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6(일)
 
  • 한국교회, 이미와 아직 사이 - 주원규(곰출판 ·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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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의 여러 건물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특별히 합동 측의 대표적 교회인 사랑의교회와 충현교회를 다루는 부분을 관심있게 보며 많은 공감을 했다. 교회 건물의 의미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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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와 남영동 대공분실, 그 얼룩진 아이러니를 읽으며

우리는 한 근대건축의 거장이 남긴 발자취에서 비극에 가까운 아이러니를 읽지 않을 수 없다. 경동교회가 설계되기 4년여 전, 건축가 김수근은 한국 현대사의 치욕으로 기억될 만한 건축물을 설계한다. 현재는 경찰청인권센터로 불리는, 1970~ 1980년대 군사정(p. 17)권 치하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악명을 떨치던 건물이 그것이다. 불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부의 체제 유지를 위해 악용된, 민주 투사들을 향한 가혹한 고문이 자행된 대공수사본부. 사람이 사람을 겁박하고 처참하게 인권을 유린한 그 건물이 가진 특징 역시 외부로부터의 단절과 내부에로의 침잠이란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의 크기로 나열된 5층의 좁은 세로 창문들은 안에서 밖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폐쇄 구역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또한 층과 층을 오가는 계단들이 모두 나선형 계단으로 구성돼 있어 이성이 마비된 암흑 공간으로의 함몰을 기획하는 착란으로 가득하다. 섬뜩한 것은, 같은 건축가의 세심한 설계의 숨결에 배어든 공간 구성이 어느 건물은 종교적 심연으로 상징되(p. 18)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종교 감정을 지원하는가 하면, 또 어느 건물은 인간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부역자 역할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김수근 건축가의 패착이나 한국 근대건축의 굴욕적 부역 행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지는 않다.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역사와 종교, 그 얼룩진 아이러니를 함께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제안이 전부다. 공간은 존재를 압도한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의 힘은 그것이 시 간의 풍상이란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모든 것을 은폐하는 힘과 의지의 용광로로 지속한다는 데 두려움과 황홀의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때, 존재를 압도하는 공간은 그 존재를 종교의 가장 깊은 곳, 어머니 자궁과 같은 생명 신비의 극한으로 견인한다. 동시에 이성을 철저히 마비시키고 역사와 종교를 야만과 정신 학살의 장으로 기능하게 하는 암흑천지의 아수라로 화해 버리는 곳 역시 공간이다. 필자는 경동교회가 품은 기독교적 존엄을 지지한다. 또한 우리를 압도하고 이끌어가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공간이 우리네 역사를 겸허한 성찰과 반성의 광장으로 인도해 주기를 희망한다. 그렇기에 더 간절히 기도한다. 경동교회의 미래, 한국교회의 미래가 성찰과 반성의 보루로 계속해서 남아주기를 말이다(p. 19).

 

