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3(화)
 
  • 김순원 목사, 총신신대원 89회, 예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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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교회에 가니 택배 상자가 있었다. 택배 온다는 말도 없었는데 주소를 확인하니 내게 온 게 맞았다. 군용 건빵이었다. 그것도 무려 7종류의 건빵이었다. “21곡물 가득 참깨 건빵”, “땅콩건빵”, “참깨건빵”, “야채건빵”, “검은깨건빵”, “쌀건빵”, “건빵”. 총회 군선교사회에서 보낸 거였다. 보암직 스럽고, 먹음직스러운 건빵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내 손이 간 곳은 아무 수식어도 없는 ‘건빵’ 봉지를 집고서 뜯었다. 건빵 2개에 별사탕 1개를 입 안에 넣고 어저께 산 ‘구쯔 커피’를 내려 한 모금을 마셨다. 환상적이다. 카페에서 달달한 빵과 먹는 것보다 이게 훨씬 맛있다. 한 모금씩 홀짝홀짝 마시는데 자꾸 옛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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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2월, 매서운 추위가 채 가시기 전 나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경기도 양주 가래비에서 훈련받았다. 따뜻한 경상도 사람이 전방에 가니 너무 추웠고, 배고픔에다가교육사단이라 훈련도 빡세고, 행군도 3번에 걸쳐 총 160km를 걸었으니 하루하루가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전우들 때문이었다. 내 훈련번호는 67번이었고, 앞 66번은 착하고 순한 포항 출신 ‘양0원’이가 뒤 68번은 사회에서 유흥업소에서 지루박, 탱고 등 각종 춤과 여자를 일찍이 마스터한 ‘이0출’이란 친구가 배치되었다. ‘이0출’은 훈련하다가 휴식 시간이 되면 남들은 담배 한 개를 장전할 때 조교의 부름을 받아 앞에 나가 어김없이 멋진 춤사위를 벌였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도 사회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영웅담 삼아 내게 곧잘 이야기해 주었다. ‘이0출’의 영웅담은 교회에서 율동할 때 외에는 여자의 손을 잡아본 적 없는 순둥이 청년인 내게는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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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종일 훈련을 마치고 저녁 먹고 10시 취침에 들면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좌우에 누운 66번과 68번 그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얼굴이 검고 담배를 많이 피워 검붉은 입술을 가진 우리 소대 선임하사인 그놈이 훈련병 누군가를 깨웠다. 그리곤 페치카 옆에서 단둘이 ‘아작아작 ’소리 내며 뭔가를 먹는 게 아닌가? ‘건빵’이었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부러운지 밖에서는 쳐다보지 않았던 건빵이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찔끔거렸다. 나중에 보니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지난달 초에 동기 임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좀 도와달라는 거였다. 임 목사님은 우리 교단 군선교사회 회장이다. 임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민간인 목사님들이 자비량으로 군선교사로 활동하시는데 2월말, 1박 2일로 전략 캠프 수련회를 준비하는 중에 후원을 부탁하는 전화였다. 임목사님은 10년 넘게 군선교사로 활동하지만 단한번도 도와달라고 전화하지 않았던 분이다. 오죽했으면 전화까지 했을까 싶어 집에 있는 돈을 싹 끌어모아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편지와 함께 건빵을 보내 감사를 표했던 거였다. 요즘 군인들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00만원 넘는 월급에 이렇게 맛난 건빵까지 마음껏 먹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우리에겐 배부른 요즘애들이 가질수 없는 건빵 추억이 있으니 말이다. 그 건빵 추억이 오늘 이렇게 글감이 되어 내 인생 여정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건빵 다 먹었다. 은근히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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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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