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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울노회남전연, 돌다리교회에서 순회예배 및 월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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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울노회 남전도회연합회(회장 박재석 장로) 제46회기 제3차 순회헌신예배 및 월례회가 9월 12일 오후 5시 구리시 소재 돌다리교회(김정현 목사 시무)에서 열려 예배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순회헌신예배는 회장 박재석 장로의 인도로 부총무 신용산교회 허요한 집사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표어 제창, 4부회장 양흥철 장로(후암중앙)가 기도, 이완수 집사(돌다리)가 창 12:1-4을 봉독, 돌다리교회 글로리아찬양단이 찬양했다.
노회장 · 돌다리교회 김정현 담임목사가 ‘믿음으로 보고 섬기는 성도가 되라’란 제목으로 “아버지와 고향을 떠나 하란에 도착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며 복을 약속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이 순종해 가게 됐다.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라갈 때 넘치게 채워 주신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복의 사람이 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과 같다.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축복이 나의 것이 된다. 믿음으로 보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믿으면 복을 받는다.”라고 설교했다.
회계 박승국 집사(동대문중앙)가 헌금 기도, 다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 지교회 부흥과 중서울남전도회연합회 부흥을 위하여 / 돌다리교회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 산사태로 큰 피해를 당한 네팔의 회복을 위하여’ 뜨겁게 합심기도 후 31대 증경회장 박상준 장로(금남)가 마무리 기도했다.
김형준 장로가 돌다리교회 소개, 총무 이재근 집사(청평)가 광고 후 노회 전도부장 김동문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월례회는 회장 박재석 장로의 사회로 30대 증경회장 이학영 장로가 기도, 서기 김남석 장로가 13개 교회 회원 65명이 참석한 것을 보고해 개회, 총무 이재근 집사가 전회의록 낭독 · 사업 보고, 회계 박승국 집사가 회계보고 했다.
안건토의
① 가을야외예배: 10월 17일(토) 오전 10시 상천루. 부부동반
② 남전연 순회 헌신예배: 11월 7일(토) 오후 5시, 후암교회
이어 주기도로 월례회를 마치고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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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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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노회 천서제한...타 노회와 형평성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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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노회가 제111회 총회에서 천서제한됐다.
이유는 중앙노회에 대한 제110회 총회 결의를 이행해 달라는 목적으로 서기 김용대 목사가 시무하는 영광대교회 앞에서 시위했다는 것이다.
이에 천서위는 총회 법에 근거해 천서를 제한했다.
그러자 중앙노회는 서울지방법원에 “천서제한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는데 기각됐다. 그러나 기각의 사유는 천서제한이 잘 했다거나, 혹은 중앙노회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기각 판결의 사유를 정리하면,
현 단계에서 본 노회 총대들의 총회 참석이 제한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점,
본 노회 총대들이 총회에 참석하여 천서에 관한 의견을 밝힐 수 있다는 점,
실제 천서제한이 이루어질 경우 천서제한 결의뿐 아니라 그 이후 이루어진 총회 결의의 무효확인 또는 효력정지를 구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러므로 총회 개회시 천서위원회가 천서할 때 총대 전체에게 중앙노회 천서 건에 대해 물어 가부로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가처분을 기각한 것이다.
중앙노회는 서기이자 천서위원장인 김용대 목사가 시무하는 영광대교회에서 시위했다는 명목으로 천서제한됐다.
그런데 모 노회가 작년 총회 현장에서 시위한 자들과 속한 노회의 천서를 제한해 달라는 헌의를 했다. 그러나 시위를 했음에도 천서가 된 노회가 있다.
그렇다면 천서위의 결정은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이것은 천서위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기준은 같아야 한다. "이랬다 저랬다"하면 그 결정을 누가 신뢰할 수 있는가?
천서위는 이같은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전 총대들에게 명확히 밝혀야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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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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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천서위원장, 공정한가? ...의문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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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회 총회를 앞두고 천서 문제가 시끄럽다. 아직 천서 문제가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노회는 총회회관 앞 시위 문제로 천서 제한됐으며,
부회록서기 후보 김광철 목사가 속한 경일노회는 심사중이고,
21당회 이상으로 보고했음에도 천서 문제로 시끄러웠던 남경기노회는 총회 3일 전에 천서됐다.
그런데 제110회 총회를 전후하여 시위를 했음에도, 또한 21당회가 되지 않음에도 천서된 노회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김용대 천서위원장과 같은 구개혁측이란 점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어느 노회는 봐주고, 어느 노회는 봐주지 않는 형태의 천서위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이는 추후 소송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고무줄 판단 기준이 사법적 판단을 예고하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를 전 총대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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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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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기총 제13차 총회, 제2차 준비 연합성회·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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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기총 제13차 총회, 제2차 준비 연합성회·기자회견 및 월기총 AI연구원 제6차 세미나가 9월 11일 오전 7시에 조은교회에서 있었다.
정진희 이사장이 "월기총 정기총회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기도회에 많은 참석과 기도를 부탁드린다."며 "오늘 준비기도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라고 인사말했다.
예배는 정진희 목사(월기총 이사장)의 인도로, 김영애 목사가 기도, 김복례 목사가 빌 4:13, 박선규 목사가 마 4:23을 봉독, 월기총 찬양단이 찬양했다.
정도출 목사(월기총 명예총재·조은교회 원로)가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란 제목으로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을 고쳐주셨다. 우리도 주님을 믿는 자로서 주님의 일을 이어서 해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확신을 갖고 하면 된다. 월기총도 이름대로 될 것을 믿고 활동하면 된다. 월기총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한다.”라고 설교 후 헌금하고, 정도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제2부 특강·축사·기자회견
상임총재 강영준 목사가 “월기총 총회를 앞두고 준비기도회로 모인 것에 감사드린다. 한마음으로 총회를 준비하는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으로 믿는다. 훌륭한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환영사했다.
고은실 교수(월기총 찬양총재)가 “겸손하게 내려 놓아야 한다. 수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횡적으로 코이노니아해야 한다.” 찬양 특강했다.
기자회견은 정진희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했다.
기자 1. 월기총 제13차 총회 2차 준비 기자간담회 연석개최 하심을 감사합니다. 목회자사모신문에 *CWC사모부흥사회 설립준비 본격화*란 보도관련 설립 준비위 구성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겠어요?
정진희: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이에 대하여 강상수 총재님과 상의한 바, 월기 총부흥사회가 이미 설립됐으니, 월기총부흥사협의회로 활성화 하면서 협의회와 함께 사모부흥사회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이는 목회자사모신문 피종진 이사장님과 설동욱 발행인님의 자문을 받아 구성 추진해 나아갈 계획입니다.
기자2.이에 대하여 강상수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자세한 내용은 카톡 등을 통해서 전달하고 상의 하겠습니다.
기자3. 9월 18일, 10월 2일 준비성회는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강영준 목사: 이미 공지된 기도제목과 제1.2차 준비성회를 참조로 상의하고, 카톡과 통화로 의논하면서 카톡 등을 통해 전달 하겠습니다.
박승주 총재 질의 응답.
기자: 박승주 총재님께서는 앞으로 월기총의 중점사역으로 치매예방과 치유건강 사역을 어떻게 실행하실 예정인가요?
박승주 총재: 먼저 월기총의 중요한 중점사역으로 치매예방과 치유건강 사역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현장에서 치매건강 사역을 경험하면서 치매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교회, 지역사회가 함께 예방하고 돌봐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월기총에서 "치매는 예방하고, 건강은 함께 지킨다"는 방향으로 다음과 같이 추진하겠습니다.
1. 치매예방 교육과 건강세미나 확대를 하겠습니다.
교회와 노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치매예방, 뇌 건강, 올바른 식생활, 운동, 수면과 생활습관 등에 관한 교육과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겠습니다.
2. 교회 중심의 건강돌봄 공동체 구축에 힘쓰겠습니다.
어르신들이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뿐만 아니라 건강상담, 예방교육, 운동과 소통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도록 돕겠습니다.
3. 전문가•가족과 함께하는 생명돌봄 네트워크 구축 의료•건강•상담•복지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검증된 건강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또한 치매환자 가족과 보호자를 위한 교육과 상담, 기도와 돌봄도 강화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월기총의 치매예방 치유건강 사역이 단순한 건강 프로그램을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선교적 생명사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국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 어르신들에게는 건강과 희망을, 가족들에게는 위로와 힘을, 지역사회에는 사랑과 섬김을 전하는 월기총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박 총재님의 말씀대로 치매예방과 건강증진 사역이 잘 실행되어 국민 건강과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합심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 회견 후 폐회하고 식당으로 옮겨 정도출 목사 제공하는 조식을 나누며 친교했다.
인사 및 광고 — 정진희 목사
1.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시고 조찬을 마련해 주신 정도출·정성욱 목사님과 조은교회에 감사드립니다.
2. 순서를 맡아 섬겨주신 임원들과 취재를 위해 참석해 주신 기자님들, 그리고 모든 참석자께 감사드립니다.
3.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신학교회(김춘환 목사) 및 10월 2일 오전 10시 30분 참사랑교회(김명주 목사)에서 열리는 제13차 총회 준비성회와 기자회견을 위해 기도와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4. 10월 9일 오전 7시 제13차 정기총회 장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서울신학교회를 놓고 의논 중입니다. 관련 공문을 제출한 뒤 최종 장소를 공지하겠습니다.
5. 월기총 정기 연합성회·세미나·기자회견은 앞으로 매월 첫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월기총 임원 교회를 순회하며 진행할 예정입니다.
6. 월기총부흥사협의회 사모부흥사회 지원사업의 하나로 월기총정보통신선교회(회장 신태명 선교사)를 통한 통신 관련 지원사업도 추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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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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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후보자 청문회인가? 편먹기인가? 삥뜯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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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묵동에 소재한 모 교회에서 성격이 이상한 모임이 있었다.
김00, 정00, 최00, 김00 목사 등 총회 활동을 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목사들이 총회 후보자 중 몇을 불러 “당선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을 묻는 청문회인지? 차담회인지를 했다.
이 모임의 성격을 모르고 참석했던 모 후보는 “차 한잔 마시는 모임인지 알고 갔었는데 여러가지를 질문 받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자리에 모 임원 후보와, 모 부장 후보도 질문자들과 한편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름 총회 정치의 한 세력인 이들이 후보들을 불러 청문회인지, 차담회인지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들의 세력을 보이고 이에 동조하라고 한 것인가? 자기들 뜻에 따르면 선거에 도움을 준다는 제안을 한 것인가?