부르짖거나, 무너지거나 - 사랑의교회

제자 훈련과 강남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기독교의 흐름에서 '제자 훈련'이란 키워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1980년대는 교인 수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교회 조직은 양적으로 비대해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영적 성숙이 따르지 못한다는 고민과 도전이 목회자들 사이에서 발화되던 시기였다. 또한 그 고민의 실천적 측면에서 사회참여, 제자도, 십자가 신학 등의 유행이 발발 했던 것도 1980년대의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제자 훈련은 기독교의 외적 성장을 보완하는 내적 성숙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막중하다(p. 72). 1978년 강남 은평교회를 개척한 옥한흠 목사는 곧이어 1980년에 강남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1981년엔 교회명을 사랑의교회로 개명해 오늘에 이르렀다. 옥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강력한 영성 폭발을 강조함과 동시에 '사랑'이란 키워드를 추상적이거나 내재적 차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현실 사회를 향한 적극적 참여의 동력으로 사용했다. 당시 한국교회를 휩쓴 주된 흐름이 급격한 보수화나 과도한 급진화가 낳은 갈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옥 목사의 이러한 시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복음에 있어서는 인문학적 흐름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성을 강조 하면서도 주류 기독교를 공격할 때 주로 사용하는 사회참여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비판하고 적극적 사회참여를 촉구하는 옥 목사의 설교가 가져온 파급효과는 상당했다. 그 상당한 영향력은 실제 열매로 나타났는데, 사랑의교회의 폭발적 양적 성장으로 이어졌기에 결국 옥 목사는 1980년대 중반 교회 건축을 결심, 강남역 인근 서초구에 교회를 건축하기에 이른다. 옥 목사가 1980년대 당시 강남에 교회 건축을 시도하게 된 배경에 '강남'이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특수성을 옥 목사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사적 이익에 이용했다는 느낌을 갖기란 쉽지 않다. 옥 목사 역시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에서 강남이 가진 천민자본주의적 기질의 태동을 어떤 식으로든 의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옥 목사는(p. 73)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세속 도시를 향한 저항과 돌파, 이를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개혁 의지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 개혁 의지의 키워드가 바로 제자 훈련이다. 칼빈신학교를 거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를 공부한 옥 목사가 접했던 이론 중, 그의 제자 훈련의 바탕을 이룬 한 축이 한스 큉의 '교회론'이다. 신학적인 입장 차는 있겠지만 옥 목사는 한스 큉의 교회론에서 복음•훈련•비전에 대한 필연적 동기부여를 절감했으며, 우주적 교회로서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과 선도적 역할에 대한 각성을 이뤄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옥 목사가 이러한 교회론 적용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개인의 복음화 차원을 넘어선 개인의(p. 74)공동체화와, 그 기여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예수의 제자도 구현이다. 옥 목사는 제자도 구현을 개혁의 본질로 인식했고, 프로테스탄트야말로 바로 제자 훈련의 산실이란 자긍심을 선포해야 한다고 보았다. 제자 훈련이 곧 개혁이고, 개혁의 대상과 장소가 일상의 삶에서 개혁을 요청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라면, 그 삶의 중심에서 복음을 외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제자 훈련 역시 삶과 동떨어진 게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옥 목사는 강남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는 1980년대의 강남과 향후 강남이 가져올, 이른바 개인을 괴물로 만드는 욕망과 그 욕망을 먹고 자라는 신자유주의의 광기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 목표로 교회 건축을 계획한 것이다. 한 개인이 예수님의 강력하고도 철저한 복음에 충분히 녹아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만 있다면 비록 그곳이 소돔이라 하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카타콤과 탈욕망, 욕망의 한복판에서 복음을 부르짖다

옥 목사의 개혁 의지는 당시의 교회 예배당 건축에 어김없이 반영된다. 소음을 피한다는 표면적 이유가 있긴 하지만 옥 목사가 주(p. 75)장한 제자 훈련 정신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면 예배당을 지하에 둔 시도에 낮은 자의 자세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겸허한 카타콤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옥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교회에 스며있는 복음의 향기가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정서적 연대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렇기에 당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의견을 건축 과정에 최우선으로 반영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회 건축 과정에서 나타나는 겸손과 소통의 자세는 사랑의교회를 욕망의 급류에 휘말려 정신 못 차리는 강남이란 공간에서 종교와 비종교를 넘어 유의미한 개혁 기제로 자리 잡게 해 주었다. 옥 목사가 주장한 제자 훈련은 복음의 실천과 그 지속이 개인과 공동체, 더 나아가 시민사회와 국가로까지 확장되는 데 선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옥 목사의 다소 근본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적 파토스가 덧붙여진다. 한 개인을 둘러싸고 파고드는 욕망의 층위를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축복과 의무의 동시 기제인 성령의 견인을 추동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게 제자 훈련의 모티프인 것이다. 그러한 제자 훈련은 개인 삶의 절제와 적극적인 대민 봉사, 그리스도인다운 성숙한 윤리 의식 실천으로 발전된다. 그러한 가르침의 실제적 사례를 필자는 욕망의 강남과 그 강남을 윤리적으로 정화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동적 상호작용이라고 평하고 싶다(p. 76).

