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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세상에는 문제를 만드는 자와 해결하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갈등과 고통이 있게 됩니다. 문제를 만드는 자로 쓰임 받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탄은 문제를 만들고 예수님은 해결하십니다. 죄인이 사는 세상이기에 어디에나 문제 만드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사탄의 조정을 받거나 지혜가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이나 환경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잠언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 니라 지혜가 있어야 문제 만드는 자를 리드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설득하고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지혜가 제일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의 기질과 성품을 파악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때로는 온유해야 하나 강해야 합니다. 설득해도 듣지 않고 고집부리면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너무 심하고 강하면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있을 때, 당황하거나 초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자가 문제를 만듭니다.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강한 자 앞에서는 머리 숙이게 됩니다. 리더는 사나워서는 안 되고 때로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미워해서는 안 되나 불쌍히 여기고 냉정하면서 분명하게 나의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상처가 있든지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격의 성숙이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지 못하면 관계가 깨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나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시고 해결하고 처리하십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불쌍한 자이고, 문제 만드는 자를 주님의 심장으로 때로는 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기도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기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이나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 앞에서도 긍정의 마음과 생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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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오만가지 직업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고 관에 모시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한다. 과거에는 가족이 이웃이 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언젠가 나도 죽으면 누군가 내 몸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죽거든 염은 네 손으로 해줘." 실없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실제로 죽은 친구의 시신을 두 번 염해본 후, 다시는 내 손으로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의 시신 앞에서는 아무리 명장이라도 직업정신이나 사명감을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습할 때 나는 냉정한 편이다. 빈틈없이 제대로 예를 갖춰 고인을 보내드리려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눈앞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장례를 이끌어야 할 장례지도사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p. 28) 이를 지켜보는데, 문득 삼성 측에서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궁금해졌다. 의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가가, 큰일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전한 뒤, 어떻게 나를 부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무가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부터 나를 주목해왔고, 회장님이 쓰러진 직후부터 실무적인 검토를 해왔다고 대답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대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평소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잘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내 자식들. 이 아이들의 첫 세상은 아버(p. 156)지인 나였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 아이들이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대해 차고 넘치게 배운다.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에게 삶의 거울과도 같다.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혹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치 척도 같은 존재다. 젊었을 때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수십 년을 죽음과 대면해오면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잘 살기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많다. 생기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살아 있는 데도 생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 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대통령 염장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p. 157).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p. 170). 핑계 없는 무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죽음의 사연을 알고 나면 로봇이 아닌 이상 고인에게 마음이 쓰인다. 장례지도사가 마음이 여리면 쉽게 겁을 먹고, 유족이 울면 따라 울기도 한다. 장례지도사에게 장례식장은 일터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고인을 돈으로 보는 사람은 장례지도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례지도사는 한 인생의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대신 해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몇 건의 장례를 치렀는지, 이것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목표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염장이라 할 수 없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예'는 사라지고 '일'만 좇게 된다. 나는(p. 173)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염습하는 것은 몇 가지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명감이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고 한 달도 하지 못 하는 것이 장례지도사, 염장이의 일이다(p. 174). 염습이 천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염습은 내관들과 여관들의 몫이었다. 한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직접 염습했다. 그래서 그때는 아들은 물론 딸에게도 염습을 가르치는 집안이 많았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갑자기 많이 죽거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리 밑의 걸인을 불러다가 돈 몇 푼 쥐여주고 염습을 시켰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직업 정신이나 장인 정신은 물론이고 애틋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맨정신으로는 어려우니 술 한 잔 들이켜고 마구 잡이로 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염사를 천하게 여겼고, 염하는 것이 천박한 일로 되어버렸다.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인생사에 꼭 필요한 일이다. 염습에 예법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p. 178). 이 일을 시작한 무렵,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염사들이 하나같이 노잣돈에 눈먼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서도 지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내가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해나가면서 나는 여러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러 절차나 형식을 배운 대로 하고 있자니, 문득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것이 꼭 필요한 절차인지, 하나하나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 레를 관행대로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전통 장례란 무엇인지, 전통에서 되살릴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바른 제례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고인을 위한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움의 길을 다시 찾아나섰다. 어찌 보면 염습은 하나의 기술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쌓다 보면 능숙해진다. 염습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염쟁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직 돈벌이에 치중해서 염하는 사람을 '염장이'가 아닌 '염쟁이'라 칭해왔다. 이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잘못된 관행을 고치거나 더 나은 장례문화를 이끌 수 없다. 요즘은 염사를 '장례지도사'라고 부른다. 이름이 그럴듯하게 바뀌었지만, '정신'이 담기지 않은 그저 그런 기술자처럼 일했다가는(p. 186) '염쟁이'가 허울 좋게 이름만 바꾼 것과 다름없다. 기술에 정신을 담는 '염장이'가 되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의 마지막 의례를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염장이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겠나(p. 187). 옛날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병을 죄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죄를 지어 병에 걸린 것처럼, 병명을 말하기 수치스러워하곤 했다. 특히 에이즈 같은 전염병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병이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것처럼 내려지는 게 아니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측은지심이다. 그리고 염장이 건강도 생각해주시길(p. 214). 연명치료는 가족들이 원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없는 노부모를 바로 떠나보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등의 이유로 죽음을 앞둔 이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한다. 살아 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죽음을 앞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연명치료를 받는 중환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드물지만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로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족들이 연명을 원하면 의료 장치에 의존해 1년이고 2년이고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모습으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결국 장례를 치르는 수순을 밟는다. 그에 따르는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이 환자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다. 가족의 연명치료를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환자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자신의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고 미리 밝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p. 230)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법 시행 3년 반 만인 2021년 8월, 전 국민 중 2.2%에 해당하는 100만 명가량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p. 231).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나는 사고의 순간 까딱하면 '내일'을 맞지 못할 뻔했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p. 249)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 250). 병에 걸려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혹시 정신적으로 충격받을까봐,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릴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병명을 감추기도 한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진짜 위하는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멋대로 빼앗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에게도 본인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려줌으로써, 시간과 기운이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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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애도하는 이 없는 죽음이 늘어간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도 애도하는 자 없이 소멸된다. 그것을 국가적으로 책임 맡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가운데 장례도 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에 665명, 2021년에 856명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2022년에는 1,000명을 넘겼다. 나눔과나눔은 이 모든 장례를 지원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파도가 들이닥칠 것을 예감했다. 파도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자연히 소멸될 잠깐의 파문 따위가 아니라 는 듯이(p. 5). 무연고사망자는 누구일까? '무연고사망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무런 연고 없이 죽을 수 있을까?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나? 가족은 그렇다 쳐도, 친구나 지인 없이 평생을 살 수도 있나? 사람들은 무연고사망자라는 단어에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뜻을 가졌는지는 잘 모른다. "고독사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르는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심지어는 논문을 쓰기 위해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찾아온 학자들조차 무연고사망자에(p. 18)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는 걸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1. 연고자가 없는 경우 2.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으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례를 통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경우'를 뜻한다. 고인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고아일 수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다. 