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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5】 죽을 때가 되면 연명하지 말고 죽자
《장수 지옥》은 결론적으로 웰 다잉을 위해 웰 리빙을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크로와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여성 및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책을 발표해온 마쓰바라 준코가,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장수 지옥’에 비유하면서, 연명치료의 양면성 및 재택 의료, 유료노인홈, 특별양호노인홈, 일본존엄사협회, 네덜란드 안락사협회 등 복지 현실 및 장수의 실상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수의 현실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담아냈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음식 섭취가 불가능할 때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리빙 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목숨을 끊는 존엄사까지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저자는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일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장수 인생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돌입한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겸허하게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죽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따뜻하게 배웅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끝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현실적인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교보문고. 장수지옥 시대가 됐다.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치료가 아니다. 죽을 생명을 죽지 못하게 할 뿐이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약물처방과 치료,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그 때를 잘 준비하다가 때가 되면 잘 떠나야겠다. 60대라면 누구나 치매가 두렵다. 나도 예외가 아니며 치매로 판단력을 잃는 것은 암 선고보다 두렵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암으로 죽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암에 걸리면 대략 수명을 알 수 있어서 정신이 온전한 동안에 임종을 준비할 수 있다. 젊다면 암을 이겨낼 수도 있지만 환갑이 지나서까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계속 산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치매는 무섭지 않아.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걸?"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이 말을 주워 담고 싶다. 여기서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잃는 게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내 절친은 환갑이 되기 몇 개월 전에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마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일상생활을 잠식해갔다. 친구는 어느 날 허리가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 가 병원에 입원했다. 이메일로 압박골절인 듯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얼마 후 휴대전화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말기 암 판정으로 시(p. 28)한부 진단을 받았고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퇴하면 같이 놀러 다니다가 노후에는 함께 살자" 고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불과 얼마 전에 같이 밥도 먹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친구라 본인이 가장 허무하겠지만, 너무 좋은 친구였기에 이렇게 황망히 떠나다니 신이 원망스러웠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70세까지 산 지금 그 친구를 생각하면, 환갑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오래 고생하지 않고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복잡하다(p. 29). 서구권에는 없는 위루관 수술 일본에서는 위루관 수술이 표준적인 조치로 인식되지만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하지 않는 수술이 다. 2015년에 네덜란드로 고령자 주택 등을 시찰하러 갔을 때 그곳에는 '연명치료'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도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위루관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복을 위한 일시적인 조치이며 고령자의 연명을 위해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위루관 수술을 비롯한 연명치료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인은 일본인과 다르게 어릴 때부터 생명과 죽음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자신만의 사생관이 명확하다. 일본인은 예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며 터부시해왔고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며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해 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모가 위독하면 '살려주세요' 라고 의사에게 애원한다. 연명치료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p. 51) 생각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가족으로서의 감정만 주장한다. 그리고 살리는 일이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위루관 수술이 만연한 배경에는 의사나 병원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족들의 바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족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일본인은 노인이 되면 침대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북유럽의 노인들에게는 침대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른 걸까? 물론 세상에는 훌륭한 병원도 있고 존경할 만한 의사도 많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의사에게 맡기는 건 문제가 있다. 고령자라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 문에 연명치료에 대해서는 반드시 생각해둬야 한다. 그렇 지 않으면 자신도 가족도 불행해진다. 건강할 때 올바른 지식을 익혀둬야 나중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다. 자녀들 또한 부모를 사랑한다면 "살려주세요"라며 의사의 팔을 붙들지 말고 올바른 지식을 갖추도록 하자. 앞서 말한 것처럼 유럽에서는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p. 52)할 수 없는 고령자에게 위루관 수술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죽게 해주는 일'이 그들의 문화이고, 그런 가치관이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게 의사를 맹신하는 일본과 크게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대부분은 사생관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는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죽음에 이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죽게 둘 것인가? 아니면 연명치료로 죽지 않게 할 것인가? 당신이 건강한 바로 지금 연명치료에 대해 확실히 공부해두자(p. 53). 여담이지만 장의사에 따르면 연명치료를 받다가 죽은 사람은 자연사한 사람보다 무겁다고 한다. 연명치료로 인해 몸속에 수액이나 영양분 등 수분이 차기 때문이다. 또 연명치료를 받은 주검은 얼굴 표정도 험악해서 가족이 봐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장의사는 시신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자연사를 하면 시신의 얼굴도 온화한 표정이라고 한다(p. 57).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대개 ‘연명치료’라고 하면 ‘인공호흡기’, '위루관' 등이 먼저 떠오른다. 연명치료란 '근본적인 치료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임종기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고 연명하도록 하는 치료(일본대백과전서)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 연명치료에는 다양한 의료 처치가 포함된다. • 연명치료 방법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재대로 알고 거부하는 걸까? 연명치료와 관련된 의료 처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p. 76). 연명치료는 주로 다음과 같은 처치를 포함한다. ① 심폐소생 심장이나 호흡이 정지했을 때의 치료 수단. 심장 마사지, 전기 쇼크, 기관내 삽관 등이 있다. 뼈가 약한 고령자에게 심장 마사지는 갈비뼈골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심장이 멈추면 다시 뛰게 해도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② 기관절개 기도가 혀에 막혀 질식 상태거나 뇌사 상태일 때 목에 구멍을 뚫는 처치. ③ 인공호흡기 자가호흡이 불안정할 때 호흡을 돕는 장치. ④ 강제 인공영양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강제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법을 말하며 비위관, 위루관, 중심정맥영양 등이 있다. 튜브 삽입에 따른 불쾌감을 비롯해 회복 및(p. 77) 생활의 질(qualty of ife)을 고려해야 한다. ⑤ 수분 보급 입으로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 상태에 이르므로 손이나 다리의 정맥에 수액 주사를 처치한다. 방법으로는 말초정맥수액, 대량피하주사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 혈관이 약하기 때문에 주사 놓을 곳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량피하주사의 경우 수액의 속도가 빠르면 통증을 유발하므로 가능한 한 속도를 줄여야 한다. ⑥ 인공투석 신장이 기능하지 않을 때 신장을 대신해 혈액을 정화하는 의료 행위로, 단시간에 체내 환경이 급변하므로 고령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⑦ 수혈 피를 토하거나 혈변 증상이 있을 때는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나 장의 말기 암은 지혈이 어려워서 결국 의미 없는 수혈을 반복해야 한다(p. 78). ⑧ 강력한 항생제 사용 오연성 폐렴이 반복되어 일반적인 항생제로 처치가 안 될 때 한층 강한 항생제를 사용한다. • 장점과 단점 연명치료의 장점은 문자 그대로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완치할 수 없으므로 이전처럼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연명치료는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할 수 있으므로 도중에 제거할 수 없다. 또 연명 치료로 오래 살면 살수록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는 오롯이 본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건강할 때 충분히 생각해 두어야 한다(p. 79). 개인적으로는 고독사야말로 이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p. 133) 때문이다. 고독사는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 하다가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죽음인 것이다. 게다가 쓰러져도 구급차를 부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죽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지금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죽음이야말로 혼자 맞는 게 이상적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나는 조용히 떠나고 싶다. 병원으로 실려 가서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다가 고생하며 떠날까 봐 두렵다(p. 134).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테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신의 영역인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서로 으르렁거리는 가정(p. 195)에서 자란 사람, 독신이지만 친구가 많은 사람, 독신은 아니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사람,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할 때 곧장 달려와 주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 노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등 사람은 정말 로 다양하다. 삶이 평범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자(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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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4】 삶을 위한 지혜로운 작은 조언들
2013년에 출간한 『문요한의 마음청진기』의 개정판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는 〈에너지 플러스〉 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94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화마가 휩쓸어 재만 남은 산야에도 다시 수목이 자라고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도 스스로 정화되듯, 어떤 상황에서도 힘껏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쉰다고 말하며, 진정한 치유와 성장이란 바로 자신 안의 생명력과 만나는 것이라 정의한다. 독자 개개인이 심리 상담소에서 마음 상태를 진단받아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이 책은 총 5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바로 아는 단계인 “마음 뒤의 마음을 보라”, 삶의 어려움에도 정신적 맷집을 키우라는 “모든 생명은 힘껏 살아간다”,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 모든 일에 도전하라는 내용의 “실험하라, 인생은 당신 편이다”, 더불어 살기를 강조하는 “그래도 함께 가라”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원고지 7매 내외의 짧고 압축적인 글임에도 정신의학 및 심리학적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감성 어린 글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해제하고 자신과 대면하게 하는 자기치유적인 메시지도 더했다. 이 책의 제목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도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안의 치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착안되었다. 심리적 고통이 클 때는 그 치유본능을 못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자기 안에 생명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인하의 감각적인 50컷의 그림도 빛을 발한다. 각 장의 말미에서는 ‘Dr. 문의 심리솔루션’을 통해 정신적 맷집을 키우고 문제를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멘탈 트레이닝 비법도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마치 실제 심리 상담소에서 주치의와 마주하고 솔루션을 제시받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점점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대. 우리는 문요한이 전하는 94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 자신이 만난 문제를 대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고 인생의 고민 앞에서 한 발짝 내딛게 하는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멘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류의 책을 정기적으로 읽을 필요를 느낀다. 살면서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한번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고독은 삶을 채우는 시간 돌아보면 젊은 날들은 참 외로웠습니다. 외로워서 누군가를 찾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있고 싶어졌고, 혼자 있으면 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반복재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서툴렀지만 사실은 자신을 마주하고 관계하는 것이 더 서툴렀던 때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을 같은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식당에서 혼자 밥을(p. 28) 먹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 사람들 속으로만 파고들게 됩니다. 영어에는 혼자 있는 것과 관련된 두 단어가 있습니다. ‘고독solitude’ 과 ’외로움lonelines’ 입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상황은 같습니다. 하지만 고독은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은 능동적인 홀로 있음입니다. 그에 비해 외로움은 타인과 단절되어 누군가를 갈구하는 공허한 감정입니다. 고독이 내적 충만이라면 외로움은 내적 공허인 셈이지요. 고독은 외로움도 아니고 도피도 아닙니다. 고독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삶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홀로 되면 외로워지지만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하면 삶이 충만해 집니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실을 감아 고치가 되는 번데기처럼 자기실현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고독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조와 자기완성은 고독의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낯설고 깜깜하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은 이내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을 채워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외롭게 시들어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중에서(p. 29). 권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꼭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은 큰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반면, 삶이 너무 따분하고 멈춰 버린 느낌에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호소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이들도 삶이 제자리에 고이면서 정체감이나 권태감에 휩싸인 것입니다. 이러한 권태나 정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탈이라고 하면 먼저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탈선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중년의 권태나 정체감을 중독이나 외도처럼 파괴적인 일탈로 해(p. 46)결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탈이란 꼭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들이 하나의 일탈입니다. 꽃구경을 가고 공연을 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등 삶에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것 역시 모두 일탈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붓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 춤을 추고, 글을 쓰는 등 자신을 노래하거나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은 생산적 일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산적인 일탈과 파괴적인 일탈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유목민의 시대인 21세기에는 파괴적인 일탈만큼 무일탈 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있을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레빈슨은 삶을 ‘정착과 이주의 연속’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삶이란 6~7년의 안정기와 4~5년의 전환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권태는 사실 정착 기간의 종료를 알리는 알람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입니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썩어가듯이 삶도 틀 안에 갇히면 죽어갑니다. 당신에게 권태감이 찾아왔나요? 그렇다면 삶을 다시 흐르게 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신호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벤자민 프랭클린(p. 47). 누군가 태클을 걸어올 때 교육학자인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 여의사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최초라는 것은 영광만큼이나 고난 또한 몇 배 크게 마련입니다. 몬테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였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과 최초였기 때문에 뚫고 나가야 했던 악습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해부학 수업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남자 동료들과 시체를 함께 해부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깜깜한 저녁에 악취가 풍기는 실습실에서 혼자 시체에 칼을 대어야 했습니다. 차별과 비난은 그녀가 교육학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었습 니다.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온갖 비(p. 86)판으로 그녀를 물어뜯으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몬테소리는 비평가들과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걸으며 영향력을 점점 넓혀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존경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왜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 않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녀에게 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 싸우지 않느냐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개 한 마리가 내 발꿈치를 물려고 한다면, 그때 내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개를 발로 차내든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단지 무리에서 벗어났거나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일일이 싸우기보다 그들이 물어뜯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삶의 방향이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타인들의 왜곡된 평가나 시선에 의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야할 곳이 있기에 아무 곳에서나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더 높이 올라 갑니다. 합당한 이유 없이 당신에게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나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높이 올라갈 것인가요, 아니면 사다리에서 내려와 싸울 것인가요?(p. 87). 세상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혹시 레나 마리아라는 여성을 아시나요? 그녀는 스웨덴 태생의 가스펠 가수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는 부모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장애를 극복해 왔습니다. 요리, 운전, 자수, 피아노 등은 물론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나가 여러 개의 금메달을 석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절대적인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녀는 온몸으로 부딪혀 뛰어넘어온 것입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저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인생에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p. 94)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든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험하다 보니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의식은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과 피해를 줄 것이라고 의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의식상태도 있습니다. 일명 '역 피해의식'입니다. 이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좋은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나 그 모든 경험들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레나 마리아처럼 결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입니다.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심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행하는 일마다 엉망으로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하여, 이전에는 해내지 못 한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역경이나 시련을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고, 그 성장통을 피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에는 늘 예상치 못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 고통에 가장 좋은 치료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미 찾기'입니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경험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통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운가요? 그렇다면 그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p. 95). 왜 하는지를 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994년 11월 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적인 헤비급 타이틀 매치가 펼쳐졌습니다. 마흔다섯의 늙은 도전자 조지 포먼과 스물아홉의 젊은 챔피언 마이클 무어가 맞붙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어의 승리를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무어에게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고 10회에 극적인 KO승을 거두었습니다. 권투 역사상 최고령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무엇이 포먼으로 하여금 할아버지 복서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링에 오르게 했을까요? 어떻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 경기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20년 전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알리에게 당했던 패배를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p. 99). 시간은 거슬러 1971년으로 갑니다. 당시 포먼은 40연의 무패가도를 달리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하다드 알리는 서른두 살의 늙은 도전자였죠. 사람들은 모두 포면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불리하게 진행되던 경기를 뒤집어 8회에 포먼을 눕히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알리에게 킨샤사의 기적이 되었고, 포먼에게는 ‘킨샤사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포먼은 그날의 패배 이후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권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포먼은 고향에서 목사로 활동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목회와 청소년 선도를 위해 애쓰던 포먼은 서른여덟 살이 되자 다시 링 위에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줄 청소년 센터의 운영자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청소년들을 위해 다시 글러브를 꼈습니다. 150킬로그램이라는 육중한 몸과 고령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이끌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재기를 준비하면서 뒤늦게 자신이 알리에게 진 진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알리는 싸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펀치를 견딜 수 있었던 거야. 목적이 있으면 고통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때 목적이 없었던 거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링에 복귀했지만, 포먼은 젊은 챔피언 시절에는 없었던 사명과 목적의식으로 강하게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원이었죠(p. 100).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포먼은 패배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위안을 줍니다. “패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패배는 인생에서 단 하루 벌어진 일일 뿐이므로 거기에 압도돼서는 안 된다. 내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는 바를 추구할 때에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p. 101). ~때문에, ~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정신과의사를 하면서 흔히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날마다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힘들지 않나요?" 물론 힘든 이야기를 계속 듣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말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이 힘든 이야기만 듣는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크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힘든 것 이상의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올 때에 사람들은 '~때문에'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부모 때문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난 실패 때문에, 실연 때문에... 나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느낍니다. 또한 바쁘기 때문에, 능력(p. 116)이 부족하기 때문에, 용기가 없기 때문에, 예전에도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사나 합리화는 가장 쉽게 자신을 방어하도록 도와주지만 이를 통한 위안은 결국 문제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자라나면 '~때문에'라는 마음이 줄어들고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늘어납니다. 비록 과거에 상처나 실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시작해 보겠다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더욱 자라나면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과 함께 ‘~덕분에’ 라는 마음이 늘어나게 됩니다. 과거의 가난이나 어려운 환경, 지난 실패와 고난 덕분에 자신이 겸손해질 수 있었거나 타인의 고통에 눈뜨게 되었거나 삶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상처가 보석으로 바뀌는 놀라운 마음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을 정말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바로 '~에도 불구하고'와 ‘~덕분에’ 같은 정신이 아닐까요?(p. 117). 열등감은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 연예인이나 미스코리아인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로 예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기에 열등감이 더 크면 컸지 더 적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열등감을 느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사실 열등감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정작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마련입니다. 체형과 외모, 학력, 집안, 운동 능력, 화술, 인간 관계, 성격, 재산 등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사람이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에게 없는 것(p. 190)을 욕망하기 때문에 이러한 약점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단점으로 인해 놀림을 받거나 수치심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 열등감은 보편적 수준을 넘어 병적으로 확대 됩니다. 즉, 자신이 한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근본적인 결함이 있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 부분을 알면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열등감 자체가 꼭 삶에 해로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보편적인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병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치명적인 것으로 느끼고, 어떻게든 단점을 감추거나 커버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강점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걸림돌로 느껴져서 늘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불안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이 그렇습니다. 그는 ‘고졸’이라는 열등감이 있었지만 이를 감추기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라는 구절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늘 공부하는 만화가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력이 짧으니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메모광이 되었고 발로(p. 191) 뛰는 작가가 되어 이 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열등감만이 탁월함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탁일함의 밑바탕에는 크고 작은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열등감이나 부족함이란, 어떻게 보면 당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당신 안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p. 192). 사람의 그릇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실제로 사용하는 근력은 잠재능력의 50~6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은 잠재능력은 위기의 순간을 위해 비축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들어 올렸다거나 노인이 집에 불이 나자 패물이 든 장롱을 메고 뛰쳐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1907년 르완다로 조사를 나갔던 독일의 한 인류학자는 투치족이라는 부족의 놀라운 점프력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부족원은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1.9미터 정도를 너무 쉽게 뛰어넘었습니다. 1912년도에 공 인된 남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이 2미터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프(p. 193)리카 오지의 원주민이 어느 정도의 실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투치족은 점프력이 대단했을까요? 그 이유는 투치족의 전통에 있었습니다. 투치족 사람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키만큼 높이 뛰어야 성인식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계속 높이뛰기를 연습해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그릇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회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크기가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과연 나라는 사람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일까요? 사람이란 그 크기가 무한정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릇의 크기가 고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신체의 성장은 성장판이 닫히면 끝나지만 삶의 성장은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있는 한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보이는 모습만을 자신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치 근력의 50~60퍼센트만을 발휘해 본 사람들이 그것이 신체적 한계라고 믿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올림픽마다 인간의 한계라고 일컬어졌던 기록이 계속 경신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도전과 노(p. 194)력, 방법적인 개선이 반복되면 인간의 능력 이란 계속 향상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을 크기가 고정된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그 크기 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커질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점점 확장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보시나요?