‘참외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는 말이 있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정치색 짙은 이 목사들이 후보들을 부른 이유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으며, 후보 신분으로 이들과 함께 후보들을 면접한 모 임원 후보와, 모 부장 후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추후 법률검토를 통하여 실명을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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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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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위임 박요한, 대표자 증명서 발급받아...결의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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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노회 제명출교자 신분으로, 분쟁중인 천안중부교회 담임반대 측에 위임된 박요한이 대표자 증명서를 발급받아 논란이다.
박요한은 9월 11일 총회를 찾아 대표자 증명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요한은 광주전남노회 소속으로 이전 소속 전남노회에서 제명출교당했다.
그럼에도 타노회에 임시당회장으로 갔고, 임시당회장은 담임이 될 수 없는데, 작년 성탄절에 정임원 주도로 위임됐다.
지난 9월 1일자 기독신문에 의하면 천안중부교회와 관련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총회임원회(총회장:장봉생 목사)가 천안중부교회 사태 해결을 위해 김종천 목사와 박요한 목사 양측을 각각 대표자로 인정키로 했다. 또 양측에 원하는 노회로의 이적을 허락하고, 절차에 따라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면 대표자증명서를 발급키로 했다.
한 교회에 담임이 두 명이라는 희한한 결정도 문제지만, 아직 양 측이 노회 이적을 하지 않았고, 결과가 총회에 보고되지도 않았는데 박요한은 대표자증명서를 10일 후 발급 받았다.
본지의 파악에 의하면 총회장의 직접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박요한과 관련해서는 끝없는 절차무시가 이어진다.
당시 박요한을 천안중부교회 임시당회장으로 보낼 것을 임원회에서 강하게 주장했던 서만종 부서기는 공동의회나 위임은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바로 그렇게 했다. 또 혹시 두 목사를 담임으로 인정했더라도 대표자 증명은 양 측이 노회 이적을 한 후 총회에 보고되면 하기로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대표자 증명을 발급받았다.
박요한이 대표자 증명서를 발급받은 목적은 무엇인가? 교회 재산에 손 댈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박요한의 불법과 탈법, 절차무시는 이처럼 끝이 없는데 왜 임원회는 이처럼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가?
박요한의 뒷배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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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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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기노회는 천서 통과, 경일노회는 천서 심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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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서기 김용대 목사가 9월 11일 오전 11시에 모인 임원회 후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시간에 남경기노회 천서 문제가 해결됐음을 밝혔다. 그래서 현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가 총회장으로 취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됐다.
아울러 “천서위원회는 경일노회 천서 건에 대해 성문화된 법과 서술적 논리 사이에 기도하고 있다.”며 “천서 심의중”이라고 말했다.
경일노회에는 부회록서기 후보 김광철 목사가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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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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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목사 안수 의혹기사...“사실 확인위해 잠정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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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목사의 목사안수자격 문제에 대한 사실 확인에 있어 오차가 있어 잠정적으로 기사를 내립니다.
육 목사의 목사 안수 나이에 대한 의혹 제보가 있어 91-92년도에 안수 받은 사람들과 관계 기관, 자료를 통해 취재해 의혹 기사를 내보냈으나 이 당시 헌법 개정 진행 중으로 개정 시점 적용 차이에 의해 안수 연령 30세가 된 시점에 오차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최종 확인시까지 본 기사는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육 목사에게 문자로 문의했으나 답변이 없어 취재한 것을 근거로 의혹 기사를 작성했고, 추후 소명하면 기사화 할 것을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기사에 대한 이의제기는 없었음을 밝힙니다.
어찌되었든 사실 확인이 좀 더 철저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육 후보와 독자들, 안수한 노회로 기재된 경기노회에 사과드리면서 기사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추가 기사 첨부
육 목사의 안수 연령 기사가 나간지 하루가 지나서, 그당시 헌법 개정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아 우선 긴급히 기사를 내리고 이 사실을 먼저 독자들에게 알린 후 자료를 받아 검토했습니다. 검토결과,
목사 자격 연령을 만 27세에서 만 30세로 변경하는 안건은 1991년 9월 열린 제76회 총회에서 가결됐으나 총회에서 개정안이 가결됐다는 사실만으로 즉시 효력이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헌법 개정안은 노회 수의 절차를 거쳐야 했으며, 1992년 총회에서 노회 수의 결과가 확인되고 공포됨으로써 비로소 시행됐습니다. 공포 이후 목사안수 최저 연령은 만 30 세 이상으로 1993년 헌법에 반영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기사 후 제보로 확인된 관계로 의혹 기사는 완전히 삭제하고, 다시 한번 헌법 개정 사항을 면밀히 살피지 못하고 의혹 기사를 만든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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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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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대 · 안창현 임원의 “완장질”....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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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위원인 서기 김용대 목사와 회록서기 안창현 목사가 남경기노회와 경일노회 천서에 대해 도를 넘는 완장질을 하고 있다.
이 둘은 두 노회 천서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가 9월 8일 가까스로 남경기노회의 천서를 통과시켰다. 차기 총회장인 정영교 현 부총회장은 남경기노회 소속이다. 두 사람은 차기 총회장의 목줄을 쥐고 큰 권세를 부렸다.
또한 경일노회 천서 건은 11일에 최종 결정한다. 합동타임즈 발행인 현 노회장(직무정지 중) 김기현 목사 건과 부회록서기 김광철 목사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이 일들을 보며 다시한번 “완장”의 힘을 느낀다.
완장(腕章)은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다.
소설가 윤흥길이 ‘완장’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는데 재밌으니 김용대, 안창현 목사는 읽어보기 바란다. 그게 바로 당신들이 하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김용대 목사는 어떻게 서기가 됐는가?
목사면직으로 서기 후보 탈락한 서만종 대신 총회 현장에서 된 것이다. 전문용어로 “날로 먹은 것”이다. “어부지리” 서기이다.
안창현 목사는 어떻게 회록서기가 됐는가?
그는 2024년 군산남노회에서 부총회장으로 출마하고자 한 김영식 장로와 경선 투표해 30 대 30으로 동수가 나왔으나, 임직(장립)이 더 앞서 최종적으로 총회 부회록서기 추천 후보가 됐다. 이 또한 전문용어로 “날로 먹은 것”이다. 목사는 30대 초반에 임직하고, 장로는 40대 이후에 장립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투표 결과이다.
이 둘은 장봉생 총회장과 함께 천안중부교회 불법위임식도 강행해 다같이 경찰소사를 받았다.
이런 과거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차기 총회 임원 목을 움켜쥐고, 나름 호남 교권의 핵심 인사가 되었나보다.
한마디로, “많이 컸다” 그러나 “날로 먹은” 사람들이며, “과대포장”됐다.
이처럼 교권을 날로먹은 사람들이 완장을 차니 뵈는 것이 없나보다. 함부로 칼을 쓰고 있다.
성경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는 행동을 보니 “실소”가 나올 뿐이다.
이제 임기가 끝나니 더 이상 총회에서 안 보기를 바란다.
완장은 차기 정임원들이 사용해야 하니 잘 반납하고 목사의 본분인 목양에 전념하기를!
사족으로, 둘 다 다음 단계 임원을 계획한다는데 지난번처럼 "날로" 먹는 요행수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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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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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미, 110회 장봉생 “정책”총회…마감하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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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회 장봉생 총회장 시기가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시점에 기독신문은 칭찬일색의 기사를 사설로 작성했다. 떠나는 사람에게 덕담을 해주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교단을 책임진 교단장으로서 과연 박수"만" 받고 떠날 수 있을까?
장 총회장은 “정책”총회를 표방했다. “정책(政策)은 정부나 정치 단체, 개인 등이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취하는 방침이나 수단”을 말한다.
그러나 “정책”총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했다.
장 총회장은 후보시절 작년 9월 2일 3차 총회준비위원회로 모인 원주중부교회에서 선관위를 향해 해서는 안될 지시를 했다. “고광석 목사를 후보로 확정하고, 부서기 서만종 목사는 건들지 말라” 이 당시 취재하고 있던 본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과연 자신도 후보이면서 후보를 관리하는 선관위에 “지시” 할 수 있는가? 이때 총준위 모임에 배부되었던 장봉생 목사의 정책총회에 대한 책을 버려두고 교회를 떠나왔다. 말과 행동이 다른데 책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정책은 법과 원칙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자신이 후보이면서, 아직 총회장이 되지도 않았으면서, 혹시 총회장이 되었다해도,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어떻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본인이 생각한 “정책”총회인가?
고광석 목사는 7000만원 수수건으로, 서만종 목사는 목사면직건으로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후보로 올리고, 서기가 되도록 하라는 것인가? 사두다!
또한 어떻게 작년 12월 25일 저녁에 전남노회에서 “제명출교”된 목사의 위임식에서 설교할 수 있는가? 이런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일에 관련된 정임원들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이 일이 벌어진 천안중부교회는 여전히 분규중이다. 그런데 사법은 김종천 목사의 담임목사직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제명출교”된 자를 반대 측 담임으로 위임하는 일이 가능한가? 또 이 일을 성탄절에 하는가? 성탄절을 이렇게 능멸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이제와서는 “제명출교”자도 담임으로 인정하자고 결정했다. 그럴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 어찌 한 교회에 담임목사가 2명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이 장 총회장이 구현하고 싶었던 “정책”총회인가? 사미다!
이 외에도 할말은 많으나 추후 기회가 될 때 다시 언급할 것이다.
큰 기대를 했다가 느낀 배신감은 더 크다. 많은 기대를 하고 지지했는데 사두사미로 끝난 110회기가 이제라도 끝이나니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110회 총회를 "정책"총회였다고 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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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8
오피니언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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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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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부족한 종이 본 교단 총회세계선교회 GMS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어제(2026년 9월 3일) GMS 이사장직의 2년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큰 사고나 어려움이 없이 잘 마치고, GMS 선교단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GMS 본부 임원과 직원들과 함께 겸손히 섬겼습니다.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곧 GMS 명예 이사장으로(임기 2년, 9월 3일) 추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명예 이사장의 분수에 맞게 성실히 최선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이사장 임기 동안 본 교회인 진주성남교회의 온 성도들의 기도와 여러 가지로 GMS를 위해 헌신했고, 주일 예배나 공예배 때마다 대표 기도할 때, GMS 본부와 GMS 파송 선교사와 파송 국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선교에 앞장서는 진주성남교회 당회원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GMS 소속 전 세계 파송 선교사 약 2,600여 명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과 파송하여 헌신하는 교회와 담임목사님들 그리고 GMS 이사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사장직을 마치며 시원하면서 서운함도 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목회에 전념하며 본 교단 GMS 선교단체를 위해 기도하고 겸손히 섬기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GMS 이사장 2년 임기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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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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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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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선교의 훈련장
백령도에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이 준공되어 개관예배를 드렸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 순교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역사는 일본과 북한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인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에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역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힘을 모아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110회 총회에서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력한 가운데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동안 여러 면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이 기념관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 기념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첫째는 한국교회가 식어 버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토마스 선교사 및 다른 많은 순교자들의 헌신의 피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헌신과 희생을 그동안 우리는 잊고 살았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가 순교의 피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기념관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
둘째는 선교의 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로부터 받은 복음을 세계 만민에게 전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전하는 것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온 300만의 열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별히 백령도에 세워진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은 북방선교에 집중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북방은 지역적으로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 아시아를 가리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운 지역이다.
