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17(월)
 
  •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권혁란


9791160403411.jpg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왜 어머니만 떠올리면 나는 눈물이 나는가?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는데 나는 어머니가 눈물의 씨앗인가 보다. 이 책은 90세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막내딸의 이야기다. 저자의 어머니는 고아였고 맡겨진 집에서 자라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낳았다.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전후한 일들을 일기 쓰듯이 기록하는 데 배우는 마음으로 읽었다. 노년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입장에서 언젠가 나도 이 일을 겪을 것이기에 예습하듯이 감정이입이 됐다. 노부모가 계신 분들은 일독했으면 하는 좋은 책이다. 아래 발췌한 글은 정신이 흐릿해지고 섬망에 빠지면 왜 착한 사람도 욕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KakaoTalk_20250203_071242433.jpg

 

"모든 사람이 죽기 직전에 욕을 해요." "설마요? 왜 그럴 까요? 죽을 때는 체념하고 놓아두고 평화롭게 떠나는 거 아닙니까?" 나는 물었다. 착하던 사람이, 가면을 벗은 것처럼 쉼 없이 욕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한 후였다. "깨달음에 이르진 못해도 포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체념도 도의 일종 이라는데 그것도 안 되나요?"

"살아 있는 동안 가장 큰 고통을 느낄 때가 죽는 순간이랍니다.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모르핀과 엔도르핀을 평소보다 천 배 이상 분비한대요. 물론 남은 마지막 몇 나노 그램까지 다 쏟아내는 거죠. 그때 아늑한 황홀감 속으로 고통이 파고든대요. 이승에서 못다 한 마지막 아쉬움을 욕으로 분출하는 거죠! 그러니 살아생전 고운 말만 쓰던 조신한 사람도, 착하다 착했던 나무 같고 꽃 같은 사람도 저승 문 앞에서 저도 모르는 죽음의 슬픔과 기쁨에 헷갈리면서 서리서리 평생 쟁여놓은 욕설을 쏟아내게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가슴으로도 납득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럴 리가요? 이슬처럼 잠시 왔다가 스러지듯이, 물이 흘러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듯이 사람이 죽을 때는 평화롭게 떠나는 줄 알았어요. 그럴 수 있잖아요. 마음을 다스리면서 잘 산 사람들은 가능하잖아요. 면벽하고 죽기도 하고 앉은 채로 가기도 하고." "그런 사람 없습니다. 100퍼센트 다들 그렇게 욕을 하다가 죽어요. 저 자신도 모르는 채 욕으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거겠지요."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 싫었다. 무슨 힘이 남아 있어 저렇게 장사가 되었나. 시간에 난폭하게 쥐어뜯긴 90의, 100살의 노인들이 최후까지 남아 있는 힘을 짜내 가장 최악의 본능을 드러내고 죽어가는 게 과학적인 진리라니. 생명을 가진 것들의 마지막이 그럴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처연해졌다.

당신, 평생을 착하게 산 거 아니었나. 말려 들어가는 혀로 온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며 박혀 있는 칼을 빼내는 마지막 얼굴은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나. 하나 남은 아랫니 하나로 칼과 피를 반죽해 분노의 떡을 쌓고 떠날 일은 아니지 않나. 당신이 이렇게 죽는다면 내 심장에 꽂힌 못을 빼내려면 나는 석 달 열흘 욕만 하다 죽지 않겠나.

오늘의 당신, 엄마. 하루 또 하루 죽을힘을 다해 화내면서 죽음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 나는 진심으로 당신의 죽음이 평화롭기를 원했다. 오늘도 죽음으로 가려다 돌아서는 사람, 널뛰는 섬망 속에서 착하게 살아온 명예를 갈기갈기 찢으며 소멸 쪽으로 못나게 가는 당신. 욕하고 남은 시간에 찾아온 찰나의 명징한 순간에 장판에 묻어 놓은 지폐 300만 원과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 콘 세 개의 행방에만 골똘 한 당신.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바란 것은 그것 하나였는 데. 평화롭게. 시 구절을 새로 사는 일기마다 적어놓고 기도하면서 살고 있는데. 평생을 간구해도 당신처럼 마지막엔 섬망에 빠져 죽는 걸로 예정되어 있다면 오늘 나는 무엇으로 더 버틸 수 있을까(pp. 151-153).

 

KakaoTalk_20230718_085629599.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북토크】 언젠가 있을 부모와의 사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