(p. 195). 개라지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대표이자 신생 기업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이 가와사키는 창업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자본이나 기술 혹은 인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와사키는 언제나 “가장 먼저 의미를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창업이 그저 돈이나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일에 깊은 의미를 가진 창업가는 설사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도전했다는 긍지로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단순히 돈을 벌려고 창업을 한 사람들은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p. 213)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도전하는 그 일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거나 의미 있는 일인가요? 그렇다면 시작하세요."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전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p. 214). 상담을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감과 좌절감을 훨씬 크게 느낍니다. 그러나 불확실함이 없는 믿음이란 맹신에 가까우며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여 삶을 위태롭게 합니다. 건강한 믿음이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 때로는 혼돈과 불확실함 때문에 흔들리고 멈춰 서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에 가깝습니다(p. 237). 예전에는 꼬이는 일도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서 인생이 참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면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지려면 때가 있고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경험과 방황들이 결국 내가 가야할 곳으로 나를 안내하는 이정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간다기보다 인생이 나를 필요한 곳으로 이끌어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 선의를 가지고 대하면 인생 역시 나를 선의로 대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거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뜻대로 되는 일이든 아니든,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고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그 믿음이 생기면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심연의 불안도 잠잠해졌고 인생을 끌고 가려고 버둥버둥거렸던 초조함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믿습니다. 나의 물음과 두드림에 꼭 응답이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결국 나는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도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섞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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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3】 장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본 적은? 늙고 병든 몸이 요양원과 병원을 거쳐 시체가 되고, 영안실, 장례식장, 무덤과 화장터에 이르러 해체되는 과정은 모두 일상과 유리되어 있다. 다들 죽음에 관한 것은 멀리하지만, 젊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애쓴다. 운동과 식이요법, 기능성 식품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은 죽음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그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 충분히 숙고할 새도 없이,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죽음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직시할 것을 권하며, 저자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독자를 시체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 곳곳에 위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저자는 역사와 종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유한다.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전한다. 매순간,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시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시체 박스 확인부터 씻기고 화장하고 분쇄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쾌한 태도 속에서도 진지함을 놓지 않는 내용의 깊이가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이끈다. 현재의 죽음 의례는 과연 최선의 것인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을 하며 읽는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흥미로게 읽었다.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 있으나 피할 수는 없다. 내 가족이,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 이후 장례에 대해 많은 생각과 변화,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인 남북전쟁이 터진다. 1862년 9월 17일의 앤티텀 전투가 있었던 날은 남북전쟁(과 미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이라는 영예 아닌 영예를 지닌 하루다. 그날 하루에만 전장에서 2만 3000명이 죽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들의 시신은 마찬가지로 퉁퉁 불은 말과 노새 사체 틈에서 잔뜩 부어올랐다. 나흘 후 펜실베이니아 137연대가 와서, 연대장이 병사들에게 시체를 파묻을 때 독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당시, 술에 취한 채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허용한 주는 미국 전체에 꼭 한 주밖에 없었다. 남북이 4년간 싸우는 동안, 군인 가족 중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은 아들과 남편을 찾아올 도리가 없었다. 시신들을 기차로 운송할 수야 있었지만, 며칠만 남부의 여름 더위에 노출되 면 망자들은 극심한 부패 단계에 들어갔다. 햇볕 속에 버려진 시체에서 나는 냄새는 그저 후각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합군 소속 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빅스버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북 양측은 뜨거운 태양 아래 부패해가는 시신의 악취 때문에 짧은 휴전을 선포했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마일에 걸쳐 시체를 운송한다는 것은 열차 기관사들에게 악몽이었다. 철도청은 비싼 철제관에 담겨 밀봉된 시체 외에는 운송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이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p. 123).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돈을 낼 수만 있다면 방부처리라고 알려진 새 보존 처리를 전장에서 바로 해주겠다는, 기업가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을 찾아 소규모 분쟁과 전투마다 따라다녔으니, 이들이 미국 최초의 '앰블런스 쫓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나머지 서로의 천막을 불태운다는 얘기도 들리고, 지역 신문에 "우리가 손댄 시체는 절대 검게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들은 방부 처리 서비스의 효율성을 선전하기 위해, 무명의 용사 중에서 몇 구를 뽑아 실제로 보존 처리해서 이 시체들을 전시하곤 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천막 밖에 양발이 보이게 시신을 괴어놓기도 했다. 전장에서 방부처리하는 천막들 속에는 종종 통 두 개 위에 나무 판대기 하나만 걸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부처리사들은 새로 죽은 사람의 동맥 시스템 속에 화학물질을 주입했다. 그 화학물질은 "비소, 염화아연, 염화수은Ⅱ, 알루미늄 염, 아세트산 납, 각종 염, 알칼리, 산"을 그들만의 비법으로 특별히 섞어 만든 것이었다. 장의업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직도 방부처리의 수호성인으로 취급받는 토머스 홈스 박사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본인이 4000구가 넘는 죽은 병사들을 구당 100달러를 받고 방부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과 주입이라는 이 고상한 방법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할인 행사도 있었으니, 이는 내장 기관들을 몽땅 들어내고 몸의 빈 구멍을 톱밥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더럽히는 짓은 신•구교 전통에(p. 124)서 모두 죄로 여겨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것이 종교적 이념을 이겨낼 때도 있었다(p. 125).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빻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 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이다. 문화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격적이고 우리의 개인적인 의미망에 도전하는 힘을 지닌 죽음 의례가 있다. 와리족이 동족의 살을 구워먹는 풍습부터 티베트 승려가 죽어서 독수리 부리에 갈기갈기 찢기는 것, 클리프의 긴 은빛 투관침으로 내장을 뚫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와리족의 행동과 티베트인이 고인의 시신을 갖고 한 일을 브루스가 클리프에게 한 일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믿음이다. 와리족은 신체를 온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몸에서 영혼이 떠난 다음에는 그 몸이 다른 존재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북미 사람들은 시체에 방부처리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어떤 믿음도 갖지 않는다. 그것(p. 130)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의례가 아니라, 장례 비용 청구서에 가욋돈 900달러를 얹는 짓일 뿐이다. 만약 브루스 같은 장사꾼이 자기 친어머니한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이 방부처리라면, 왜 우리는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p. 131). 영아 화장은 성인 화장과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혹시 이름이 있다면, 우리는 아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종종 아기들의 이름은 그저 '존슨네 아기' 혹은 '산체스네 아기' 이런 식으로 라벨이 붙여진다. 그들에게 완전한 이름이 있는데, 심지어 원래 이름인 'Caitine'을 잘못 적어 'KateLynne'으로 쓰는 식으로 뭔가 고약한 일이라도 있으면 더 슬프다. 완전한 이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그 부모들이 얼마나 바랐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을 성인의 경우처럼 불타는 화장로에 깨끗하게 집어 넣을 만한 도구는 없다. 당신이 화장로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라면 그 속에 완벽히 던져야 한다. 당신 손을 떠나 레토르트 천장에서 쏟아지는 불길 속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아기, 그 아기가 올바른 장소에 착륙하도록 확실하게 던져야만 한다. 연습을 하면 아주 잘할 수 있게 된다. 아기 화장은 보통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 한다. 그쯤 되면 화장하는 방에 죽 늘어선 벽돌들이 너무 뜨거워서 작은 아기들은(p. 141) 가만두어도 저절로 화장이 된다. 마이크가 내게 하루 일과가 끝 나기 전에 성인을 화장하는 대신 "아기를 두 명쯤 해치우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다. 성인은 화장 자체와 냉각 과정을 포함하면 재가 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아기들은 화장하는 데 20분이면 된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좋아, 케이틀린. 뭐라고? 지금 3시 15분이라고? 5시 전에 아기 다섯 명은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자 해보자고, 5시 전에 다섯 명.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거야!” 듣기 끔찍한가? 물론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태아 하나하나, 살고 싶었지만 그 작디작은 삶을 낭비해버린 아이를 두고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만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다 끝내 병원의 그 안전 요원같이 되고야 말 것이다. 유머는 없고 두려움만 가득 한 사람(p. 142).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기도 전에 어둠이 깔렸다. 서쪽으로 가는 I-10 고속도로의 네 차선은 팜스프링스를 지나가는 데, 차선마다 귀가하는 일요 행락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맨 왼쪽 차선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를 유지하며 폭스바겐을 몰(p. 306)고 있었다. 갑자기 차의 왼쪽 뒷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깜박이를 켜고 가운데 차선으로 들어가며 운도 지지리 나쁘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바람 빠진 타이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베어링이 헐거워졌고, 바퀴 전체가 축에서 벗어나 헛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볼트까지 뚝 부러져나가 차바퀴가 있던 곳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고 말았다. 세 바퀴만 달린 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차는 아무렇게나 굴러갔다. 네 차선을 가로질러 나선형을 그리며, 생금속이 아스팔트 바닥을 득득 긁자 흙먼지 스파크가 일었다. 폭스바겐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죽음의 무도를 추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우웅 울리는 정적만 있었다. 계속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이 주변의 흐릿한 풍경 속에 어지럽게 펼쳐졌다.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마치 어떤 기적적인 완충제에 막혀 날 피한 듯했다. 내게는 통제력을 잃는 것보다, 현대 생활의 밀어닥치는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무 준비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불자들과 중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쁜 죽음'이라 표현한 바로 그것 말이다. 현대에 들어 나쁜 죽음이란, 차체가 끔찍하게 찌그러지며 사람의 팔다리가 산산이 떨어져 나간 형상을 띤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지도 말할 수 없다. 하던 일은 엉망진창이 된다. 고인이 어떻게 장 례를 치르길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p. 307). 내가 굴러가며 두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핸들을 꽉 잡고 있어도, 마음은 뚝 떨어진 저편에 가 있었다. 처음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월광 소나타」가 연주되고,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차가 빙글 도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나쁜 죽음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시체와 그 시체에 집착하는 가족들과 함께 4년을 보낸 덕분에 그 순간이 초월적 경험이 되었다.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고, 격렬한 타격을 받아들이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격렬한 타격은 결코 오지 않았다. 고속도로 경계를 표시하는 쓰레기 언덕에 차가 박혔다. 교통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똑바로 앉아 생생하게 마주 보는 동안, 차들과 대형 트럭들이 아찔한 속도로 쌩하고 지나갔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아니면 여러 대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어지러운 여행을 하는 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치지 않았다. 전에는 내 몸이 산산조각 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혹시 산산조각 날까 하는 나의 두려움은 행여 통제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여기에 궁극의 통제력 상실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내던져졌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p. 308).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거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지만, 얼마나 빨리 다른 문화적 편견들, 이를테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가 최근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죽음이 그 진실을 드러낼 적기이다. 불자들은 말한다. 생각들은 뇌에 맺힌 물방울들과 같다고. 같은 생각을 계속 강화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의식 속에 새로운 물길이 뚫린다. 마치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산의 한쪽 면이 침식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세속적 지혜를 과학자들이 확인해준다. 우리의 뉴런은 항상 기존의 연결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당신이 설령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더라도, 그 특별한 길은 돌덩어리처럼 굳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마음의 회로를 만들 책임이 있다. 나는 하와이의 한 쇼핑몰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를 보고 충격 받은 아이로 살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 죽음에 사로잡힌 삶에 항복하거나, 삼나무 숲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보 직전인 여자가 되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도 아니었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정면 대결함으로써 나는 뇌의 회로를 조지프 캠벨이 "더욱 대담하고 깨끗하고 넓고 충만한 인생"이라 부른 것 쪽으로(p. 324) 바꾸어놓은 것이다(p. 325). 디테일에서는 이처럼 한국의 장례 풍습과 다른 바가 있지만 저자의 지론은 한 마디로 '죽음은 감춰야 할 일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 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기존 장의사에 의해 우리는 "죽음과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사람들은 말한다. 돼지에게 입술연지를 발라놓아도 여전히 돼지는 돼지라고. 시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신에 입술연지를 바르고서 시신 분장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신 화장, 즉 시신 꾸미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희생하고 예쁘게 꾸며서 살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내보이는 것이다. 유가족도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길 원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아예 안 보는 가족들도 있다. 참관은 삶과 죽음 중 어디까지나 삶이 중요하다고 보는 관행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에 이런 관행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시신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지, 산 자를 위한 '구경거리'가 아닌 것이다(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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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누가복음 6:38) 미국의 문화는 팁을 주는 문화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호텔에 머문 후 어느 정도의 팁을 줍니다. 팁을 받은 자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리더는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준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받기보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직장에서 월급 주고, 직장에서의 활동 중에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되나 나를 위해 누군가가 시간내어 섬겨주면 팁을 주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모든 면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운전하는 운전사가 교회 행사 외에 외부로 차량 운행 할 때 어느 정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위해 일을 시킨 후에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팁을 받으면 더 열심히 기쁘게 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운전해 준다든지, 어떤 일을 해줄 때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바라보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나 팁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는 자가 승리하고 복 받습니다. 받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주는 자는 지혜자입니다. 주는 것은 사랑과 섬김의 실천입니다. 주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신과 남을 위해 유익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받으면 기억하게 됩니다. 돈 버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팁을 주는 것도 선한 일에 쓰여지는 재물입니다. 팁을 받으면 신나게 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고 나서 잊어야 합니다. 주는 것은 선행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시킨 후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삶의 매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받기만 합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 위해 돈을 쓰고 남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생 주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에게 유산을 미리 주지 말고,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다가 남으면 자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미리 주면 받은 후에 마음이 변해 부모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혜롭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삶의 처세술입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팁을 주면서 사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리더는 팁을 주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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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DMN(diaspora Mongolian network)의 시작 DMN은 2000년도에 한국에서 몽골인 사역을 담당하던 사역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몽골인 모임은 전국에 100여 곳이 되었다. 대부분이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몽골인 모임이었다. 구정과 추석 명절에 몽골인 모임은 연합으로 수련회를 하였다. 2박 3일 동안 집회를 가지며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사역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수련회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몽골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선교단체 이름을 DMN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DMN의 비젼은 "흩어진 몽골족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운다."였다. 당시에 한국에는 많은 이주민들과 이들을 위한 선교단체가 있었지만 이주민들을 디아스포라선교의 관점으로 선교하게 하신 것은 몽골교회에 허락하신 크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DMN은 초기부터 선교의 대상을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으로 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 내몽골과 브리야트 및 중앙 아시아에 있는 몽골인, 일본, 호주, 미국, 유럽에 있는 몽골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하고 선교훈련도 했다. 몽골교회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와 다른 많은 교재들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도움은 한국교회나 사회 기관에서 해결하게 하고 DMN은 오직 전도와 일꾼을 세워서 파송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모든 교회에서는 거듭나고 헌신된 목회자나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결국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30여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단기 선교사로 일본, 호주, 내몽골, 터어키, 미국, 유럽, 중앙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DMN을 세워주시고 귀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선교단체들은 DMN의 비젼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DMN이 이주민선교를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선교, 그리고 현대의 선교까지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이해하면 선교의 큰 흐름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몽골선교를 하는 DMN에게 허락하신 것을 몽골교회들은 감사하고, 더욱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선교가 되기 위해서 더욱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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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하버드대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어느 날 그는 찌르는 듯한 두통으로 아침을 맞는다. 일상적 활동을 하려 하지만 옷을 입기도, 목욕을 하기도, 전화를 걸기도 어렵다. 찾아온 건 중증 뇌출혈.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진행 과정을 꼼꼼히 관찰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대수술을 받고 8년간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친다. 이 책은 그가 뇌과학자로서 뇌질환을 겪으며 자신이 느낀 것, 경험한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담백하게 써내려간 기록이다.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지닌 힘을 역설한 그의 이야기는 TED 무대에 소개되어 500만 조회수 인기 강의가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되어 환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그의 이야기는 ‘뇌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기록물’이자 ‘무너짐과 일어섬’을 겪은 한 사람의 투쟁기다. 우리가 알아야 할 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실화로,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교보문고. 뇌와 뇌졸증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다. 뇌에 대한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첫날, 내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부위에서 빠른 차도를 보였다. 이후 회복까지는 몇 년이 걸렸지만, 일부 뇌 부위는 말짱해서 현재 순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뇌졸중 전후의 가장 큰 변화라면 머릿속에 인상적인 침묵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예전처럼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도 막혀버렸다. 그 대신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순간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경험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p. 66). 넷째 날까지도 뇌가 가급적이면 자극을 피하려 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렇다고 우울했다는 뜻은 아니다. 뇌가 감각의 과부하에 걸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p. 82)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뇌라고 판단했다. 불행히도 뇌졸중 환자들은 대부분 원하는 만큼 잠을 푹 잘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내 경우 수면이야말로 뇌가 새로운 자극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의 뇌는 물리적으로 손상된 상태여서 감각계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운 게 분명했다. 방금 경험한 일을 이해하려면 뇌가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수면은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파일을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사무실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조직하고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p. 83). 의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뇌졸중이 일어나고 6개월 안에 능력을 되찾지 못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 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외부 자극을 기반으로 세포의 연결 구조를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런 뇌의 '가소성'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나는 뇌가 꼬마들이 여럿 뛰어노는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여러분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놀이터를 보면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정글짐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이들도 보인다. 모래로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뇌의 서로 다른 세포 집단처럼 말이다. 정글짐을 없앤다고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섞여 또 다른 놀이를 계속한다. 뉴런도 마찬가지다.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뉴런의 기능을 지우면, 이 세포들은 자극이 없어서 죽거나 다른 할 일을 찾는다.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은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 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뇌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 필(p. 108)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의 에너지는 수면으로 채워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자극이 감각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의 입자들이 망막 세포를 자극하고, 음파가 고막을 혼란스럽게 때려서 금세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뉴런들은 뇌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금방 놓쳐버리곤 했다. 자극은 정보를 처리할 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나의 뇌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소음으로 들리는 불쾌한 감각 자극에서 멀어져야 했다. 뇌졸중을 겪은 후 여러 해 동안 뇌의 수면 욕구를 무시할 때마다 감각계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정신적 • 육체적 탈진이 이어졌다. 내가 만약 일반 재활 센터에 머물면서 리탈린(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처방약)을 복용하고, 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 재활 프로그램을 따라야 했다면, 아마 정신이 더 멍해져서 회복하려는 노력을 덜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전국의 재활 시설에서 다양한 방법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수면, 수면, 수면의 효과를 열렬히 옹호한다. 더군다나 학습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어야 한다(p. 109).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 이후로 계단을 깡충깡충 뛰면서 오르는 상상을 매일 했던 것이다. 예전에 마음껏 계단을 오르내리던 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 장면을 계속 되돌려보며, 해당 회로를 깨어 있게 했다. 그 때문에 결국 내 몸과 마음 이 서로 협력해서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p. 127). 뇌출혈이 안겨준 가장 큰 축복은 순수함과 내적 기쁨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를 회복하고 강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뇌졸중 덕분에 나는 다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절박한 위험이 없어서 세상을 안전하게 느꼈고, 마치 내 집 뒤뜰인 것처럼 걸었다. 오른쪽 뇌가 움직일 때 우리는 인류의 가능성이라는 직물을 이루고 있는 색실들이다. 삶은 축복이며, 우리 모두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내 우뇌의 성격은 모험심이 강하고, 풍요로움을 찬양하며, 사교에 능하다. 비언어적 소통에 탁월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 감정이입에 능숙하다. 또한 감정의 몰입이 일어나 우주와 하나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종교적 마음이 머무는 곳도 우뇌에 있다. 덕분에 나는 현명한 관찰자가 된다. 직관과 고차원적 의식이 여기서 생긴(p. 141)다. 오른쪽 뇌는 항상 현재형이며 시간 감각이 없다. 우뇌의 타고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낡은 정보가 담긴 파일을 새롭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나는 유년기 내내 호박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우뇌 덕분에 기꺼이 호박에 재도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호박을 아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뇌로 판단을 내린 후에는 파일 업데이트를 위해 선뜻 오른쪽으로(우뇌의 의식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을 한번 내리고 나면 그 결정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깨닫기로 지배욕이 강한 좌뇌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제한적인 두개골 공간을 개방적인 우뇌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오른쪽 뇌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틀에서 벗어나 사고한다. 틀을 만든 장본인인 좌뇌가 세운 규칙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 혼란이 창의적 과정의 첫 단계임을 잘 안다. 근운동 감각이 뛰어나고 기민하며, 육체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사랑한다. 내 세포들이 직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보내는 미묘한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며, 촉감과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 우뇌는 자유를 찬양하며, 과거에 발목이 잡히거나 미래에 일어날 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삶과 세포들의 건강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 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의 일원인 당신의 몸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에 관심을 갖는다(p. 142). 내가 회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왼쪽 뇌의 부위가 있다. 비열하게 굴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좌뇌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치솟고 이마가 부어올라 두통이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동으로 머릿속에 재생하는 오래된 감정 회로 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았다(p. 146). 회복 과정 중에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비꼬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내 성격을 담당하는 부위가 상처받은 왼쪽 뇌의 자아 중추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부위는 나를 지독한 패배자로 만들고, 원한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복수를 꾸미게 한다.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 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p. 147). 