토마스 선교사도 북한에서 순교를 당했고 백령도가 위치한 곳도 북한과 가장 최근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방에 대한 선교교육과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북방을 향한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도 이곳을 방문하면 배로 4시간의 선상에서 바다를 보면 기도할 수 있고 백령도에 와서 많은 경관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념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 북방선교의 훌륭한 교육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이곳을 한국교회가 사랑하며 잘 사용할 때에 잃어버린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고 복음통일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부흥이 시작되리라고 믿는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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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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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34】 리더와 융통성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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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와 융통성의 중요성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융통성은 영어로 'flexibility'입니다. 융통성은 관계와 삶의 지혜입니다. 진리 문제만 아니면 융통성을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지나친 고집, 융통성이 없어 다투고, 관계가 깨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리더는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19-23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은혜받고, 융통성이 있는 자로 변했습니다. 리더가 융통성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해 융통성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한 영혼 구원과 화목을 위해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융통성이 없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는 것이 융통성입니다. 한 가지에 목숨 걸고 고집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융통성의 리더십(flexible leadership)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넓은 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융통성이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마음이 좁은 자이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고, 양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조금 손해를 보고, 양보하여 갈등을 줄이고,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여 관계가 깨지고, 사람을 잃게 됩니다. 관계가 깨지고 사람을 잃는 것은 큰 손해입니다. 융통성이 부족한 자들이 많습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쉽게 분노하고, 남을 판단합니다. 융통성을 가진 자는 이해심이 있고, 사랑으로 행합니다. 융통성이 있으면 관계가 잘 됩니다. 죄와는 타협하지 말아야 하나,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면 이해하고, 융통성을 가지고 행동하고, 말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의자를 어디에 놓아야 하느냐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기에 서로 이해하며 융통성을 가지고 의자를 배치해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어 다투고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융통성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리더, 바울은 융통성을 가지고 사역했습니다.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자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칙을 지키되, 방법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융통성을 가진다는 것은 우유부단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 닙니다. Yes와 No를 부드럽게 해야 하며, 거절할 때는 거절하고, 해야 할 말은 하되, 부드럽게 대처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해 이해할 때, 융통성을 가지고 대할 수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부러집니다. 사람을 얻고 더 좋은 관계를 위해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융통성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술과 지혜입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고, 갈등이 생겼을 때, 타협하기 힘들고,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문제가 커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힘듭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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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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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33】 리더와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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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설교 주제 : 리더와 문제 해결 (전도서 10:10, 야고보서 1:5)
인사
나 자신 소개
미국 시카고에서 17년간 이민 목회했다.
2007년, 진주성남교회 부임, 19년째 목회하고 있다.
호주 선교사, 알렌 선교사에 의해 설립
102주년 된 교회이고, 선교 지향적 교회이다.
현재, 전 세계 13가정 선교사 파송했다.
하나님만 기쁘게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인사가 중요하다.
바울 서신, 제일 먼저 인사했다.
인사 잘하는 자는 누구나 좋아한다.
서로 인사하자.
무뚝뚝한 자를 싫어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가정이 중요하다.
사역의 기초가 가정이다.
부부관계가 중요하다.
가정을 지켜야 하고, 서로 귀히 여겨야 한다.
GMS 선교사들 모임 때, 가정의 중요성(이유 설명)을 강조했다.
긍정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갈렙과 여호수아, 사도 바울).
부정적인 자는 실패한다.
긍정의 마음으로 긍정의 생각을 해야 하고, 긍정의 말을 해야 한다.
인생철학이 있어야 한다(성경적이어야 한다).
나의 인생철학, "의리 지키자" 의리는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의리의 하나님이시다(다윗과 요나단의 의리 관계).
배은망덕하지 말자.
주면서 살자.
주는 것의 효과가 크다.
하나님이 돈을 주신 이유는 “주면서 살려고”이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리더는 주는 자이다.
고난이 있으나, 고난이 유익하다.
이 말씀은 정답이다.
고난을 통과해야 쓰임 받고 복을 받는다.
나의 간증
고난 후에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한 예, 여러 가지 고난이 있었다(죽을 고비 세 번).
목회하면서 당한 고난과 위기가 있었다.
고난의 때, 해석을 잘해야 하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당하면, 기쁘게 여겨야 한다(믿음의 해석, 긍정의 해석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목회와 삶, 하나님의 은혜였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난 중에 받은 은혜가 있다.
진주성남교회에서 공동의회하고, 청빙 받은 후, 청빙이 무산되었었다.
이유: 아들이 미국 시카고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이 1년에 5천만원, 교회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빙 무산(황당)
해명: 아들이 장학금 받으니 돈을 안 주어도 된다고 말하니 다시 오라고 해서 부임했다
노회에서 미국 시민권 포기를 요구했는데, 포기했다(너무 이상하고 황당했다).
시민권보다 목회를 선택했다.
청빙 받을 때의 상황
예감, 연락 올 것 같았다(미국, L.A. 국제 개혁 대학 특강).
맨 마지막 설교 부탁했다.
청빙 설교: 긍정으로 해야 한다(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
‘포도원의 작은 여우 잡으라’, 이런 부정적인 설교하면 탈락 된다.
설교가 중요한데, 설교가 길다고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30분 정도).
더 듣고 싶어 할 때, 설교를 마쳐야 한다.
리더가 중요하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결정된다.
리더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전도서 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관계가 전부이다.
관계가 중요하나, 힘들다.
깨지기 쉽다.
관계 잘 맺는 비결이 많다.
친절, 대접, 섬김, 겸손, 선물, 지혜로운 언어 등이다.
죄와 욕심, 이기심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관계가 잘되어야 성공한다.
선교와 목회는 관계이다.
리더는 성실해야 한다.
성실은 신실함과 충성인데, 신실해야 신뢰받는다.
신뢰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지런해야 한다.
희생, 헌신해야 한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희생 없이 열매가 없다.
리더는 돈을 쓰는 자, 팁을 주는 자이다.
리더는 정리, 정돈을 잘해야 한다.
리더는 글을 써야 한다.
말은 사라지나, 글은 남는다.
성경은 글이다.
바울 서신은 바울이 남긴 글, 성경이다.
리더는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이다.
"Leader is problem solver", "리더와 문제 해결"이라는 글을 써서 책을 출판했다.
문제는 시험인데,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한다.
시험 들면, 큰 문제가 생긴다.
문제 해결의 예,
'교역자들과의 다툼과 갈등 해결'
'교회에서 문제 일으키는 중직자 해결의 예'
'GMS 이사장 사역 중, 교회 비우게 되는 문제 제기 해결의 예'
선교가 중요하다.
GMS 섬기면서 외친 내용
'기도가 중요하다.'
'기도가 선교의 기초이다.'
'선교는 쉽다.'
'선교하는 자는 행복하다.' '주는 자가 복을 받는다.'
'선교하는 교회가 부흥된다.'
'선교하는 인생이 복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신뢰해야 한다.
예, 하나님은 공급자이시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상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임마누엘)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치유하신다(여호와라파).
출애굽기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영적 리더는 말씀 한 권의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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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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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4】 이주민 교회들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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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교회들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재정적인 어려움과 일꾼의 부족함이다. 몽골에서 돌아와서 부천몽골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컸다. 몽골인 초신자들과 함께 시작하다보니 헌금이 적을 뿐만 아니라 몽골 현지 선교사로 사역할 때 후원하셨던 분들이 이주민선교를 이해하지 못하여 후원을 중단하였다. 그러므로 매월 내야하는 교회 임대비를 걱정하게 되었다. 교회에는 일꾼들이 없고 소수의 성도가 초신자여서 교회의 여러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또한 나름대로 재정을 마련해 보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응답이 없었다.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이주민교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응답을 주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하게 하셨다.
‘강남 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부천몽골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말씀하여 주셨다. “나그네와 같은 몽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라.”는 응답을 받고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내주셨고 여러 성도들이 모이며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이 늘어갔다. 또한 아내에게는 경인여자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불러주시고, 나는 서울의 어느 회사에서 매주 신우회를 인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이주민 선교를 이해하시는 분들이 선교헌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셨다. 또한 몽골선교에 헌신한 평신도분들도 찾아와서 교회를 돕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많은 이주민 사역자들이 이주민선교를 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일꾼의 부족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해하며 많은 분들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힘들어하는 이주민 사역자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또한 사역자들도 어려운 기간은 하나님께서 훈련하시고 준비하시는 기간임을 알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시간에 놀랍게 채우시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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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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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43】 후회 없기 위해서 삶을 돌아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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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명의 독자가 읽고 독일과 스페인 등 5개국에서 번역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이은 신작 산문집. 많은 작품을 통해 그만의 인생관을 세상에 알린 작가로 여행자로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들이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실의 힘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더욱 깊어진 이해에 문체의 매력이 더해져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기대감이 커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당하는 기분의 연속이다. 그렇듯이, 그의 글에는 가벼움과 깊이가 공존한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사람은 말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전달된다고 믿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새는 해답을 갖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자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자신을 정의하라」 「나의 지음을 찾아서」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으로」 「성장기에 읽은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 「웃음은 마지막 눈물 속에 숨어 있었어」 「플랜A는 나의 계획, 플랜B는 신의 계획」 「자기 앞에 놓인 길을 볼 수 있다면」 등 글의 힘으로 많은 독자의 삶을 변화시켜 온 작가의 글 42편 수록.
글들을 한 편 한 편 읽고 있으면 불꽃놀이가 터지는 유리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다양한 부호들이 쏟아진다. 청각과 후각의 예민함을 언어화해 나가는 뛰어남이 느껴진다. 그래서 열심히 읽게 된다. 문장에서 힘을 받고 내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예스24
생각해볼만한 내용들이 많다. 특히 남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심금을 울렸다. 류시화의 책을 더 읽을 것이다.
