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뉴스 검색결과
-
-
한교총, 광복 81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
-
-
사단법인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김정석 감독, 이하 한교총)가 8월 16일(주일) 오후 7시,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김하나 담임목사 시무)에서 ‘대한민국 광복 81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10년 이상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외 4명의 조속한 송환을 위한 기도와 함께 억류 선교사 가족들에게 격려후원금을 전달하는 ‘섬김의 시간’이 진행됐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는 북한 당국에 억류자들의 생사 확인과 조속한 석방 및 송환을 강력히 촉구했다.
1부 연합예배는 정정인 목사(한교총 공동대표회장, 예장대신 총회장)의 인도로 김동기 목사(한교총 공동대표회장, 예장백석 총회장)의 기념사와 김하나 목사(명성교회 담임)의 환영사에 이어 최인수 목사(기침 총회장)가 대표기도를, 신용현 목사(예장개혁개신 총회장)가 신명기 24장 18~22절 성경봉독, 명성교회 연합찬양대가 특별찬양했다.
한교총 대표회장이자 기독교대한감감리회 감독회장인 김정석 감독이 ‘그날에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과거에 메이지 말아야 하나 잊지는 말아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영적인 것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랑이 동반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자유를 나누어야 한다.”라고 설교 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 이기용 목사가 결단의 기도, 이상규 목사(예장개혁 총회장)가 헌금기도했다.
2부 기념식은 홍사진 목사(한교총 공동대표회장, 예성 직전총회장)의 인도로 정훈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예장통합 총회장),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국회의원, 국민의힘 조배숙 국회의원이 축사했다.
이어 권오삼 목사(예장보수 총회장), 김명희 목사(예장보수개혁 총회장), 김국경 목사(예장합동선목 총회장), 가성현 목사(예장합동동신 총회장) 박광철 목사(예장예정 총회장), 박만진 목사(예장개혁종로 총회장), 우선화 목사(예장피어선 총회장)가 국가와 사회의 주요 현안을 두고 특별기도 후 북한에 억류 중인 선교사의 가족에게 격려후원금을 전달했다.
박용규 목사(본회 총무, 예장합동 총무)와 김일엽 목사(본회 총무, 기침 총무)가 ‘광복 81주년 한국교회 선언문’을 낭독하고 다같이 일어나 만세삼창하고, 김철훈 목사(한교총 사무총장)의 광고 후 김삼환 목사(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이사장, 명성교회 원로목사)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광복 81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 선언문
“되찾은 빛, 다시 비추는 교회”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압제에서 주권과 자유를 되찾은 광복 81주년을 맞이하였다. 조국 광복을 위해 눈물과 순교의 피로 헌신한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깊이 감사하고, 역사의 주관자로서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한국교회는 식민 지배의 뼈아픈 역사, 그리고 광복 이후 분열과 대립의 아픔을 함께 기억한다. 이제 우리는 그 기억을 평화와 화해, 회복의 길을 여는 새날의 빛으로 이어가고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 인류 공동의 번영임을 선포한다(레26:6).
한국교회는 인간의 욕심과 이념의 장벽을 화해의 복음으로 허물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가겠다. 일본 정부의 평화헌법 제9조 개정 논의와 군사력 증강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중대한 사안으로, 일본 정부는 과거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행보를 중단하라. 일본의 형제교회는 자국 정부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어, 평화를 향한 그리스도의 뜻이 실현되도록 힘써주기를 요청한다.
둘째, 대립과 분열을 넘어, “오는 세대”에게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물려줄 것이다(고후 5:18).
한국교회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사회적 대립과 적대를 거부한다. 나아가 세대와 계층의 갈등을 극복하고 이주민과 약자를 환대하며, “오는 세대”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열어갈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불공정과 불평등, 극심한 취업난과 경쟁 등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배제 속 청년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더 나은 기회가 보장되는 공정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힘써 나갈 것이다.
셋째,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룰 것이다(사 58:12).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에 굴복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성찰하며, 교회의 세속화와 강단의 정치적 사유화를 회개하고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십자가 복음으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해외선교와 구호 활동을 위축시킬 ‘상증세법·법인세법 시행령’은 재검토·보완하고, 국회는 기독사학의 건학이념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 그리고 정교분리원칙과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는 ‘차별금지법’ 등의 입법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넷째,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한다(히 13:3).
한국교회는 북한 당국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외 4인을 조건 없이 조속히 석방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정부는 억류된 국민의 생사와 소재를 확인하고 이들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을 요청한다. 한국교회는 억류된 이들의 송환과 북한 땅에 교회와 예배가 회복되는 날을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할 것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적대와 분열에는 화해를, 세속화에는 복음의 순결을 더하여 평화와 정의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2026년 8월 16일
광복 81주년 기념 한국교회 연합예배 참가자 일동
-
2026-08-16
-
-
한민족 복음통일을 위한 8•15광복통일기도회 뜨겁게 열려
-
-
한민족 복음통일을 위한 8•15광복통일기도회가 “다시! 8•15 광복의 기적이!”란 주제로 총회 통일목회개발원(원장 김찬곤 목사)•서북협북한선교위원회(위원장 조영기 목사)•서북협장로협의회(회장 김성대 장로) 주관으로 8월 16일 오후 3시 중랑구 소재 해성교회(김신근 목사 목사)에서 뜨겁게 열렸다.(행사 동영상은 추후 기사에 첨부됩니다)
1부 예배는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 조영기 목사의 인도로 서북지역장로협의회 대표회장 김성대 장로가 기도, 인도자가 시 126:1~6을 봉독, 해성교회 찬양대가 찬양했다.
통목원 원장 김찬곤 목사가 ‘눈물과 기쁨의 통일찬송’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1만명, 비공식적으로 3-5만명의 신자들이 흘린 순교의 피로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제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25,000여명이 북한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통일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민족 통일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굳건히 믿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북한선교위 회계 김완겸 장로가 ‘탈북민 신학생 장학금 지급을 위한’ 헌금을 위해 기도했다.
특별기도
2부 특별기도는 북한선교위원회 부위원장 김신근 목사의 인도로 ‘나라와 민족의 회복과 안정을 위하여’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서기 정여균 목사가, ‘북한 땅의 영적 회복과 남북의 통일을 위하여!’ 황서노회 노회장 이기봉 목사가, ‘한국교회의 회복과 서북지역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북한선교위원회 부위원장 배원식 장로가, ‘세계열방의 복음전파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북한선교위원회 총무 김진철 목사가 간절히 특별기도했다.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상임회장 김학목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맞이했으니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평화, 복음 통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며 간절히 기도하자.”라고 축사, 북한선교위원회 서기 이영춘 목사가 광고 후 산서노회장 양기남 목사의 축도로 한민족 복음통일을 위한 8•15광복통일기도회를 마무리하고 해성교회에서 대접하는 애찬을 나누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알리는 말씀
1. 8,15광복 통일 기도회를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공동주최를 해주시고 순서를 맡아주신 총회 통일목회개발원 김찬곤원장님, 서북협장로회 회장 김성대장로님, 서북협 상임회장 김학목 목사님을 비롯하여 모든 순서자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3, 장소를 허락해 주시고 함께 기도에 동참해 주신 해성교회 당회장 및 당회원과 찬양대, 그리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서북협장로협의회 회원 장로님, 서북협 노회 소속 교회에서 참석해 주신 담임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5, 취재해주신 기자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6. 헌금은 전액 탈북민 신학생 장학금 지급에 사용됩니다.
-
2026-08-16
-
-
【111총회선거쟁점⑦】 선관위의 공정성...신뢰할 수 있는가?
-
-
최근 모 총회 단독 상비부장 입후보자가 이의신청을 받아 소명하고 후보확정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절차상 하자가 있어 결국 선관위의 공정성에 큰 흠집을 남기고 말았다.
입후보자 “이의신청 및 등록취소”에 관한 선거규정 제23조는 다음과 같다.
1. 입후보자의 기본 자격에 대한 이의신청은 등록마감일 후 10일 이내에 신청하여야 하며, 위원회는 10일 이내 심의하여 발표한다.
2. 입후보자 및 후보자에 대한 고소, 고발은 입후보자(후보자) 및 소속노회만 할 수 있으며, 위 1항의 기간에 제한받지 않되, 총회 개회 5일 전까지만 받기로 하다.
3. 확정된 후보자의 등록취소 사유가 발생한 경우 전체위원 2/3 이상의 출석과 출석 위원 2/3 이상의 결의로 해당자의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데 선관위는 이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
입후보자에 대한 이의신청은 “입후보자(후보자) 및 소속노회만 할 수 있으며”라고 규정했는데 그 단독 입후보자는 한 개인에 의해 이의신청 당했다.
그럼에도 선관위 심의분과는 그 이의신청을 받았고, 그 입후보자는 선관위에 불려가 해명해야 했다. 규정을 지켜 공정해야할 선관위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이미도 선관위는 총회총무 이력서 검증에 실패했었다. 그런데도 또 이처럼 버젓이 규정을 대놓고 어겼다.
이같이 선거규정을 지키지 않고,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선관위가 과연 총회 선거를 제대로 관리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번 스스로 깨트린 신뢰는 다시 회복할 수 없다!
신뢰는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
2026-08-15
-
-
【111총회선거쟁점⑥】 무리한 이의신청...패널티 줘야
-
-
상대 후보에 의해 이의신청 당한 부회의록서기 김광철 목사와 GMS 이사장 김성근 목사가 모두 심의를 통과했다.
부회의록서기 경쟁 후보인 육수복 목사가 김광철 목사에 대해 선관위에 이의신청 했으나 위법 사항이 없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GMS 이사장 경쟁후보인 조성호 목사가 김성근 목사에 대해 선관위에 이의신청 했으나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선 후보자들인 경우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선관위를 통해 후보 탈락을 원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단독 후보가 되어 당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샅샅이 조사한다.
문제는 당하는 상대 후보들의 입장이다. 이의신청을 당하면 이에 대해 소명해야 한다.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반박 자료를 준비해 선관위가 지정한 날짜와 시간, 장소에 가서 여러 시간 해명해야 하고 심사를 받고 최종 판단을 받아야 한다. 후보 입장에서는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의신청 당한 후보자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 받으면 이의신청한 상대 후보에게 패널티를 줘야 한다. 그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기자로서 기사와 관련해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당연히 무혐의, 불송치 결과를 받았지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고송 당했다는 문자를 받는 것 부터가 스트레스이며, 경찰 조사 받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후 무혐의를 받으면 화가 난다. 무고죄로 고소하고 싶으나 이또한 번거로운 일이라 속으로 분을 삭인다.
무고죄(誣告罪)는 “다른 사람이 형사 처분이나 징계 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관련 기관에 허위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성경은 무고나 위증에 대해 같은 형량으로 처벌하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선관위는 무리하게 이의신청을 한 후보자에 대해 패널티를 줘야한다. 그래야 신중하게 이의신청할 것이며, ‘안 되면 말고’식의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후보자들의 정견 발표가 있다.
