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12(토)
 
  •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기시미 이치로 · 김지윤 번역(위즈덤하우스 ·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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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움받을 용기》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아들러 열풍을 몰고 왔던 그는 여전히 아들러 심리학과 고대철학에 관한 집필과 강연 활동을 펼치며,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카운슬러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부분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밝힌 것이다. 다시금 제대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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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하게 살아간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는 바위와 같아라. 바위는 엄숙히 서 있고, 물거품은 그 주위에서 잠든다(4:49)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더라도 '나'라는 바위에 몰아치는 파도의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엄숙하게 서 있으면 시기, 질투, 근거 없는 비판이나 비난이 들려와도 언젠가 파도는 가라앉고 잠잠해집니다(p. 88).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가지지 않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요.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자기 도 모르게 욱했다거나 남에게 친절하게 굴지 못했다는 말은 앞에서 본 것처럼 변명, 핑계에 불과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순간적인 분노가 너무 강해서 그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지 평소 자신은 이성적이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사실은 화를 내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뿐입니다. 화를 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아우렐리우스는 분노는 억제하고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노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으면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지요. 요새나 바위도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을 그리며 떠올린 비유였을 겁니다(p. 89).

 

남이 나를 평가할 때

무릇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찬사를 자신의 본질적 성분으로 갖지 않고 그것 자체로 완결한다. 고로 찬사에 의해 더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4:20)

 

찬사를 자신의 본질적 성분으로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위는 자기 완결적이며 칭찬받지 않아도 보상받는다는 뜻입니다(p. 103). '찬사에 의해 더 나아지지도,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라는 말은 이대로는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비난받는 것'이라는 말을 보충해서 '찬사를 받음으로 인해 더 좋아지거나 비난을 받음으로 인해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읽으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의 가치는 평가와는 별개라는 말입니다. 평가받지 않는 다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가치가 있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기서 아우렐리우스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친절이나 선행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행위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겠지요. 일이나 공부에는 평가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평가가 정당한 것이라면 노력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여기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자신의 가치는 타자로 부터의 평가와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일이나 공부에 관해 평가받는다고 해서 인격을 평가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사나 교사 가운데는 '이런 것도 못 하냐' 혹은 ‘이런 것도 모르냐' 면서 자신의 지도나 교육의 부족함은 생각하지 않은 채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말을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사람 참 너무하네"라고 말하면 기분이 가라앉습니(p. 104)다. 반대로 "멋진 분이시네요"라고 말하면 괜히 기분이 들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모두 나에 관한 그 사람의 평가일 뿐입니다. 그런 평가의 말로 나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반대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설령 다른 사람에게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겁니다. 때로 칭찬에 마음이 흔들려서 그런 자신을 타이르려고 쓴 건지도 모르지요(p. 105).

 

고난에 어떻게 맞설지 내가 선택해야 한다

너 자신이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가능하고 걸맞은 일이라면 너도 능히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6:19)

 