삶에서 불행한 일을 겪은 후, 그 불행 감정을 오랫동안 껴안고 있는 사람들의 결론을 압축하면 ‘이번 생은 틀렸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 에 없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 감정은 확증 편향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다. 또한 그 확증 편향이 진리인 양 마음을 닫아 건다. 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의 심리학자가 되지 못할까? 우리는 한때 얼마나 옳았는가? 또 나중에 돌아보면 얼마나 틀린가?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p. 19).
우리는 상처받은 자에서 치유자로 여행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여행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술가에게 상처를 입혀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가한 상처가 걸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짐의 무게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는 방식이다. 부서진 크레용도 여전히 색을 가지고 있다. 그 부서진 크레용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p. 36).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환영받는다고 느끼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준다고 느끼고, 지지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친절은 상담료를 받지 않는 심리 치료이다. 칼 융이 말했듯이, 모든 이론을 알고 심리 기법에 통달한다 해도 한 인간 영혼을 대할 때는 단지 따뜻한 인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상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상실감은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p. 44).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혼이 뼈와 만나는 저 안쪽에서 어떤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저마다의 가슴에는 있다(p. 49).
힘든 시절이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리라. 그러나 돈이든 그 무엇이든, 지금 '절벽 끝'에 몰려 있다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갑자기 절실하게 만든다. 그 중요한 순간에 생명력이 솟고 우리는 신이 토해 내는 숨결이 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망칠 곳은 없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하늘을 만들고 자신도 몰랐던 날개가 돋는다. 무엇인가 절실하게 갈구한 모든 순간이 날개였다. 그 절(p. 57)박함과 간절함이 내게는 날개였다. 날개를 잃었다면 떠올려 보라, 날개가 돋았던 어느 순간을(p. 58).
저녁 무렵, 한 젊은 여성이 전철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노을을 감상하며 가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중년 여인이 올라탔다. 여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큰 소리로 투덜거리며 젊은 여성의 옆 자리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 앉았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옆으로 밀어붙이며 들고 있던 짐가방을 그녀의 무릎 위에 걸쳐 놓았다. 그녀가 처한 곤경을 보다 못한 맞은편 남자가 그녀에게, 왜 옆 사람의 무례한 행동에 아무 항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 여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언쟁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걸지 않으니까요. 나는 다음 정거장(p. 84)에서 내리거든요."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허비하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단점을 들추고, 잘못을 비난하며, 불쾌감 속에 시간 흘려보내는가?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상처를 입혔는가? 진정하라. 함께하는 여행이 짧다.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고, 속이고, 모욕 주었는가?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라. 함께하는 여행이 곧 끝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히는가? 기억하라, 우리의 여행이 짧다는 것을. 이 여행이 얼마나 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내릴 정거장이 언제 다가올지 그들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p. 85).
이런 이야기가 있다. 평생을 경건하고 독실하게 살아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다섯 시간씩 신에게 기도했다(p. 96). 하지만 무신론자인 동생과 다르게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아내는 그를 떠났으며, 동업자는 배신했고, 자식들도 연락을 끊었다. 반면에 평생 한 번도 기도한 적 없는 그의 동생은 훌륭한 아내와 충실한 자식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누렸다. 죽어서 신 앞에 선 경건한 남자는 물었다. "저는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불평하는 타입이 결코 아닙니다. 아내가 떠났을 때도 당신께서 정해 주신 섭리를 믿으며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등을 돌렸을 때도 당신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왜 이 모든 불행한 일이 무신론자인 제 동생에게 일어나지 않고 매일 다섯 시간씩 기도한 저에게 일어난 건가요?" 신이 말했다. "왜냐하면 그대는 재미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매일 다섯 시 간씩 그대의 기도를 듣느라 나도 지겨웠어. 지루하게 살지 말라고 내가 그토록 속삭였는데 듣지 않았어." 묘비명에 '최선을 다했다.'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지루하게 살았다.’가 적히면 안 되지 않겠는가(p. 97).
한 남자가 영적 스승을 찾아와 물었다.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승이 말했다. "바보들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남자가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p. 109).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그렇다, 그대의 말이 옳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은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돌아서면 나의 가슴과 의지에 따른다. 받아들임과 흘려보냄, 이 전략을 나는 계속 실천해 나갈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와 논쟁한다면 그것은 죽은 자와 논쟁하는 것이다. 누구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기에. 무기 같지도 않은 무기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대신, 빠르게 동의하고 자신의 시간을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는 것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관계법이다. 무의미한 논쟁을 끝내고 삶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내공이 아니라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내공이다.
밀림 속에서 동물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불필요한 의견 충돌 없이 서로 양보하고 도와 가며 평화롭게 지냈다. 어느 날 호랑이와 당나귀 사이에 사소한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논쟁이 촉발되었는지 아는 동물은 없지만, 당나귀가 한 말에 호랑이가 짜증을 내며 "풀은 초록색이야!" 하고 외치는 것이 들렸다. 당나귀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더 크게 외쳤다. “아니야, 풀은 파란색이야!” 그 후 “초록색!” “아니야, 파란색!,” "초록색이라니까!", “파란색이라니까!” 하고 연거푸 고성이 오갔고 시간이 가도 논쟁은 멈(p. 110)추지 않았다. 둘의 논쟁에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편이 갈려 ‘초록색!’ ‘파란색!’을 외쳤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밀림의 세계가 파국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동물들은 그들의 왕 사자를 찾아가 판결을 부탁했다. 사자는 당나귀와 호랑이의 주장을 듣고 나서 잠시 심사숙고한 후, 호랑이가 틀렸다고 엄숙히 선언했다. 판결에 따라 호랑이는 소란을 일으킨 죄로 1년 동안 밀림에서 추방되어야만 했다. 떠나기 전에 호랑이는 사자를 찾아가,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당나귀 편을 들고 자신을 벌했느냐며 하소연했다. 사자가 말했다.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인 걸 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너를 벌한 것이다. 논쟁을 하려면 자신보다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함으로써 너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네가 벌을 받는 진짜 이유이다."(p. 111).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에게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밤 늦게 전화를 걸어 곧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클은 새벽까지 그 여성에게 말을 걸 었고, 그녀가 삶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들을 하나씩 제시했다. 긴 설득 끝에 그녀는 목숨을 끊지 않겠다고 그에게 다짐했다. 나중에 그녀를 직접 만났을 때, 빅터 프랭클은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근거 중 어떤 것이 그녀의 결심을 번복하게 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단순히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랭클이 의아해하며 설명을 부탁하자, 그녀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그의 자세가 그녀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게 하고 삶을 살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한다. 마음속에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품고 사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기차 안에서 만난 그 인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내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들었다. 모든 만남의 궁극적인 의미는 조언이나 설교가 아니라 포옹이다. 포옹이 필요한 사람에게 강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p. 120).
일상의 순간에 예술적 생명감을 불어넣은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특출난 사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를 죽어라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 '재미있게'라는 단어를 넣으면 더 완벽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특출난 사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를 '재미있게' 죽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좋아하는 것이 세상과의 유쾌한 승부가 된다(p. 132).
우리는 시도하고, 시도하다가 생을 마치는 운명이다. 그것이 시든,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그대가 '이룬 것'을 들고 내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툴고 거칠더라도 혼을 담아 ‘시도한 것’을 들고 오면 더 좋겠다. 그러면 나도 이 삶에서 시도한 것들을 보여 줄 것이다. 겨울 속에서 봄을 시도하고, 불완전한 환경에서 완전한 사랑을 시도하고, 굴레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깨달음을 시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많이 다른 존재가 아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또 다른 일화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작업실에 들어가면 맨 먼저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의 푸가를 한 곡씩 연주했다. 그런 다음에야 10시간 작곡에 몰두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음악가라고 느끼는 의식이, 악보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연주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영웅인 바흐를 존경하며 그날의 작업을 위해 축복을 내려주기를 비는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가락을 유연하게 하고, 일에 발동이 걸리게 하고, 마음이 음악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순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든, 작업실에서 매일 아침 반복하는 그 똑같은 행위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의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그대의 바흐 푸가곡은 무엇인가? 그대가 하는 일이 단순히 취미 생활이 아니라면, 그 일을 그대의 삶 자체로 여긴다면 그대가 매일 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나(p. 136)의 경우는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내 시집을 열어 내가 쓴 시를 한 편씩 읽는다. 지난 30년 동안 이것을 건너뛴 날이 거의 없다. 산문을 쓰든, 번역일을 하든, 다른 시인들의 시를 모아서든, 나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 안의 시인에 연결되기 위해. 시인이며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으라. 그리고 죽을 만큼 그것에 빠져 보라"고 했다. 영혼의 작업에 다만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불꽃을 계속 태우는 것이 삶이다. 생을 불태우려면 자신이 불타는 것을 견뎌야 한다(p. 137).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파머는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치유 자원이 된다."(p. 144).
어려울 때는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우리는 희망하고, 절망하고,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날갯짓이다. 물에 얼굴을 박고 넘어져 있다면 당신이 할 일은 얼른 일어나는 일이다. 물속에서 산소를 찾거나, 아가미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새끼 기린은 태어나면서부터 일격을 당한다. 키가 하늘 높이만큼 큰 엄마 기린이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수직으로 곧(p. 150)장 떨어져 온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잠시 멍해져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번에는 엄마 기린이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세게 걷어찬다. 새끼 기린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고 이미 땅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또 걷어차이다니!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찰나 엄마 기린이 또다시 새끼 기린을 힘껏 걷어찬다. 처음보다 더 아프게!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새끼 기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흔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계속 걷어차이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은 가늘고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기우뚱 일어서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엄마 기린이 한 번 더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다. 충격으로 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난 새끼 기린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엄마 기린이 달려와 아기를 어루만지며 핥아주기 시작 한다. 엄마 기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하이에나와 사자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을 무조건 걷어차는 것이다. 일어서서 달리는 법 을 배우라고. 당신은 엉덩이를 걷어차인 적이 몇 번인가? 별로 기억나지 않(p. 151)는다면 각오하는 게 좋다. 조만간 연타로 발길질 당할테니. 당신이라고 해서 삶이 살살 기분 좋게 굴리는 법은 없다. 그러나 걷어차이고 또 걷어차여도 당신은 일어설 힘이 있다. 당신은 기린 이니까. 카뮈는 "눈물 나도록 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저자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가 세상에 내놓은 그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은 삶이다."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엄마 기린과 같다. 때로 인생이 우리를 세게 걷어차면 우리는 고꾸라진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야만 하고, 또다시 걷어채여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다(p. 152).
