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17(월)
 
  •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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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60세에 퇴직해 겪은 임시직에 대한 이야기다. 시급 노동자로 버스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 버스터미널 보안요원 등을 전전하다 다쳐 7개월간 쉬고 다시 주상복합 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인은 빈곤한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일해 벌어 먹어야 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임시 계약직이고,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은 끽소리 못하고 혹사당하다 병들고 죽어간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작은 교회 목사들의 노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노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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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손님?

점심때면 인근 식당에서 여러 회사의 배차원들과 운전기사들이 함께 밥을 먹었다. 버스 회사는 운전기사들에게는 6000원 짜리 식권을, 배차원들에게는 4000원짜리 식권을 줬다. 식당 밥값은 한 끼에 6000원이지만 버스 회사 영업부장이 식당 사장과 협의해 배차원은 4000원만 받도록 한 것이다. 식당은 협상을 받아 주지 않으면 6000원을 받을 수 있는 운전기사들까지 다른 식당으로 빼앗길까 봐 어쩔 수 없이 배차원들의 밥값을 싸게 해주었다.

그러니 배차원들은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 사장은 운전기사들이 오면 웃음으로 맞지만, 배차원이 오면 쳐다 보지도 않았다. 특히 손님이 붐비는 시간에 가면 아주 싫어해서 우리는 오전 11시 이전이나 오후 2시 이후에 밥을 먹어야 했다. 손님이 아니라 거의 '밥도둑'에 가까운 취급이었다.

쌈밥이 나왔기에 식당 주인에게 "손 좀 씻을게요" 했더니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저기 공동 화장실 가서 씻어요. 그 밥값으로는 수도 요금도 안 나와요. 배차 계장들이 무슨 밥을 저리도 많이 먹어 대는지 원." 그리고 숨기는 기색 없이 잔반을 상에 올렸다. 4000원짜리 밥을 먹는 몇 명의 군소 버스 회사 배차원들은 습관처럼 서로에게 물었다. "이 반찬, 누가 먹던 거 아닐까?" "이 밥, 누가 남긴 거 아니겠지?" "어째 생선이 이렇게 쪼가리로 나올까?"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밥맛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먹다 남긴 음식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주린 배를 채우게 됐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비위가 달라진 것이다. 스스로도 놀랄 만한 변화였다. '적응'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pp. 32-33).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음식물 잔반통을 씻어 내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통 안쪽 벽에 음식물 찌꺼기가 얼마나 단단히 눌어붙어 있는지, 거친 솔로 문질러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강한 수압으로 수돗물을 분사해 씻다 보면 온몸이 흥건히 젖는다. 물기를 막으려고 장화를 신고 솔로 문지르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는지 할머니들이 삶은 고구마를 건네기도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괴로운 작업 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이 튈까 봐 얼른 피하듯이 지나간다. 그런데 아빠와 놀러 가는 차림새의 어린이가 멈춰 서더니 한참을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창졸간에 나는 공부를 안 해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이가 없어 아빠를 한참 쳐다봤더니 무안했던지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이런 일이 공부를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그래도 저녁에 일을 하려면 밥은 먹어야 했다. 오늘도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에 적응하려 애쓰며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지하실 천장은 죽음의 가루'라는 석면으로 돼있다. 그러니 지하실에 머무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밥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정도다.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군인보 다 빠르다. 지하실을 보금자리로 살아가는 고양이가 밥 먹는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밥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어디선지 개미떼가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문득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공부를 안 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pp. 103-104).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다

차단기 사건의 여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관리사무소의 이유 없는 질책이 한동안 계속됐다. 시름에 잠겨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일한 선배가 나를 찾아 왔다. 그는 내가 처음 왔을 때 길어야 사흘 정도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100일을 넘기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고, 100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고 했다. 그가 내 손을 잡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인간 대접을 받자고 이 아파트에 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더라도 서러워 말자. 다만 경비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자. 지금까지 했던 실수와 잘못을 바둑을 복기하듯 기록해 봤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그 기록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pp. 122-123).

 

세 번째 해고

징계 소동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스른 죄는 결국 용서받지 못했다. 나는 결국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으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라는 통지를 받았다. 경리과장이 근무복을 반납하라고 했다. 옷을 챙기러 지하실에 갔더니 습기 때문인지 점퍼에 곰팡이가 넓게 퍼져 있었다. 관리사무소는 세탁해서 반납하라고 했다. 세탁소에 맡기려 했더니 주인이 받으려 하질 않았다. "원 곰팡이가 이렇게 많이 폈어요? 이 정도로 심한 곰팡이까지 세탁해 주는 세탁소는 없어요." 나는 근무복을 금액으로 변상했다.

빌딩과 아파트, 두 곳을 오가면서도 나는 일에 소홀한 적 이 없었다. 힘든 노동과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면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만 한다고 해서 일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빌딩에서는 본부장 사모님을 몰라본 죄로 잘렸고, 아파트에서는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려 잘렸다. 잘린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그날 화단에 양동이로 물은 퍼부었다는 똑같은 죄목으로 자치회장의 노여움을 산 경비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는 경비반장이었다. 자치회장은 그를 징계위에 회부하지 않고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강등은 그냥 구두로 명령하면 된다. 그러나 경비원의 세계에서 경비반장이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되면 본인이 버틸 수가 없다. 결국 그는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난 다시 실업자가 됐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게는 가족이 있고 다시 일터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젠 시급 일터가 두려웠다. 살길이 감감했다(pp. 206-207).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쳐라!

단순 노무직은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잡균이 우글대는 비위생적 근무 환경이 일반적이다. 아파트, 고층 빌딩, 터미널의 경비, 청소, 주차 관리, 기타 허드렛일에는 쓰레기더미의 잡 균, 자동차 배기가스와 미세 먼지, 그리고 혹독한 추위와 더위가 더해졌다. 이런 직종들은 장래성이 없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해보겠다고 들어온다 해도 2, 3일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 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 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고령자는 한 번 들어오면 나가라고 할 때까지 충직하게 일한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까칠한 젊은이보다 고분고분한 노인들을 선호한다. 또한 젊은이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꾼다. 젊으니까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소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들은 그런 헛된 꿈을 꾸지 않는다. 고령층은 늙은 소처럼 아무 불평이 없다. 여물만 제때 주면 제 주인을 제대로 섬기는 충직한 노복이 바로 고령층들이다. 나도 젊을 때 같으면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견뎌야 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고령자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더 주신 걸까. 그러나 견뎌야 할 것들은 참 많았다. 내가 일했던 모든 시급 일터에서 고용주의 요구는 항상 똑같았다.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쳐라!" 고용주들이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시급 노동 인력들이 넘쳐 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 나라는 가장 적은 임금으로 가장 혹독한 일을 시킬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고용주들의 소망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급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자 고용주들은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줄이고 또 줄였다. 한 사람에게 두세 사람 몫을 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쉬지도 못하는 휴게 시간을 대폭 늘림으로써 무급의 노동시간을 늘려 가고 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을 돌리던 전태일 은 근로기준법을 보듬어 안고 분신했다. 전태일 시대의 가혹한 노동은 현 시대에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pp. 24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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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늙고 돈 없으면 사람 대접받기 어려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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