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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원 목사 선교13】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현재 280만 여명이 살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보내 주신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주민교회와 한국교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부천에 있는 부천몽골교회와 순복음 부천교회가 좋은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부천몽골교회는 몽골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이는 교회이다.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던 서기원 목사가 귀국하여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동인천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몽골인들이 70%이고 한국인이 30% 모이며 유치부, 유초등부, 청소년부의 모임이 있다. 순복음 부천교회는 부천몽골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외에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로, 해마다 청년들이 해외단기 선교를 다녀온다. 그런데 작년부터 선교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해외로 단기선교를 가지 않고 부천몽골교회를 찾아와서 함께 수련회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순복음부천교회 청년들이 처음으로 방문해서 함께 수련회를 하기로 의논하고 해외단기선교를 나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부천몽골교회에서 1박 2일의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 시간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순복음 부천교회의 담임목사님도 너무나 좋아하시고 이러한 수련회를 계속 갖기를 원하셔서 올해도 수련회를 가졌다. 올해는 그 교회의 성도들도 함께 참여하셔서 봉사를 하시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이것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을 선교하는 좋은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민교회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 재정적으로 연약하고 교회의 일꾼들도 부족하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재정적인 면이나 일꾼들 면에서 보면 이주민교회들보다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선교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드리며 해외선교와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의 주변에 여러 나라 민족의 이주민 교회들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이주민교회들과 함께 협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보라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음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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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4
  • 【양대식 목사 칼럼31】 리더와 희생의 지혜
    리더와 희생의 지혜 (요한복음 12:24) 희생하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리더가 희생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생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지혜로움입니다. 희생해야 열매 맺게 됩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최고의 리더, 예수님의 삶은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희생의 극치입니다. 희생이 있는 리더가 있는 교회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희생하지 않고, 재주부리고, 요령 피는 리더는 실패합니다. 게으른 자는 희생이 없고, 부지런해야 희생합니다. 쉽게 되는 것은 없고, 리더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목회할 때, 희생해야 하고, 주일예배 시, 네 번 예배드린다면 피곤하더라도 기쁨으로 네 번 설교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자신이 편하려고 부교역자에게 주일 설교 맡기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부교역자에게 새벽이나 금요 저녁은 나누어서 설교할 수 있지만, 주일 설교는 대체로 많이 모이고 무게감이 있기에 담임목사가 희생정신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주일날 설교하면 네 번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목회와 설교를 즐겨야 합니다. 교회의 그릇은 담임목사의 그릇과 비례합니다. 어느 공동체나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몸과 재물, 시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담임목사의 희생하는 모습, 요령 피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하는 리더를 사용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희생이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병들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희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가 성장하게 됩니다. 희생한 만큼 성장합니다. 희생의 고통을 인내로 견뎌내야 합니다. 희생해야 신뢰 얻고, 존경받게 됩니다. 사탄의 속성은 희생이 없이, 쉽게 쉽게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희생 없이 성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함에 있었습니다. 영적 리더는 설교 준비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하고, 글을 쓰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익, 손실 계산하지 말고, 희생정신으로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할 때, 리더십이 세워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유익을 주는 리더로 성장해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하는지, 안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혹시 재정이 부족하면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고, 부교역자나 직원들을 먼저 챙겨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리더가 희생하면 재정도 부족하지 않게 채워지고,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희생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희생하느냐, 요령 피우느냐, 지혜로운 자는 희생을 선택합니다. 희생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주일날 교회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것도 희생의 기초가 됩니다. 게으른 자는 실패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 주님께서 헛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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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30
  • 【서기원 목사 선교12】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에서 이주민선교의 역사는 30여년이 된다. 이주민 선교의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역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연합하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1995년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협의회(외노협)이 만들어졌다. 1995년 1월에 명동 성당에서 네팔 산업 연수생들이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선교단체로 규정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라고 볼 수 있다. 1991년에는 중국어문선교회가 중국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중국교포선교협의회가 구성되고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NCCK)는 1992년에 한국교회 노동자선교협의회를 구성했다. 그 이후 각 교단과 기관에서 이주민선교를 위한 기관들이 설립 되면서 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에 만들어진 기관이 이주민선교 한국교회연합(이선한)이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서로 협력하며 사역을 하였고 이 때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함으로 만들어진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이선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전국의 이주민사역단체들에게 1년간의 후원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었다. 이선한의 모임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산이 되고 2019년에 오륜교회에서 한국교회 이주민선교연합(KIMA)이 공식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연합체로 설립 이후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단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선교, 유학생선교, 국제결혼자선교, 비즈니스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모이는 연합체이다. 함께 기도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세미나를 하면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더욱 다문화사회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다문화사회를 선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때에 다문화 사회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교회와 여러 기관들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우리 보다 앞서 다문화사회를 경험한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다문화사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많이 했지만 교회는 그만큼 노력하지 못했다. 결과 유럽은 역선교를 당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대처를 교회 및 여러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서 협력할 때에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다문화사회, 선교한국을 이루어 갈 것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을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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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8
  • 【양대식 목사 칼럼29】 매력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특징
    매력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특징 (고린도후서 2:14-16)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매력의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매력이 있는 자는 남에게 호감을 주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매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1. 매력 있는 자의 특징 언어 사용이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자세가 반듯합니다. 옷차림이 깨끗합니다. 자신의 내면 관리를 잘하고, 외모 관리를 잘합니다.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의리가 있고, 신실합니다. 긍정적인 자가 되고, 칭찬과 격려에 능합니다. 손해를 보아도 잘 넘깁니다. 옷차림을 깨끗이 하고, 정리•정돈을 잘합니다. 약속을 지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섬기고, 대접합니다. 선물 주기를 기뻐합니다. 나누어주고 나서도 생색내지 않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합니다. 남의 비판을 참고합니다. 남에 대해 험담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헌신, 봉사하고, 언제나 친절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있고, 돈을 주기도 합니다. 마음을 지키고,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인내합니다. 축복해주고,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계속 배우며 성장합니다.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영향을 끼칩니다. 표정 관리를 잘하며,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언제나 겸손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있고, 배려하며 살아갑니다. 지혜롭게 처신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에 힘씁니다. 매너가 있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매사에 센스가 있습니다. 유머가 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조절합니다. 향기가 되어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양보하고, 사랑을 실천합니다. 남의 단점보다 장점을 봅니다. 보고 싶어 하도록 매력을 키웁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고, 리더십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능력이 있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 자랑하는 것을 조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합니다. 성공합니다.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삶에 열매가 나타납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인격이 고상합니다. 시간을 잘 지킵니다. 2. 매력 없는 자의 특징 언어가 거칠고, 거짓됩니다.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신뢰 얻지 못합니다. 일구이언하고, 약속을 어깁니다. 외모 관리와 내면의 관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리•정돈을 못합니다. 교만하고, 사납고, 남의 험담을 잘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센스가 없습니다. 사람을 이용하고, 희생과 헌신이 없습니다. 감사를 모르고 불평합니다. 욕심이 많고, 시기, 질투합니다. 친절이 없고, 무뚝뚝합니다. 게으르고, 성실성이 없습니다. 배려심이 없고, 칭찬과 격려가 없습니다. 자기 자랑만 하고, 언제나 교만합니다. 배움이 없고,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성장과 성숙이 없습니다. 게으르고, 충성심이 없습니다. 받기만 바라고, 섬기고 대접하지 않습니다. 인사성이 없고, 사람을 피합니다. 무질서하고, 계획성이 없습니다. 관계를 깨뜨립니다. 쉽게 화를 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가 없고, 눈치와 센스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계산적입니다. 편견이 있고, 남을 무시합니다. 악하게 살아갑니다. 욕심이 많고, 너무 이기적이고, 감사의 표현도 못합니다. 매력 있는 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고린도후서 2:14-16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리더는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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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4