육수복 목사는 그 시간에 상대 후보 김광철 목사에 대해 이의신청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 또한 조승호 목사도 상대 후보 김성근 목사에 대해 이의신청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상대 후보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 자들의 기본 도리라고 본다.
정견 발표회 때 어떻게 할지 지켜볼 것이다. 경선 후보자 이지만 그래도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는 목사 아닌가?
-
2026-08-15
-
-
지선협·성령의새연합새바람 주관, 8·15광복절 기념대성회
-
-
제81주년 8•15 광복절 기념대성회가 지구촌예수선교협회와 성령의 새연합 새바람 공동 주관으로 “회복의 대한민국! 성령의 새역사로!”란 주제로 8월 14일 오후 1시 30분 한국교회백주년기념회관 1층 그레이스홀에서 열렸다.
대표총회장 강영준 목사가 다음과 같이 개회선언했다.
할렐루야! 존경하는 목회자님과 성도 여러분, 그리고 귀한 내빈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81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곤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33:12) 오늘 이 성회를 통하여 나라와 민족이 하나 되고 한국교회가 다시 깨어나며, 성령의 새바람과 부흥의 불길이 이 땅에 힘차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순국선열과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회생을 기억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다음 세대에 아름답게 계승하고, 평화와 복음통일의 길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부터 사단법인 지구촌예수선교협회와 성령의 새연합 새바람이 함께하는 「제81주년 8•15 광복절 기념대성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1부 광복절 감사예배는 이인순 목사의 찬양 인도, 하늘띠선교회의 찬양과 경배 후 여성총재 임수연 목사의 인도로 실무총재 김형석 장로가 기도, 문화총재 이수 교수가 성시낭독, 서울예술콘서바토리 황재경 총장이 특별연주, 알파와오메가 선교단(박명순 목사)이 워십, 찬양위원 박순열 전도사가 특별찬양했다.
조황환 목사(지구촌예수선교협회 상임고문, 청와대 경목실장, 서울경찰청 교경협의회 대표회장)이 요 8:31-32을 본문으로 ‘참된 자유’란 제하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하셨듯이 우리 민족을 사용하고 계신다. 우리는 죄악을 벗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지선협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이다.”라고 설교했다.
헌금특별찬양
실무회장 최수아 목사가 헌금기도, 코람데오찬양단(이성호 단장) · 십자가선교단(노하나 선교사) · 김세형 목사가 헌금특별찬양했다.
국제신학 송유진 목사가 ‘대한민국이여, 복음으로 다시 일어나라! 한국교회여, 성령으로 다시 부흥하라!’란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과거 유교의 세력을 깨트리고 복음을 통해 신분을 철폐했다.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리자.”라고 특강했다.
격려사
제2부 제81주년 광복절 기념식은 강영준 목사(대표총회장)의 사회로 국민의례(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후 대표고문 피종진 목사(남서울중앙교회 • 세종평화의동산 원장)가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에 감동을 가져온다. 루즈벨트 부부가 그랬다. 긍정적인 말을 하자.”라고 환영사 및 광복절기념 메시지, 상임고문 정도출 목사가 “광복은 잃은 빛을 되찾는 것이다. 광복 이후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순국선열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자.”라고 대회사, 성령의새연합 대표 김새천 목사가 “다음세대와 미래를 위해 복음화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기념사, 여성고문 임은선 목사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 통일과 해방을 전 세계에 전하자.”라고, 상임고문 이 선 목사가 “빛과 소금으로 할 일을 함으로 이 땅을 밝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세밀협총재 황의일 목사가 “해방 이후 희년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사)한복운 대표회장 조영성 목사가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선조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세대에게 해방의 기쁨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분열하지 말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격려사했다.
상임총재 김영자 목사의 선창으로 다같이 “하나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한국교회 부흥 만세! 복음통일 만세!”를 삼창했다.
축사
지미협 이사장 장요한 목사가 “광복절은 희망의 날이다. 귀한 시간을 마련하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월기총 이사장 정진희 목사가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 자유를 다음세대에게도 전해야 한다.”라고, 백석부흥사회 대표회장 유진기 목사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부흥의 세대여 돌격하라!”라고, 천국복음부흥사회 총재 유연동 목사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천국에 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천국 복음을 전하도록 하자.”라고, 상임총재 박영수 목사가 “겸비하여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라고, 상임총재 한신 목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지켜야 한다.”라고, 국제신학 신대원 교수 박승암 목사가 “어디에나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성화신학원 원장 강창렬 목사가 “광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위대한 부흥을 이루도록 하자.”라고, 월성협 대표회장 이창조 목사가 “기도를 통해 복음 통일을 이루자.”라고, 상임총재 강대옥 목사가 “순국 선열의 희생을 기억하며 복음으로 섬기도록 하자.”라고, 한국신학협회 총재 탁명진 목사가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아 교회가 먼저 세워지고, 독립운동에 기독인들이 많았었다. 선조들의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있음을 잊지 말자.”라고, 서울신학교 부이사장 이종득 교수가 “더 큰 일 감당하는 단체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국제신학신대원 교수 이두원 목사가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자.”라고, 상임총재 정찬숙 목사가 “우리는 하나님파, 성령파가 되어야 한다.”라고, 이웃음 목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복을 주셨다. 자유를 누리며 종이 되지 말자.”라고 축사 후 상임고문 김동진 목사가 축도했다.
특별기도
제3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기도는실무총재 안영화 교수의 사회로 조상우 목사(미안마 선교사)가 율동, 주찬양 목사(성령의새연합)가 특송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위정자를 위하여’ 김보배 목사가, ‘나라와 민족과 경제 발전을 위하여’ 정복순 목사가, ‘대통령과 국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한성령 목사가, ‘한반도 평화와 복음통일을 위하여’ 장문옥 목사가,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하여’ 윤재민 목사가, ‘다음 세대와 세계선교를 위하여’ 김미옥 목사가, ‘세계선교사와 아시아복음회 위하여’ 이에스라 목사가 특별기도 후 "주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여! 한국교회를 다시 부흥시켜 주옵소서!", "주여! 복음통일의 문을 열어 주옵소서!" 특별기도하고, 선교비 지원 추첨 후 뜻깊고 은혜로운 행사를 마무리했다.
-
2026-08-14
-
-
헌의부의 잣대는 자의적인가?
-
-
헌의부는 이리노회 이남국 목사가 북일교회 이 진 목사를 상대로 제출한 고소장을 지난 7월 회의에서 서류미비로 반려했었다. 그런데 8월 13일 어제 보완되었다며 재판국으로 이첩했다.
놀라운 것은 어제 오후에 헌의부 회의록이 정리되었는데, 총회 재판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헌의부 회의가 끝나자마다 같은 날 이진 목사에게 피고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폭행당했다며 개인이 제출한 고소장을 헌의부 회의가 끝나자마자 재판국이 피고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일이 가능한가? 재판국은 헌의부가 이첩해 줄 것이라고 이미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가? 그래서 장소도 미리 섭외했는가?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은, 폭행당했다며 고소한 이남국 목사는 그 사건에서 이 진 목사를 폭행한 가해자임이 확인되어 지난 6월 검찰에 송치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동안 헌의부는 “사회소송시행세칙”과 “법과 원칙”에 따라 평택제일교회 김태식 목사의 상소건을 최종적으로 5회에 걸쳐 기각했다. 그러면서 사회소송 중인 최00 목사의 상소건은 재판국으로 이첩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였다.
그런데 폭행가해자가 오히려 폭행당했다며 개인이 낸 고소장은 재판국으로 이첩한 이유는 무엇인가?
헌의부의 판단 잣대는 자의적인가? 헌의부가 결정하면 모든 것이 옳은 것인가? 헌의부의 역할과 존재 이유, 심사 기준이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고 있다.
총회는 헌의부의 일탈을 견제하기 위해 이미 여러차례 결의를 했지만 110회 헌의부는 마이동풍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총회는 다시한번 헌의부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
2026-08-14
-
-
합동군목회 주관, 한국군목회 광복·건국 기념예배 및 경축식
-
-
광복 81주년 · 건국 78주년 기념예배 및 경축식이 한국군목회 주최, 합동군목회 주관으로 8월 13일 오전 11시 사랑의교회 예배실(언약채플)에서 열렸다. 행사 후 오찬은 사랑의교회 이유림 권사가 대접했다.
기념예배는 이용락 목사(합동군목회 사무총장, 육51기)의 인도로 이석영 목사(전 한국군종목사단장, 육55기)가 기도, 홍바울 목사(합동군목회 부회계 육61기)가 고후 5:18-19을 봉독했다.
윤병국 목사(합동군목회 대표회장, 육41기)가 『광복 이후, 우리는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와 화목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다. 우리는 목회에서 물러난다고해도 여전히 화목하게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화목의 유산을 남기며 화목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① 대한민국과 강한 국군을 위해 성건화 목사(합동군목회 사무국장, 육54기)가, ② 군선교와 미래세대를 위해 정한진 목사(로뎀교회, 육63기)가 특별기도 후 문원철 목사(전 육군군종감, 육20기)의 축도로 기념예배를 마쳤다.
경축식은 국민의례(국기에 대한 주목, 애국가 제창) 후 정의선 목사(본회 이사장, 육30기)가 “오늘 행사를 잘 준비해 주신 합동군목회와 사랑의교회에 감사드린다. 광복은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어야 한다. 군목은 장병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한다.”라고 인사 및 기념사했다.
주연종 목사(사랑의교회, 육50기)가 『광복의 은혜, 건국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특강했다.
임익곤 목사(새한교회 원로, 육36기)가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우리 한국군목회가 하나 되어 연합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 광복절 노래 제창 후 박종건 목사(합동군목회 서기 육56기)가 만세삼창 선창, 김명일 목사(본회 사무총장, 육44기)가 광고 후 권성묵 목사(본회 부이사장, 육36기)의 폐회기도로 경축식을 마무리하고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알리는 말씀
1. 광복 81주년 및 건국 78주년 기념예배 · 경축식에 참석해 주신 이사, 회원 및 내빈께 감사드립니다.
2. 금일 행사를 주관하고 후원해주신 예장총회 합동군목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기념예배 및 경축식에 순서를 맡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 금일 장소를 제공한 사랑의교회와 오찬을 제공해주신 사랑의교회 이유림 권사님께 감사드립니다.
5. 오찬은 13층 식당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
2026-08-13
-
-
【111총회선거쟁점⑤】 총대들은 후보자 학력을 알권리가 있다
-
-
여러 교단 언론들이 한 총회총무 후보자의 학력 기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본지를 포함해 여러 언론들이 지적하는 것은 그가 편목이고, 신학교를 나왔다는 것이 아니다. 총회총무로서 능력이 있다면 이것은 하등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이력서를 허위기재했다는 것이다.