강남을 둘러싼 부동산과 정치, 문화의 역학 관계가 빚어낸 욕망의 용광로 속에서 사랑의교회는 미쳐 돌아가는 세속 도시, 그 끝을 모르고 치닫는 욕망을 멈춰 세우고, 세속 도시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변화하게 하는 개혁의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는 사실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물론 옥 목사의 제자 훈련이 결과적으로 강남의 욕망과 어떻게 맞는지, 그렇게 맞서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는지는 미지수다. 제자 훈련이 주장하는 개인의 복음화, 이른바 성화의 추동력인 성령의 견인이 고도성장과 부의 불균형, 그 첨단에 설 수밖에 없도록 치달은 강남을 변화하게 했는지에 대해선 현재의 역사적 판단만으론 결론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하지만 옥 목사의 복음을 향한 신념이 녹아든 강남역 서초동에 위치한 사랑의 교회 예배당이 가리키는 밑으로의 지향이 가져온 영적 긴장만큼은(p. 77) 그 자체로 피할 수 없는 개혁의 역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개발 광풍이 불어닥친 1980년대의 강남에서 당대 많은 초대형 교회 건축물들은 외연적 성장에 집중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랑의교회는 그 풍조와 맞서 싸웠다. 형식은 고대 교회 건축의 복원에 있다고 해도 지상을 향해 할 수만 있다면 위로만 오르려 하는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건축물과, 역시 하늘 높이 십자가 첨탑을 앞 다투어 세우려 했던 유행에 정면으로 맞섰다. 낮은 곳을 향하는 사랑의교회 지하 예배당은 물질적 풍요에 중독되었음에도 적당한 사회적 지위와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전형적인 기회의 땅 강남의 중심에서 탈강남, 탈욕망의 외침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 탈욕망의 외침이 기괴한 종교 논리와 결합하면서 괴물의 모습으로 변형되기 시작하더니, 결국 역사적 퇴행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13년, 서초역 사거리에 들어선 오늘의 사랑의 교회가 그것이다.

 

이런 식의 세속화는 재앙이다

사랑의교회 예배당이 이전 증축을 결심해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보면 전혀 무리가 없다. 1980년대 중반 지어진 800여 명 수용 규모의 예배당에 2000년대 이후 수만여 명 규모로 성장한 교인들(p. 78)을 수용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고등부 예배는 물론이고 성인 교인들에게도 예배 시간을 5~8부로 확장해 분산 수용한다 해도 한계는 분명했다. 물론 분립이나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건 개교회의 태생적 뿌리 와 역사를 함께해온 교인들의 생리와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 이전이나 증축은 사랑의교회가 당면한 당연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옥 목사가 요구한 제자 훈련의 정신 계승이 적어도 그 본질의 흐름만이라도 훼손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오정현 목사가 기어코 일궈낸 서초역 사거리에 위치한 지금의 건축물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옥 목사가 외친 제자 훈련의 본질은 세속 도시에 대한 거부가 아닌 세속 도시 한복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란 사실을 실천적으로 선포하는 개혁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랑의교회 건축물은 세속 도시가 추구하는 소비지향주의의 첨단, 그 자체로 주저앉고 말았다. 맘몬의 광기에 휩쓸린 강남이란 재앙의 메타포를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할까. 옥 목사였다면 그 메타포를 어떻게 읽었을까. 만약 오 목사가 자신은 옥 목사와 다른 노선을 걷겠다고 천명했다면 소제목의 '재앙'이란 표현을 자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 목사는 옥 목사의 제자 훈련이 곧 자신의 목회 철학임을 공공연히,(p. 79) 지금도 계속해서 부르짖는 자칭 제자 훈련의 화신이란다. 이게 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지금의 사랑의교회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성스러운 복음으로 받아들인 초대형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강남이란 맘몬의 메타포를 적극 활용한 나머지 수습할 길 없는 기형의 바벨탑을 세우고 말았다. 혹자들은 억울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랑의교회 건축물을 두(p. 80)고 둘러싼 일련의 충돌과 정도 이상으로 과도하게 집중된 비난은 자칫 영적 공공재를 향한 불신자들의 영적 공격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도로점용 위법성 여부와 교회 건축비 대출과 관련한 문제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의 사랑의교회가 추구하는 외형적 과시를 위한 건축물 위용의 의지는 옥 목사가 이야기한 개혁 의지가 아닌 오히려 개혁해야 할 최악의 죄임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이젠 좀 솔직해져야 할 것 같다. 신학적 견해가 다르다 해도 우리가 정말 구원의 복음과 그 감격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짜 영적 공공재가 무엇인지, 진짜 영적 전쟁이 무엇인지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의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강남의 욕망으로부터 초연함을 선포하는 영적 공공재를 지키고 싶다면, 그게 진심이라면 지금 당장 그곳을 버리고 나와야 한다. 지금 당장 말이다. 이런 식의 세속화는 제자 훈련도, 영적 공공재도, 개혁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냥 막장이고 재앙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p. 81).