  • 【서기원 목사 선교11】 총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 협의회
    총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 협의회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korean dream을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교회는 이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교단 내에 여러 교회들이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함께 힘을 합하여 사역을 해야 하는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1997년에 총회 외국인근로자 선교협의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부천의 천산 중앙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당시 담임목사이신 조원형 목사(현재 원로목사)가 초대회장이 되었다. 1998년에는 교단에서 해외선교부가 GMS로 발전하였다. GMS가 출범하면서 총회 외국인근로자 협의회가 구성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이 국내 이주민 선교를 귀하게 여긴 증거인 것이다. 협의회는 외국인근로자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서 사역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나갔다.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는 외국인노동자 선교의 증요성을 새롭게 깨닫고 헌신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총회장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 GMS가 국내 외국인지부를 설립함으로써 협의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교단 내에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하는 목사들 중에서 GMS 선교사 규정에 합당한 목사는 국내 지부의 선교사로 허입이 되었지만 선교사 규정에 맞지 않는 목사는 국내 지부에 선교사로 허입이 되지 않고 교단에 속한 목사로서 사역을 하였다. 교단 내에 이주민선교를 하는 여러 목사님들이 있었지만 GMS 국내 외국인지부에는 소속되지 못하고 노회에 소속된 목사로서 이주민 사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단적으로 이주민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필요를 느껴서 총신대학교에서 2019년에 GMS 국내 다민족사역연합체(다사연) 창립총회를 하였다. 이후 2021년에 정기총회에서 GMS 이주민 선교 연합체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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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2
  • 【양대식 목사 칼럼28】 공동체와 환대
    공동체와 환대(누가복음 15:5-6) 두세 명 이상이 모인 곳은 공동체입니다.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에 소속되어 적응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환대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환대는 배려와 친절, 섬김입니다. 누가복음 15:5-6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죄인들을 환대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주님의 환대입니다. 환대는 사랑의 표현이요, 증거입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환대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21-24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하나님 아버지의 환대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환대해 주고, 환대받는 것이 관계의 열쇠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환대해 주어야 사랑을 느끼고, 적응하고, 정착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주의 이름으로 환대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외되고, 외롭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환대해 주고, 환영해 주는 공동체를 좋아합니다. 범죄하여 숨어 있는 아담을 부르시는 하나님은 환대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은 아브라함의 환대입니다. 나누어주고, 섬기고, 대접해 주는 삶이 환대의 삶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비판받고, 지적받고, 까다롭게 하는 자를 싫어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이해심이 있고, 넓은 아량으로 대해 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장, 단점이 있기에 장점만 보고 환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어떤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고 받아주시는 사랑과 환대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1-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최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죄인들과 식사하는 예수님은 환대의 예수님이십니다. 환대해 주는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에 대해 환대해 주지 않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서나 환대해 주는 자가 잘되고 성공합니다. 교회에서 새가족이나 방문자들을 환대해야 합니다. 누가 교회 오든지 환영해 주어야 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사람을 귀히 여기고,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 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환대해 주는 나라입니다. 서로서로 환대해 주어야 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성령님은 따뜻한 영으로 환대해 줍니다. 연약한 자를 도우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환대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친절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친절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친절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했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친절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친절을 배우고, 교육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친절한 자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불친절한 자는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인사하는 것도 친절인데,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서로 친절하고 환대해 주는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이고, 건강하고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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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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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원 목사 선교13】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현재 280만 여명이 살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보내 주신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주민교회와 한국교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부천에 있는 부천몽골교회와 순복음 부천교회가 좋은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부천몽골교회는 몽골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이는 교회이다.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던 서기원 목사가 귀국하여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동인천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몽골인들이 70%이고 한국인이 30% 모이며 유치부, 유초등부, 청소년부의 모임이 있다. 순복음 부천교회는 부천몽골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외에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로, 해마다 청년들이 해외단기 선교를 다녀온다. 그런데 작년부터 선교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해외로 단기선교를 가지 않고 부천몽골교회를 찾아와서 함께 수련회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순복음부천교회 청년들이 처음으로 방문해서 함께 수련회를 하기로 의논하고 해외단기선교를 나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부천몽골교회에서 1박 2일의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 시간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순복음 부천교회의 담임목사님도 너무나 좋아하시고 이러한 수련회를 계속 갖기를 원하셔서 올해도 수련회를 가졌다. 올해는 그 교회의 성도들도 함께 참여하셔서 봉사를 하시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이것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을 선교하는 좋은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민교회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 재정적으로 연약하고 교회의 일꾼들도 부족하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재정적인 면이나 일꾼들 면에서 보면 이주민교회들보다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선교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드리며 해외선교와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의 주변에 여러 나라 민족의 이주민 교회들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이주민교회들과 함께 협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보라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음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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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4
  • 【양대식 목사 칼럼31】 리더와 희생의 지혜