혹은 너무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어떤 가족보다 오래 살아서 고인의(p. 19) 장례를 치러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백세가 넘어 돌아가신 분의 제적동본에 손자와 손녀까지 모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 이분은 무연고사망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고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백골 상태 혹은 사망한 뒤 너무 늦게 발견되어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하면, 신원 확인이 어렵기에 그 가족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세 번째,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고인의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연고자가 있음에도, 가족 관계 단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해 명시적인 '거부'를 하는 경우이다. 또한 장례 의사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내고 14일이 지날 때까지 연고자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 행정주체는 '기피'로 이해하고 시신처리위임서를 받은 것과 동일하게 행정 처리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전체 무연고사망자 통계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가족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거나, 가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 된 '연고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연고자의 범위를 사촌까지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촌 조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어 줄 수 있기에, 당연히 사촌은 내 연고자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법률이 정하는 연고자의 범위는 훨씬 협소하다. 가. 배우자 나. 직계비속 다. 직계존속 라. 자녀를 제외한 직계비속 마. 부모를 제외한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카와 나는 가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카는 나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연고자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p. 21)다 많다. 삼촌이나 이모, 혹은 조카의 장례를 치르려고 할 때 경찰과 장례식장, 지자체에서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라고 하면서 막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하니까 말이다. 이쯤 되자 '장례 치르기 너무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안 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내 계획은 이렇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자녀를 낳아 양육할 생각은 없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 자녀 없이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에게 남은 법률상 가족은 배우자와 동생뿐이다. 만약 그 둘보다 빨리 죽는다고 해도 그들이 내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 장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경우의 수를 따져 봤다. 첫째, 부모님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부모님은 나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충분할뿐더러 형제자매도 많기에 모든 절차와 비용을 두 분이서만 책임질 필요가 없다. 둘째,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를 두고 사망할 경우, 만약 평군 수명까지 생존한다면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가 있어야 하고, 배우자보다 빨리 사망해야 한다(p. 22). 셋째, 자녀를 두고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더라도 자녀가 남아 있다면 무연고사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넷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없거나 모두 사망할 경우, 나는 동생보다 먼저 사망해야 한다. 만약 위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나는 사망 전에 평균 장례 비용에 준하는 돈(2018년 기준 1,380만 원)만 마련해 두면 된다. 단,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병원비를 모두 납부해야 하는데, 이때 병원비 정산에 무리가 없도록 최대한 빨리 사망 하거나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장례를 치러 줄 만큼 연고자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내가 사망할 때까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보다 오래 살 확률이 높을 것이니,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내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동생 한 명뿐이다.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 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양육할 마음이 없기에 배우자나 동생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는 한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이야 동생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만약 미래에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떨어진다면, 나에게 남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설령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도 돈이 없으면 아무(p. 23)것도 할 수 없다. '아, 지금 내 예금 계좌에 얼마가 있더라?' 정리를 다 하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의 여부가 삶의 마지막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혼 인구와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제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즉 장례에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연고사망자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노인이 된다면 사회는 전례 없는 무연고사망자의 숫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일은 너무 쉽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사회적 편견은 사망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이름 앞에 '무연고'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연고사망자는 낡은 '가족주의'와 공공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장례' 라는 영역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시대의 피해자이다. 고인에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죽음 이후(p. 24)에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라고 무심히 낙인을 찍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도라고 하면서. 그 낙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무연고사망자는 애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게 나눔과나눔이 하는 일이다(p. 25). 나는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꺼낸다. '만약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공영장례의뢰 공문이 접수된 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할까?' 그럴 때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장례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차(p. 230)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 언급된 고인들 중 무결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는 나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기려고 한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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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
매년 3월에는 베트남 다낭에 가고자 한다. 여러 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 같다. 다낭은 “경기도 다낭”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많이 가다 보니 이전보다 물가가 올랐지만 아직은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 제주도 가는 것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더 들 뿐이다. 제주도는 이전에 많이 갔었고, 물가도 비싸 다시는 안 가겠다고 결정했다. 다낭은 휴양지다. 그저 놀고 먹고 쉰다. 다행히 음식은 입에 잘 맞고 값이 싸다. 미리 예약하면 비행기 비용도, 숙소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게 한계라고 느낀다. 이 시간을 벗어나는 곳을 비행해 간다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간 성지순례도 이제 별 관심이 없다. 유튜브로 편히 보면 되기 때문이다. 내게 여행은 이제 뭘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나 그저 쉬고 놀고 먹는 것이다. 그런 나이가 됐다. 앞으로 더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늙어지면 못 논다고 했으니 더 나이 들어 못 가기 전까지는 계속 다낭으로 갈 것 같다. 한해 정직하게 열심히 벌어 다낭 가서 쉬며 놀고 먹는다.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이다. 목회할 때 노회에서 해외로 수련회 갈 때 100여만 원이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교인들이 뒷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사모가 동행하면 비용은 두 배가 된다.) 하기는 교인들은 벌어먹고 살기 힘든데 목사 부부는 속 편하게 교회 돈으로 놀러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하다. 이제는 내 돈으로 이런 뒷말 없이 놀러 가니 좋다. 다낭은 가성비 좋은 여행지다. 매년 3월을 기다리며 1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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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든지 말든지
남의 일에 관심을 끊어야 할 때가 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지 말든지’, ‘지지고 볶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보이고 들리니 신경이 쓰이고 속이 편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위에 계신 분이 알아서 하실 테니 나는 그저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윗분은 악인에게도 비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 마음을 속 좁은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는가? 남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자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남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신경 끄고 살자. 나라도 바르게 살자. 사람답게 살자.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내버려두자. 관심도 동정심도 필요 없다. 인두겁 쓴 짐승이라고 생각하자. 짐승 취급하며 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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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루한 인생
구굴 AI는 '비루(鄙陋)하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비루(鄙陋)하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행동이나 성격이 더럽고 낯간지러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것없으며 비굴한 태도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변명, 비루하게 굴다) 보잘것없고 누추함: 행색이나 외양 따위가 매우 낡고 초라할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옷차림)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처지나 외모가 초라함을 스스로 낮추어 표현할 때(예: 비루한 몸뚱이) 자주 쓰이기도 합니다. 비루한 인생들이 있다. 그것도 많다. 왜 그렇게 비루하게 살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 것 없이’ 비루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비루한 인생 군상들을 멀리하며 산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것이 있다.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 ‘백로가’에서 유래한 속담으로, 나쁜 환경에 물들지 말고 청렴을 지키라는 뜻이라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짧은 인생 백로처럼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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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세상에는 문제를 만드는 자와 해결하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갈등과 고통이 있게 됩니다. 문제를 만드는 자로 쓰임 받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탄은 문제를 만들고 예수님은 해결하십니다. 죄인이 사는 세상이기에 어디에나 문제 만드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사탄의 조정을 받거나 지혜가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이나 환경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잠언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 니라 지혜가 있어야 문제 만드는 자를 리드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설득하고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지혜가 제일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의 기질과 성품을 파악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때로는 온유해야 하나 강해야 합니다. 설득해도 듣지 않고 고집부리면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너무 심하고 강하면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있을 때, 당황하거나 초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자가 문제를 만듭니다.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강한 자 앞에서는 머리 숙이게 됩니다. 리더는 사나워서는 안 되고 때로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미워해서는 안 되나 불쌍히 여기고 냉정하면서 분명하게 나의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상처가 있든지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격의 성숙이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지 못하면 관계가 깨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나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시고 해결하고 처리하십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불쌍한 자이고, 문제 만드는 자를 주님의 심장으로 때로는 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기도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기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이나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 앞에서도 긍정의 마음과 생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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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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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 세상에는 오만가지 직업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고 관에 모시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한다. 