그는 편목으로 신학원 과정을 수학했다. 문교부 정식 학위도 아니고, 졸업이란 것도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졸업증명서와 다르게 기재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졸업증명서대로 정직하게 기록했다면 이런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이 문제를 없던 것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만큼 목사들은 학력에 대해 예민하다.
아직도 총신대 졸업생들 가운데는 “본과” “예과” 갈등이 있다. 문교부 정식 학사 학위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학대학원을 어떤 과정으로 했느냐도 중요한 문제이다. M.Div, Diploma, 연구원, 연수원 등등 다양한 과정이 있기에 이로 인한 갈등은 지금도 남아 있다. 본 기자가 신대원을 다녔던 1989-1992년에도 과정 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
우리사회는 학력에 대해 예민하다. 소위 명문대를 나오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명문대를 갈려고 하는 것이다. 명문대 졸업자는 교회에 지원할 때도 가산점을 받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목사들은 대부분 가방끈이 길다. 신대원은 기본이며 이후 석사, 박사를 한다. 안되면 돈을 들여 명예박사라도 받을려고 한다. 그래서 설교할 때도 박사 까운을 입는다. 참으로 웃픈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과거 가짜 박사 사건이 사회에 터졌을 때 상당수가 목회자들이었다. 지금도 얼마의 돈만 내면 국내외 박사학위를 살 수 있다.
과연 이것이 목사의 양심에 맞는 일인가? 열심히 목회 하는데 굳이 많은 학위가 필요한가? 또 이처럼 돈 들여 가짜박사, 명예박사를 따는 것이 자랑스럽고 떳떳한가? 정말 명예가 있어 이를 기리기 위해 명박을 준다면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총회총무는 서류접수를 임원회에 한다. 이후 선관위에 넘겨 선거를 진행한다. 그렇다면 임원회에서 제출된 서류를 제대로 검증했어야 했다. 그러나 직무를 유기해 총회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는가? 서기인가? 총회장인가?
선관위도 제출서류를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임원회에서 다 검토했으니 우리는 형식적으로 할 뿐이라고 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총회총무에 나서는 자는 임원회와 선관위만 속이거나 야합하면 된다. 그러면 총대들은 후보자들의 거짓 학력에 속아 투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본지는 총회 입후보자들의 학력, 이력을 총대들에게 공개하기를 제안한다. 국회의원이나 기초단체장들도 벽보나, 선거 안내지에 이력을 다 밝히지 않는가? 기독신문에 게재하든 선거 브로셔에 게재하든 입후보자들의 학력과 이력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깜깜이 투표를 하지 않게 되고, 학력을 허위기재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이력서도 정직하게 기재하지 않는 후보에게 어떻게 3년간 총회 전체의 살림을 맡길 수 있느냐는 여론이 들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이 불길은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2026-08-10
-
-
【111총회선거쟁점④】 총무 후보자 학력 허위기재-심각한 문제
-
-
본 기자는 총신신대원 85회 졸업생이다. 1989년에 입학해 1992년에 졸업했다. 이 당시 1반에서 4반까지가 신대원 정규과정이었다. 이 안에는 문교부 정식 학위를 받는 소수의 M.Div 과정 학생들과 총회 학위 인정인 diploma 학생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서울대를 졸업한 지인은 diploma 과정에 합격하자 1년 재수해서 다음 해 M.Div. 과정으로 입학하고, 이후 유학해 모 신학교의 교수가 됐다.
기자가 수업할 당시 정규과정 외에도 연구원, 연수원 과정 등이 있었다. 이제 이 과정들은 폐지되고 전교생은 모두 문교부 정식학위인 M.Div생이다. 더 이상 학위 과정으로 인한 문제나 갈등은 없다. 어찌됐든 벌써 40여년 전 일이다. 이후 다들 목사가 됐고 목회를 하고 있거나 은퇴를 하기도 했다. 무슨 과정으로 공부를 했든 졸업 후 목회를 성실히 열심히 하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신대원을 M.Div.로 하든, diploma로 하든, 연구원을 하든 연수원을 하든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다 과거이고 현재가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적으로 이력서를 쓸 때 자신이 배운 과정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을 때이다. 교회에 청빙서류를 제출할 때 또는 기관에 지원 서류를 접수할 때는 이력서에 정확하게 기재해야 하고, 졸업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졸업장 내용과 제출 이력서의 내용이 다르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력서에는 증명서에 있는 내용대로 써야한다. 그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총무에 입후보한 한 후보가 제출한 졸업증명서와 이력서의 내용이 달라 문제가 심각하다.
편목을 한 그 후보의 졸업장에는 총회신학원 목회전문과정(M.Div. Equiv.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과 동등)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력서에는 총신대신학대학원(M.Div. Equiv.), 발령청 교육부(총신대)라고 기재했다.
총회신학원은 교육부 등록 기관이 아니기에 교육부에서 졸업장을 발령할 수 없다. 이렇게 이력서를 기재한 것을 사법에 문제 제기하면 허위 공문서 작성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문제를 제기하자 모 언론은 이를 마타도어라고 했다.
두 언론사의 후보 서류 기재 사항 문제제기
후보 서류 유출에 관한 선관위 해명 필요해
각종 마타도어 의혹도 심각할 정도로 진행돼 논란
한편, 총회선거를 앞두고 마타도어를 심하게 하는 제보가 쏟아진다. 우리 총회는 마타도어 없는 총회가 되면 안 되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두 언론사는 선관위에 제출된 후보의 서류에 대한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이 언론사들은 후보를 특정하지 아니하고 등록서류에 기재된 학력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총회 선관위에 접수된 문서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서류의 내용을 확인한 것처럼 보도했다. 두 언론은 "총회 임원 후보의 이력서에 허위 기재가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총회 선관위는 비밀을 유지해야 할 후보의 서류가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지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수년 전에도 이 문제로 총회가 홍역을 겪은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총회의 큰 인물이 단명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두 언론의 지적처럼 이력서에 학력에 대한 허위 기재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선관위가 서류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다.
사실을 지적하는데 이게 왜 마타도어인가? 또 진실을 밝혀야 하는 언론으로서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렇게 지적질하는 기자도 과거에 유출된 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쓰지 않았던가?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이 언론은 다음의 총회 결의 사항을 근거로 학력 기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89회 총회장 서기행 목사 때 같은 노회가 헌의해 얻은 결의로 만에 하나 총회신학원 졸업자가 총신 신대원생으로 기재할 수 있다고 해도 “목사 청빙 시에도”라고 한정하고 있다. 만약 신학원 졸업자를 신대원 졸업자와 동등하게 해줄려면 졸업장에도 동일하게 기재해야 한다. 그러나 졸업장이 다르지 않은가? 이것이 팩트이다. 그러므로 월급 받는 직원인 총회 총무 지원자가 이런 식으로 서류를 제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교회도 이런 식으로 기재한 지원자를 뽑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무슨 과정으로 신대원 과정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자기의 사익을 위해 이것을 고의로 다르게 적어 제출하는 것이다. 이는 목사의 양심에도 맞지 않고, 총회를 기망하는 것이며 아울러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후보에 대한 의혹이 여러 가지라 앞으로도 많은 기사를 써야할 것 같다.
1차적으로 서류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총회 임원들에게 그 책임이 있고, 2차적으로는 선관위에 그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력을 허위로 기재한 당사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이 제일 크다!
-
2026-08-09
-
-
제13회기 서울·서북남전연, 남석필 장로 회장· 임긍호 집사 수석부회장 선출
-
-
제13회기 서울•서북지역남전도회연합회 정기총회가 8월 8일 오후 1시 맑은샘광천교회(김현중 목사 시무)에서 열려 남석필 장로를 회장으로, 임긍호 집사를 수석부회장으로 선출, 김덕현 장로를 총무로 지명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12회기 회장 조성탄 장로가 “지난 1년간 기도하시고 함께 하신 모든 회원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이임사, 13회기 회장 남석필 장로가 “오늘 총회를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전도와 기도에 힘쓰는 한 회기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취임사했다.
1부 개회예배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인도로 부총무 라동철 집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표어제창, 수석부회장 남석필 장로가 기도, 서기 정태남 장로가 롬15:76-19을 봉독, 경기노회남전도회연합회가 특송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란 제목으로 “은혜의 목적은 첫째,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는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 둘째,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주님은 나를 통해 일하신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동원 가능한 자원을 모으셔서 일을 이루신다. 남전도회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회계 김덕현 장로가 헌금기도, 맑은샘광천교회 시무장로 일동이 헌금송, 총무 하정민 장로가 광고 후 경기노회장 임은진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격려사
2부 격려사와 축사 및 환영사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인도로 증경장로부총회장 김영구 장로가 “한 회기 수고하셨다, 새 회기는 하고 싶은 것 잘 하시기 바란다.”라고, 장로부총회장 홍석환 장로가 “남전도회 사명은 전도와 선교이다. 먼저 하나님께 드림으로 채움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명예회장 배원식 장로가 “조성탄 장로는 토마스기념관을 위해 많이 수고하고 계신다. 신임회장 남석필 장로님과는 많은 일을 같이 했다. 잘 되실 것이라 믿는다.”라고, 증경장로부총회장 최수용 장로가 “남전도회가 세계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올 한해 기도로 협력하며 잘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축사
총회 서기 김용대 목사가 “조성탄 장로님께서 많은 수고를 하셨고, 남석필 장로님께서도 잘 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총회 부서기 유병희 목사가 “생명력 갖고 살아있는 연합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총무 전병하 장로가 “연합회가 전남연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 감사하다.”라고,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해중 장로가 “한해 수고하셨고, 올 한해도 잘 섬기실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희근 장로가 “조성탄 장로님께서 토마스기념관 일 잘 마무리 하시기 바라고, 남석필 장로님께서 잘 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전국주교 수도권협의회 회장 박종일 장로가 “연합하고 화합하며 새로운 도약을 하기 바란다. ”라고 축사, 경기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황 종 장로가 환영사, 맑은샘광천교회 김현중 목사가 환영인사, 당회서기 정재묵 장로가 교회 광고 후 2부를 마무리했다.
3부 감사패 및 공로패 증정은 서기 정태남 장로의 사회로 감사패, 공로패를 전달했다.