 

욕망과 성스러움, 그 경계에서 - 충현교회

충현교회의 발자취

자의든 타의든 충현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대표 교회다. 위세가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충현교회는 여전히 한국의 개신교회 중 10대 교회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충현교회는 본래 서울 중구 야현동 (인현동의 옛 이름)에서 시작했다. 1952년 설립된 부산 동일교회의 김창인 목사와 서울로 올라온 신자들을 중심으로 1953년 인현동에서 시작한 서울 동일교회가 충무로로 이전한 후, 이듬해인 1954년 충무로의 '충' 자와 야현동의 '현' 자를 따 충성된(충) 고개(현) 위에 세워진 등불이라는 뜻의 충현교회로 개명됐다. 이후 1980년 강남 개발 붐을 타고 현재의 강남구(p. 99) 역삼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한평생 십자가 복음이라는 강력한 복음 원동력을 불태운 김창인 목사의 카리스마가 살아 있는 충현교회의 어제는, 비록 쇠락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복음의 원형 가치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본 책에서 충현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개신교 현대건축의 과제가 무엇인지 함께 묻고자 한다(p. 100).

 

강남, 그리고 교회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이전한 충현교회 역사는 긍정적 섭리의 역사라기보다는 일단의 사건으로 평가받는 부정적 의견을 피하기 어렵다. 아쉽게도 충현교회는 한국교회 건축사에서 교회 건축으로는 거의 최초로 비난을 받은 교회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지금의 충현교회 예배당은 1978년 공사를 시작해 1988년 헌당식을 했는데, 당시 12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교회 건축을 일궈냈다. 바로 이 지점이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게 된다. 당시의 120억 원은 현재 시가로 환산해보면 750억 원 정도에 이른다. 게다가 충현교회 자체의 부동산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충현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분명 있을 수 있다. 어떤 부동산 전략 가치를 두고 선택한 것도 아닐뿐더러 충현교회 초대 담임목사인 김창인 목사의 복음을 향한 열정이 그러한 세속적 예지나 안목으로 선택을 도모할 정도로 비영성적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충현교회의 강남 이전이 강남이라는 욕망의 기반과 개신교회가 지닌 보여주기가 연결되는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충현교회는 강남이 향후 욕망과 자본의 상징으로 발전되리라 예견하고 이전한 것으로 볼 순 없다. 초기 한국교회 태동 원리가 그러하듯, 김창인 목사의 민족 복음화를 향한 순수 의지와 그 본령을 향한 집중이 강화된 입체적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한(p. 101)교회 이전의 원칙으로 읽힌다. 이러한 독법은 충현교회가 선택한 건축 비전의 특징을 통해 구체화된다. 강남을 의식하고 짓지는 않았겠지만 충현교회가 추구한 건축양식의 비전은 보여주기 차원에서의 장식미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개신교회가 갖는 모순과 발전적 대립이 발생한다. 개신 교회는 하나님 임재와 지속의 방식을 말씀 선포에 뿌리를 두고 전개하는 건축양식을 지향한다. 그 말씀, 로고스의 토대를 바탕으로 보여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보여주기 방식으로 충현교회가 선택한 익스테리어Exterior의 기반은 신고딕 양식neo Gothic이다.

