 버리고 개혁주의를 취하라고 하지 않고, 복음주의가 참된 복음주의가 되도록, 우리가 본 받아야 하는 과거의 좋은 예를 제시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촉구한다. 기본적으로 16세기 개혁자들의 예를 따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시기의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흥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웰스 교수의 외침은11)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주의가 참된 복음주의가 되려면 종교 개혁자들의 그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복음주의가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 즉 성경적 정통주의로 되돌아 갈 것을 촉구한다.12)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준 진리를 고백하는 개신교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 교회들이 그리하였 듯이,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은 신학(historic Protestantism)이 필요하다고 한다.13) 이런 제안을 하는 웰스의 신학을 다음 같이 정리하여 제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철저힌 복음주의적이고, 결국 개혁파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1) 그는 성경이 성령에 의한 영감되었음과 성경의 충족성을 온전히 주장하고,14) (2) 하나님의 거룩성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 변호하며,15) (3) “우리들은 그리스도가 없이는 도무지 용서 받을 수 없는 그런 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16) 그 죄는 하나님께 대한(against God) 범죄이기에 “가장 근본적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뒤틀림”이라고 하고,17) 타락한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을18) 정확히 보는 성경적 죄 이해에 충실하다. 또한 그는 (4) 그리스도 사역의 충족성을 잘 드러내고, 유일하신 신인(神人, the God-man)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시고 그의 재림으로 그 나라를 극치(極致)에 이르게 하실 분 이시라는 것을 잘 강조한다.19) (5) 그러므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업적을 손상 시키는” 것이 된다는 것(Christ alone)을 잘 지적하면서,20) 이를 분명히 해야만 “오직 은혜”(sola garatia, grace alone)를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21) (6) 만일에 “중생이 없으면 새로운 삶도, 하나님을 향한 욕구도, 하나님을 아는 가운데 하나님 앞 에서 살 수 있는 역량도 없게 된다”고 주장하며,22) (7) 교회를 구속받은 성도들이라고 하고,23) [어거스틴이나 개혁자들을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자라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4) 그는 또한 (8) 교회의 표지를 개혁파의 3가지 표지로 명확하게 제시하고,25) (9) 완전한 사람과 교회는 이 땅에 없으나(pace perfectionism and pace Donatists)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면서 은혜에 근거해서, 그저 사회적 교양의 태도(social niceness) 이상의 경건의 삶을 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26) (10)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자고 권한다.27) 이처럼 웰스는 모든 면에서 참으로 철저한 개혁파 정통신학자이다.28) 이를 보면 그가 참으로 복음주의자이면서 개혁파 신학자라는 것이 아주 분명하지 아니한가? 복음주의를 철저한 복음주의가 되도록 외치고 이끄는 개혁파 신학자의 한 예가 여기 있다. 또한 고든 콘웰에서 그의 후임자라고 할 수 있는 리쳐즈 린츠도 복음주의 신학을 새롭게 하자고 복음주의 신학의 프로레고메논을 제시하면서 요나단 에드워드와 게할더스 보스가 제시했던 구속사적 방법을 따라 현대 복음주의 신학이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도 했었다.29) 바로 이런 것이 정통파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바른 관계라고 생각된다. 데이비드 웰스와 린츠가 한 작업을 우리는 우리의 상황 속에서 해야 한다.30) 이것이 어떤 사회에서건 개혁파 사람들이 동료 복음주의자들과 관련하여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한 복음주의자가 다른 복음주의자들에게 참된 복음주의자들이 되자고 설득하는 것이다. 19세기에 핫지와 워필드가 막 세속화되기 시작하던 미국에서 했던 일, 20세기 말에 웰스와 리쳐드 린츠가 세속화된 미국에 서 했던 일을 우리들이 개혁파 복음주의자들로서 여기 이곳에서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미주 1) 화란 개혁파 교회와 스코틀란드 장로교회의 교회 운영상 사소한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사 소한 차이이지 그 두 교회가 서로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그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르 트 회의와 같은 소위 International Calvinism을 드러내는 국제적 모임에서 다 같이 개혁신학의 이 름으로 같이 모인다. 2) 그래서 악상 프로방스에 있는 아주 좋은 정통 개혁파 신학교는 학교 이름을 개혁파 신학교(Reforemd Seminar)에서 얼마 전에 깔뱅 신학교(Calvin Seminar)로 고칠 정도가 되었다. 3) 상당히 다른 형태로 정리된 것이지만, 이전에 개혁주의의 특성을 제시하려고 했던 필자의 시도로 다 음을 보라. 이승구, “개혁신학의 독특성” (1987),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 (서울: 웨스트민스터 출판 부, 1995), 91-135; idem, “개혁신학이란 무엇인가?: 개혁신학의 특성들”(2005),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개정판 (서울: CCP, 2018), 15-28. 4) 이하 이 절에서 제시한 것은 당시 편집장이신 현창학 교수님의 요청에 따라서 개혁파 신학의 특성을 규장하기 위해 <합신은 말한다>에 여러 번 연재되었던 것임을 밝힌다. 5) 이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기에 이해하기 좋은 진술로 이승구,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 (서울: 여 수룬, 1998), 최근판 (서울: 나눔과 섬김, 2015), 83-89.를 보라. 6) 이를 잘 드러낸 것이 역시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Grand Rapids: Eerdmans, 1931)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로 다음을 보라. 이승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생 애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 「교회와 문화」 33 (2014년 여름):119-46; “우리에게 아브라함 카이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로교회와 신학」 12 (2015): 160-83. 또한 2021년 봄 개혁신학회에서 발제 한 박태현 교수의 논문도 보라. 7) 그 방식에 대한 논의로 다음을 보라. 이승구, “기독교적 문화변혁론”, 한국 교회가 나아 갈 길 (서 울: SFC, 2007), 개정판 (서울: CCP, 2018), 361-84. 8)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이승구, 교회란 무엇인가?(1996), 개정판 (서울: 말씀과 언약, 2020)을 보라. 9) 여기서 말하는 바른 예배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이승구, 한국 교회가 나아 갈 길, 47-117을 보 라. 10)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18. 11) Wells, Losing Our Virtue, 209; Wells, God in the Wasteland (Grand Rapids: Eerdmans, 1994), 227. 12)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 57f. 13)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1을 인용하면서 이승구, 데이비드 웰스와 함께 하는 하루, 74 에서 했던 말이다. 14)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75-84=용기 있는 기독교, 홍병룡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8), 120-32. 웰스는 하워드 마샬의 성경관과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말씀하신 이미지 중 일부는 받 아들일 수 없고, 과거에 그런 식의 계시를 주셨지만 “지금은 우리들은 거기서 해방시키신다”는 견해 (I. H. Marshall, Beyond the Bible: Moving from Scripture to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04])와 성경이 시간을 초월한 불변적 진리를 담고 있거나 그런 식으로 전달된 것이라는 견 해를 조롱하면서, 성경은 마치 마지막 막은 쓰지 않고 주신 대본 같아서 우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보충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라이트의 견해(N. T. Wright, The Last Word [San Francisco: HarperCollins, 2005])를 비판한다(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85-86=용기 있는 기독교, 133-34). 15) Wells, God in the Wasteland (Grand Rapids: Eerdmans,m 1994);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124-33=용기 있는 기독교, 특히 187-200. 16)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6=용기 있는 기독교, 341. 17)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6=용기 있는 기독교, 341. 18)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45=용기 있는 기독교, 352. 그는 이것은 어떤 테크닉을 동 원해도 고칠 수 없는 난제“라고 정확히 지적한다(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45=용기 있 는 기독교, 353). 19) Wells, The Person of Christ (Westchester, Ill.: Crossway Books, 1984), 개정역, 기독론: 그 리스도는 누구인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5);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192-207=용 기 있는 기독교, 281-302. 20)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5=용기 있는 기독교, 339. 21)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5=용기 있는 기독교, 339. 22)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7=용기 있는 기독교, 342. 23)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19=용기 있는 기독교, 317. 24)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43=용기 있는 기독교, 350. 25)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26-41=용기 있는 기독교, 327-48. 26) Cf.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39-41=용기 있는 기독교, 344-48. 27)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246=용기 있는 기독교, 354f.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은신처 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확히 지적한다. 28) 이승구, 데이비드 웰스와 함께 하는 하루, 27-28. 29) Richard L.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A Prolegomenon to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3). 30) 그런 시도와 제안들로 이승구, “복음주의와 성경”, 「복음과 상황」 (1992년 9월), 이승구, 개혁신학 탐구, 개정판, 42-52와 2001년 4월 27일 한국복음주의신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영어 발제한 다음 논문을 보라. 이승구, “세계 신학계에 대한 한국 복음주의신학의 제언: 사도적, 성경적, 종말 신학에 의 요청”,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개정판 (서울: CCP, 2018), 339-46. 또한 장로교회의 방향을 위한 제안으로 2002년 11월 25일에 열렸던 한국 장로교 신학회 제 1차 논문 발표회에서 발제했던 “21세기 한국 사회 속에서 장로교회의 의미“,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201-37도 보라. -
김병중 08-09 23:49
복음주의와 개혁주의(1)
복음주의와 개혁주의(1)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분명한 것인데 상황이 아주 복잡해져서 여러 방식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신학을 처음 하는 학우들이 늘 질문하는 문제의 하나로 “도대체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 이번 학회에서 이 주제로 논의하기로 하였으니, 특히 신학을 처음으로 하는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먼저 복음주의가 무엇인지를 간단히 논의하고, 개혁주의의 특성을 드러낸 후에,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성이 무엇인지를 논의해 보기로 한다. I. 복음주의 1. 복음주의의 기원과 다양한 영향들 복음주의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복음주의는 그저 종교적 운동으로만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운동으로 이해되야 한다는 것이 거의 보편적 이해이다.1) 기본적으로 천주교회를 개혁하면서 루터가 이신칭의의 복음이 있는 곳은 참된 교회이고, 이신칭의가 드러나지 않는 곳은 잘못된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운동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개혁자들은 이런 입장이 사도들이 가르친 복음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종교개혁 때부터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교회를 복음주의 교회라고 일컬어 왔다. 루터파 교회가 복음주의 교회(Evangelishe Kirche)로 지칭된 것이다. 물론 후에 루터파 교회 안에 다양한 신학적 성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18세기 이후에는 독일에서 말하는 복음주의 교회(즉, 루터파 교회)가 모두 다 우리가 조금 후에 말하는 의미에서의 ‘복음주의적’이지 않은 상황이 나타났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루터파 교회(에방겔리쉐 카르케)의 아이러니”라고 해보자. 일단 본래적 의미에서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제대로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운동이 복음주의였다. (계속해서 독일 상황을 말하자면) 천주교회에 반대하면서 이신칭의를 말하던 루터파 교회와 루터파 정통주의를 추구하던 이들 중 일부 (또는 상당수)가 좀 냉정해져서 엄밀한 루터파(Gnesio-Lutherans)라는 것을 강조하면서,2) 그 안에 복음적 열정이 없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 상황을 죽은 정통(dead orthodoxy)으로 인식하면서, 이신칭의를 비롯한 개신교의 기본적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교리를 배제하면서 성경에만 충실하자고 하는 독일 경건주의의 운동도3) 복음주의에 속하고, 후대의 복음주의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4) 그러므로 독일 상황에서는 루터파 정통주의에 충실하면서 복음의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루터파 정통주의를 비판하면서 나타난 독일적 경건주의 운동이 복음주의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1663-1727) 등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할레대학의 설립과 그 졸업생들의 선교적 노력, 또한 진젠도르프 백작과 함께한 이들, 즉 소위 모라비안 교도로 지칭되는 이들의 성경적 삶의 실천과 선교적 노력은 후대 복음주의 운동의 큰 토대의 하나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역시 종교 개혁에 동의하는 사람들 중에 성경과 개혁된 교회의 모습에 좀 더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청교도”라고 불렸다. 청교도는 기본적으로 영국 국교회를 좀 더 성경적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 대부분은 영국 국교회로부터의 분열을 원하지 않았고 그 안에서 개혁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청교도들은 고치려고 하는 것에 있어서 는 의견의 일치가 있었는데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5) 그래서 후대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청교도들 가운데 있었다. 이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후대의 용어로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와 21 세기에 언급되는 복음주의와 16세기 말과 17세기 청교도들 사이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청교도 운동이 이전 “영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오늘날의 소위 ‘복음주의 모자이크’와 비슷한” 것이라는 말을 사용한 일도 있다.6) 여기 청교도와 오늘날 복음주의의 특성이 다양성이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청교도는 국교회로부터 분리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후에 국교회로부터 분리한 분리주의자들도7) 복음주의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6세기 영국에는 상당히 중도적이었던 에드먼드 그린달(Edmund Grindal, 1519?-1583) 같은 켄터베리 대주교로부터8) 국교회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국교회 안에 있기를 원하였던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c. 1535–1603)를 비롯한 상당수의 청교도들, 그리고 후에 어쩔 수 없이 국교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dissenters), 특히 1660년 왕정복고 후에 1662년에 있었던 통일령(The Act of Uniformity, 1662) 때문에 일어난 소위 “대축출”(the great ejection) 때에 밀려난 2,000여명의 목사들, 즉 소위 (당시 영 국 국교회의) ‘주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the Nonconformists), 그리고 의도적인 분리주의 자들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복음주의의 선조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8세기에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로부터 타의반 자의반 분리되어 그들이 옥스퍼드에서 학생 신앙운동을 할 때부터 들었던 별명인 “법식주의자들”(methodists)라는 그 이름 그대로 교단이 된 웨슬리파 사람들인 감리교회(Methodist)의 초기도9) 후대 복음주의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는 휘필드나 요나단 에드워드 같은 칼빈주의자들과 웨슬리 같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힘을 합하여 복음주의적 운동을 했었다고 할 수 있다.10) 현대 복음주의 운동은 이들의 사역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마크 놀의 책 제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Mark A. Noll, The Rise of Evangelicalism: The Age of Edwards, Whitefield, and the Wesley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3). 18세부터 20세기에도 영국 국교회 안에도 복음주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 있었고, 국교회를 떠나게 된 감리교회는 처음에 강력한 복음주의적 모습을 드러내었다.11) 그들은 복음전도, 사회적 구호, 그리고 해외 선교를 강조하면서 <교회선교회>(The Church Missionary Society, 1799)를 만들고, <식민지와 대륙 교회 협회>(The Colonial and Continental Church Society, 1838)를 결성하여 여러 선교와 사회적 활동에 힘썼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복음주의 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표현하는 경 우도 있다.12) 물론 그것이 16-17세기 청교도들과 연관된 저교회적 태도(low church attitude)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말하지만 말이다. 당시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 많은 평신도들이 있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1790년에서 1830년대에 영국 사회의 중요 인사들로 구성된 영향력 있는 클래프햄 파(the Clapham Sect)에 속해 있었다. 그 들 중에 하원 의원도 많이 있었고 그들은 노예무역을 철폐하는 일을 위해 노력했고, 그 일을 이루었다. 19세기에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성공회 안의 천주교적 유산을 강조하던 옥스퍼드 운동 (the Oxford Movement)에 반발하면서 오직 성경에 충실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결국 이들이 힘을 합해서 1846년에 런던에서 복음주의 연맹(The Evangelical Alliance)을 형성하였다. 또한 리버플의 주교였던 존 라일 주교(John Charles Ryle, 1816–1900) 같은 이는 복음주의적 주교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상황에서는 마틴 로이드-존스와 존 스토트가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주도했던 청교도 컨퍼런스(the Puritan Conference)와 같은 모임(1956-1969)이 중요했고,13) 학문적 운동으로는 1944년에 캠브리쥐에 세워진 틴델 하우스, 그보다 영향은 적었지만 옥스퍼드에 세워졌다가 경제적 문제로 지금은 라티머 트러스로로 축소되어 런던에 있는 옥크 힐 컬리쥐로 옮긴 라티머 하우스, 그런 것을 따라 스코틀랜드에 1981년에 논의를 따라 1983년에 세워진 에딘버러의 러더퍼드 하우스 또는 개혁신학을 위한 러더포드 센터(Rutherford Center for Reformed Theology)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4) 학교로는 영국의 옥크 힐 칼리쥐(Oak Hill Theological College), 2004년에 런던 신학교(London School of Theology)로 이름을 바꾼 1943년에 성경 통신 과정으로 시작된 런던 바이블 컬리쥐 등이 초교파적 복음주의의적 선교 교육 기관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스코틀랜드의 지금은 에딘버러 신학교(Edinburgh Theological Seminary)로 이름을 바꾼 1843년 11월에 시작된 프리 쳐치 컬리쥐,15) 비교적 근자인 1994년에 Andrew McGowan과 Hector Morrison의 노력으로 세워진 하일랜드 신학교(Highland Theological College)가16) 스코틀랜드에서, 2016년에 연합 신학교(Union School of Theology)로 이름을 바꾸고 젊고 활동성 있는 젊은 학자인 마이클 리브스(Michael Reeves)의 인도 하에 활동하고 있는 웨일즈 복음주의 신학교(Wales Evangelical School of Theology)가 웨일즈에서, 그리고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러쥐, 옥스퍼드의 위클리프 홀 등이 성공회 안의 복음주의 교육 기관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1957년에 이안 머레이와 잭 컬럼(Jack Column)이 세운 개혁파 출판사인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이 그 여러 활동으로 스코틀랜드와 영국 뿐 아니라 전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와 연관된 이안 머리(Ian Murray)의 큰 영향력을 주목할 만하다. 또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IVF에 해당하는 UCCF의 활발한 활동들과17) 복음주의 신학생 모임인 이전에 TSF이던 RTSF(the Religious and Theological Students Fellowship)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인 「떼멜리오스」(Themelios)는 학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1967년부터 나오는 「에반젤리칼 타임즈 (Evangelical Times),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 그리고 1929년부터 내고 있는 분기 별 저널인 「복음주의 퀄터리」(Evangelical Quarterly)도 영국 복음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음주의의 다양성 미국에서는 그 이전까지 이민온 집단의 교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미국 사회가 19세기 초부터 사람들의 도시로의 이동이 많아지기 시작하여, 결국 미국 사회를 변혁시킨 사회 구조의 혁명적 변화의 한 부분으로 복음주의 운동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18) 현상으로서의 복음주의를19) 볼 때 무시할 수 없는 시각이다. 이런 현상으로서의 복음주의는 시대별로 다양성을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복음주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된다. 여러분들이 미국 복음주의의 다양성을 언급했다. 특히 이런 제목으로 편집된 책을 낸 북 침례교 신학교의 도날드 데이톤과 노뜨팍 신학교(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의 로버트 존스톤이 편집한 책은 그야말로 다양한 복음주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천년주의와 관련한 복음주의자들, 오순절 전통의 복음주의, 북미 성결 운동과 관련된 복음주의자들, 흑인 종교와 복음주의 정체성, 그리스도 교회적 복음주의자들, 침례교적 복음주의자들, 자의식적 개혁파 복음주의자들, 그리고 루터파 복음주의자들.20) 심지어 로버트 웨버는 복음주의라는 용어와 연관되는 14개의 다양한 복음주의자들 그룹을 언급하기도 했다.21) 그런데 1960년대 이후에는 복음주의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이보다 더한 다양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칼 바르트가 1962년에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강연한 강연 내용을 『복음주의 신학』으로 낸 것과 같은 것이 이런 다양성의 대표적 양상이다.22) 버나드 램 (Bernard L. Ramm, 1916-1992) 같은 이는 복음주의 신학을 거의 바르트주의 신학으로 생각할 정도이고,23) 유럽에서는 아주 보수적인 그룹을 제외하고서는 대개 그렇게 생각한다. 미국 복음주의에서의 이런 모습을 신정통주의의 위협이라는 말로 헌터는 표현한 일도 있다.24)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본다.25) (이 문제는 다음 절에서 복음 주의의 절단선을 논하면서 논하기로 한다.)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적 분위기를 철저히 의식하면서 그에 따라서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교회와 복음주의 신학을 전체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는 제안이 이미 1993년에 나온 바 있다.26) 또한 이 제안을 했던 지금은 돌아가신 스탠리 그랜츠(Stanley J. Grenz, 1950–2005)가 그런 입장에서 새로운 조직신학을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한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포괄적인 조직신학 책을 내기도 했다.27) 많은 작업을 하던 그렌츠가 너무 일찍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연 이와 같이 복음주의가 수정되어도 좋은지를 염려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80년대 이후로 복음주의는 너무 다양해져 가고 있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변모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사람들이 주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복음주의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영향을 받으면서 근 자에 포스트모던적 분위기에 잘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이다.28) 3. 복음주의의 절단선(The Edge of Evangelicalism)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라고 하면서 너무 다양한 입장이 나타나고 있기에 복음주의의 절단성을 분명히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에서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 비평적 입장을 유지하는 일단의 학자들은 복음주의라고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기도 했다.29) 근자에는 리쳐드 라이스(Richard Rice),30) 윌리엄 하스커 (William Hasker),31) 클락 피녹(Clark Pinnock),32) 그레고리 보이드(Gregory Boyd),33) 그들과 함께 데이비드 배신저(David Basinger),34) 존 샌더스(John Sanders)35) 등이 주장한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은 복음주의 안에 있다고 하기 어렵다는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36) 물론 이런 선언들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복음주의 입장을 넓게 유지하자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에서도 어느 정도의 절단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던 셈이다. 이 모든 것을 보며 특히 20세기 여러 신학적 논쟁이 드러난 상황을 생각하면 복음주의의 절단선으로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37) 첫째, 성경의 영감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지의 여부. 대개 자신의 입장을 복음주의와 연관시켜 신학적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성경의 권위는 상당히 높게 인정한다. 그러나 단지 성경의 권위를 말한다고해서 그런 모든 사람들이 복음주의라고 하기 어려운 것은, 그렇게 말한 후에 결국 복잡한 논쟁을 일으켜 모든 사람들과 복음 주의 교회를 결국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영감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영감의 방식으로는 유기적 영감과 영감의 정도로는 축자영감을 말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주의 입장이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말이 받아쓰기 같은 방식으로 주어졌다는 기계적 영감을 바른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한 바도 없고, 기본 사상이나 핵심만 영감 했다는 사상 영감은 복음주의의 영감론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인간의 모든 특성을 다 사용하셔서 인간 저자의 모든 기능이 다 사용되므로 인간 저자의 특성이 나타나지만, 인간적 오류가 스며들지 않게 하셨다는 ‘유기적 영감설’이 복음주의적 영감설이다. 