고통은 주로 단절과 고립에서 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연결'이다. 그것이 나의 경험이다. 비록 이것을 깨닫는 데 생의 반이 걸렸지만. 꽃이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 꽃이 자라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누구나 삶에서 고립을 경험하고, 그때 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나름의 몸짓을 한다. 우리에게는 그 몸짓을 읽는 연민과 공감의 눈이 필요하다. 홀로된 그녀의 분노와 싸움 역시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다. 비록 방법은 부정적인 것이었지만, 그 몸짓이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살아 있어요. 나는 연결되고 싶어요.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에요." 혹시 당신도 고립된 감정의 덫에 걸려 있다면, 다히 카엥기?(p. 165).
내가 아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이다. 신은 비극과 상실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가슴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계획했던 삶을 기꺼이 놓아 주어야 한다.(조셉 캠벨) 우연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 계획을 무효화시키 는 것과 같다. 인생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돌아가는 길투성이의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복한 일은 동시에 일어 난다. 플랜A보다 플랜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p. 181).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 『열흘 밤의 꿈』 에서 일곱째 밤 이야기의 주인공 남자는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넌다. 그런데 그 배를 타고 있는 이유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뱃사람을 붙잡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만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언제 육지에 닿을지도 모른다. 배에는 외국인도 있고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난간에 기대 울고 있는 여자도 있다. 자신이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불안하고 따분해진 나머지 남자는 죽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배의 난간에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발이 갑판을 떠나 배와 인연이 끊긴 그 찰나, 그는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진다. 뛰어내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어져 가는 배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문(p. 193)득 다시 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더 이상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몸은 바다를 향해 다가가고 검푸른 물에 점점 가까워진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배일지라도 역시 타고 있는 편이 나을 뻔했다고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이용하지도 못한 채 한없는 후회와 공포를 안고 검은 파도 속으로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내가 선택한 이 길, 나에게 손짓하던 그 많은 무화과 중에서 이 열매가 나에게 최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배를 끝까지 타고 가서 목적지를 확인할 것이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실함이다. 어차피 나는 죽음에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름답게 패배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심장이 침묵한 것 같으면 스스로 심장을 깨워 그 고동 소리를 들어야 한다(p. 194).
‘사람들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으면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좌뇌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은 우뇌에서 훨씬 많은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친다고 뇌신경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과 사건을 묘사할 때 더 논리적이고 강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달한 우뇌는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일이 습관이 된다. 그것이 인간 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동화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학자처럼 공부하고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라'는 말은 소중한 금언이다(p. 218).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앨리스 카하나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화가이다. 열다섯 살 때 독일군에 의해 가족 전체와 함께 아우 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해 텍사스 주에서 살며 화가로 활동했다. 그녀에게 일생 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은 뼈아픈 기억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그녀는 강제로 부모와 분리되었고, 여덟 살 남동생을 책임지게 되었다. 다시 트럭에 실려 어느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고서야 동생이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중의 어딘가에서 다른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흔히 하듯이 그녀는 부주의한 동생을(p. 242) 나무라며 소리쳤다. "넌 왜 그렇게 바보 같니! 너 자신의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니?"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갑자기 밀어닥친 혼란과 비극 속에서 모두가 신경이 불안하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동생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동생은 다른 트럭으로 끌려갔고, 그 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앨리스 카하나는 마음의 구멍을 메울 수 없는 그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사건 이후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그 사람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전시관에 가면, 그곳에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신발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갈 때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카하나의 남동생도 그곳 가스실에서 숨졌다. 어떤 것이 진실과 사실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서로의 관점에서 대부분 옳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기억이 오래도록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으며, 나(p. 243)아가 다른 인간관계까지 공허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p. 244).
인간의 입술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하는 마지막 말도 입술의 형태로 그 사람 가슴에 남을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한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헤어진 후에도 남는 그 말은? 영어의 '말word'과 '칼sword'이 같은 단어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둘을 잘못 사용할 때 같은 결과를 낳는 것도(p.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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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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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42】 가끔은 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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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한편, 엮은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마음챙김의 시』로 시 읽는 기쁨을 전파한 류시화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는 신작 시집이다. 「초대」 「살아남기」 「너는 피었다」에 위로받고 「그런 사람」 「저녁기도」 「얼마나 많이 일으켜 세웠을까」로 삶의 본질을, 「숨바꼭질」 「슬픈 것은 우리가 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헤어진 방식 때문」에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한다. 삶 속에서 심호흡이 필요할 때 가슴으로 암송하는 시, 세계를 내면에서 보고 마음속 불을 기억하게 해 주는 시 70편이 실렸다. 섬세한 언어 감각, 자유로운 시적 상상력이 빛난다.
우리가 귀를 막으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자신이 하는 말은 들린다. 불완전한 단어들이 모여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가슴 안에 시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그에게만 보이는 세상이 있다. 그가 그것을 시에 담으면 그 세상은 모두의 세상이 된다. 여기에 실린 시들이 그것과 같다. 시는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에게 또 다른 고독한 영혼이 보내는 메시지이다. 읽을수록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과 좋아하는 시가 많아지는 시집, 또 한 권의 마음에 품는 시집이 될 것이다.-예스24
어려운 시가 많아 시를 읽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러나 쉬운 시도 있다. 류시화의 시는 쉬우면서 통찰을 준다. 다른 책을 읽다가 한동안 잊어버렸던 류시화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즉시 몇 권의 책을 대출했다. 당분간 류시화와 함께 할 것 같다.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야생화
만약 원한다면
야생화처럼 살라
단, 꽃을 피우라
꼭
다음 봄까지
살아남으라
한 사람의 진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진실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모두가 거짓을 말해도
세상에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진실
모든 새가 날아와 창가에서 노래해야만
아침이 오는 것은 아니므로
한 마리 새의 지저귐만으로도
눈꺼풀에 얹힌 어둠 밀어낼 수 있으므로
꽃 하나가 봄 전체는 아닐지라도
꽃 하나만큼의 봄일지라도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꽃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타의에 의해
무릎 꿇어야만 할 때에도
고개를 꼿꼿이 쳐든다는 것
그래서 꽃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마지막 안내 방송
우리 비행기로 여행하게 되신 걸 환영합니다
탑승하기 전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이미 고지했듯이 수하물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소유물을 뒤에 두고 떠나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초과 예약으로 기내에
여유 공간이 부족하므로
아무리 아끼는 물건이라도,
나아가 무거운 슬픔이나 후회, 혹은 부피 큰
기대는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송별객과는 여기서 헤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과 작별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
주머니 없는 옷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탑승해야 합니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집착도 털고
속눈썹에 얹힌 눈물 떼어 내고
이 순간부터는 자신이 누구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조차 필요 없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귀빈석이나 특별 좌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내 영화는
좌석마다 다르게 각자의 인생이 담긴
내용이 재방송될 것입니다
이 여행을 원치 않는다 해도
이미 예약된 이상 취소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자신이 믿었던 것과 다른 목적지나
다른 풍경 속에 내린다 해도
비행기를 회항하거나
내리기를 거부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안내 방송입니다
지연이나 결항 없이 정시에 이륙할 예정이오니
뒤로 미뤘던 일들이나 소원 목록은
다음 생으로 기약하고
오직 사랑한 기억만 웃옷 안감에 품고서
서둘러 탑승구 앞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꽃의 결심
꽃은 피어도 죽고
피지 않아도 죽는다
어차피 죽을 것이면
죽을힘 다해
끝까지 피었다 죽으리
잠깐 멈췄다 가야 해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이 없을지도 모르거든.'
누군가 이렇게 적어서 보냈다
내가 답했다
‘잠깐 멈췄다 가야 해,
내일은 이 꽃 앞에 없을지도 모르거든.’
달에 관한 명상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안에 언제나 빛날 수 있는
너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를
달을 보라
완전하지 않을 때에도
매 순간 빛나는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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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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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41】 일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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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만에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명칭이 복원되고 법정 공휴일로 격상된 올해 5월 1일, 바로 우리 곁 노동자 열일곱 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 《생업》을 한겨레출판에서 펴낸다. 이 책의 저자인 은유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쓰기의 말들》《글쓰기의 최전선》 등을 통해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날카로운 르포르타주 작가로서 독자를 감응시켜왔다. 그가 작가의 덕목으로 ‘듣는 신체’를 각인하고 이를 공감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겸손한 인터뷰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일하는 사람이 덜 죽고 덜 다치는 세상을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사인〉에 2024년부터 1년 6개월간 연재한 은유의 ‘먹고사는 일’을 바탕 삼아 지면 관계상 수록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대폭 추가해 새롭게 엮었다. 일하는 사람,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인터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17회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는 녹취록만 200자 원고지 2000장을 넘긴 터였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18인의 이야기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 《크게 그린 사람》의 후속편인 《생업》 역시 묵묵히 생계를 건사해온 노동자 17인의 육성을 통해 인간이 일로써 다다를 수 있는 삶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하루 1700인분의 밥을 짓는 급식 노동자, 평생 일을 쉬어본 적 없는 청소 노동자, 요양원이 죽는 데 아니고 사는 데라 말하는 요양 보호사, 지하철 타는 1000만 배우, 진보정당 부대표였다가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노동자 등의 “말이 곧 삶인 말”은 ‘집필 노동자’ 은유의 몸을 통과해 지금 이곳을 톺아보고 올곧은 미래를 상상하는 연대의 기록으로 확장되었다. 자신을 살리고 타인을 살리고 마침내 세상을 살리는 이들의 떳떳한 표정들에서 독자는 생업의 슬픔과 기쁨, 고단함과 긍지를 새삼 자각할 것이다.