    리더와 희생의 지혜 (요한복음 12:24) 희생하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리더가 희생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생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지혜로움입니다. 희생해야 열매 맺게 됩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최고의 리더, 예수님의 삶은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희생의 극치입니다. 희생이 있는 리더가 있는 교회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희생하지 않고, 재주부리고, 요령 피는 리더는 실패합니다. 게으른 자는 희생이 없고, 부지런해야 희생합니다. 쉽게 되는 것은 없고, 리더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목회할 때, 희생해야 하고, 주일예배 시, 네 번 예배드린다면 피곤하더라도 기쁨으로 네 번 설교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자신이 편하려고 부교역자에게 주일 설교 맡기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부교역자에게 새벽이나 금요 저녁은 나누어서 설교할 수 있지만, 주일 설교는 대체로 많이 모이고 무게감이 있기에 담임목사가 희생정신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주일날 설교하면 네 번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목회와 설교를 즐겨야 합니다. 교회의 그릇은 담임목사의 그릇과 비례합니다. 어느 공동체나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몸과 재물, 시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담임목사의 희생하는 모습, 요령 피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하는 리더를 사용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희생이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병들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희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가 성장하게 됩니다. 희생한 만큼 성장합니다. 희생의 고통을 인내로 견뎌내야 합니다. 희생해야 신뢰 얻고, 존경받게 됩니다. 사탄의 속성은 희생이 없이, 쉽게 쉽게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희생 없이 성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함에 있었습니다. 영적 리더는 설교 준비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하고, 글을 쓰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익, 손실 계산하지 말고, 희생정신으로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할 때, 리더십이 세워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유익을 주는 리더로 성장해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하는지, 안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혹시 재정이 부족하면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고, 부교역자나 직원들을 먼저 챙겨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리더가 희생하면 재정도 부족하지 않게 채워지고,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희생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희생하느냐, 요령 피우느냐, 지혜로운 자는 희생을 선택합니다. 희생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주일날 교회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것도 희생의 기초가 됩니다. 게으른 자는 실패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 주님께서 헛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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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30
  • 【서기원 목사 선교12】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에서 이주민선교의 역사는 30여년이 된다. 이주민 선교의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역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연합하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1995년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협의회(외노협)이 만들어졌다. 1995년 1월에 명동 성당에서 네팔 산업 연수생들이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선교단체로 규정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라고 볼 수 있다. 1991년에는 중국어문선교회가 중국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중국교포선교협의회가 구성되고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NCCK)는 1992년에 한국교회 노동자선교협의회를 구성했다. 그 이후 각 교단과 기관에서 이주민선교를 위한 기관들이 설립 되면서 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에 만들어진 기관이 이주민선교 한국교회연합(이선한)이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서로 협력하며 사역을 하였고 이 때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함으로 만들어진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이선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전국의 이주민사역단체들에게 1년간의 후원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었다. 이선한의 모임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산이 되고 2019년에 오륜교회에서 한국교회 이주민선교연합(KIMA)이 공식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연합체로 설립 이후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단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선교, 유학생선교, 국제결혼자선교, 비즈니스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모이는 연합체이다. 함께 기도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세미나를 하면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더욱 다문화사회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다문화사회를 선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때에 다문화 사회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교회와 여러 기관들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우리 보다 앞서 다문화사회를 경험한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다문화사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많이 했지만 교회는 그만큼 노력하지 못했다. 결과 유럽은 역선교를 당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대처를 교회 및 여러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서 협력할 때에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다문화사회, 선교한국을 이루어 갈 것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을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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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8
  • 【양대식 목사 칼럼29】 매력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특징
    매력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특징 (고린도후서 2:14-16)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매력의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매력이 있는 자는 남에게 호감을 주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매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1. 매력 있는 자의 특징 언어 사용이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자세가 반듯합니다. 옷차림이 깨끗합니다. 자신의 내면 관리를 잘하고, 외모 관리를 잘합니다.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의리가 있고, 신실합니다. 긍정적인 자가 되고, 칭찬과 격려에 능합니다. 손해를 보아도 잘 넘깁니다. 옷차림을 깨끗이 하고, 정리•정돈을 잘합니다. 약속을 지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섬기고, 대접합니다. 선물 주기를 기뻐합니다. 나누어주고 나서도 생색내지 않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포용합니다. 남의 비판을 참고합니다. 남에 대해 험담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합니다. 헌신, 봉사하고, 언제나 친절합니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 있고, 돈을 주기도 합니다. 마음을 지키고,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 바라보고 인내합니다. 축복해주고,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계속 배우며 성장합니다.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영향을 끼칩니다. 표정 관리를 잘하며,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언제나 겸손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있고, 배려하며 살아갑니다. 지혜롭게 처신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에 힘씁니다. 매너가 있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매사에 센스가 있습니다. 유머가 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조절합니다. 향기가 되어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양보하고, 사랑을 실천합니다. 남의 단점보다 장점을 봅니다. 보고 싶어 하도록 매력을 키웁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고, 리더십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능력이 있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 자랑하는 것을 조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눈을 마주 보고 대화합니다. 성공합니다. 온유하고 부드럽습니다. 삶에 열매가 나타납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인격이 고상합니다. 시간을 잘 지킵니다. 2. 매력 없는 자의 특징 언어가 거칠고, 거짓됩니다.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신뢰 얻지 못합니다. 일구이언하고, 약속을 어깁니다. 외모 관리와 내면의 관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리•정돈을 못합니다. 교만하고, 사납고, 남의 험담을 잘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센스가 없습니다. 사람을 이용하고, 희생과 헌신이 없습니다. 감사를 모르고 불평합니다. 욕심이 많고, 시기, 질투합니다. 친절이 없고, 무뚝뚝합니다. 게으르고, 성실성이 없습니다. 배려심이 없고, 칭찬과 격려가 없습니다. 자기 자랑만 하고, 언제나 교만합니다. 배움이 없고,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성장과 성숙이 없습니다. 게으르고, 충성심이 없습니다. 받기만 바라고, 섬기고 대접하지 않습니다. 인사성이 없고, 사람을 피합니다. 무질서하고, 계획성이 없습니다. 관계를 깨뜨립니다. 쉽게 화를 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가 없고, 눈치와 센스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계산적입니다. 편견이 있고, 남을 무시합니다. 악하게 살아갑니다. 욕심이 많고, 너무 이기적이고, 감사의 표현도 못합니다. 매력 있는 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고린도후서 2:14-16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리더는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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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4
  • 【서기원 목사 선교11】 총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 협의회
    총회 외국인 근로자 선교 협의회 한국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korean dream을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교회는 이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교단 내에 여러 교회들이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함께 힘을 합하여 사역을 해야 하는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1997년에 총회 외국인근로자 선교협의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부천의 천산 중앙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당시 담임목사이신 조원형 목사(현재 원로목사)가 초대회장이 되었다. 1998년에는 교단에서 해외선교부가 GMS로 발전하였다. GMS가 출범하면서 총회 외국인근로자 협의회가 구성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이 국내 이주민 선교를 귀하게 여긴 증거인 것이다. 협의회는 외국인근로자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서 사역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나갔다.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는 외국인노동자 선교의 증요성을 새롭게 깨닫고 헌신하는 시간들이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총회장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 GMS가 국내 외국인지부를 설립함으로써 협의회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교단 내에서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하는 목사들 중에서 GMS 선교사 규정에 합당한 목사는 국내 지부의 선교사로 허입이 되었지만 선교사 규정에 맞지 않는 목사는 국내 지부에 선교사로 허입이 되지 않고 교단에 속한 목사로서 사역을 하였다. 교단 내에 이주민선교를 하는 여러 목사님들이 있었지만 GMS 국내 외국인지부에는 소속되지 못하고 노회에 소속된 목사로서 이주민 사역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단적으로 이주민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필요를 느껴서 총신대학교에서 2019년에 GMS 국내 다민족사역연합체(다사연) 창립총회를 하였다. 이후 2021년에 정기총회에서 GMS 이주민 선교 연합체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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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2
  • 【양대식 목사 칼럼28】 공동체와 환대