집중하는 인간의 뇌보다 더 막강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언어를 통해 우리의 왼쪽 뇌는 몸의 치료와 회복을 지시(혹은 방해)할 수 있다. 언어와 자아를 담당하는 왼쪽 뇌는 50조 개의 분자적 지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응원단장과도 같다. 내가 세포들에게 주기적으로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보내면, 세포들은 치료 환경을 강화하는 진동을 몸 속에서 만들어낸다. 세포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중증 정신병의 모든 징후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포가 어떤 세포와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만큼 주고받는가가 정신질환 발병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뇌 연구는 정신병의 바탕이 되는 신경 회로의 이해에(p. 161)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효과적으로 돌보도록 도와줄 방법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치료 방법에는 처방약을 통해 뇌세포를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법, 심리 치료를 통해 인지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가 볼 때 의료적 치료의 목적은 공통된 현실을 공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불행히도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60퍼센트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 방법을 찾지 않고 약물이나 음주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약이나 술을 찾는 경우에도 현실 공유 능력을 해치고, 건강에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p. 162).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 몸에 차오르는 감정에 대한 반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지적 사고를 모니터하(p. 176)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 감정을 지각할 때 내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화학 물질이 나를 사로잡 다가 풀어주는 데 9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각성이 내가 뇌졸중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분노, 질투, 좌절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복잡한 회로가 적극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친숙하고 마치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된 듯 느껴지는 데에 있다. 습관적으로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것만큼이나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행복은 오른쪽 뇌의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이다. 따라서 이 회로는 항상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언제든 여기에 접속할 수 있다. 반면 분노 회로는 항상 돌아가지 않으며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이 생리적 반응이 혈류에서 빠져나가면 곧바로 다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로 다른 회로가 몸 안에서 가동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파악하고 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이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다.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치면 소름 끼칠 만큼 불편하다. 생리적으로 이런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회로에 정기적으로 접속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p. 177).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 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공포 • 분노 반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으며, 걸핏하면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회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만 한다. 유쾌한 기분을 좋아하므로 나의 기쁨에 응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앞서 말했듯이 신체의 고통은 우리 몸 어딘가에 조직이 손상되었음을 뇌에 알려줘서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리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의 감정 회로에 접속하지 않고도 신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몹시 아플 때 얼마나 용감 해지는지 잘 안다. 부모들은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 회로에 시달리지만, 아이들은 부모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고도 꿋꿋하게 병에 적응한다. 고통을 몸으로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인지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들은 자신의 병을 견디는 것보다 부모가 슬퍼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아픈 사람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방문할 때는 여러분이 어떤 회로를 자극하는지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의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p. 178). 옮긴이의 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 이 작은 책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에 걸렸다가 8년의 회복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되찾은 사람이 쓴 기록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 중에는 뇌졸중에 걸린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거나 앞으로 닥칠지 모를 뇌졸중의 위험에 대비해 정보를 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뇌졸중을 겪고 이를 극복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니 만큼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 뇌졸중 증상은 어떤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치료해야 하는지,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등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는 못했을 터, 이 책의 저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신경해부학을 전공한 뇌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정신분열증을 앓는 오빠를 보(p. 208)며 자라 뇌의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전미정신질환자협회의 입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뇌 기증 문화를 선도해왔다. 이렇듯 누구보다 뇌질환에 관심이 많고 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뇌가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뇌졸중 발병으로 인해 인 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복잡한 신경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망가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해체되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뇌질환의 사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를 소개하는 뇌과학 책들은 그동안 국내에도 꽤 소개되었지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사례를 소개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유아기로 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발달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했다는 점이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숫자 세는 법, 색깔 보는 법 등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그녀가 고통스럽게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신경 차원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질 볼트 테일러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다.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일어나 언어 능력은 물론 기억 능력조차 잃었다. 순차적 사고도 불가능해져서 경험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순간이 고립된 채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뇌(p. 209)가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평온하고 차분한 의식이 밀려들면서 열반과 같은 희열에 빠져들었다. 한 마디로 좌뇌의 '행하는' 의식이 밀려나고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이 부각된 것이다. 회복 과정 중에 저자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회복의 필요성을 끊임 없이 확인하는 일이었다. 세상과의 끈이 하나둘 풀리면서 거대한 희열과 영원한 우주의 흐름을 느끼자 그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평화는 유혹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누구든 언제라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좌뇌의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우뇌의 의식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이었고, 이 책의 원제가 '뇌졸중이 내게 안겨준 통찰My Stroke of Insight' 인 이유다. 이렇듯 뇌졸중은 그녀에게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 역시 부정적인 회로를 잠재우고 기쁨의 회로에 접속하며 순간순간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뇌의 신비를 소개 하는 책은 많지만 뇌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뇌과학 책은 흔치 않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두 개의 뇌를 평화롭게 조화시키는 방법, 이것이 바로 마음의 건강을 누리는 지혜이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이다. 이렇게 멋진 책을 번역할 기회를 준 윌북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장호연(p.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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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5】 죽을 때가 되면 연명하지 말고 죽자
- 《장수 지옥》은 결론적으로 웰 다잉을 위해 웰 리빙을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크로와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여성 및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책을 발표해온 마쓰바라 준코가,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장수 지옥’에 비유하면서, 연명치료의 양면성 및 재택 의료, 유료노인홈, 특별양호노인홈, 일본존엄사협회, 네덜란드 안락사협회 등 복지 현실 및 장수의 실상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수의 현실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담아냈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음식 섭취가 불가능할 때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리빙 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목숨을 끊는 존엄사까지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저자는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일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장수 인생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돌입한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겸허하게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죽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따뜻하게 배웅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끝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현실적인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교보문고. 장수지옥 시대가 됐다.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치료가 아니다. 죽을 생명을 죽지 못하게 할 뿐이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약물처방과 치료,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그 때를 잘 준비하다가 때가 되면 잘 떠나야겠다. 60대라면 누구나 치매가 두렵다. 나도 예외가 아니며 치매로 판단력을 잃는 것은 암 선고보다 두렵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암으로 죽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암에 걸리면 대략 수명을 알 수 있어서 정신이 온전한 동안에 임종을 준비할 수 있다. 젊다면 암을 이겨낼 수도 있지만 환갑이 지나서까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계속 산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치매는 무섭지 않아.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걸?"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이 말을 주워 담고 싶다. 여기서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잃는 게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내 절친은 환갑이 되기 몇 개월 전에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마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일상생활을 잠식해갔다. 친구는 어느 날 허리가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 가 병원에 입원했다. 이메일로 압박골절인 듯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얼마 후 휴대전화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말기 암 판정으로 시(p. 28)한부 진단을 받았고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퇴하면 같이 놀러 다니다가 노후에는 함께 살자" 고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불과 얼마 전에 같이 밥도 먹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친구라 본인이 가장 허무하겠지만, 너무 좋은 친구였기에 이렇게 황망히 떠나다니 신이 원망스러웠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70세까지 산 지금 그 친구를 생각하면, 환갑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오래 고생하지 않고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복잡하다(p. 29). 서구권에는 없는 위루관 수술 일본에서는 위루관 수술이 표준적인 조치로 인식되지만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하지 않는 수술이 다. 2015년에 네덜란드로 고령자 주택 등을 시찰하러 갔을 때 그곳에는 '연명치료'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도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위루관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복을 위한 일시적인 조치이며 고령자의 연명을 위해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위루관 수술을 비롯한 연명치료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인은 일본인과 다르게 어릴 때부터 생명과 죽음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자신만의 사생관이 명확하다. 일본인은 예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며 터부시해왔고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며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해 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모가 위독하면 '살려주세요' 라고 의사에게 애원한다. 연명치료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p. 51) 생각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가족으로서의 감정만 주장한다. 그리고 살리는 일이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위루관 수술이 만연한 배경에는 의사나 병원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족들의 바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족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일본인은 노인이 되면 침대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북유럽의 노인들에게는 침대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른 걸까? 물론 세상에는 훌륭한 병원도 있고 존경할 만한 의사도 많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의사에게 맡기는 건 문제가 있다. 고령자라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 문에 연명치료에 대해서는 반드시 생각해둬야 한다. 그렇 지 않으면 자신도 가족도 불행해진다. 건강할 때 올바른 지식을 익혀둬야 나중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다. 자녀들 또한 부모를 사랑한다면 "살려주세요"라며 의사의 팔을 붙들지 말고 올바른 지식을 갖추도록 하자. 앞서 말한 것처럼 유럽에서는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p. 52)할 수 없는 고령자에게 위루관 수술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죽게 해주는 일'이 그들의 문화이고, 그런 가치관이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게 의사를 맹신하는 일본과 크게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대부분은 사생관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는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죽음에 이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죽게 둘 것인가? 아니면 연명치료로 죽지 않게 할 것인가? 당신이 건강한 바로 지금 연명치료에 대해 확실히 공부해두자(p. 53). 여담이지만 장의사에 따르면 연명치료를 받다가 죽은 사람은 자연사한 사람보다 무겁다고 한다. 연명치료로 인해 몸속에 수액이나 영양분 등 수분이 차기 때문이다. 또 연명치료를 받은 주검은 얼굴 표정도 험악해서 가족이 봐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장의사는 시신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자연사를 하면 시신의 얼굴도 온화한 표정이라고 한다(p. 57).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대개 ‘연명치료’라고 하면 ‘인공호흡기’, '위루관' 등이 먼저 떠오른다. 연명치료란 '근본적인 치료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임종기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고 연명하도록 하는 치료(일본대백과전서)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 연명치료에는 다양한 의료 처치가 포함된다. • 연명치료 방법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재대로 알고 거부하는 걸까? 연명치료와 관련된 의료 처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p. 76). 연명치료는 주로 다음과 같은 처치를 포함한다. ① 심폐소생 심장이나 호흡이 정지했을 때의 치료 수단. 심장 마사지, 전기 쇼크, 기관내 삽관 등이 있다. 뼈가 약한 고령자에게 심장 마사지는 갈비뼈골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심장이 멈추면 다시 뛰게 해도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② 기관절개 기도가 혀에 막혀 질식 상태거나 뇌사 상태일 때 목에 구멍을 뚫는 처치. ③ 인공호흡기 자가호흡이 불안정할 때 호흡을 돕는 장치. ④ 강제 인공영양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강제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법을 말하며 비위관, 위루관, 중심정맥영양 등이 있다. 튜브 삽입에 따른 불쾌감을 비롯해 회복 및(p. 77) 생활의 질(qualty of ife)을 고려해야 한다. ⑤ 수분 보급 입으로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 상태에 이르므로 손이나 다리의 정맥에 수액 주사를 처치한다. 방법으로는 말초정맥수액, 대량피하주사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 혈관이 약하기 때문에 주사 놓을 곳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량피하주사의 경우 수액의 속도가 빠르면 통증을 유발하므로 가능한 한 속도를 줄여야 한다. ⑥ 인공투석 신장이 기능하지 않을 때 신장을 대신해 혈액을 정화하는 의료 행위로, 단시간에 체내 환경이 급변하므로 고령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⑦ 수혈 피를 토하거나 혈변 증상이 있을 때는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나 장의 말기 암은 지혈이 어려워서 결국 의미 없는 수혈을 반복해야 한다(p. 78). ⑧ 강력한 항생제 사용 오연성 폐렴이 반복되어 일반적인 항생제로 처치가 안 될 때 한층 강한 항생제를 사용한다. • 장점과 단점 연명치료의 장점은 문자 그대로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완치할 수 없으므로 이전처럼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연명치료는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할 수 있으므로 도중에 제거할 수 없다. 또 연명 치료로 오래 살면 살수록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는 오롯이 본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건강할 때 충분히 생각해 두어야 한다(p. 79). 개인적으로는 고독사야말로 이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p. 133) 때문이다. 고독사는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 하다가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죽음인 것이다. 게다가 쓰러져도 구급차를 부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죽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지금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죽음이야말로 혼자 맞는 게 이상적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나는 조용히 떠나고 싶다. 병원으로 실려 가서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다가 고생하며 떠날까 봐 두렵다(p. 134).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테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신의 영역인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서로 으르렁거리는 가정(p. 195)에서 자란 사람, 독신이지만 친구가 많은 사람, 독신은 아니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사람,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할 때 곧장 달려와 주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 노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등 사람은 정말 로 다양하다. 삶이 평범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자(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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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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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5】 죽을 때가 되면 연명하지 말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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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4】 삶을 위한 지혜로운 작은 조언들
- 2013년에 출간한 『문요한의 마음청진기』의 개정판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는 〈에너지 플러스〉 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94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화마가 휩쓸어 재만 남은 산야에도 다시 수목이 자라고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도 스스로 정화되듯, 어떤 상황에서도 힘껏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쉰다고 말하며, 진정한 치유와 성장이란 바로 자신 안의 생명력과 만나는 것이라 정의한다. 독자 개개인이 심리 상담소에서 마음 상태를 진단받아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이 책은 총 5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바로 아는 단계인 “마음 뒤의 마음을 보라”, 삶의 어려움에도 정신적 맷집을 키우라는 “모든 생명은 힘껏 살아간다”,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 모든 일에 도전하라는 내용의 “실험하라, 인생은 당신 편이다”, 더불어 살기를 강조하는 “그래도 함께 가라”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원고지 7매 내외의 짧고 압축적인 글임에도 정신의학 및 심리학적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감성 어린 글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해제하고 자신과 대면하게 하는 자기치유적인 메시지도 더했다. 이 책의 제목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도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안의 치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착안되었다. 심리적 고통이 클 때는 그 치유본능을 못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자기 안에 생명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인하의 감각적인 50컷의 그림도 빛을 발한다. 각 장의 말미에서는 ‘Dr. 문의 심리솔루션’을 통해 정신적 맷집을 키우고 문제를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멘탈 트레이닝 비법도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마치 실제 심리 상담소에서 주치의와 마주하고 솔루션을 제시받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점점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대. 우리는 문요한이 전하는 94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 자신이 만난 문제를 대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고 인생의 고민 앞에서 한 발짝 내딛게 하는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멘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류의 책을 정기적으로 읽을 필요를 느낀다. 살면서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한번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고독은 삶을 채우는 시간 돌아보면 젊은 날들은 참 외로웠습니다. 외로워서 누군가를 찾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있고 싶어졌고, 혼자 있으면 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반복재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서툴렀지만 사실은 자신을 마주하고 관계하는 것이 더 서툴렀던 때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을 같은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식당에서 혼자 밥을(p. 28) 먹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 사람들 속으로만 파고들게 됩니다. 영어에는 혼자 있는 것과 관련된 두 단어가 있습니다. ‘고독solitude’ 과 ’외로움lonelines’ 입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상황은 같습니다. 하지만 고독은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은 능동적인 홀로 있음입니다. 그에 비해 외로움은 타인과 단절되어 누군가를 갈구하는 공허한 감정입니다. 고독이 내적 충만이라면 외로움은 내적 공허인 셈이지요. 고독은 외로움도 아니고 도피도 아닙니다. 고독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삶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홀로 되면 외로워지지만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하면 삶이 충만해 집니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실을 감아 고치가 되는 번데기처럼 자기실현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고독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조와 자기완성은 고독의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낯설고 깜깜하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은 이내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을 채워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외롭게 시들어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중에서(p. 29). 권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꼭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은 큰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반면, 삶이 너무 따분하고 멈춰 버린 느낌에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호소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이들도 삶이 제자리에 고이면서 정체감이나 권태감에 휩싸인 것입니다. 이러한 권태나 정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탈이라고 하면 먼저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탈선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중년의 권태나 정체감을 중독이나 외도처럼 파괴적인 일탈로 해(p. 46)결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탈이란 꼭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들이 하나의 일탈입니다. 꽃구경을 가고 공연을 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등 삶에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것 역시 모두 일탈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붓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 춤을 추고, 글을 쓰는 등 자신을 노래하거나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은 생산적 일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산적인 일탈과 파괴적인 일탈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유목민의 시대인 21세기에는 파괴적인 일탈만큼 무일탈 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있을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레빈슨은 삶을 ‘정착과 이주의 연속’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삶이란 6~7년의 안정기와 4~5년의 전환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권태는 사실 정착 기간의 종료를 알리는 알람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입니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썩어가듯이 삶도 틀 안에 갇히면 죽어갑니다. 당신에게 권태감이 찾아왔나요? 그렇다면 삶을 다시 흐르게 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신호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벤자민 프랭클린(p. 47). 누군가 태클을 걸어올 때 교육학자인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 여의사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최초라는 것은 영광만큼이나 고난 또한 몇 배 크게 마련입니다. 몬테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였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과 최초였기 때문에 뚫고 나가야 했던 악습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해부학 수업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남자 동료들과 시체를 함께 해부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깜깜한 저녁에 악취가 풍기는 실습실에서 혼자 시체에 칼을 대어야 했습니다. 차별과 비난은 그녀가 교육학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었습 니다.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온갖 비(p. 86)판으로 그녀를 물어뜯으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몬테소리는 비평가들과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걸으며 영향력을 점점 넓혀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존경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왜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 않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녀에게 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 싸우지 않느냐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개 한 마리가 내 발꿈치를 물려고 한다면, 그때 내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개를 발로 차내든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단지 무리에서 벗어났거나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일일이 싸우기보다 그들이 물어뜯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삶의 방향이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타인들의 왜곡된 평가나 시선에 의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야할 곳이 있기에 아무 곳에서나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더 높이 올라 갑니다. 합당한 이유 없이 당신에게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나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높이 올라갈 것인가요, 아니면 사다리에서 내려와 싸울 것인가요?(p. 87). 세상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혹시 레나 마리아라는 여성을 아시나요? 그녀는 스웨덴 태생의 가스펠 가수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는 부모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장애를 극복해 왔습니다. 요리, 운전, 자수, 피아노 등은 물론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나가 여러 개의 금메달을 석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절대적인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녀는 온몸으로 부딪혀 뛰어넘어온 것입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저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인생에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p. 94)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든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험하다 보니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의식은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과 피해를 줄 것이라고 의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의식상태도 있습니다. 일명 '역 피해의식'입니다. 이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좋은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나 그 모든 경험들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레나 마리아처럼 결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입니다.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심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행하는 일마다 엉망으로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하여, 이전에는 해내지 못 한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역경이나 시련을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고, 그 성장통을 피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에는 늘 예상치 못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 고통에 가장 좋은 치료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미 찾기'입니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경험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통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운가요? 그렇다면 그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p. 95). 왜 하는지를 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994년 11월 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적인 헤비급 타이틀 매치가 펼쳐졌습니다. 