회장 감사패
맑은샘광천교회 김현중 목사, 경기노회남전도회 연합회 회장 황 종 장로, 수도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최점동 장로, 서울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김덕현 장로
회장 공로패
전도위원회 위원장 송기덕 장로, 해외선교위원회 위원장 김용직 장로,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장승수 장로, 군경복음화위원회위원장 정승열 장로,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이희근 장로 (준비위원장), 임역원 수련회 준비위원장 최동균 장로 / 이수행 장로, 부부수련회 준비위원장/ 남석필 장로/ 임금호 장로 (임역원), 총무 하정민 장로 / 서기 정태남 장로, 회록서기 전병철 장로/ 회계 김덕현 장로
공로상
박정수 장로 / 고영란 권사
4부 총회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사회로 명예회장 신웅철 장로가 기도, 서기 정태남 장로가 회원 85명 참석 보고, 회의록서기 전병철 장로가 제 12회기 정기총회 회의록 보고, 총무 하정민 장로가사업보고, 감사 변정섭 집사가 감사보고, 회계 김덕현 장로가 회계보고했다. 이어 임원선거, 신구임원교체, 임원휘장분배, 고퇴 및 회기 인계 인수, 명예회장 추대와 기념뺏지 및 패증정, 신안건토의, 신임 총무가 광고 후 고문 염채화 장로가 폐회기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
2026-08-08
오피니언 검색결과
-
-
【북토크440】 성공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피곤한 삶
-
-
출간 즉시 철학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가 된 책으로 저자 한병철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이다. 그는 현지에서 서양 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속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판가로 평가 받았으며, 이 책에서는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해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
저자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사회,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고 보고,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 그러나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답을 구하라
저자는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로’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이고,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위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한병철은 피로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본다. 피로는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며, 긍정적 정신으로 충만한 자아의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한다. 피로한 자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예스24
두 번째 읽었는데도 역시 쉽지 않다. 예스24와 역자의 글을 통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내게 어려운 책이라 ‘피로’하다.
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 장에서 노동하는 동물(p. 44)의 승리를 다룬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발전에 맞설 수 있는 어떤 효과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체념적 태도로 이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소수에 국한 되어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이어서 그녀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불쑥 사유의 힘에 호소한다. 근대의 부정적인 발전으로 인한 손상을 가장 덜 입은 것이 사유라는 것이다. 비록 세계의 미래가 사유보다는 행동하는 인간의 힘에 좌우될 터이지만, 사유도 우리의 미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는 활동적 삶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적인 것이며 순수한 활동성의 면에서 모든 활동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사유의 체험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카토의 경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은 다소 임시변통으로 보인다. “활동의 경험”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는 순수한 사유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활동성은 오히려 후기근대적 성과 사회의 활동과잉과 히스테리를 많이 닮은 것처럼 보인다. 아(p. 45)렌트가 책의 마지막에 제시한 카토의 경구 역시 다소 엉뚱하게 느껴진다. 원래 이 경구는 키케로가 『공화정에 대하여』에서 자기 말의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아렌트가 인용한 부분에서 키케로는 "광장"과 "북적대는 군중"에서 벗어나 사색적 삶의 고독 속으로 돌아갈 것을 독자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는 카토를 인용한 뒤에 사색적 삶을 찬미한다. 활동적인 삶이 아니라 사색적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 본연의 존재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렌트는 활동적 삶에 대한 찬양으로 만들어 버린다. 카토가 이야기하는 사색적 삶의 고독도 아렌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행동하는 인간의 힘"과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활동적 삶』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기 의도와는 달리 사색적 삶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바로 사색적 능력의 상실이야말로 무엇 보다 활동적 삶의 절대화와 관련이 있으며 근대적 활동사회의 히스테리와 신경증을 낳은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p. 46).
이상 자아에 비하면 현실의 자아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나타난다. 자아는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모든 외적 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p. 103)괴적 자기 강제의 덫에 걸려든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p. 104).
역자 후기
간결명료하게 씌어진 이 짧은 책의 요지를 역자가 다시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책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 지점을 지적하고 한국 현실과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역자의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테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회를 지배해온 부정성의 패러다임(금지, 강제, 규율, 의무, 결핍, 타(p. 119)자에 대한 거부 등, 한병철은 이를 면역학적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이 적어도 20세기 말부터 긍정성의 패러다임(능력, 성과, 자기 주도, 과잉, 타자성의 소멸 등등)으로 전환되었거나 전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회가 푸코적 의미의 규율사회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복종적 주체라고 한다면, 오늘날은 그 자리에 성과사회, 성과주체가 대신 들어선다. 이러한 테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근대 이후의 세계, 포스트모던한 세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사회, 긍정성 과잉의 사회는 흔히 얘기되는 후근대적 사회, 즉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냉전의 종식, 다문화주의, 바이러스성 질병의 효과적 퇴치, 규제와 억압의 철폐와 개인적 욕망의 긍정 등 다양한 차원에서 관철되는 긍정성의 패러다임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병철은 바로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이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치 늘어나는 자기 자신의 지방질에 병들어가는 사람처럼,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간다. 그 결과 스(p. 120)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주체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금지, 강제, 억압의 철폐, 타자에 대한 관용의 확대가 개인의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토피아로 이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의 무게 에 짓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더 나아가서 한병철은 프로이트, 푸코, 아감벤의 사상이 금지, 억압, 규율, 감시, 주권자/희생자의 이분법과 같은 부정성의 패러다임 속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산물로서 근대를 기술하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을 패러다임 전환 이후의 사회, 즉 긍정성 과잉의 성과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 거명된 사상가들이 여전히 현실 분석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병철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라도 대단히 파격적이고 깊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의 정신분석학은 19세기 말 서양 부르주아 사회에서 성적 욕망(p. 121)에 대한 금지와 억압의 기제가 균열을 일으키던 시대에 등장한 것이고, 그의 이론 자체가 그러한 부정성의 약화에 현저하게 기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 정신에서 작동하는 부정성의 구조를 기술하는 이론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부정성의 패러다임이 위기에 빠졌음을, 그리고 그런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임을 알리는 징후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의식의 발견은 무의식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이후의 주체는 무의식이 없다고 한병철은 말한다.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학교 교육과 관련하여 체벌이나 학생 인권 조례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은 우리 역시 그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일 것이다. 의무 과목의 축소 및 철폐, 자기 주도 학습의 강조,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개별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입시 전형 방식의 도입(예컨대 입학사정관제)은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주체로 길러내기보다는 더욱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경쟁, 한(p. 122)병철이 말하는 “절대적인 경쟁”(남과의 상대적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뛰어넘어야 하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의 무대로 몰아가고 있다. 입시 지옥에서의 해방을 약속한 최초의 교육부 장관이 내세운 구호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20개에 가까운 교과목의 무게에 신음하던 학생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을 이 구호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며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정성의 패러다임을 좀더 거시적인 차원에 적용해보면, 분단국으로서의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이념적 지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특수한 문제점들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분단 이후 미국의 절대적 영향 아래서 전개되어온 남한의 현대사는 이중 부정성, 이중 타자의 문제에 시달려왔다. 즉 이데올로기적 타자(북한)와 민족적 타자(미국)의 문제. 이 때문에 근대적 의미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혼선을 빚게 된다. 이데올로(p. 123)기적 타자에 대한 부정은 민족적 타자에 대한 부정 (즉 민족적 정체성의 구성)을 방해하고, 민족적 타자에 대한 부정은 이데올로기적 타자에 대한 부정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의 구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성은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 있던 서독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서독에 진주한 미군은 민족적 타자로서 거부될 수 없었다. 히틀러 시대를 겪은 뒤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불온하고 금지되어야 할 이념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독의 경우 애초부터 민족적, 인종적 친연성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타자성은 남한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이 사실이다.) 서독에는 오직 동독과 그 배후의 소련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타자가 있었을 뿐이다. 남한의 경우 단순한 부정성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부정성을 택하고 다른 하나의 부정성을 억지로 지워버려야 했다. 민족적 부정성을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으로 환원해버리거나(이때 북한은 주적이고 미국은 형제다),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을 민족적 부정성으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다(이때 미국은 제국주의자이고 조국은 하나다). 1970~80년대까지는 강력한 반공주의에 의해 민족적 부정성이 부인되었다면, 그러한 반공주의적 억압이 사라진 이후에(p. 124)도 남한이 이룩한 통상국가로서의 기적적 성공은 미국이라는 민족적 타자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자라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를 거의 없애버렸다. 2008년의 촛불 시위에 민족적 부정성의 차원('검역 주권')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위의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은 건강의 위험에 대한 소박한 염려에 있었다. 한병철의 말대로 ‘건강’과 ‘벌거벗은 생명’이 성과사회의 최후의 가치가 된다면, 미국산 소고기 문제가 최근의 어떤 이슈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큰 규모의 시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성과사회의 징후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을 타자로 위험시하고 거부하는 이데올로기적 부정성도 특히 1987년의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왔다. 민족적 부정성을 앞세우며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을 부인하는 입장(조국은 하나다)에 가까웠던 재야 운동가, 학생운동가들이 제도권으로 진출하고 정치• 사회적 권력에 참여하면서, 북한을 이데올로기적 타자로 규정하는 전통적 반공주의는 급속도로 힘을 잃어갔으며, 햇볕정책도 그러한 토대 위에서 실행될 수 있었다.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의 국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도 이데올로기적 부정성이 희미해져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 (한병철이(p. 125) 유럽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두고 말한 것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더 이상 위협적인 타자가 아니라 그저 짐스럽고 무관심한 타자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한 경향은 냉전 시대의 기억을 환기하던 절대적 지배자 김정일의 죽음 이후 더욱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이래로 우리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했던 이중의 부정성이라는 문제에서 - 여전히 이런저런 불안 요인과 염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 점차 빠져나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이중의 부정성 문제를 어떻게 단순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된 남한 특유의 정치 지형(보수-진보의 대립 구도)도 조만간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와 성과주체의 이상이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고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병철은 그것을 착(p. 126)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한병철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한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지목하고, 그 배후에 성과사회의 압력이 놓여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병의 진단은 나왔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자의 강제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런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항하(p. 127)는 마르크스주의의 모델이다. 그러나 우울증의 배후에 놓인 성과사회의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를 취하며, 오직 인간 자신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만 관철된다. 따라서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한병철의 예리한 시대 진단은 그러한 쉽지 않은 반성과 자각의 출발점이 될 것이며, 이 책이 고도로 발달한 성과사회의 한복판(독일)에서 얻은 호응은 그의 제안이 고독한 메아리 이상의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2012년 3월에 김태환(p. 128).
-
2026-08-14
-
-
【북토크439】 커피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통되었는가?
-
-
자연, 인간, 커피를 블렌딩한 ‘아주 특별한 기행’
《커피기행》은 커피를 생업으로 삼아온 박종만 커피박물관 관장이 쓴 ‘커피 로드coffee road’에 관한 기록이다. 커피 로드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커피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까지 퍼져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이 땅에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종만 관장은 우리 커피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북한강변에 커피박물관을 열고 커피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 첫걸음으로 커피의 기원과 초기 전파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커피탐험대를 결성하고 2007년 2월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책은 그 결과를 책으로 담은 것이다. 우선 탐험대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아프리카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케냐 커피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그리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자 20세기 초 이곳에서 커피농장으로 성공을 꿈꾸었던 덴마크 소설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흔적을 살펴본다. ‘킬리만자로 커피’의 생산지로 알려진 탄자니아에서 탐험대는 커피위원회를 무작정 방문하여, 현지 농부의 손을 떠난 커피가 정부에 의해 어떻게 등급별로 관리되고 국외로 수출되는지 취재한다. 그리고 바리스타 챔피언대회가 열린 에티오피아에서 우연히 일본 UCC커피의 우에시마上鳥 사장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커피의 고향 짐마와 70년 전통의 옥사데이 커피회사를 둘러 본 탐험대는 19세기 말 랭보가 낙타 카라반으로 커피를 실어 나른 길을 따라 사막과 홍해를 건너 예멘의 모카 항으로 향한다.-예스24.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커피를 먹는다. 밖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먹은 적이 없다. 커피 리브레를 통해 원두를 배달해 먹는데 맛이 좋다. 우연히 커피에 대해 알고 싶어 읽었다. 그런데 20년 전 책이라 최근 책도 찾아 보고 싶다.
