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무당 이야기 - 황루시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무속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검찰총장이었던 그가 후보 시절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토론회에 나올 때부터 우려가 컸었는데 임기 내내 계속해서 무속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지금은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 무속으로 흥한 자 무속으로 망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속이란 무엇인가? 불교, 유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에 기본적으로 있었던 샤머니즘이다. 불교는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혼합된 모습이고, 유교는 불교를 배격했다. 반면 한국 기독교는 초기 기복신앙에 치우쳤으나 경제 발전 후 그것을 벗어났으나 여전히 세상적인 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기본 정서에는 무속과 샤머니즘이 있다. 이 문명 세기에 종교도 아닌 무속이 판을 치니 국제적으로도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로서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자세로 이 책을 읽었고, 앞으로도 더 찾아볼 생각이다. 책에서 인용한 다음 글들은 무당과 무속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이 2000년에 나왔는데 알아보니 절판됐다.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 대출해 읽었다.
은하 엄마에게 신이 내린 것은 열다섯 살의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심상치 않은 징조를 보였다. 양어머니 집에 간 직후부터 눈에 부스럼처럼 종기가 났다. 결국은 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7살 되던 해에는 동네의 아픈 사람을 보고 뭐라고 지껄였다. 그 어린 게 뭘 알겠느냐만 하여튼 밥을 해다가 버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머리에도 부스럼이 심했는데 함께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 냄새가 지독했다. 그래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별당아씨처럼 집에서 지냈다. 그러나 양부모의 사랑은 극진했다. 칼국수를 만들어 먹다가 남아서 불면 당신들이 드시고 새로 밥을 해 주었다. 찬밥을 먹고 자라면 출세를 못 한다고 해서 늘 더운밥을 해 주었다면서 "덕분에 오늘 이렇게 출세했지..." 하고 그녀는 웃었다. 열다섯 살까지 그렇게 눈도 못 뜨고 부스럼을 앓으며 살았다. 어느 날 창경궁 앞에 가면 한 여든 살쯤 된 노인이 있는데 아주 용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길로 양어머니하고 찾아갔다. 들어갈 때는 눈을 감고 들어갔다. 노인은 머리 양쪽에 침을 놓았다. 피가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그 침을 맞고 돌아 나오면서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햇빛을 봤다. 눈을 뜨고 나온 것이다. 그 해 삼 삼짇날 갑자기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다가 신이 내렸다. 양어머니가 머리에 물을 끼얹어 주는데 공연히 신경질이 났다. 머리를 만지는 게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서 신경질을 부리다가 야단을 맞고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울음이 그치지를 않았다. 그렇게 울다 울다가 문득 말이 터졌다. 말문이 터진 그녀는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면서 아무나 붙들고 지껄여 댔다. 그런데 그게 다 맞는 소리여서 금새 유명해졌다. 머리의 부스럼도 신이 내린 다음부터 공연스레 꾸덕 꾸덕해지더니 진물이 마르고, 모르는 사이에 낫고 말았다. 그녀는 이렇게 신이 내리면서 네 살 때부터 내내 괴로움을 주던 병에서 해방된 것 이다. 그녀는 양어머니에게서 내림굿을 받았다. 처음 신이 내렸을 때는 점만 쳤다(pp. 102-103).
대부분의 젊은 무당들은 애정에 굶주려 있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잘 삐지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신어머니로부터 받는 애정은 같은 처지에서 그들을 이해해 준다는 점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어머니의 애정과 인정은 바로 직업인으로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굿을 잘 하고 또 굿판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기왕에 나선 무당 세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 바로 그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신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신어머니 입장에서도 신딸이나 신아들은 중요한 존재이다. 대개 갓 신이 내린 사람들은 점 손님이 많다. 점을 치는 손님이 많아야 굿을 할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답답한 사람이 점을 치게 마련이고 그러다가 보면 굿을 해서 풀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미숙하여 독자적으로 굿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어머니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딸이나 신아들이 많다는 것은 수입원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들은 서로 공생 관계에 있다. 그러나 경제적 공생 관계에 있다고 해도 신어머니는 적당한 선에서 위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 신딸들은 신어머니만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도 중시하면서 처신을 잘 해야 신이 맺어 준 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신어머니에게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 다는 부모의 마음이 필요하고, 신딸들은 친정 어머니를 대할 때의 믿음이 요구된다. 그리고 신의 동기간에는 서로에 대한 연민이 없이는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신어머니는 공정해야 한다(pp. 116-117).