또한 영감의 정도 문제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배제하고 인간 저자는 그저 도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복음주의 입장이 아니다. 또한 성경의 일부분만 영감하였다는 부분 영감설이나 역동적 영감설은 주장하는 것도 복음주의 영감론이 아니다. 복음주의 영감론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영감되었다는 것이므로, 결국 ‘글자 하나하나에까지 미치는 영감’[逐字靈感]을 말할 수밖에 없다.38) 이런 ‘유기적 축자 영감’을 말하므로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은 우리의 믿는 바와 삶과 실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무이하고 절대적 원칙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실질적으로는 제쳐 놓는 이들은 엄밀하게 복음주의자들이 아니다. 복음주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모두 성경에서 찾아내고, 모든 결론을 성경에게 이끌어 낸다. 복음주의는 또한 실천의 모든 것도 성경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성경이 최종적 결론을 가지는 것이 복음주의 입장이다. 둘째로, 루터와 칼빈같은 개혁자들이 잘 제시하고 정리한 성경적 이신칭의 사상에 충실한 것이 복음주의 입장이다. 이신칭의의 가르침에 충실하면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지만, 이신 칭의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단적인 것이다. 루터가 말한 바와 같이 이신칭의와 함께 교회가 서고 넘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에 대한 세관점을 이런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사도들의 가르친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복음주의이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이 가르친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가 정통적 교회였고, 이에서 벗어난 것을 이단으로 하였고, 종교 개혁 시기에 사도적 가르침을 회복해 낸 것이 개혁자들이었으므로 어느 시대든지 1세기 사도들이 가르친 그 가르침이 기준이다. 복음주의는 20세기나 21세기에도 1세기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운동이다.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요약한 것이나 그것을 성경이 가르친 대로 해석하지 아니하면 그런 교회를 바른 교회라고 하지 않는다. 천주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조차도 성경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주의이다. 미주 1) Cf. Donald Scott, “Evangelicalism as a Social Movement,” available at: http://nationalhumanitiescenter.org/tserve/nineteen/nkeyinfo/nevansoc.htm: “Evangelicalism needs to be understood not only as a religious movement, but also as a social movement.” 2) 이 때 독일에서 비판받던 사람들이 필립 멜랑흐톤과 그를 따르는 소위 “은밀한 칼빈주의자들”(Crypto Calvinists)이었다. 이에 대한 좋은 논의로 Jürgen Diestelmann, “Philippism-Melanchthon and the Consequences: An Observation in the ‘Year of Melanchthon,’” LOGIA - A Journal of Lutheran Theology 6/4 (1996): 3-6, available at: https://web.archive.org/web/20060614173132/http://www.luther-in-bs.de/melaeng.htm. 3) 그런데 이것은 독일 경건주의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정 통주의와 경건주의가 조화롭게 나타나 “더 나아가는 종교개혁”(Nadere Reformatie)으로 나타 나게 되었다. 그래서 화란 교회사에서 1600년에서 1750년대를 “더 나아가는 종교개 혁”(Nadere Reformatie)의 시기로 언급하곤 한다. Cf. Willem J. van Asselt & Paul H. A. M. Abels, “The Further Reformation,” Herman Selderhuis, ed., Handbook of Dutch Church History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5), 338–41; https://en.wikipedia.org/wiki/Nadere_Reformatie; 주도홍, 『개혁교회 경건주의』 (서울: 도 서출판 대서, 2011)도 보라.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 잘 인정하듯이, 화란의 경건주의는 우리가 후론할 영국 청교도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Anthony Milton, “Puritanism and the Continental Reformed Churche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Puritanism, eds., John Coffey & Paul C. H. Li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118– 19. 경건주의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 것을 잘 주의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 면, 화란의 경우에는 전통주의와 경건주의가 조화롭게 나타나 경건주의를 대변하는 후티우스 (Voetius) 같은 인물이 동시에 개혁파 정통주의의 대변인 중의 하나인 것과 대조해서, 17-18세기 독 일 경우에는 경건주의의 대변인들인 필립 야곱 슈페너(1635-1705)나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1663-1727) 등이 루터파 정통주의와 대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상당히 대조적이다. 4) 거의 모든 역사에서 경건주의가 복음주의의 한 기원으로 언급되고 있음을 보라. Cf. F. Ernest Stoeffler, ed., Continental Pietism and Early American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1976); C. John Weborg, “Pietism: Theology in Service of Living Toward God,” in Donald W. Dayton and Robert K. Johnston, eds., The Variety of American Evangelicalism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1), 161-83; Roger E. Olson, “The Roots of Evangelical Theology in Pietism,” in his The Westminster Handbook to Evangelical Theology (Louisville &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10-16. 5) 이점에 대한 지적으로 이승구,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2003),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최 근판 (서울: CCP, 2018), 65-66와 그에 인용된 여러 저자들을 보라. 6) 이승구,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 66. 7) 이런 사람들의 원조는 1567년부터 있었고, 특히 Robert Brown (1550?-1633)이 친구인 Robert Harrison과 함께 1581년에 놀위치에 독립회중(an independent gathered congregation)을 세운 것과1592년에 분리주의적 회중교회(Puritan Separatist)를 세운 것, 이 교회와 여러 회중교회가 암스 테르담으로 간 것, 라이덴으로 간 스크루비 회중교회, Gainsburgh에서 회중교회 목사가 된 John Smyth(1570?-1612)가 1908/1609년경 자신과 교회의 지체들에게 물을 쏟아 영국 최초의 침례교회가 화란 땅에서 형성되어 소위 General Baptist의 시조가 된 것, 라이덴 회중 교회의 일원이었던 Henry Jacob 목사(1563-1624)가 1616년 영국으로 돌아와 Southwark에 세운 회중교회, 이 교회에서 1630 년대에 분리한 일부 신자들이 John Spilsbury를 목사로 세우고 형성된 Particular (or Calvinistic) Baptists 운동이 이런 분리주의적 청교도의 모습의 한 단면이다. 이에 대한 간단한 정리로 앞서 언급 한 이승구, “조직신학에서 본 청교도 사상”, 62-63을 보라. 8) Cf. Patrick Collinson, Archbishop Grindal, 1519-1583: The Struggle for a Reformed Church (J. Cape, 1979). 9) 그런 점에서 오늘날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감리교회가 복음주의적 성격을 버리고 가장 진보적인 교 단이 된 것은 “메토디스트의 아이러니”라고 지칭할 만한 이상한 일이다. 특히 미국 United Methodist Church의 모습이나 한국 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러니를 잘 생각하게 된다. 10) 이들의 사역에 대한 좋은 논구로 다른 많은 책들과 함께 Mark A. Noll, The Rise of Evangelicalism: The Age of Edwards, Whitefield, and the Wesley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3)을 보라. 11) 이들을 잘 다룬 것이 스털링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시고, 우리 IVF에 해당하는 영국 UCCF 운동의 열심이신 데이비드 베빙턴 교수의 책이다. David W. Bebbington, 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 A History from the 1730s to the 1980s (London: Routledge, 1989). 이 귀한 책에 대 한 이은선 교수님의 번역을 보라. 영국의 복음주의 (서울: 한들, 2009).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복 음주의 역사를 잘 규정하는 교과서 같은 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대 학자들의 다음 같은 책 제 목을 주목하여 보라. Crawford Gribben, Michael Haykin, Kenneth J. Stewart, eds. Continuities in Evangelical History: Interactions with David Bebbington (Leicester: Inter-Varsity Press, 2009). 12) 그렇게 표현한 대표적인 경우로 다음 고든 멜톤 교수의 글을 보라. J. Gordon Melton, “Anglican Evangelical,” in Encyclopaedia Britannica, available at: https://www.britannica.com/topic/Evangelical-church-Protestantism. 13) 이 때 발제된 글들의 모음으로 D. Martyn Lloyd-Jones & J. I. Packer, ed., Puritan Papers: 1956–1969, 5 vols.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0–2005)을 보라.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의 의견 차이로 말미암은 복음주의자들의 분열에 대한 좋은 설명으로 Ian H. Murray, Lloyd-Jones: Messenger of Grace (Edinburgh: Banner of Truth, 2008), chapters 8-9. 이 분열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의견을 표현하는 저스틴 테일러의 다음 글 도 보라: Justin Taylor, “50 Years Ago Today: The Split Between John Stott and Martyn Lloyd-Jones,” TGC Blogs, posted on OCTOBER 18, 2016, available at: https://www.thegospelcoalition.org/blogs/evangelical-history/50-years-ago-today-the-splitbetween-john-stott-and-martyn-lloyd-jones/ 14) https://www.rcrt.scot/ 1983년부터 10년 동안 초대 원감(Warden)을 하였던 Nigel Cameron 박 사는 주로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작업을 인도했고, 그 후에는 David Searle 목사가 2003년까지 원감 을 하다가, 소장(Director) 체제로 바꾸어 밥 피올 박사(the Rec. Dr. Bob Fyall)께서 4년 동안 소장 을 하였고, 2008년부터는 제이슨 컬티스 박사(Dr Jason Curtis)가 섬겼고, 한동안 소장 없이 지내다 가 지금은 2019년에 선임된 (하일랜드 신학교의) Andrew T. B. McGowan 교수가 소장으로 있다. 15) Cf. https://ets.ac.uk/about/history-and-heritage/ 16) https://www.htc.uhi.ac.uk/about-us/ 17) Cf. https://www.uccf.org.uk/ 18) 이런 입장을 표현하는 Donald Scott, “Evangelicalism as a Social Movement” 의 논의를 보라. 19) 1980년대 초까지의 미국 복음주의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버지니아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James Davidson Hunter, American Evangelicalism: Conservative Religion and the Quandary of Modernity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1983)도 보라. 20) Donald W. Dayton and Robert K. Johnston, eds., The Variety of American Evangelicalism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1). 이 책에서 심지어 1860년 미국 미시간 주 배틀 크릭 (Battle Creek)에서 제임스 화이트(James White), 엘런 화이트(Ellen White), 조셉 베이츠(Joseph Bates), 존 앤드루스(John Andrews) 등에 의해 창립된 안식교회도 이 다양성 안에 넣dj 제시하고 있 다. 21) Robert E. Webber, Common Roots: A Call to Evangelical Maturity (Grand Rapids: Zondervan, 1978), 32. 22) Karl Barth, Evangel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Grand Rapids: Eerdmans, 1963). 23) Bernard L. Ramm, After Fundamentalism: The Future of Evangelical Theology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3). 24) James Davidson Hunter, Evangelicalism: The Coming Generation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25. 25) 특히 버나드 램에 대한 다음 학위 논문들을 보라: Robert L. Jones, “Scripture and Theology: An Analysis of Bernard Ramm's Proposal to Adopt Karl Barth's methodology,” Th. M. diss., Western Conservative Baptist Seminary, 1985; Kenny Regan Pulliam, “A Critique of Bernard Ramm's Doctrine of the Bible,” Ph. D. diss., Bob Jones University, 1986; 그리고 Simon Sze Wang Wat, “Bernard Ramm’s Reception of Karl Barth’s Doctrine of the Word of God,” Ph. D. diss., 2011. 또한 다양한 평가들에 대한 논의로 Phillip R. Thorne, Evangelicalism and Karl Barth: His Reception and Influence in North American Theology (Pittsburgh, PA: Pickwick Publications, 1995)도 보라. 26) Stanley J. Grenz, Revisioning Evengelical Theology: A Fresh Agenda for the 21st Century (Downer Grove, IL: IVP, 1993). 27) Stanley J. Grenz, Theology for the Community of God (Grand Rapids; Eerdmans, 1994). 또 한 Renewing the Center: Evangelical Theology in a Post-Theological Era (Grand Rapids: Baker, 2000)과 John Franke와 함께 낸 Beyond Foundationalism: Shaping Theology in a Postmodern Context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0)도 보라. 28) 이 문제를 잘 분석하고 명료히 드러낸 데이비드 웰스의 논의를 보라. David Wells, No Place for Truth (Grand Rapids: Eerdmans, 1993), 115, 127; David Wells, Losing Our Virtue (Grand Rapids: Eerdmans, 1998), 61f.; David Wells, Courage to be Protestant (Grand Rapids: Eerdmans, 2008), 48f. 이를 언급하고 있는 이승구, 데이비드 웰스와 함께 하는 하루 (서울: 말씀 과 언약, 2021), 58을 보라. 29) 그 대표적인 예로 1961년 브루스 지도하에 만체스터 대학교에서 학위를 하고(그 학위 논 문은 1967년에 Supplements to Novum Testamentum 18호인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St. Matthew's Gospel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Messianic Hope [Leiden: E. J. Brill., 1967]로 출간된었다), 1962년부터 싼타 바라라(Santa Barbara)에 있는 Westmont College의 신약과 희랍어 교수로 있던 로버트 건드리에 대한 노르만 가이슬러의 비판적 문제 제기 후에 1983년에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건드리가 탈퇴한 것을 들 수 있다. Cf. Leslie R. Keylock, "CT Classic: Evangelical Scholars Remove Robert Gundry for His Views on Matthew," Christianity Today (1984. 2. 3): 47, Available: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03/novemberweb-only/11-17-42.0.html. 본래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의 마태복음 주석을 쓰도록 되었던 Robert H. Gundry의 마 태복음 주석 내용을 편집 비평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Merrill C. Tenney와 James M. Boice가 받아 들이기 어려워하자, 결국 이 시리즈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Matthew: A Commentary on His Literary and Theological Art (Grand Rapids, MI: Eerdmans, 1982)으로 출판된 책에 대한 미 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평가였다. 30) Cf. Richard Rice, The Openness of God: The Relationship of Divine Foreknowledge and Human Free Will (Nashville, Tennessee: Review & Herald, 1980). 31) William Hasker, God, Time, and Knowledge (Itha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94); Hasker, Providence, Evil, and the Openness of God (London: Routledge, 2004). 32) Clark Pinnock, A Wideness in God's Mercy: The Finality of Jesus Christ in a World of Religions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2); idem, The Openness of Go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idem, Most Moved Mover: A Theology of God’s Openness (Grand Rapids: Baker, 2000). idem and Robert C Brow, Unbounded Love: A Good News Theolog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Carlisle, UK: Paternoster &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33) Gregory Boyd, God at War: The Bible & Spiritual Conflic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7); idem, Satan and the Problem of Evil: Constructing a Trinitarian Warfare Theodicy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2001); idem, Is God to Blame? Beyond pat Answers to the Problem of Evil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2003). 34) Clark Pinnock, Richard Rice, John Sanders, William Hasker & David Bassinger, The Openness of Go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4); David Bassinger, The Case for Freewill Theism: A Philosophical Assessmen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6). 35) Cf. John Sanders, The God who Risks: A Theology of Providenc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1996); idem & Chris Hall, Does God have a Future? A Debate on Divine Providence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3). 36)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2001년 11월 16일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될 모든 결정 들과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주체들의 행동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든 사건들에 대 한 온전하고, 정확하며, 무오한 지식을 가지신다고 분명히 가르친다고 믿는다”는 결의안을 밤 늦게까지의 토론을 걸쳐 41명이 부재한 상황에서 253명의 찬성과 66명의 반대로 결의하였 다. 이로써 그 동안 복음주의 신학회 내의 몇 회원들이 주장한 하나님의 개방성에 대한 견해 (the “openness of God” view)는 복음주의적 확신 밖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 다. 이를 알리는 기사의 예로 Russell D. Moor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Rejects ‘Open Theism,’ Affirms God’s Foreknowledge,” Baptist Press, November 20, 2001, available at: https://www.baptistpress.com/resource-library/news/evangelical-theological-societyrejects-open-theism-affirms-gods-foreknowledge/ 이 사건 이후 왜 이렇게 결정해야 하 는 지를 밝힌 서던 뱁티스트 신학교의 부르스 웨어의 글로 다음을 보라. Bruce A. Ware, “Defining Evangelicalism’s Boundaries Theologically: Is Open Theism Evangelical,“ JETS 45/2 (June 2002): 193–212. 이 문제를 다룬 책으로 Garrett Ham, The Evangelical and The Open Theist: Can Open Theism Find Its Place Within the Evangelical Community? (B00L3ROPFA, 2014). 미국복음주의 신학회의 이런 결정에 동의하는 Nick Needham, “The Cutting Edge: Open Theism,” Evangelical Times (November 2002), available at: https://www.evangelical-times.org/articles/open-theism/ 37) 결국 의미는 같지만 복음주의에 대해서 다른 식으로 하나의 규범적 접근을 하면서 다음 세 가지 기 준을 제시한 적도 있다: (1) “복음주의는 성경 자체가 증언하는 성경관을 가진다. (2) 복음주의의 성 경 해석은 복음주의 성경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진다. (3) 복음주의자들은 말씀의 뜻 에 전적으로 순종하면서 바른 실천을 하는 자들이다.”(이승구, “복음주의와 성경”, 「복음과 상황」 1992년 9월호, 이승구, 개혁신학 탐구, 개정판 [수원: 합동신학원 출판부, 2012], 42-52에 재수록, 인용은 43에선 온 것임). 38) 이런 정통적 영감론의 대표적 진술로 B. B. Warfield, 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 ed., Samuel G. Craig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48)을 보라. 이런 영감론에 대한 자세한 진술로 다음을 보라. 이승구, “정 통주의적 성경관에 따른 영감(靈感)과 무오성(無誤性) 이해: 특히 B. B. 워필드와 E. J. 영을 중심으로”, Origin Research Journal 1/1 (October 2021): 72-97; idem, “워필드 신학의 개혁신학적 특성”. 「교회와 문화」 29 (2012년 8월): 77-110. -
김병중 03-18 17:55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활성화를 위한 청중의 설교 참여 방안 연구』
I. 들어가는 글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부흥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부흥과 성장이 주춤하더니 2020 년에 와서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방역을 이유로 정부로 부터 각종 소그룹 모임과 식사의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가 금지당한 것은 물론이고, 정규 예배마저도 집합 인원이 제한당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집합 제한 기간이 장기화함에 따라,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출석 교인 30% 정도가 교회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우려스러운 통계도 나오고 있다.1) 실제로 10월 5일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6%의 교회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 과연 언제쯤이면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다시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수 있을까? 2020년 5월 14일에 WHO는 COVID-19는 팬데믹(pandemic)을 넘어 엔데믹 (endemic)이 될 수 있다는 우울한 경고를 했다.3) 엔데믹이란 말라리아(Malaria)나 뎅기열(Dengue fever)처럼 지역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을 의미한다. 한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021년 11월 초에는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4) 이런 추세라면 코로나 19가 종식되지 않더라도 머지 않아 다시 소그룹 모임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형외과적 치료 후에는 재활 치료가 꼭 필요하듯이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정체된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설교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연구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초대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모색하려고 한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때 생명력 있는 설교와 설교 후의 말씀 나눔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신앙 공동체가 활성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베뢰아의 성도들은 말씀을 받은 후에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이같은 성경적 모범을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해결책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설교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며, 둘째는 청중들도 받은 말씀을 서로 나누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수준을 높이고 청중은 받은 말씀을 나누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을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설교 비평의 근거와 기준, 그리고 실행 방법은 무엇인가? 1) 이 내용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2021년 한국교회 변화 추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크리스천투데이」 (2021년 8월 13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 트: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1847.2) 「크리스천투데이」 (2021년 10월 13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8335.3) 「중앙일보」 (2020년 5월 14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76686#home.4) 「KBS NEWS」 (2021년 10월 7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95884. 선포된 말씀을 드높이는 설교 비평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론 정립과 방법론을 마련할 필 요가 있다. ⓵먼저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설교 비평의 이론적 근거를 확인하고 ⓶설교자의 설교를 더욱 발전시킬 방안을 마련한 후에 ⓷청중이 설교 비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여 청중의 자발적인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II. 펴는 글1.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비평 사례(事例) 1) 찬미로서의 설교 비평설교 비평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열정적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한 설교자를 격려하고 찬미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청중 역시 그 말씀을 통해 성숙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근거는 독일의 설교학자 Rudolf Bohren(1920~2010)의 설명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다.5) Bohren은 설교자에 대한 청중의 열정적 공감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설교 비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Bohren은 설교에 관한 그의 역작 Predigtlehre 마지막 장(章)에서 설교 비평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力說)한다. Bohren에 의하면 설교 비평이 설교의 추가 부록이 아니며 설교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평(批評)이란 그 용어부터 부정적 느낌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Bohren이 교회 성숙에 설교 비평이 꼭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Bohren이 설교 비평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청중이 설교를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다. Bohren이 생각 하는 설교 비평은 설교를 찬미하고 설교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말하게 하는 방법이다. 