커피가 탄생하기까지
8세기 에티오피아의 카파(Kafa, 지금의 짐마Jimma시), 그곳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양을 몰던 소년 칼디Kaldi는 이름 모를 나무의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뛰노는 양을 보며 의문에 빠졌다. 무엇이 양들을 저토록 신이 나게 만들었을까? 칼디는 직접 그 열매를 따서 조심스럽게 입 안에 넣었다. 쌉싸래한 맛을 혀끝까지 몰고 들어온 그 열매는 곧 칼디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열매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온 칼디는 마을의 수도승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다. 밤마다 고된 고행으로 졸음과 싸우던 수도승에게 이것은 구원의 열매였다. 칼디가 발견한 이 ‘하늘의 선물’이 바로 커피다(p. 12).
하늘은 푸르고 흙은 붉다. 까만 피부의 케냐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는 자연 그 자체다. 자연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나를 알 수 없는 그 어떤 먼 곳으로 이끌어간다. 오래전 여행 중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겨우 먼발치에서 들었던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의 연주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한두 소절만을 부탁했지만 노래는 쉽게 끊이질 않았다. 노랫말을 물어보니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커피농장은 즐거움과 고난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간절한 희망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케냐 농부들은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 반까지 일하지만 대우는 썩 좋지 않다. 하루 100케냐실링의 돈을 받는데, 79케냐실링이 약 1달러 이므로 우리 돈 10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우리 눈으로 봤을 때는 100 케냐실링은 큰돈이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돈이다. 이마저 벌지 않으면 구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다(p. 39).
출발하기 전 되뇌었던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린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 가려면 굽이 돌아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지부티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p. 188).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이고 그 야생커피를 처음으로 경작한 곳이 예멘이다. 800년경 에티오피아의 '가파' 지방에서 발견된 ‘분’은 이슬람 수도사에 의해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초기에는 종교적 논란으로 이슬람 사원 뜰에서 비밀리에 재배되던 커피가 수도승에게 잠을 쫓는 약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비로소 이슬람 제국의 성스러운 음료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온 ‘분’을 아랍 사람들이 그들 발음으로 '카하와Qahwah‘ 라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기독교 사회에서는 1605년 교황 클레멘트 8세에 의해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서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다.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모든 커피는 예멘의 모카 항으로부터 수입 됐다. 수도 사나Sanna에서 재배된 예멘 커피와 지부티 항을 통해 들어온 에티오피아 커피가 이곳 모카 항에 모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 사람들은 예멘 커피와 에티오피아 커피의 구분없이 모두 모카라 일컫어졌고,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굳이 따져 말하자면 '에티오피아 모카', '예멘 모카'가 맞는 말이다. 이후로는 친근함과 편리성을 내세워 '커피' 자체를 뜻할(p. 202)때도 '모카A cup of Mocca 라 불렀다. 인도의 자바Java에서 커피가 재배 된 뒤로는 커피를 '자바A cup of Java' 로 부르기도 했다. 19세기가 될 때까지 영화를 누리던 모카 항은 커피의 주요 생산국이 남미와 아프리카로 확대되면서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p. 204).
모카커피의 본고장 예멘에서도 제대로 된 모카커피는 맛볼 수 없었다. 모순이지만 현실이다. 예멘 사람들에게 커피는 카트와 밀크티에 밀려 한참 뒤쳐져있다. 예멘에서 커피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비싼 커피 값 때문만은 아니다. 카트를 씹고 나서 찬물로 입안을 헹구고 밀크티를 마시면서 저녁 기도를 드리는 그들의 이슬람 문화가 주요 원인이다. 농민들도 너나없이 커피농사를 마다하고 카트를 심는다. 커피보다 몇 배(p. 212) 높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이토록 카트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는 카트를 마약에 비유한다. 그 옛날 기독교 사회에 서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며 커피를 배척했음을 떠올리면 역사의 아이러니다(p. 213).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잠을 쫓는 약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이슬람 제국 전체로 퍼져나간다. 커피는 이슬람교의 물결을 타고 이집트, 시리아를 거쳐 동서 문명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 와서 문화로 꽃을 피웠다. 카흐베하네Kahvehane라 불리는 터키의 커피점은 체스, 노래와 춤, 잡담이 오가는 사교적 · 상업적 장소를 넘어 정치 토론의 장으로도 이용되었다(p. 216).
-
2026-08-14
-
-
【북토크438】 우연이 빚어낸 역사의 아이러니, 그것이 인생
-
-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지만, 죽는 날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이미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의 크기와 아시아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그가 발견한 땅이 아시아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콜럼버스는 그런 과학적 지적을 외면한 채 “지구는 서양배 모양”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한 사람만은 그 땅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보았다. 피렌체 출신의 항해자이자 관찰자, 아메리고 베스푸치. 그는 여러 차례 탐험 끝에, “이곳은 아시아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라는 역사적 인식을 기록했다. 유럽의 지성, 독일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특유의 치밀한 관찰력으로 탐정과도 같이 역사의 진실을 밝혀낸다. 역사는 때로 사소한 착오 하나가 빚어낸 엄청난 아이러니를 남긴다. 15세기 말,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대신 뒤늦게 등장한 피렌체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이 어쩌다 두 대륙의 이름으로 굳어졌을까? 츠바이크는 아메리고를 둘러싼 오해와 논쟁의 역사를 추적하며, 작은 편지 한 장과 지도 한 장에 깃든 우연이 어떻게 수세기 동안 굳어진 신대륙 명명의 비밀이 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예스24
우연이 얽혀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 세상살이며 인생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이 또한 헛된 일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도 이미 알고 있었던 세계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세계를 더 넓힌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에게 이를 처음으로 명확히 인식시켜 준 인물은 아메리코 베스푸티오Americo Vesputio였다고 말이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그가 새로운 지역의 발견자라고 확실히 공인된다. 그리고 일곱 번째 장에 이르러 갑자기 앞으로 수백 년 동안 결정적(p. 87)인 영향을 미칠 제안이 등장한다. 발트제 뮐러는 지구의 네 번째 대륙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제안을 덧붙인다. “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쿠스Americus 이므로, 이제부터는 그 땅을 아메리쿠스의 땅 Earth of America 또는 아메리카 America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이 세 줄의 글이 사실상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출생 신고서나 다름없었다. 소책자의 종이 위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이 활자화되어 인쇄되었다. 만약 콜럼버스가 산타마리아 Santa Maria 호의 갑판 위에서 과나하니 해안이 멀리 반짝이는 것을 보았던 1492년 10월 12일을 신대륙의 생일이라고 부른다면, 이 『지리학 입문』이 출판사를 떠난 1507년 4월 25일을 우리는 신대륙의 세례 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27세의 인문주의자가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소도시에서 내뱉은 이 말은 그저 작은 제안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가진 매력에 도취되어 그것을 다시 한번 더욱 절실한 어조로 되풀이한다. 아홉 번째 장에서 발트제뮐러는 한 단락 전체를 할애하여 자신의 제안을 부연 설명한다(p. 88). "오늘날 지구의 세 부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는 이미 완전히 탐구되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네 번째 대륙을 발견하였다. 유럽과 아시아도 여자 이름이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이 부분을 총명한 사람 아메리고가 발견한 아메리고의 땅, 아메리카라고 부른다고 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 동시에 발트제뮐러는 '아메리카'라는 단어를 단락의 여백에도 인쇄했고, 이 책에 첨부된 세계 지도에도 적어 넣었다. 그 순간 이후로 유한한 존재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 위에 불멸의 후광을 쓰게 된 것이다. 아메리카라는 땅은 이때부터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고, 영원히 그렇게 불릴 운명을 맞았다(p. 89).
이 이름을 가장 열심히 따랐던 사람들은 지도 제작자들이었다. 곧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모든 지구의와 모든 판화 그리고 모든 책과 모든 지도에 등장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지도만이 예외였다. 그것은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발트제뮐러의 지도가 나온 지 불과 6년 뒤인 1513년에 출간된 지도였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이름 사용을 거부한 고집스러운 지도 제작자는 누구였을까? 놀랍게도 그는 바로 그 이름을 처음 제안했던 발트제뮐러 자신이었다. 그는 괴테의 시에 등장하는 마술사의 제자처럼, 마른 빗자루에 생명을 불어(p. 99) 넣었다가 자신이 불러낸 존재를 잠재울 마법의 주문을 알지 못해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누군가의 지적을 받고 콜럼버스에게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발트제뮐러가 왜 자신의 손으로 붙인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다시 없애려 했는지,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진실이 한 번 전설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은 거의 없다. 말이란 세상에 한 번 퍼져나가면 자신만의 힘을 얻어, 그것을 창조한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유롭고 독립적으 로 존재를 이어가기 마련이다. 최초로 '아메리카'라는 말을 입에 올렸던 젊은 지리학자는 후회하며 그 말을 거둬들이려 했으나, 이미 헛된 일이었다. 그 말은 이미 허공을 가르며 책과 책 사이, 활자와 활자 사이, 입과 입 사이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불멸의 존재가 되어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현실이자 동시에 하나의 이념이 되었다(p. 100).