꿈을 꾸면 자꾸 도령이 와서 산에 가자고 했다. 멍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정대복은 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텼다. 그랬더니 불과 여섯 달 동안에 아버지, 오라버니, 그리고 작은 오라버니의 세 살난 계집아이가 죽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그녀가 무당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정대복은 아버지야 나이가 연만하여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만 큰 오라버니는 신의 벌전(벌)으로 죽었다고 느끼고 있다. 집에 찾아와서 모셔 놓은 신상을 모조리 부수면서 정대복이 신을 받는 것을 몹시 방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조카의 죽음을 몰랐다. 나중에 점을 치면서 그 세 살짜리가 그녀에게 동자신으로 들어왔다. 그 때서야 비로소 조카가 죽은 것을 알았는데 동자신이 영험하다고 소문나서 한때 잘 불렸다고 한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서 정대복은 고집을 꺾었다. 이젠 무당 노릇을 안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정대복은 내림굿도 안 하고 그냥 집에서 점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점을 치기 시작한 집도 신의 뜻에 의해 살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p. 128).
정대복은 남편 없이 아들과 딸을 키웠다. 자식들은 모두 똑똑해서 공부를 잘 했다. 공부를 잘하는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어했는 데 무당 어머니의 존재는 상당한 걸림돌이었다. 자식들이 아직 어려 예민한 나이였을 때 특히 힘이 들었다. 누가 집 근처에서 무당집이 어디 있느냐고 찾으면 당장 다음 날 이사갈 집을 알아 보러 나가야 했다. 무당집은 시끄럽고 티가 나게 마련인데 아이들은 그걸 끔찍하게 못 견뎌했다. 무당집인 것이 주변에 알려지면 그 즉시 이사해야 했다. 그렇게 한 해 스무 번 이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피를 말리는 고통은 자식이 혼인을 할 때였다. 상대방쪽에서 어머니의 직업을 알고 혼인을 작파하는 데는 죽고 싶었다. 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실제로 죽으려고 한강에 간 적도 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 본 물이 무서워서 죽지 못하고 돌아 왔지만 그 아픔은 처음 무당이 내릴 때보다 더 했다
지금이라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딸은 미국에 사는데 20년 이상 어머니가 무당을 그만두면 모시겠다는 말을 하면서 의절하고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딸의 시집은 물론 손주들도 아직까지 정태복 이 무당인 것을 모른다. 하지만 지난 팔순 때 딸은 어머니를 보러 왔었다. 이제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의 일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며느리가 교회 집사이고, 사돈이 전형적인 기독교 집안이어서 불편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보지 않는다. 가끔 아들이 와서 자고 가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정대복은 자식들에게 신이 내리지 않아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세상에 무당같이 험한 팔자가 어디 있으랴. 그래도 무당이 되어 돈을 벌어 자식들 공부시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녀는 펄쩍 뛰었다. 무당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사에도 소질이 있었고, 친정도 부유했기 때문에 무당의 팔자만 피할 수 있었더라면 그녀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당이 되어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한이 맺히지만 무엇보다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창피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지만 정대복은 평생 신을 모시면서 깨끗하게 살아왔다는 긍지가 있다. 무당 중에는 바람이 나는 사람도 있고, 돈만 밝히는 사람도 있고, 세상사가 그렇듯이 별 사람이 다 있지만 그녀는 한눈팔지 않고 오직 굿만 해 왔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재물에 욕심이 없어 지금 살고있는 작은 집이 유일한 재산이다. 외롭게 살아온 정대복은 수양딸, 수양아들을 많이 두었다. 신기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중 누구도 무당을 만들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그 팔자를 피하게 해 주어야지 왜 무당이 되게 하느냐는 것이다(pp. 140-142).