마흔다섯의 늙은 도전자 조지 포먼과 스물아홉의 젊은 챔피언 마이클 무어가 맞붙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어의 승리를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무어에게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고 10회에 극적인 KO승을 거두었습니다. 권투 역사상 최고령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무엇이 포먼으로 하여금 할아버지 복서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링에 오르게 했을까요? 어떻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 경기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20년 전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알리에게 당했던 패배를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p. 99). 시간은 거슬러 1971년으로 갑니다. 당시 포먼은 40연의 무패가도를 달리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하다드 알리는 서른두 살의 늙은 도전자였죠. 사람들은 모두 포면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불리하게 진행되던 경기를 뒤집어 8회에 포먼을 눕히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알리에게 킨샤사의 기적이 되었고, 포먼에게는 ‘킨샤사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포먼은 그날의 패배 이후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권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포먼은 고향에서 목사로 활동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목회와 청소년 선도를 위해 애쓰던 포먼은 서른여덟 살이 되자 다시 링 위에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줄 청소년 센터의 운영자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청소년들을 위해 다시 글러브를 꼈습니다. 150킬로그램이라는 육중한 몸과 고령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이끌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재기를 준비하면서 뒤늦게 자신이 알리에게 진 진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알리는 싸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펀치를 견딜 수 있었던 거야. 목적이 있으면 고통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때 목적이 없었던 거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링에 복귀했지만, 포먼은 젊은 챔피언 시절에는 없었던 사명과 목적의식으로 강하게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원이었죠(p. 100).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포먼은 패배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위안을 줍니다. “패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패배는 인생에서 단 하루 벌어진 일일 뿐이므로 거기에 압도돼서는 안 된다. 내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는 바를 추구할 때에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p. 101). ~때문에, ~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정신과의사를 하면서 흔히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날마다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힘들지 않나요?" 물론 힘든 이야기를 계속 듣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말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이 힘든 이야기만 듣는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크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힘든 것 이상의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올 때에 사람들은 '~때문에'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부모 때문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난 실패 때문에, 실연 때문에... 나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느낍니다. 또한 바쁘기 때문에, 능력(p. 116)이 부족하기 때문에, 용기가 없기 때문에, 예전에도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사나 합리화는 가장 쉽게 자신을 방어하도록 도와주지만 이를 통한 위안은 결국 문제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자라나면 '~때문에'라는 마음이 줄어들고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늘어납니다. 비록 과거에 상처나 실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시작해 보겠다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더욱 자라나면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과 함께 ‘~덕분에’ 라는 마음이 늘어나게 됩니다. 과거의 가난이나 어려운 환경, 지난 실패와 고난 덕분에 자신이 겸손해질 수 있었거나 타인의 고통에 눈뜨게 되었거나 삶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상처가 보석으로 바뀌는 놀라운 마음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을 정말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바로 '~에도 불구하고'와 ‘~덕분에’ 같은 정신이 아닐까요?(p. 117). 열등감은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 연예인이나 미스코리아인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로 예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기에 열등감이 더 크면 컸지 더 적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열등감을 느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사실 열등감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정작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마련입니다. 체형과 외모, 학력, 집안, 운동 능력, 화술, 인간 관계, 성격, 재산 등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사람이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에게 없는 것(p. 190)을 욕망하기 때문에 이러한 약점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단점으로 인해 놀림을 받거나 수치심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 열등감은 보편적 수준을 넘어 병적으로 확대 됩니다. 즉, 자신이 한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근본적인 결함이 있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 부분을 알면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열등감 자체가 꼭 삶에 해로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보편적인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병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치명적인 것으로 느끼고, 어떻게든 단점을 감추거나 커버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강점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걸림돌로 느껴져서 늘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불안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이 그렇습니다. 그는 ‘고졸’이라는 열등감이 있었지만 이를 감추기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라는 구절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늘 공부하는 만화가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력이 짧으니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메모광이 되었고 발로(p. 191) 뛰는 작가가 되어 이 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열등감만이 탁월함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탁일함의 밑바탕에는 크고 작은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열등감이나 부족함이란, 어떻게 보면 당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당신 안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p. 192). 사람의 그릇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실제로 사용하는 근력은 잠재능력의 50~6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은 잠재능력은 위기의 순간을 위해 비축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들어 올렸다거나 노인이 집에 불이 나자 패물이 든 장롱을 메고 뛰쳐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1907년 르완다로 조사를 나갔던 독일의 한 인류학자는 투치족이라는 부족의 놀라운 점프력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부족원은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1.9미터 정도를 너무 쉽게 뛰어넘었습니다. 1912년도에 공 인된 남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이 2미터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프(p. 193)리카 오지의 원주민이 어느 정도의 실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투치족은 점프력이 대단했을까요? 그 이유는 투치족의 전통에 있었습니다. 투치족 사람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키만큼 높이 뛰어야 성인식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계속 높이뛰기를 연습해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그릇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회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크기가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과연 나라는 사람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일까요? 사람이란 그 크기가 무한정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릇의 크기가 고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신체의 성장은 성장판이 닫히면 끝나지만 삶의 성장은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있는 한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보이는 모습만을 자신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치 근력의 50~60퍼센트만을 발휘해 본 사람들이 그것이 신체적 한계라고 믿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올림픽마다 인간의 한계라고 일컬어졌던 기록이 계속 경신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도전과 노(p. 194)력, 방법적인 개선이 반복되면 인간의 능력 이란 계속 향상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을 크기가 고정된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그 크기 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커질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점점 확장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보시나요?(p. 195). 개라지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대표이자 신생 기업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이 가와사키는 창업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자본이나 기술 혹은 인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와사키는 언제나 “가장 먼저 의미를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창업이 그저 돈이나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일에 깊은 의미를 가진 창업가는 설사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도전했다는 긍지로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단순히 돈을 벌려고 창업을 한 사람들은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p. 213)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도전하는 그 일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거나 의미 있는 일인가요? 그렇다면 시작하세요."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전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p. 214). 상담을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감과 좌절감을 훨씬 크게 느낍니다. 그러나 불확실함이 없는 믿음이란 맹신에 가까우며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여 삶을 위태롭게 합니다. 건강한 믿음이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 때로는 혼돈과 불확실함 때문에 흔들리고 멈춰 서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에 가깝습니다(p. 237). 예전에는 꼬이는 일도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서 인생이 참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면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지려면 때가 있고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경험과 방황들이 결국 내가 가야할 곳으로 나를 안내하는 이정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간다기보다 인생이 나를 필요한 곳으로 이끌어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 선의를 가지고 대하면 인생 역시 나를 선의로 대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거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뜻대로 되는 일이든 아니든,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고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그 믿음이 생기면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심연의 불안도 잠잠해졌고 인생을 끌고 가려고 버둥버둥거렸던 초조함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믿습니다. 나의 물음과 두드림에 꼭 응답이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결국 나는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도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섞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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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4】 삶을 위한 지혜로운 작은 조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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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3】 장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본 적은? 늙고 병든 몸이 요양원과 병원을 거쳐 시체가 되고, 영안실, 장례식장, 무덤과 화장터에 이르러 해체되는 과정은 모두 일상과 유리되어 있다. 다들 죽음에 관한 것은 멀리하지만, 젊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애쓴다. 운동과 식이요법, 기능성 식품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은 죽음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그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 충분히 숙고할 새도 없이,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죽음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직시할 것을 권하며, 저자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독자를 시체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 곳곳에 위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저자는 역사와 종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유한다.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전한다. 매순간,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시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시체 박스 확인부터 씻기고 화장하고 분쇄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쾌한 태도 속에서도 진지함을 놓지 않는 내용의 깊이가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이끈다. 현재의 죽음 의례는 과연 최선의 것인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을 하며 읽는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흥미로게 읽었다.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 있으나 피할 수는 없다. 내 가족이,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 이후 장례에 대해 많은 생각과 변화,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인 남북전쟁이 터진다. 1862년 9월 17일의 앤티텀 전투가 있었던 날은 남북전쟁(과 미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이라는 영예 아닌 영예를 지닌 하루다. 그날 하루에만 전장에서 2만 3000명이 죽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들의 시신은 마찬가지로 퉁퉁 불은 말과 노새 사체 틈에서 잔뜩 부어올랐다. 나흘 후 펜실베이니아 137연대가 와서, 연대장이 병사들에게 시체를 파묻을 때 독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당시, 술에 취한 채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허용한 주는 미국 전체에 꼭 한 주밖에 없었다. 남북이 4년간 싸우는 동안, 군인 가족 중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은 아들과 남편을 찾아올 도리가 없었다. 시신들을 기차로 운송할 수야 있었지만, 며칠만 남부의 여름 더위에 노출되 면 망자들은 극심한 부패 단계에 들어갔다. 햇볕 속에 버려진 시체에서 나는 냄새는 그저 후각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합군 소속 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빅스버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북 양측은 뜨거운 태양 아래 부패해가는 시신의 악취 때문에 짧은 휴전을 선포했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마일에 걸쳐 시체를 운송한다는 것은 열차 기관사들에게 악몽이었다. 철도청은 비싼 철제관에 담겨 밀봉된 시체 외에는 운송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이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p. 123).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돈을 낼 수만 있다면 방부처리라고 알려진 새 보존 처리를 전장에서 바로 해주겠다는, 기업가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을 찾아 소규모 분쟁과 전투마다 따라다녔으니, 이들이 미국 최초의 '앰블런스 쫓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나머지 서로의 천막을 불태운다는 얘기도 들리고, 지역 신문에 "우리가 손댄 시체는 절대 검게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들은 방부 처리 서비스의 효율성을 선전하기 위해, 무명의 용사 중에서 몇 구를 뽑아 실제로 보존 처리해서 이 시체들을 전시하곤 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천막 밖에 양발이 보이게 시신을 괴어놓기도 했다. 전장에서 방부처리하는 천막들 속에는 종종 통 두 개 위에 나무 판대기 하나만 걸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부처리사들은 새로 죽은 사람의 동맥 시스템 속에 화학물질을 주입했다. 그 화학물질은 "비소, 염화아연, 염화수은Ⅱ, 알루미늄 염, 아세트산 납, 각종 염, 알칼리, 산"을 그들만의 비법으로 특별히 섞어 만든 것이었다. 장의업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직도 방부처리의 수호성인으로 취급받는 토머스 홈스 박사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본인이 4000구가 넘는 죽은 병사들을 구당 100달러를 받고 방부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과 주입이라는 이 고상한 방법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할인 행사도 있었으니, 이는 내장 기관들을 몽땅 들어내고 몸의 빈 구멍을 톱밥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더럽히는 짓은 신•구교 전통에(p. 124)서 모두 죄로 여겨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것이 종교적 이념을 이겨낼 때도 있었다(p. 125).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빻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 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이다. 문화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격적이고 우리의 개인적인 의미망에 도전하는 힘을 지닌 죽음 의례가 있다. 와리족이 동족의 살을 구워먹는 풍습부터 티베트 승려가 죽어서 독수리 부리에 갈기갈기 찢기는 것, 클리프의 긴 은빛 투관침으로 내장을 뚫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와리족의 행동과 티베트인이 고인의 시신을 갖고 한 일을 브루스가 클리프에게 한 일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믿음이다. 와리족은 신체를 온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몸에서 영혼이 떠난 다음에는 그 몸이 다른 존재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북미 사람들은 시체에 방부처리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어떤 믿음도 갖지 않는다. 그것(p. 130)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의례가 아니라, 장례 비용 청구서에 가욋돈 900달러를 얹는 짓일 뿐이다. 만약 브루스 같은 장사꾼이 자기 친어머니한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이 방부처리라면, 왜 우리는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p. 131). 영아 화장은 성인 화장과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혹시 이름이 있다면, 우리는 아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종종 아기들의 이름은 그저 '존슨네 아기' 혹은 '산체스네 아기' 이런 식으로 라벨이 붙여진다. 그들에게 완전한 이름이 있는데, 심지어 원래 이름인 'Caitine'을 잘못 적어 'KateLynne'으로 쓰는 식으로 뭔가 고약한 일이라도 있으면 더 슬프다. 완전한 이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그 부모들이 얼마나 바랐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을 성인의 경우처럼 불타는 화장로에 깨끗하게 집어 넣을 만한 도구는 없다. 당신이 화장로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라면 그 속에 완벽히 던져야 한다. 당신 손을 떠나 레토르트 천장에서 쏟아지는 불길 속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아기, 그 아기가 올바른 장소에 착륙하도록 확실하게 던져야만 한다. 연습을 하면 아주 잘할 수 있게 된다. 아기 화장은 보통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 한다. 그쯤 되면 화장하는 방에 죽 늘어선 벽돌들이 너무 뜨거워서 작은 아기들은(p. 141) 가만두어도 저절로 화장이 된다. 마이크가 내게 하루 일과가 끝 나기 전에 성인을 화장하는 대신 "아기를 두 명쯤 해치우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다. 성인은 화장 자체와 냉각 과정을 포함하면 재가 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아기들은 화장하는 데 20분이면 된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좋아, 케이틀린. 뭐라고? 지금 3시 15분이라고? 5시 전에 아기 다섯 명은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자 해보자고, 5시 전에 다섯 명.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거야!” 듣기 끔찍한가? 물론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태아 하나하나, 살고 싶었지만 그 작디작은 삶을 낭비해버린 아이를 두고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만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다 끝내 병원의 그 안전 요원같이 되고야 말 것이다. 유머는 없고 두려움만 가득 한 사람(p. 142).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기도 전에 어둠이 깔렸다. 서쪽으로 가는 I-10 고속도로의 네 차선은 팜스프링스를 지나가는 데, 차선마다 귀가하는 일요 행락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맨 왼쪽 차선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를 유지하며 폭스바겐을 몰(p. 306)고 있었다. 갑자기 차의 왼쪽 뒷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깜박이를 켜고 가운데 차선으로 들어가며 운도 지지리 나쁘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바람 빠진 타이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베어링이 헐거워졌고, 바퀴 전체가 축에서 벗어나 헛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볼트까지 뚝 부러져나가 차바퀴가 있던 곳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고 말았다. 세 바퀴만 달린 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차는 아무렇게나 굴러갔다. 네 차선을 가로질러 나선형을 그리며, 생금속이 아스팔트 바닥을 득득 긁자 흙먼지 스파크가 일었다. 폭스바겐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죽음의 무도를 추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우웅 울리는 정적만 있었다. 계속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이 주변의 흐릿한 풍경 속에 어지럽게 펼쳐졌다.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마치 어떤 기적적인 완충제에 막혀 날 피한 듯했다. 내게는 통제력을 잃는 것보다, 현대 생활의 밀어닥치는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무 준비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불자들과 중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쁜 죽음'이라 표현한 바로 그것 말이다. 현대에 들어 나쁜 죽음이란, 차체가 끔찍하게 찌그러지며 사람의 팔다리가 산산이 떨어져 나간 형상을 띤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지도 말할 수 없다. 하던 일은 엉망진창이 된다. 고인이 어떻게 장 례를 치르길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p. 307). 내가 굴러가며 두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핸들을 꽉 잡고 있어도, 마음은 뚝 떨어진 저편에 가 있었다. 처음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월광 소나타」가 연주되고,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차가 빙글 도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나쁜 죽음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시체와 그 시체에 집착하는 가족들과 함께 4년을 보낸 덕분에 그 순간이 초월적 경험이 되었다.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고, 격렬한 타격을 받아들이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격렬한 타격은 결코 오지 않았다. 고속도로 경계를 표시하는 쓰레기 언덕에 차가 박혔다. 교통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똑바로 앉아 생생하게 마주 보는 동안, 차들과 대형 트럭들이 아찔한 속도로 쌩하고 지나갔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아니면 여러 대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어지러운 여행을 하는 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치지 않았다. 전에는 내 몸이 산산조각 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혹시 산산조각 날까 하는 나의 두려움은 행여 통제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여기에 궁극의 통제력 상실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내던져졌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p. 308).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거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지만, 얼마나 빨리 다른 문화적 편견들, 이를테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가 최근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죽음이 그 진실을 드러낼 적기이다. 불자들은 말한다. 생각들은 뇌에 맺힌 물방울들과 같다고. 같은 생각을 계속 강화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의식 속에 새로운 물길이 뚫린다. 마치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산의 한쪽 면이 침식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세속적 지혜를 과학자들이 확인해준다. 우리의 뉴런은 항상 기존의 연결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당신이 설령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더라도, 그 특별한 길은 돌덩어리처럼 굳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마음의 회로를 만들 책임이 있다. 나는 하와이의 한 쇼핑몰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를 보고 충격 받은 아이로 살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 죽음에 사로잡힌 삶에 항복하거나, 삼나무 숲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보 직전인 여자가 되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도 아니었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정면 대결함으로써 나는 뇌의 회로를 조지프 캠벨이 "더욱 대담하고 깨끗하고 넓고 충만한 인생"이라 부른 것 쪽으로(p. 324) 바꾸어놓은 것이다(p. 325). 디테일에서는 이처럼 한국의 장례 풍습과 다른 바가 있지만 저자의 지론은 한 마디로 '죽음은 감춰야 할 일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 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기존 장의사에 의해 우리는 "죽음과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사람들은 말한다. 돼지에게 입술연지를 발라놓아도 여전히 돼지는 돼지라고. 시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신에 입술연지를 바르고서 시신 분장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신 화장, 즉 시신 꾸미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희생하고 예쁘게 꾸며서 살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내보이는 것이다. 유가족도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길 원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아예 안 보는 가족들도 있다. 참관은 삶과 죽음 중 어디까지나 삶이 중요하다고 보는 관행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에 이런 관행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시신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지, 산 자를 위한 '구경거리'가 아닌 것이다(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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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3】 장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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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누가복음 6:38) 미국의 문화는 팁을 주는 문화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호텔에 머문 후 어느 정도의 팁을 줍니다. 팁을 받은 자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리더는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준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받기보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직장에서 월급 주고, 직장에서의 활동 중에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되나 나를 위해 누군가가 시간내어 섬겨주면 팁을 주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모든 면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운전하는 운전사가 교회 행사 외에 외부로 차량 운행 할 때 어느 정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위해 일을 시킨 후에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팁을 받으면 더 열심히 기쁘게 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운전해 준다든지, 어떤 일을 해줄 때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바라보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나 팁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는 자가 승리하고 복 받습니다. 받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주는 자는 지혜자입니다. 주는 것은 사랑과 섬김의 실천입니다. 주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신과 남을 위해 유익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받으면 기억하게 됩니다. 돈 버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팁을 주는 것도 선한 일에 쓰여지는 재물입니다. 팁을 받으면 신나게 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고 나서 잊어야 합니다. 주는 것은 선행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시킨 후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삶의 매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받기만 합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 위해 돈을 쓰고 남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생 주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에게 유산을 미리 주지 말고,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다가 남으면 자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미리 주면 받은 후에 마음이 변해 부모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혜롭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삶의 처세술입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팁을 주면서 사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리더는 팁을 주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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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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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 DMN(diaspora Mongolian network)의 시작 DMN은 2000년도에 한국에서 몽골인 사역을 담당하던 사역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몽골인 모임은 전국에 100여 곳이 되었다. 대부분이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몽골인 모임이었다. 구정과 추석 명절에 몽골인 모임은 연합으로 수련회를 하였다. 2박 3일 동안 집회를 가지며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사역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수련회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몽골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선교단체 이름을 DMN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DMN의 비젼은 "흩어진 몽골족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운다."였다. 당시에 한국에는 많은 이주민들과 이들을 위한 선교단체가 있었지만 이주민들을 디아스포라선교의 관점으로 선교하게 하신 것은 몽골교회에 허락하신 크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DMN은 초기부터 선교의 대상을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으로 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 내몽골과 브리야트 및 중앙 아시아에 있는 몽골인, 일본, 호주, 미국, 유럽에 있는 몽골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하고 선교훈련도 했다. 