마치 설교가 본문의 찬미인 것처럼 설교 비평은 설교 찬미를 목적으로 삼는다.6)다시 말하면, Bohren이 말하는 설교 비평이란 청중이 설교를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음을 표현하는 열정적 공감이다. 그래서 Bohren은 설교 비평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설교 비평의 과제는 설교의 이해와 설교에 관한 기쁨을 재촉하는 일에 있다. 설교를 듣는 도움을 주려고 한다. 설교와 꼭같이 말씀에 봉사하는 길이다.”7) 5) Rudolf Bohren은 스위스 Grindelwald에서 태어난 스위스인 목사이지만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University of Heidelberg) 등에서 교수 활동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독일 뷔르템베르크 (Württemberg)에서 사망했기에 독일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박근원 옮김, 『설교학실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0), 287.6) Rudolf Bohren, 7) Bohren, 『설교학실천론』, 288.이처럼 찬미로서의 설교 비평은 비평에 노출된 설교자와 비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중 모두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Bohren은 설교 비평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설교자나 설교 비평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중은 말씀 안에서 성숙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한다. Bohren은 교회 안에서 설교 비평이 방해를 받는 동안에는 말씀의 진행도 방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설교 비평은 설교에 빠져서는 안 되는 본질이다. 다만, 설교 비평은 찬미가 목적이기 때문에 오직 성숙한 교회만이 설교 비평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숙한 교회는 건전한 설교 비평을 통해 더욱 성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8) 2) 청중 참여로서의 설교 비평설교 비평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청중의 설교 참여를 위해서이다. 설교에서 청중은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설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실은 Fred B. Craddock과 Lucy Atkinson Rose의 설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Craddock은 오늘날 청중은 설교에 참여하되 설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설교자에게 말하고 설교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9)Rose 역시 청중은 설교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Rose는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에서 설교학의 흐름을 전통적인 설교학과 케리그마 설교학, 그리고 신설교학으로 구분하여 각각 특징과 장단점을 분석하였다. 그 후 신설교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신의 대화 설교(conversational preaching)를 제안하였다. 여기에서 Rose는 설교의 목적을 “교회의 중심적인 대화를 촉진시키고 강화하기 위하여 신앙 공동체를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 주위로 끌어모으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설교의 목적이 ‘청중을 대화 테이블로 초대하는 것’이라면 대화 테이블로 모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모여서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Rose는 Dietrich Ritschl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설교자와 회중은 함께 만인 제사장의 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함께 공유하는 제사장적 책임을 감당함에 있어서 설교자와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11) 더 나아가 Rose는 설교는 설교자만의 고유한 사역이 아니라 모든 예배자들이 함께 감당해야 할 사역이라는 Ritschl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Rose의 대화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마 ‘들은 말씀을 드높이는’ 설교 비평일 것이다.Rose는 Craddock을 잇는 신설교학자로서 설교의 목적이 진리를 전달하거나 하나 8) Bohren, 『설교학실천론』, 298.9) Fred B. Craddock, , 이우제 옮김, 『크래독의 설교 레슨』 (서울: 대서, 2007), 37.이승진 옮김,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서울: 기독교10) Lucy Atkinson Rose, S 문서선교회, 2010), 190.11) Rose,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179-81. 님과의 만남을 중재하거나 회중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는 신설교학의 설교관을 가지고 있다.12) 개혁주의의 입장에서 Rose의 설교관을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대화할 것을 강조하는 면에서 Rose의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설교 비평의 필요성은 설교의 적용이라는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Daniel M. Doriani는 적용의 네 가지 측면을 의무, 성품, 목표, 그리고 분별력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청중의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답한다는 것이다. ⓵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⓶나는 어떻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⓷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가? ⓸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얻을 수 있는가?13)Doriani는 적용을 청중의 의무로 남겨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적용으로 청중을 데려갈 책임이 설교자에게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청중을 적용까지 데려가는 것은 설교자의 책임이지만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주체는 청중 자신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결심한 내용을 자신의 입으로 표현하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설교 비평이 꼭 필요하다. 3)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설교 비평 사례이처럼 중요한 설교 비평은 성경 속에서, 그리고 교회사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 사례를 확인해 볼 때 그 필요성에 대하여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모범적인 설교 비평의 사례가 있다. 성경 속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설교 비평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고 교회사에서는 청교도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의 바람직한 전통이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설교 비평 사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예수님이 제자들과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달려와 그녀가 주를 본 사실과 예수님이 전하신 가슴 벅찬 말씀을 전하였다(요 20:18). 또 다른 예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역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후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달려와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사실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달하였다(눅 24:35). 이처럼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서로 나누는 모습은 설교 비평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부활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한 일시적 현상인가? 사도행 12) Rose,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190.13) Daniel M. Doriani, Getting the message : a plan for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Bible,정옥배 옮김, 『적용, 성경과 삶의 통합을 말하다』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11), 133.전에 나타난 사건을 볼 때 부활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이 아닌 마케도니아의 도시 베뢰아에서도 이런 현상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바울로 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후에 그 말씀을 성경에서 확인하며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14) 그런가 하면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는 정반대의 반응이 일어났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반감을 품도록 선동하였고 심지어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 때는 기뻐하며 그 말씀으로 서로 대화하든지 혹은 반발하든지 어떤 종류의 반향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이 조용히 귀가하고 잊어버린다면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다. 설교를 들은 청중은 그 들은 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고 설교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설교 비평의 사례는 교회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의 청교도들은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는 것을 강조했고 또 실천했다.15) 설교 비평(설교 나눔)은 공동체의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가족들과 하는 것이 신명기 6장에 나타난 쉐마의 정신에 부합된다. 그런 정신에 입각하여 17세기의 영향력 있는 청교도 가운데 Lewis Bayly(1575~1631)는 그의 저서 The Practice of Piety를 통해 예배가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들은 설교를 검사하고, 저녁에는 하나님의 하실 일을 묵상하면서 기도함으로 주일을 마치라고 권면했다.16) 이러한 Bayly의 가르침이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설교 비평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의 제자들과 신실한 청교도 신앙인들이 설교를 들은 후에 서로 그 내용을 나누며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날의 청중 역시 설교를 들은 후 서로 확인하고 내면화하여 순종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를 듣는 경우에는 그 한계점을 보완할 방안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나 소그룹에서 설교를 나누는 것이다.17) 14) 사도행전 17:11에서 “상고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ἀνακρίνω는 ‘조사하다’, ‘검토하다’, ‘심문하다’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베뢰아 성도들의 모습은 설교 비평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15) Nicholas Bownd, The True Doctrine of the Sabbath: or, Sabbatum Veteris Et Novi Testamenti(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5), 368, 370-75.16) 홍인택,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율법과 성화』 (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21), 273.17) 조광현, “코로나 시대, 영상 설교에 대한 설교학적 고찰”,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실천신 학」 57 (2020): 203-204. 2. 설교 비평의 실태(實態)와 비평의 기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설교학적 이유와 또 성경적, 교회사적 근거로 볼 때 설교 비평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설교 비평이 지금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강단의 성역화라는 장벽 때문이고 둘째는 설교 비평자의 자질 및 설교 비평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먼저 설교 비평의 현주소를 살핀 후에 바람직한 기준과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성역화된 한국교회 강단설교는 정당성(validity)이 있는 성경해석을 통해 도출해 낸 메시지를 청중의 삶 에 적실성(relevancy)이 있도록 전달해주는 것이다.18) 그런데 일부 설교자의 설교에서는 정당성과 적실성 가운데 한쪽 혹은 양쪽 모두 확보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설교자들이 어떠한 교정도 받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강단에 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설교 강단은 오래전부터 성역(聖域)으로 취급되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총신대학교 류응렬 교수는 2004년 10월 18일에 「기독교사상」이 발간한 『한국교회 16인의 설교를 말한다』에 대해 평가하면서 그동안 한국교회 강단은 거의 폐쇄된 성역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문제를 류응렬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19)첫째,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신학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자의적으로 흐르게 만들고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한국교회 강단의 문제는 잘못된 교회론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시각을 상실한 채 개인주의 신앙으로 흐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설교자들의 역사의식 결여를 지적한다. 그 결과 한국교회 강단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개인적 신앙생활에만 집중하게 된다.한국교회 강단의 이런 문제점은 「기독교사상」이 선정한 16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 선정되지 않은 설교자들에게 어쩌면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그 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런 문제점들은 미해결의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설교에 대해 올바른 기준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국교회 설교 강단은 왜 이처럼 평가 불가한 성역으로 인식 되었을까? 서울신학대학교 정인교 교수는 한국교회의 설교가 거론 불가의 성역이었던 이유를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에 있다고 본다. 이런 가 18) 정창균,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설교』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9. 19)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51 (2007/12) : 186-88. 치관은 Martin Luther가 설교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Verkuendigtes Wort Gottes)으로 설명한 것에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문자적으로만 보면 설교 비평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건드린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이런 부담이 있음에도 정인교는 설교에 대한 비평은 피할 수 없는 당위라고 주장한다. 정인교는 설교 비평은 설교자가 가진 속성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설교가 한계를 가진 인간 설교자를 매개로 청중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비록 설교자가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내적 소명 ’(vocatio interna)과 신학 수업과 안수(按手)라는 ‘외적 소명’(vocatio externa), 그리고 교회의 부름이라는 ‘간접 소명’(vocatio mediata)을 받았더라도 설교자는 불완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20)그러므로 정인교는 “이런 완전치 않은 설교자에게 말씀을 맡겨놓고 아무런 통제나 조정의 노력이 없다면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실로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정인교는 설교 비평은 설교의 성격상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며, 120년(2007년 당시 기준)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21)그러므로 정인교는 정용섭의 『속빈 설교 꽉찬 설교』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 책을 통해, 설교자를 하나님의 진리의 완벽한 매개자로 신격화하는 것은 결국 설교자뿐 아니라 스스로를 죽이는 위험한 일임을 깊이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라고 설교 비평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22) 2) 한국교회 설교 비평의 실태와 문제점그렇다면 한국교회 강단에서 설교 비평의 실태는 어떠한가? 한국교회에서 설교 비평은 2006년과 2007년에 정용섭에 의해 발간된 두 저서, 『속빈 설교 꽉찬 설교』와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를 통해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류응렬은 설교 비평이라는 장르가 드디어 하나의 학문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한다. 류응렬은 정용섭이 한국교회 강단에서 성경이 사라지고 간증 수준의 설교가 되어버린 사실을 지적하는 것과 설교자가 본문을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제멋대로 다루는 것을 지적한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한다.23)하지만 류응렬은 한국교회 설교를 비평한 정용섭 자신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류응렬에 의하면 올바른 설교 비평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설교 비평이란 설교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사람과 설교에 대한 정확한 20)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51 (2007/12): 147-48.21)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1.22)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55.23)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0-93. 이해력을 돕고, 바람직한 설교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며, 또한 설교하는 당사자에게는 이를 통해 설교의 발전을 꾀하여 결국 한국교회 강단을 말씀에 근거하여 새롭게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24) 이에 비해 정용섭의 설교 비평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는데 첫째는 그의 성경관의 문제이다. 정용섭은 성경에 대한 축자영감설을 믿는 설교자들이 미숙한 성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처럼 정용섭이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왜 설교자가 강단에서 성경 본문을 존중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일까? 성경 속에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신화적 요소까지 들어있다고 가정한다면 설교자들이 그런 성경 본문에 집중해서 무엇을 얻겠느냐고 류응렬은 반문한다.25)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하는 사람은 먼저 성경에 관한 바른 관점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설교가 과연 성경의 바른 해석에서 출발했는지를 물어야 그 설교 비평이 올바르고 유익한 비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잘못된 성경관을 소유한 정용섭의 비평에는 여러 설교자에 대한 그릇된 평가가 다수 발견된다. 먼저 김상복의 설교에 대해 정용섭은 “김 목사는 축자영감설에 기초 함으로써 신학과 과학을 혼동하는 창조과학회 유의 방식으로 성서에 접근한다.”라면서 “김 목사가 이런 자기모순에 빠진 이유는 성서의 신화까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일종의 신화적 심리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26)정용섭이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는 잘못된 성경관은 로이드 존스를 비평하는 것에도 드러난다. 그는 로이드 존스에 대하여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로이드 존스는 성서를 문자의 차원에서 오류가 없는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에 대해 여러 말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하면서도 축자영감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 구성에 다음 두 가지 오류를 끼쳤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그가 오늘날의 고고학을 총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성서의 희화화이다.” 로이드 존스가 성경을 희화화했다는 말에 대하여 정용섭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고대인들의 우주론적 언어를 아 런 해석 없이 그대로 문자의 차원에서 선포한다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성서를 박물관의 유물로 만드는 격이다.”27) 정용섭의 또 다른 문제점은 다른 설교자를 향한 그의 태도이다. 정용섭은 자신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김남준에 대해서는 “청교도 신앙의 영적 결벽증”이라고 했고 한국교회 다수가 존경하는 하용조에 대해서는 “근본주의적 강해 설교의 조급증”이라는 표제를 붙였다.28) 특히 박영선에 대해서 “그럴듯한 신학적 포즈를 취하긴 했지만, 그 포즈의 뒤안길은 결코 신학적이지 못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당한 비평이 아니라 작정하고 비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29) 24)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76.25)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3-95.26)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28-29.27)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329-30.28) 정용섭, 『속빈 설교 꽉찬 설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63, 315.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에서 정용섭은 『속빈 설교 꽉찬 설교』에서보다 더욱 도발적인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김서택의 설교에 대해서는 “종교적 모범생 콤플렉스에 의한 복음의 훼손”이라고 했고, 이동원의 설교에 대해서는 “규범 설교의 역사 허무주의”라고 했다. 장경동의 설교에 대해서는 “허무주의 영성”이라고 간단히 말하는가 하면 정필도의 설교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은폐된 폭력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30) 이와 같은 정용섭의 태도는 비평이 아니라 비판이며, 깎아 세우기가 아니라 허물고 짓밟기에 불과하다. 정용섭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라고 붙였는데 정용섭이야말로 “비평과 선동 사이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정용섭의 설교 비평에 대해 정인교는 “이러한 접근은 설교 비평의 본질을 훼손하고 오도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현한다.31) 3) 바람직한 설교 비평의 기준신성욱 교수가 말한 대로 “한 편의 설교 속에는 그 사람의 성경관과 신학적인 지식과 인생 경험과 인격 모두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32) 그러므로 설교를 비평할 때는 설교자에 대하여 예를 갖추어 긍정적 평가 후에 아쉬운 점이나 보완점을 언급해야 한다. 또한, 설교를 비평하는 사람은 설교자 못지않은 설교학적 기준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김창인의 설교를 평가한 신성욱은 설교 비평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김대혁 교수 역시 설교 비평의 모범을 보여준다. 김대혁은 Abraham Kuruvilla의 설교 이론에 대하여 비평하면서 먼저 네 가지의 공헌을 나열한 후 세 가지 정도의 아쉬운 점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하였다.33) 하지만 정용섭의 비평은 비평가의 자질과 비평 기준 확보의 시급성을 절감하게 했다. 정인교에 의하면 한국교회 설교 비평의 문제점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첫째, 비평자들의 기본적인 시각과 태도가 부정적 비판 일변도인 것이 문제이다. 둘째, 작금의 설교 비평은 지나치리만큼 설교의 내용에만 치중함으로 설교를 전체적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셋째, 설교 비평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넷째, 비평자의 입장이 설교 비평의 절대 기준이 되어 선택의 문제를 당위의 문제로 몰 29) 정용섭, 『속빈 설교 꽉찬 설교』, 145.30)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37, 129, 197, 243.31)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57.32) 신성욱, “성경해석학적 관점에서 본 김창인 목사의 설교와 신학적 특징”,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60 (2021): 91.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82)33) 김대혁, “Abraham Kuruvilla의 설교 방법론에 관한 비평적 평가”,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 과 실천신학」 60 (2021): 31-40.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11) 고 가는 것 역시 설교 비평을 왜곡시킬 수 있다. 다섯째, 비평자의 독선이 문제이다. 설교 비평은 설교자에 대한 예의만이 아니라 회중에 대한 예의까지도 갖추어야 한다.34) 그렇다면 설교 비평을 위한 바람직한 기준은 무엇인가? 정인교가 제시하는 설교 비평의 합리적 기준은 다음의 일곱 가지이다. 첫째, 설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둘째, 설교된 내용의 조직신학적 배경에 관해 물어야 한다. 셋째, 어떻게 설교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는 무엇을 말하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넷째, 누구에 의해 설교가 행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 비평은 설교자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및 설교의 목회적 차원과 계획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다섯째, 설교가 위치하는 삶의 정황에 관해 물어야 한다. 여섯째, 설교의 결과를 물어야 한다. 일곱째, 설교가 주로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35) 류응렬 역시 한국교회 강단이 말씀으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를 진리 위에 세우는 설교 비평을 위하여 다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 성경적인 설교 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둘째, 균형 잡힌 설교 비평은 설교자와 설교를 동시에 연구하는 것이 다. 셋째, 설교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읽는 자세이다. 넷째, 설교 본문뿐 아니라 설교 전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예배의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36)이상의 다섯 가지 제안 가운데 세 번째의 태도에 관한 부분은 특히 중요하다. 류응렬이 한종호의 『전병욱 비판적 읽기』에 대한 평가에서도 말했듯이 설교자의 의도와 다르게 비평가의 의도대로 해석해버리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종호의 눈에 비치는 전병욱은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그의 눈 밖에 난 사람처럼 여겨진다.”라고 한 류응렬의 평가처럼 설교자의 의도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균형 잡힌 설교 비평이 될 수 없을 것이다.37) 그렇다면 설교 비평은 설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며 설교에 대한 찬미라고 하는 Rudolf Bohren의 기준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Bohren은 설교 분석의 기준을 먼저 “지, 정, 의”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각 카테고리에 세부적인 가지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비평의 기준을 제시하였다.38) 설교 비평의 기준을 세 개로 구분하는 Bohren의 카테고리는 청중이 기억하기 좋은 장점도 있으며 그 속에는 정인교가 제안하는 일곱 가지 기준도 대부분 포함된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Bohren의 구분을 설교 비평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한편, 김지혁 교수에 의하면 설교의 적용은 마음의 결단 문제이며, 의지와 더불어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마음의 감각을 통 34)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1-66.35)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8-71.36)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7-99.37)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84-86.38) Bohren, 『설교학실천론』, 290-298. 