1년 6개월 동안 배달 노동자, 급식 노동자, 청년 농부, 독립 연구 활동가, 타투이스트, 심리 상담가, 배우, 가수, 유튜버, 노동 운동가, 변호사, 산재 피해 유가족, 활동가, 국어 교사, 청소 노동자, 요양 보호사까지 총 17명을 만났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 보일 때는 아무도 안 보이지만 보이기 시작하면 너무도 잘 보이는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는 존재이다. 평범한 사람들인가? ‘평범하다’의 정의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는 뜻이다. 이들은 세상의 척도인 고액 연봉, 전문직 명함, 금메달 같은 물증이 있는 성취로 보면 평범하다. 그런데 가치 척도를 바꾸면 평가가 달라진다. 인간의 존엄, 노동자의 권리, 이타심과 돌봄 측면에서 보면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 뛰어나고 색다르다.-‘책머리에’에서. 예스24
생업(生業)은 “살아가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마지못해 하는 것도 있고, 기쁨으로 하는 것도 있다. 어차피 사는 동안 우리는 일해야한다. 자기 일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하자. 언젠가 일하지 못할 때가 올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스물일곱에 귀향한 '전업 농부'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일단 아버지와 맞지 않았다. 자율적으로 뭘 좀 해 보려면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했고, 시키는 대로 하면 또 "너무 수동적이다"라고 했다. 여느 직장인처럼 상사와 갈등이 깊었는데 거기다가 상사가 퇴근을 안 하고 "밥까지 차려달라"는 셈이었다. 외진 지역에 섬처럼 고립되었다는 소외감, 서울에서 살 때처럼 책과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없다는 박탈감이 컸다. 스트레스로 체중이 늘고 걸핏하면 장염에 걸렸다. 매달 링거를 맞으며 이게 맞는지를 수없이 되뇌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배 과수원을 그에게 완전히 넘기고 사과 농사를 짓고 싶다며 강원도 양구로 독립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몸과 마음이 괜찮아졌다. 그때 알았다. "아, 내가 농사일이 힘든 게 아니었구(김후주, p. 39)나."(웃음) 초반 서너 해 고비를 넘겼다. "저 같은 승계농, 후계농 친구들이 농사를 중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가족 간 갈등이라는 통계가 있어요. 일은 다 하는데 돈은 못 받죠. 오히려 일꾼한테는 임금 체불을 못 해도 자식한테는 하거든요. '뭐, 어차피 네 거 될 건데'라는 거예요. 이런 문제는 정부에서도 알고 있어요. 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가족 경영 협약'을 교육하고 승계 혜택을 주는데도 쉽지 않죠. 그래서 승계농은 청년이 지역에서 정주하 기 제일 좋은 조건인데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죠."(p. 40).
우리밥연대의 가장 큰 특징은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다들 놀라며 묻는다. 그럼 무슨 돈으로 밥을 하느냐고. 직장을 다니는 구성원들이 각자 사비를 털고 일손을 보태 "신기하고 희한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답을 해준다. 요즘엔 차라리 식당에서 사는 게 싸겠다 싶을 만큼 물가가 많이 오르고 있는지라 김주휘는 대책을 강구했다. 활동 자금 마련을 위해 연잎밥을 팔고 반찬도 팔았다. 킁곰은 9년째 월급날이면 칼같이 돈을 낸다. 돈을 내려고 우리밥연대에 들어온 회원도 있다. 우리끼리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세월호 유가족 경민이 엄마는 내가 그 우리끼리가 되겠다고 했다. 공식적인 후원금을 받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밥연대 사람들이 대부분 다른 단체에 못 섞이는 성격들이에요. 사람이 좋은데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밥연대에 있어요. 저희가 직장인이고 전문적으로 할 수 없는데( 김주휘. p. 61) 후원까지 받으면 일이 커진다, 부담스럽다해서 우리끼리 한 달에 한두 번 할 수 있을 때 하자 했죠."(p. 62).
각국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이 요리사로 등판한 '후원의 밤'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에티오피아 사람은 옷을 여왕처럼 차려입고 커피 드립을 하고 모로코 사람은 샌드위치를 만드(p. 91, 심아정)는 등 각자 제 나라 백반을 선보였다. 그는 옆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아정, 당근 잘라줘, 너 파 썰어줘. 그분들이 위축되는 모습이 아니죠. 환대란 내가 뭘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있던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가 주가 될 때, 주객이 뒤집어질 때 가능하죠. 그래서 내 자리를 뺏길 각오가 돼 있어야 해요. 저는 그게 나쁘지 않았어요. 한 번이라도 관계가 전복되는 건 달라요. 난민이라고 해서 불쌍한 모습이 정말 아니고 옷도 잘 입어요. 저 보고 옷 좀 사래요. 아정은 단체 티셔츠밖에 없냐? 뭐라고 해요. 나는 이 티셔츠가 열 장 넘어서 그래!(인터뷰 때도 아정은 '물결' 티셔츠를 입었다. p. 92)“
심아정은 지난겨울 6년간 활동해온 '마중'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트랜스보더링랩(Trans-bordering Lab), 국제법 X 위안부 세미나 팀, 번역 공동체 '잇다'에서 활동하고 공부한다. 국제법 X 위안부 세미나 팀에서는 피해 목소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가해 병사들' 진술을 몇 년째 읽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형제 폐지에도 관심이 생겼고, 느끼는 바가 많다. "가해를 성찰할 기회를 줘야 해요. 죽이면 안 돼요. 사람이 변곡점이 있어야 해요. 시간을 주는 게 너무 중요해요." 그에게 배운 대로 적용해보자면 사형수에게 시간을 주는 사회는 나머지 사람에게도 시간이 주어지는 사회다. 남의 일은 없는 것이다(p. 95).
유튜브에 이정은 배우를 검색하면 ‘연봉 20만 원 무명 배우가 칸에 가기까지’라는 종류의 영상이 인기다. 그가 1992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무대에 선 이래 가난한 배우로 살아온 이야기는 업계의 전설로 회자된다. 방송에 데뷔하기 전인 마흔 살까지 연기 지도, 녹즙 판매, 식당 서빙, 채소 가게 점원 등을 병행하며 이른바 '투잡'을 뛰었다. 채소 파는 가게에서는 정규직 제안을 받을 만큼 열심이었고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축한 노동의 역사를 단지 '무명의 설움'으로 여기는 건 게으른 오해다. 어느 돈가스집에서 일할 때다. 후배 배우들이 왔다가 거기서 일하는 그를 보고는 대단하다며 안 창피하냐고 물었다. 그는 심상하게 말했다. "난 배우인데 창피할 게 뭐 있어,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삼십대에는 자존감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요. 틈나는 대로 생활비 벌고 연습 시간 확보하고 성실하게 사니까요. 내 돈으로 내가 벌어서 먹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뭐가 부끄러운가. 그때는 나 안 쓰는 데 가서 고개 숙이지도 않았어요. 혼자서 강아지랑 살 때니까 생활비도 얼마 안 들고 철딱서니가 없어서 늘 당당했어요. 요즘에는 가끔 고개도 숙이죠. 회사 식구들도 생겼고 부모님도 연로하시니까요. 난 그래서 직장인들 이해가 가요. 가장이면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이정은 p. 121).
연극,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장르를 경험하며 배우의 삶을 두루 목격한 그가 볼 때 배우의 흔한 직업병은 암과 우울증이다. 늘 선택받고 평가받는 직업이다 보니 "일이 없어도 스트레스, 인기가 있어도 스트레스"라 그것이 각종 암으로 정신 질환으로 드러난다. 배우로 사는 것은 초조와 불안을 다스리는 일이고, 연륜이 있다고 그 습격을 피해 가지는 못한다. "저는 공연(연극)할 때는 불안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연극 무대는 연습 기간이 긴 데다 한 작품을 마치면 잘 쉬고 다른 작품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생겼어요. 분명히 시작할 때는 명확했는데 한참 작품을 하다 보면 피로도가 높아져요. 쉬게 됐을 때 일주일은 너무 좋으면서도 근데 원 없이 작품을 했나 그런 의문이 들고, 그다음 대본들이 별로 재미가 없는 거예요. 차기작을 빨리 결정할 게 아니라 시간을 갖자고 생각했죠."(p. 126).
타투이스트의 직업병은 노안이다. 작업할 때 켜는 조명이 세고 초집중을 한 상태로 눈을 쓰다 보니 시력이 약화되어 노안이 빨리 오는 편이다. 그 역시 "서른다섯 살을 기점으로 급행열차"를 타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바로 노안이 왔다. 손목 터널증후군과 디스크도 고질병이다. 한번 작업하고 나서 자리에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만큼 코어가 무너져 폴댄스를 배웠고, 그때 다진 코어 근육으로 지금껏 생존하고 있다. 노동이 가능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요즘엔 킥복싱을 한다(p. 158).
그가 옷자락을 들춰 복숭아 타투를 자랑한다. 주변으로 호랑이, 도마뱀, 꽃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각각은 "그때그때 한 시절을 기록하는 나이테 같은 친구들" 이다. 자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주장하는 부모의 벽을 넘어, 33년 불법의 벽을 넘어, 터부시 하는 편견의 벽을 넘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 타투로 남았다. 이 좋은 타투를 황도는 모두에게 권한다. "기억을 몸에 새기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본령 외에도 타투는 인간관계의 리트머스가 되어주고 소수자 연대의 기회를 열어주는 등 삶에 여러모로 이롭다. "타투는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취미잖아요. 하고 나면 여러 반응이 있어요. 칭찬도 해주고 오지랖도 부리고 별로라고도 하고요. 사회적으로 호불호가 있다 보니까 듣는 말들(황도, p. 159)이 상처가 되죠. 그래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돼요. 일생에 단 한 번도 소수성을 가진 적 없는 사람이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문신한 XX' '문신한 여자는 걸러'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게 되죠. 타인의 외모에 대한 혐오예요.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거고요. 네가 날 걸러? 내가 걸러!(웃음) 타투는 마이너의 삶을 선택해보는 일 입니다."(p. 160).