 

현대적 영광과 교회

신고딕 양식의 기본적 특징은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의 합리적 고려에 있다. 이렇듯 신고딕 양식은 19세기 유럽 각지에서 나타난 고딕건축의 변주다. 고딕건축만이 가진 장엄함, 고절적 성스러움이 품은 외연적 화려함은 보존하면서도 구조 합리주의의 국면은 외면하지 않는 명분과 실리의 조화가 신고딕 양식의 본령일 것이다. 충현교회는 개신교회가 성물, 형식보다는 말씀 선포에 집중돼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의 대사회적 위상과 가치 지속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는 랜드마크 역할 또한 배제하지 않았다. 더욱이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가속화한 경제성장의 후광(p. 102)속에서 막스 베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정신의 또 하나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청교도 정신과의 결합이라는 표지를 흡수하는 측면에서 충현교회는 교회가 민족, 그리고 국가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 믿음의 결과가 충현교회가 드러낸 건축의 외적 가치 실천인 신고딕 양식이다. 신고딕 양식으로 무장된 충현교회 외관은 하늘을 향해선 주변 건물과의 비교 불가를 낳은 뾰족한 첨탑을 내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교회 외벽은 온통 육중한 벽돌들로, 건물 주위를 요새처럼 에워싸고 있다. 얼핏 보면 영적 요새로 읽히는 효과를 강조한 것 같기도 하다. 건축 방법론 차원에서 고딕 양식은 중세로부터 이어진 가톨릭교회의 연장이자 아류라는 위험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충현교회는 교회의 영적 위상을 교회 외관으로 표현하는 데 고딕 양식 그 자체의 장엄함이 한몫 톡톡히 한다는 영적 판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딕 양식은 교회 외형을 구축할 때 중세 첨탑 양식 교회를 방불케 한다. 아니, 그 이상의 높이와 지리적 점유를 일궈낸 고딕 양식풍의 도입은 사실상 서구 합리주의의 수용도 아니고, 당시 유행이던 한국적 건축과 서양식 건축의 접목이라는 콘셉트와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둔다. 결국 고딕 양식에 있는 그 자체의 장엄함이나 화려함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충현교회가 추구하는 미학적 본질의 뿌리가 세속 도시와의 연대나 조화보다는 세속 도시와 철저히 구별되는 영적 요새를 구축하자는 취지의 구분 짓(p. 104)기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런데 구분 짓기의 의지는 교회 내부를 주목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외양에서 드러난 고딕 양식의 화려함이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비타협성과 단순함이라는 요소로 전환되는 것이다. 충현교회는 외부의 화려함을 내부 시설에 그대로 계승하지 않았다. 각종 성상과 종교적 이미지,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현 양식을 중시하던 중세 가톨릭교회와 다르게 충현교회 내부는 단순함이 대표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단출한 양식, 비타협성으로 점철된 정갈함을 유지하고 있다. 휘장처럼 늘어뜨려져 있는 붉은 천을 연상케 하는 강대상 뒤편의 풍경, 전통적 장의자로 마감된 내부의 클래식한 취향이 보여주는(p. 105) 메시지는 충현교회 공간을 접할 때 두 가지 인식을 심어준다. 이른바 내재적 관점에서의 신고딕 양식이 실천되는 것인데, 실제 교인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집전의 분출 공간은 극도의 절제와 단순함으로 일관하면서도 교회의 대사회적 랜드마크 기능에 있어서는 범접할 수 없는 요새의 풍취를 견지하려는 안팎의 신성함에 집중한 것이다. 충현교회는 이렇듯 현대 개신교회에서 추구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 두 입장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다. 그렇게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하나님 영광을 대리할 수 있는 영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지금의 충현교회는 현재진행(p. 106)형으로 하나님 영광을 적실히 구현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영광은 영광이나, 이 영광은 두 얼굴의 영광인 것 같다.

