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북스톤 · 2021년)
요즘 꽂혀있는 작가 중 하나가 송길영이다. 그의 책을 계속해서 찾아 읽고 있다. 역시 난 사람의 생각과 통찰력, 글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을 생각했다. 자기 발전에 관심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이벤트의 맥주가 일상의 맥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전작 《상상 하지 말라》에서도 소개한 내용입니다. 당시 '주중 퇴근 후에 배우자와 함께 마시는 가벼운 병맥주'를 마케팅에 적합한 씬으로 제시했는데, 실제로 그 후 딱 이 컨셉으로 팔렸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미래를 먼저 볼 수 있었을까요?(p. 80) 제가 드리는 대답은 '좋은 질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직업상 다양한 영역에 계신 분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제게 하는 질문이 반복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동안 줄창 MZ세대에 대해 묻더니, 그다음에는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금은 업무를 둘러싼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상사들은 '젊은 직원들은 왜 일을 안 하는지' 고민이고, 그 젊은 직원들은 '상사가 무능해서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아, 공통질문이 있구나.' 저는 운 좋게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질문을 받았고, 심지어 똑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물어보는 사람의 머리가 좋다는 말이 아니라, 고민이 깊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과 세상에 대해 오래 고민한 끝에 나오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는 아무렇게나 대답할 수 없죠. 저 또한 깊이 숙고하고, 사방의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전문가들이 해온 기존의 공부에 비춰보면 제가 던지는 질문은 으레 '원래 있던 고민'이더라는 것입니다. 성장에 대한 고민을 물으면 뒤르켐의 사회유기체론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설명을 듣다 보면 '이런 고민은 이미 천재들이 다 했네?' 하는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했던 수많은 고민이 있고, 그중 일부가 그때그때 우리 사회의 표면에 떠(p. 81)오르는 것이죠. 이런 질의응답을 반복하면서 데이터 아래 숨겨진 함의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제 비결(?)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종 heterogeneous 간의 지혜를 모으는 사고를 한 것입니다. 질문은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줬고, 그에 대한 해법은 다양한 주제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들으면서요. 저는 질문을 전달했을 뿐입니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깊은 사고를 하는 독립적 인간들이 모여서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러니 교류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하고요.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을 받았을 때 '내 생각은 말야' '나 때는 말야' 하면서 뻔한 말을 늘어놓거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같은 말로 모호하게 둘러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이런 의문이 들 것 같습니다. 저야 사람을 만나고 질문받는 게 일이니 질문이 모이는데, 그렇지 않은 개인은 어떻게 좋은 질문을 모을 수 있을까요? 물론 저는 좋은 질문을 상대적으로 먼저 받는 편입니다. 이런 질문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 곧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돼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게 질문을 접한다 한들 큰 문제일까요?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p. 82). 다만 초반에는 이 질문이 변화의 신호인지 단순한 소음인지 알기 어려울 수는 있습니다. 그때의 방법은, 많이 읽는 겁니다. 책이든 뭐든 꾸준히 많이요. 읽다 보면 패턴이 반복되는 게 보입니다. 신호가 증폭되는 게 있고 감소하는 게 있는데, 그걸 보면 됩니다.
구글트렌드 등 검색엔진의 키워드 분석 툴이 이런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대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장 미국 주식을 살지 말지 누가 찍어주면 좋겠다는 사람에게 몇 년 동안 책 읽으라 하면 좋아할까요? 그러니 급한 대로 '1000권 읽고 깨달은 것들' 같은 다이제스트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취란 다이제스트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1000권을 읽는 와중에 그 노력을 통해 각성하는 거지, 1000권에 담긴 정보가 저절로 각성을 주지는 않습니다. 성취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훈장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얘기는,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소진됩니다. 한 신문사의 기사에 따르면 2002년에는 텔레마케터가 유망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없어질 직업 1위로 지목됐습니다. 2002년의 누군가는 15년도 안 되어 사양산업이 될 일에 자(p. 83)신의 인생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을 먼저 하면 돼요.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테니까요.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먼저 하세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가 되어야 합니다. 그 생각의 자료 중 하나로 앞에 말씀드린 3가지 상수도 활용해보시기를 권합니다(p. 84).