과거에는 가족이 이웃이 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언젠가 나도 죽으면 누군가 내 몸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죽거든 염은 네 손으로 해줘." 실없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실제로 죽은 친구의 시신을 두 번 염해본 후, 다시는 내 손으로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의 시신 앞에서는 아무리 명장이라도 직업정신이나 사명감을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습할 때 나는 냉정한 편이다. 빈틈없이 제대로 예를 갖춰 고인을 보내드리려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눈앞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장례를 이끌어야 할 장례지도사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p. 28) 이를 지켜보는데, 문득 삼성 측에서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궁금해졌다. 의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가가, 큰일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전한 뒤, 어떻게 나를 부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무가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부터 나를 주목해왔고, 회장님이 쓰러진 직후부터 실무적인 검토를 해왔다고 대답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대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평소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잘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내 자식들. 이 아이들의 첫 세상은 아버(p. 156)지인 나였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 아이들이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대해 차고 넘치게 배운다.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에게 삶의 거울과도 같다.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혹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치 척도 같은 존재다. 젊었을 때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수십 년을 죽음과 대면해오면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잘 살기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많다. 생기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살아 있는 데도 생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 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대통령 염장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p. 157).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p. 170). 핑계 없는 무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죽음의 사연을 알고 나면 로봇이 아닌 이상 고인에게 마음이 쓰인다. 장례지도사가 마음이 여리면 쉽게 겁을 먹고, 유족이 울면 따라 울기도 한다. 장례지도사에게 장례식장은 일터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고인을 돈으로 보는 사람은 장례지도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례지도사는 한 인생의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대신 해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몇 건의 장례를 치렀는지, 이것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목표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염장이라 할 수 없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예'는 사라지고 '일'만 좇게 된다. 나는(p. 173)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염습하는 것은 몇 가지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명감이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고 한 달도 하지 못 하는 것이 장례지도사, 염장이의 일이다(p. 174). 염습이 천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염습은 내관들과 여관들의 몫이었다. 한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직접 염습했다. 그래서 그때는 아들은 물론 딸에게도 염습을 가르치는 집안이 많았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갑자기 많이 죽거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리 밑의 걸인을 불러다가 돈 몇 푼 쥐여주고 염습을 시켰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직업 정신이나 장인 정신은 물론이고 애틋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맨정신으로는 어려우니 술 한 잔 들이켜고 마구 잡이로 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염사를 천하게 여겼고, 염하는 것이 천박한 일로 되어버렸다.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인생사에 꼭 필요한 일이다. 염습에 예법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p. 178). 이 일을 시작한 무렵,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염사들이 하나같이 노잣돈에 눈먼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서도 지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내가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해나가면서 나는 여러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러 절차나 형식을 배운 대로 하고 있자니, 문득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것이 꼭 필요한 절차인지, 하나하나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 레를 관행대로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전통 장례란 무엇인지, 전통에서 되살릴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바른 제례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고인을 위한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움의 길을 다시 찾아나섰다. 어찌 보면 염습은 하나의 기술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쌓다 보면 능숙해진다. 염습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염쟁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직 돈벌이에 치중해서 염하는 사람을 '염장이'가 아닌 '염쟁이'라 칭해왔다. 이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잘못된 관행을 고치거나 더 나은 장례문화를 이끌 수 없다. 요즘은 염사를 '장례지도사'라고 부른다. 이름이 그럴듯하게 바뀌었지만, '정신'이 담기지 않은 그저 그런 기술자처럼 일했다가는(p. 186) '염쟁이'가 허울 좋게 이름만 바꾼 것과 다름없다. 기술에 정신을 담는 '염장이'가 되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의 마지막 의례를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염장이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겠나(p. 187). 옛날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병을 죄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죄를 지어 병에 걸린 것처럼, 병명을 말하기 수치스러워하곤 했다. 특히 에이즈 같은 전염병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병이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것처럼 내려지는 게 아니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측은지심이다. 그리고 염장이 건강도 생각해주시길(p. 214). 연명치료는 가족들이 원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없는 노부모를 바로 떠나보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등의 이유로 죽음을 앞둔 이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한다. 살아 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죽음을 앞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연명치료를 받는 중환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드물지만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로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족들이 연명을 원하면 의료 장치에 의존해 1년이고 2년이고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모습으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결국 장례를 치르는 수순을 밟는다. 그에 따르는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이 환자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다. 가족의 연명치료를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환자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자신의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고 미리 밝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p. 230)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법 시행 3년 반 만인 2021년 8월, 전 국민 중 2.2%에 해당하는 100만 명가량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p. 231).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나는 사고의 순간 까딱하면 '내일'을 맞지 못할 뻔했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p. 249)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 250). 병에 걸려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혹시 정신적으로 충격받을까봐,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릴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병명을 감추기도 한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진짜 위하는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멋대로 빼앗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에게도 본인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려줌으로써, 시간과 기운이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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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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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애도하는 이 없는 죽음이 늘어간다
- 무연고사망자의 장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도 애도하는 자 없이 소멸된다. 그것을 국가적으로 책임 맡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가운데 장례도 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에 665명, 2021년에 856명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2022년에는 1,000명을 넘겼다. 나눔과나눔은 이 모든 장례를 지원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파도가 들이닥칠 것을 예감했다. 파도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자연히 소멸될 잠깐의 파문 따위가 아니라 는 듯이(p. 5). 무연고사망자는 누구일까? '무연고사망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무런 연고 없이 죽을 수 있을까?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나? 가족은 그렇다 쳐도, 친구나 지인 없이 평생을 살 수도 있나? 사람들은 무연고사망자라는 단어에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뜻을 가졌는지는 잘 모른다. "고독사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르는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심지어는 논문을 쓰기 위해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찾아온 학자들조차 무연고사망자에(p. 18)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는 걸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1. 연고자가 없는 경우 2.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으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례를 통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경우'를 뜻한다. 고인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고아일 수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다. 혹은 너무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어떤 가족보다 오래 살아서 고인의(p. 19) 장례를 치러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백세가 넘어 돌아가신 분의 제적동본에 손자와 손녀까지 모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 이분은 무연고사망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고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백골 상태 혹은 사망한 뒤 너무 늦게 발견되어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하면, 신원 확인이 어렵기에 그 가족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세 번째,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고인의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연고자가 있음에도, 가족 관계 단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해 명시적인 '거부'를 하는 경우이다. 또한 장례 의사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내고 14일이 지날 때까지 연고자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 행정주체는 '기피'로 이해하고 시신처리위임서를 받은 것과 동일하게 행정 처리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전체 무연고사망자 통계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가족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거나, 가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 된 '연고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연고자의 범위를 사촌까지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촌 조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어 줄 수 있기에, 당연히 사촌은 내 연고자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법률이 정하는 연고자의 범위는 훨씬 협소하다. 가. 배우자 나. 직계비속 다. 직계존속 라. 자녀를 제외한 직계비속 마. 부모를 제외한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카와 나는 가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카는 나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연고자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p. 21)다 많다. 삼촌이나 이모, 혹은 조카의 장례를 치르려고 할 때 경찰과 장례식장, 지자체에서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라고 하면서 막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하니까 말이다. 이쯤 되자 '장례 치르기 너무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안 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내 계획은 이렇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자녀를 낳아 양육할 생각은 없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 자녀 없이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에게 남은 법률상 가족은 배우자와 동생뿐이다. 