 

영광의 두 얼굴

충현교회는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 잡지 『SPACE』가 건축가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20위에 오르는 씁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장 건축가들과 건축학 교수들이 분석해 내놓은 일관된 결론은 충현교회가 점유한 공간의 미학이 가톨릭 고딕 양식의 단순한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톨릭의 특징은 말씀의 중심 가치 지속보다는 자연 계시와 전통에 기인한 성물 숭배, 엄격한 예전, 미학적 건축구조에 따른 공간의 향유에 경도돼 있다. 그러한 기울어짐이 인간의 종교적 관심사 중 하나인 의식을 통한 성스러움의 실감으로 발전된다는 것을 가톨릭은 교리의 한 부분으로 구축해온 것이다. 종교 건축 관점에서 본 고딕 양식의 장엄미와 화려함은 주변 환경과의 비조화나 비타협의 산물이 아니다. 가톨릭 문화로 에워싸인 전체 정서의 집약으로 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충현교회가 개신교 정체성의 하나로 내세운 세속과의 비타협성 일환으로 선택한 고딕 양식은 주변 환경과 어떤 조화나 동의도 구하지 않았으며, 비(p. 107)타협성에 대한 영적 지지조차 미약하게 가라앉은, 이른바 이도 저도 아닌 지리적 고립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다. 턱없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교회의 자리가 엄청난 부동산 자본에 포섭된 욕망의 자리로 변모했다면, 충현교회가 추구하는 영광은 본래의 영적 열정과는 관계없는 욕망의 배설이라는 상징으로 옹립 될 수밖에 없는 위험성에 상시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충현교회는 그 건축물의 부동산적 가치가 급등하는 욕망의 하이어라키 Hierarchy, 그 첨단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기독교 윤리로도, 세속적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태한 사건과 부패, 여러 스캔들로 얼룩지고 말았다. 한때 유력한 정치인들과 세상의 빛과 소금이길 원했던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든 개신교회의 대표 주자를 표방하던 교회의 상징은 이제 우스꽝스러운 형해만 남은 고딕 양식의 외로운 세력 과시로 표류하는 듯 보이는 건 필자만의 우려일까.

 

욕망과 성스러움, 그 경계에서

개신교회의 공간 점유, 그 본래 목적은 그리스도의 선포와 나눔에 있다. 선포와 나눔의 결이 개인 영성 강화이든,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연대로 발전되든 개신교 교회 건축의 과제로 분명한 한(p. 108)가지 주제를 잃어버려선 안 될 것이다. 욕망과 성스러움, 그 경계에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질문을 던지는 주제 의식이 그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가 강남에서 시작해 강남으로 마무리되는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대세가 되어버린 것 같다. 승리, 경쟁, 착취, 약탈이라는 욕망의 정치학이 폭탄 돌리기를 벌이는 곳을 상징적 의미로 대표하는 강남으로 본다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과연 이 ‘강남'이란 상징에 얼마나 비루하고 집요할 정도로 지분 요구를 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그 지분을 포기하고 이제까지 강남과 연루된 상징 카르텔로부터 디폴트default를 선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영적 디폴트 선언이 그리스도의 선포에 최우선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충현교회를 통해 우리는 개신교 교회 건축의 명과 암을 또렷이 목도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 엄정한 현실 앞에서 회의적인 비판만이 아닌 새로운 틀거리에 대한 모색과 나눔이 절실해 보인다. 그 절실함이 개신교 현대건축을 다시금 재구성할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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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60】 교회 건물이 갖는 영적이고 사회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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