의외로 무당들은 단순하고 순진하다. 평소에는 함부로 남을 믿지 않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 가는 식으로 쉽게 속기도 잘 한다. 대개는 학력이 낮은 탓이기도 하고, 평소에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숙함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기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동경하는 경향이 크다. 나이에 관계없이 무당들은 약을 좋아한다. 특히, 외국말이 쓰여 있는 약이라면 더 신봉하는 경향이 있다. 워낙 굿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약이 필요할 것이다. 무릎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졸리기도 하고, 무당의 병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굿판에 갈 때는 박카스나 원비디 같은 것을 사 가는 것이 예의이다. 하지만 아무 근거 없는 외국의 약들을 보약이라면서 마구잡이로 먹는 것을 보면 접이 날 만큼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 신이 들리고 무당이 되는가 하는 것은 여러 사례가 발표되고 연구도 되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신들릴 수 있다는 원칙론 외에 경제적, 정신적으로 억눌린 여인들이 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있고, 강신무 역시 집안으로 무당이 되는 내력이 있다는 생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신들린 무당 가운데는 고모나 할머니, 이모 등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 중에 무당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친근성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혈통적인 문제인지는 쉽게 가려지지 않고 있다. 무당이 되는 원인 가운데 사회적인 소외도 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무당들 중에는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도저히 그것을 삭일 수 없어 신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pp. 166-167).
무당들은 고독하다. 대부분 가정 생활이 순탄치 못하여 남편과 남남처럼 지내거나 혼자 사는 경우도 많다. 자식과의 관계 역시 편안하기가 어렵다. 평생 무당 자식이란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자식들은 부모가 어떤 희생을 치르고 키웠다고 해도 감사하기보다는 엇나가기가 쉽다. 게다가 장성하여 부모와 다른 신앙을 갖게 된다면 이 경우는 전쟁을 방불한다. 무당 일을 그만 두기 전까지는 부모와 의절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게 되어도 자식은 조금도 그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없다. 다만 아직도 미신에 빠져 있는 무당 부모가 안타깝고 하필 그런 팔자를 타고난 자신의 처지가 기막힐 따름인 것이다. 그래서 남편도 자식도 없이 살아가는 많은 무녀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살게 마련이다. 젊었을 때 굿해서 번 돈은 가족들과 친정 식구들 부양에 다 들어가고, 빈털터리가 된 늙은 무당이 굿판에서 젊은 무녀의 뒷바라지나 해 주면서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p. 173).
세습무는 집안으로 내려온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으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당이 된다. 신들린 무당은 신에게 선택되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을 받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괴로움을 겪는다. 그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인다리’라고 하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다. 무당이 되지 않으면 신의 벌을 받아 가족이 대신 죽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속 신앙에 나타난 신의 선택은 아주 집요하고 잔인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을 선택하여 끝까지 물고늘어지고, 결국 모시게 만드는 신에 대해 무당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일단 무당이 된 이상 신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지고 살아가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서 때로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을 따돌리는 사회를 증오하게도 된다. 그런 무당의 처지는 많은 경우 절제되기 어려운 정서적 불안정으로 나 타난다. 상당수의 무당이 변덕스럽고 욕심 많다는 인상은 이런 상황에 연유한다. 무당은 딸네 집 굿을 가도 자루 아홉 개를 가져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욕심이 과하다는 것인데 이에 관해 무당들은 딱히 자기가 탐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귀신이 그렇다고 변명을 하기도 한다. 하여튼 무당이 욕심 많은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왜 그럴까. 어쩌면 그것만이 무당이 보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존경을 받는 사제자도 아니요, 사회적인 신분이 보장된 것도 아닌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무당은 그 보답으로 물질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타당한 원인은 역시 정서적 불안이라고 하겠다(p. 175).