일이 자아내는 감정들, 노동의 분비물 같은 미용과 원망을 그는 쌓아두지 않는다. "나쁜 마음”을 흘려보내는 자체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나는 글쓰기. 어려서부터 엄마나 친구가 너무 미운데 표출할 방법이 없을 때 글을 썼고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미움이 사라졌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는 수단이 되었다. 또 하나는 수다 떨기. 힘들 땐 누가 뭐래도 동료다. "우리끼리 티타임 하면서 풀어요. 그게 제일 빨라요. 방법 없어. 어떻게 늙어야 하냐가 우리 화두예요." 그렇다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야 요양 보호사로 살아남을 수 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마음. 그게 가장 중요해요. 제가 간호사로 근무하고 환자를 볼 때 선이 항상 그어 있어요. 환자는 환자고 직원은 직원이다. 여기는 달라요. 가정생활을 하는 집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과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국가가 혜택을 줘서 만들어주는 공간이라 저 어르신과 내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 안 돼죠. 또 실은 그들의 불편함이 나를 먹여살리는 거죠. 우리를 깨우쳐주기도 하고요."(요양 보호사. p. 184).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까 남은 네 식구도 밥상에 같이 앉지를 못해요.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을 못 먹는 것보다 넷이 같은 밥상에 앉지 못하는 게 더 슬퍼요. 가족이 다 있을 때 집에서 애가 그렇게 됐잖아요. 저희가 느끼는 죄책감은 어떻게 표현을 못 합니다. 왜 더 빨리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게 넷의 공통된 죄책감이에요." 형이랑 친구처럼 싸우면서 자란 둘째 아들은 장례를 치르고 완전히 페인이 되어버렸다. 부모의 얼굴을 안 보려고 한다. 낮에는 자고 밤에 아무도 없을 때 움직인다. "얘가 계속 우리를 피하니까 상담을 권유했더니 화내면서 안 한다고.... 어느 날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을 못 먹겠어요." 열네 살 터울로 큰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막내는 당시 중1이었다. 오빠의 죽음도 아직 못 받아들이는데 학교 친구들한테 부고가 알려져 자신이 불쌍하게 보이는 건 더 지옥인 나이였다. "얼마 전엔 학교에서 야간 노동 이야기를 하다가 오빠 이름이 언급됐다고 저 서울에 있는데 장문의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내가 학교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 중학교도 학교생활 못 했는데 고등학교 생활도 못 하게 하느냐. 얘는 빨리 손 놔라, 나도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해요. 미안하다고밖에 말(박미숙. p. 221)못 해요." 막내는 오빠의 죽음 이후 일주일씩 입을 닫아버렸다. 한 번은 집을 나가 답장도 없다가 밤 12시가 다 돼 연락이 왔다. 지금 어디 있는데 데리러 와달라고. 마음이 괴로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끝까지 왔다 갔다 헤맸다. 남편의 애도 방식도 그 와는 달랐다. 애 하나 잃었으면 됐지 이제 남은 애들 둘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고, 명절이나 덕준의 생일이면 제사상을 차리길 원했다. 박미숙은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 애가 죽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금도 문을 열고 들어올 거 같거든요. 근데 제사를 지내면 인정하는 게 되니까요. 납골당을 저는 못 가겠고 아빠는 가고 싶어 해요. (외부 활동도) 그만하자고 산재 승인받을 때까지만 하기로 각서를 썼어요. 애들 아빠는 저한테 투사라고 하는데 저 투사 아니고요, 나는 이렇게 애를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죠."(p. 222).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며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더라?"라는 말이 고객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게 쿠팡의 미션이다. 그들의 목표대로 세상은 굴러간다. 타임 푸어(time poor)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소비자는 '로켓 배송' '오늘 배송' 같은 속도와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노동자의 죽음은 의식하지 못 한 채. 그렇다고 박미숙은 쿠팡을 쓰는 사람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SPC 노동자 사망으로 불매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갖고 있던 쿠폰을 빵으로 바꿔 왔다. 그걸 보고 막둥이가 화를 냈다. "엄마는 쿠팡만 가지고 그러지 SPC도 나쁜데 왜 사먹냐"라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따졌다. "저도 사고 소식을 알았는데 무의식적으로, 살던 습관대로 SPC를 썼잖아요. 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때는 쿠팡을 이용하진 않았어도 좋은 회사로 알았어요. 사고 후에 드는 생각이 정말 제대로 봐야겠다. 4년간 싸우면서 쿠팡은 비열한 회사, 진짜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회사라는 게 제가(박미숙. p. 229) 받은 인상이거든요.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서 성장하고 있어요. 근데 사람 생명보다 앞서는 법은 없잖아요. 과연 안전한 회사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어나갈 수 있나요. 열린 눈으로 제대로 봐야 해요. 저도 일을 겪으니까 보이게 된 거죠. 쿠팡에 다닐 때 아들은 양팔저울의 비유를 들어가며 말하곤 했다.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 짐을 지고 있는 거라고. 그는 아들이 숙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덕준의 목소리를 듣는다. "엄마 하는 거 함 보자." 엄마도 고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임을 덕준이 27년 삶으로 보여줬다고 그는 믿는다(p. 230).
그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게 온전히 자기 능력은 아니라는 걸 안다. 엄마같이 똑똑한 사람도 시대 탓에 많이 배울 수 없었다. 엄마를 보면서 소위 '스펙'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아무런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늘 느꼈고 주변에 노동자나 가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못나거나 부족해 저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혜택을 받았다는 것, 내가 가진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 사회에 대한 생활력이라고 해야 하나, 너는 애가 공부 머리는 있는데 일 머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자만하지 마라.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학습된 것 같아요."(p. 254).
"사법 연수원이 경기도 일산 마두역 근처에 있어서 저희끼리 '마두고'라고 불렀어요. 가령 한 반에 50명이고 선생님 들어오면 차렷 경례······.(웃음) 저는 적당히 시키는 대로 따라 가다가 정작 성인이 되어 간 연수원에서 주입식 교육에 반항심이 드는 거예요. 그제야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거부하던 학생들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일찍 철든 아이들이었죠." 법조인이 되겠다고 모여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성적에만 집중하며 세상에 관심 가지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윤지영 p. 255)보고 그는 학을 뗐다. 대학 입시가 그러하듯 사법 시험은 사회와 격리된 채 오로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잘 보는 시험이었다. 그걸 통과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법조인이 되고 사회 지도층이자 엘리트로 여겨지며 스스로도 지도자로 나섰다. 그걸 가까이 보면서 그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우리가 자격이 있을까."(p. 256).
같이 가자고 말하는 이
심리 상담사로 일하며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이거다. "그럴 수 있지요, 그랬군요." 반면 절대 하지 않는 말도 있다. "이렇게 하지 그랬어요."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을 하면 2차 가해가 된다. 상담사가 노동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을 때 저도 모르게 내뱉을 수 있는 위험한 말이다. 노동자의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너무 힘들었겠다고 말하며 편견 없이 받아줄 때 "안전한 상담”이 가능하다.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돌보는 업에 종사하기 위해 자기 마음 건강도 챙긴다. 그는 1년간 명상 수업을 받기도 했다. 계속 아픔을 들으니 어디선가 충분히 배출해내야 하는데 배출하지 못할 때 "무당이 신병이 나는 것처럼" 몸이 아팠다. 직업병이 된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 진료와 명상을 병행했다. "잠깐이라도 멈추는 게 나를 살게 한다"라는 걸 체험하고 나서는 짬짬이 명상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비운다(p.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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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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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40】 성공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피곤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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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즉시 철학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가 된 책으로 저자 한병철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이다. 그는 현지에서 서양 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속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판가로 평가 받았으며, 이 책에서는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해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
저자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사회,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고 보고,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 그러나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답을 구하라
저자는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로’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이고,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위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한병철은 피로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본다. 피로는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며, 긍정적 정신으로 충만한 자아의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한다. 피로한 자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예스24
두 번째 읽었는데도 역시 쉽지 않다. 예스24와 역자의 글을 통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내게 어려운 책이라 ‘피로’하다.
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 장에서 노동하는 동물(p. 44)의 승리를 다룬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발전에 맞설 수 있는 어떤 효과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체념적 태도로 이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소수에 국한 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이어서 그녀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불쑥 사유의 힘에 호소한다. 근대의 부정적인 발전으로 인한 손상을 가장 덜 입은 것이 사유라는 것이다. 비록 세계의 미래가 사유보다는 행동하는 인간의 힘에 좌우될 터이지만, 사유도 우리의 미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는 활동적 삶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적인 것이며 순수한 활동성의 면에서 모든 활동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사유의 체험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카토의 경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다소 임시변통으로 보인다. “활동의 경험”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순수한 사유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활동성은 오히려 후기근대적 성과 사회의 활동과잉과 히스테리를 많이 닮은 것처럼 보인다. 아(p. 45)렌트가 책의 마지막에 제시한 카토의 경구 역시 다소 엉뚱하게 느껴진다. 원래 이 경구는 키케로가 『공화정에 대하여』에서 자기 말의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아렌트가 인용한 부분에서 키케로는 "광장"과 "북적대는 군중"에서 벗어나 사색적 삶의 고독 속으로 돌아갈 것을 독자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는 카토를 인용한 뒤에 사색적 삶을 찬미한다.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사색적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본연의 존재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렌트는 활동적 삶에 대한 찬양으로 만들어 버린다. 카토가 이야기하는 사색적 삶의 고독도 아렌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행동하는 인간의 힘"과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기 의도와는 달리 사색적 삶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바로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무엇 보다 활동적 삶의 절대화와 관련이 있으며 근대적 활동사회의 히스테리와 신경증을 낳은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p. 46).
이상 자아에 비하면 현실의 자아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나타난다. 자아는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모든 외적 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p. 103)괴적 자기 강제의 덫에 걸려든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p. 104).