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39)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할 때는 지, 정, 의 삼 요소 가운데 감동을 가장 먼저 나누는 것이 좋다. (1) 감동 : 어떤 감동을 하였는가?설교자는 메시지를 전할 때 청중의 감정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그 설교가 청중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사실은 메시지 전달이 성공했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청중이 자신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때 설교자가 호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이처럼 청중에게 무엇인가가 들렸고, 청중이 그것을 이야기 하는 일은 바로 설교의 찬미이다. 이렇게 될 때 청중은 설교자의 편에 선 증인이 되 는 셈이다. (2) 내용 : 어떤 내용을 들었는가?마음을 붙잡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정서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설교의 근거와 내용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a. 본문의 내용: 본문의 고유한 교훈은 무엇인지, 본문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설 자는 무엇을 설교하였는지 나누는 것이다. b. 교리의 내용: 성경해석을 통해서 깨닫게 된 신앙 교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이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은혜를 나누고 그 깨달음과 전체 성경 및 조직신학적 조화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 c. 청중의 상황: 설교의 내용이 현재 시대와 교회의 상황과 개인의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와닿는지 나누는 것이다. 설교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을 주었는지 나누는 것이다. (3) 결단 : 어떤 결단을 하였는가?설교는 단순발화행위나 의미 수반 발화행위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효과 수반 발화행위가 되어야 한다.40) 그렇다면 설교는 청중에게서 어떤 효과가 발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런 효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a. 개인에 대한 효과: 설교가 개인을 어디로 인도하려고 하는가? 개인에게 어떤 사고를 하도록 하는가? 개인에게 어떤 호소를 주는가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b. 교회에 대한 효과: 설교가 교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회의 미래 현상과 그 근거를 설교 가운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는가?c. 사회에 대한 효과: 설교가 비판적 정치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워주는가? 예를 들어 최근에는 교회가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를 막아내어야 하는 필요성이 39) 김지혁, “Jonathan Edwards의 마음의 감각과 그의 설교학적 미학”,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33 (2014): 43, 53.40) John L.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2nd ed. by J. O. Urmson & Maria Sbis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2. 1975), 94-132. 있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에 관하여 청중을 어떤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는가? 3. 효과적인 설교 비평 방법지금까지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설교 비평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비평을 위한 바람직한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러한 기준으로 설교의 발전과 청중의 설교 참여를 위하여 효과적인 설교 비평 방법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설교 비평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지혜로운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하여 연구자는 설교자 그룹과 청중 그룹을 구분하는 이중 노선의 설교 비평 방법론을 제안한다. 한편, 모임 운영 방식 역시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이중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중 노선의 설교 비평이란 무엇이며 그 필요성은 무엇인가? 설교 비평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다. 왜냐하면 비평(批評, critique)이란 평가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41)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된 다른 사람의 설교를 평가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의 설교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는 것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신앙과 인격 수준이 다양한 청중에게 설교를 비평하도록 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지는 예측 불허의 일이다. 그리고 설교 비평에 참여한 청중들 쪽에서도 이를 통해 반드시 개인의 경건은 깊어지고 신앙 공동체는 활성화된다고 보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Bohren은 오직 성숙한 교회만이 설교 비평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42)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에 참여하는 주체를 설교자 그룹과 청중 그룹으로 구분하여 이중 노선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1) 설교자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먼저 설교자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교회에서 설교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한국교회 강단이 성역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며 성역화의 첫째 이유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 설교자가 하는 말은 어떤 이유와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Rudolf Bohren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Bohren이 말하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 설교자와 공동 설교자가 되어 41)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비평(批評)’을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 여 가치를 논함’이라고 해설하고 있다.42) Bohren, 『설교학실천론』, 298.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설교자와 공동 설교자가 되어 주실 뿐 아니라 첫 번째 설교자가 되어 주신다.43) 인간 설교자가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며 인간 설교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말이 과연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맞는지 점검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이란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또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부분에 실수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약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설교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발전시키기 원하는 설교자는 설교자들로 구성된 비평 그룹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에서 정용섭의 설교 비평을 통해서도 살펴보았듯이 한 사람이 설교 비평을 독점하는 것은 균형을 잃을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설교를 평가하고 점검하는 작업은 일정한 교육을 받고 준비가 된 설교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 설교자들로 구성된 설교 비평 그룹은 매주 한 사람씩 순서를 정하여 설교를 비평하되 설교자의 개별성과 시간적, 공간적 상황성도 함께 고려하도록 사전에 설교 환경에 대한 설명을 들고 설교 영상을 시청한 후에 평가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설교자들의 설교 비평 모임에 계속 참여하는 설교자의 설교는 점점 정당성과 적실성을 확보한 설교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습관도 발견하여 개선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 비평 그룹에서 하는 일은 설교에 공감하고 격려하는 일과 더불어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법 등을 평가하며 그 설교자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설교에 대한 공감과 격려를 먼저 한 후에 발전 요소를 덧 붙여 주는 순서를 지키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향성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 그룹의 이름을 “설교 비평 모임”보다는 “설교 공감 모임”(설공모)이라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설교 비평을 할 때의 기준은 앞에서 설명한 Bohren의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이처럼 기준을 정해놓고 평가를 하게 되면,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그 기준을 의식하며 균형 있는 설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비평 활동에 참여 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교회 공동체 안에 일반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을 시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2)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이제 일반 청중이 참여하는 설교 비평 모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Bohren은 자신이 열정을 다하여 즐기는 일이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 스키를 타는 일,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는 일, 그리고 설교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은 설교 43) Bohren, 『설교학실천론』, 119-20. 를 여가의 일종으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가 설교하는 일에 그 만큼 열정을 다하며 즐겁게 한다는 뜻이다.44) 그러면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은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을까? (1) 설교자가 설교하는 일에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청중 역시 같은 열정으로 동참하도록 할 방안이 필요하다. 청중의 열정적 동참은 청중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설교자가 계속해서 열정을 가지고 설교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청중이 설교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말은 먼저 설교가 선포되는 시간에 귀를 기울여 잘 듣는 것이다. 또한, 설교 후에 그 내용을 기억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삶에 적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어떻게 하면 청중이 설교를 듣는 일과 적용에 열정적으로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예배가 끝나면 곧장 일상생활과 생업에 쫓기며 살아가는 청중은 제도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도록 권장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이런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은 메시지를 기억하게 하고, 깨달은 교훈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설교 비평이다. 사람이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정리되고 결심이 강화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순종의 결심을 서로 나누면서 책임감이 강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설교를 들은 후에 소그룹에서 서로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설교 나눔에 참여 하는 사람은 설교 시간에 더욱 집중해서 듣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2) 또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청중이 열정을 다하여 설교를 듣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설교를 경청하는 것은 왜 하나님과 동역 하는 것인가? 이것은 Bohren이 말하는, 인간 설교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두 번째 이유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Bohren에 의하면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 인간 청중들에게 설교하기에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청중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다. 그 청중은 거기에 있는 어떤 청중보다 더욱 주목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청중들보다 더욱 소중한 청중이시다. 설교의 우선적인 목표는 첫 번째 청중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하는 설교의 가치를 판단하는 분은 바로 이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설교는 첫 번째 청중이신 하나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다.45)그런데 설교 현장에서 하나님이 첫 번째 청중이 되신다는 이 사실은 설교자의 설교를 정당하게 할 뿐 아니라 청중이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도 중요성을 부여한다. 설교가 행해질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듣고 계신다면 청중이 설교를 듣 44) Rudolf Bohren, Predigtlehre, 박근원 옮김, 『설교학원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13. 45) Bohren, 『설교학실천론』, 151-52.는 것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된다. 설교를 듣는 행위만이 아니라 설교 이후에 그 설교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과 들은 설교를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된다. 시편 1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되다고 한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가(הָגָה)인데 ‘중얼거리다’, ‘묵상(명상)하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등의 뜻을 가진다. 이를 근거로 Bohren은 설교에 대해 명상하고 설교 비평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설교자의 열정에 동참하는 것이며 설교를 찬미하는 것이라고 한다.46) (3) 이렇게 일반 청중을 중심으로 설교 비평 모임을 운영할 때는 설교자 그룹과는 다른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 청중은 설교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므 로 이 모임에서 설교자의 발전 요소를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청중이 참여하는 설교 비평 모임은 설교에 대한 이해를 보완해주며 각자의 공감을 나누는 것, 그리고 각자의 깨달음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다. 말하자면 청중 그룹의 설교 비평은 설교를 평가하기보다는 말씀을 공유하 고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들은 말씀을 드높이는 것에 목적이 있다. Bohren은 설교 비평은 설교의 찬미이며 설교를 해석하는 것이고 설교에 열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 하였다.47) 그런데 비평이라는 단어는 날카롭게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므로 이 모임의 이름에는 ‘설교 비평’이라는 표현대신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한다는 느낌을 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연구자가 설교 비평 모임의 이름으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We Talk)”을 제안한다. ‘위톡’ 46) Bohren, 『설교학실천론』, 286-87. 47) Bohren, 『설교학실천론』, 287-88. 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참석자들에게 위의 그림과 같은 양식(Form)을 제공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위톡(We Talk) 모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를 세우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예로 들 수 있다. 평생의 목회를 통해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집중했던 옥한흠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평신도를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한 것이라고 지적한다.48) 옥한흠의 제자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데 평신도 지도자(순장)들의 사명은 각 다락방에서 순원들과 함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를 이끄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은 한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持續)되어야 할 성경적 모델이다. (4) 이처럼 청중들이 설교를 서로 나누고 적용하게 할 때 여기에 ‘집단지성’이 발생 하는 유익이 있다. 집단 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한 세기 전까지는 필요성과 유익함을 생각하지 못하던 새로운 발견이다. Charles Leadbeater에 의하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출현한 대규모 기업들은 군대형 조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으면 작업 지시서를 보거나, 명령계통의 직속 상관의 지시를 따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집단지성은 조직이 직면한 여러 가지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제공하는 대안적인 조직화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49)Leadbeater에 의하면 단독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토머스 에디슨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훌륭한 협업활동가였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소비자, 개발자, 공급자 사이에 공유될 때 혁신은 번성한다. 아이디어 창안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누가 무슨 일을 했고, 따라서 누가 어느 만큼 소유하게 될지를 계산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협업에 의한 혁신은 반드시 공동 소유권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50) 이처럼 발명과 생산의 아이디어 창출에서 협업을 통한 집단지성이 발생한다면 청중이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서로 이해와 깨달음 및 그 적용을 서로 나누는 동안에도 집단지성을 통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익함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축복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장 먼저 활용하고 유익함을 누려야 하는 것은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익은 설교 비평을 위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 모임을 통해서 적용할 수 있다. 48)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두란노, 1999), 43.49) Charles Leadbeater, We think : mass innovation, not mass production, 이순희 옮김,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파주: 북이십일, 2009), 131.50) Leadbeater,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137. 165. 3) 메타버스 시대의 청중 참여 방안그런데 ‘위톡’을 운영할 때는 대면 방식만이 아니라 비대면 방식까지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 2020년에 한국교회는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의 사태에서 “대면 예배 전면금지 및 비대면 예배만 허용”이라는 전대미문의 행정 명령에 직면하였다. 처음에는 예배 및 설교를 촬영하고 송출하는 것에 관심이 없던 일부 목사들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격언처럼 1년 이상 그런 상황을 지나오면서 이제는 목사마다 방송 전문가가 되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면 예배 전면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통해 일반 성도들이 가정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예배드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51) 소그룹 모 임을 금지당하자 영상으로 회의와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이다. 신광철에 의하면 코로나 사태가 극복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코로나 19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52)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비대면 활동이었으나 이제 비대면 활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방법과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오늘날은 메타버스 시대이며 현대인들은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 있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동체 모임에는 비대면 활동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 역시 대면 모임과 비대면 모임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인식하기도 전에 메타버스 세계에 살고 있다. 메타버스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 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서 현실 세계와 다른 가상 공간 세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메타버스는 1992년 Neal Stephenson의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53) 기술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일상기록(Lifelogging),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54)메타버스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문화와 예술, 교육과 각종 사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 메타버스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사람일지라도 인터넷 쇼핑을 한 번 이라도 해 보았거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보았다면 그는 이미 메타버스의 거울 세계와 라이프로깅을 경험한 사람이다. 또한, 오늘날은 뉴미디어 생태계의 세상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51) 안덕원,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기독교 예배-전통적인 경계선 밖에서 드리는 대안 예배를 위한 제언”,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56 (2020): 48. (https://doi.org/10.25309/kept.2020.8.15.045)52) 신광철,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콘텐츠 교육의 방향”, 인문콘텐츠학회, 「인문콘텐츠」 59 (2020/12): 109.53) 한송이 · 김태종, “메타버스 뉴스 빅데이터 분석: 토픽 모델링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디지털콘텐츠 학회,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22/7 (2021/07): 1092.54) 김상균, 『메타버스』 (화성: 플랜비디자인, 2020), 23. 으로 IT 패러다임이 확산된 ICCT(Information, Communication, Contents Technology) 거버넌스(governance)에서의 미디어 환경은 콘텐츠(Contents), 플랫폼 (Platform), 네트워크(Network), 그리고 디바이스(Device)의 네 가지 CPND가 상호 결합하여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55) 현대인들은 이러한 뉴미디어의 CPND를 통해서 온라인 쇼핑과 음식 주문, 영화감상과 은행 업무 등 온라인 전가 상거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노년층 인구들도 각종 SNS를 통해 의사소통과 희노애락을 나누고 있다.56)이렇게 뉴미디어의 CPND를 사용하는 현대인들은 특히 스마트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 있고 오늘날이 포노 사피엔스 시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57)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 내 몸에서 절대로 멀리 두지 않는 물건, 명품을 제외하고는 외출할 때 반드시 소지하는 물건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자신이 소지한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게 한 후 하나씩 버리는 실험을 해 보면 속옷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지막까지 남는 물건이 바로 스마트폰이다.58) 이렇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의 최재붕 교수에 의하면,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교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이 늘어나며 등장한 용어이다.” 이 말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라고 부른 데서 나왔다.”59) 최재붕은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전 세계 50%의 인구가 선택한 인류의 운명(運命)이라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문명으 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60)이는 사도 시대에 복음이 전해진 로마의 도로망과 비교해 보더라도 당연한 이치 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로마 사회는 로마는 반란을 진압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지하고자 제국 전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만들어 ‘길은 로마로’ 통하게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프라를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로마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도로를 통해 복음은 급속히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은 처음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상업 용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61) 55) 최창현, “C-P-N-D 생태계와 ICCT”,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디지털융복합연구」 12/3 (2014): 7-8.56) 이승진, “뉴노멀 시대에 적실한 설교 사역에 관한 연구”, 한국설교학회, 「설교한국」 13 (2021 봄): 13.57) 박성환,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스마트폰을 활용한 어린이 설교”,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59 (2020): 199. (https://doi.org/10.25309/kept.2021.5.15.173)58) 김상균, 『메타버스』, 29.59)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파주: 쌤앤파커스, 2019), 25.60)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90-92.61) 김현철 · 조민철, 『메타버스 교회학교』 (서울: 꿈이있는미래, 2021), 41. 초대교회 시대에도 예배는 모여서 드렸지만 복음 전파와 양육에는 편지를 사용 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직접 전도했던 지역 교회는 양육하는 일에 편지를 활용하였고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교회에도 편지로 복음을 전했다(롬 1:15).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유다도 편지로 성도를 양육하는 일에 힘썼다. 이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예배는 대면 모임을 중시하더라도 전도와 성경공부 등의 소모임은 비대면을 활용 할 수 있다. 총신대학교의 주종훈 교수에 의하면 가상 공간의 모임에서도 성령께서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62)현실 세계와 메타버스를 병행하여 위톡 모임을 운영할 때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1) 현실 세계는 한 주간에 두 번 이상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메타버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교제하며 삶을 나눌 수 있다. (2) 혹 어떤 구성원이 대면 모임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정이 발생했을 경우 그 구성원을 위하여 대면 및 비대면 모임을 병행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장에 와 있는 구성원들 도 모두 영상회의 도구(Zoom, Meet 등)에 접속하여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 (3) 메타버스로 대화하면서 발생하는 아쉬움은 현실 세계의 대면 만남을 더욱 갈망하게 만들어 준다. 그 결과 약속된 대면 모임을 더욱 귀히 여기며 사모하게 될 것이다. (4) 위톡 구성원들끼리의 대화방을 적절히 활용하면 지난주일 설교의 요지를 올려 주어서 기억을 되살려 주거나 각자가 결심한 실천 사항을 격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III. 나가는 글이상으로 연구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활성화를 위한 청중의 설교 참여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코로나 19로 공동체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코로나 19가 종식되지 않더라도 위드 코로나의 방법으로 소그룹 모임이 재개될 것을 기대하면서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을 제안하였다. 설교 비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가 정당성과 적실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선포되는 경우가 있고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교 비평은 자칫하면 설교 비판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는 실제로 설교 비평의 포문을 연 정용섭의 두 비평서에서도 드러났음을 류응렬과 정인교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시행하기 전에는 먼저 객관적이고 바람직한 비평의 기준을 마련하고 비평자의 자질도 잘 준 비해야 한다. 또한, 설교 비평을 시행할 때에는 설교 발전을 위한 설교자 비평 그룹 62) 주종훈, “디지털 예배의 목회적 신학적 고찰과 실천 방향”,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실천신학」 60 (2021): 74.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45) 과 설교를 찬미하고 말씀을 드높이기 위한 일반 청중 그룹으로 구분하여 시행하는 것 이 좋다. 설교자 비평 그룹은 먼저 비평을 위한 충분한 준비 공부를 한 후에 시작하되 서로 예의를 갖추어 격려와 감사를 한 후에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는 “설교 공감 모임”으로 진행함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일반 청중의 경우에는 먼저 성숙한 리더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비평 그룹의 명칭도 비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이름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화의 내용은 “지, 정, 의”의 요소로 구분하여 설교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설교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그리고 설교를 통해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를 나눔으로 신자 개인의 경건과 신앙 공동체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은 메타버스 시대이며 현대인들은 포노 사피엔스임을 감안(勘案)하면 현장에 직접 모이는 방식과 더불어 비대면으로 만나는 방식도 적절히 활용하여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대면 모임으로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김병중 03-16 23:19