    공동체와 환대(누가복음 15:5-6) 두세 명 이상이 모인 곳은 공동체입니다. 가정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에 소속되어 적응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환대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환대는 배려와 친절, 섬김입니다. 누가복음 15:5-6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죄인들을 환대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주님의 환대입니다. 환대는 사랑의 표현이요, 증거입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환대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21-24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하나님 아버지의 환대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환대해 주고, 환대받는 것이 관계의 열쇠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환대해 주어야 사랑을 느끼고, 적응하고, 정착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주의 이름으로 환대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외되고, 외롭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환대해 주고, 환영해 주는 공동체를 좋아합니다. 범죄하여 숨어 있는 아담을 부르시는 하나님은 환대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은 아브라함의 환대입니다. 나누어주고, 섬기고, 대접해 주는 삶이 환대의 삶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비판받고, 지적받고, 까다롭게 하는 자를 싫어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이해심이 있고, 넓은 아량으로 대해 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장, 단점이 있기에 장점만 보고 환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합니다.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어떤 죄를 지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고 받아주시는 사랑과 환대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1-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최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죄인들과 식사하는 예수님은 환대의 예수님이십니다. 환대해 주는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에 대해 환대해 주지 않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서나 환대해 주는 자가 잘되고 성공합니다. 교회에서 새가족이나 방문자들을 환대해야 합니다. 누가 교회 오든지 환영해 주어야 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사람을 귀히 여기고, 기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 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환대해 주는 나라입니다. 서로서로 환대해 주어야 합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성령님은 따뜻한 영으로 환대해 줍니다. 연약한 자를 도우십니다.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환대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환대해 주는 것은 친절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친절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친절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했습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친절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친절을 배우고, 교육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친절한 자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불친절한 자는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인사하는 것도 친절인데,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서로 친절하고 환대해 주는 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이고, 건강하고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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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22
  • 【양대식 목사 칼럼27】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리더는 팁을 주는 자 (누가복음 6:38) 미국의 문화는 팁을 주는 문화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한 후, 호텔에 머문 후 어느 정도의 팁을 줍니다. 팁을 받은 자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리더는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준다고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받기보다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직장에서 월급 주고, 직장에서의 활동 중에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되나 나를 위해 누군가가 시간내어 섬겨주면 팁을 주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모든 면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운전하는 운전사가 교회 행사 외에 외부로 차량 운행 할 때 어느 정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위해 일을 시킨 후에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팁을 받으면 더 열심히 기쁘게 일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운전해 준다든지, 어떤 일을 해줄 때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바라보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나 팁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는 자가 승리하고 복 받습니다. 받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주는 자는 지혜자입니다. 주는 것은 사랑과 섬김의 실천입니다. 주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자신과 남을 위해 유익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받으면 기억하게 됩니다. 돈 버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팁을 주는 것도 선한 일에 쓰여지는 재물입니다. 팁을 받으면 신나게 일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고 나서 잊어야 합니다. 주는 것은 선행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심부름을 시킨 후 팁을 주어야 합니다. 팁을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요, 삶의 매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받기만 합니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 위해 돈을 쓰고 남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적인 자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생 주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녀에게 유산을 미리 주지 말고,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다가 남으면 자녀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미리 주면 받은 후에 마음이 변해 부모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혜롭게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삶의 처세술입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팁을 주면서 사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리더는 팁을 주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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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1
  • 【서기원 목사 선교10】 DMN의 시작
    DMN(diaspora Mongolian network)의 시작 DMN은 2000년도에 한국에서 몽골인 사역을 담당하던 사역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몽골인 모임은 전국에 100여 곳이 되었다. 대부분이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몽골인 모임이었다. 구정과 추석 명절에 몽골인 모임은 연합으로 수련회를 하였다. 2박 3일 동안 집회를 가지며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사역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수련회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몽골인선교를 위한 선교단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선교단체 이름을 DMN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DMN의 비젼은 "흩어진 몽골족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운다."였다. 당시에 한국에는 많은 이주민들과 이들을 위한 선교단체가 있었지만 이주민들을 디아스포라선교의 관점으로 선교하게 하신 것은 몽골교회에 허락하신 크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DMN은 초기부터 선교의 대상을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족으로 했다. 한국에 있는 몽골인, 내몽골과 브리야트 및 중앙 아시아에 있는 몽골인, 일본, 호주, 미국, 유럽에 있는 몽골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연합하여 예배를 드리며 제자훈련을 하고 선교훈련도 했다. 몽골교회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와 다른 많은 교재들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도움은 한국교회나 사회 기관에서 해결하게 하고 DMN은 오직 전도와 일꾼을 세워서 파송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모든 교회에서는 거듭나고 헌신된 목회자나 선교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결국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30여 교회를 세웠다. 또한 단기 선교사로 일본, 호주, 내몽골, 터어키, 미국, 유럽, 중앙 아시아에서 사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DMN을 세워주시고 귀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당시에 많은 이주민선교단체들은 DMN의 비젼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DMN이 이주민선교를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선교, 그리고 현대의 선교까지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이해하면 선교의 큰 흐름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몽골선교를 하는 DMN에게 허락하신 것을 몽골교회들은 감사하고, 더욱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선교가 되기 위해서 더욱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언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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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11
  • 【양대식 목사 칼럼26】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인사가 만사다
    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다 - (잠언 26:10) 어느 단체,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을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이 중요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는데, 의미는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는 일이 만 가지 일이라는 말로서,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인사가 잘못되면, 망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돈을 더 주고서라도 사람을 잘 고용해야 합니다. 좋은 인재, 유능하고, 신실하고, 검증받은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잠언 26: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시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잠언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언 13:17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전도서 3: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사람을 잘 만나야 되고, 잘 써야 공동체가 성장합니다. 사람 잘못 쓰고 고용하면 공동체, 교회, 회사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교회도 담임목사가 중요하기에 담임목사 청빙을 잘 해야 합니다. 회사도 사람을 잘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 잘못 쓰면 실패하고,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병원도 유능하고 좋은 의사를 고용해야 병원이 잘 되게 됩니다. 어떤 단체에서 사람 구할 때, 인정에 매여 아무나 쉽게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력서가 정확히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하고, 면접을 해서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살펴야 합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곳에서 잘했던 자면 다른 곳에 가서 잘할 확률이 큽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게 됩니다. 쉽게 쉽게 사람 구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인내가 있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쉽게 쉽게 직장을 옮겨 다닌 자는 신뢰하기 힘듭니다. 한 곳에서 오래 견뎌본 인내심이 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고용하려는 자가 일했던 과거의 장소에 전화나 다른 방법으로 뒤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평판이 있는지, 소문이 있는지, 일을 어떻게 잘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인간은 정직하지 못하고, 속이는 존재이기에 뒤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철저히 검증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추천서도 중요합니다. 추천하는 자의 인격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추천도 믿을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추천을 받느냐가 중요 합니다. 