몽골교회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와 다른 많은 교재들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도움은 한국교회나 사회 기관에서 해결하게 하고 DMN은 오직 전도와 일꾼을 세워서 파송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모든 교회에서는 거듭나고 헌신된 목회자나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결국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30여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단기 선교사로 일본, 호주, 내몽골, 터어키, 미국, 유럽, 중앙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DMN을 세워주시고 귀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선교단체들은 DMN의 비젼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DMN이 이주민선교를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선교, 그리고 현대의 선교까지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이해하면 선교의 큰 흐름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몽골선교를 하는 DMN에게 허락하신 것을 몽골교회들은 감사하고, 더욱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선교가 되기 위해서 더욱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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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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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 하버드대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어느 날 그는 찌르는 듯한 두통으로 아침을 맞는다. 일상적 활동을 하려 하지만 옷을 입기도, 목욕을 하기도, 전화를 걸기도 어렵다. 찾아온 건 중증 뇌출혈.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진행 과정을 꼼꼼히 관찰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대수술을 받고 8년간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친다. 이 책은 그가 뇌과학자로서 뇌질환을 겪으며 자신이 느낀 것, 경험한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담백하게 써내려간 기록이다.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지닌 힘을 역설한 그의 이야기는 TED 무대에 소개되어 500만 조회수 인기 강의가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되어 환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그의 이야기는 ‘뇌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기록물’이자 ‘무너짐과 일어섬’을 겪은 한 사람의 투쟁기다. 우리가 알아야 할 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실화로,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교보문고. 뇌와 뇌졸증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다. 뇌에 대한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첫날, 내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부위에서 빠른 차도를 보였다. 이후 회복까지는 몇 년이 걸렸지만, 일부 뇌 부위는 말짱해서 현재 순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뇌졸중 전후의 가장 큰 변화라면 머릿속에 인상적인 침묵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예전처럼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도 막혀버렸다. 그 대신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순간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경험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p. 66). 넷째 날까지도 뇌가 가급적이면 자극을 피하려 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렇다고 우울했다는 뜻은 아니다. 뇌가 감각의 과부하에 걸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p. 82)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뇌라고 판단했다. 불행히도 뇌졸중 환자들은 대부분 원하는 만큼 잠을 푹 잘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내 경우 수면이야말로 뇌가 새로운 자극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의 뇌는 물리적으로 손상된 상태여서 감각계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운 게 분명했다. 방금 경험한 일을 이해하려면 뇌가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수면은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파일을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사무실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조직하고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p. 83). 의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뇌졸중이 일어나고 6개월 안에 능력을 되찾지 못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 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외부 자극을 기반으로 세포의 연결 구조를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런 뇌의 '가소성'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나는 뇌가 꼬마들이 여럿 뛰어노는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여러분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놀이터를 보면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정글짐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이들도 보인다. 모래로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뇌의 서로 다른 세포 집단처럼 말이다. 정글짐을 없앤다고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섞여 또 다른 놀이를 계속한다. 뉴런도 마찬가지다.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뉴런의 기능을 지우면, 이 세포들은 자극이 없어서 죽거나 다른 할 일을 찾는다.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은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 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뇌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 필(p. 108)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의 에너지는 수면으로 채워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자극이 감각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의 입자들이 망막 세포를 자극하고, 음파가 고막을 혼란스럽게 때려서 금세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뉴런들은 뇌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금방 놓쳐버리곤 했다. 자극은 정보를 처리할 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나의 뇌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소음으로 들리는 불쾌한 감각 자극에서 멀어져야 했다. 뇌졸중을 겪은 후 여러 해 동안 뇌의 수면 욕구를 무시할 때마다 감각계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정신적 • 육체적 탈진이 이어졌다. 내가 만약 일반 재활 센터에 머물면서 리탈린(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처방약)을 복용하고, 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 재활 프로그램을 따라야 했다면, 아마 정신이 더 멍해져서 회복하려는 노력을 덜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전국의 재활 시설에서 다양한 방법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수면, 수면, 수면의 효과를 열렬히 옹호한다. 더군다나 학습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어야 한다(p. 109).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 이후로 계단을 깡충깡충 뛰면서 오르는 상상을 매일 했던 것이다. 예전에 마음껏 계단을 오르내리던 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 장면을 계속 되돌려보며, 해당 회로를 깨어 있게 했다. 그 때문에 결국 내 몸과 마음 이 서로 협력해서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p. 127). 뇌출혈이 안겨준 가장 큰 축복은 순수함과 내적 기쁨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를 회복하고 강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뇌졸중 덕분에 나는 다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절박한 위험이 없어서 세상을 안전하게 느꼈고, 마치 내 집 뒤뜰인 것처럼 걸었다. 오른쪽 뇌가 움직일 때 우리는 인류의 가능성이라는 직물을 이루고 있는 색실들이다. 삶은 축복이며, 우리 모두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내 우뇌의 성격은 모험심이 강하고, 풍요로움을 찬양하며, 사교에 능하다. 비언어적 소통에 탁월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 감정이입에 능숙하다. 또한 감정의 몰입이 일어나 우주와 하나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종교적 마음이 머무는 곳도 우뇌에 있다. 덕분에 나는 현명한 관찰자가 된다. 직관과 고차원적 의식이 여기서 생긴(p. 141)다. 오른쪽 뇌는 항상 현재형이며 시간 감각이 없다. 우뇌의 타고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낡은 정보가 담긴 파일을 새롭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나는 유년기 내내 호박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우뇌 덕분에 기꺼이 호박에 재도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호박을 아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뇌로 판단을 내린 후에는 파일 업데이트를 위해 선뜻 오른쪽으로(우뇌의 의식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을 한번 내리고 나면 그 결정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깨닫기로 지배욕이 강한 좌뇌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제한적인 두개골 공간을 개방적인 우뇌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오른쪽 뇌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틀에서 벗어나 사고한다. 틀을 만든 장본인인 좌뇌가 세운 규칙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 혼란이 창의적 과정의 첫 단계임을 잘 안다. 근운동 감각이 뛰어나고 기민하며, 육체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사랑한다. 내 세포들이 직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보내는 미묘한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며, 촉감과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 우뇌는 자유를 찬양하며, 과거에 발목이 잡히거나 미래에 일어날 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삶과 세포들의 건강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 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의 일원인 당신의 몸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에 관심을 갖는다(p. 142). 내가 회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왼쪽 뇌의 부위가 있다. 비열하게 굴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좌뇌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치솟고 이마가 부어올라 두통이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동으로 머릿속에 재생하는 오래된 감정 회로 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았다(p. 146). 회복 과정 중에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비꼬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내 성격을 담당하는 부위가 상처받은 왼쪽 뇌의 자아 중추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부위는 나를 지독한 패배자로 만들고, 원한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복수를 꾸미게 한다.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 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p. 147). 집중하는 인간의 뇌보다 더 막강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언어를 통해 우리의 왼쪽 뇌는 몸의 치료와 회복을 지시(혹은 방해)할 수 있다. 언어와 자아를 담당하는 왼쪽 뇌는 50조 개의 분자적 지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응원단장과도 같다. 내가 세포들에게 주기적으로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보내면, 세포들은 치료 환경을 강화하는 진동을 몸 속에서 만들어낸다. 세포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중증 정신병의 모든 징후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포가 어떤 세포와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만큼 주고받는가가 정신질환 발병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뇌 연구는 정신병의 바탕이 되는 신경 회로의 이해에(p. 161)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효과적으로 돌보도록 도와줄 방법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치료 방법에는 처방약을 통해 뇌세포를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법, 심리 치료를 통해 인지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가 볼 때 의료적 치료의 목적은 공통된 현실을 공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불행히도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60퍼센트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 방법을 찾지 않고 약물이나 음주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약이나 술을 찾는 경우에도 현실 공유 능력을 해치고, 건강에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p. 162).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 몸에 차오르는 감정에 대한 반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지적 사고를 모니터하(p. 176)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 감정을 지각할 때 내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화학 물질이 나를 사로잡 다가 풀어주는 데 9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각성이 내가 뇌졸중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분노, 질투, 좌절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복잡한 회로가 적극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친숙하고 마치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된 듯 느껴지는 데에 있다. 습관적으로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것만큼이나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행복은 오른쪽 뇌의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이다. 따라서 이 회로는 항상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언제든 여기에 접속할 수 있다. 반면 분노 회로는 항상 돌아가지 않으며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이 생리적 반응이 혈류에서 빠져나가면 곧바로 다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로 다른 회로가 몸 안에서 가동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파악하고 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이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다.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치면 소름 끼칠 만큼 불편하다. 생리적으로 이런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회로에 정기적으로 접속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p. 177).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 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공포 • 분노 반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으며, 걸핏하면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회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만 한다. 유쾌한 기분을 좋아하므로 나의 기쁨에 응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앞서 말했듯이 신체의 고통은 우리 몸 어딘가에 조직이 손상되었음을 뇌에 알려줘서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리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의 감정 회로에 접속하지 않고도 신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몹시 아플 때 얼마나 용감 해지는지 잘 안다. 부모들은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 회로에 시달리지만, 아이들은 부모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고도 꿋꿋하게 병에 적응한다. 고통을 몸으로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인지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들은 자신의 병을 견디는 것보다 부모가 슬퍼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아픈 사람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방문할 때는 여러분이 어떤 회로를 자극하는지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의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p. 178). 옮긴이의 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 이 작은 책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에 걸렸다가 8년의 회복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되찾은 사람이 쓴 기록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 중에는 뇌졸중에 걸린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거나 앞으로 닥칠지 모를 뇌졸중의 위험에 대비해 정보를 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뇌졸중을 겪고 이를 극복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니 만큼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 뇌졸중 증상은 어떤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치료해야 하는지,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등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는 못했을 터, 이 책의 저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신경해부학을 전공한 뇌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정신분열증을 앓는 오빠를 보(p. 208)며 자라 뇌의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전미정신질환자협회의 입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뇌 기증 문화를 선도해왔다. 이렇듯 누구보다 뇌질환에 관심이 많고 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뇌가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뇌졸중 발병으로 인해 인 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복잡한 신경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망가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해체되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뇌질환의 사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를 소개하는 뇌과학 책들은 그동안 국내에도 꽤 소개되었지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사례를 소개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유아기로 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발달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했다는 점이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숫자 세는 법, 색깔 보는 법 등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그녀가 고통스럽게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신경 차원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질 볼트 테일러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다.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일어나 언어 능력은 물론 기억 능력조차 잃었다. 순차적 사고도 불가능해져서 경험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순간이 고립된 채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뇌(p. 209)가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평온하고 차분한 의식이 밀려들면서 열반과 같은 희열에 빠져들었다. 한 마디로 좌뇌의 '행하는' 의식이 밀려나고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이 부각된 것이다. 회복 과정 중에 저자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회복의 필요성을 끊임 없이 확인하는 일이었다. 세상과의 끈이 하나둘 풀리면서 거대한 희열과 영원한 우주의 흐름을 느끼자 그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평화는 유혹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누구든 언제라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좌뇌의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우뇌의 의식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이었고, 이 책의 원제가 '뇌졸중이 내게 안겨준 통찰My Stroke of Insight' 인 이유다. 이렇듯 뇌졸중은 그녀에게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 역시 부정적인 회로를 잠재우고 기쁨의 회로에 접속하며 순간순간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뇌의 신비를 소개 하는 책은 많지만 뇌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뇌과학 책은 흔치 않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두 개의 뇌를 평화롭게 조화시키는 방법, 이것이 바로 마음의 건강을 누리는 지혜이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이다. 이렇게 멋진 책을 번역할 기회를 준 윌북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장호연(p.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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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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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5】 죽을 때가 되면 연명하지 말고 죽자
- 《장수 지옥》은 결론적으로 웰 다잉을 위해 웰 리빙을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크로와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여성 및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책을 발표해온 마쓰바라 준코가,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장수 지옥’에 비유하면서, 연명치료의 양면성 및 재택 의료, 유료노인홈, 특별양호노인홈, 일본존엄사협회, 네덜란드 안락사협회 등 복지 현실 및 장수의 실상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수의 현실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담아냈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음식 섭취가 불가능할 때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리빙 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목숨을 끊는 존엄사까지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저자는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일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장수 인생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돌입한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겸허하게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죽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따뜻하게 배웅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끝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현실적인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교보문고. 장수지옥 시대가 됐다. 건강하게 살다 죽어야 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치료가 아니다. 죽을 생명을 죽지 못하게 할 뿐이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약물처방과 치료,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그 때를 잘 준비하다가 때가 되면 잘 떠나야겠다. 60대라면 누구나 치매가 두렵다. 나도 예외가 아니며 치매로 판단력을 잃는 것은 암 선고보다 두렵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암으로 죽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왜냐하면 암에 걸리면 대략 수명을 알 수 있어서 정신이 온전한 동안에 임종을 준비할 수 있다. 젊다면 암을 이겨낼 수도 있지만 환갑이 지나서까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계속 산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치매는 무섭지 않아.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걸?"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이 말을 주워 담고 싶다. 여기서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잃는 게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내 절친은 환갑이 되기 몇 개월 전에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마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일상생활을 잠식해갔다. 친구는 어느 날 허리가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 가 병원에 입원했다. 이메일로 압박골절인 듯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얼마 후 휴대전화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족에게 연락했더니 말기 암 판정으로 시(p. 28)한부 진단을 받았고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은퇴하면 같이 놀러 다니다가 노후에는 함께 살자" 고 할 정도로 친한 친구였는데,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불과 얼마 전에 같이 밥도 먹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친구라 본인이 가장 허무하겠지만, 너무 좋은 친구였기에 이렇게 황망히 떠나다니 신이 원망스러웠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70세까지 산 지금 그 친구를 생각하면, 환갑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오래 고생하지 않고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복잡하다(p. 29). 서구권에는 없는 위루관 수술 일본에서는 위루관 수술이 표준적인 조치로 인식되지만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하지 않는 수술이 다. 2015년에 네덜란드로 고령자 주택 등을 시찰하러 갔을 때 그곳에는 '연명치료'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도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일시적으로 위루관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복을 위한 일시적인 조치이며 고령자의 연명을 위해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위루관 수술을 비롯한 연명치료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인은 일본인과 다르게 어릴 때부터 생명과 죽음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자신만의 사생관이 명확하다. 일본인은 예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며 터부시해왔고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며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해 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모가 위독하면 '살려주세요' 라고 의사에게 애원한다. 연명치료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p. 51) 생각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가족으로서의 감정만 주장한다. 그리고 살리는 일이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위루관 수술이 만연한 배경에는 의사나 병원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족들의 바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족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일본인은 노인이 되면 침대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북유럽의 노인들에게는 침대 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른 걸까? 물론 세상에는 훌륭한 병원도 있고 존경할 만한 의사도 많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의사에게 맡기는 건 문제가 있다. 고령자라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 문에 연명치료에 대해서는 반드시 생각해둬야 한다. 그렇 지 않으면 자신도 가족도 불행해진다. 건강할 때 올바른 지식을 익혀둬야 나중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다. 자녀들 또한 부모를 사랑한다면 "살려주세요"라며 의사의 팔을 붙들지 말고 올바른 지식을 갖추도록 하자. 앞서 말한 것처럼 유럽에서는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p. 52)할 수 없는 고령자에게 위루관 수술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죽게 해주는 일'이 그들의 문화이고, 그런 가치관이 생활 속에 녹아 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게 의사를 맹신하는 일본과 크게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대부분은 사생관이 없기 때문에 의사라는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죽음에 이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죽게 둘 것인가? 아니면 연명치료로 죽지 않게 할 것인가? 당신이 건강한 바로 지금 연명치료에 대해 확실히 공부해두자(p. 53). 여담이지만 장의사에 따르면 연명치료를 받다가 죽은 사람은 자연사한 사람보다 무겁다고 한다. 연명치료로 인해 몸속에 수액이나 영양분 등 수분이 차기 때문이다. 또 연명치료를 받은 주검은 얼굴 표정도 험악해서 가족이 봐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장의사는 시신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자연사를 하면 시신의 얼굴도 온화한 표정이라고 한다(p. 57).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대개 ‘연명치료’라고 하면 ‘인공호흡기’, '위루관' 등이 먼저 떠오른다. 연명치료란 '근본적인 치료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임종기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고 연명하도록 하는 치료(일본대백과전서)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 연명치료에는 다양한 의료 처치가 포함된다. • 연명치료 방법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다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재대로 알고 거부하는 걸까? 연명치료와 관련된 의료 처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p. 76). 연명치료는 주로 다음과 같은 처치를 포함한다. ① 심폐소생 심장이나 호흡이 정지했을 때의 치료 수단. 심장 마사지, 전기 쇼크, 기관내 삽관 등이 있다. 뼈가 약한 고령자에게 심장 마사지는 갈비뼈골절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심장이 멈추면 다시 뛰게 해도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다. ② 기관절개 기도가 혀에 막혀 질식 상태거나 뇌사 상태일 때 목에 구멍을 뚫는 처치. ③ 인공호흡기 자가호흡이 불안정할 때 호흡을 돕는 장치. ④ 강제 인공영양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을 때 강제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법을 말하며 비위관, 위루관, 중심정맥영양 등이 있다. 튜브 삽입에 따른 불쾌감을 비롯해 회복 및(p. 77) 생활의 질(qualty of ife)을 고려해야 한다. ⑤ 수분 보급 입으로 수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 상태에 이르므로 손이나 다리의 정맥에 수액 주사를 처치한다. 방법으로는 말초정맥수액, 대량피하주사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 혈관이 약하기 때문에 주사 놓을 곳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량피하주사의 경우 수액의 속도가 빠르면 통증을 유발하므로 가능한 한 속도를 줄여야 한다. ⑥ 인공투석 신장이 기능하지 않을 때 신장을 대신해 혈액을 정화하는 의료 행위로, 단시간에 체내 환경이 급변하므로 고령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⑦ 수혈 피를 토하거나 혈변 증상이 있을 때는 수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나 장의 말기 암은 지혈이 어려워서 결국 의미 없는 수혈을 반복해야 한다(p. 78). ⑧ 강력한 항생제 사용 오연성 폐렴이 반복되어 일반적인 항생제로 처치가 안 될 때 한층 강한 항생제를 사용한다. • 장점과 단점 연명치료의 장점은 문자 그대로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완치할 수 없으므로 이전처럼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연명치료는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할 수 있으므로 도중에 제거할 수 없다. 또 연명 치료로 오래 살면 살수록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는 오롯이 본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건강할 때 충분히 생각해 두어야 한다(p. 79). 개인적으로는 고독사야말로 이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p. 133) 때문이다. 고독사는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 하다가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죽음인 것이다. 게다가 쓰러져도 구급차를 부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죽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지금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 죽음이야말로 혼자 맞는 게 이상적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나는 조용히 떠나고 싶다. 병원으로 실려 가서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다가 고생하며 떠날까 봐 두렵다(p. 134).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테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신의 영역인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서로 으르렁거리는 가정(p. 195)에서 자란 사람, 독신이지만 친구가 많은 사람, 독신은 아니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사람,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지나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할 때 곧장 달려와 주는 사람, 아무렇지도 않게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 노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등 사람은 정말 로 다양하다. 삶이 평범하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자(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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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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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5】 죽을 때가 되면 연명하지 말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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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4】 삶을 위한 지혜로운 작은 조언들