『고난 중의 신자에 대한 설교자의 청중 이해』
ㅣ. 들어가는 말 청중은 하나님과 영생의 언약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존재이다.1) 청중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는 설교자의 설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청중은 종종 자신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언약 관계를 맺은 언약 백성이라는 설교자의 설명에 따라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사건이 자신이 들은 말씀과 모순되게 느끼는 현실 때문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까닭을 알 수 없고 감당 하기 어려운 고난을 경험할 때이다. 고난의 정체는 무엇인가? 팀 켈러는 고난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께 다가가게 된다고 한다.2) 그렇다면 여러 가지 까닭 모를 고난을 경험할 때 언약 백성인 청중은 그 고난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이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면 설교자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며 설명할 것인가? 고난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것 만이 아니라 고난을 겪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설교자의 태도 역시 중요한데 설교자는 고난을 겪는 청중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발견하도록 돕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때로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치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이 없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교자는 이런 상황에 관하여 어떻게 설교하여 신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섭리 안에 있음을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점에 대하여 연구자는 먼저 로고테라피 개념으로 고통의 의미를 생각해 본 다음, 대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각각의 모델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이승진, “청중에 대한 설교학적 이해,” 「복음과 실천신학」 6 (2003), 63.2) 팀 켈러/ 최종훈 옮김,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서울: 두란노서원, 2018), 25, 16. 이어 리스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이 부닥친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개념을 제안 하고자 한다. II. 하나님의 침묵과 로고테라피 1. 고통의 문제와 하나님의 침묵 20세기 최고의 문호(文豪) 가운데 한 사람인 C. S. 루이스(1898~1963)는 남달리 많은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10살 되던 해에는 어머니가 암으로 별세하였고 그 후 그의 형은 술을 위안으로 삼다가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을 겪은 루이스 자신도 대학에 진학한 후 신앙을 잃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랜 방랑 후에는 다시 회심하게 되었다. 그는 59세의 늦은 나이에 한 불행한 여인과 결혼하여 크나큰 행복을 느꼈으나 그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의 부인은 3년 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3)이런 많은 고통을 경험한 루이스는 자신만이 아니라 인류가 겪는 고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다. 루이스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고민을 표출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그는 자신의 피조물이 완전히 행복해지기를 소원하실 것이며,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그가 원하시는 무슨 일이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들은 행복 하지 않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선이 부족하든지, 능력이 부족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두 가 지 다 부족한 것이다.4)이렇게 의문을 던진 루이스는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인간의 고통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조화하는 문제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사랑이라는 글자에 통속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한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사람 때문에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5)하지만 루이스는 “고난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온 것을 인정하면서도 어째서 하나님은 악한 인간들이 그 형제들을 그렇게 괴롭히도록 허락하셨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다.6) 사람이란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크게 느끼는 존재이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강정훈 목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은 남의 배에 커다랗게 남은 수술 흔적보다 내 손톱에 낀 가시 자국이 더 아프다고 한다.”7) 이처럼 청중은 각자가 누구보다 쓰라린 고통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통에 대하여 루이스와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런 질문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캔 가이어(Ken Gire)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그의 책에 The North Face of God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는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은 자비로운 아버지가 아니라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등반가가 가장 오르기 힘든 북쪽 능선(the north face)처럼 냉혹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캔 가이어에 의하면, 에베레스트산은 여러 개의 능선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북쪽 능선이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 그런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마치 에베레스트 산의 북쪽 능선을 타고 등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8) 3) 홍치모, “C.S. 루이스의 생애와 사상 – 루이스의 작품과 신념 세계,” 「신학지남」 65/3 (1998/09), 206-10.4) C.S. 루이스/ 김남식 옮김, 『고통의 문제』 (서울: 크리스천서적, 2001), 33.5) Ibid., 63.6) Ibid., 129.7)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서울: 두란노, 2021), 77. 성경 인물 가운데도 고통을 겪은 인물들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요셉이나 다윗은 긴 기간 동안 까닭도 모르고 그 끝도 모르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다윗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 까”라고 부르짖은 후에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탄식하였다. 모세는 요셉이나 다윗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버림받음’을 경험했다. 그 결과 모세는 자신의 꿈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찾아 왔을 때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소명을 거절할 정도였다. 캔 가이어의 말처럼, 성경 인물들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보다 그들이 당한 ‘하나님의 침묵’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9) 2. 언어의 기능과 설교자의 사명 하나님은 이처럼 청중이 당하는 고난의 상황에서 침묵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셔도 설교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기에 설교자는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로 밝히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에게 언어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이며 설교 자가 부여받은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언어의 기능에 대하여는 발터 벤야민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 지으신 모든 것은 말씀으로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말씀으로 만드는 대신 손수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드신 사람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그 말씀을 방출하심으로 사람에게 자신의 창조성을 위임하셨다.10)하나님으로부터 말의 권세를 부여받은 사람의 사명은 이 언어를 통해 ‘사물 언어’(language of things)를 ‘구술언어’(oral language)로 드러내는 것이다.11) 설교자의 사명은 우선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사를 청중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청중이 경험하는 사건들과 고통 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의도를 구속사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 역시 설교자의 중요한 사명이다. 이런 면에서 이승진 교수는 목회 사역의 핵심을 “구술언어와 사물 언어를 신자들 앞에서 서로 연결 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표현한다.12) 그렇다면 청중이 겪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설교자는 어떻게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내세에 천국의 영광을 누릴 성도가 현실에서는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청중에게 설교자는 무엇이라고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는 청중의 질문에 설교자는 어디에서 해답을 확보하여 청중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해답을 성경에 담아 놓으셨기에 매번 새로운 말씀을 주지 않으시는 것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두 가지 이유로 그 해답에 접근하지 못한다. 우선, 고통이 없는 사람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팀 켈러의 말처럼 인간은 “고난이 닥치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제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13)그러다가 막상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 순간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리처드 아스머는 자신이 목사요 실천신학 교수이면서도 모친이 교통사고로 갑작 8) 캔 가이어/ 마영례 옮김, 『하나님의 침묵』 (서울: 디모데, 2006), 20-21.9) Ibid., 18.10)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 (서울: 길, 2008), 84.11) Ibid., 78.12) 이승진, “해석학적 실재론에 근거한 성경 해석과 설교 메시지의 전달 과정에 관한 연구,” 「복음과 실천신학」 54권 (2020), 223.13)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16. 스럽게 사망했을 때 몹시 당황하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머는 고향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노라고 회고하고 있다.14) 아스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청중이 고통스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고통의 의미를 깨달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럴 때 성경적 관점 에서 고통을 설명해 주어 고통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도록 하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3. 고통의 의미와 로고테라피 까닭 모를 고통 속에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성도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성도의 삶에 찾아오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교자는 어떻게 해석해 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연구자는 우선 고통에도 값진 뜻이 있다고 한 옥한흠 목사로부터 해답의 실마리를 확보하고자 한다. 옥한흠 목사는 고난을 겪을 때 우리를 괴롭히는 고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난을 가지고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아야 한다고 한다. 덧붙여 고통은 거룩한 것이며 대단히 신비스러운 것이라고 한다.15)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빅터 E. 프랭클의 설명을 들어보자. 빅터 E. 프랭클은 유대인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악명 높은 나치(Nazi)의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의 생존자이다. 그는 가진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알몸 상태로 발가벗기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말살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아무리 무서운 악몽일지 라도 그 수용소의 현실보다 더 나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16)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빅터 E. 프랭클은 “산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라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라고 한다.17) 빅터 E. 프랭클이 창안한 로고테라피(Logo theraphy) 개념에 따르면,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이런 노력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그래서 빅터 E. 프랭클은 고통이란 그 의미를 찾아내는 순간 절대 고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바꿀 수 없는 운명을 만나게 되었을 때조차도 삶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은 희생의 의미와 같은 어떤 의미를 찾는 순간부터 절대 고통이 아니며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면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까지 하는 존재이다.18) 그렇다면 언약의 말씀을 가진 존재인 청중은 고통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옥 한흠 목사는 고난을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정의하면서 신자는 고난 배후에서 일 하시는 하나님과 만나라고 충고한다.19) 또한, 하나님께서 고난을 성도의 유익을 위해 선용하신다고 주장한다. 그 선용이란 첫째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데 선용하시며,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을 형성하는 데 고난이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20) 옥한흠 목사와 빅터 E. 프랭클의 설명을 종합해 볼 때 고통에는 고통보다 더 큰 의미가 있고 성숙한 성도가 되어 가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신자가 막상 고난을 겪을 때는 그 상황을 성경적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난을 경험할 때 청중은 고난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의 삶에서는 왜 실현되지 않는지 회의(懷疑)하게 된다. 그러므로 청중이 고난을 겪을 때 그 상황을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다. 14) 리처드 아스머/ 김현애 옮김, 『실천신학의 네 가지 중심 과제』 (서울: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12), 40-41.15) 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 234, 15-16.16) 빅터 E. 프랭클/ 정순희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울: 제일출판사, 2000), 51.17) Ibid., 10.18)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47-48.19) 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11, 16.20) Ibid., 18-19. 그렇다면 설교자는 청중이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III. 대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모델들 1. 재난을 바라보는 설교자의 관점 신자가 당하는 고난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난도 있지만 때로는 온 국가적으로 함께 당하는 대재앙도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여러 가지 정상(正常)이 비정상(非 正常)이 되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비정상(Ab-normal)이었던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새로운 정상(New-normal)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경제가 무너지며 코로나 우울증(Corona Blue)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해결하기 위한 백신(vaccine)에서조차 부작용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21) 이런 때에 신자들은 왜 이런 일이 왔으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묻고 싶어 한다. 코로나 팬 데믹 외에도 세상에는 종종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며 설교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대재앙의 의미를 해석하여 설명하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 사건 부터였다. 1755년, 전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리스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대재앙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지 많은 논의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당시 대지진이 의인 욥이 당한 고난처럼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건하게 살았던 도시 리스본을 중심으로 발생한 사건이기에 성경적 설명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러면 대재앙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설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 사건과 2011년 동일본에 지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설교 사례를 살펴보자.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슈마트라 북부에서 모멘트 규모 9.1의 해저 지진과 15미터 높이의 쓰나미 재앙이 발생하여 28만 명 이상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 발생 직후 한국 교회의 한 설교자는 성탄절과 주일이 연속되는 거룩한 날에 쾌락을 즐기러 간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했다는 관점으로 설교를 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관점의 설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교계 안팎에서 많은 질타를 받게 되었다.22) 한편,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가 지진의 원인이 일본 국민의 우상숭배와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설교해서 역시 파문이 일기도 했다.23)이 두 사례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결국 대재앙을 섣불리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하여 설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고난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들 그러면 대재앙에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른 관점인가? 이승진 교수는 재앙과 고난에 접근하는 모델로서 징벌적인 고난의 모델,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모델,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 대속적인 고난 모델, 신비적인 합일 모델, 종말론적 전망 모델 등의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신자의 고난에 접근하는 여섯 가지 모델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4) 21) 곽성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1건’ 추가,” 「청년의사」 인터넷신문(2021.07.26.) 접속 2021.08.05.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293622) 이승진,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29 (2013), 37.23) 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신학과문화」 21 (2012), 119.24)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35 (2015), 267-76. 1) 우선 ‘징벌적인 고난의 모델’의 관점은 고난의 중요한 원인을 당사자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도 이런 인과응보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집요하게 욥에게 회개를 요구했다. 물론 고통에 대한 이런 관점도 필요하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고집스럽게 죄를 범하는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이 사실이다. C. S. 루이스는 고통을 죽어 있는 세계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확성기로 본다. 루이스에 의하면 고통은 악인에게 개선의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 영혼의 요새 안에 진리의 깃발을 꽂는 것이다.25) 그런데 오늘날 지성인들 가운데는 보응 사상이나 징벌 관념을 말소해 버리고 범인의 개과천선이나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모든 징벌을 부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26) 하지만 모든 고난을 징벌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최후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모든 범죄에 대하여 합당하게 징벌하시기보다 심판을 유보하시면서 인간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주민들보다 죄가 많아서가 아니며 그들이 당하는 재난 사건을 교훈 삼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징벌적 고난의 모델은 모든 고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 징벌적 고난 모델이 형평성과 일관성에서 모순점을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모델’이다. 이는 지금 당하는 고난을 반드시 자신의 죄악과 결부시킬 수는 없지만, 고난 저변(底邊)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고난의 의미나 가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미래의 가치로 무책임하게 희석한다는 약점이 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은 청중의 불평을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고난 중에 처 한 신자를 만족시키는 설명이라고는 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3) 징벌 모델과 섭리 모델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고난의 목적이 교육 혹은 연단을 위해서 라고 설명하는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이 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신자는 고난을 통과함으로 신앙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런 연단 후에는 죄에 빠질 가능성도 줄어들어 그에 따른 징벌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는 효과까지 생겨난다. C. S. 루이스에 의하면, 만일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평안을 얻고 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안식을 배울 것이며, 주님께 돌아가는 길을 망각하고 말 것이다.27)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영적인 훈련을 받음으로 천국 백성답게 성숙하여 간다는 이 설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이 모델 역시 모든 고난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욥처럼 남달리 훌륭한 신자가 오히려 남보다 모진 고난을 받는 경우나, 고난을 통한 연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은 유아들이 당하는 고난 등은 이 모델로는 설명하기 곤란하다. 4) 대속적인 고난 모델은 모든 종류의 고난에 대하여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다가 희생을 당한 경우, 혹은 자발적으로 고난을 자취(自取)한 경우에 대한 설명에 동원된다. 