지리학자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치열하게 진행된 논쟁에서 제기된 증거와 반론들을 일일이 제시한다면, 그 분량 만으로도 책 한 권이 될 정도다. 간단히 말하자면, 학자들의 절반 이상은 첫 번째 항해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반면 베스푸치를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나머지 학자들은 이 기회를 빌려 베스푸치가 플로리다 혹은 아마존강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스푸치의 엄청난 명성이 주로 이 첫 번째 항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문(p. 124)헌학적 증거로 그 기반을 흔드는 순간 오류와 우연,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남을 따라 한 행위들로 쌓아 올린 바벨탑은 흔들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인물은 에레라Herrera였다. 그는 1601년 자신의 저서 『서인도제도의 역사』에서 일격을 가했다. 스페인의 역사가가 증거를 찾기 위(p. 125)해 오랜 노력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당시 아직 출간 되지 않은 라스 카사스의 원고를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레라는 라스 카사스가 제시한 근거들을 토대로 「네번의 항해」에 기록된 날짜가 실제와 다르며, 베스푸치가 오헤다와 함께 항해에 나선 시점은 1497년이 아니라 1499년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피고의 변론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베스푸치는 콜럼버스로부터 아메리카 발견자의 영예를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교활하고 의도적으로 보고문을 위조했다고 말이다. 이 같은 폭로의 파장은 엄청났다. 학자들은 경악했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이 베스푸치가 아니라니? 절제되고 겸손하며 현명한 행동으로 귀감이되던 그가, 멘데스 핀투처럼 파렴치한 사기꾼, 거짓말쟁이였다니? 이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한 번의 항해라도 거짓으로 밝혀(p. 126)(페르낭 멘데스 핀투(Fernao Mendes Pinto, 1509~1583)는 포르투갈의 탐험가이자 여행기로 유명한 저술가로, 1537년부터 1558년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지역(인도, 아라비아,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하며 13번 포로로 잡히고 17번 팔려가는 등 극적인 삶을 살았다. 사후 출간된 『핀투 여행기』 (1614)는 과장된 모험담으로 오랫동안 '허풍쟁이'라 불렸지만, 최근에는 그의 여정이 실제 역사와 부합한다는 연구를 통해 신뢰를 얻고 있다.) 지면 나머지 항해들도 사실로 믿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톨레마이오스로 여겨졌던 인물이 영웅이 되고 자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한이라니!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비열한 범죄로써 불멸의 명성을 얻고자 교묘하게 명예의 전당에 침입한 자라니! 그의 허풍에 속아 신대륙에 그의 이름을 붙였으니, 학자들의 입장에서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지금이야말로 이 수치스러운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1627년 프라이 페드로 시몬Fray Pedro Simon은 매우 진지하게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포함된 모든 지리 서적과 지도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p. 127).
따라서 오랫동안 베스푸치가 사기를 저질렀다고 비난받았던 첫 번째 항해보고서의 조작과 그 밖의 모든 모순들은 결코 베스푸치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개인적인 항해보고서에 각종 거짓 정보를 덧붙이고 과장해 출판한 파렴치한 편찬자와 인쇄업자들의 잘못임이 이제 의심의 여지 없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설명은 복잡했던 상황을 분명하게 정리해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깔끔하게 해명해주는 이 견해에 대해 베스푸치의 비판자들은 마지막 반론을 제기한다. 베스푸치는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들이 자신이 하지도 않은 항해에 대해 허위로 기술했다는 소문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 왜 한번도 공식적으로 항의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또한 묻는다. 베스푸치가 세상을 향해 분명히 밝히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다! 그 대륙이 내 이름을 가진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사기 행위에 침묵하는 사람은 결국 그 사기의 공범이 아닌가? 이러한 비판은 언뜻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베스푸치가 당시 어디에 항의할 수 있었겠느냐(p. 169)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법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그 시대에는 문학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일단 인쇄되거나 필사된 글은 모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알브레히트 뒤러Abreche Direr가 수많은 동판화가들이 형편없는 작품에 자신의 인기 있는 서명 'A, D.'를 찍어 팔았다고 해서 어디에 항의할 수 있었겠는가? 『리어왕』이나 『햄릿』의 원본 작가는 셰익스피어가 그의 작품을 마음대 로 고쳤다고 해서 어디에 불만을 표할 수 있었겠는가? 반대로 셰익스피어 역시 남의 작품이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 되었다고 한들 항의할 길이 없었다. 한때는 볼테르의 이름을 빌려 누구든 자신이 쓴 그저 그런 무신론적이거나 철학적인 글들을 마치 그의 저작인 양 출판하려 들지 않았던가? 그러니 베스푸치라고 한들 자신도 모르게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변형된 글들에 어떻게 맞설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그가 쓴 원본을 끊임없이 왜곡하면서 부당하게 얻은 그의 명성을 세상 속에 퍼뜨렸다. 베스푸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무죄를 입에서 입으로 설명하는 것뿐이었다(p. 170) 그가 실제로 그렇게 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508년이나 1509년 무렵, 그런 책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가 스페인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사전에 모든 의혹을 개인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면, 왕이 굳이 탐험에 대한 허위 보고서를 책으로 출판한 사람에게 선원 교육과 정확한 보고서 작성을 담당하는 중책을 맡겼겠는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에서 『지리학 입문』을 최초로 소유한 사람들 중 한 명은 콜럼버스 제독의 아들 페르난도 콜럼버스Fernando Columbus였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되 었다(그의 메모가 적힌 책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는 베스푸치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본토에 발을 디뎠다고 주장하며, 신대륙을 아메리카라 부르자고 처음으로 제안한 그 책을 읽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나름대로의 메모까지 남겼다. 그런데 페르난도는 콜럼버스의 전기에서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라면 시기심에 불타는 인물로 비난했지만, 베스푸치에 대해서만큼은 단 한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침묵에 대해 이미 라스 카사스는 놀라움을 표시한 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놀랐다. 제독의 아들이자 탁월한 판단력을 가진 인(p. 171)물인 페르난도가 분명히 아메리고가 쓴 「네 번의 항해」를 소장하고 있었음에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부정과 강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르난도가 아버지의 영광을 빼앗고 그가 발견한 신세 계를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만든 그 불행한 명명의 사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베스푸치의 결백을 더 명확히 말해주는 것은 없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의 이름이 베스푸치의 의도와 무관하게 붙여졌으며, 베스푸치가 의도적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가로채려 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p. 172).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명성의 햇살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를 향해 비춘 것은 단순히 여러 가지 상황이 우연히 겹쳐진 결과였다. 오류와 사고, 오해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햇살이 바로 그에게 비춰진 것은 그가 특별한 공로를 세웠거나 특별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운명이나 착오, 우연, 또는 오해 때문이었다. 그 영광은 같은 항해에 참여했던 다른 누군가가 쓴 편지에 돌아갔을 수도 있었고, 옆 배에 탔던 조타수에게 주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도 항의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역사는 바로 그를 선택했다. 역사의 결정은 아무리 잘못되거나 부당하더라도 결코 번복될 수 없다. 편지에 적힌 두 마디 말, '문두스 노부스'라는 표현을 통해, 그리고 그가 실제로 모두 다녀왔는지조차 불확실한 「네 번의 항해」라는 제목 덕분에 그는 결국 불멸이라(p. 184)는 항구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기록 속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것이 되 었고, 그가 인류 역사 속에 남긴 업적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멋지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은 발견 자체가 아니라 발견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그것이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단 하나의 업적이 그의 삶과 이름에 영원히 결부된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명한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해낸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종종 아주 작은 계기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이다. 종종 역사는 평범한 인물에게 불멸의 업적을 안겨주고, 진정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이름조차 남기지(p. 185)않은 채 어둠 속에 던져버린다(p. 186).
-
2026-08-14
-
-
【양대식 목사 칼럼32】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영국을 다녀와서)
-
-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 (영국을 다녀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GMS 세계 선교회 영국 3개 지부 수련회 인도 차, 영국을 다녀왔습니다(7월 27일 - 8월 5일). 영국에 머무는 동안 선교사님들을 격려해주고, 설교와 특강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머무는 기간, 재영 총신 동문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설교했고, 주일은 영국 주찬양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훌륭한 선교사님들도 많지만, 두 가정의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헌신, 친절에 감동을 받았고, 제 마음이 기뻤습니다. 하나님만 기쁘게 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K. 선교사님은 이스라엘과 프랑스에서 선교 사역을 했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선교하고 목회에 열정적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역자들같이 열심히, 부지런히 선교 사역하고, 이민 목회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 두 부부가 영국의 이민 교회를 섬기고,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위의 선교사나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선교사님이십니다. 또한 J.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친절, 섬세함과 헌신, 진실성에 감동 받고, 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체코에서 열린 GMS 유럽 선교 대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번에 영국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진실되고 정성 되이 한결같이 섬겨주심에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섬겨보려고 노력하는데 J. 선교 사님 부부의 섬김은 지금도 기억되고 앞으로 계속 인간관계 맺고 싶어집니다. 섬기기 힘든 시대인데, 섬기시는 주님처럼 지금도 섬기고 섬김받으면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줍 니다. 큰 자는 섬기는 자이고, 리더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계산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사랑하고 섬기면 감동을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삶에 큰 지혜입니다. 영국에서 만난 두 부부의 섬김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J. 선교사님의 아내, K. 선교사님의 아내 선교사의 섬김, 친절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관계 잘 맺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
2026-08-07
-
-
【북토크437】 삶을 어루만지는 고전들
-
-
공부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의 학인들이 저마다 꼽은 ‘인생 고전’을 들고, 어떻게 이 고전과 만나게 되었는지, 이 만남이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었는지 이야기하는 책. 오래된 미래인 동양고전 장자와 주역, 맛지마니까야와 법구경 등의 불경은 물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등과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고민이 펼쳐진다.-예스24
아직 읽지 못한 고전들이 많다. 젊을 때는 다 읽겠다는 욕심을 냈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고전은 저 멀리 있다. 남은 삶 동안 고전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다. 세월과 인종을 이겨낸 책들이기에.
도덕의 계보학
명랑한 중년을 위해-최소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서문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반갑고도 놀라웠다. 요즘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고민은 남편의 은퇴, 딸의 독립, 시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원 등의 일들이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다. 니제는 우리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집(p. 28)으로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진심으로 마음을" 쏟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자신의 직업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은 무언가를 빨리, 많이, 오랫동안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이며, 무언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러니 우리는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돈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내 삶의 궤적 또한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임신 6개월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이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딸이 특목고에 들어갈 때는 살맛이 났다. 재테크로 투자한 편드가 반 토막이 될 때는 밤잠을 설쳤고, 딸이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무기력과 불안에 시달렸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남편이 2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모았고,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이만하면 나름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나를 위한 인생 후반기를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뭔가 혹하고 빠져나간 것처럼 큰 상실감이 느껴졌고, 뭘 해도(p. 29) 채워지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니체는 우리가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열 두 번의 종소리”에는 한 번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더 이상 집으로 가져갈 것이 없어지자 상실감, 헛헛함, 불안에 휩싸이는 내 모습이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돈으로 채웠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것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많은 것들을 소외시키는 한없이 빈곤한 삶이었다. 현재가 좀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충만함, 의지, 용기, 확신, 미래가 점점 위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소진 시키는 위기의 삶이다. 니체는 내가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적 가치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도덕은 원래부터 주어져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보편적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고,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도덕 또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그러니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얽매이는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도덕을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니체(p. 30)는 노예 도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들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생겨났으며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따져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도덕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그 보답으로 삶의 '명랑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제 청년과는 다른, 새롭게 창조된 중년의 명랑함을 위해 나 자신의 '도덕의 계보'를 밝혀 보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안내자인 니체와 함께(p. 31).