만약 그 둘보다 빨리 죽는다고 해도 그들이 내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 장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경우의 수를 따져 봤다. 첫째, 부모님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부모님은 나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충분할뿐더러 형제자매도 많기에 모든 절차와 비용을 두 분이서만 책임질 필요가 없다. 둘째,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를 두고 사망할 경우, 만약 평군 수명까지 생존한다면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가 있어야 하고, 배우자보다 빨리 사망해야 한다(p. 22). 셋째, 자녀를 두고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더라도 자녀가 남아 있다면 무연고사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넷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없거나 모두 사망할 경우, 나는 동생보다 먼저 사망해야 한다. 만약 위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나는 사망 전에 평균 장례 비용에 준하는 돈(2018년 기준 1,380만 원)만 마련해 두면 된다. 단,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병원비를 모두 납부해야 하는데, 이때 병원비 정산에 무리가 없도록 최대한 빨리 사망 하거나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장례를 치러 줄 만큼 연고자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내가 사망할 때까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보다 오래 살 확률이 높을 것이니,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내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동생 한 명뿐이다.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 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양육할 마음이 없기에 배우자나 동생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는 한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이야 동생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만약 미래에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떨어진다면, 나에게 남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설령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도 돈이 없으면 아무(p. 23)것도 할 수 없다. '아, 지금 내 예금 계좌에 얼마가 있더라?' 정리를 다 하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의 여부가 삶의 마지막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혼 인구와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제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즉 장례에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연고사망자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노인이 된다면 사회는 전례 없는 무연고사망자의 숫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일은 너무 쉽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사회적 편견은 사망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이름 앞에 '무연고'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연고사망자는 낡은 '가족주의'와 공공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장례' 라는 영역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시대의 피해자이다. 고인에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죽음 이후(p. 24)에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라고 무심히 낙인을 찍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도라고 하면서. 그 낙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무연고사망자는 애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게 나눔과나눔이 하는 일이다(p. 25). 나는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꺼낸다. '만약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공영장례의뢰 공문이 접수된 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할까?' 그럴 때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장례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차(p. 230)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 언급된 고인들 중 무결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는 나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기려고 한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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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애도하는 이 없는 죽음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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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
- 매년 3월에는 베트남 다낭에 가고자 한다. 여러 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 같다. 다낭은 “경기도 다낭”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많이 가다 보니 이전보다 물가가 올랐지만 아직은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 제주도 가는 것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더 들 뿐이다. 제주도는 이전에 많이 갔었고, 물가도 비싸 다시는 안 가겠다고 결정했다. 다낭은 휴양지다. 그저 놀고 먹고 쉰다. 다행히 음식은 입에 잘 맞고 값이 싸다. 미리 예약하면 비행기 비용도, 숙소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게 한계라고 느낀다. 이 시간을 벗어나는 곳을 비행해 간다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간 성지순례도 이제 별 관심이 없다. 유튜브로 편히 보면 되기 때문이다. 내게 여행은 이제 뭘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나 그저 쉬고 놀고 먹는 것이다. 그런 나이가 됐다. 앞으로 더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늙어지면 못 논다고 했으니 더 나이 들어 못 가기 전까지는 계속 다낭으로 갈 것 같다. 한해 정직하게 열심히 벌어 다낭 가서 쉬며 놀고 먹는다.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이다. 목회할 때 노회에서 해외로 수련회 갈 때 100여만 원이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교인들이 뒷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사모가 동행하면 비용은 두 배가 된다.) 하기는 교인들은 벌어먹고 살기 힘든데 목사 부부는 속 편하게 교회 돈으로 놀러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하다. 이제는 내 돈으로 이런 뒷말 없이 놀러 가니 좋다. 다낭은 가성비 좋은 여행지다. 매년 3월을 기다리며 1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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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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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든지 말든지
- 남의 일에 관심을 끊어야 할 때가 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지 말든지’, ‘지지고 볶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보이고 들리니 신경이 쓰이고 속이 편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위에 계신 분이 알아서 하실 테니 나는 그저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윗분은 악인에게도 비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 마음을 속 좁은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는가? 남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자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남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신경 끄고 살자. 나라도 바르게 살자. 사람답게 살자.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내버려두자. 관심도 동정심도 필요 없다. 인두겁 쓴 짐승이라고 생각하자. 짐승 취급하며 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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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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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루한 인생
- 구굴 AI는 '비루(鄙陋)하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비루(鄙陋)하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행동이나 성격이 더럽고 낯간지러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것없으며 비굴한 태도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변명, 비루하게 굴다) 보잘것없고 누추함: 행색이나 외양 따위가 매우 낡고 초라할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옷차림)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처지나 외모가 초라함을 스스로 낮추어 표현할 때(예: 비루한 몸뚱이) 자주 쓰이기도 합니다. 비루한 인생들이 있다. 그것도 많다. 왜 그렇게 비루하게 살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 것 없이’ 비루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비루한 인생 군상들을 멀리하며 산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것이 있다.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 ‘백로가’에서 유래한 속담으로, 나쁜 환경에 물들지 말고 청렴을 지키라는 뜻이라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짧은 인생 백로처럼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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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루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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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세상에는 문제를 만드는 자와 해결하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갈등과 고통이 있게 됩니다. 문제를 만드는 자로 쓰임 받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자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탄은 문제를 만들고 예수님은 해결하십니다. 죄인이 사는 세상이기에 어디에나 문제 만드는 자가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사탄의 조정을 받거나 지혜가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이나 환경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잠언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 니라 지혜가 있어야 문제 만드는 자를 리드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설득하고 다루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지혜가 제일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의 기질과 성품을 파악하고 다루어야 합니다. 때로는 온유해야 하나 강해야 합니다. 설득해도 듣지 않고 고집부리면 하나님께 맡기고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너무 심하고 강하면 정면돌파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가 있을 때, 당황하거나 초조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자가 문제를 만듭니다. 상처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강한 자 앞에서는 머리 숙이게 됩니다. 리더는 사나워서는 안 되고 때로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미워해서는 안 되나 불쌍히 여기고 냉정하면서 분명하게 나의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권면과 책망을 해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상처가 있든지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격의 성숙이 부족한 자입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지 못하면 관계가 깨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나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시고 해결하고 처리하십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불쌍한 자이고, 문제 만드는 자를 주님의 심장으로 때로는 품어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염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문제 만드는 자 때문에 기도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기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이나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 앞에서도 긍정의 마음과 생각을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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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만드는 자를 다루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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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 세상에는 오만가지 직업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고 관에 모시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한다. 과거에는 가족이 이웃이 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언젠가 나도 죽으면 누군가 내 몸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죽거든 염은 네 손으로 해줘." 실없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실제로 죽은 친구의 시신을 두 번 염해본 후, 다시는 내 손으로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의 시신 앞에서는 아무리 명장이라도 직업정신이나 사명감을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습할 때 나는 냉정한 편이다. 빈틈없이 제대로 예를 갖춰 고인을 보내드리려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눈앞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장례를 이끌어야 할 장례지도사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p. 28) 이를 지켜보는데, 문득 삼성 측에서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궁금해졌다. 의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가가, 큰일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전한 뒤, 어떻게 나를 부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무가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부터 나를 주목해왔고, 회장님이 쓰러진 직후부터 실무적인 검토를 해왔다고 대답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대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평소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잘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내 자식들. 이 아이들의 첫 세상은 아버(p. 156)지인 나였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 아이들이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대해 차고 넘치게 배운다.