역자 후기
간결명료하게 씌어진 이 짧은 책의 요지를 역자가 다시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책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 지점을 지적하고 한국 현실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역자의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테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회를 지배해온 부정성의 패러다임(금지, 강제, 규율, 의무, 결핍, 타(p. 119)자에 대한 거부 등, 한병철은 이를 면역학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이 적어도 20세기 말부터 긍정성의 패러다임(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타자성의 소멸 등등)으로 전환되었거나 전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회가 푸코적 의미의 규율사회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복종적 주체라고 한다면, 오늘날은 그 자리에 성과사회, 성과주체가 대신 들어선다. 이러한 테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근대 이후의 세계, 포스트모던한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사회, 긍정성 과잉의 사회는 흔히 얘기되는 후근대적 사회, 즉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냉전의 종식, 다문화주의, 바이러스성 질병의 효과적 퇴치, 규제와 억압의 철폐와 개인적 욕망의 긍정 등 다양한 차원에서 관철되는 긍정성의 패러다임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병철은 바로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이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치 늘어나는 자기 자신의 지방질에 병들어가는 사람처럼,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간다. 그 결과 스(p. 120)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주체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금지, 강제, 억압의 철폐, 타자에 대한 관용의 확대가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토피아로 이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의 무게 에 짓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더 나아가서 한병철은 프로이트, 푸코, 아감벤의 사상이 금지, 억압, 규율, 감시, 주권자/희생자의 이분법과 같은 부정성의 패러다임 속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산물로서 근대를 기술하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을 패러다임 전환 이후의 사회, 즉 긍정성 과잉의 성과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 거명된 사상가들이 여전히 현실 분석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병철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대단히 파격적이고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의 정신분석학은 19세기 말 서양 부르주아 사회에서 성적 욕망(p. 121)에 대한 금지와 억압의 기제가 균열을 일으키던 시대에 등장한 것이고, 그의 이론 자체가 그러한 부정성의 약화에 현저하게 기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 정신에서 작동하는 부정성의 구조를 기술하는 이론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부정성의 패러다임이 위기에 빠졌음을, 그리고 그런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임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의식의 발견은 무의식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이후의 주체는 무의식이 없다고 한병철은 말한다.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학교 교육과 관련하여 체벌이나 학생 인권 조례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은 우리 역시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일 것이다. 의무 과목의 축소 및 철폐, 자기 주도 학습의 강조,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별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입시 전형 방식의 도입(예컨대 입학사정관제)은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주체로 길러내기보다는 더욱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경쟁, 한(p. 122)병철이 말하는 “절대적인 경쟁”(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고 있다. 입시 지옥에서의 해방을 약속한 최초의 교육부 장관이 내세운 구호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20개에 가까운 교과목의 무게에 신음하던 학생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을 이 구호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며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정성의 패러다임을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 적용해보면, 분단국으로서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이념적 지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특수한 문제점들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분단 이후 미국의 절대적 영향 아래서 전개되어온 남한의 현대사는 이중 부정성, 이중 타자의 문제에 시달려왔다. 즉 이데올로기적 타자(북한)와 민족적 타자(미국)의 문제. 이 때문에 근대적 의미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혼선을 빚게 된다. 이데올로(p. 123)기적 타자에 대한 부정은 민족적 타자에 대한 부정 (즉 민족적 정체성의 구성)을 방해하고, 민족적 타자에 대한 부정은 이데올로기적 타자에 대한 부정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의 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성은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 있던 서독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서독에 진주한 미군은 민족적 타자로서 거부될 수 없었다. 히틀러 시대를 겪은 뒤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불온하고 금지되어야 할 이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독의 경우 애초부터 민족적, 인종적 친연성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타자성은 남한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이 사실이다.) 서독에는 오직 동독과 그 배후의 소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타자가 있었을 뿐이다. 남한의 경우 단순한 부정성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부정성을 택하고 다른 하나의 부정성을 억지로 지워버려야 했다. 민족적 부정성을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으로 환원해버리거나(이때 북한은 주적이고 미국은 형제다),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을 민족적 부정성으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다(이때 미국은 제국주의자이고 조국은 하나다). 1970~80년대까지는 강력한 반공주의에 의해 민족적 부정성이 부인되었다면, 그러한 반공주의적 억압이 사라진 이후에(p. 124)도 남한이 이룩한 통상국가로서의 기적적 성공은 미국이라는 민족적 타자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자라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를 거의 없애버렸다. 2008년의 촛불 시위에 민족적 부정성의 차원('검역 주권')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위의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은 건강의 위험에 대한 소박한 염려에 있었다. 한병철의 말대로 ‘건강’과 ‘벌거벗은 생명’이 성과사회의 최후의 가치가 된다면, 미국산 소고기 문제가 최근의 어떤 이슈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큰 규모의 시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성과사회의 징후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을 타자로 위험시하고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적 부정성도 특히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왔다. 민족적 부정성을 앞세우며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을 부인하는 입장(조국은 하나다)에 가까웠던 재야 운동가, 학생운동가들이 제도권으로 진출하고 정치• 사회적 권력에 참여하면서, 북한을 이데올로기적 타자로 규정하는 전통적 반공주의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갔으며, 햇볕정책도 그러한 토대 위에서 실행될 수 있었다.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의 국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도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이 희미해져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 (한병철이(p. 125)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두고 말한 것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더 이상 위협적인 타자가 아니라 그저 짐스럽고 무관심한 타자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한 경향은 냉전 시대의 기억을 환기하던 절대적 지배자 김정일의 죽음 이후 더욱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이래로 우리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했던 이중의 부정성이라는 문제에서 - 여전히 이런저런 불안 요인과 염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 점차 빠져나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이중의 부정성 문제를 어떻게 단순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남한 특유의 정치 지형(보수-진보의 대립 구도)도 조만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와 성과주체의 이상이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고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병철은 그것을 착(p. 126)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한병철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한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지목하고, 그 배후에 성과사회의 압력이 놓여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병의 진단은 나왔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자의 강제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런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항하(p. 127)는 마르크스주의의 모델이다. 그러나 우울증의 배후에 놓인 성과사회의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를 취하며, 오직 인간 자신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만 관철된다. 따라서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한병철의 예리한 시대 진단은 그러한 쉽지 않은 반성과 자각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이 책이 고도로 발달한 성과사회의 한복판(독일)에서 얻은 호응은 그의 제안이 고독한 메아리 이상의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2012년 3월에 김태환(p.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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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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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9】 커피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통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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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커피를 블렌딩한 ‘아주 특별한 기행’
《커피기행》은 커피를 생업으로 삼아온 박종만 커피박물관 관장이 쓴 ‘커피 로드coffee road’에 관한 기록이다. 커피 로드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커피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까지 퍼져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이 땅에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종만 관장은 우리 커피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북한강변에 커피박물관을 열고 커피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 첫걸음으로 커피의 기원과 초기 전파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커피탐험대를 결성하고 2007년 2월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책은 그 결과를 책으로 담은 것이다. 우선 탐험대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아프리카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케냐 커피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그리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자 20세기 초 이곳에서 커피농장으로 성공을 꿈꾸었던 덴마크 소설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흔적을 살펴본다. ‘킬리만자로 커피’의 생산지로 알려진 탄자니아에서 탐험대는 커피위원회를 무작정 방문하여, 현지 농부의 손을 떠난 커피가 정부에 의해 어떻게 등급별로 관리되고 국외로 수출되는지 취재한다. 그리고 바리스타 챔피언대회가 열린 에티오피아에서 우연히 일본 UCC커피의 우에시마上鳥 사장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커피의 고향 짐마와 70년 전통의 옥사데이 커피회사를 둘러 본 탐험대는 19세기 말 랭보가 낙타 카라반으로 커피를 실어 나른 길을 따라 사막과 홍해를 건너 예멘의 모카 항으로 향한다.-예스24.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커피를 먹는다. 밖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먹은 적이 없다. 커피 리브레를 통해 원두를 배달해 먹는데 맛이 좋다. 우연히 커피에 대해 알고 싶어 읽었다. 그런데 20년 전 책이라 최근 책도 찾아 보고 싶다.
커피가 탄생하기까지
8세기 에티오피아의 카파(Kafa, 지금의 짐마Jimma시), 그곳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양을 몰던 소년 칼디Kaldi는 이름 모를 나무의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뛰노는 양을 보며 의문에 빠졌다. 무엇이 양들을 저토록 신이 나게 만들었을까? 칼디는 직접 그 열매를 따서 조심스럽게 입 안에 넣었다. 쌉싸래한 맛을 혀끝까지 몰고 들어온 그 열매는 곧 칼디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열매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온 칼디는 마을의 수도승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다. 밤마다 고된 고행으로 졸음과 싸우던 수도승에게 이것은 구원의 열매였다. 칼디가 발견한 이 ‘하늘의 선물’이 바로 커피다(p. 12).
하늘은 푸르고 흙은 붉다. 까만 피부의 케냐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는 자연 그 자체다. 자연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나를 알 수 없는 그 어떤 먼 곳으로 이끌어간다. 오래전 여행 중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겨우 먼발치에서 들었던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의 연주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한두 소절만을 부탁했지만 노래는 쉽게 끊이질 않았다. 노랫말을 물어보니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커피농장은 즐거움과 고난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간절한 희망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케냐 농부들은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 반까지 일하지만 대우는 썩 좋지 않다. 하루 100케냐실링의 돈을 받는데, 79케냐실링이 약 1달러 이므로 우리 돈 10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우리 눈으로 봤을 때는 100 케냐실링은 큰돈이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돈이다. 이마저 벌지 않으면 구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다(p. 39).
출발하기 전 되뇌었던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린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 가려면 굽이 돌아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지부티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p. 188).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이고 그 야생커피를 처음으로 경작한 곳이 예멘이다. 800년경 에티오피아의 '가파' 지방에서 발견된 ‘분’은 이슬람 수도사에 의해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초기에는 종교적 논란으로 이슬람 사원 뜰에서 비밀리에 재배되던 커피가 수도승에게 잠을 쫓는 약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비로소 이슬람 제국의 성스러운 음료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온 ‘분’을 아랍 사람들이 그들 발음으로 '카하와Qahwah‘ 라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기독교 사회에서는 1605년 교황 클레멘트 8세에 의해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서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다.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모든 커피는 예멘의 모카 항으로부터 수입 됐다. 수도 사나Sanna에서 재배된 예멘 커피와 지부티 항을 통해 들어온 에티오피아 커피가 이곳 모카 항에 모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 사람들은 예멘 커피와 에티오피아 커피의 구분없이 모두 모카라 일컫어졌고,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굳이 따져 말하자면 '에티오피아 모카', '예멘 모카'가 맞는 말이다. 이후로는 친근함과 편리성을 내세워 '커피' 자체를 뜻할(p. 202)때도 '모카A cup of Mocca 라 불렀다. 인도의 자바Java에서 커피가 재배 된 뒤로는 커피를 '자바A cup of Java' 로 부르기도 했다. 19세기가 될 때까지 영화를 누리던 모카 항은 커피의 주요 생산국이 남미와 아프리카로 확대되면서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p. 204).
모카커피의 본고장 예멘에서도 제대로 된 모카커피는 맛볼 수 없었다. 모순이지만 현실이다. 예멘 사람들에게 커피는 카트와 밀크티에 밀려 한참 뒤쳐져있다. 예멘에서 커피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비싼 커피 값 때문만은 아니다. 카트를 씹고 나서 찬물로 입안을 헹구고 밀크티를 마시면서 저녁 기도를 드리는 그들의 이슬람 문화가 주요 원인이다. 농민들도 너나없이 커피농사를 마다하고 카트를 심는다. 커피보다 몇 배(p. 212) 높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이토록 카트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는 카트를 마약에 비유한다. 그 옛날 기독교 사회에 서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며 커피를 배척했음을 떠올리면 역사의 아이러니다(p. 213).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잠을 쫓는 약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이슬람 제국 전체로 퍼져나간다. 커피는 이슬람교의 물결을 타고 이집트, 시리아를 거쳐 동서 문명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 와서 문화로 꽃을 피웠다. 카흐베하네Kahvehane라 불리는 터키의 커피점은 체스, 노래와 춤, 잡담이 오가는 사교적 · 상업적 장소를 넘어 정치 토론의 장으로도 이용되었다(p.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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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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