행복은 주관적이어서 측정이 어렵다면, 불행을 측정함으로써 거꾸로 행복을 유추해보는 건 가능할까요?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행하면 행복할 수 없는 건 자명하므로 어떤 것이 불행한지 바라보자는 거죠. 임상심리 전공 교수님이 말하시기를, 사람을 한순간에 기분 나쁘게 하는 질문이 '행복하세요?'라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건 분명한 듯합니다. 유대감 최하, 자살률 1위, 스트레스도 많고, 일단 근로시간이 여전히 엄청나죠. 이것저것 행복할 게 많지 않은 사회입니다. 행복을 그렇게 찾아 나서는 이유가 알고 보면 불행하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법합니다. 불행의 단적인 지표 중 하나가 자살률인데, 한국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놀랍게도 노인 자살률이 견인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수준의 노인 빈곤율이 노인 자살의 원인이고요. 즉 한국 노인은 자산이 적어서 불행할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죠. 이 밖에도 불행에 대한 연구는 상당수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는 연소득 7만 달러 이상이 되면 행복감의 차이가 적다고 합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7만 달러가 있으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지도 모(p. 191)릅니다. 지금 한국에서 그 길은 대기업이나 공사, 공공기관 같은 것을 향해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좋은 직업이었는데, 최근에는 공사가 선호된다고 해요. 보수는 공무원보다 높고 안정성은 사기업보다 좋으니까요. 마치 자장과 짬뽕 사이에서 탄생한 짬짜면 같죠. A가 좋아서가 아니라 B가 싫어서 하는 선택들이 모여서 그런 형태의 변종을 만든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공사든 대기업이든 들어가기는 힘듭니다. 희소하니까요. 그만큼 경쟁률은 높아지고, 높아지다 보니 사람들의 열망이 커져서 일종의 숭배까지 갑니다. 구직 준비 기간은 실로 대기업 덕질 기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기업 미담 기사에는 으레 잔뜩 칭찬한 다음 '채용해주세요'로 끝나는 댓글이 달립니다. 들어가기 어려운 만큼 대기업에 합격한 자의 자부심은 사회적 인정으로 치환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채용만 되면 행복할 줄 알았더니 다시 그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특히 입사 1년 차, 3년 차에 현타가 세게 오죠. 일도 야근도 말도 못하게 많고, 가족 같은 분위기도 끔찍합니다. 다행히 많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30, 40대부터 은퇴를 걱정하는 기묘한 현상이 나(p. 192)타나고 있습니다. 은퇴 시점이 됐을 때 할 고민을 엉뚱하게도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 사람들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업의 경쟁력 또는 직업 안정성이 위태롭다는 방증이겠죠. 여러 차례 말했듯이 온갖 직군이 자동화되고 있고, 내 삶의 변화 속도보다 산업과 사회 구성인자들의 변화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순진한 희망이었을 뿐, 인생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영구히 해결해줄 방안은 없다는 걸 절감합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는 행복을 찾는 노력은 그것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더욱더 현재 삶에 충실하기로 삶의 방향타를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p. 194).