- 2013년에 출간한 『문요한의 마음청진기』의 개정판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는 〈에너지 플러스〉 중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94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화마가 휩쓸어 재만 남은 산야에도 다시 수목이 자라고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도 스스로 정화되듯, 어떤 상황에서도 힘껏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쉰다고 말하며, 진정한 치유와 성장이란 바로 자신 안의 생명력과 만나는 것이라 정의한다. 독자 개개인이 심리 상담소에서 마음 상태를 진단받아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이 책은 총 5세션으로 구성되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바로 아는 단계인 “마음 뒤의 마음을 보라”, 삶의 어려움에도 정신적 맷집을 키우라는 “모든 생명은 힘껏 살아간다”,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 모든 일에 도전하라는 내용의 “실험하라, 인생은 당신 편이다”, 더불어 살기를 강조하는 “그래도 함께 가라”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원고지 7매 내외의 짧고 압축적인 글임에도 정신의학 및 심리학적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감성 어린 글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해제하고 자신과 대면하게 하는 자기치유적인 메시지도 더했다. 이 책의 제목인 『내가 커지면 문제는 작아진다』도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안의 치유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착안되었다. 심리적 고통이 클 때는 그 치유본능을 못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자기 안에 생명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인하의 감각적인 50컷의 그림도 빛을 발한다. 각 장의 말미에서는 ‘Dr. 문의 심리솔루션’을 통해 정신적 맷집을 키우고 문제를 당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멘탈 트레이닝 비법도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마치 실제 심리 상담소에서 주치의와 마주하고 솔루션을 제시받는 듯한 느낌을 생생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점점 자기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대. 우리는 문요한이 전하는 94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 자신이 만난 문제를 대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고 인생의 고민 앞에서 한 발짝 내딛게 하는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멘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류의 책을 정기적으로 읽을 필요를 느낀다. 살면서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한번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고독은 삶을 채우는 시간 돌아보면 젊은 날들은 참 외로웠습니다. 외로워서 누군가를 찾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있고 싶어졌고, 혼자 있으면 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반복재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웠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서툴렀지만 사실은 자신을 마주하고 관계하는 것이 더 서툴렀던 때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과 외로움을 같은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친구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식당에서 혼자 밥을(p. 28) 먹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꾸 사람들 속으로만 파고들게 됩니다. 영어에는 혼자 있는 것과 관련된 두 단어가 있습니다. ‘고독solitude’ 과 ’외로움lonelines’ 입니다. 물론 둘 다 ‘홀로 있는’ 상황은 같습니다. 하지만 고독은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을 벗 삼은 능동적인 홀로 있음입니다. 그에 비해 외로움은 타인과 단절되어 누군가를 갈구하는 공허한 감정입니다. 고독이 내적 충만이라면 외로움은 내적 공허인 셈이지요. 고독은 외로움도 아니고 도피도 아닙니다. 고독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삶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홀로 되면 외로워지지만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하면 삶이 충만해 집니다. 마치 나비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실을 감아 고치가 되는 번데기처럼 자기실현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고독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조와 자기완성은 고독의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낯설고 깜깜하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은 이내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을 채워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외롭게 시들어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다."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 『고독이 나를 위로한다』, 중에서(p. 29). 권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꼭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은 큰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는 반면, 삶이 너무 따분하고 멈춰 버린 느낌에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호소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이들도 삶이 제자리에 고이면서 정체감이나 권태감에 휩싸인 것입니다. 이러한 권태나 정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탈이라고 하면 먼저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탈선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중년의 권태나 정체감을 중독이나 외도처럼 파괴적인 일탈로 해(p. 46)결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탈이란 꼭 부정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들이 하나의 일탈입니다. 꽃구경을 가고 공연을 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등 삶에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것 역시 모두 일탈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붓을 잡고, 카메라를 들고, 춤을 추고, 글을 쓰는 등 자신을 노래하거나 표현하는 창조적 활동은 생산적 일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산적인 일탈과 파괴적인 일탈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유목민의 시대인 21세기에는 파괴적인 일탈만큼 무일탈 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의 시대에 절대적인 안전지대란 있을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레빈슨은 삶을 ‘정착과 이주의 연속’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삶이란 6~7년의 안정기와 4~5년의 전환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권태는 사실 정착 기간의 종료를 알리는 알람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입니다.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썩어가듯이 삶도 틀 안에 갇히면 죽어갑니다. 당신에게 권태감이 찾아왔나요? 그렇다면 삶을 다시 흐르게 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신호가 찾아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5살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살에 치른다." 벤자민 프랭클린(p. 47). 누군가 태클을 걸어올 때 교육학자인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최초 여의사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최초라는 것은 영광만큼이나 고난 또한 몇 배 크게 마련입니다. 몬테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였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과 최초였기 때문에 뚫고 나가야 했던 악습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해부학 수업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남자 동료들과 시체를 함께 해부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깜깜한 저녁에 악취가 풍기는 실습실에서 혼자 시체에 칼을 대어야 했습니다. 차별과 비난은 그녀가 교육학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었습 니다.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온갖 비(p. 86)판으로 그녀를 물어뜯으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몬테소리는 비평가들과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걸으며 영향력을 점점 넓혀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존경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왜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 않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녀에게 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 싸우지 않느냐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개 한 마리가 내 발꿈치를 물려고 한다면, 그때 내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개를 발로 차내든 아니면 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단지 무리에서 벗어났거나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가만히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일일이 싸우기보다 그들이 물어뜯을 수 없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삶의 방향이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타인들의 왜곡된 평가나 시선에 의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야할 곳이 있기에 아무 곳에서나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아 더 높이 올라 갑니다. 합당한 이유 없이 당신에게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나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더 높이 올라갈 것인가요, 아니면 사다리에서 내려와 싸울 것인가요?(p. 87). 세상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혹시 레나 마리아라는 여성을 아시나요? 그녀는 스웨덴 태생의 가스펠 가수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레나 마리아는 부모의 도움으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장애를 극복해 왔습니다. 요리, 운전, 자수, 피아노 등은 물론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나가 여러 개의 금메달을 석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절대적인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녀는 온몸으로 부딪혀 뛰어넘어온 것입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히려 저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인생에서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p. 94)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든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험하다 보니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의식은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과 피해를 줄 것이라고 의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의식상태도 있습니다. 일명 '역 피해의식'입니다. 이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좋은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나 그 모든 경험들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레나 마리아처럼 결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입니다.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심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행하는 일마다 엉망으로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하여, 이전에는 해내지 못 한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역경이나 시련을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고, 그 성장통을 피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에는 늘 예상치 못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 고통에 가장 좋은 치료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미 찾기'입니다. 지금 겪는 이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경험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통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고통스러운가요? 그렇다면 그 고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p. 95). 왜 하는지를 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994년 11월 5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적인 헤비급 타이틀 매치가 펼쳐졌습니다. 마흔다섯의 늙은 도전자 조지 포먼과 스물아홉의 젊은 챔피언 마이클 무어가 맞붙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어의 승리를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포먼은 무어에게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고 10회에 극적인 KO승을 거두었습니다. 권투 역사상 최고령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무엇이 포먼으로 하여금 할아버지 복서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링에 오르게 했을까요? 어떻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 경기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20년 전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알리에게 당했던 패배를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p. 99). 시간은 거슬러 1971년으로 갑니다. 당시 포먼은 40연의 무패가도를 달리는 스물다섯 살의 젊은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하다드 알리는 서른두 살의 늙은 도전자였죠. 사람들은 모두 포면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불리하게 진행되던 경기를 뒤집어 8회에 포먼을 눕히고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알리에게 킨샤사의 기적이 되었고, 포먼에게는 ‘킨샤사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포먼은 그날의 패배 이후 완전히 무너져서 결국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권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후 포먼은 고향에서 목사로 활동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목회와 청소년 선도를 위해 애쓰던 포먼은 서른여덟 살이 되자 다시 링 위에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줄 청소년 센터의 운영자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청소년들을 위해 다시 글러브를 꼈습니다. 150킬로그램이라는 육중한 몸과 고령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이끌고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재기를 준비하면서 뒤늦게 자신이 알리에게 진 진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알리는 싸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펀치를 견딜 수 있었던 거야. 목적이 있으면 고통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난 그때 목적이 없었던 거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링에 복귀했지만, 포먼은 젊은 챔피언 시절에는 없었던 사명과 목적의식으로 강하게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챔피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자원이었죠(p. 100).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포먼은 패배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위안을 줍니다. “패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패배는 인생에서 단 하루 벌어진 일일 뿐이므로 거기에 압도돼서는 안 된다. 내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는 바를 추구할 때에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p. 101). ~때문에, ~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정신과의사를 하면서 흔히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날마다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힘들지 않나요?" 물론 힘든 이야기를 계속 듣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말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똑같이 힘든 이야기만 듣는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크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힘든 것 이상의 보람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올 때에 사람들은 '~때문에'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부모 때문에,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난 실패 때문에, 실연 때문에... 나의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느낍니다. 또한 바쁘기 때문에, 능력(p. 116)이 부족하기 때문에, 용기가 없기 때문에, 예전에도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사나 합리화는 가장 쉽게 자신을 방어하도록 도와주지만 이를 통한 위안은 결국 문제나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자라나면 '~때문에'라는 마음이 줄어들고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늘어납니다. 비록 과거에 상처나 실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시작해 보겠다거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불편함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더욱 자라나면 ‘~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과 함께 ‘~덕분에’ 라는 마음이 늘어나게 됩니다. 과거의 가난이나 어려운 환경, 지난 실패와 고난 덕분에 자신이 겸손해질 수 있었거나 타인의 고통에 눈뜨게 되었거나 삶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상처가 보석으로 바뀌는 놀라운 마음의 연금술이 펼쳐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을 정말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바로 '~에도 불구하고'와 ‘~덕분에’ 같은 정신이 아닐까요?(p. 117). 열등감은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 연예인이나 미스코리아인 사람들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로 예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기에 열등감이 더 크면 컸지 더 적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열등감을 느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사실 열등감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주위에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정작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마련입니다. 체형과 외모, 학력, 집안, 운동 능력, 화술, 인간 관계, 성격, 재산 등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사람이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자신에게 없는 것(p. 190)을 욕망하기 때문에 이러한 약점은 열등감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단점으로 인해 놀림을 받거나 수치심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그 열등감은 보편적 수준을 넘어 병적으로 확대 됩니다. 즉, 자신이 한 부분에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근본적인 결함이 있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 부분을 알면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열등감 자체가 꼭 삶에 해로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보편적인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병적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치명적인 것으로 느끼고, 어떻게든 단점을 감추거나 커버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강점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걸림돌로 느껴져서 늘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불안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탁월함을 끌어내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이 그렇습니다. 그는 ‘고졸’이라는 열등감이 있었지만 이를 감추기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라는 구절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늘 공부하는 만화가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력이 짧으니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메모광이 되었고 발로(p. 191) 뛰는 작가가 되어 이 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열등감만이 탁월함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탁일함의 밑바탕에는 크고 작은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열등감이나 부족함이란, 어떻게 보면 당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당신 안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p. 192). 사람의 그릇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실제로 사용하는 근력은 잠재능력의 50~6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은 잠재능력은 위기의 순간을 위해 비축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동차를 들어 올렸다거나 노인이 집에 불이 나자 패물이 든 장롱을 메고 뛰쳐나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1907년 르완다로 조사를 나갔던 독일의 한 인류학자는 투치족이라는 부족의 놀라운 점프력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부족원은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1.9미터 정도를 너무 쉽게 뛰어넘었습니다. 1912년도에 공 인된 남자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이 2미터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프(p. 193)리카 오지의 원주민이 어느 정도의 실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투치족은 점프력이 대단했을까요? 그 이유는 투치족의 전통에 있었습니다. 투치족 사람들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의 키만큼 높이 뛰어야 성인식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계속 높이뛰기를 연습해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그릇보다 더 많은 것을 담으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 말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회피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크기가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과연 나라는 사람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일까요? 사람이란 그 크기가 무한정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그릇의 크기가 고정된 존재가 아닙니다. 신체의 성장은 성장판이 닫히면 끝나지만 삶의 성장은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 있는 한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보이는 모습만을 자신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 쉽습니다. 마치 근력의 50~60퍼센트만을 발휘해 본 사람들이 그것이 신체적 한계라고 믿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올림픽마다 인간의 한계라고 일컬어졌던 기록이 계속 경신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조건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도전과 노(p. 194)력, 방법적인 개선이 반복되면 인간의 능력 이란 계속 향상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을 크기가 고정된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그 크기 이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커질 수 있는 그릇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점점 확장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보시나요?(p. 195). 개라지 테크놀로지 벤처스의 대표이자 신생 기업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이 가와사키는 창업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자본이나 기술 혹은 인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와사키는 언제나 “가장 먼저 의미를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창업이 그저 돈이나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일에 깊은 의미를 가진 창업가는 설사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일에 도전했다는 긍지로 다시 도전할 수 있지만, 단순히 돈을 벌려고 창업을 한 사람들은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p. 213)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도전하는 그 일이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에게 만족감을 주거나 의미 있는 일인가요? 그렇다면 시작하세요."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도전의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p. 214). 상담을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감과 좌절감을 훨씬 크게 느낍니다. 그러나 불확실함이 없는 믿음이란 맹신에 가까우며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여 삶을 위태롭게 합니다. 건강한 믿음이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 때로는 혼돈과 불확실함 때문에 흔들리고 멈춰 서지만 결국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에 가깝습니다(p. 237). 예전에는 꼬이는 일도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서 인생이 참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면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지려면 때가 있고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경험과 방황들이 결국 내가 가야할 곳으로 나를 안내하는 이정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간다기보다 인생이 나를 필요한 곳으로 이끌어준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생에 선의를 가지고 대하면 인생 역시 나를 선의로 대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거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뜻대로 되는 일이든 아니든,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고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그 믿음이 생기면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거리던 심연의 불안도 잠잠해졌고 인생을 끌고 가려고 버둥버둥거렸던 초조함도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믿습니다. 나의 물음과 두드림에 꼭 응답이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결국 나는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도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면 바다에 가 닿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섞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p.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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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4】 삶을 위한 지혜로운 작은 조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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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3】 장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본 적은? 늙고 병든 몸이 요양원과 병원을 거쳐 시체가 되고, 영안실, 장례식장, 무덤과 화장터에 이르러 해체되는 과정은 모두 일상과 유리되어 있다. 다들 죽음에 관한 것은 멀리하지만, 젊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애쓴다. 운동과 식이요법, 기능성 식품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은 죽음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그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 충분히 숙고할 새도 없이,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죽음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직시할 것을 권하며, 저자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독자를 시체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 곳곳에 위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저자는 역사와 종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유한다.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전한다. 매순간,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시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시체 박스 확인부터 씻기고 화장하고 분쇄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쾌한 태도 속에서도 진지함을 놓지 않는 내용의 깊이가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이끈다. 현재의 죽음 의례는 과연 최선의 것인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을 하며 읽는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흥미로게 읽었다.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 있으나 피할 수는 없다. 내 가족이,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 이후 장례에 대해 많은 생각과 변화,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인 남북전쟁이 터진다. 1862년 9월 17일의 앤티텀 전투가 있었던 날은 남북전쟁(과 미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이라는 영예 아닌 영예를 지닌 하루다. 그날 하루에만 전장에서 2만 3000명이 죽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들의 시신은 마찬가지로 퉁퉁 불은 말과 노새 사체 틈에서 잔뜩 부어올랐다. 나흘 후 펜실베이니아 137연대가 와서, 연대장이 병사들에게 시체를 파묻을 때 독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당시, 술에 취한 채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허용한 주는 미국 전체에 꼭 한 주밖에 없었다. 남북이 4년간 싸우는 동안, 군인 가족 중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은 아들과 남편을 찾아올 도리가 없었다. 시신들을 기차로 운송할 수야 있었지만, 며칠만 남부의 여름 더위에 노출되 면 망자들은 극심한 부패 단계에 들어갔다. 햇볕 속에 버려진 시체에서 나는 냄새는 그저 후각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합군 소속 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빅스버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북 양측은 뜨거운 태양 아래 부패해가는 시신의 악취 때문에 짧은 휴전을 선포했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마일에 걸쳐 시체를 운송한다는 것은 열차 기관사들에게 악몽이었다. 철도청은 비싼 철제관에 담겨 밀봉된 시체 외에는 운송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이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p. 123).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돈을 낼 수만 있다면 방부처리라고 알려진 새 보존 처리를 전장에서 바로 해주겠다는, 기업가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을 찾아 소규모 분쟁과 전투마다 따라다녔으니, 이들이 미국 최초의 '앰블런스 쫓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나머지 서로의 천막을 불태운다는 얘기도 들리고, 지역 신문에 "우리가 손댄 시체는 절대 검게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들은 방부 처리 서비스의 효율성을 선전하기 위해, 무명의 용사 중에서 몇 구를 뽑아 실제로 보존 처리해서 이 시체들을 전시하곤 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천막 밖에 양발이 보이게 시신을 괴어놓기도 했다. 전장에서 방부처리하는 천막들 속에는 종종 통 두 개 위에 나무 판대기 하나만 걸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부처리사들은 새로 죽은 사람의 동맥 시스템 속에 화학물질을 주입했다. 그 화학물질은 "비소, 염화아연, 염화수은Ⅱ, 알루미늄 염, 아세트산 납, 각종 염, 알칼리, 산"을 그들만의 비법으로 특별히 섞어 만든 것이었다. 장의업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직도 방부처리의 수호성인으로 취급받는 토머스 홈스 박사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본인이 4000구가 넘는 죽은 병사들을 구당 100달러를 받고 방부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과 주입이라는 이 고상한 방법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할인 행사도 있었으니, 이는 내장 기관들을 몽땅 들어내고 몸의 빈 구멍을 톱밥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더럽히는 짓은 신•구교 전통에(p. 124)서 모두 죄로 여겨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것이 종교적 이념을 이겨낼 때도 있었다(p. 125).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빻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 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이다. 문화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격적이고 우리의 개인적인 의미망에 도전하는 힘을 지닌 죽음 의례가 있다. 와리족이 동족의 살을 구워먹는 풍습부터 티베트 승려가 죽어서 독수리 부리에 갈기갈기 찢기는 것, 클리프의 긴 은빛 투관침으로 내장을 뚫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와리족의 행동과 티베트인이 고인의 시신을 갖고 한 일을 브루스가 클리프에게 한 일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믿음이다. 와리족은 신체를 온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몸에서 영혼이 떠난 다음에는 그 몸이 다른 존재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북미 사람들은 시체에 방부처리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어떤 믿음도 갖지 않는다. 그것(p. 130)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의례가 아니라, 장례 비용 청구서에 가욋돈 900달러를 얹는 짓일 뿐이다. 만약 브루스 같은 장사꾼이 자기 친어머니한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이 방부처리라면, 왜 우리는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p. 131). 영아 화장은 성인 화장과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혹시 이름이 있다면, 우리는 아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종종 아기들의 이름은 그저 '존슨네 아기' 혹은 '산체스네 아기' 이런 식으로 라벨이 붙여진다. 그들에게 완전한 이름이 있는데, 심지어 원래 이름인 'Caitine'을 잘못 적어 'KateLynne'으로 쓰는 식으로 뭔가 고약한 일이라도 있으면 더 슬프다. 완전한 이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그 부모들이 얼마나 바랐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을 성인의 경우처럼 불타는 화장로에 깨끗하게 집어 넣을 만한 도구는 없다. 당신이 화장로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라면 그 속에 완벽히 던져야 한다. 당신 손을 떠나 레토르트 천장에서 쏟아지는 불길 속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아기, 그 아기가 올바른 장소에 착륙하도록 확실하게 던져야만 한다. 연습을 하면 아주 잘할 수 있게 된다. 아기 화장은 보통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 한다. 그쯤 되면 화장하는 방에 죽 늘어선 벽돌들이 너무 뜨거워서 작은 아기들은(p. 141) 가만두어도 저절로 화장이 된다. 마이크가 내게 하루 일과가 끝 나기 전에 성인을 화장하는 대신 "아기를 두 명쯤 해치우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다. 성인은 화장 자체와 냉각 과정을 포함하면 재가 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아기들은 화장하는 데 20분이면 된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좋아, 케이틀린. 뭐라고? 지금 3시 15분이라고? 5시 전에 아기 다섯 명은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자 해보자고, 5시 전에 다섯 명.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거야!” 듣기 끔찍한가? 물론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태아 하나하나, 살고 싶었지만 그 작디작은 삶을 낭비해버린 아이를 두고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만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다 끝내 병원의 그 안전 요원같이 되고야 말 것이다. 