장자
쓸모없음의 큰 쓸모-이경아
"승진이나 상은 남한테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라.”-내가 항공사에 입사하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의 욕망과 내 욕망이 만나 승진을 위해 달렸다. 승진을 하면 월급 인상 외에 권력이 생긴다. 비행기 매니저를 하게 되면 평가권도 갖고, 그 비행에서는 최고 권력을 갖는다. 대형기일수록 더하다. 그래서 다들 빨리 승진해서 매니저가 되고자 한다. 회사는 승진을 미끼로 충성을 요구한다. 승진을 하면 다음 승진을 위해 또 달린다.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본다. 소모품 중 품질 좋은 소모품이 되라며 충성을 요하는 건 기본이고 성형과 몸매관리도 자기관리라며 독려한다. 그러다 기내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병가(p. 60)가 길어지면 그 직원은 쓸모가 없어지고 회사의 지출을 늘리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회사는 그런 불편함을 당사자가 느껴 그만 두도록 압박을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도 윗선의 필요 에 따라 같은 처지가 된다. 더 윗선은 오너의 마음에 달렸다. 승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체력에 한계가 왔고, 더는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기 싫었기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회사가 나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싫었는데도 여전히 삶은 돈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당당하고 남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백수생활 시작 후 처음 한 일도 재건축 관련 일이다. 그곳은 회사보다 더했다. 오직 돈이었다. 청렴하다고 믿었던 현직 교수인 조합장이 뇌물 관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것을 보며 그곳을 떠났다. 유용성에 대한 내 전제는 의심하지 않고 남들만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삶 말고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사당목인 상수리나무를 예를 들어 무용지용을 역설한다. 목수 석이,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이고 둥치가 백 아름 정도나 되는 사당목을 보며, 제자에게 배로 만들면 가라(p. 61)앉고 관을 짜면 곧 썩을 나무인데 그 덕에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당목이 석의 꿈에 나타나 "나를 무엇에 비교하는지? 열매를 맺는 재능이 있는 나무는 그 재능 때문에 가지가 꺾이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쓸모없기를 바라왔는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당신 덕에 완전히 그리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였다"고 이야기한다. 또 둘 다 하찮은 사물인데 어찌 상대방을 하찮다고 하며,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쓸모없는 나무 운운하느냐고 반문한다. 장자는 삶을 삶 자체로 보라고 한다. 무엇이 진정 생명을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장자가 말하는 큰 쓸모는 양생(養生)이다. 이 사당목은 남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재능이 없기에 오히려 천수를 누리고 있다. 돈이 없다고 비루한 삶인가? 돈이 많으면 고귀한 삶인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돈이 많아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나? 부자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삶을 중독이나 폭력으로 몰고 가나? 장자는 내가 쓸모없음의 유용성에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난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 일상은 무시하고 살았다. 돈을 버는 것도 일상을 살기 위한 일인데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들을 절대화하며 소중한 일상과 내 몸을 제물로 삼았다. 돈이라는 작은(p. 62) 것으로 큰 내 삶을 평가받고자 했다. 이제 장자를 통해 새로운 삶의 비전을 만나 굳어 버린 전제들을 하나하나 깨며 자유로워지고 싶다(p. 63).
말과 사물
'당연히'와의 결별-전현주
과연 『말과 사물』은 놀라운 책이었다. 진리는 연속적으로, 진보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인식의 틀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던 그것은 여하튼 '우리 시대'의 진리일 뿐이다! 이럴 수가, 내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무엇이었나. 무지에서 진리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사회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 역사 아닌가. 그런데 각각의 시대적 지반 위에 세워진 진리'들'이라니, ‘단절’의 역사라니! 『말과 사물』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말과 사물』에서 이 새로운 진리를 뒷받침해 줄 증거들을 발(p. 174)견할 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기분이 있다. 그런데...그렇게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리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시대 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또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거지? 헐! 내가 푸코(Michel Foucault)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니. 푸코에게는 각각의 앎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서 있는 지반에 질문을 던진다. 각 시대가 자신들만이 구성하는 진리를 갖듯, 푸코 역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풀어 헤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며 완전히 다른 역사를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앎의 길을 내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 바로 여기가 내 공부자리여야 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며 답답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 일로 외국에 살던 시절 집에서는 영어식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성인이 되면서는 ‘인간’ 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놀고 먹는 잉여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p. 175)해 필사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보험을 들었다. '생명'은 당연히 죽음과는 반대편에 있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외에도 나는 수많은 '당연히'들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분명 힘들고 혼란스러웠음에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니까. 푸코를 만난 이후 나의 '당연히'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당연히'들이 구성된 지반을 잘 보여 주었다. 그 지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좇아 사느라 힘들었었다.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조심 조심 '당연히'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네. 괜히 피곤하게 살고 있었네. 그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되겠군. 신난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섰다. 편안함 위에, 푸코를 새로운 진리로, 또 다른 당연함으로 붙잡으면서 말이다. 이는 공부하기 전에 있던 '당연히'를 다른 '당연히'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는 고민을 배우는 대신, 나를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용만 취하고 있었다. 나아가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식을 찾아냈다. 배운 내용을 진리로 받(p. 176)아들이기. 그것으로 나의 편안해진 삶을 계속 유지하기. 『말과 사물』은 이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든다. 편안함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자신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푸코의 공부가 배우고 싶었다. 나의 ‘당연히’를 뿌리째 뒤흔드는 공부를. 잘 가, ‘당연히’~. 나는 이제 푸코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겠어(p. 177).
-
2026-08-04
-
-
【북토크436】 의사는 누구인가?
-
-
이 책은 매일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부딪치고 목격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의학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또 의사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얼마나 고뇌하는지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총 3부에 걸쳐 의료현실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들, 즉 환자와 의사를 똑같이 보여주며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과 근본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한다.-예스24
생각해 보면 의사는 업보같다. 머리가 좋아 공부 잘했기에 의사가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안정된 수익을 얻지만 평생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나 하고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병원은 앞으로도 아플 때나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기를 바래본다.
의사란 참 기이하고 또 여러 면에서 겁나는 직업이다. 위험부담이 높은데도 엄청난 재량권이 주어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관을 삽입하고, 화학적• 생리적 •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무의식상태로 몰아넣고 몸을 열어제키기도 한다. 물론 전문인으로서 우리의 노하우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서 한다. 하(p. 12)지만 좀더 가까이, 잔뜩 찌푸린 미간, 의혹과 과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까지도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마도 의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지럽고, 불확실하고, 예측불허한지 보게 될 것이다.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이다. 이 점은 아직도 나를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의학과 그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과, 과학이 질병과 고통에 맞서 싸우도록 우리에게 준 수단들, 즉 여러 가지 검사와 의료기기, 약품, 수술 등을 떠올 린다. 그러한 것들이 의학이 이루어낸 사실상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는 좀체 보지 못한다(p. 13).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외과에서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 가며 얻어진다. 테니스 선수나 오보에 연주자나 하드드라이브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일에 능숙 해지려면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학에서 연습 대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점뿐이다(p. 30).
이러한 종류의 소모는 의외로 흔하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도 잘 견디고 강하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혹독한 수련기간 동안 약골들은 다 추려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여러 증거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연구조사에 따르면 알콜중독은 다른 집단만큼이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흔하다고 한다. 의사들은 처방용 마약이나 안정제에 중독되기 쉽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전체 노동연령층 인구의 약 32%는 한 가지 이상의 심각한 정신질환을 보인다. 주로 심한 우울증, 조증, 공포증, 정신이상, 중독증 같은 질환들인데, 그러한 질환이 의사들에게서는 덜 나타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물론 의사들도 병들고, 늙고, 사명감이 없어지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정신이 산란해지기도 하며,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소홀하게 되거나 흔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문 제의사들을 비정상분자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40년간 의사생활을 하면서 한두 해 정도 고전한 시기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일 것이다.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라도 현직 의사 중 3~5%는 사실상(p. 129) 의료행위를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추정된다. 의사사회에 그러한 의사들을 처리하는 공식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런 의사의 동료들은 즉각적으로 합심해 시술을 못하게 하고 의사 면허당국에 보고하여야 하며, 보고를 받은 당국은 그들을 처벌하거나 의사사회에서 제명시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조직사회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p.130).
-
2026-08-04
-
-
【북토크435】 체크리스트는 쉬우면서도 유익하다
-
-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 그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한 해결책으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체크리스트의 사용이 업무의 효율뿐만 아니라 일의 성공과 실패, 나아가 사람의 생사도 좌우한다고 말한다.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실수를 막아준다. 불완전한 기억력과 정신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한 사람의 기억력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아온,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실수들이 때로 뼈아픈 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체크리스트는 바로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로 외과의사인 저자는 수술실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그가 고안한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전 세계 8개 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동안 합병증 비율은 36%가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 그 결과,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는 현재 WHO에 공식 채택되어 세계 각지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체크리스트는 끔찍한 사고를 막아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인 프로젝트를 보호해준다. 체크리스트는 단지 ‘지켜주기만’ 하는 방어기제가 아니다. 끔찍한 재난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생명을 구해내며, 금융위기도 피할 수 있게 하고, 한 개인을 성공으로도 이끌어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예스24
나는 실제로 여러 경우에 체크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의학이든 그 무엇이든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유익하다. 단순한 것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현재 이 책은 품절됐다.
우리는 초전문가의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일류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임상의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전문가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요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이 종사하는 특수한 분야의 복잡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상황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수술보다 더 극도로 전문화된 분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수술실은 집중치료실에서 하는 업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이다. 수술실에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마취의들이 있다. 그런데 마취의들조차 여러 분과로 나뉜다. 소아전문 마취의, 심장전문 마취의, 출산전문 마취의, 신경전문 마취의 등(p. 42) 여러 마취의들이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들도 전공 분야에 따라 분화되어 있다. 외과의 또한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오른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와 왼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가 따로 있다는 농담을 하고 나서 정말로 그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볼 정도다. 나는 일반외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상 일반외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궁벽한 시골 병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 사람의 외과의가 모든 수술을 해낼 수는 없다. 나는 종양학에 집중해서 환자를 보기로 결심했지만 이조차 너무 광범위했다. 그래서 응급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외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내분비샘암 제거에 대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쌓아왔다. 한때 아주 간단한 수술에서조차 사망위험률이 두 자리 숫자였던 적이 있었다. 수술 후 환자의 회복 과정이 길었고, 장애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급격하게 외과 수술이 전문화되면서 수술 능력과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줄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7번 수술을 한다. 외과의들은 매년 5000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한다. 너무 많은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로 인한 피해 역시 크다. 미국에서는 매년 15만 명 이상의 환자가 수술로 인해 사망한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3배가 많은 수치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수술로 인한 사망과 주요 합병증의 절반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극도로 전문화되어서(p. 43) 그에 따른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실수할 것이다. 실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학이 거둔 눈부신 성공 뒤에는 많은 실수와 실패가 존재한다. 의학계는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의 전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초전문가까지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 의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얻었다(p. 44).