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에게 삶의 거울과도 같다.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혹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치 척도 같은 존재다. 젊었을 때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수십 년을 죽음과 대면해오면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잘 살기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많다. 생기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살아 있는 데도 생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 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대통령 염장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p. 157).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p. 170). 핑계 없는 무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죽음의 사연을 알고 나면 로봇이 아닌 이상 고인에게 마음이 쓰인다. 장례지도사가 마음이 여리면 쉽게 겁을 먹고, 유족이 울면 따라 울기도 한다. 장례지도사에게 장례식장은 일터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고인을 돈으로 보는 사람은 장례지도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례지도사는 한 인생의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대신 해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몇 건의 장례를 치렀는지, 이것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목표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염장이라 할 수 없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예'는 사라지고 '일'만 좇게 된다. 나는(p. 173)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염습하는 것은 몇 가지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명감이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고 한 달도 하지 못 하는 것이 장례지도사, 염장이의 일이다(p. 174). 염습이 천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염습은 내관들과 여관들의 몫이었다. 한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직접 염습했다. 그래서 그때는 아들은 물론 딸에게도 염습을 가르치는 집안이 많았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갑자기 많이 죽거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리 밑의 걸인을 불러다가 돈 몇 푼 쥐여주고 염습을 시켰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직업 정신이나 장인 정신은 물론이고 애틋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맨정신으로는 어려우니 술 한 잔 들이켜고 마구 잡이로 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염사를 천하게 여겼고, 염하는 것이 천박한 일로 되어버렸다.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인생사에 꼭 필요한 일이다. 염습에 예법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p. 178). 이 일을 시작한 무렵,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염사들이 하나같이 노잣돈에 눈먼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서도 지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내가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해나가면서 나는 여러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러 절차나 형식을 배운 대로 하고 있자니, 문득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것이 꼭 필요한 절차인지, 하나하나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 레를 관행대로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전통 장례란 무엇인지, 전통에서 되살릴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바른 제례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고인을 위한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움의 길을 다시 찾아나섰다. 어찌 보면 염습은 하나의 기술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쌓다 보면 능숙해진다. 염습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염쟁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직 돈벌이에 치중해서 염하는 사람을 '염장이'가 아닌 '염쟁이'라 칭해왔다. 이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잘못된 관행을 고치거나 더 나은 장례문화를 이끌 수 없다. 요즘은 염사를 '장례지도사'라고 부른다. 이름이 그럴듯하게 바뀌었지만, '정신'이 담기지 않은 그저 그런 기술자처럼 일했다가는(p. 186) '염쟁이'가 허울 좋게 이름만 바꾼 것과 다름없다. 기술에 정신을 담는 '염장이'가 되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의 마지막 의례를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염장이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겠나(p. 187). 옛날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병을 죄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죄를 지어 병에 걸린 것처럼, 병명을 말하기 수치스러워하곤 했다. 특히 에이즈 같은 전염병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병이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것처럼 내려지는 게 아니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측은지심이다. 그리고 염장이 건강도 생각해주시길(p. 214). 연명치료는 가족들이 원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없는 노부모를 바로 떠나보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등의 이유로 죽음을 앞둔 이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한다. 살아 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죽음을 앞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연명치료를 받는 중환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드물지만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로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족들이 연명을 원하면 의료 장치에 의존해 1년이고 2년이고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모습으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결국 장례를 치르는 수순을 밟는다. 그에 따르는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이 환자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다. 가족의 연명치료를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환자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자신의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고 미리 밝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p. 230)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법 시행 3년 반 만인 2021년 8월, 전 국민 중 2.2%에 해당하는 100만 명가량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p. 231).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나는 사고의 순간 까딱하면 '내일'을 맞지 못할 뻔했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p. 249)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 250). 병에 걸려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혹시 정신적으로 충격받을까봐,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릴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병명을 감추기도 한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진짜 위하는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멋대로 빼앗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에게도 본인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려줌으로써, 시간과 기운이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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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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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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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애도하는 이 없는 죽음이 늘어간다
- 무연고사망자의 장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도 애도하는 자 없이 소멸된다. 그것을 국가적으로 책임 맡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가운데 장례도 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에 665명, 2021년에 856명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2022년에는 1,000명을 넘겼다. 나눔과나눔은 이 모든 장례를 지원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파도가 들이닥칠 것을 예감했다. 파도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자연히 소멸될 잠깐의 파문 따위가 아니라 는 듯이(p. 5). 무연고사망자는 누구일까? '무연고사망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무런 연고 없이 죽을 수 있을까?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나? 가족은 그렇다 쳐도, 친구나 지인 없이 평생을 살 수도 있나? 사람들은 무연고사망자라는 단어에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뜻을 가졌는지는 잘 모른다. "고독사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르는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심지어는 논문을 쓰기 위해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찾아온 학자들조차 무연고사망자에(p. 18)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는 걸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1. 연고자가 없는 경우 2.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으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례를 통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경우'를 뜻한다. 고인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고아일 수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다. 혹은 너무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어떤 가족보다 오래 살아서 고인의(p. 19) 장례를 치러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백세가 넘어 돌아가신 분의 제적동본에 손자와 손녀까지 모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 이분은 무연고사망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고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백골 상태 혹은 사망한 뒤 너무 늦게 발견되어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하면, 신원 확인이 어렵기에 그 가족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세 번째,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고인의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연고자가 있음에도, 가족 관계 단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해 명시적인 '거부'를 하는 경우이다. 또한 장례 의사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내고 14일이 지날 때까지 연고자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 행정주체는 '기피'로 이해하고 시신처리위임서를 받은 것과 동일하게 행정 처리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전체 무연고사망자 통계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가족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거나, 가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 된 '연고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연고자의 범위를 사촌까지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촌 조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어 줄 수 있기에, 당연히 사촌은 내 연고자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법률이 정하는 연고자의 범위는 훨씬 협소하다. 가. 배우자 나. 직계비속 다. 직계존속 라. 자녀를 제외한 직계비속 마. 부모를 제외한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카와 나는 가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카는 나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연고자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p. 21)다 많다. 삼촌이나 이모, 혹은 조카의 장례를 치르려고 할 때 경찰과 장례식장, 지자체에서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라고 하면서 막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하니까 말이다. 이쯤 되자 '장례 치르기 너무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안 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내 계획은 이렇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자녀를 낳아 양육할 생각은 없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 자녀 없이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에게 남은 법률상 가족은 배우자와 동생뿐이다. 만약 그 둘보다 빨리 죽는다고 해도 그들이 내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 장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경우의 수를 따져 봤다. 첫째, 부모님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부모님은 나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충분할뿐더러 형제자매도 많기에 모든 절차와 비용을 두 분이서만 책임질 필요가 없다. 둘째,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를 두고 사망할 경우, 만약 평군 수명까지 생존한다면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가 있어야 하고, 배우자보다 빨리 사망해야 한다(p. 22). 셋째, 자녀를 두고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더라도 자녀가 남아 있다면 무연고사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넷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없거나 모두 사망할 경우, 나는 동생보다 먼저 사망해야 한다. 만약 위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나는 사망 전에 평균 장례 비용에 준하는 돈(2018년 기준 1,380만 원)만 마련해 두면 된다. 단,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병원비를 모두 납부해야 하는데, 이때 병원비 정산에 무리가 없도록 최대한 빨리 사망 하거나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장례를 치러 줄 만큼 연고자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내가 사망할 때까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보다 오래 살 확률이 높을 것이니,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내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동생 한 명뿐이다.