유머는 없고 두려움만 가득 한 사람(p. 142).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기도 전에 어둠이 깔렸다. 서쪽으로 가는 I-10 고속도로의 네 차선은 팜스프링스를 지나가는 데, 차선마다 귀가하는 일요 행락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맨 왼쪽 차선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를 유지하며 폭스바겐을 몰(p. 306)고 있었다. 갑자기 차의 왼쪽 뒷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깜박이를 켜고 가운데 차선으로 들어가며 운도 지지리 나쁘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바람 빠진 타이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베어링이 헐거워졌고, 바퀴 전체가 축에서 벗어나 헛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볼트까지 뚝 부러져나가 차바퀴가 있던 곳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고 말았다. 세 바퀴만 달린 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차는 아무렇게나 굴러갔다. 네 차선을 가로질러 나선형을 그리며, 생금속이 아스팔트 바닥을 득득 긁자 흙먼지 스파크가 일었다. 폭스바겐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죽음의 무도를 추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우웅 울리는 정적만 있었다. 계속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이 주변의 흐릿한 풍경 속에 어지럽게 펼쳐졌다.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마치 어떤 기적적인 완충제에 막혀 날 피한 듯했다. 내게는 통제력을 잃는 것보다, 현대 생활의 밀어닥치는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무 준비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불자들과 중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쁜 죽음'이라 표현한 바로 그것 말이다. 현대에 들어 나쁜 죽음이란, 차체가 끔찍하게 찌그러지며 사람의 팔다리가 산산이 떨어져 나간 형상을 띤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지도 말할 수 없다. 하던 일은 엉망진창이 된다. 고인이 어떻게 장 례를 치르길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p. 307). 내가 굴러가며 두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핸들을 꽉 잡고 있어도, 마음은 뚝 떨어진 저편에 가 있었다. 처음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월광 소나타」가 연주되고,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차가 빙글 도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나쁜 죽음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시체와 그 시체에 집착하는 가족들과 함께 4년을 보낸 덕분에 그 순간이 초월적 경험이 되었다.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고, 격렬한 타격을 받아들이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격렬한 타격은 결코 오지 않았다. 고속도로 경계를 표시하는 쓰레기 언덕에 차가 박혔다. 교통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똑바로 앉아 생생하게 마주 보는 동안, 차들과 대형 트럭들이 아찔한 속도로 쌩하고 지나갔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아니면 여러 대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어지러운 여행을 하는 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치지 않았다. 전에는 내 몸이 산산조각 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혹시 산산조각 날까 하는 나의 두려움은 행여 통제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여기에 궁극의 통제력 상실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내던져졌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p. 308).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거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지만, 얼마나 빨리 다른 문화적 편견들, 이를테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가 최근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죽음이 그 진실을 드러낼 적기이다. 불자들은 말한다. 생각들은 뇌에 맺힌 물방울들과 같다고. 같은 생각을 계속 강화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의식 속에 새로운 물길이 뚫린다. 마치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산의 한쪽 면이 침식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세속적 지혜를 과학자들이 확인해준다. 우리의 뉴런은 항상 기존의 연결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당신이 설령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더라도, 그 특별한 길은 돌덩어리처럼 굳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마음의 회로를 만들 책임이 있다. 나는 하와이의 한 쇼핑몰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를 보고 충격 받은 아이로 살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 죽음에 사로잡힌 삶에 항복하거나, 삼나무 숲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보 직전인 여자가 되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도 아니었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정면 대결함으로써 나는 뇌의 회로를 조지프 캠벨이 "더욱 대담하고 깨끗하고 넓고 충만한 인생"이라 부른 것 쪽으로(p. 324) 바꾸어놓은 것이다(p. 325). 디테일에서는 이처럼 한국의 장례 풍습과 다른 바가 있지만 저자의 지론은 한 마디로 '죽음은 감춰야 할 일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 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기존 장의사에 의해 우리는 "죽음과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사람들은 말한다. 돼지에게 입술연지를 발라놓아도 여전히 돼지는 돼지라고. 시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신에 입술연지를 바르고서 시신 분장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신 화장, 즉 시신 꾸미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희생하고 예쁘게 꾸며서 살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내보이는 것이다. 유가족도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길 원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아예 안 보는 가족들도 있다. 참관은 삶과 죽음 중 어디까지나 삶이 중요하다고 보는 관행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에 이런 관행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시신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지, 산 자를 위한 '구경거리'가 아닌 것이다(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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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3】 장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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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누가복음 6:38) 미국의 문화는 팁을 주는 문화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호텔에 머문 후 어느 정도의 팁을 줍니다. 팁을 받은 자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리더는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준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받기보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직장에서 월급 주고, 직장에서의 활동 중에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되나 나를 위해 누군가가 시간내어 섬겨주면 팁을 주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모든 면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운전하는 운전사가 교회 행사 외에 외부로 차량 운행 할 때 어느 정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위해 일을 시킨 후에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팁을 받으면 더 열심히 기쁘게 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운전해 준다든지, 어떤 일을 해줄 때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바라보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나 팁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는 자가 승리하고 복 받습니다. 받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주는 자는 지혜자입니다. 주는 것은 사랑과 섬김의 실천입니다. 주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신과 남을 위해 유익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받으면 기억하게 됩니다. 돈 버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팁을 주는 것도 선한 일에 쓰여지는 재물입니다. 팁을 받으면 신나게 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고 나서 잊어야 합니다. 주는 것은 선행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시킨 후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삶의 매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받기만 합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 위해 돈을 쓰고 남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생 주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에게 유산을 미리 주지 말고,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다가 남으면 자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미리 주면 받은 후에 마음이 변해 부모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혜롭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삶의 처세술입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팁을 주면서 사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리더는 팁을 주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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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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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 DMN(diaspora Mongolian network)의 시작 DMN은 2000년도에 한국에서 몽골인 사역을 담당하던 사역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몽골인 모임은 전국에 100여 곳이 되었다. 대부분이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몽골인 모임이었다. 구정과 추석 명절에 몽골인 모임은 연합으로 수련회를 하였다. 2박 3일 동안 집회를 가지며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사역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수련회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몽골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선교단체 이름을 DMN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DMN의 비젼은 "흩어진 몽골족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운다."였다. 당시에 한국에는 많은 이주민들과 이들을 위한 선교단체가 있었지만 이주민들을 디아스포라선교의 관점으로 선교하게 하신 것은 몽골교회에 허락하신 크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DMN은 초기부터 선교의 대상을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으로 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 내몽골과 브리야트 및 중앙 아시아에 있는 몽골인, 일본, 호주, 미국, 유럽에 있는 몽골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하고 선교훈련도 했다. 몽골교회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와 다른 많은 교재들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도움은 한국교회나 사회 기관에서 해결하게 하고 DMN은 오직 전도와 일꾼을 세워서 파송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모든 교회에서는 거듭나고 헌신된 목회자나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결국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30여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단기 선교사로 일본, 호주, 내몽골, 터어키, 미국, 유럽, 중앙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DMN을 세워주시고 귀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선교단체들은 DMN의 비젼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DMN이 이주민선교를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선교, 그리고 현대의 선교까지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이해하면 선교의 큰 흐름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몽골선교를 하는 DMN에게 허락하신 것을 몽골교회들은 감사하고, 더욱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선교가 되기 위해서 더욱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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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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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 하버드대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어느 날 그는 찌르는 듯한 두통으로 아침을 맞는다. 일상적 활동을 하려 하지만 옷을 입기도, 목욕을 하기도, 전화를 걸기도 어렵다. 찾아온 건 중증 뇌출혈.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진행 과정을 꼼꼼히 관찰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대수술을 받고 8년간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친다. 이 책은 그가 뇌과학자로서 뇌질환을 겪으며 자신이 느낀 것, 경험한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담백하게 써내려간 기록이다.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지닌 힘을 역설한 그의 이야기는 TED 무대에 소개되어 500만 조회수 인기 강의가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되어 환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그의 이야기는 ‘뇌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기록물’이자 ‘무너짐과 일어섬’을 겪은 한 사람의 투쟁기다. 우리가 알아야 할 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실화로,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교보문고. 뇌와 뇌졸증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다. 뇌에 대한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첫날, 내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부위에서 빠른 차도를 보였다. 이후 회복까지는 몇 년이 걸렸지만, 일부 뇌 부위는 말짱해서 현재 순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뇌졸중 전후의 가장 큰 변화라면 머릿속에 인상적인 침묵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예전처럼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도 막혀버렸다. 그 대신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순간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경험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p. 66). 넷째 날까지도 뇌가 가급적이면 자극을 피하려 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렇다고 우울했다는 뜻은 아니다. 뇌가 감각의 과부하에 걸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p. 82)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뇌라고 판단했다. 불행히도 뇌졸중 환자들은 대부분 원하는 만큼 잠을 푹 잘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내 경우 수면이야말로 뇌가 새로운 자극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의 뇌는 물리적으로 손상된 상태여서 감각계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운 게 분명했다. 방금 경험한 일을 이해하려면 뇌가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수면은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파일을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사무실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조직하고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p. 83). 의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뇌졸중이 일어나고 6개월 안에 능력을 되찾지 못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 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외부 자극을 기반으로 세포의 연결 구조를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런 뇌의 '가소성'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나는 뇌가 꼬마들이 여럿 뛰어노는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여러분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놀이터를 보면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정글짐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이들도 보인다. 모래로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뇌의 서로 다른 세포 집단처럼 말이다. 정글짐을 없앤다고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섞여 또 다른 놀이를 계속한다. 뉴런도 마찬가지다.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뉴런의 기능을 지우면, 이 세포들은 자극이 없어서 죽거나 다른 할 일을 찾는다.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은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 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뇌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 필(p. 108)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의 에너지는 수면으로 채워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자극이 감각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의 입자들이 망막 세포를 자극하고, 음파가 고막을 혼란스럽게 때려서 금세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뉴런들은 뇌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금방 놓쳐버리곤 했다. 자극은 정보를 처리할 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나의 뇌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소음으로 들리는 불쾌한 감각 자극에서 멀어져야 했다. 뇌졸중을 겪은 후 여러 해 동안 뇌의 수면 욕구를 무시할 때마다 감각계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정신적 • 육체적 탈진이 이어졌다. 내가 만약 일반 재활 센터에 머물면서 리탈린(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처방약)을 복용하고, 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 재활 프로그램을 따라야 했다면, 아마 정신이 더 멍해져서 회복하려는 노력을 덜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전국의 재활 시설에서 다양한 방법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수면, 수면, 수면의 효과를 열렬히 옹호한다. 더군다나 학습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어야 한다(p. 109).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 이후로 계단을 깡충깡충 뛰면서 오르는 상상을 매일 했던 것이다. 예전에 마음껏 계단을 오르내리던 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 장면을 계속 되돌려보며, 해당 회로를 깨어 있게 했다. 그 때문에 결국 내 몸과 마음 이 서로 협력해서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p. 127). 뇌출혈이 안겨준 가장 큰 축복은 순수함과 내적 기쁨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를 회복하고 강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뇌졸중 덕분에 나는 다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절박한 위험이 없어서 세상을 안전하게 느꼈고, 마치 내 집 뒤뜰인 것처럼 걸었다. 오른쪽 뇌가 움직일 때 우리는 인류의 가능성이라는 직물을 이루고 있는 색실들이다. 삶은 축복이며, 우리 모두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내 우뇌의 성격은 모험심이 강하고, 풍요로움을 찬양하며, 사교에 능하다. 비언어적 소통에 탁월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 감정이입에 능숙하다. 또한 감정의 몰입이 일어나 우주와 하나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종교적 마음이 머무는 곳도 우뇌에 있다. 덕분에 나는 현명한 관찰자가 된다. 직관과 고차원적 의식이 여기서 생긴(p. 141)다. 오른쪽 뇌는 항상 현재형이며 시간 감각이 없다. 우뇌의 타고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낡은 정보가 담긴 파일을 새롭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나는 유년기 내내 호박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우뇌 덕분에 기꺼이 호박에 재도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호박을 아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뇌로 판단을 내린 후에는 파일 업데이트를 위해 선뜻 오른쪽으로(우뇌의 의식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을 한번 내리고 나면 그 결정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깨닫기로 지배욕이 강한 좌뇌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제한적인 두개골 공간을 개방적인 우뇌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오른쪽 뇌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틀에서 벗어나 사고한다. 틀을 만든 장본인인 좌뇌가 세운 규칙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 혼란이 창의적 과정의 첫 단계임을 잘 안다. 근운동 감각이 뛰어나고 기민하며, 육체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사랑한다. 내 세포들이 직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보내는 미묘한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며, 촉감과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 우뇌는 자유를 찬양하며, 과거에 발목이 잡히거나 미래에 일어날 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삶과 세포들의 건강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 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의 일원인 당신의 몸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에 관심을 갖는다(p. 142). 내가 회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왼쪽 뇌의 부위가 있다. 비열하게 굴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좌뇌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치솟고 이마가 부어올라 두통이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동으로 머릿속에 재생하는 오래된 감정 회로 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았다(p. 146). 회복 과정 중에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비꼬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내 성격을 담당하는 부위가 상처받은 왼쪽 뇌의 자아 중추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부위는 나를 지독한 패배자로 만들고, 원한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복수를 꾸미게 한다.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 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p. 147). 집중하는 인간의 뇌보다 더 막강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언어를 통해 우리의 왼쪽 뇌는 몸의 치료와 회복을 지시(혹은 방해)할 수 있다. 언어와 자아를 담당하는 왼쪽 뇌는 50조 개의 분자적 지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응원단장과도 같다. 내가 세포들에게 주기적으로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보내면, 세포들은 치료 환경을 강화하는 진동을 몸 속에서 만들어낸다. 세포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중증 정신병의 모든 징후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포가 어떤 세포와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만큼 주고받는가가 정신질환 발병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뇌 연구는 정신병의 바탕이 되는 신경 회로의 이해에(p. 161)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효과적으로 돌보도록 도와줄 방법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치료 방법에는 처방약을 통해 뇌세포를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법, 심리 치료를 통해 인지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가 볼 때 의료적 치료의 목적은 공통된 현실을 공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불행히도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60퍼센트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 방법을 찾지 않고 약물이나 음주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약이나 술을 찾는 경우에도 현실 공유 능력을 해치고, 건강에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p. 162).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 몸에 차오르는 감정에 대한 반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지적 사고를 모니터하(p. 176)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 감정을 지각할 때 내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화학 물질이 나를 사로잡 다가 풀어주는 데 9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각성이 내가 뇌졸중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분노, 질투, 좌절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복잡한 회로가 적극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친숙하고 마치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된 듯 느껴지는 데에 있다. 습관적으로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것만큼이나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행복은 오른쪽 뇌의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이다. 따라서 이 회로는 항상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언제든 여기에 접속할 수 있다. 반면 분노 회로는 항상 돌아가지 않으며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이 생리적 반응이 혈류에서 빠져나가면 곧바로 다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로 다른 회로가 몸 안에서 가동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파악하고 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이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다.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치면 소름 끼칠 만큼 불편하다. 생리적으로 이런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회로에 정기적으로 접속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p. 177).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 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공포 • 분노 반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으며, 걸핏하면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회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만 한다. 유쾌한 기분을 좋아하므로 나의 기쁨에 응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앞서 말했듯이 신체의 고통은 우리 몸 어딘가에 조직이 손상되었음을 뇌에 알려줘서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리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의 감정 회로에 접속하지 않고도 신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몹시 아플 때 얼마나 용감 해지는지 잘 안다. 부모들은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 회로에 시달리지만, 아이들은 부모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고도 꿋꿋하게 병에 적응한다. 고통을 몸으로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인지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들은 자신의 병을 견디는 것보다 부모가 슬퍼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아픈 사람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방문할 때는 여러분이 어떤 회로를 자극하는지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의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p. 178). 옮긴이의 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 이 작은 책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에 걸렸다가 8년의 회복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되찾은 사람이 쓴 기록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 중에는 뇌졸중에 걸린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거나 앞으로 닥칠지 모를 뇌졸중의 위험에 대비해 정보를 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뇌졸중을 겪고 이를 극복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니 만큼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 뇌졸중 증상은 어떤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치료해야 하는지,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등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는 못했을 터, 이 책의 저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신경해부학을 전공한 뇌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정신분열증을 앓는 오빠를 보(p. 208)며 자라 뇌의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전미정신질환자협회의 입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뇌 기증 문화를 선도해왔다. 이렇듯 누구보다 뇌질환에 관심이 많고 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뇌가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뇌졸중 발병으로 인해 인 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복잡한 신경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망가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해체되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뇌질환의 사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를 소개하는 뇌과학 책들은 그동안 국내에도 꽤 소개되었지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사례를 소개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유아기로 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발달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했다는 점이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숫자 세는 법, 색깔 보는 법 등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그녀가 고통스럽게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신경 차원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질 볼트 테일러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다.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일어나 언어 능력은 물론 기억 능력조차 잃었다. 순차적 사고도 불가능해져서 경험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순간이 고립된 채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뇌(p. 209)가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평온하고 차분한 의식이 밀려들면서 열반과 같은 희열에 빠져들었다. 한 마디로 좌뇌의 '행하는' 의식이 밀려나고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이 부각된 것이다. 회복 과정 중에 저자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회복의 필요성을 끊임 없이 확인하는 일이었다. 세상과의 끈이 하나둘 풀리면서 거대한 희열과 영원한 우주의 흐름을 느끼자 그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평화는 유혹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누구든 언제라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좌뇌의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우뇌의 의식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이었고, 이 책의 원제가 '뇌졸중이 내게 안겨준 통찰My Stroke of Insight' 인 이유다. 이렇듯 뇌졸중은 그녀에게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 역시 부정적인 회로를 잠재우고 기쁨의 회로에 접속하며 순간순간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뇌의 신비를 소개 하는 책은 많지만 뇌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뇌과학 책은 흔치 않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두 개의 뇌를 평화롭게 조화시키는 방법, 이것이 바로 마음의 건강을 누리는 지혜이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이다. 이렇게 멋진 책을 번역할 기회를 준 윌북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장호연(p.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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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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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1】 우리 몸에는 기생충이 산다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서민의 기생충 열전』. 기생충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인 서민교수가 네이버캐스트의 글을 바탕으로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기생충에 대해 풀어낸 책이다. 우리 몸속에 들어와 살 수 있는 기생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부터 나쁜 기생충, 이로움을 주는 기생충 등을 살펴본다.이 책은 사람에게 감염되어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기생충이 어떻게 자라고, 어디로 이동하며, 어떤 경로로 감염되고, 어떤 증상을 일으키는지를 설명하고, 감염 여부는 어떻게 알아내고, 치료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한 기생충들에 얽힌 신비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 책은 기생충 예방부터 감염 증상, 치료 방법, 위험성은 물론이고, 기생충의 역사부터 기생충으로 고칠 수 있는 병까지 독자들이 몰랐던 부분을 흥미롭게 살펴본다. 독자들이 기생충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고 기생충의 다양한 특성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교보문고. 