1935년 10월 30일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미 육군항공대에서 군에 차세대 장거리 폭격기를 공급하고자 경합을 벌이던 항공기 제조업 자들을 대상으로 비행 시합을 열었다. 사실 그건 시합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초반 평가에서 보잉의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합금 모델 299기가 다른 항공기 제조회사들, 즉 마틴과 더글라스를 제치고 완승을 거둔 상황이었다. 보잉의 폭격기는 육군이 요청했던 것보다 5배나 더 많은 폭약을 탑재할 수 있었고, 이전에 나온 폭격기들보다 훨씬 빠르며, 2배나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시애틀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던 모델 299기를 본 한 기자는 '하늘의 요새'라는 표현을 썼고, 그것이 그 폭격기의 별명이 되었다. 군 역사가인 필립 마일링거에 따르면 그 비행 시합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육군에서는 그 항공기를 최소 65대 주문할 계획이었다(p. 47). 이날 군 고위층과 항공회사 중역들이 모여 모델 299기가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델 299기는 날개 길이가 31미터에 달하고, 날개에서 그때까지 일반적이던 쌍발 엔진이 아닌 4발 엔진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주 날렵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부드럽게 이륙해서 100미터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며 한쪽 날개에 의지하더니 그대로 폭발해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조종사인 육군 소령 플로이어 힐을 포함해 승무원 5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 결과 기계 결함이 아닌 '조종사의 실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델 299기에는 4개의 엔진과 접어 넣을 수 있는 착륙 장치, 날개 플랩, 속도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전기 트림 탭(trim tab), 비행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유압 조정 장치로 조정하는 정속 프로펠러를 포함해 조종사가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장치들이 아주 많았다. 힐은 이 모든 장치들을 조종하느라 승강타와 방향타의 새 제어 장치를 깜빡 잊고 해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모델 299기는 한 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한 사람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비행기’였던 것이다. 육군항공대는 더글라스의 좀 더 작은 폭격기를 시합의 승자라고 발표했다. 보잉은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하지만 육군은 모델 299기를 테스트 비행기로 몇 대 구입했다. 육군에 이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p. 48).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이 모여 어떻게 이 폭격기를 조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모았다. 그들은 모델 299기를 모는 조종사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훈련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육군항공대의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 가운데서 최고였던 힐 소령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조종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 덕분에 이후 항공술은 고도로 발달했다. 초기 비행 시대에는 비행기를 상공에 띄우는 일이 불안하기는 해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비행이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빼는 것처럼 단순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때는 체크리스트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성능 좋고 복잡한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조종이 어려워 졌다. 비행사가 아무리 노련한 전문가라고 해도 한 사람의 기억력에만 의존해 조종하기에는 복잡한 장치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은 한 장의 색인카드에 모든 내용이 들어가는, 짧고 단순하며 핵심 사항만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을 단계적으로 체크할 수 있었다. 체크리스트에는 모든 비행사들이 알고 있는 사항과 꼭 실시해야 할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브레이크를 풀었는가, 계기가 제대로 세팅 되었는가,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가, 승강타 제어 장치가 풀려 있는 가 등 간단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조종사들은 모델 299기로 총 180만 마일을 비행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육군은 모델 299기를 1만 3000대 더 주문했고, 이 폭격기에는 B-1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p. 49)제 이 거대한 야수를 다를 수 있게 된 미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보이면서 나치 독일에 치명적인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p. 50).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일부 비행 조종사들은 아무리 신중하게 고안된 준비 절차라고 해도 콧방귀를 끼어대며 무시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난 비행하면서 한 번도 문제가 없었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냥 가. 다 괜찮을 거야” 혹은 "내가 캡틴이야. 이건 내 비행기야. 너 희들이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도 자주 했을 것이다(p. 238). 1977년에 일어난 테네리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고는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안개가 낀 카나리아제도 활주로에서 보잉 747 여객기 2대가 고속으로 충돌해 비행기에 탑송한 583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대인 KIM 항공편의 기장이 활주로에서 이륙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관제탑의 지시를 오해하고, 관계의 지시 내용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조종사의 말도 무시 했다. 사실 그때 같은 활주로의 반대편에서 팬암 여객기가 먼저 이륙하고 있었다. "팬암 여객기가 이륙 승인을 받은 거 아닐까요?" 부조종사가 기장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받았다니까." 기장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계속 활주로로 나아갔다. 기장이 틀렸다. 부조종사는 이 점을 즉시 간파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한 팀이 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부조종사는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장을 멈추게 해서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기장은 막무가내로 계속 밀고 나갔고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로토콜을 충실하게 따르면 경직돼 보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따르면 아무 생각 없는 로봇처럼 체크리스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느라 밖을 내다보고 그들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면 실상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고, 일상(p. 239)적인 일들(예를 들어, "승강타 제어 장치가 세팅이 됐나?" "환자가 항생제를 제때 맞았나?" "매니저들이 모두 주식을 팔았을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했나?" 등)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주며 중요한 일("어디에 착륙해야 할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서 내가 본 예리한 체크리스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이 하나인 세스나를 몰다가 엔진이 작동되지 않을 때 적용하는 것으로 브리티시에어라인과 조건이 같다. 다른 점은 조종사가 한 명뿐이란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의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 연료 차단 밸브가 오픈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예비 연료 펌프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6단계로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다. 이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라'가 그것이다. 조종사들은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추가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생각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깜박 잊어버릴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따른다고 경직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크리스트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p. 240).
다른 수많은 분야도 사정은 같다. 우리는 교육계, 법조계, 정부 프로그램, 금융계, 혹은 다른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나 실패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실수의 패턴을 찾지도 않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안하거나 개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핵심 포인트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실패들, 즉 빠뜨리고 지나간 세부적이고 미묘한 사항들, 못 보고 지나친 정보와 터무니없는 실수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개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군 조종사들이 반짝거리는 신형 모델 299 폭격기(B-17, 너무 복잡해서 어떤 인간도 조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p.250)계)를 보면서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 이 조종사들 역시 ‘좀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그 비행기의 추락 사고를 ‘실력이 부족한’ 조종사의 실패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을 받아 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의 단순함과 진가를 알아 차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사실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주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을 지닌 사람들조차 계속 같은 공을 떨어 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패턴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 체크리스트를 써보라(p. 251).
-
2026-08-04
-
-
【서기원 목사 선교13】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
-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현재 280만 여명이 살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보내 주신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주민교회와 한국교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부천에 있는 부천몽골교회와 순복음 부천교회가 좋은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부천몽골교회는 몽골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이는 교회이다.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던 서기원 목사가 귀국하여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동인천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몽골인들이 70%이고 한국인이 30% 모이며 유치부, 유초등부, 청소년부의 모임이 있다.
순복음 부천교회는 부천몽골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외에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로, 해마다 청년들이 해외단기 선교를 다녀온다. 그런데 작년부터 선교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해외로 단기선교를 가지 않고 부천몽골교회를 찾아와서 함께 수련회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순복음부천교회 청년들이 처음으로 방문해서 함께 수련회를 하기로 의논하고 해외단기선교를 나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부천몽골교회에서 1박 2일의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 시간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순복음 부천교회의 담임목사님도 너무나 좋아하시고 이러한 수련회를 계속 갖기를 원하셔서 올해도 수련회를 가졌다. 올해는 그 교회의 성도들도 함께 참여하셔서 봉사를 하시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이것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을 선교하는 좋은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민교회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 재정적으로 연약하고 교회의 일꾼들도 부족하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재정적인 면이나 일꾼들 면에서 보면 이주민교회들보다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선교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드리며 해외선교와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의 주변에 여러 나라 민족의 이주민 교회들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이주민교회들과 함께 협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보라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음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
2026-08-04
-
-
【양대식 목사 칼럼31】 리더와 희생의 지혜
-
-
리더와 희생의 지혜 (요한복음 12:24)
희생하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리더가 희생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생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지혜로움입니다.
희생해야 열매 맺게 됩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최고의 리더, 예수님의 삶은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희생의 극치입니다.
희생이 있는 리더가 있는 교회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희생하지 않고, 재주부리고, 요령 피는 리더는 실패합니다.
게으른 자는 희생이 없고, 부지런해야 희생합니다.
쉽게 되는 것은 없고, 리더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목회할 때, 희생해야 하고, 주일예배 시, 네 번 예배드린다면 피곤하더라도 기쁨으로 네 번 설교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자신이 편하려고 부교역자에게 주일 설교 맡기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부교역자에게 새벽이나 금요 저녁은 나누어서 설교할 수 있지만, 주일 설교는 대체로 많이 모이고 무게감이 있기에 담임목사가 희생정신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주일날 설교하면 네 번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목회와 설교를 즐겨야 합니다.
교회의 그릇은 담임목사의 그릇과 비례합니다.
어느 공동체나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몸과 재물, 시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담임목사의 희생하는 모습, 요령 피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하는 리더를 사용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희생이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병들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희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가 성장하게 됩니다.
희생한 만큼 성장합니다.
희생의 고통을 인내로 견뎌내야 합니다.
희생해야 신뢰 얻고, 존경받게 됩니다.
사탄의 속성은 희생이 없이, 쉽게 쉽게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희생 없이 성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함에 있었습니다.
영적 리더는 설교 준비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하고, 글을 쓰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익, 손실 계산하지 말고, 희생정신으로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할 때, 리더십이 세워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유익을 주는 리더로 성장해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하는지, 안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혹시 재정이 부족하면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고, 부교역자나 직원들을 먼저 챙겨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리더가 희생하면 재정도 부족하지 않게 채워지고,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희생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희생하느냐, 요령 피우느냐, 지혜로운 자는 희생을 선택합니다.
희생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주일날 교회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것도 희생의 기초가 됩니다.
게으른 자는 실패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 주님께서 헛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
2026-07-30
-
-
【서기원 목사 선교12】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
-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에서 이주민선교의 역사는 30여년이 된다. 이주민 선교의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역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연합하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1995년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협의회(외노협)이 만들어졌다. 1995년 1월에 명동 성당에서 네팔 산업 연수생들이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선교단체로 규정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라고 볼 수 있다.
1991년에는 중국어문선교회가 중국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중국교포선교협의회가 구성되고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NCCK)는 1992년에 한국교회 노동자선교협의회를 구성했다. 그 이후 각 교단과 기관에서 이주민선교를 위한 기관들이 설립 되면서 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에 만들어진 기관이 이주민선교 한국교회연합(이선한)이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서로 협력하며 사역을 하였고 이 때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함으로 만들어진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이선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전국의 이주민사역단체들에게 1년간의 후원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었다.
이선한의 모임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산이 되고 2019년에 오륜교회에서 한국교회 이주민선교연합(KIMA)이 공식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연합체로 설립 이후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단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선교, 유학생선교, 국제결혼자선교, 비즈니스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모이는 연합체이다. 함께 기도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세미나를 하면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더욱 다문화사회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다문화사회를 선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때에 다문화 사회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교회와 여러 기관들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우리 보다 앞서 다문화사회를 경험한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다문화사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많이 했지만 교회는 그만큼 노력하지 못했다. 결과 유럽은 역선교를 당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대처를 교회 및 여러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서 협력할 때에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다문화사회, 선교한국을 이루어 갈 것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을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
2026-07-28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