인정받고, 신뢰받는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사람의 인격도 중요하나, 가능하면 분야에 전문성이 있고, 실력이 있는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가정생활, 가족관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정생활 잘하는 자여야 합니다. 과거에 전과, 죄짓고 사고 쳤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고 친 자는 다른 곳에 가서도 사고를 치게 됩니다.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교육 배경도 알아보아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공부했는지, 학위를 제대로 받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학위도 속이는 시대입니다. 진실성이 있는지, 거짓된지 알아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데, 사람 잘못 쓰면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사람 잘 고용하면 공동체가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인재, 천재, 실력있는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성공을 경험한 자를 고용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구하면, 더욱 좋은 현상입니다. 교회도 일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일꾼이 되는가에 따라 교회가 성장하기도 하고, 침체하기도 합니다. 책임감이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인간관계 잘하는 자를 구해야 합니다. 신뢰받는 자여야 합니다. 무책임하고, 실력이 없고, 게으르고, 약속 어기고, 변명 잘하는 자를 고용하면 큰일 나고, 문제가 생깁니다. 갈등 일으키고, 싸우기 좋아하고, 교만한 자는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은 시대, 사람은 많은데 실력 있고, 유능하고, 좋은 자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잘하는 자보다 못하는 자, 성공하는 자보다 실패하는 자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은퇴하는 목사는 후임 목사를 잘 구해야 합니다. 인정에 매여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목회에 검증된 자, 평판이 좋고 인격이 뒷받침되고, 어느 사역지에서, 어떤 부서에서 성공을 경험한 자여야 합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사람이 고용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데도 어느 정도 원칙이 있고,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단체에서 사람이 누구인가가 너무 중요합니다. 훌륭한 인재를 구해야 하는데, 문제해결의 지혜와 능력을 가진 자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있고, 아이디어가 좋은 인재를 구해야 합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려 하고, 수용성이 있는 자, 지혜 있는 자를 구해야 합니다. 훌륭한 인재가 내 옆에 있을 정도의 인품과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재를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 인재로 만드는 일에 관심 가지고 투자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 교육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쓰면 좋은 성과를 만들게 됩니다. 인정에 매여 자기의 마음에만 들면, 아무나 고용하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후임자 구할 때, 나보다 더 유능하고 좋은 사람을 써야 합니다. 사람을 잘못 세우면 재앙이 임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 좋은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사람이 많다고 일의 효과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통해 역사하기에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잘 구해야 합니다. 만남의 축복,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인재를 구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26-07-04
  • 박성규 총신대학 총장 논문: 총신 125년의 역사-감사, 기억, 도약
    총신 125년의 역사 – 감사, 기억, 도약 박성규 총장 목차 들어가는 말 1. 감사 — 일곱 가지 감사의 내용 2. 기억 — 평양신학교로부터 총신대학교까지의 역사 3. 도약 — 다섯 가지 도약의 과제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오늘의 우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게 하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역사학자 스탠포드 리드(W. Stanford Reid, 1913-1996)는 다음과 같이 역사 연구 및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다. “사람은 자기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지식을 소유할 때 비로소 성장한다. 역사를 아는 것은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성취해 놓은 것을 탐구할 때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들보다 더 전진할 수 있다.” 2026년 5월 15일은 총신 개교 125주년 기념일이다. 이에 지나온 125년간 우리 총신에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호 「신학지남」에서 우리 교수님들은 지나온 125년간 총신 신학교육의 역사를 분과별로 연구하여 게재하였다. 분과별 발전 과정을 연구하여 알려주신 교수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총장으로서 저는 총신의 125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감사, 기억, 도약’이라는 주제로 총신 125년의 역사를 회고하고 전망하고자 한다. 총신 125주년 감사할 것으로는 일곱 가지 감사의 내용을 정리하였다. 기억해야 할 것으로는 평양신학교로부터 오늘의 총신대학교로 이어지는 신학교의 변천을 다루었다. 도약해야 할 것으로는 다섯 가지의 내용을 다루었다. 감사 총신 125년을 회고하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가 된다. 첫째, 개혁신학을 견지한 선교사가 평양신학교를 세운 것이다.설립자인 사무엘 마펫과 동료들은 대부분 역사적 칼빈주의를 가르치는 맥코믹신학교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토대 위에 평양신학교를 세웠다. 그 졸업생들이 한국 장로교회의 기초를 세운 것은 크게 감사할 일이다. 둘째, 부흥 운동을 경험한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를 세운 것이다. 맥코믹신학교는 신학적으로는 프린스톤의 구학파 신학을 계승하고 있었으며, 시카고에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는 무디의 영향 아래서 부흥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이는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셋째, 겨레를 사랑하는 민족 지도자를 배출한 것이다.평양신학교 출신들은 3・1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민족 대표 33인 중 평양신학교 출신이 5명이나 되었다. 길선주(1907년 졸업, 1회), 양전백(1회), 유여대(1915년, 8회), 김병조(1917년, 10회), 이승훈(1915-1916년 재학)이 그들이다.강규찬(10회) 목사는 평양에서의 3·1운동을 주도했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애국적 지도자들이 평양신학교와 그 전통을 이은 총신에서 많이 배출된 것에 감사드린다. 넷째,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한국교회를 지켜낸 것이다. 1934년 남대문교회 김영주 목사는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하는 설교를 했다. 1934년 한국선교 50주년 기념으로 감리교에서 발행하는 아빙돈 성경 주석 번역에 장로교의 채필근, 한경직, 송창근, 김재준이 참여했다. 아빙돈 성경 주석은 고등비평 방법을 채택한 미국 학자들이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 책이었다. 이것을 분별하고 한국교회를 지킨 분이 박형룡 박사였다. 박형룡 박사는 1935년 제24회 총회에 이 문제를 보고함으로써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었다.무엇보다도 자유주의 신학 문제가 발생한 1년 후인 1935년에는 불후의 명저 『기독교 근대 신학 난제 선평』을 발간했다. 무려 847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에서 박형룡 박사는 정통신학이 무엇인지 논증하며,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성서 고등비평, 마르크스주의, 신비주의, 무교회주의 등 다양한 잘못된 신학과 사조를 분석함으로써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었다.박형룡 박사의 역할이 없었다면 한국교회는 1934년부터 이미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에 물들었을 것이며 쇠락하는 서구 교회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다섯째,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를 배출한 것이다.1936년에 한국천주교회는 신사참배를 받아들였으며, 감리교회도 1937년에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선언했다.안타깝게도 끝까지 저항하던 장로교회도 1938년 9월 9일 오후 8시에 제27회 총회를 개회한 후, 9월 10일 오전 11시 30분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결의를 하고 말았다(장소: 서문외예배당, 홍택기 총회장[1924년 졸업, 18회], 김길창 부총회장[1922년, 16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기독교 신앙에 위반되지 않는 애국적 국가 의식으로 규정하고 신사참배를 결정했다.이 결정에 우리의 선배들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도 이렇게 변질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사참배 반대로 200여 교회가 문을 닫았고 2,000여 명의 성도가 투옥되었고 약 50명의 교역자가 순교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특히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고 말씀의 실천을 표어로 삼은 평양신학교의 블레어(William N. Blair, 방위량) 이사장, 로버츠(Stacy L. Roberts, 라부열) 교장 등 모든 교수와 학생들은 신사참배 운동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였다.전국에서 가장 큰 노회인 평북노회가 제일 먼저 신사참배를 결정하자(1938년 2월) 평북노회 목사 후보생이었던 장홍련은 평양신학교 교정에 있던 평북노회장 김일선의 기념식수를 도끼로 찍어버렸다. 이에 일경(日警)은 장홍련, 김양선, 안광국, 장윤성, 지형순, 조윤승 등 다수 학생과 김인준, 박형룡 교수를 불구속 입건했으며, 혐의가 전혀 없는 주기철 목사를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구속했다.주기철 목사(1925년 졸업, 19회)는 갖은 협박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신사참배 반대를 단호하게 천명했다. 주기철 목사는 1938년 2월에 처음으로 검속된 이후, 그해 가을에 2차로, 이듬해 8월에는 자신과 관련이 전혀 없는 ‘농우회’(農友會) 사건에 엮여 3차로 검속되었으며, 1940년 5월에는 4차, 즉 마지막으로 검속되어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교하기까지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최선봉에 서 있었다. 주기철 목사는 증경총회장 김선두 목사(1913년 졸업, 6회), 평북의 이기선 목사(1915년, 8회), 경남의 한상동 목사(1937년, 32회), 평남의 이주원 전도사와 뜻을 모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였다.신사참배를 수용한 대다수와 달리 하나님만을 경외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동료 목사와 성도들이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음으로써 허물어져 가는 한국교회를 지켜낸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여섯째, 하나님께서 평양신학교와 총신대학교를 세우는 헌신자들을 일으키신 것이다.평양신학교는 1901년에 마펫 교장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1908년 평양 하수구리 100번지 언덕에 마련된 5,000평의 대지 위에 신학교를 설립하려고 했던 마펫 교장은 맥코믹 여사(Mrs. McCormick)로부터 1만 1천 원에 해당하는 신학교 건축 기금을 얻었다. 1908년 5월에 기공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다. 신학교 건물은 한식 2층이었다. 2층에는 중앙에 기도실과 교수실이 있었고 4, 5학년 교실이 있었다. 1층에는 1, 2, 3학년 교실, 창고, 수위실이 있었다. 각 학년을 위한 독립된 교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신학교 건물을 완공한 이후에는 마펫 교장의 집에서 신축 건물로 이전했다. 맥코믹 여사의 지원은 계속되었다. 여사는 기숙사 2개 동 건축을 후원했으며, 이 건물은 맥코믹 기념관이라고 불렸다. 1922년에도 평양신학교의 새 건물의 건축을 위해 7만여 원의 거금을 후원했다.이처럼 맥코믹 여사의 후원은 평양신학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59년 통합이 분열하여 나간 후 사당 캠퍼스가 조성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명신홍 박사와 백남조 장로다. 명신홍 박사는 직장암으로 네 차례 수술을 받아 투병 중임에도 도미하여 5만 불의 기부를 약속받아 그중 3만 불을 가지고 귀국했다. 암 환자였으나 그는 기금을 아끼기 위해서 항공편이 아니라 선편(船便)으로 귀국하는 목숨을 건 헌신을 하였다.백남조 장로는 작은 사업을 경영하면서 소원은, 어머니를 모실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당시 살고 있는 집은 판잣집이었다. 좋은 2층 양옥집을 지어 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모은 돈을 바쳐 18,000평의 사당동 캠퍼스 부지를 기부했다. 1981년 양지 캠퍼스 조성에는 법인이사회 부이사장 이영수 목사의 역할이 컸다. 그는 미래 지향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가 대학에 대해 지방분산 정책을 편다는 것에 착안하여 부지를 물색하던 과정에서 현 양지 캠퍼스 부지의 주인이 당시 총신대학교 기획실장 박장하 장로와 알고 지내던 백화양조 강정중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직접 군산으로 달려갔다. 이영수 목사는 시가 5억 원의 부지를 8천만 원을 깎아 4억 2천만 원에 구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강 사장을 설득해 학교에 5천만 원을 학교 건축비로 헌금하게 했다. 학교는 부지 안에 있는 1억 원이 넘는 관상수(정원 조성용 나무)도 무상으로 인수할 수 있었다. 결국 5억 원 상당의 225,329평의 땅을 3억 7천만 원(관상수 값을 제외하면 2억 7천만 원에 구입)에 구입했다. 일곱째, 수많은 동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신 것이다. 목회자와 선교사로 평신도 지도자로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 동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자랑스러운 총신을 세워오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2. 