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 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양육할 마음이 없기에 배우자나 동생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는 한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이야 동생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만약 미래에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떨어진다면, 나에게 남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설령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도 돈이 없으면 아무(p. 23)것도 할 수 없다. '아, 지금 내 예금 계좌에 얼마가 있더라?' 정리를 다 하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의 여부가 삶의 마지막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혼 인구와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제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즉 장례에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연고사망자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노인이 된다면 사회는 전례 없는 무연고사망자의 숫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일은 너무 쉽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사회적 편견은 사망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이름 앞에 '무연고'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연고사망자는 낡은 '가족주의'와 공공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장례' 라는 영역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시대의 피해자이다. 고인에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죽음 이후(p. 24)에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라고 무심히 낙인을 찍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도라고 하면서. 그 낙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무연고사망자는 애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게 나눔과나눔이 하는 일이다(p. 25). 나는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꺼낸다. '만약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공영장례의뢰 공문이 접수된 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할까?' 그럴 때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장례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차(p. 230)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 언급된 고인들 중 무결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는 나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기려고 한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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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애도하는 이 없는 죽음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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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
- 매년 3월에는 베트남 다낭에 가고자 한다. 여러 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 같다. 다낭은 “경기도 다낭”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많이 가다 보니 이전보다 물가가 올랐지만 아직은 그래도 가성비가 좋다. 제주도 가는 것과 비슷하게, 혹은 조금 더 들 뿐이다. 제주도는 이전에 많이 갔었고, 물가도 비싸 다시는 안 가겠다고 결정했다. 다낭은 휴양지다. 그저 놀고 먹고 쉰다. 다행히 음식은 입에 잘 맞고 값이 싸다. 미리 예약하면 비행기 비용도, 숙소도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게 한계라고 느낀다. 이 시간을 벗어나는 곳을 비행해 간다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간 성지순례도 이제 별 관심이 없다. 유튜브로 편히 보면 되기 때문이다. 내게 여행은 이제 뭘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나 그저 쉬고 놀고 먹는 것이다. 그런 나이가 됐다. 앞으로 더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늙어지면 못 논다고 했으니 더 나이 들어 못 가기 전까지는 계속 다낭으로 갈 것 같다. 한해 정직하게 열심히 벌어 다낭 가서 쉬며 놀고 먹는다.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이다. 목회할 때 노회에서 해외로 수련회 갈 때 100여만 원이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교인들이 뒷말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사모가 동행하면 비용은 두 배가 된다.) 하기는 교인들은 벌어먹고 살기 힘든데 목사 부부는 속 편하게 교회 돈으로 놀러 간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하다. 이제는 내 돈으로 이런 뒷말 없이 놀러 가니 좋다. 다낭은 가성비 좋은 여행지다. 매년 3월을 기다리며 1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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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내 돈 내 산 다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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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든지 말든지
- 남의 일에 관심을 끊어야 할 때가 있다.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지 말든지’, ‘지지고 볶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보이고 들리니 신경이 쓰이고 속이 편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위에 계신 분이 알아서 하실 테니 나는 그저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윗분은 악인에게도 비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 마음을 속 좁은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는가? 남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자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남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신경 끄고 살자. 나라도 바르게 살자. 사람답게 살자. 그렇게 살다 죽으라고 내버려두자. 관심도 동정심도 필요 없다. 인두겁 쓴 짐승이라고 생각하자. 짐승 취급하며 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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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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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루한 인생
- 구굴 AI는 '비루(鄙陋)하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비루(鄙陋)하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행동이나 성격이 더럽고 낯간지러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것없으며 비굴한 태도를 보일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변명, 비루하게 굴다) 보잘것없고 누추함: 행색이나 외양 따위가 매우 낡고 초라할 때 사용합니다. (예: 비루한 옷차림)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처지나 외모가 초라함을 스스로 낮추어 표현할 때(예: 비루한 몸뚱이) 자주 쓰이기도 합니다. 비루한 인생들이 있다. 그것도 많다. 왜 그렇게 비루하게 살까? 그렇게 살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짓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보잘 것 없이’ 비루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비루한 인생 군상들을 멀리하며 산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것이 있다.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은 시조 ‘백로가’에서 유래한 속담으로, 나쁜 환경에 물들지 말고 청렴을 지키라는 뜻이라고 한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샘낼세라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짧은 인생 백로처럼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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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루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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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오너 리스크
- 구굴 AI는 ‘오너 리스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너 리스크(Owner Risk)란 기업의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 등 총수 일가의 개인적인 문제나 부적절한 행동이 기업 경영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주요 발생 원인 법적 문제: 횡령, 배임, 탈세, 폭행 등 경영진의 범죄 행위. 도덕적 해이: 갑질 논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이나 행동. 독단적 경영: 전문 경영인의 의견을 무시한 무리한 투자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승계 관련 잡음: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 기업에 미치는 영향 주가 하락: 투자 심리가 위축되어 주가가 급락하고 시가총액이 증발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실추: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으로 이어져 매출에 타격을 줍니다. 경영 공백: 구속 등으로 인한 결정권자의 부재는 기업의 미래 전략 추진을 어렵게 합니다. 금융 비용 증가: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인해 자금 조달 시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할 수 있습니다. 대응 및 방안 최근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ESG 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을 강화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등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힘쓰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 기업들의 경영주 혹은 교회들의 담임목사로 인한 리스크가 크다. 특히 기독교는 불교, 천주교와 달리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어느 절의 주지승이 누구다’, ‘어느 성당의 주임신부가 누구다’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는 누구다’라고 알려지는 경우는 많다. 담임목사가 그 교회의 브랜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스타급 목사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들이 리스크를 만들면 그 교회는 큰 타격을 입는다. 전병욱, 요즘은 은퇴한 박영선 등등. 그래서 기업의 CEO나 담임목사 그리고 각 기관의 장(長)들은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요즘 총회를 보면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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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오너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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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예방의 지혜
- 문제 예방의 지혜 (마태복음 26:41) 죄인인 사람이 있는 곳에 언제나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문제없는 곳은 천국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문제가 생긴 후에 후회하는 것입니다. 문제 예방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시험이요, 고통과 스트레스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미리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 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 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기도하는 것이 문제 예방의 지혜입니다. 문제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순간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은혜 주십니다. 기도 쉴 때 사탄이 틈을 타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탄은 문제 만드는 자요, 시험하는 자입니다. 평소에 조심하고 약점 잡히지 않는 것은 문제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문제 만드는 자는 상대방의 약점과 흠을 찾습니다. 온전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실수하지 말고 흠을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재정 관리를 잘해서 재정문제 스캔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영수증 관리를 잘하고 예산 범위 내에서 돈을 써야 하며, 뇌물이나 청탁받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비밀이 없는 세상입니다. 이성 문제, 조심해야 합니다. 이성 문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남녀 둘이 있는 것 조심해야 하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녹음하는 시대, 녹음이 되어지는 시대이기에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는 것이 문제 예방입니다. 명예 문제도 조심해야 합니다. 명예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학위 받지 말아야 하고 명예 준다고 다 받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주고 명예 얻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높여줄 때까지 자신이 높아지고 명예 얻으려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수시로 문제가 생기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건강 문제도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병이 든 후에 병원 가지 말고 미리미리 건강 검진해야 합니다. 평소에 건강에 좋은 음식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과로하지 않아야 하며, 적당히 취미 생활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긴 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많은 시간과 수고, 재정이 쓰여져야 합니다. 영적 전쟁의 연속입니다. 문제와의 싸움인데, 기도와 말씀으로 문제를 예방해야 합니다.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믿음의 반응도 예방입니다.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문제가 생길 때 기도하고 담대히 대처하는 것도 문제 예방입니다. 문제는 고난이요 스트레스인데, ‘지나간다’ ‘결국은 유익하다’는 긍정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야고보서 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문제를 긍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문제 예방의 은혜와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문제 해결과 예방의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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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 문제 예방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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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죽으면 어떠한 장례 절차가 이어지는가?