예를 들면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던 사람이 오히려 사고를 당해 희생 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를 위해서, 베냐민을 대신하여 벌을 받겠다고 자청한 유다의 경우처럼(창 44:33)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한 경우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하지만 대속적 고난 모델은 다른 사람의 죄나 실수로 피해를 본 사람이 당하는 고난의 경우 이 모델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이 모델은 특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사용하면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5) 신비적인 합일 모델은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인간이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적인 합일 모델에 의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전능을 포기하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능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하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전능하시다는 것이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직 고난과 십자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해서만 생각되어야 한다.28) 이러한 십자가 신학을 수용한 학자 가운데는 우선 본회퍼와 한스 요나스(Hans Jonas) 등이 있다. 본회퍼는 하나님을 전능자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무력하게 고난당하는 분으로 설명한다.29) 한스 요나스 역시 하나님을 무능력한 하나님, 무저항의 하나님, 피조물로 인해 고통받는 하나님으로 설명한다.30) 팀 켈러 역시 다음과 같이 십자가 신학을 옹호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고통과 악의 근원을 쳐부술 칼과 권세를 움켜쥐셨다면 인간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정의를 실현하는 대신 악을 견뎌 내셨다. 예수님이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 받으셨으므로 언젠가는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인간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도 악을 심판하실 수 있다.31)팀 켈러에 의하면 “크리스천들이 역경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주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앞장서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 켈러는 “주님의 고난을 강조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거룩한 주권이라는 개념을 놓쳐 버리고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으로 설명하는 신학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라면서 십자가 신학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고 있다.32)십자가 신학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은 신자가 고난을 겪을 때 거기에서 함께 고난을 겪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고난을 제거하기보다는 인간과 함께 고난을 겪으시면서 새 하늘 과 새 땅의 목적지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피조물을 인도하신다.33)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와 함께 고난 속에 계시는 하나님과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신비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비적 합일 모델의 설명이다. 이 모델은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신자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전능하 심을 포기하고 무력하고 힘없는 하나님이시라면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며 구원할 수 있 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신비적 합일 모델은 고난 속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초월성을 배제해버린 약점이 있다. 6) 지금까지 시도한 고난에 대한 신학적인 해명들은 고난의 원인과 의미를 다 설명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신자의 모든 문제와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최후의 날에 일순간에 해결될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독일의 정치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 (Johann Baptist Metz)는 종말론적 전망 모델을 주장하였다. 이승진 교수는 메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28) 박영식,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한국기독교신학논총」 88/1 (2013/07), 93.29) Ibid., 94.30) 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 응답으로써 하나님 고난이 주는 의미,” 「한국조직신학논총」 33 (2012), 262.31)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196.32) Ibid., 233, 240.33)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274. 메츠에 따르면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츠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로부터 부활절의 아침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것을 부정한다. 아직 인간의 세계는 십자가의 현실이 끝나지 않았기에 부활로 넘어가는 것을 승리자의 신화에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34)하지만 종말론적 전망 모델로는, 현재의 고난을 통해 미래의 소망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유의미한 설명이지만, 고난 자체의 이유를 설명하거나 고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3. 고통의 불가피성과 고난의 유익 앞에서는 고난을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을 살펴보았는데 각각의 모델들은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한계점이 있는 설명이다. 고통을 당하는 청중은 개인마다 혹은 그들이 경험하는 사건마다 상황이 다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청중이 당하는 고통의 정황을 살펴서 각각의 경우에 적절한 모델로 고통의 의미를 적용함으로 청중이 지불한 고통이라는 대가보다 더 큰 유익을 누리도록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연구자는 ‘교육적인 고난의 모델’을 중심으로 고난의 유익을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우선 신약 저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탁월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팀 켈러로부터도 동의를 받을 수 있다. 환난과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는 신약 저자 가운데 우선 야고보를 생각해보자.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는 언제나(ὅταν, whenever)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신자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약 1:2-3). 이와 같은 야고보의 설명에 따르면 신자가 온전하게 되는 데 있어 시련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베드로 역시 신자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 즉 고난은 신자에게 없어야 하는 것인데 운 나쁘게 고난을 당한 일처럼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하라고 한다(벧전 4:12-13). 한편, 사도 바울은 고난이 신자를 연단하여 온전하게 만들어 주는 유익 만이 아니라 천국의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해 준다고 설명한다. 그 영광을 생각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은 가벼운(혹은 견디기 쉬운 ἐλαφρός) 것이라고 표현했다(고후 4:17). 고난이 천국의 영광을 이룬다면 신자에게 있어 고난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기에 종교 개혁자와 설교자들 역시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역설(力說)하기 를 주저하지 않는다. 팀 켈러는, 고난이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는 루터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고난에 맞서 이겨 내도록 도와줄 기쁨과 사랑을 얻기에 앞서, 고난은 우선 우리의 교만을 비워내게 해 준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아직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면 주님은 거기서 아무것도 빚어내실 수 없다.”35) 그러므로 악과 고통이 존재함을 근거로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을 부정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고난의 유익을 바라보아야 한다.36) 고난의 유익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팀 켈러가 소개하는 고난의 유익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37) 34) 이승진,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53-54.35) 팀 켈러,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82-83.36) Ibid., 142.37) Ibid., 300-303. 1) 고난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는다.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은 겸손하게 자신을 바라 보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흠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2) 고난은 우리 삶의 여러 좋은 것들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그 결과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해 준다. 3) 고난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탄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C. S. 루이스도 말했듯이 형통할 때 하나님은 속삭이시지만, 고난 속에 있을 때는 확성기로 소리치시기 때문이다. 4) 고난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 막다른 길로 우리를 몰아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단단히 붙는 경험을 통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주님의 사랑과 기 쁨을 맛보게 된다. 5) 마지막으로,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고통스러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없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으면 고난을 당하는 자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몸소 고난을 경험하면서 고통당 하는 다른 사람에게 깊은 연민을 품게 된다. 이상으로 청중에게 설명할 고난의 의미와 유익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설교자에게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고통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 것뿐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청중(신자)에게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 또한 매우 중요하다. 청중이 고통당하는 때에 설교자가 어떻게 다가가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청중이 그 설교자를 신뢰하고 그의 설교에 경청(傾聽)할 여부(與否)를 결정하게 한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우선 신정론의 설명의 한계 점을 확인한 후에 그 대안을 마련해보기로 하겠다. IV. 신정론의 한계점과 타인의 얼굴 1. 신정론의 의의(意義)와 평가 앞에서 살펴본 고난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여섯 가지 모델의 공통점은 고난에 대해 신정론(神正論 혹은 변신론 辯神論)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신정론으로 번역되는 theodicy는 헬라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θεός와 의로움을 뜻하는 δίκη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신정론은 때로 무고한 자의 까닭 모를 고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고 설명하려는 논리이다. 신정론의 관점으로 볼 때 고통은 선을 더 두드러지게 하고 더 큰 선에 이바지하므로, 부분으로서의 고통은 전체로서는 선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은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 혹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입장에서 신정론을 주장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어거스틴의 전통적인 입장에 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계를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상의 세계”로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세상에 고통과 불합리한 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신정론을 피력하려고 노력하였다.38)선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음에도 이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라이 프니츠는 『변신론』에서 “악은 선의 허용된 결핍”이라는 해결책을 내어놓았다.39) 라이프니츠가 변신론에서 표방하는 것은 “고통과 죄악이 존재하는 세계와 최선의 조화와 행복으로 구성된 세계는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의 계산에 따르면 현존하는 악은 최선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40) 38) Gottfried Wilhelm Leibniz/ 이근세 옮김, 『변신론: 신의 선,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하여』 (서울: 아카넷, 2014), 28-31, 441-50.39) 이상명, “라이프니츠: 변신론과 인간의 자유,” 「철학」 106 (2011/02), 55-56.40) Ibid., 62-63. 그러나 이런 변신론의 설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강영안은 “변신론의 맥락에서는 인간의 고통이 실제로 절실한 현실적 문제로 취급되기보다는 신적 섭리와 계획의 한 부분으로 설명되어 버렸다.”라고 지적하고 있다.41)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 대해 ‘낙관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평가했다. 그런데 막상 그 ‘낙관주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 계기는 학술적인 토론보다는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리스본 대지진 때문에 왔다.42) 2. 리스본 대지진과 신정론의 한계 리스본은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로 포르투갈의 최대 도시이며 수도(首都)이다. 15세기 리스본은 해외 식민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재화로 인해 대도시로 급성장하여 서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으며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리스본의 시가지와 건축물은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으로 6일간 도시 전체가 불바다로 변하면서 도시의 2/3가 파괴되어 사라지게 되었다.43)리스본 대지진 사건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좋은 신자에게 왜 다른 사람보다 더한 불행이 찾아오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신정론이 비판에 직면하였다. 그 이유는 리스본이 여타의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건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시라디(Nicholas Shrady)는 당시 리스본의 경건함을 다음과 같이 묘하한다. 12세기에 지어진 주교좌성당 외에도 교구 성당이 40군데가 넘었고, 공소가 121곳, 수도 원이 90곳, 다양한 수도회들이 150곳이나 있었다.... 리스본에서는 한 걸음 뗄 때마다 성당이나 노변의 십자가, 성모마리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리스본 인구 25만 명 중 10퍼센트가 수도사였다.44)특히나 대지진이 발생한 1755년 11월 1일은 만성절(All Saints' Day)로서 교회력에서 엄격하게 지키는 축일로 이날 하루 모든 경제활동은 중단되었다. 이날 아침 종소리가 울리자 미사를 위해 길을 나선 인파로 리스본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45)이처럼 경건했던 도시가 오전 9시 30분경에 시작된 첫 지진에 이어 몇 차례의 여진이 발생하자 25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몇 세기에 걸쳐 건립된 리스본이 폐허로 변했다.46) 그리고 오전 11시경, 지진이 발생한 지 90분 뒤에 발생한 해일은 채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휩쓸어갔 다.47) 대지진 사건으로 한순간에 사망한 인구는 약 4만 명에서 6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48)리스본이 대지진 사건으로 충격적인 재난을 당한 이후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던 볼테르까지도 생각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49) 이처럼 고난의 문제를 신정론만으로 설명하기 곤란하다면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며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4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서울: 문화과지성사, 2005), 210.42) Nicholas Shrady/ 강경이 옮김,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서울: 에코의서재, 2009), 142.43) 이문원, “옛 해양대국의 자취가 남아 있는 리스본,” 「국토」 340 (2010/02), 71.44) Shrady, 『운명의 날』, 18-19.45) Ibid., 21,46) 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122.47) Shrady, 『운명의 날』, 30.48) 민병원, “재난의 정치학: 리스본 대지진과 근대국가에 대한 21세기적 성찰,” 「평화연구」 28/2 (2020.10), 8.49) Ibid., 11-12. 3.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설교자는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레비나스의 철학 “타인의 얼굴”과 “대속의 고통” 개념은 고통당하는 자에게 다가갈 한 돌파구를 열어준다. 우선 한 개인의 경험을 통해 고통당하는 청중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강정훈 목사는 사랑하는 아내가 골수암으로 시작한 병이 난소암으로 악화되어 5년간 투병하다가 ‘죽기에는 많이 아까운’ 41세에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경험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마음을 정리해서 입을 연 강 정훈은 ‘아직도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 그가 슬픔에 빠졌을 때 믿음 좋은 사람들이 와서 사모님이 좋은 데 갔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말해 준 것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너무나 비인간적인 태도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울고 있는 미망인들에게 울지 말라고 비정하게 요구하는 것을 교회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고 강정훈은 단호하게 말한다.50) 그러면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접근하는 바람직하고 성경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유대교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년~1995년)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아우슈비 츠 대학살 등 비극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설명하려는 변신론은 그 설득력을 잃었다고 본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는 어떠한 쓸모도 없는 부정적인 경험에 불과하다. 레비 나스는 나의 고통이나 타자의 고통 자체는 쓸모없고 의미 없으며 타자의 고통을 위한 나의 고통만이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51)물론 고통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찾을 수 없다는 레비나스의 주장은 다소 과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레비나스의 주장은 고통을 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교자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고통받는 자가 ‘외부의 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된 채 나에게 도덕적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윤리적 사건을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얼굴’은 존재 자체를 통해 나에게 호소하고 윤리적 의무를 일깨운다. 이처럼 타인의 얼굴이 자기 스스로 내보이는 방식을 레비나스는 ‘계시’라고 부른다.52) 레비나스가 여기서 ‘계시’라는 종교적 언어를 사용한 까닭은, 얼굴의 현현은 나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나타나는 절대적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얼굴은 나의 입장과 위치와 상관없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하는 가능성이다. 이처럼 타인의 얼굴이 계시로 다가올 때 필요한 것은 대속의 고통을 나눌 의무가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주장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사실을 레비나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에게 질책하고 호소하는 타자의 저항을 대할 때, 나는 누구로부터도 침해받을 수 없는 나의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이며 나의 의무이기 때문 이다.”53)고통받는 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신음하고 울부짖게 되는데, 여기서 타인의 도움에 대한 근원적 요청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응답하여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향유를 포기할 때, 비로소 타인에 대한 관계, 즉 인간 상호 간의 윤리적 전망이 열리게 된다. ‘나’는 이러한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를 환대해야 한다. 심지어 레비나스는 ‘나’는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먼 과거에 벌써 타자를 위한 책임적 존재로 세워졌다고 한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타인을 대신해서 타인의 자리에 세워지는 일을 레비 나스는 대속이라고 한다. 대속은 문자 그대로 ‘자리 바꿔 세움 받음’이다. 여기서 나의 위치가 수동 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54) 50)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78-80.5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227.52) Ibid., 148.53) Ibid., 152. 54) Ibid., 186. 이처럼 레비나스는 고통이 담긴 타인의 얼굴의 현현 앞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수용함으로써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인 추론에서 벗어나 인간 상호 간의 책임의 윤리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레비나스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중요한 접근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이상으로 고통당하는 청중을 위한 설교자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고통당하는 청중에게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설교자는 먼저 청중이 당하는 고통이 어떤 모델에 해당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통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고통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유익을 청중이 놓치지 않도록 고통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때 설교자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 훈계하는 자의 자리에 아닌 고통당하는 청중과 ‘자리바 꿈’의 과정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청중을 체휼(體恤)하고 위로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청중이 고통을 통해 신앙 성숙의 자리로 나아가고 그리스도 재림으로 완성될 고통 없는 나라에 대한 소망을 든든히 세우는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V. 나가는 말 이상으로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또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에게 설교자가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청중이 고난을 겪을 때, 그리고 그 고난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거나 장기화할 때, 다윗처럼 하나님이 왜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하거나 모세처럼 소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라고 설교자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예컨대 아스머 교수가 경험했듯이 설교자가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일깨워주면 신자는 잠시 방황하던 자리에서 돌아와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설교자가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해석하는 여러 모델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신자가 겪고 있는 개별적인 고난 사건을 설명하는데 어느 유형이 적절할지 잘 분별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당장은 고난이 아프고 힘들지만, 신자의 성숙에 고난이 불가피함과 결국에는 고난이 유익임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사역을 감당하는 설교자에게 고난을 설명하는 모델들을 잘 이해하는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고난을 겪고 있는 청중에게 다가가는 태도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다는 신정론의 주장을 강조하느라 자칫 고난을 겪는 신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체휼(體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타인의 얼굴’이 ‘계시’라고 하는 레비나스의 설명은 설교자가 청중을 향해 체휼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 요긴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C.S.Lewis / 김남식 옮김. 『고통의 문제』. 서울: 크리스천서적, 2001. 강영안.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 서울: 문화과지성사, 2005. 강정훈. 『내게 왜 이러세요?』. 서울: 두란노, 2021.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이근세 옮김. 『변신론: 신의 선,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하여』. 서울: 2014.곽성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1건’ 추가.” 「청년의사」 인터넷신문(2021.07.26.) 접속 2021.08.05. 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운명의 날-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서울: 에코의 서재, 2009.리처드 아스머/ 김현애 옮김. 『실천신학의 네 가지 중심 과제』. 서울: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12.민병원. “재난의 정치학: 리스본 대지진과 근대국가에 대한 21세기적 성찰.” 「평화연구」 28/2 (2020.10). 5-38.박영범. “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 응답으로써 하나님 고난이 주는 의미.” 「한국조직신학논 총」 33 (2012), 243-279.박영식.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한국기독교신학논총」 88/1 (2013/07). 85-112.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 서울: 길, 2008. 빅터 E. 프랭클/ 정순희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울: 제일출판사, 2000.옥한흠. 고통에는 뜻이 있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0.이문원. “옛 해양대국의 자취가 남아 있는 리스본.” 「국토」 340 (2010/02), 70-75. 이상명. “라이프니츠: 변신론과 인간의 자유.” 「철학」 106 (2011/02), 이승진.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35 (2015), 70-75. _____. “대재앙에 대한 신정론 관점의 설교.” 「복음과실천신학」 29 (2013), 70-75. _____. “청중에 대한 설교학적 이해.” 「복음과 실천신학」 6 (2003), 60-86. _____. “해석학적 실재론에 근거한 성경 해석과 설교 메시지의 전달 과정에 관한 연구.” 「복음과 실천신학」 54권 (2020), 198-231.캔 가이어/ 마영례 옮김. 『하나님의 침묵』. 서울: 디모데, 2006.팀 켈러/ 최종훈 옮김.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서울: 두란노서원, 2018.허호익. “리스본 대지진과 자연재해에 대한 신학적 쟁점.” 「신학과문화」 21 (2012), 119-144.홍치모. “C.S. 루이스의 생애와 사상 – 루이스의 작품과 신념 세계.” 「신학지남」 65/3 (1998/09), 203-216.