기억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를 회고하며 말씀드리고자 한다. 우리 대학의 이름이 왜 총신대학교가 되었는가를 살펴보면서 평양신학교 이후 오늘 총신대학교까지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한다. (1) 평양신학교(1901-1940) 평양신학교는 1901년에 개교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1940년에 폐교했다고 박용규 교수는 말한다. 1938년 9월 신사참배 문제로 개강을 연기하다가 1940년 폐교할 때까지 한국 장로교 목회자를 배출하는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 한국 장로교회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한편, 한동수 교수는 공식적인 폐교는 1941년 3월 이사회 결의에 의한 교수회의 해체로 본다. 평양신학교의 신학적 정체성은 역사적 칼빈주의, 즉 개혁신학이었다. (2) 후 평양신학교(1940-1950) 신사참배 반대로 평양신학교가 개강을 연기하는 중 1938년 9월에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비극적인 총회는 신학교를 복구하기로 결정하고 1940년 4월에 채필근을 교장으로 신학교를 개교했다.이것을 ‘후(後) 평양신학교’라고 부른다. 총회 신학교육부 부장 조희염이 1940년 제29회 총회에 제출한 경과보고에 의하면, “평양신학교를 설립코자 인가 신청을 소화 14년(1939년) 10월 17일 평남도청에 제출하였던바 본년(1940년) 2월 9일에 조선 총독의 인가를 받아서 동 4월 11일에 개교식을 거행하였사오며”라고 했다.채필근은 진보주의자요 친일 인사였다. ‘후 평양신학교’는 평양신학교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지 않은 친일 어용신학교였다. 심지어 채필근은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의 사택까지 가로챈 인물이었다. 1950년까지 존재하다 공산정권 아래 사라지고 말았다. (3) 조선신학교(1940-현재, 한신대학교) 1940년에 김재준을 중심으로 서울의 승동교회당에서 조선신학교가 시작되었다. 총독부의 감시를 받는 상황에서 조선신학교는 처음부터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할 수 없었다. 신학교 명칭마저 ‘조선신학원(朝鮮神學院)’에서 ‘조선신학원(朝鮮新學院)’으로 바꾸었다. 더 이상 조선신학원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아니었다.이 조선신학원이 오늘의 한신대학교이다. 1945년에 해방을 맞아 미군정이 시작되자 조선신학교는 미군정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가받았다. 송창근과 한경직은 전임교수로 조선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조선신학교는 1946년 6월 12일 제1회 남부대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받았다. 1947년 4월 12일 전문학교령에 의한 설립 인가받았다. 7월 12일에는 유지재단 인가와 정규대학 인가를 받아신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대학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조선신학교 재학 중인 51인이 총회에 조선신학교의 신학 사상, 특별히 김재준의 신학 사상을 조사해 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김재준은 문서설을 수용하고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아 홍수와 바벨탑 기사의 역사성을 부인했다.총회 심사위원회에서 김재준의 신학 사상이 장로교 전통과 배치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김재준은 사과 성명서를 냈다. 그 후 51인에 조동진을 비롯한 10명이 가세하여 한국의 신학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박형룡 박사 귀국 운동을 전개했다. (4) 고려신학교(1946-현, 고신대학교) 조선신학교의 51인 진정 사건에 앞서,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고려신학교를 설립했으며 박윤선 목사를 교장 서리로 세웠다. 메이첸을 따르는 독립선교회 소속 선교사들과 메이첸이 세운 정통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교수진에 합류했다. 1947년에는 만주 봉천신학교에 가르치던 박형룡 박사가 귀국하여 제1대 교장으로 취임했다.박형룡 박사가 교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조선신학교에 재학하던 51명 중 30명 정도가 고려신학교로 적을 옮겼다. 하지만 고려신학교는 총회의 인준을 받지 않았고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박형룡은 고려신학교 교장에 취임한 지 6개월 후 교장직을 사임했다.사임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박형룡은 고려신학교가 미국 정통장로교회 선교부만이 아니라 미국 남·북 장로교회 선교부와 호주장로교회 선교부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총회의 인준을 받아 전(全) 총회의 기도와 관심과 후원을 받아 전국교회의 학생들을 받아들여 목회자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서 신학교육을 해야 더 전국적으로 영향을 키우며 자유주의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고려신학교의 입장과 달라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5) 장로회신학교(1948-1951) 총회 안에 보수적인 이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신학교 설립을 추진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1948년 6월 장로회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조선신학교는 신학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총회가 마련한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의 ’조선신학교 개혁안’을 거부했다. 고려신학교는 총회의 인준을 받지 않았으며 인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제3의 신학교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48년 3월 15일 대전제일교회당에서 신학교 문제를 협의했으며, 1948년 5월 20일 창동교회에서 모여 신학교 설립을 결의했다. 이사장에 이정로 목사, 교장에 박형룡 박사를 세우기로 했으며, 6월 3일 서울 남산 성도교회를 임시교사로 개교했다. 우리는 총회 주도의 장로회신학교 설립을 옛 평양장로회신학교 정신과 신학의 복구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박형룡 박사는 1948년 6월 9일 채플에서 열왕기상 6장 1-7절을 본문으로 ‘선지학교의 중건’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는데, 이때 나온 총신의 교훈인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는 다섯 가지 문구는 총신의 교훈이 되었다. 1949년 4월 19일 새문안교회에서 모인 35회 총회(총회장 최재화)에서 장로회신학교를 총회 직영신학교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6) 총회신학교(1951-1969) 1947년 51인 학생들의 진정 사건으로 시작된 김재준 교수의 신학 사상 문제는 1950년 4월에 열린 제36회 총회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립과 다툼으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1950년 9월 1일 속개하기로 하고 정회하였으나 6·25전쟁으로 1951년 5월 25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제36회 총회가 속개되었다. 총회는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총회 직영을 취소했으며, 총회가 직영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총회신학교라고 부르는 신학교를 대구에서 개교하기로 결의했다.여기서 총신대학교의 이름이 유래하게 된다. 1951년 9월 1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는 감부열(Archibald Campbell)을 교장으로 박형룡, 한경직, 권세열, 명신홍, 김치선을 교수로 대구 서문교회에서 개교했다. 1952년 6월 29일 대구에서 회집한 제37회 총회에서 김재준을 경기노회에 명하여 목사 면직하기로 결의하였다. 그의 죄목은 ‘성경의 축자 영감 부인’, ‘오경의 모세 저작 부인’ 등이었다. 그러나 조선신학교의 아성이었던 경기노회의 전필순, 유호준 등은 총회의 결의를 거부했다. 따라서 1953년 4월 24-29일 대구서문교회에서 회집된 제38회 총회(총회장 명신홍)는 “목사 김재준 씨는 제36회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성경유오설을 계속 주장하였으므로 권징조례 제6장 42조에 의하여 목사직을 파면하고, 그 직분을 주 예수의 이름과 그의 직권으로 금하노라”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조선신학교측은 1953년 6월 10일 조선신학교 강당에 모였고 9개 노회 47명의 대표자가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를 결성했다. 한편 감부열 교장이 교장직을 사임하고 박형룡 박사가 교장에 취임했다. 1953년 9월 2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서문교회당에서 교장 취임식을 거행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되어 총회신학교는 1953년 10월 21일 서울 남산으로 학교를 옮겼다. 신학교 임시교사는 남산에 있는 기독교박물관(관장 김양선)이었다. 남산에서 수업받았기 때문에 총회신학교는 남산신학교로 널리 알려졌다. 총회신학교는 양극단인 조선신학교(기장)와 고려신학교(고려파)가 나간 상황에서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이 시대에 복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1959년에 WCC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통합측이 분열해 나갔다.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한 44회 총회가 WCC에 관한 의견 충돌(경기노회 총대권: WCC 지지측과 반대측 총대 중 어느 측을 총대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진행이 어려워져서 총회 5일 차인 9월 28일 증경 총회장들에게 대책을 강구하여 오도록 오전 11시까지 정회하였고, 속개 후 증경총회장 일동의 다음의 보고를 채용하기로 가결하였다. “1. 현 총회의 정세 하에서는 회의를 원만히 진행하기 곤란하므로 동년 11월 25일 화요일까지 정회하고 그전까지 경기노회 총대는 개선하여 오도록 할 것(단, 계속 회의 장소는 새문안교회로 할 것) 2. 특별위원회를 원·부총회장과 각 노회장으로 구성하고 총회 당면한 문제를 수습하도록 하여주실 것.”이었다.총회는 이 보고를 받아 정회를 결의하고 정회하였는데, WCC 지지측 일부 총대들이 정회한 당일인 9월 28일 대전 미락식당에서 총회 속개 준비 회의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가 바로 다음 날 9월 29일에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여 총회 임원을 개선하였다. 이것은 정회 결의를 위반한 행동이었다. 이를 연동측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WCC를 반대하는 측은 증경 총회장단이 제안한 대로 11월 24일 오후 7시에 승동교회당에서 속개하여 새로운 임원을 개선하였다. 이를 승동측이라고 부른다. 연동측은 통합교단이 되었고 승동측은 합동교단이 되었다. 총신이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합동측이 증경 총회장단의 보고를 받아 정회를 결의한 시간을 지켜 총회를 속개했기 때문이다. 둘째, 교단이 나누어질 당시 문교부에 등록된 총회신학교 교장 대리는 합동측의 노진현 목사였기 때문이다. 셋째, 평양신학교 도서관의 책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신측이 1959년 11월 17일과 18일에 신학교를 기습하여 1만 권의 장서와 학교 집기류를 가져가려 하였으나 직원인 김정걸 집사가 목숨을 걸고 트럭 밑에 들어가 막아서는 헌신과 기숙사 학생들의 저지로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한 직원의 변심으로 학적부를 장신측에 돈을 받고 넘긴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넷째, 평양신학교 때부터 내려오던 「신학지남」을 우리가 계속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신측에서 발행하려고 했으나 발행인이 박형룡으로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다섯째, 평양신학교의 신학적 정통성을 가진 교수였던 박형룡 박사가 계속 총신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신대학교는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내용은 총신의 연혁(沿革) 중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67년 5월 4일 총회신학교는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인가를 받았다. 1967년 6월 12일 대학령에 준하는 각종학교로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7)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1969-1975) 1969년 12월 24일 드디어 숙원이던 대학인가를 받았다. 인가받은 대학의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이었다.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이유는 대학 인가를 받으려고 문교부에 서류를 제출할 때 교단 지도자들의 뜻을 따라 정한 것이었다. 신학대학은 총회가 직접 직영해야 한다는 총회의 집념이 총회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 총신대학(1975-1995) 대학 인가를 받음으로써 교수와 학생들의 기쁨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린 말 가운데 하나는 학교의 명칭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은 얼마나 긴 명칭인가? 이와 같은 긴 교명을 바꾸기로 한 것은 학교 인가를 받은 지 5개월이 경과한 후였다. 총신대학 이사회는 이 긴 이름을 줄여서 ‘총신대학’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교부에 교명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것이 통과되어 1975년 12월 16일 학교명을 ‘총신대학’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었다. (9) 총신대학교(1995-현재) 1995년에는 규모는 작으나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총신대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학부의 학과, 신학대학원, 통합대학원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9년 대학인가 시 신학과 인가, 1973년 종교교육과(현, 기독교교육과), 종교음악과(현 교회음악과) 인가, 1978년 대학원 인가, 1980년 역사교육과, 영어교육과, 보육과(1984년 유아교육과로 변경) 인가, 이렇게 여러 학과를 인가받게 된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처럼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앞선 지도자들의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1980년 신학대학원 M.Div. 과정 인가, 1987년 대학원 박사 과정 인가, 1998년 아동학과 인가, 2001년 사회복지학과 인가, 2013년 중독상담학과 인가, 2012년 산업교육학부 계약학과의 인가를 받았다. 3. 