- 흥미롭게 읽었다.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죽음 이후에 여러 단계의 장례 절차가 있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라 관심있게 읽었다. 좋은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어떤 죽음이 올지 모른다. 불확실하기에 바람은 더 간절하다. 그런데 무엇을 좋을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바라는 죽음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이 없는, 스스로 정리하는,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죽음이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지(p. 29) 않는 죽음은 이런 것이겠다. 외로운 죽음, 비참한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이 세 종류를 피한 죽음을 두고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부른다. 젊은 사람들에겐 여기에 존엄사라는 상상력이 더해진다. 호상(好喪). 천수를 누린 복된 죽음. 살 만큼 살다가 때가 되어 잠을 자듯 맞는 죽음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수를 누린 이라도, 그의 장례에 가서 함부로 '호상'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 고인 본인에게 좋은 죽음(호상)은 있을지라도, 남겨진 이들에게 좋은 죽음은 없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죽음은 늘 갑작스럽다. 물론 현실은 이리 애틋하지만은 않다. 내가 한때 머물던 지역엔 유명한 요양병원이 있었다. 입소 예약이 줄을 이었다. 시설이나 치료 효과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 반대다. 그 병원에 들어가면 노인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증명이라도 하듯 병상이 빠르게 비었다. '회전율'이 이토록 좋은데도 예약 대기자가 늘 많아 병실이 금세 채워진다고 했다. 요양병원 입원 비용은 월 200만 원 선, 간병인 하루 비용은 10만 원을 웃돈다. 죽으면 끝이라 하지만, 빚은 대를 이어 남는다. 현실은 현실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죽고, 그건 생의 마지막 까지 돈을 쓰다가 간다는 말이기도 했다(p. 30). 비석과 마을 세상의 잔혹함은 곳곳에 있다. 부산의 비석마을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비석문화마을이라 불리는 이 마을 이야기를 하려면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개항 직후 조선에 온 일본인들은 가까운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이주 규모는 더 커졌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이주 권장 정책이 있었다. 화장이 주된 장법인 나라 사람들인지라 일본인들만이 사용하던 화장터도 세워졌다. 처음에는 민간업자들이 작게 운영하던 것을 총독부가 주도해 최신 설비를 갖춘 화장장과 유골 무덤으로 조성한 것은 1928년. 임시 거주가 아니라 대를 이어 일본인들을 조선에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렇게 공동묘지와 화장터가 부산 서구 아미동 일대에 세워진다. 아미동은 지대가 높은 언덕에 자리한 마을인데, 공동묘지가 이토록 고지대에 세워진 까닭은 거주민 조선인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 사람들의 주 거주지인 부두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공동묘지가 밀려 올라간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물러가면서 일본인 묘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묘를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몰래 시신을 놓고 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에 피란민들이 몰린다. 당시 47만여 명이던 인구가 순식간에 84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곳곳에 피란민들의 임(p. 214)시 거주지가 생기자 부산시는 1953년 도시 정비 계획을 앞세워 빈민촌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부두 주변에 거주했던 이주민들은 터전을 잃고 언덕을 오른다. 오르고 올라 도착한 곳이 아미동 공동묘지 터다. "피란민들이 전부 그쪽으로 와서 기거를 하고 있으니까 시에서 천막을 준 거예요. 그러니까 쪼그마한 천막이 아니고 아주 큰 거를 갖다가 옛날에 거기가 공동묘지 산등성이었잖아요. 근데 글로 올라가서 인제 살아라. 이 천막 세 개를 주고 살아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참 기구하잖아요. 공동묘지에 가서 이거 천막을 그냥 치고 살으라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인 무덤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화강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단단한 벽과 바닥이 되어주었고, 유골함이 자리했던 광중은 아궁이 역할을 했다. 비석이 지천에 널려 있어 자재 걱정이 없었다. 다만 죄책감과 두려움이 따라올 뿐이었다. 비석의 이름을 페인트로 덧칠해 그 흔적을 지워보았지만, 그 이후 수십 년간 아미동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귀신과 도깨비불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죽은 이의 자리에 산 사람의 자리를 만든, 불편하고도 체념적인 공존이 귀신 이야기가 되어 돌아왔다. 대를 잇는 빈곤이야말로 사건•사고를 불러오기 좋은 조건이었는데도, 어떤 집에 우환이 닥치면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가 어느 무덤 자리였는지를 떠올렸다. 1990년대, 아미동 주민들은 남은 묘석들을 모아 5층 석탑을 세우고 천도재를 지낸다. 이후로 사고가 줄었다고 했다. 실제 줄어든 것은 마을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일 거라 짐작해본다. 죽은 이의 자리 위에 산 사람 집터를 닦는 일이 흔하진 않지만,(p. 215)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이와 산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확히는, 이어령 선생에게 마지막 수업을 듣겠다고 찾아간 김지수 작가의 입을 빌려 정리 된 문장이다). 선생은 빈 곳을 모른 채 유리컵에 물을 가득 채우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범인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유리컵이 넘치도록 찰랑이는 물 때문에 살아간다. 찰랑대는 마음이 없다면 무덤 위에 집을 짓고 생존을 도모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물은 곧잘 넘쳐흘러, 비석마을은 숱한 재개발을 겪으며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비석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나이 든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 한 집 걸러 빈집이다. 귀신은 그들을 그곳에 살게 했지만, 사람은 그들을 그 곳에 살 수 없게 했다. 물은 언제나 가득 차 찰랑인다. 한편으론, 애초 물이 가득 찬 컵 같은 것은 없다. 가득 채워진 것처럼 보이는 물조차 그 안에서 분자들은 저마다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틈 사이로 도깨비불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광중에 아궁이를 짓고 그 아궁이에 물 한 바가지 올려 조왕신에게 비는 기도가, 비석으로 5층 석탑을 쌓아 올려 한숨 돌리던 얕은 위안이 담긴다. 그저 공존할 뿐이다(p.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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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죽으면 어떠한 장례 절차가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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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절대적 기준이 사라질 때 인간은 폐지된다
- 루이스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대학에선지 신대원에선지 잘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책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많은 세월 동안 나의 지적 능력은 그리 성장하지 않은 것인가하는 자괴감에 빠진다. 할 수 없다. 이것이 내 사고구조의 한계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철학은 관심이 많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과 같다. 결국 책 뒤에 있는 해설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주의 등 절대적인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추구하고 따를 때 결국 인간은 폐지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미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그 조작자들에 대해 인위적인 난제를 일부러 꾸며 대는 것처럼 볼 수도 있겠고, 생각이 더 단순한 이들이라면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왜 당신은 그들을 그렇게 나쁜 사람들로 가정합니까?" 그러나 정말이지 저는 그들을 나쁜 사람들로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들은 (옛 의미에서 볼 때) 아예 사람이 아닙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들은 앞으로 '인간성'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에 헌신하기 위해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단어들의 내용을 이제는 그들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의 난제 역시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섹스, 오락, 예술, 과학 그리고 개인과 종의 가능한 최대의 수명 등. 간단히 말해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고, 그 조작자들은 그런 것들을 가장 잘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사람을 조건화한다는 것인데 문제될 게 뭡니까?"(p. 76). 그러나 이는 답이 못 됩니다. 우선, 우리가 모두 동일한 것을 원한다는 말 자체가 거짓입니다. 설령 원한다 치더라도, 대체 어떤 동기로 그 조작자들이 후손이 원하는 것을 갖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쾌락은 포기하고 힘들여 일하겠습니까? 의무 때문에? 그러나 의무라는 것은 '도'이며, 그들이 임의대로 우리에게 '도'를 부과 할 수는 있어도 그들 자신에게는 구속력을 갖지 못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 '도'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양심의 제작자가 아니라 종속자라는 말이고, 이는 그들의 최종적 자연 정복이 실제로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종의 보존을 위해서? 그러나 도대체 종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후손들에 대한 이 러한 느낌-만들어 내는 법을 그들이 잘 알고 있는-이 계속되게 만들어야 할지 여부 역시 그들 앞에 놓인 질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제아무리 뒤로, 아래로 가 보아도 그들이 발 딛고 설 근거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행동 동기라고 제시하는 것은 모두 논점회피일 뿐입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예 사람이 아닙니다. '도' 바깥으로 나갈 때 그들은 허공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이들이 꼭 불행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예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품일 뿐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최종 정복은 결국 인간의 폐지 abolition of Man를 의미합니다(p. 77). 해설 상대주의 문명에 던지는 반성적 통찰 - 박성일 C. S. 