기생충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아 흥미로웠다. 앞으로 기생충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돼지의 억울함을 풀어 준 회충 알 모든 동물은 자신만의 고유한 회충을 갖는다. 사람은 사람회(회충), 개는 개회충, 고래는 고래회충 이런 식인데, 사람이 고래회충 알을(p. 34) 먹으면 그 알이 유충으로 자라 위를 물어뜯을지언정 절대 성충이 될 수 없다. 사람에서 성충이 되어 알을 낳는 건 오로지 회충 알뿐,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예외가 있다. 크럼프턴 박사에 따르면 "회충의 유행지에서 회충과 돼지 회층의 교차 감염이 일어나고 있" 단다. 다시 말해서 돼지회충 알을 먹으면 사람 몸에서 성충으로 자라 알을 낳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돼지회충의 알은 회충 알과 형태학적으로 구별이 불가능하고, DNA 서열도 99퍼센트 일치한다. 이쯤 되면 이 두 기생충의 조상이 같다는 생각을 해 봄직하다. 실제로 기생충학계에서는 회충과 돼지회충이 원래 한 종이었다가 나중에 둘로 분리됐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숙주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의 회충이 돼지로 간 것일까, 아니면 돼지회충이 사람에게 간 것일까? 사람들은 원래 나쁜 건 다 돼지 탓을 하기 마련, 클릭스란 사람이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했다. "원래 돼지회충이 있었는데, 신석기시대인가 구석기시대인가 사람이 돼지를 기르게 되면서 돼지회충이 사람에게 전파된 거다. 멧돼지를 봐. 전부 돼지회충에 걸려 있잖아? 이건 돼지를 사육하기 전부터 돼지회충이 있었다는 얘기다."(p. 35) 인간이 돼지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대략 9천 년 전이라고 한다. 중동에서 멧돼지를 잡아다 집에서 키운 게 그 효시이며, 그 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2만 5천 년 전 유적을 보면 사람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러 다니는 벽화가 있으니, 그 이전에는 돼지를 기르지 않았던 게 확실해 보인다. 만일 돼지가 회충의 기원이 되는 숙주라면, 그래서 돼지를 기르면서 돼지회충이 사람에게 넘어온 것이라면, 9천 년 이전의 화석에선 회충 알이 발견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클릭스에게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프랑스의 아르시쉬 르퀴르라는 지역에서 오래된 동굴이 발견됐는데, 거기서 회충의 알이 발견됐다. 벽화 몇 점이 남아 있는 그 동굴은 대략 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고, 돼지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사람이 원래 회충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돼지를 키우게 됐다. 먹성이 좋은 그 돼지는 사람의 변을 먹었을 테고, 사람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돼지의 장에서 회충 알이 부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회충과 돼지회충은 각각 다른 종으로 독립했다. 돼지를 기르지 않았던 아프리카 누비아 유적의 미라에서도 회충 알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돼지회충을 전파한 이가 인간이었음을 말해 준 다. 고기생충학이 아니었다면 돼지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뻔했다(p. 36). 요충의 진단과 치료 항문 주위에 알을 낳는 특성 때문에 요충의 진단은 대변검사로는 안 된다. 물론 마릿수가 많으면 대변으로도 요충 알이 나올 수 있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항문 주위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뗀 뒤 알이 묻었는지를 검사해야 한다. 또한 아이의 팬티를 검사하던 어머니에 의해 엄마 요충이 발견됨으로써 진단되는 경우도 흔하다. 한 마리의 요충이 팬티 안에 있다면 아이의 몸속에는 보다 많은 요충이 있을 수 있으니, 벌레를 죽였다고 안심하지 말고 치료를 받는 게 좋다. 요충은 회충약으로 잘 치료되나, 여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로 약을 한 번 먹고 나서 20일 뒤에 다시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 사람 몸속에 있는 요충은 그 발육 시기가 다 다르기 마련이어서 다 자란 어른부터 알에서 깨어난 지 10일 된 어린 요충, 20일 된 어린 요충 등등이 섞여 있다. 그런데 어른 요충들은 회충약에 아주 약해 금방 죽는 반면 어린 요충들은 약이 잘 듣지 않는다. 요충은 대개 알에서 깬 지 한 달 내외면 어른이 되니, 10일 된 어린 요충이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회충약을 먹이면 몸에 있는 요충을 거의 다 죽일 수가 있다. 두 번째, 감염된 사람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 또는 유치원 아이들을 전부 다 같이 치료해야 한다는 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요충에 걸린(p. 73) 아이가 하나 있다는 건 그 엄마, 아빠도 요층이 있다는 얘기가 되고, 유치원에서도 애 하나만 치료해 봤자 다른 애들의 몸에 있는 요층이 그 아이에게 다시 옮겨 오는 건 시간문제인지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붙잡아다 회충약을 먹이는 게 좋다. 셋째, 위생 관리와 내부 청소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한 의사가 내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가족 모두한테서 요충이 나와서 회충약을 썼어요. 20일 간격으로 두 번씩, 세 사이클을 돌렸는데도 치료가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선생님은 요충이 약제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아직까지 요충이 회충약에 안 들은 경우는 없다. 그보다는 집안 어딘가에 요충의 감염원이 있어서 계속적으로 재감염이 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밥을 먹기 전에는 손을 꼭 씻는 습관을 갖도록 하고, 요충 알은 열에 아주 취약하니 아이의 손이 닿은 곳이라면 어디든 증기 청소를 하는 게 좋다. 아이가 덮고 자던 이불까지 깨끗이 소독을 하고 나야 비로소 요충의 공포로부터 안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주변에 엉덩이를 자주 긁는 사람이 있다면 되도록 멀리하자(p. 74). 편충, 크론씨병의 구세주 학자들은 생각했다. 자가면역질환의 증가가 기생충이 없어져서 생긴 게 맞다면, 기생충을 다시 감염시켜 면역계를 달래 주면 좋아질 게 아닌가? 학자들이 원한 건 이런 기생충이었다. 크기가 어느 정도 돼서 면역계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면서(p. 100)기생중 자체에 의한 병변이 적은 놈.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편충!" 하지만 편충이 사람 몸에서 흡혈을 했던 전력이 문제가 됐다. 게다가 수명도 3년이면 너무 길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된 것이 돼지편충이었다. 사람편충과 돼지편충은 형태학적으로 거의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가까운 친척 관계인데, 사람편충과 달리 돼지편충은 흡혈도 거의 안하고 두세 달 동안 조용히 있다가 나가 버리는 쿨함도 가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크론씨병을 앓는 환자들을 모집했고, 그들에게 3주마다 돼지편충 알을 2천5백 개씩 먹였다.(양으로 따지면 물 한 방을 정도밖에 안 된다). 결과는 놀라웠다. 4개월을 그렇게 하자 75퍼센트가 증상이 좋아졌고, 65퍼센트는 내시경으로 완치 판정을 받을 정도였다. 8개월이 됐을 때 완치 판정을 받은 이는 72퍼센트였다. 이 결과에 학자들은 크게 고무됐고, 그 후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크론씨병뿐 아니라 다발성 경화증 등 다른 질환에도 돼지편충 요법을 시도 중인데, 현재까지 결과는 긍정적이며, 아직까지 돼지편충으로 인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대적으로 환자들에게 적용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4개월 정도 이 치료를 받는 데 400만 원의 돈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p. 101) 돼지편충 알을 만들 수 있다면 이 비용이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치료법을 쓰고 난 뒤 재발하는 경우가 없는지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확실한 건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크론씨병에 있어서 돼지편층 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 연구가 좀 더 진행된다면 최소한 크론씨병에 있어서는 편충 알이 복음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체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늘 욕만 먹던 편충, 그날이 오면 편충도 비로소 웃을 수 있으리라(p. 102). 와포자충의 치료와 예방 기생충의 좋은 점은 약이 아주 잘 듣는다는 것. 하지만 이 와포자충은 예외라, 아직까지 와포자충을 치료하는 특효약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FDA가 효과가 있다고 인정한 건 니타족사니드가 유일(p. 118)한데, 이것도 감염 기간을 줄여 주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와포자충의 치료는 환자가 탈수에 빠지지 않도록 수분을 공급하고 전해질 균형을 맞춰 주면서 환자의 면역이 작동해 와포자충을 격퇴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1995년 백혈병 치료를 받던 어린아이는 와포자충으로 인해 물설사를 하자 할 수 없이 항암 치료를 중단했고, 그로부터 2주쯤 뒤 설사가 완전히 멎은 후 다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야 와포자충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상기하자. 외국에 나가면, 그게 설령 스웨덴이나 미국이라 할지라도, 물을 끓여 먹거나 메이커 있는 생수를 사 먹길 권한다. 좋은 물을 먹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체류기간, 혹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물설사를 쭉쭉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것 같아서다(p.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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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1】 우리 몸에는 기생충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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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0】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다
- 《책이 좀 많습니다》는 내 옆에 있고 우리 동네 사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이야기다. 넓고 좋은 아파트를 책들에게 내주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 사는 사람, 도깨비 책이나 고양이 책 등 어느 한 분야만 모으는 책 수집가, 유명인 못지않은 큰 서재를 가진 사람부터 책 없이 못 사는 ‘책 바보’까지. 수의사, 번역가, 대학생, 회사원, 교사, 백수 등 하는 일도 다 다르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책 읽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인 애서가들이 꼭꼭 숨겨놓은 자기만의 서재를 이상북지기 윤성근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글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이야기’를 덧붙였다.-교보문고. 헌책방을 통해 자기만의 글쓰기를 하는 이 작가의 책은 흥미롭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다 자기가 살 구석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정말 사랑하니까 한시라도 책하고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책이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p. 16)는 연인 같다고 그이는 말한다. 허섭 씨가 책 읽는 방법은 유별나다. 어떤 책에 한번 관심이 생기면 거기에 관련한 책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사 모아서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읽자는 생각이 들면 월탄 박종화는 물론이고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이 쓴 것까지 다 사서 읽는다. 심지어 일본 사람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그린 60권짜리 만화책 《전략 삼국지》 세트도 갖춰 읽었다. 이렇게 폭넓게 읽으면 책에서 얻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알고 싶은 분야의 책 몇 권만 읽고서 쉽게 단정하고, 자기 지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 좁게 쌓아 올린 지식은 높아질수록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무너진다(p. 17). 책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은 책장도 재미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책들, 기기묘묘한 미스터리들이 가득한 파란씩 책장을 보고 있으면 아무도 없는 밤중에 그 책들이 사람처럼 걸어 나와 자기들끼리 서로 문제를 내고 풀고 하면서 장난을 칠 것만 같은 우스운 생각이 든다. 책장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글자만 빼곡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때로는 웃고 울게 하면서 내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힘을 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풀어내지 못할 문제가 무엇이 있을까?(p. 48).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집에 있던 책을 많이 정리했다. 전에 보던 고전 문학과 한문학, 역사 쪽 책을 정리하니 5000권 가까이 되던 책이 반 정도로 줄었다.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홀가분했다. “한 사람이 갖고 있기에는 2000~-3000권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더 많으면 솔직히 관리도 안 되고, 거의 수집 자체가 목적이 돼버리거든요.” 최성희 씨는 말을 마칠 때마다 허허 하고 웃으면서 이제 책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저도 대학 다닐 때는 지독한 책 중독이었거든요. 청계천을 비롯해서 서울 시내에 안 가본 헌책방이 없을 정도로 늘 돌아다녔고요, 종로5가 도매 상가에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샀어요. 얼마나 다녔는지 거기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책을 많이 사면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오히려 걱정하는 말을 할 정도였죠.” 너무 많은 책을 갖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무슨 책을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이미 산 책을 또 사는 경우도 많았는데, 몇천 권씩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래서 욕심을 좀 덜기로 했다. 책은 결국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갖춰야 한다는 게 최성희(p. 119)씨 생각이다. 오랫동안 책을 껴안고 살면서 2000~3000권 정도가 적당 하다고 느꼈고, 나머지는 큰마음을 먹고 얼마 전에 처분했다(p. 120).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본 책 얘기를 꺼낸다.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 전집'은 아직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한 권 한 권 내용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p. 124)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많이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최성희 씨에게 공부라는 것은 삶의 리듬이나 마찬가지다. 등산하 는 사람이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말하듯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삶을 위한 공부인 셈이다. 멋지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는 공부가 아니요. 공부를 마친 다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공부는 늘 그렇게 하는 것이고, 공부해서 얻는 것은 결국 삶을 이해하는 겸손한 직관이다(p. 125). 이종민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영도다. 그중에서도 《드래곤 라자》를 첫손으로 꼽는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금세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종민 씨는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으면 2년을 기다린 다음 읽는다. 자기만의 기준이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드래곤 라자》를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는 알 수 없던 깊은 내용과 철학에 크게 감탄했다. 고등학생이 돼 또 읽은 《드래곤 라자》는 더 큰 충격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 책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자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읽어도 자꾸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듯한 책이 바로 이영도 의 《드래곤 라자》다(p. 139). 세상에 책은 많다. 죽을 때까지 읽어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독자들은 이제 무슨 책을 읽을지보다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책을 읽는 일은 책을 쓰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 대형 서점에 가면 마치 사막 에 온 것처럼 책이 끝도 없이 널려 있어 숨이 막힌다. 어떤 사람은 이(p. 140)런 풍경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더 책을 안 읽게 된다. 그럴 때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왜,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p. 141). 말 나은 김에 여행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정무송 씨는 여행하고 책을 거의 같은 의미로 보고 있는 듯하다. 여행을 할 때는 늘 책을 갖고 가고, 여행 가서 책을 읽지 않으면 여행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행 갈 때는 주로 철학 책이나 고전을 가져가요. 니체나 도스토 옙스키, 동양 고전도 좋아요. 그런 책들을 여행지에서 읽으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두껍지 않은 책 몇 권을 배낭에 넣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책을 펼쳐서 읽으면 이해가 잘돼요.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히말라야 어느 곳을 여행하다가 읽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서울 같은 도시에서, 깔끔하게 정돈된 북카페에서 읽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꼭 수준 높고 어려운 책일 필요는 없어요.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데,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안 나요. 카트만두에 갔을 때 어느 허름한 여행자 숙소에 묵었어요. 거기 로비에 책이 몇 권 보이는데, 한글로 된 책이 한 권 있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방으로 가져와서 읽어보니 조선족 작가가 쓴 추리소설 비슷한 거예요. 솔직히 내용은 진짜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별로 좋지 않았지만, 바로 내가 있는 곳, 타멜 거리의 분위기하고 소설 내용이 미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게 바로 여행하면서 책 읽는 재미죠”(p. 180).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깊게 파는 것보다 얕고 넓게 아는 걸 좋아해요. 안 그래도 알고 싶은 게 많은데, 깊이 있게 들어가게 되면 다른 것들을 놓치기가 쉽거든요.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고 다른 쪽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프로가 되지 않을 거라면 관심 있는 분야를 되도록 폭넓게 보는 게 좋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세상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넓고 다양하거든요. 살아 있는 동안 그 모든 걸 이해하는 건 둘째 치고, 경험해보는 것도 불가능할 거예요. 그러니까 얕은 지식이라도 되도록 넓게 펴서 알고 싶은 거죠”(p. 182). 좋아하는 책만 가려서 읽는다고 하지만 책장에는 꽤 다양한 책들이 있다. 이런 책을 다 어떻게 알고 사서 읽는 걸까? 사람들이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매일 쏟아져 나오다시피 하는 새 책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골라 읽어야 할까? 임 씨가 알려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좋아하면 일단 만화를 보는 거죠. 저도 어릴 때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집에 《캔디 캔디》가 있었는데, 그 책은 어머니도 좋아하셔서 둘이 같이 봤어요. 어머니는 제가 만화책 보는 걸 말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함께 봤죠. 심지어 《드래곤 볼》 해적판도 구해서 함께 봤을 정도니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명랑 소설 같은 걸 읽다가 조금씩 무게가 있는 책들로 발전한 거예요. 무엇보다 어릴 때 가정 환경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동화책을 보고 있으면 책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거든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책이랑 친해지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도 책 읽기가 쉽지 않죠. 무엇이든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하면 그 책 본문에 나온 책이라든지, 참고 문헌이나 주석 같은 데 또 다른 책이 소개돼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책을 찾아서 읽으면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쉽게 알 수 있어요."(p. 213).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에요. 읽다보면 힘들기도 하고요. 한 번에 50쪽에서 100쪽 정도 읽으면 힘이 빠져요. 그럴 때는 쉬었다 읽기도 하고, 읽은 내용을 잊어버려서 앞쪽을 다시 보기도 해요. 그렇게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린데, 그래서 천천히 곱씹으며 볼 수 있는 유럽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해요.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유럽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는 사람 중에 시나리오를 공부하다가 사정이 생겨 그만두고 회사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미셸 우엘벡 책을 빌려줬는데요, 읽지 않더라고요. 재미가 없대요. 일본 추리소설은 만날 때마다 매번 바꿔 들고 다니면서 말이죠······." 책을 천천히 읽어 호흡이 느린 단점을 보완하려고 선택한 책 읽기 방법은 동시에 여러 권 읽기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잡지나 신문 따위도 중간에 섞어서 그때그때 돌려 읽으면 힘을 빼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다고 한다(p. 240).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 책을 서너 권씩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릴 때는 집중력이 높아서 한 권 잡으면 끝까지 한번에 끝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 이 책 읽다가 힘들면 다른 책 좀 읽고,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읽으면 어렵고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애써 붙들고 있는 것보다 힘도 덜 들고 좋아요. 책을 여러 권 읽을 때도 있고, 소설과 잡지를 함께 보거나 소설을 읽다가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있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스스로 알맞게 호흡을 조절하는 훈련이 돼요."(p. 241).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읽는데, 그건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볼 때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몸에 해로우니까요.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많이 읽어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걸려서 보게 되는 것도 책 읽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책들이 자기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p.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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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0】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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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9】 세상살이는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
- 굵직한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기사들로 ‘바이라인’을 각인시킨 〈시사IN〉 기자 장일호의 첫 책을 선보인다. “통째로 한 편의 시 같다”, “이것이 뉴스스토리다”라는 찬사와 함께 오래도록 회자되는 그의 기사들은 유통기한이 없다. 현실에 발 딛고 선 문장들은 단단함이 지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문화팀, 사회팀, 정치팀을 두루 거쳐 오며 그가 가장 오래 머문 현장은 세상에서 밀려난 장소들이었으며, 가장 마음을 기울인 사람들은 세상이 눈감은 이들이었다. 그는 기자의 일이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하는 일이라며 한탄하지만, 그의 손에 단단히 쥐인 물음표는 서늘한 현실을 바닥까지 파헤쳐 기어이 한 줌의 온기를 품은 마침표를 건져 올리곤 했다. 장일호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슬픔”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마침표이다.-교보문고. 에세이는 저자가 많이 노출되는 장르의 글쓰기다.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갓 태어난 조카를 안고 가난의 대물림을 떠올리며 운 것은 큰 공감을 일으켰다. 흥미있게 읽었다.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p. 54). "누나, 나는 잘해 보려고 했던 일인데 매번 이런 식이야."(p. 73). 나는 그 말에 아직도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세상은 모르는 그 애의 최선을 나는 안다. 다만 공업고등 학교를 나와 비정규 노동의 틈새를 전전해 온 30대 중반의 남성은 작은 ‘성공’조차 쉽지 않았을 뿐이다. ”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할 때 대단히 많은 벽에 부딪친다“는 점은 가난이 가진 질긴 속성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드물게 장벽이 없는 공간이었다. 가끔 이긴 하지만 성취감을 줬다. 청소년기에는 게임이 그 역할을 했었다. 나는 내 동생의 노동을 딛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동생 삶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글만 바쁘게 쓰고 있다는 자괴가 몰려왔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2012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주변이 모두 당혹해할 정도로 오래 통곡했다. 2.9kg의 조그만 아이를 처음 안고서 터뜨린 울음을 한동안 나조차 해(p. 74)석하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가 살아갈 많은 날이 안쓰러웠다. 앞으로 '당할' 일들이 떠올라 고통스러웠고, 무서웠고, 서러웠다.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경험해야 할 모든 일들이 먼저 경험한 내게 무게로 다가와 나를 짓눌렀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 부모의 가난이었다. 나는 우리의 가난을 늘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그건 사실 가난이 삶의 많은 것을 결정하는 대수로운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핏덩이'는 내가 가난 때문에 늘 상처받는 사람이라는 걸 상기시켰다(p. 75). 신앙이 엄마를 버티게 했다는 건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할머니 덕분이었다. 2011년 최저 생계비 취재를 위해 한 달간 서울 달동네에 들어가 살았을 때였다. 바로 옆방인 노부부의 집에서는 자주 나지막한 찬송가가 들려왔다. 얇디얇은 벽을 타고 무람없이 공유되는 소리야말로 가난의 맨얼굴이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한 달간의 취재가 끝나고 짐을 싸던 내게 할머니는 미숫가루 한 사발을 들고 왔다. "아가씨, 교회 다녀?(p. 144)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 대답 대신 나는 물었다.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왜 교회에 다니세요?" 할머니가 지긋이 웃었다. "교회에서는 내가 평생 들어 보지 못했던 예쁜 말만 해 줘." 맥이 풀렸다. 그 할머니도, 어쩌면 엄마도 교회가 아니었다면 삶의 비참을 견딜 수 없었겠구나. 나는 할머니에게 교회에 다니겠다는 약속 대신 "저도 예수를 믿어요"라고 대답했다. 다만 나는 할머니도, 엄마도 아니었기 때문에 삶의 비참을 다르게 견디고 싶었을 뿐이다(p 145). 10년을 일하면 한 달을 유급으로 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연차도 다 소진해 본 적 없었다. 안식월 요건을 채우고도 쓸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일이 좋아서 그랬다. 좋았다기보다 불안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했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좋아한다' 안에 뒤죽박죽(p. 242)담겨 있는 감정이기도 했다. 건강검진 결과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놀라지 않았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안도였다.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다. 그다음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가 떠올랐다. 뇌과학자인 그는 뇌졸증 증상을 경험하고 일시적으로 황홀한 상태에 빠진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암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나는 암 덕분에 내가 앞으로 쓰게 될 글이 넓고 깊어질 가능성을 떠올렸다. '의료화'된 사회의 최전선에서 질병 경험이 한 개인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 암 경험자가 어떤 낙인과 차별을 경험할지 등을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그러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조금은(p. 243)기대되기도 했다(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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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9】 세상살이는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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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6】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인사가 만사다
- 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다 - (잠언 26:10) 어느 단체,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이 중요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는데, 의미는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는 일이 만 가지 일이라는 말로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인사가 잘못되면, 망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사람을 잘 고용해야 합니다. 좋은 인재, 유능하고, 신실하고, 검증받은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잠언 26: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시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잠언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언 13: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전도서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사람을 잘 만나야 되고, 잘 써야 공동체가 성장합니다. 사람 잘못 쓰고 고용하면 공동체, 교회, 회사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교회도 담임목사가 중요하기에 담임목사 청빙을 잘 해야 합니다. 회사도 사람을 잘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 잘못 쓰면 실패하고,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병원도 유능하고 좋은 의사를 고용해야 병원이 잘 되게 됩니다. 어떤 단체에서 사람 구할 때, 인정에 매여 아무나 쉽게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력서가 정확히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하고, 면접을 해서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곳에서 잘했던 자면 다른 곳에 가서 잘할 확률이 큽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게 됩니다. 쉽게 쉽게 사람 구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인내가 있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쉽게 쉽게 직장을 옮겨 다닌 자는 신뢰하기 힘듭니다. 한 곳에서 오래 견뎌본 인내심이 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고용하려는 자가 일했던 과거의 장소에 전화나 다른 방법으로 뒤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평판이 있는지, 소문이 있는지, 일을 어떻게 잘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인간은 정직하지 못하고, 속이는 존재이기에 뒤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철저히 검증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추천서도 중요합니다. 추천하는 자의 인격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추천도 믿을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추천을 받느냐가 중요 합니다. 인정받고, 신뢰받는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의 인격도 중요하나, 가능하면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실력이 있는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가정생활, 가족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정생활 잘하는 자여야 합니다. 과거에 전과, 죄짓고 사고 쳤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고 친 자는 다른 곳에 가서도 사고를 치게 됩니다.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교육 배경도 알아보아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공부했는지, 학위를 제대로 받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학위도 속이는 시대입니다. 진실성이 있는지, 거짓된지 알아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데, 사람 잘못 쓰면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사람 잘 고용하면 공동체가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인재, 천재, 실력있는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성공을 경험한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구하면, 더욱 좋은 현상입니다. 교회도 일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일꾼이 되는가에 따라 교회가 성장하기도 하고, 침체하기도 합니다. 책임감이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인간관계 잘하는 자를 구해야 합니다. 신뢰받는 자여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실력이 없고, 게으르고, 약속 어기고, 변명 잘하는 자를 고용하면 큰일 나고, 문제가 생깁니다. 갈등 일으키고, 싸우기 좋아하고, 교만한 자는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은 시대, 사람은 많은데 실력 있고, 유능하고, 좋은 자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잘하는 자보다 못하는 자, 성공하는 자보다 실패하는 자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은퇴하는 목사는 후임 목사를 잘 구해야 합니다. 인정에 매여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목회에 검증된 자, 평판이 좋고 인격이 뒷받침되고, 어느 사역지에서, 어떤 부서에서 성공을 경험한 자여야 합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사람이 고용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데도 어느 정도 원칙이 있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단체에서 사람이 누구인가가 너무 중요합니다. 훌륭한 인재를 구해야 하는데, 문제해결의 지혜와 능력을 가진 자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있고, 아이디어가 좋은 인재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려 하고, 수용성이 있는 자, 지혜 있는 자를 구해야 합니다. 훌륭한 인재가 내 옆에 있을 정도의 인품과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재를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 인재로 만드는 일에 관심 가지고 투자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 교육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쓰면 좋은 성과를 만들게 됩니다. 인정에 매여 자기의 마음에만 들면, 아무나 고용하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후임자 구할 때, 나보다 더 유능하고 좋은 사람을 써야 합니다. 사람을 잘못 세우면 재앙이 임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 좋은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고 일의 효과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기에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잘 구해야 합니다. 만남의 축복,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인재를 구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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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26】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인사가 만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