도약 감사와 기억에 이어 우리는 미래를 향해 도약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도약을 위해서 우리는 이 시대를 알아야 한다. 이 시대는 ‘VUCA 시대’라고 한다. ‘VUCA’는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군사 전략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경영, 정책,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실제로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이제 ‘정답을 아는 인재’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하고 협업할 수 있는 인재’를 우선시한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총신의 교육은 이런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시대를 분별하며, 총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목회와 선교, 평신도 지도자의 삶을 사는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또한 방향을 잃은 교회와 사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총신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건학 이념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도약할 수 있다. 우리 총신이 세워진 건학 이념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린다. 우리의 건학 이념은 개혁신학이다. 개혁신학은 언약 신학에 기반해 성경의 절대 권위,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와 문화 변혁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우리의 사명은 개혁신학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키는 것이다. 그 신학교육을 통해 개혁신학과 개혁신앙으로 무장된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건학 이념인 개혁신학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즉 개혁신학의 실천이다. 거기까지 나아가야 도약할 수 있다. 왕이신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사람, 성경 말씀으로 통치하시기에 성경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 때 우리 대학은 도약할 수 있다. 또한 문화 변혁의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 대학은 도약할 수 있다. 캠퍼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교수, 직원, 학생이 개혁신학, 개혁신앙, 개혁실천을 시행하고, 학생들은 졸업 후에 총신에서 배운 개혁신학, 개혁신앙, 개혁실천을 삶의 모든 현장에서 구현할 때, 우리 졸업생들이 가는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는 놀라운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총신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 총신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총신을 주권적으로 도약시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바라시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전통은 계승하고 전통주의는 걸러내야 도약할 수 있다. 둘째, 전통은 계승하고 전통주의는 걸러내야 도약할 수 있다. 전통과 전통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역사 신학자인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Jan Pelikan, 1923-2006) 박사는 『전통을 옹호함』(The Vindication of Tradition)이란 책에서 이런 중요한 말을 했다. “전통은 죽은 자의 산 신앙이며, 전통주의는 산 자의 죽은 신앙이다”(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전통은 성경적 문화를 말한다. 전통주의는 비성경적인 문화를 말한다. 전통은 그것을 만든 돌아가신 분들이 오늘의 성도를 살린다. 왜냐하면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주의는 오늘의 성도들을 죽인다. 왜냐하면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총신에 전통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전통주의는 아닌지, 이 시간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 한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비성경적인 문화라고 말씀하시면 그 전통주의를 과감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총신이 살아날 수 있다. 우리 총신에는 과거에 받은 상처들로 인해서 잠재된 성경적이지 않은 전통주의가 남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인 개혁신학과 신앙, 그리고 실천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다. 이런 부분에까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인다면 총신대학교는 세상에 없는 대학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총신대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차별성이 될 것이다. 총신대학교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사 그 아들의 피를 흘려 구원하신 총신의 동료를 사랑하고 선배를 사랑하고 후배를 사랑한다면, 총신은 놀라운 도약을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비밀병기는 성경적 가치관과 성경적 삶이다. 성경 말씀이 우리 삶에 녹아들 때 비로소 총신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상황에도, 어떤 도전에도 도약하는 총신이 될 것이다. 총신의 도약을 위해 전통주의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나면 경건과 학문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셋째, 경건과 학문을 균형 있게 갖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해야 도약할 수 있다. 경건의 바탕이 없는 학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학문일 수 없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가장 높이 들고 나아가는 인재를 양성해야 총신대학교는 도약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1880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를 설립하며, 모든 학문과 삶의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신념을 교육의 기초에 두었다. 그는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참된 교육이 완성될 수 없다고 보았다. 교육은 인간의 지성을 연마하는 과정에 머무르지 않고, 의지와 감정, 신앙을 아우르는 전인적 성숙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이퍼는 이를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며, 각 영역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학은 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세계를 섬길 수 있는 전인적 인격과 공적 책임을 지닌 시민을 길러내는 장이었다.이것이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총신대학교의 비밀병기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면서도 학문적인 탁월함을 가진 인재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바울 사도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그는 경건의 능력과 더불어 학문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하며, 국제적인 사역을 감당했던 것이다. 경건과 학문의 균형을 갖춘 리더는 글로벌 리더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교회와 사회를 살리는 역량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총신대학교의 학부와 신학대학원과 통합대학원(일반대학원, 목회신학전문대학원, 선교대학원, 교육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상담대학원, 교회음악대학원, 통일개발대학원)에 들어오는 학생마다 경건과 학문을 겸비한 인재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을 더 넓고 깊게 감당하게 될 것이다. 경건과 학문을 겸비한 인재들은 자기 소명의 자리로 나아가 자신을 던져야 한다. 넷째, 소명의 자리로 나아가 자신을 던지는 인재들이 있을 때 도약할 수 있다. 칼빈은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교회의 목회자(pastors) 양성과 사회의 평신도 지도자(civil servants)를 세우는 것이었다. 또한 국제적 개혁신학의 센터를 세워 유럽 전체에 개혁신학을 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사실 이 아카데미의 이념은 이미 1541년의 교회령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이 교회령에 의하면,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언어와 인문교육을 받아야만 목회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목적을 위해서 대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라틴어, 헬라어, 그리고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사학을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제네바 아카데미를 살펴볼 때, 칼빈이 신학 공부에 있어서 인문학적 훈련을 매우 중요시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는 초·중등 과정으로서의 스콜라 프리바타(schola privata)와 고등 과정인 스콜라 푸블리카(schola publica)로 조직되어 있었다. 칼빈은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한 후 유럽 전체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은 통나무를 보내주십시오. 우리는 불붙는 장작을 만들어 돌려보내겠습니다!”그리하여 이 제네바 아카데미에는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의 청교도와 같은 많은 기독교 지성인들이 찾아와서 배우고, 자국으로 돌아가서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였다. 칼빈의 사상과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어 폴란드, 헝가리까지 전파되었고, 남서 독일에도 개혁교회가 확대되었다. 그의 약속대로 제네바 아카데미 출신은 유럽을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을 붙이는 역할을 감당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 1514-1572),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서의 공동 저자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Kaspar Olevianus, 1536-1587),칼빈주의 5대 교리(TULIP)를 확립한 도르트 총회의 총회장 요하네스 보거만(Johannes Bogerman, 1576–1637)이 제네바 아카데미 출신 목회자이다. 한편, 평신도 지도자로는 외교관이요 학자이며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레이안 도서관을 세운 토마스 보들리(Thomas Bodley, 1545-1613)등이 있다. 총신대학교가 이렇게 시대를 바꾸는 인재들이 자라나며 마침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부흥시키고 대한민국 사회와 지구촌 사회를 변혁시키는 열매가 나타나기를 개교 125주년에 기원한다. 다섯째, 신학자인 목회자, 목회자인 신학자를 키워내야 도약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자신을 목회자로만 또는 신학자로만 규정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지만, 교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자적인 목회자(scholarly pastor), 목회자적인 학자(the pastoral scholar)의 예가 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많은 청교도들, 에드워드, 스펄전, 로이드 존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사랑한 목회자였으며 탁월한 신학자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견고한 신학이 목회 사역의 실천을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목회 사역의 실천이 신학에 대한 이해와 감사를 더욱 깊게 하고 높여 주는 것과 같다. 우리 시대 목사요 신학자이며, 신학자요 목사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베들레헴교회를 담임하는 존 파이퍼와 트리니티 신학교의 도널드 A. 카슨 교수이다. 파이퍼 목사는 신학적으로 잘 준비된 목사의 모델이 되어왔다. 카슨 교수는 목회적인 관심이 많은 학자로 모범이 되어 왔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고 말한다. 또한 목사와 교사는 잘 가르칠 수 있어야만 한다(딤전 3:2)고 말한다. 그들은 좋은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 목사가 잘 가르치는 효과적인 교사가 된다면, 그는 교회에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일은 성경을 잘 살피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여, 그것을 자기 성도들에게 이해할 수 있고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 목사는 학자가 되어야 한다. D. A. 카슨은 여러 목사와 교수를 소개하면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첫째로, 공식적인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적 호기심과 엄밀함, 집중력과 인내력, 그리고 고독한 연구와 저술의 재능인데, 이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둘째로, 이러한 재능 중 일부는 계발되고 함양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고 또 도달해야 한다는 듯이 임의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학자들은 결코 탁월한 목회적 은사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목회자들은 결코 은사 있는 학자로서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균형은 필요하다. 목사는 학자로서의 소양을 계발해야 하고 학자는 목사의 소양을 계발해야 한다. 목회자들에게는 지성적 삶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임할 것을 촉구하고, 학자들에게는 교회의 삶에 더욱 깊이 참여할 것을 도전하면서 데이비드 매티스(David Mathis)는 다음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우리의 모든 사려 깊은 목양과 모든 목회적 학문이 예수님에 관한 복음의 메시지가 우리 안에서와 우리 백성들 안에서 풍성히 거하게 하는(골 3:16) 위대한 목적을 위한 것이 되게 하소서. 