국외선교더보기 +
-
김병중(Th.D) 06-14 15:02
선교동행예배-모잠비크 이희정·아마릴도 실라스 마아이아 선교사 간증
믿음의 기업 본죽·본아이에프가 주관하는 「선교동행예배」 6월 14일 모임이 오전 10시 40분 양천로에 소재한 본월드미션 센터에서 있었다. 강찬 찬양 사역자의 찬양 인도 후 00국 강00 선교사가 기도한 후 남성 선교사들이 중창했다. 이희정, 아마릴도 실라스 마가이아 부부 선교사가 시 23:1-6을 본문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란 제목으로 선교 간증했다. 이희정 선교사가 "시23편이 제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다. 말씀대로 매순간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셨다. 저희는 40대 중반의 부부로 결혼 10년차이다. 2011년도에 한국에 머물며 아들의 발달치료 과정을 밟았다. 아들은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다. 남편도 성인병을 앓고 있어 한국에와 치료했고 저도 자궁, 유방 치료를 받았다. 저의 친가 외가는 모두 불신자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복음을 들어 믿게 됐다. 그러나 부모(할아버지, 할머니)의 반대로 교회를 가지 못하고 대신 자식들인 우리를 보냈다. 이후 아버지는 병을 얻고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됐다. 이 과정에 친가가 다 믿게 됐다. 그런데 중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로 10년간 교회를 떠났다. 이후 26살 때 기독교의 꼬투리를 잡을려고 돌아와 결국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됐다. 2008-9년 남아공으로 단기선교를 가서 거기서 남편을 만나 전문인 선교사 훈련을 받고 3년 후 모잠비크로 가게 됐다. 모잠비크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선교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이다. 10년 사역하는 가운데 마을이 형성됐다. 지역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교회가 활성화됐다. 아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경험했다.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사역을 하게 됐다. 모잠비크는 9개월간 덥고 습하다. 곤충으로 인해 피부가 가렵고, 물이 깨끗하지 못하다. 불을 피워 밥을 먹고 사는 등 초기에 많이 고달펐다. 당시 한국 선교사들하고 교제하지 못해 외로웠다. 외국인 남편과 사는 것이기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여러가지로 힘들었는데 그것이 사역이고 삶이라고 생각하고 버틴 것 같다. 지금에야 그 당시에 ‘눈물의 골짜기’를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연약한 믿음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 지금은 믿음도 나약한 가운데 있다. 그러나 인도하실 하나님을 붙잡고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지역에 전기가 없어 많이 힘들었는데 작년에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고, 10년만에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믿음의 리더로 세워졌다. 감사한 사람으로는 남편이며 함께 교제를 했던 다른 선교사였다. 그 선교사도 현지인과 결혼한 여자 선교사였는데 많은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아마릴도 실라스 마가이아 선교사가 "기쁨의 눈물이 난다. 그동안의 사역을 나누게 되어 감사하다. 시37:7말씀으로 살고 있다. 제 삶이 어려워 사역자가 될 상황이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늘 신앙으로 인도했다. 과거 코미디언이었다. 그런데 보수를 술로 받아 문제가 있었다. 그러다 방송 코미디언이 될 기회가 왔는데 그때 남아공에서 신학을 공부할 기회도 왔기에 신학공부를 하기로 했다. 이후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가서 전도를 했다. 아버지는 사역을 반대했고 어머니는 지지했다. 열악했지만 열심히 전도했다. 3명의 아이가 자라 교회의 일꾼이 됐다. 이후 한 선교사님이 교회를 지을 수 있는 재료를 주어 건축비도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지어졌다. 현지인들은 교회를 통해 도움을 받을 마음으로 오게 된다. 그래서 교회를 짓다가 떠나기도했다. 하지만 사역의 열매는 마을 사람들이 이단을 떠나 신자가 됐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사역의 열매이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저는 늘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잠비크의 평안을 위해서(북부지역에 테러가 빈번함), 무슬림이 많은데 복음화를 위해서, 가족의 건강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서 간절히 합심기도 후 아마릴도 실라스 마가이아 선교사의 축도로 마치고 정성껏 준비한 애찬을 나누며 교제했다. 믿음의 기업 본죽·본아이에프는 이처럼 매주 100여명의 선교사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며 참석자들에게 죽 교환권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선교사들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귀한 기업이다. -
김병중(Th.D) 06-07 15:19
선교동행예배-루마니아 송정렬·전효정 선교사 간증
믿음의 기업 본죽·본아이에프가 주관하는 「선교동행예배」가 6월 7일 오전 10시 40분 양천로에 소재한 본월드미션 센터에서 있었다. 강찬 찬양 사역자의 찬양 인도 후 00국 김0애 선교사가 기도한 후 브라질 조경미 선교사가 특송했다. 루마니아 송정렬, 전효정 선교사 부부가 고후 2:12-14을 본문으로 ‘개선 행렬에 참가시켜 주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선교 간증했다. 송정렬 선교사가 “2001년도에 튀르키예에 갔는데 2021년 초에 영구추방 당해 1년 6개월 안식년을 보내고 작년 9월에 루마니아로 가게 됐다. 1989년 군제대 후 중동 이슬람권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후 이슬람 선교를 준비했다. 최근 중국, 인도에서도 선교사들이 추방당했다. 선교지를 추방당하면 생활의 애환이 생긴다. 상실감이 들었다. 통상 추방 후 5년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데 저는 영구추방을 당했다. 그래서 튀르키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좀 더 조심했어야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충격을 받았다. 저는 다행히 파송 교회가 주거를 마련해 주었는데 때로 주거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거절감의 상처가 있는데 후원교회가 후원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교회가 추방된 선교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본문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추방으로 인해 때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로 인해 힘들어 했지만 이후 그들이 바울이 보낸 편지로 회복했을 때 위로받고 감사하며 고린도후서를 쓰게 됐다. 현지에서 20년간 다음세대를 위해 사역했는데 이들이 다음세대 사역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위로가 됐다. 튀르키예는 성경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비잔틴을 중심으로 1000년간 기독교 문화가 꽃피웠다가 1071년 이슬람이 들어와 99.8%가 이슬람화 됐다. 그러나 다음세대 사역을 하며 신앙교재를 많이 발간했는데 이를 통해 여전히 선교사역이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하다. 현재는 루마니아에서 디아스포라 튀르키예인들에게 사역하고 있다. 동유럽을 중심으로 2백만 명이 넘게 퍼져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로인해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희는 루마니아교회와 협력해 이들에게 사역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제야 추방당한 이유를 알게 됐다. 이슬람은 선행을 통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친다.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해 절반 이상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간다고 고백해 감사했다. 두 딸이 있는데 추방으로 인해 작은 딸이 충격 받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것이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고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응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게하시고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신다고 했다.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효정 선교사가 “남편 따라 튀르키예에 무작정 따라 갔다. 10년 후 한국에 오니 너무 좋아보였다. 그래서 한국에 있고 싶었다. 그때 하나님은 ‘선교지에 있는 것이 너에게 복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깨닫고 마음을 바꾸어 열심히 사역했다. 이후 다음세대들이 자라 교회 사역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다. 그러다 영구추방을 당해 너무나 상실감이 컸다. 그 동안 상담대학원 과정을 하며 국내에서 상담 사역을 하길 원했는데 남편과 함께 선교지 정탐을 가게됐는데 열학한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예배에 참석한 아이들을 볼 때 ‘아이들을 위해 너희를 사용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었다. 이 부르심에 따라 순종하기로 했다. 50살이 되어 루마니아어를 배우는 데 언어가 어려워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제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을 오히려 남편에게 말하고 루마니아로 가게됐다. 어려웠지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게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간절히 합심기도 후 송정렬 선교사의 축도로 모임을 마치고 2층에 올라가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나누며 교제했다. 믿음의 기업 본죽·본아이에프는 이처럼 매주 선교사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따뜻한 점심을 제공하며 참석자들에게 죽 교환권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선교사들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귀한 기업이다. 사역소개 영상 -
김병중(Th.D) 04-26 11:04
인도선교편지 - 김계응 · 오금희 선교사
2020년 1월, 10년째 하는 마을 클럽 대항 축구 사역을 끝내고 잠시 쉬고 오려고 나간 태국에서 팬데믹을 맞았고 본의 아니게 긴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14년간의 사역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무지하고 부족해서 잘못한 것들이 많았고, 후회되는 것들을 어떻게 보충할 수 있을까? 새로운 각오를 두고 곧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긴 시간을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현장에 없으니 편안한 환경이 가시방석 같고, 이러다가 솥에 서서히 삶아지면서 죽어가는 개구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인도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연구했으나 비즈니스 비자와 학생비자 밖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지난 1월 자다 풀 대학 방글라를 배우는 어학코스로 입학허가를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학생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처음 선교 떠날 때 붙잡은 사도행전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새 각오로 입국하였습니다. 이민국을 통과할 때 70 중반의 나이에 학생비자가 이해가 안 되는 이민국 직원이 모든 사람을 다 보내고 우리 부부만 남겨 놓고 수많은 질문 끝에 결국은 입국을 허락했습니다. 할렐루야 공항 문을 나서니 후끈한 찜통더위와 메케한 매연 냄새, 선명하게 들리는 방글라를 들으니 드디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왔다고 하는 안도감과 한편 습기 100%인 더위와 매연과 벌레를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교차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가구가 대강 있는 집을 구하게 되었는데 입주한 지 10일이 지나도록 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컵라면을 원 없이 실컷 먹었습니다. 4월 6일 동역하는 최헌주 목사님이 입국하여 8일 사역지 람강가강에 함께 내려갔습니다. 부활절 예배에 1년 만에 성찬과 세례식을 하였습니다. 보노샴너골 섬 사역자로 키우는 "수깐도 다스"가 성경학교에 공부하러 간 동안 홀로 사는 70이 넘은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기도하러 매일 새벽예배에 나오다가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4월 10일(월요일)부터 시작된 청년부 수련회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리자"라는 제목으로 3일간 진행되는 동안 40여 명의 청년들이 참석하였는데 오전에는 성경 개관에 관한 강의와 오후에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부분 청년이 드르보바잘 교회의 초창기 때 5~6세부터 과외 학교에서 자라나서 지금은 교회의 든든한 일꾼이 된 청년들입니다. 바라기는 말씀으로 잘 성장해서 도시에 직장을 가지면서 교회를 떠나든지 결혼해서 타지역으로 가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쁜 소식은 교회의 안수집사 "산토스 고로이"의 무남독녀 딸인 뿌스폰잘리가 켈커타에 있는 윌리엄 케리 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앞으로 1년간은 드루보바잘 교회에서 전도사로 훈련받고 그다음 해 신학 대학원에 공부하러 갈 예정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으면 계속 공부시켜 신학대 교수를 만들 계획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공부를 그만두고 건축 현장에서 노동자로 살면서 배우지 못한 한을 딸이 대신해 주어 산토스 집사의 큰 기쁨이 되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저희는 태국에서 올 때 다 버리고 옷가지와 양념 꼭 필요한 것 몇 개 가지고 왔는데 무게 때문에 된장 고추장을 못 가지고 와서 못내 아쉬웠지만 여기에 오니 마침 한국으로 철수하는 선교사 가정이 있어서 필요한 것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재적응에 필요한 모든 것을 여러 통로를 통해 공급받으면서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또 경험하며 이곳에서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건강하여 남에게 짐이 되지 않고 우리 부부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 동안 이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가지고 기쁘게 살며, 지금까지의 사역을 잘 정리 정돈하여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후회 없이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성실하게 저희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동행하여 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2023년 4월 인도 콜카타에서 김계은 오금희 선교사 올림 -
김병중(Th.D) 01-22 17:14
인도 선교 소식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편 67편 3절)) 세상이 온통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디지털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나라 간의 왕래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선교의 길이 막히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오묘한 뜻은 그 가운데서 막히지 아니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람강가 현장을 보고 드립니다. 저희 부부는 8월 17일 인도 땅에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지난 3월 켈커타 공항에서 사역지를 눈앞에 두고 입국거부를 당한 뒤, 늘 언제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노심초사 염려하였지만, 이번에는 비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쉽게 받게 되었습니다. 여권에 지난번 입국거부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민국을 통과할 때 예상되는 모든 질문에 대답할 말을 철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 질문도 없이 이민국을 너무 쉽게 통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민국 직원의 눈을 가려주신 것 같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사역지에 도착하여 보고싶은 얼굴들을 만나고 우리가 떠나 있었던 지난 2년 7개월 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우리 눈으로 보고 사역자들의 보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데보브로또 고로이 목사님이 초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쉽게 잘 전하고 있고, 엄마들이 예배당 뒤편까지 그득히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예배 중에 “내가 시작했다” 라고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람강가 사역을 끝까지 이루어 가시겠구나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2년 7개월의 시간속에서 교회학교 아동들이 키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몰라보게 되었고 청년이 되어 각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너무 기특했습니다. 잠 많은 시기인데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 인도도 하고, 어린이 예배에 사회를 보는 청년도 있고, 장년예배에 찬양팀을 만들어 예배인도도 하고, 교회 화장실 청소도 맡아서 깨끗하게 관리해 놓은 것을 보니 멀리서 나마 날마다 머리 박고 간이 절이도록 기도한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고 하나님이 아름답게 키우셨습니다. 18세 이상 된 청년들은 전도훈련 받고 마을에 새 소식반을 잘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5곳인데 해마다 늘려 나갈 계획이고 일년마다 장소를 바꾸어서 여러 곳에서 복음의 소식을 전할 계획입니다. 교회가 세워진 후 지난 10여년의 시간 속에서 자녀들을 통해 교회에 출석하게 된 엄마들의 믿음이 많이 자랐습니다. 산토스 안수집사의 지도아래 글자를 아는 엄마들을 주축으로 자기집을 오픈하고 글자를 가르쳐 주면서 말씀과 찬양도 가르치면서 결속력을 다지고 있습니다. 지금 두 팀으로 약 30여명이 모이는데 계속 지도자를 세워 장소를 늘려 나갈 예정입니다. 거의 1년 전부터 새벽기도에 나오는 10여명의 엄마들이 매일 말씀과 기도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새벽예배에 나온 엄마들이 “다시는 죄악의 길로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찬양을 힘차게 부르는 것을 보니 이 힌두 땅에서 하나님이 하셨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데보브로또 고로이목사님이 주일 장년 예배뿐만 아니라 아동예배를 맡아 성경비디오를 보여주며 말씀을 전하는데, 재미있는 것이 없는 시골에서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게 말씀을 배우고 있고 아동 부 예배에 40~50여명이 모이고 매주 새로 오는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어 소망이 보입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보노샴너골 섬교회에 가보니 아직은 성도들이 많지는 않지만 초창기부터 어린자녀를 데리고 나오던 성도 몇 가정이 이제 그 아이들이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인도자도 없이 자기네들끼리 모여 새벽예배를 드리고 학교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중에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던 “리야스리 사몬또”가 며칠전에 국립 간호대학교에 합격하였습니다. 시골에서 도시에 있는 국립간호대학교를 가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졸업하면 국립병원에 취직이 되고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섬교회에서 한 명의 희망 샘플이 나옴으로 온 섬에 학부모와 아동들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그 힌두 섬마을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사역지에 들어가지 못해 모든 것이 정지될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가 선교지에 있으므로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3년 동안 교회 관리를 하지 못해 창문과 문들이 비와 바닷바람에 칠이 군데 군데 벗겨져서 흉측하게 되어 있어 마음이 아프고, 공부 잘하는 아동들은 격려해서 전문직을 가지도록 대학을 보내줘야 하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잘하고 있는 가운데 격려하며 시너지 역할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이번에는 여행비자로 들어갔지만 장기비자를 받기위해 자다푸르 대학 어학원에 11월에 학생등록을 신청하려 합니다. 내년 1월에 입학허가가 되면 학생비자를 받게 됩니다. 마음은 선교지에서 죽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까지 생명을 다하려 합니다. 기도제목은 1, 데보브로또 고로이목사님이 함께 교회를 섬길 합당한 아내를 만나도록. 2,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3, 저희 부부가 장기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얻도록. 늘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기도의 동역자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며 김계응 오금희 선교사 올림 -
김병중 01-05 20:20
만만만 선교운동에 동참합시다!
총회세계선교회 GMS(이사장 박재신 목사)가 교단과 함께하는 세계선교운동을 실시한다. GMS는 전 세계 97개 나라에서 1433 가정 2579명의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2022년 12월 말 기준) 현재 GMS는 비자발적 철수와 팬데믹, 정년은퇴, 후원 중단과 건강악화로 인한 중도탈락의 이유로 선교사들의 수적인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 사역적으로는 장기전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쟁과 내전,정국 불안 등으로 인해 그 지역(우크라이나, 러시아, 미얀마, 아이티 등)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신분적, 심리적, 경제적, 사역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 외의 지역에서도 세계적인 경제 불황, 금리 인상, 달러화 강세, 물가 급등(아르헨티나, 스리랑카, 튀르키예, 라오스 등)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한 영향 탓에 한국교회는 수적인 감소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세계선교에 대한 열의가 많이 식고 있다. 이에 교단내의 모든 교회들이 선교에 동참하게 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고, 지상명령의 수행을 위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교단 내의 교회수는 1만1262개이다.(2022년 10월 기준)이 가운데 GMS를 통해 선교사를 단독 파송하는 교회는 608곳이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협력교회는 1570교회이다. 파송과 협력을 하는 교회의 합이 2178개로 전체 교단 교회의 19.3%에 불과하다. 우리 교단의 전체 교회 가운데 총회 GMS와 동역하는 교회가 20%도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교회들이 교단 GMS 선교회가 아닌 선교단체를 돕는다고 할지라도 나머지 80%의 교회들이 세계선교에 동참 혹은 동역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만만만 선교운동의 비전은 GMS선교에 동참하지 못했던 교회들을 동원해 교단 내의 모든 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를 하는 것이다. 만만만 운동의 핵심가치는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세계선교에 동역하지 못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모두가 함께 동참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에 GMS는 교단의 모든 교회들을 세계복음화를 수행하는 선교사명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만만만 선교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만만만 선교운동은 선교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1만교회, 1만성도가 매월 1만원씩 GMS에 후원금을 내는 운동이다. 만만만 운동의 비전은 GMS 선교에 동참하지 못했던 교단 내의 모든 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를 하는 것이다. 후원 링크 http://go.missionfund.org/gms10000 만만만 선교운동의 핵심 가치는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세계선교에 동역하지 못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모두가 동참하도록 하는 데 있다. 월 1만원은 한 달에 커피 2잔 정도의 금액으로 모든 교회들이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만만 선교운동을 통해 모든 교회들이 선교에 동역함으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세계선교에 한 부분의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 세계선교에 큰 모멘텀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만만만 선교 후원금은 선교사들의 긴급 의료발생, 재난, 전쟁, 사고 등을 위한 긴급위기 관리기금, 은퇴 선교사들의 주택과 연금, 후원 부족 선교사와 MK의 복지지원, 선교사 계속교육, 다음세대 훈련 및 파송 지원, 통일 선교와 이주민 선교, 디지털 선교를 위해 사용된다. 모금은 만만만 선교운동의 참여 확산과 모금의 투명성을 위해 기독교 모금단체인 미션펀드를 통해 하게 된다. 박재신 이사장은 "만만만 선교운동은 우리 교단 내 모든 교회들이 GMS와 함께 세계선교에 도약할 수 있게 하는 선교운동으로 농어촌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와 성도들이 큰 부담 없이 매월 1만원의 헌금으로 참여해 '우리도 선교를 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제는 우리 교단이 교회 수나 역사만이 장자교단으로서의 이유와 자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요 교회 본질의 사명인 세계선교에 모든 교회들이 동참하는 것이 자랑이 돼 하나님께서 독노회부터 우리 교단에 주신 선교적 교단의 모습을 회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라며, "만만만 선교운동은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전체에 큰 부흥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 기자는 '만만만 선교운동'에 미력이나마 동참하기 위해 이 기사를 만들었으며, 자비로 모든 총대들에게 문자를 보내 홍보토록 하겠습니다) -