이는 누구나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일, 예를 들어 부모님을 잃거나 뜻하지 않는 질병에 걸렸을 때,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일처럼 생각되더라도 내가 처음(p. 177) 경험하는 일이 아니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같은 일을 겪고 극복해왔으니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스스로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에 걸려도 젊을 때는 다시 금방 건강해질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이를 먹으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 병으로 쓰러진 건 자신만이 아니고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불안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 외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기사 고타미라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그녀에게 한 번도 장례식을 치른 적 없는 집에서 하얀 겨자씨를 받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집은 없다는 사실, 죽음은 어떤 집에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자기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장례식을 한 번도 치러보지 않은 집도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이런 조언으로는 아이의 죽음을 극복하기 어렵겠지만, 기사 고타미는 여러 집을 방문하는 사이에 아이의 죽음을 경험한 것은 결코 자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고난을 극복했다고 해서 자기 역시 당연히(p. 178) 같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떤 곤경도 인류가 처음 도달하는 땅에 서는 것처럼 새로운 모험은 아닙니다. 책의 처음에 있는 '들어가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희 어머니는 제가 대학원에 입학한 해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셨습니다. 여동생은 이미 가정을 꾸려 이사했고, 아버지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평일에는 학생이었던 제가 병원에 머물면서 어머니를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완전 간호(병원 측이 입원 환자의 간호를 맡아, 보호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간호 방법-옮긴이 주)가 아니었기에 가족 중 누군가가 붙어 있어야 했는데, 위중한 상태여서 언제든 달려올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병실에 그리스어책을 가지고 가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전공인 플라톤의 〈대화편〉뿐 아니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읽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이 많았기에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고, 중간에 끊었다 읽어도 되는 《명상록》이 참 고마웠습니다. 읽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면서 병원 옥상에서 세탁물을 널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날이 쇠약해지셨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머니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치의 선생님이 어머니는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p. 179). 어느날 '너 자신이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을 읽고는, 저만 부모님의 병시중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고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어떻게 맞설지는 선택할 수 있다면서 고상하게 참으라고만 하지만(바로 뒤에서 보겠습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은 시련과 동시에 '피할 길'도 마련해주신다고 쓰여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저에 게 시련은 오랫동안 이어진 어머니 간병이었습니다. 이 성서 구절을 읽고 얼마 안 되어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시련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이란 어머니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지요. 일주일만 더 병원에 있었다가는 내가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한 것과 어머니가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신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리는 없지만, 당시에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조금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며 자책했습니다. 오랫동안 병시중을 들어본 사람 가운데는 부모나 아이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현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는(p. 180) 생각을 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지금은 '피할 길'이 '성공 등의 세상의 가치가 아닌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아는 것'이라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병원에서는 계속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어머니의 병세나 어머니가 받은 치료 등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때그때 생각 한 것도 적었지요.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명상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더 큰 시련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데,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노트를 통해 나 자신과 대화했던 날들 덕분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간호대학 학생들도 가르쳤기에 국가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도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소개하고는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에 나오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성취한 것은 자신도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인간의 대지》)라는 말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는 하지요. 시험을 치르는 일은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에 서는 것과 같은 대모험이 아닙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할 것만 생각하고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도하려는 일이 어려워서 불안을 느끼고(p. 181)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내지 않으려면 그냥 회피하면 되지요. 학생이라면 시험을 보지 않으면 평가받지 않습니다. 과제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이유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납득하지 못해도 불안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만들어 내서 도망치는 것을 적어도 자신은 납득하려고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중이 되어서 그때 했더라면 잘되었을지도 모른다며 가능성(이 경우, 과거의 가능성입니다만) 안에서 살 것이 아니라 결과를 내고, 그에 따라 필요하다면 다시 도전하거나 혹은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p. 182).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너는 이미 죽은 사람처럼, 지금까지의 생을 마감한 사람처럼 앞으로의 인생을 자연에 속해 덤으로 얻은 것처럼 살아야 한다 (7:56)

 

저는 오십의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 유도제를 처방받았는데, 약을 먹으면 금방 잠들 수 있었지만, 문득 약을 먹었다가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p. 248)고 나서는 그 공포 때문에 수면 유도제를 먹을 수 없게 되더군요. 그래서 약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고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순조롭게 회복한 저는, 주간 검사가 없을 때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쓰며 지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주치의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책은 쓰세요. 책은 남으니까요." 책은 남지만 나는 남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서 아찔하지만, 책을 쓸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셨기에 퇴원 후에는 어떻게 살까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퇴원 후의 예후가 좋아서 비록 밖에서 하는 일은 제한해야 했지만, 집 안에서 책을 쓰는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퇴원 후의 인생은 저에게 여생이었고,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사용하자면 '덤'으로 얻은 삶이 되었습니다. 그 후 컨디션은 더 좋아졌지만,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평일에는 아버지를 돌보는 것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쓰는 것도 어려워지기는 했는데, 바깥일을 제한한 덕분에 만년의 아버지와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감(p. 249)사한 일이었고, 애초에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던 것 이기에 이 역시 저에게는 덤으로 얻은 인생입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책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매일 원고를 씁니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산다는 것은 말로는 거창하게 들리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을 원점으로 생각하면 뭐든지 고맙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몸 상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도, 오늘도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이것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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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59】 삶의 지혜는 죽을 때까지 배워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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