영원토록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의해 점점 더 형성되고, 흠뻑 젖어가며, 변화되어 가게 하소서.” 총신의 근간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이다. 우리의 학생들이 학자적인 소양을 충분히 갖추도록 앞서 살펴본 제네바 아카데미처럼 경건과 학문의 균형을 이루며, 학문에 있어서는 영어,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고 인문학의 토대가 놓여야 한다. 총신대학교 신학과가 이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신학대학원에 가서 더 깊은 신학을 배워갈 수 있고, 평생에 학자적인 소양을 가지고 목회할 수 있다. 또한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학자들은 현장 목회를 깊이 관찰하고, 참여하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를 진단해야 한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더욱 성령님의 인도 가운데,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서 교단 교회를 관찰하고 정밀한 진단을 하여 개혁신학에 기반한 건강한 교회들을 세우는데, 더 깊이 헌신해야 한다. 1934년 일어났던 한국교회의 자유주의와 진보주의 도전 앞에 박형룡 박사는 바로 그다음 해에 답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1935년에 나온 『기독교 근대 신학 난제 선평』이다. 무려 847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에서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등 그 당시 신학적 이슈에 대한 개혁신학적 답을 내놓았고, 그것이 한국교회를 살린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국교회는 1934년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졌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내일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이런 구조를 가져야 한다. ‘교회가 묻고 총신이 답하다.’ 또한 총신의 도약은 한국의 개혁신학의 세계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개혁신학을 가진 신학교 중에 가장 역동적인 총신은, 우리의 개혁신학을 전 세계에 펼쳐감으로써 세계 개혁신학의 진영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세계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그 왕의 말씀의 권위를 최고로 높이며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강력하게 확장되는 일에 총신이 헌신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고자 한다. 나가는 말 총신의 125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감사, 기억 도약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내용을 요약하고 나가고자 한다. 총신의 역사 125년을 회고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 참 많았다. 첫째, 개혁신학을 견지한 선교사가 평양신학교를 세운 것이 크게 감사할 일이다.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에 물든 선교사가 세웠다면 한국교회는 이렇게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부흥 운동을 경험한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를 세운 것이 감사할 일이다. 부흥의 DNA를 경험한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한국교회 부흥 운동에 큰 동인이 되었다. 셋째, 겨레를 사랑하는 민족 지도자를 배출한 것이 감사할 일이다. 어떤 대학교, 어떤 신학교가 3·1운동의 민족 대표에 다섯 명의 동문이 들어갔는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신학교와 겨레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었다. 넷째,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한국교회를 지켜내게 하신 것이 감사할 일이다. 여기에 마포삼열 박사와 박형룡 박사의 공로가 컸다. 다섯째,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를 배출하게 하신 것이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따른 목사가 평양신학교 출신들이었다. 여섯째, 하나님께서 평양신학교와 총신대학교를 세우는 헌신자들을 일으키신 것이 감사할 일이다. 맥코믹 여사로부터 명신홍 박사와 백남조 장로 그리고 무명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고결한 헌신은 오늘의 총신을 세웠다. 일곱째, 수많은 동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하신 것이다. 총신이 역사 125년을 회고하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학교의 변천이 있다. 1. 「평양신학교」(1901-1940년) 한국교회 목회자 양성으로 한국교회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하였다. 2. 「후 평양신학교」(1940-1950년) 아픈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신사참배를 찬동한 사람들이 세운 신학교이다. 평양신학교의 신학을 계승하지 않은 친일 어용신학교였다. 3.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1940-현재)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를 가르치는 신학교이다. 1947년 4월 51인의 조선신학교 재학생이 김재준 박사의 신학 사상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총회에 제출하면서 문제가 확대되어 1953년 38회 총회에서 ‘성경의 축자 영감 부인’, ‘오경의 모세 저작 부인’ 등으로 목사직을 파면하자, 그해 기독교장로회 총회를 결성하여 분열하여 나갔다. 4.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1946-현재)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한상동 목사 등이 세운 신학교이다. 박형룡 박사가 초대 교장이 되었다가 6개월 만에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첫째, 고려신학교가 미국 정통장로교회 선교부만이 아니라, 미국 남·북 장로교회 선교부, 호주 장로교회 선교부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총회의 인준을 받아서 전 장로교회의 기도, 관심 그리고 후원을 받아야 생각했다. 셋째,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서 신학교육을 해야 전국적인 영향력을 키우며 자유주의 신학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5. 「장로회신학교」(1948-1951년) 조선신학교는 신학적 문제가 있었고, 고려신학교는 총회 인준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평양신학교를 이어가는 신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장로회신학교를 세웠다. 1948년 6월 9일 채플에서 박형룡 박사가 열왕기상 6장 1-7절을 본문으로 ‘선지학교의 중건’이라는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의 내용에 총신의 교훈이 있다. 1949년 35회 총회에서 총회직영신학교가 되었다. 6. 「총회신학교」(1951-1969) 조신신학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장로회신학교까지 총회 직영을 취소하고 새로운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총회신학교라고 명칭을 정한 이유는 총회가 직영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1951년 9월 18일 대구 서문교회에서 개교했다. 그런데 1959년 WCC의 신학적 문제로 WCC를 지지하는 통합측이 분열하여 나가서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세웠고, 우리는 개혁신학을 지키면서 여전히 총회가 직영한다는 의미에서 총회신학교라고 불렀다. 7.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1969-1975) 1969년 12월 24일 대학 인가를 받았다. 대학의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이었다. 신학대학은 총회가 직접 직영해야 한다는 총회의 집념이 이렇게 긴 이름을 짓게 한 것이다. 8. 「총신대학」(1975-1995) 대학 인가를 받아서 기뻤지만, 학교명이 너무 길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사회가 이름을 줄여서 학교명을 「총신대학」으로 바꾸었다. 9. 「총신대학교」(1995-현재) 1995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총신대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총신은 미래를 향해 도약해야 한다. 첫째, 건학 이념을 기억하고 실천함으로써 도약해야 한다. 개혁신학을 배우고, 개혁신앙으로 믿고, 개혁실천으로 우리의 신학을 실현할 때 총신은 도약할 수 있다. 둘째, 전통은 계승하고 전통주의는 걸러내야 도약할 수 있다. 전통은 성경적인 문화이며, 전통주의는 비성경적인 문화이다. 셋째, 경건과 학문을 균형 있게 갖춘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해야 도약할 수 있다. 경건의 바탕이 없는 학문은 생명력이 없고, 학문의 역량이 부족한 인물은 확장성이 부족하다. 넷째, 소명의 자리로 나아가 자신을 던지는 인재들이 있을 때 도약할 수 있다.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생애를 던지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다섯째, 신학자인 목회자, 목회자인 신학자를 키워내야 도약할 수 있다. 총신은 신학이 중심이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다.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 이제 글을 마치고 나가면서 총신을 오늘까지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참고문헌 1. 국내 단행본 100년사 개정위원회. 『총신대학교 100년사』, 개정판.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23. 100년사 편찬위원회. 『총신대학교 100년사』, 제3권(자료편).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3. 김남식. 『해원 정규오 목사』. 서울: 새한기획출판부, 2007. 김남식 편저. 『이영수 목사, 그 삶과 꿈』.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2. 김선욱·박신순. 『마포삼열』. 서울: 숭실대학교출판국, 2017. 김요섭. 『존 녹스』. 서울: 익투스, 2019. 라은성. 『이것이 신앙고백이다: 돌드레히트 법규』. 서울: 페텔, 2023. 마키다 요시카즈. 『도르트총회, 기독교 신앙을 정의하다』. 이종전 역. 인천: 개혁파신학연구소, 2019.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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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nema, Donald, Christian Moser, Erik A. de Boer, and Herman J. Selderhuis, eds. The Convening of the Synod of Dordt.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23. Abstract 125 Years of Chongshin University: Gratitude, Memory, and Leap Forward Sung-kyu Park (President, Chongshin University) This study reviews the 125-year history of Chongshin University(founded 1901) under three themes: gratitude, memory, and a leap forward. The section on 「GRATITUDE」 identifies seven reasons to thank God. Missionaries grounded in Reformed theology founded the Pyongyang Theological Seminary, and their revival experiences shaped Korean church growth. The seminary produced national leaders central to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1919), protected the Korean church from liberal and neo-orthodox theology through figures such as Samuel A. Moffett and Hyung-nong Park, and raised up martyrs who refused Shinto shrine worship. God also raised devoted benefactors who sacrificially supported the institution, and countless alumni have expanded the Kingdom of God worldwide. The section on 「MEMORY」 traces nine institutional stages from the Pyongyang Theological Seminary (1901–1940) to the present Chongshin University (1948–present), demonstrating that Chongshin stands in legitimate theological continuity with the Pyongyang Seminary's Reformed heritage. The section on 「LEAP FORWARD」 presents five imperatives: practicing the founding ideology of Reformed theology; distinguishing living biblical tradition from dead traditionalism; producing leaders who balance piety and scholarship; cultivating those willing to lay down their lives for their calling, following Geneva Academy graduates such as John Knox, Johannes Bogerman, and Thomas Bodley; and training pastor-scholars and scholar-pastors in the tradition of Calvin, the Puritans, John Piper, and D. A. Carson. Chongshin University's 125-year history is a testament to God's sovereign grace, calling the institution forward in Reformed faithfulness, sacrificial heritage, and transformative leadership for the glory of God. Key Words: Chongshin University, Pyongyang Theological Seminary, Reformed Theology(Reformed Faith, Reformed Practice), Tradition and Traditionalism, Piety and Scholarship, The Pastor as Scholar, The Scholar as Pastor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신학지남 2026년 여름호, 제93권 2집. 통권 제367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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