김병중 06-23 11:13
인도 선교소식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장 9절 말씀) 저희들은 지난 3월 29일 꿈에도 그리던 사역지 람강가를 눈앞에 두고 코비드로 인해 바뀌어진 입국절차를 숙지하지 못해서, 켈커타 공항에서 서류미비로 2일을 억류된 뒤, 입국거부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만약 못 들어가면 어떡하지?? 또 람강가는 어떻게 되나? 두려움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와 동역하는 최헌주 목사님은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출국수속 중, 비자 거부를 당해 들어가지 못했고, 미국에 가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람강가로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의 청년부 수련회를 준비하였고 신앙과 말씀에 백지같은 44명의 교회 청년들에게 “사도행전적 교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도전과, 기도와 찬양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계획대로 안 되어도 또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해 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지난 5월 29일 주일에는 데보브로또 목사님이 목사 안수 받은 후 처음으로 6명의 세례식을 거행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3월에 임직 받은 산토스 안수집사의 딸 뿌스폰잘리가 세례를 받게 되어 산토스집사의 감격이 넘쳤습니다. 자기가 이 힌두 땅에서 마을 사람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크리스챤으로 성장하였고, 무남독녀 외동딸이 믿음으로 잘 자라서 세례 받게 되었으며 6월에는 켈커타에 있는 윌리엄 켈리 신학교로 가게 됩니다. 신앙의 2세대가 이어지게 되어 더욱 감격이 넘칩니다. 지난 2년동안 하지 못한 성찬식도 하게 되어 그동안 세례 받은 신자들에게 큰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함께 하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저희가 다시 한번 여행비자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코비드로 인해 잠시 열린 학생비자를 받아 장기 체류 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늘 부족한 저희들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헌신하여 주신 동역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2022년 6월에 김계응, 오금희 선교사올림 -
김병중 05-18 16:22
의료선교 한00 선교사
한 선교사는 침술 의료선교사로 중국,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힌두교, 불교, 무술림을 상대로 치료 선교를 하고 있다. 의료선교는 다른 현지 선교사와 협력해서 하며 치료시 다른 사람이 동행해서 전도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네팔 00 지역에서 약속된 10명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이때 예약 안된 한 분이 소문을 듣고 참석했고 마지막으로 그 분을 치료했는데 힌두교인이었던 그 분이 결국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 한 선교사는 침례교 목사로서 미국과 중국에서 침술을 배웠으며 2010년부터 한사랑의료선교사로 미리 선교사하고 연락해 선교지를 방문해서 먼저 주변 지역 선교사들을 치료하고 이후 지역 선교사들의 현장을 방문해 침술 사역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역한지 5-6년이 경과하자 병원에서 치료 받지 못한 사람들이 믿고 와서 치료를 받게 됐고 한 사람에게 2-3시간 정도 걸려 100개 이상의 침을 놓아 치료하고 있다. 10년간 목회와 의료선교를 병행 하다가 이후 선교사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진료하고 사랑해서 구원받게 하는 것을 목표로 의료선교하고 있다. (한 선교사는 현재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본 기자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병중 03-29 00:42
인도 선교 소식
2022년 3월 기도편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사야 26장 3절) 세상은 끝이 나지 않은 전염병과 전쟁의 소식으로 우리를 혼란케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지 함으로 주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다만 기도하기는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 같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 도울 분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 없사오니 하나님이 공의의 손을 높이 드셔서 욕심으로 침략한 나라를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고 갑자기 당한 공포와 고통, 가족을 잃은 아픔과 슬픔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루 빨리 전쟁을 종식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람강가 소식은 3월3일 드디어 데보브로또가 목사 안수를 받고 초창기부터 저희와 함께 교회를 개척했던 산토스 고로이가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데보브로또는 지난 10 여년동안 2년 과정의 성경학교에서 시작하여 신학교 3년 신대원 2년 과정 가운데 늘 1등으로 졸업하면서 학교의 교수들의 칭찬을 받고 승승장구 했지만 지난 2년동안 아내의 난치병으로 결국 하나님 앞으로 먼저 보내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겪으면서 심령이 단련되어 지고 목사 안수 받을 준비가 더욱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목사안수식에 가기를 소원했지만 비행기가 없어서 못 가서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드디어 3월 20일부터 비행기가 열려서 29일 들어가게 됩니다 저희들이 현장에 없는 동안 하나님이 직접 여러 모양으로 간섭하시고 인도하셔서 교회가 견고하게 서 가고 성도들도 많이 성장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보고싶은 얼굴들 만나기를 소원하며 또 저희들이 가서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구상하느라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잠을 설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한편 현장 안에서의 연약한 부분들 개선해야 할 세밀한 부분들, 교회가 목회자가 세워짐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과외학교 체제에서 목회자 중심의 교회로 바뀌어 지는 과정 가운데 교회 구성원들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또한 새로운 시대상황 가운데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목회를 이끌어 가야 하나? 또 교회와 목회자가 어떻게 재정적인 자립을 하나? 등등 무거운 짐을 안고 갑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여 주신 후원자님과 동역하여 여기까지 왔으니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져 지역복음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 데보브로또 고로이가 섬기는 리더쉽으로 예수님 닮은 목회자로 성장하도록, 2, 이번 노회에서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은 산토스 고로이가 교회를 잘 섬기고 장차 장로로 장립 되어질 수 있도록, 3, 저희들이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맡겨진 역할의 잘 감당하고 교회발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또 더위와 벌레와 바이러스 잘 이기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늘 감사를 드리며 2022년 3월에 김계응 오금희 선교사 올림
포토에세이더보기 +
-
김병중(Th.D) 11-04 19:37
3代의 감 따기
2020년 12월 담임목회 사임 후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면서 이듬해부터 가을에 감을 따고 있다. 올해도 감을 땄다. 20여 년 전 어머니께서 이 집을 사서 오신 후 종로 묘목상에게 어린 감나무를 사서 마당에 심었다가 아버지께서 집 밖 귀퉁이로 옮겨 심으셨다. 올해 4년째에는 이전처럼 감나무에 비료를 주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어머니가 막걸리 등 양분을 주셔서 그런지 깨끗하게 감이 열렸다. 이전에는 감 주위에 흰 것들이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감이 탐스러웠는지 동네 어떤 사람이 두 번이나 따는 것을 어머니 아는 분이 소리쳐 내쫓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손타기 전에 어머니, 아들과 함께 감을 땄다. 이사 올 때 감나무 잎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해 어머니는 잘라버리시려고 했는데 나는 살려 두자고 했다. 그 결과 서울에서 감을 따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아버지도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잘 익은 감을 맛있게 드시니 다행이다. 70여 개는 딴 것 같다. 대봉이라 익혀 먹어야 한다. 매년 감 따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단톡에 어떤 사람이 감의 효능에 대해 올려 공유해 본다. "감" 많이드세요!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놀라운 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은 종합 영양제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과일이죠. 감 1개에는 사과 9.5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있는데 이는 최고의 천연 종합 비타민 과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비타민 A는 시각 유지에 필요한 로돕신을 만드는 영양소인데 이 비타민 A가 감 1개에 성인이 하루 섭취해야 할 양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눈을 많이 쓰는 수험생이나 노안으로 눈이 나빠지는 경우에 시력 보호용 과일로도 좋습니다. 감의 주성분은 당질(15~16%)인데 포도당과 과당의 함유량도 매우 높으며, 비타민 C와 A 그리고 탄닌, 칼륨,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입니다. 감은 최상의 건강 과일이라 해도 지나침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최상의 건강 과일이 흔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무시하고 비싼 과일만 사드시고 있겠죠! 사과 10개 먹는 것보다 감 1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증명하고 있어요. 잘 모르셨죠? 감은 자연 치유제로도 최상의 특급 과일이며 피부에도 최고랍니다. 심폐(心肺)를 녹여주며 갈증을 멈추고 폐위(肺痿)와 심열(心熱)을 치료합니다.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吐血)을 멎게 해 주는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입니다.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기침, 만성기관지염, 고혈압, 심장 질환 등에도 효능이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풍 예방약으로도 쓰입니다.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감 많이 드세요. -
김병중(Th.D) 03-30 10:30
옥수수 파종
옥수수 파종 옥수수 두 알을 땅을 파고 묻는다. 끝! 어제 10년 같이 산 개를 장사했다. 밤나무 언덕에 땅 파고 사체 넣고 묻는다. 끝! 장례식도 비슷하다. 땅 파고 넣고 묻는다. 끝! 성도의 삶을 땅에 묻힌 밀알이라 했다. 땅에서 썩어 열매 맺는다. 땅에 묻히는 게 영광이다. 흙으로 가려지는게 시작이다. 나머지는 생명을 주관하는 주의 몫이다. -
김병중 10-28 19:12
강의창 장로 부부 시
강의창 장로 시 에벤에셀 참으로 오랜 세월 방황하며 허우적거릴 때 미스바로 모여라 부르는 소리 가야만 된다는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에 제단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얼굴에 홍수를 이루고 입술이 열리며 알 수 없는 천국 방언이 쉴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후로부터 모리아 산 이삭의 제물처럼 생(生)과 사(死)를 당신께 맡겼습니다 이제는 달려 갈길 다 가고 여기까지 도우신 기념비를 지워지지 않는 종이에 아로새깁니다 여명(黎明) 밤 새워 진통을 앓던 어둠은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에 희망의 나래를 펴고 날아든다 그림자 없는 어둠을 헤메이며 밤 새워 토해 내던 역겨운 세월들 하늘 눈물 쏟아 내고 눈이 열렸다 가지 끝에 매달려온 가느다란 빛줄기는 검붉은 심장을 터트리고 여명(黎明)의 호흡으로 벅차 오른다 해당화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해당화 장독 항아리 여는 엄마와 눈 맞춤한다 인생살이 고달파도 장독대에 가면 마음의 부자 해당화 꽃향기에 취해 얼굴에 미소 지으며 간장 된장 퍼와서 식구들에게 고운 정 퍼붓던 엄마 엄마의 향기 지금도 내 마음에 피어오른다 홍수임 권사 시 아버지 (1) 이름만 불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의 울림이 메아리쳐 옵니다. 밤늦게 귀가할 땐 딸 사랑에 잠 못 이루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당에 서성이셨다. 딸 발자국 소리 들려오면 모르는 척 방에 들어가 등잔불 끄고 아침이 오면 말없이 일거리 주시며 마음으로 안아주시던 아버지 예수 부활 (4행시) 예수 믿고 구원됨이 복중에 제일 큰 복이요 수확 중에 제일 많은 수확이다 부하게 넘치는 축복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활용하여 많은 상급으로 선한 사업에 부요하길 원합니다. -
김병중 10-17 11:41
이제 가을은 끝났다 - 손근식 장로
이제 가을은 끝났다. 기온이 뚝 내려간다고.. 아직 들판은 추수를 마치지않았는데... 누가 추수를 하러 갈런지.. 오이코스 초청 추수 대작전이 조용하게 개시되었다... -
김병중 03-30 00:59
아부지와 홍시
1. 오늘 아침 58년 개띠 ‘백형’이 시 한편을 보냈다. 하기야 오늘만 보낸게 아니다. 그 형은 매일 보내신다. 백형의 사랑의 수고로 나는 요즘 매일 시 한편을 읽는 멋스런 남자로 바뀌고 있다. 나름 감성 있다 자부하는 나에게 백형은 시적인 감각까지 겸비하도록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오늘 아침 보낸 시를 읽는데 고향과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백형이 보낸 시는 ‘피재현’ 시인의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서’였다.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2. 내 고향 청도는 감나무 천지다. 집집마다 서너 그루 있고, 밭에도 있고, 가로수도 감나무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마다 달린 빨간 홍시들은 장관을 이룬다. 달린 홍시를 하나 따서 쪼개면 촉촉하게 밴 감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입에 넣으면 세상을 다 얻은 맛이다. 난 감나무 밑에서 눈 깜짝 할 사이에 홍시를 단숨에 서너 개를 먹어 치운다. 고구마처럼 목 매이는 것도 없고, 사과처럼 껍질 깎을 필요도 없다. 그냥 중간을 쪼개어 입에 넣고 쭉 빨아먹고 껍질은 버리면 된다. 그렇게 홍시로 배를 채우며 자랐다. 나뿐만 아니다. 우리 청도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근데, 그 흔한 감나무가 사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한 그루도 없었다. 겨우 닭장 옆에 깨양나무(고욤나무) 한 그루만 있었을 뿐이다. 깨양 열매는 감을 닮았지만 모양도 작고 씨도 많아 맛도 별로였다. 감나무 천지인 마을에 한 그루도 없는 우리 집이 늘 불만이었다. 그리고 자기 집 감나무에서 홍시 따 먹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몇날 며칠 아부지(경상도 호칭)에게 투덜거렸다. “아부지, 우리 집도 감나무 좀 심어 주이소~ 맨 날 남의 집 감나무에서 홍시 따먹기 이젠 싫심더~” 3. 어느 날, 아부지가 감나무 접붙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동네 전문가를 모셔 와서 깨양 나무를 베고, 청도 반시감나무 가지로 접붙였다. 그날부터 감나무가 자라는 것을 나는 매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역시 내 기대대로 감나무가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이 왔다. 봄부터 열매를 낸 감나무에서 제법 굵은 감들이 달렸고, 그 중에서 몇 개는 홍시가 되었다. 나는 얼른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어릴 때부터 터득한 기술로 둘로 쪼개어 입 안에 쏙 넣었다. 달달하게 흐르는 감물을 몇 번 쪽-쪽- 빨아먹고는 껍질은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행복했다. 매해 감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해 보니 옆집 친구 집의 감나무와 키 재기 할 정도로 컸었다. 뿌듯했다. 4. 감나무는 한창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부지는 점점 늙어갔다. 시골집도 새집이 들어서는 주변 집들에 비해 점점 초라해졌고, 급기야는 쓰러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바지런한 막내 자형이 시골집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서둘렀다. 읍내 농협에서 장기대출을 받고 넓은 거실에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실 평수 26평 정도의 아담한 집을 설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터가 워낙 좁아 집을 지으려니 감나무를 베어야만 했다. 감나무가 베어지던 날 난 속상하고 너무 아쉬워 울었다. 또 남의 집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 먹어야 할 신세가 된 것이 솔직히 서러웠다. 5. 지난 추석에 시골에 갔다. 여전히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없다. 아부지도 20년 전에 하늘 가시고 없으시다. 하지만 홍시는 여전히 천지삐까리다. 세월이 흐르고 낫살 먹어도 어릴 때 익힌 홍시 따 먹는 실력은 여전했다. 어머님께 아들 왔다고 인사하고는 곧바로 집 앞 남의 집 감 밭에 갔다. 익숙한 솜씨로 빨갛게 익은 홍시를 몇 개 땄다. 그리고 게 눈 감추듯 서너 개를 입에 넣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달달함인가? 그날 모처럼 홍시로 배 채웠다. 찬바람이 분다. 고향땅 감나무에는 까치 밥으로 남겨진 홍시 몇 개 외에는 남겨진 것이 없지 싶다. 홍시를 먹으려면 내년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근데, 오늘 따라 홍시가 또 먹고 싶다. 덩달아 우리 아부지도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 -
김병중 03-30 00:52
아부지
아부지 1. 내가 태어날 때 아부지는 45세였다. 이미 내 위로 4명의 누이와 3살 위의 까칠한 형아가 있었다. 그 시대 아부지들은 다 그렇듯이 울 아부지도 늦은 결혼이었지만 아들을 원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랬던 아들은 4명의 딸이 온 후 5번째 태어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들을 보며 아부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거다 아들을 품에 안고 기뻤던 아버지는 하나 더 얻기를 바랬는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딸, 아들이 몇 분 사이로 태어났다. 그렇게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나는 누이들과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2. 내가 아부지의 존재를 인식할 때 아부지의 모습은 태산과 같았고, 천하장사였다.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나뭇짐을 지셨고, 거대한 산과 같은 고봉의 밥을 드셨다. 주무실 때 코 고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케 했다. 매캐한 연기가 방구석의 사각 모서리의 장판 접힌 틈 사이로 꾸물꾸물 올라올 때쯤 콜록거리며 눈을 떠 보면 어느새 아부지는 콧노래로 찬송 부르며 소죽을 끓이고 계셨다. 그때 생각했다. 아부지는 잠도 없나 어떻게 저렇게 일찍이 일어나시지... 3. 아부지는 바지런하셨다. 얼마 되지 않는 논때기론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늘 남의 집 일들을 하셨다.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셨던 아부지의 모습은 늘 흙 묻은 옷을 입었고 풀냄새와 땀 냄새가 범벅이 된 이상야릇한 냄새를 풍겼다. 내가 머리와 몸집이 커갈수록 아부지의 존재는 점점 태산에서 야트막한 구릉으로 변했고, 천하장사와 같은 힘도 어느새 내가 범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평범한 사내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 아부지가 뭐가 그래 화가 났는지 작대기를 나를 때리려 하셨다. 힘과 꾀가 있었던 나는 아부지 뒤로 가서 꽉 껴안았더니 아부지는 꼼짝달싹 못하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아부지도 늙어가는구나. 4. 아부지는 미처 효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우리 형제 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어무이도 떠나고 보니 이상하게 아부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나도 아부지처럼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깊은 잠에 빠진 딸들을 보면서 나는 그제사 깨닫는다. 아부지도 푹 자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난 것이었구나. 좋은 아부지, 능력 많은 아부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아 늘 인상 쓰셨던 아부지가 내가 아부지 나이에 가까이 갈수록 이해되고 동변상련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책상 위에는 아부지의 한갑때 큰아부지, 큰어무이, 울 어무이와 아부지 이렇게 네 어르신이 차렷 자세로 찍은 빛바랜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오늘따라 아부지가 그립다. -
김병중 03-18 17:53
산을 내려오며
집 뒤에 작은 산이 있다. 높지 않아 산책하듯 다녀온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오르막 길을 가야하고 내려오기 위해서는 내리막 길을 걸어야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인생도 그러하다.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수시로 산을 찾는다. -
김병중 03-18 16:07
신발끈
신발끈이 또 풀렸다. 수시로 풀려 바쁜 시간을 잡아 먹는다. 다른 신발끈으로 바꾸고 싶다. 그러자 헤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먹고 사느라 바쁘지! 그래도 가끔은 풀어진 나를 묶어주며 한숨 돌려” 말하는 것 같다. 나도 피식 웃어 준다. 아무래도 신발끈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
투데이 HOT 이슈
- 3代의 감 따기
- 2020년 12월 담임목회 사임 후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면서 이듬해부터 가을에 감을 따고 있다. 올해도 감을 땄다. 20여 년 전 어머니께서 이 집을 사서 오신 후 종로 묘목상에게 어린 감나무를 사서 마당에 심었다가 아버지께서 집 밖 귀퉁이로 옮겨 심으셨다. 올해 4년째에는 이전처럼 감나무에 비료를 주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어머니가 막걸리 등 양분을 주셔서 그런지 깨끗하게 감이 열렸다. 이전에는 감 주위에 흰 것들이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감이 탐스러웠는지 동네 어떤 사람이 두 번이나 따는 것을 어머니 아는 분이 소리쳐 내쫓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손타기 전에 어머니, 아들과 함께 감을 땄다. 이사 올 때 감나무 잎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해 어머니는 잘라버리시려고 했는데 나는 살려 두자고 했다. 그 결과 서울에서 감을 따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아버지도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잘 익은 감을 맛있게 드시니 다행이다. 70여 개는 딴 것 같다. 대봉이라 익혀 먹어야 한다. 매년 감 따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단톡에 어떤 사람이 감의 효능에 대해 올려 공유해 본다. "감" 많이드세요!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놀라운 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은 종합 영양제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과일이죠. 감 1개에는 사과 9.5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있는데 이는 최고의 천연 종합 비타민 과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비타민 A는 시각 유지에 필요한 로돕신을 만드는 영양소인데 이 비타민 A가 감 1개에 성인이 하루 섭취해야 할 양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눈을 많이 쓰는 수험생이나 노안으로 눈이 나빠지는 경우에 시력 보호용 과일로도 좋습니다. 감의 주성분은 당질(15~16%)인데 포도당과 과당의 함유량도 매우 높으며, 비타민 C와 A 그리고 탄닌, 칼륨,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입니다. 감은 최상의 건강 과일이라 해도 지나침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최상의 건강 과일이 흔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무시하고 비싼 과일만 사드시고 있겠죠! 사과 10개 먹는 것보다 감 1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증명하고 있어요. 잘 모르셨죠? 감은 자연 치유제로도 최상의 특급 과일이며 피부에도 최고랍니다. 심폐(心肺)를 녹여주며 갈증을 멈추고 폐위(肺痿)와 심열(心熱)을 치료합니다.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吐血)을 멎게 해 주는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입니다.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기침, 만성기관지염, 고혈압, 심장 질환 등에도 효능이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풍 예방약으로도 쓰입니다.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감 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