무속의 리얼리즘
사람들이 점을 치는 심리는 다양한 것처럼 보인다. 단순한 호기심에 장난처럼 친구를 따라가 점쟁이가 얼마나 자신의 상황을 짚어 내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점쟁이 말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남의 돈을 공으로야 먹겠냐면서 그래도 뭔가 맞는 게 있을 것이라고, 또 인생이라는 게 좋은 것은 몰라도 나쁜 것은 맞는 법이니 미리 알아서 예방하는 편이 낫다는 등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의식 밑바닥에 깔린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사람들로 하여금 점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점을 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점 문화에 익숙한 사람인지 아닌지 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처음 온 사람들은 대개 점쟁이에게 자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맞춰 보라는 식으로 뻣뻣하게 앉아 있다. 코앞에 앉아 의심스런 눈초리를 감추지 않으면서 탐색 하다가 점쟁이가 헛다리를 짚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 가버린다. 마치 점쟁이가 모두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러 오기라도 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솔직히 돈만 버리고 매우 실속 없어 보인다. 본인도 허무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행여 점쟁이가 사소한 것이라 도 자신의 문제를 짚어 언급하면 갑자기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는 정신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일수록 점쟁이 말에 빠져들어 소위 폭삭 엎어지는 경향이 많다는 점이다. 점쟁이 말을 믿고 싶은 나머지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확 대 해석하고 나중에는 자기가 한 말과 점쟁이의 말을 마구 뒤섞어 그를 무불통지의 신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이런 부류의 손님들이다.
하지만 점을 많이 쳐 본 사람은 점쟁이의 신통력을 시험해 보는 그런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점을 치러 온 목적이 점쟁이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잘 맞추는지 아닌지 알아 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앉자마자 가능한 한 자세히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겨서 의논을 하러 왔는지 그 목적도 분명히 일러 준다. 그래서 점쟁이가 공연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주어진 정보를 근거로 신을 부르든, 쌀을 던지든, 육갑을 짚든, 하여튼 자기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점을 잘 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경우 점을 치는 과정은 일종의 카운셀링이다. 자기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으면 점쟁이는 신이 준 어떤 감을 근거로, 또는 육갑을 풀어 나온 자료들을 가지고 상대의 상황에 맞추어 조언을 해주 는 것이다. 설사 신적인 것이 통하지 않는 경우라 할지라도 점쟁이들은 직업을 통해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알고 있기 마련이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해석을 내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점치는 것이 진정 카운셀링의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된 바가 없지만 점쟁이들 자신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점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점을 치는 사람들이 원하고, 점쟁이가 제시하는 인생의 답은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 그 답은 상식적인 것들이다. 사람의 일생은 비슷비슷해서 특별한 경우는 드물다. 태어나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살다가 자녀가 성장하면 자리를 물려주고 결국 죽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인의 운명이다. 그래서 특별한 이슈가 없이 점을 치러 가면 점쟁이는 일 년 동안의 운수를 달별로 짚어 준다. 어느 달은 운이 좋고, 어느 달은 나쁠 가능성이 있고, 어느 달은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운은 시기에 따라 움직이는데, 우리 생활과 밀착된 내용이 많다. 기혼 여성은 가정의 건강, 남편의 일,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이 문제가 된다. 7, 8월에는 물가 조심하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추위에 돌아가시는 노인이 많은 탓인지 겨울에는 상갓집 음식을 먹지 말란 말이 많이 나온다. 정월에서 3월 사이에는 승진수나 이동수가 있다. 자녀 나이에 따 라 대학 진학 문제도 반드시 등장한다. 미혼이라면 당연히 결혼과 장래, 직업 등이 점의 내용이 될 것이다.