루이스를 낭만주의자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그를 좀더 균형 있게 평가하려고 고민하며, 모순 같으나 그에게 낭만주의적 이성주의자 Romantic Rationalist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가 낭만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낭만주의라 하면, 18세기 말에 유럽을 휩쓸었던 철학 운동으로, 차갑고 축소주의적인 이성의 역할보다는 시적인 창의력 • 직감 • 감정 주관적 경험에 더 많은 강조를 두는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루이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중반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독교 낭만주의자들은 초월적이며 객관적인 절대자에 대한(p. 115) 신앙 중심으로 사고의 틀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들을 낭만주의라 함은, 초월적 절대 가치가 인간에게 드러나는 과정이 이성reason 뿐 아니라 창의력imagination 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감정과 경험을 통해 전달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절대적 미학 또는 윤리적 가치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증거되어 있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에 BBC 방송을 통하여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실재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내용이 나중에 《순전한 기독교》의 제1장을 형성 하게 되었는데, 전쟁 중에 절대적 가치 기준을 논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상황적 의미가 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전쟁이 오직 개인이나 국가의 생존에 대한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다면, 생명을 바치며 적과 싸운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과연 나치 정권의 군사주의나 아리안 혈통의 우월주의는 나의 생명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악의 세력인가? 서구의 문명사회를 하루아침에 혼란으로 몰고 간 히틀러의 광적인 야망이나, 극동의 힘의 균형을 깨고 침략과 문화적 탄압으로 태평양 연안을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몰고 간 일본의 제국주의가 선과 악의 틀로는 도저히 규명할 수 없는 중립적인 것이라면 왜 저들과 맞서서 싸워야 하는 것인가?(p. 116). 21세기에 이르러서, 이와 같은 가치관의 질문 자체가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까닭은 후기 현대주의적 상대주의 또는 다원주의가 오늘의 문화에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원주의는 나치의 침략이나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비(非)다원주의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아울러 그것을 적극적으로 대항할 만한 근거 제공도 하지 못한다. 싸울 이유는 한쪽 뿐 아니라 양쪽 다 없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의심하는 가운데서도 오직 허용이라는 가치만은 유일하게 애써 지켜야 할 절대 가치가 되었으니 이것도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주의는 이미 루이스 시대에 유럽에 범람하고 있었다. 1942년에 루이스가 《인간 폐지》라는 책을 착상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런 사고가 어린 학생들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에 등장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 권의 영어 교과서가 그 중심에 있었다. 하나는 《언어의 통제 The Control of Language》 (1940)로 알렉스 킹과 마틴 케틀리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저술한 것이고, 또 다른 한 권은 《영어 강독과 작문 The Reading and Writing of English》(1936)으로 E. G. 비아기니가 저자였다. 《인간 폐지》에서는 킹과 케틀리를 가이우스와 티티우스라는 가명으로 불렀고 책 이름을 《녹색책 The Green Book》이라고 칭했다. 비아기니는 오르(p. 117)빌리우스로 바꿔 불렀다. 루이스는 이 책들의 내용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 외에 일정한 철학적 사상을 파급하여, 지각이 형성돼 가는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점에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1943년 2월에 루이스는 더럼 대학에서 리델 기념 강연의 강사로 초대되어 세 번의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 기회에 그는 위에 언급한 두 책에 대한 비평을 시발점으로 하여 상대주의를 비판하고 참교육의 기초가 절대적인 가치 기준의 인정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 강좌의 내용이 곧 “Reflections on Educa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Teaching of English in the Upper Forms of Schools”라는 긴 부제가 달린 책, 즉 《인간 폐지》로 출판되었던 것이다. 루이스에게 그토록 충격이 되었던 교과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 지는 이 책의 첫 장을 열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사람이 어떠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물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내면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주관주의•상대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이스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절대적 가치관이 인간 본연의 모(p. 118)습 안에 드러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 the Natural Law이란 것이 단지 물리적 원칙만이 아니고 도덕적 법칙으로 편만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러한 자연적 도덕률을 '도'라는 동양의 함축적인 단어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도' 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 아마도 루이스는 이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기독교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서구에서만 주창된 것이 아니고 그것과 맞상대가 될 만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 사상에 도리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루이스는 이 책의 부록에 세계 여러 종교 와 문명을 대표하는 문서에서 발견되는 도덕률을 대조하는 장황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또는 여러 문화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생성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시대와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공통적 • 보편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실재라는 것이다. 루이스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짐승이 되는 경우는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망각하거나 또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한 복종 의지가 상실되는 경우라고 말한다. 머리가 이해understanding와 사고력thinking을 뜻한다면 배는 본능 instinct과 충동 impulses 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쓰면서 머리와 배 사이에 있는 기관, 즉 가슴이 있어야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조건이 충족된(p. 119)다고 주장한다. 가슴이란 정착된 가치관의 형성과 그 가치관에 따 라 훈련된 감정 trained emotion을 뜻한다. 이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은 악으로, 선한 것은 선으로 인정하고 반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훈련된 감정은 곧 살아 있는 양심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배를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머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받쳐 주는 기관이 바로 가슴이다. 아울러 배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 또한 가슴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무 서운 도전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할 수 있고, 나의 권리와 이익을 떠나 상대를 배려하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슴이 없는 사람은 생각은 생각대로 하지만 행동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소위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훈련된 감정과 의지력이 결여 된다면 신앙은 머리에서 맴돌고 행동은 여전히 본능적이며 충동적인 상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주의적 교육이 무서운 것은 가슴이 없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건전한 가치관을 상실하게 하고서, 건강한 사람들로 형성된 건강한 사회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심장을 빼내어 버리고서 달려 보라고 명령하는 것이나, 꽃을 떼어 버리고서 열매를 맺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루이스의 말대로 현대(p. 120)인은 신의에 대하여는 웃어넘기면서 자신들 안에 배반자가 있다는 사실에는 놀라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도'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혹자는 루이스의 시도가 마치 비교종교학 같이 보인다고 우려할 수도 있고, 마치 모든 종교가 결국은 같은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하고 의문시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을 기준으로 할 때 루이스가 결코 보수주의자가 아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치 루이스를 보수주의자로 또는 복음주의자로 규정하기 위해 그를 방어하려는 노력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반면 그가 당시 신학적 자유주의, 즉 복음을 윤리적 교훈으로 축소시킨다든지, 자연주의적 전제에 빠져 기적을 한사코 부인하거나 이에 따라 성경을 비신화화demythologizing한다든지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과격할 정도로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루이스의 신학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고 삶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으며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루이스가 '도'를 논하는 의미를 종교 다원주의로 몰아서는 안 된다. 다만 루이스는, 하나님의 절대적 선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확고하(p. 121)게 인식하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복음은 아니지만 복음으로 이끄는 중요한 첫 단추가 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초대 교회의 사도로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이 선과 악의 판단이 모세의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뿐 아니라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말한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러한 도덕률이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순전한 기독교》에서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갖고 있는 내면적 갈등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의식하면서도 결국 일관성 있게 옳은 것을 택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악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구원의 문제는 '가슴' 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루이스는 인정하고 있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심령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기적 중에 기적 이라는 것을 루이스는 알고 있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임에 틀림없지만 두 가지가 동일하지 않으며 혼동될 수 없음을 그는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 폐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p. 122)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인류 공동체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도덕률 없이는 사회의 악이 억제되거나 순화되지 못하고, 악에서 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른 의식을 상실한 충동적 인간으로 이루어진 욕구 만족형 사회는 루이스의 다른 책에서 그토록 의미 심장하게 그려내고 있는 지옥 그 자체인 것이다(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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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절대적 기준이 사라질 때 인간은 폐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