만약, 특별한 문제를 가지고 찾아갔다면 점쟁이는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기본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점을 치러 온 사람은 대개 다급한 심정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그럴 때야말로 한 걸음 물러나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여유가 필요하기에 점쟁이는 늘 조금 기다려 볼 것을 권한다. 두번째는 과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성급한 결정은 욕심이 앞을 가릴 때 내리는 법이고, 결국 실패의 원인이 된다. 욕심을 버리고 기다리면 시기도 가릴 수 있고, 성공은 못 할지라도 큰 실패는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점을 치러 올 만큼 급한 사람 에게 착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풀릴 때가 있다고 막연히 말한다면 고객을 잃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느 닭, 언제쯤 운이 들어오니 그 때까지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게라는 대답이 흔하다. 점을 칠 때 나오는 이러한 해답의 특징은 일의 성패를 가름할 때 인간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점에서는 어느 성씨를 조심해라, 또는 어디서, 언제 귀인이 나타난다는 등 다른 사람을 통해 운이 바뀐다는 내용이 많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고, 세상에는 독불장군이 없다. 인간은 가정과 친척, 이웃, 직장, 지연과 학연 등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처럼 관계 속의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점의 특징 중 하나이다. 관계를 중시한다는 성격은 점보다 굿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무리 점을 쳐도 답답한 사람은 결국 굿을 한다. 그런데 점과 굿은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점이 폐쇄적이라면 굿은 공개적이다. 점은 점쟁이와 점을 치러 온 사람의 일대일로 문제가 제기되고 풀린다. 하지만 굿은 열려진 의례이니 공개적인 자리에 문제를 부쳐 보는 것이다. 굿은 개인이나 집안의 문제가 열려진 토론의 장으로 나가는 것이고 굿판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이웃이 모여 다 함께 문제를 풀어 가는 장이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살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굿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공개적인 카운셀링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굿의 성격은 마을굿이나 집굿이 같은 양상을 보인다. 마을굿 에서는 그 마을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대잡이를 통해 제시된다. 주민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문제가 제기되고, 대잡이의 반응은 곧 신의 지지를 얻은 여론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집안의 일이 영 풀리지 않아 굿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조상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직 산 사람과의 갈등이 풀리지 않은 조상이 문제가 된다. 많은 집굿에서 살아 생전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부모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상의 넋이 실린 무당의 입을 통해 아들이 두 번이나 입시에 실패하고, 본인의 몸이 늘 무겁고, 게다가 최근 남편의 사업까지 부진한 까닭은 결국 시부모의 영혼이 편치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가 밝혀진다. 처음 무당을 통해 상황을 판단한 사람들은 시부모의 입장이 되어 며느리가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나무란다. 하지만 죽은 조상이 생전의 한 때문에 자손을 괴롭힌다는 것 역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은 못 된다. 그래서 다시 여론은 이제라도 굿을 벌여 시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는 며느리를 긍정하는 쪽으로 돌아간다. 결국 며느리는 공개적으로 죽은 시부모와 가족, 친척, 이웃으로부터 용서를 받는다. 굿을 통해 관계 속에서의 자기 존재를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처럼 굿은 신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점을 치고 그 결과에 따라 굿이나 다른 의례를 행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재미있는 바가 있다. 이런 행위는 한 인간이 삶을 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래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미래는 정해진 것이며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운명을 점치러 가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운명론자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가능하면 운명을 바꿔 보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운명은 있되 인간이 바꿀 수도, 또는 어느 정도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작 그들의 속마음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우선 미래의 운명에 관해 알기를 원하고, 안 다음에는 그것을 바꾸거나 피할 도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긋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적극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공격적인 사람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역사에서 고통을 가장 몸으로 체험한 계층은 바로 굿을 했던 민중들이었다. 그들은 역사가 주는 아픔을 가장 밑바닥에서 겪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들을 살아남게 만든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무리 험한 위기라고 해도 어떻게든 벗어나는 지혜, 그러면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저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것이다. 무속은 바로 그런 지혜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어쩌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생관도 그런 지혜의 하나일지 모른다.
무당 불러 긋하는 일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굿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다. 위험을 피하고 풍성한 수확을 얻어 들이기 위한 수많은 노력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사람의 일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법이고, 굿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위험을 당해 본 사람이 최후로 선택한 또 다른 삶의 전략인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면 귀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겨내고 싶다는, 또는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삶의 의지가 그들로 하여금 굿을 하게 만든다. 그런 삶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 그러니까 자꾸 위축되고 졸아드는 우리 삶의 상황을 본래의 활기찬 곳으로 데려가기 위한 방안의 하나가 바로 굿인 셈이다. 굿은 마지막 시도이다. 하지만 가장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도이다. 굿이 있어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다(pp. 274-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