자아의 각성 : 삶의 주도권을 가지려면
자동화의 격랑 속에서 생산의 주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영화 〈아이, 로봇〉의 똑같이 생긴 기계들이 아니라 만화 〈스머프〉처럼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각자 다른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 말입니다. 전체의 일부인 사회구성원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죠. 아이덴티티는 항구적인 인간의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제약되고 혼자 있어서일까요, 최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정체성 내지는 자존, 자신감을 '관계'에서 풀었습니다. 어느 회사의 김 대리라는 식이죠. 그런데 이제는 관계로 풀 수 없으니 반대로 나 자신에게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외부적인 형태의 누구 아들딸, 김 대리 같은 게 아니라 '너 누구니?'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의미를 두는 거죠.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습니다. 자존감에 관한 책을 읽어봐도 명 상을 해봐도 쉽지 않아요. 타인의 기대와 기준을 목표로 교육받고 살아오다가 갑자기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니까요. 여러 분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습니까?(p. 219).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내 것'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역할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파트였어요. 내 역할이 없지는 않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대체될 수 있었죠. 분업 구조여서 내 역할이 제한적이거든요. 특히 숙련의 과정을 거치면 기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그간 다국적 기업집단으로의 성장을 돕던 경영학은 확장성scalability과 안정성을 중시했고, 그래서 업무를 표준화하고 구성원들에게도 그런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해왔습니다. 이제 그런 형태의 업무는 끝나고 있어요. 더 창의적인 일을 하고, 각자의 창의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인간의 일이 바뀌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슈는 대체 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 다. 그것이 '내 것'이 되겠죠. 과연 무엇을 '내 것'이라 할 수 있을 지 데이터를 보니 두 가지 길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플랫폼 소유주가 되는 것입니다. 거대한 글로벌 비즈니스는 미래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겠죠. 문제는 난망하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예체능 스타나 정치인도 생존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삐끗하면 한 번에 훅 갈 수 있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p. 220).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나만의 작은 비즈니스를 하되, 장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 길을 택했다면 찻집을 할 때 찻잎을 직접 골라야 해요. 누가 내 고객이 될까요? 내 안목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올 겁니다. 실제로 이런 가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내추럴 와인바에 갔는데, 홀에서 매니저 일을 하시는 분이 음식의 재료부터 요리법, 와인과의 마리아주까지 줄줄이 설명 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가도 그 정도의 해박함은 기대하기 어려운데 말이죠. 이처럼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만들거나 장인이 되는 것. 즉 프로바이더가 되거나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1등이 되어야 하고요. 가운데는 없어요. 결국 이 이야기의 무섭고도 슬픈 결말은, 우리가 완전체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p. 221).
그러니 개인의 앞날을 고민하며 이 책을 읽으신다면, 먼저 하세요. 남들이 잘하는 걸 따라 하는 걸 좋은 말로 벤치마킹이라 하죠. 그러나 이제 그 행위는 시류에 편승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벤치마킹은 리스크를 피해가는 요소로 쓰셔야 해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구글에 검색해본 다음, 같은 게 나오면 안 하는(p. 252)것입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걸 해야지, 나오는 걸 하는 순간 카피캣이 됩니다.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하면 나만의 신용이 쌓일 테고, 그것이 브랜딩이 되겠죠. 저는 이것이 진정성의 시대에 개인의 덕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하는 건 하지 않는 것, 반골이죠. 저는 이것을 존재의 의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다르니까요. 그리고 소중하니까요.
알리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것
이와 관련해 제가 만든 키워드는 '발견되다'입니다. 내가 어떤 걸 전략적으로 의도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삶에서 건실하게 구현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대세가 되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요즘 빅데이터, 메타버스가 유행이야. 누가 하고 있었지?'라고 물을 때 진즉부터 하고 있던 이가 발견되는 거예요. 무언가 뜬 다음에 하면 편승한 사람이라 깊이가 깊지 않기 쉽습니다. 축적의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이거든요. 말하자면 팔로워죠. 그렇게 발견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해야 하고, 오래 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오래 살잖아요. 기존 방식의 조직과 시스템이 날(p. 253) 보호해줄 수 없기 때문에라도 더 긴 기간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일관성consistency이 중요합니다. 일관되려면 지향점이 한결같아야 하므로 그걸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해요. 먼저 원을 그리고, 그 원에 내 활동들을 정합시키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둘러보아도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한 기업이 살아남습니다. 나이키가 지금까지 집행한 광고를 모으면 메시지가 됩니다. 내 행동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완결돼야 하지만 전체를 보았을 때에도 맥락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게 앞으로의 미션이자 비전이 될 것입니다. 루이비통은 160년이 걸렸고 파타고니아는 40년이 걸렸습니다. 밀도가 높다면 5년에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개인도 되고요. 2016년에 했던 인터뷰 영상 중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었어요. 그때 저는 어떤 걸 하더라도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될 테니 미루지 말고 지금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10년간 고양이를 키우고 고양이 연구를 해보라, 10년 후 모든 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하면 당신은 아마 대가가 되어 있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양이가 떴습니다. 2016년에 유튜브 고양이 채널(p. 254)가운데 구독자 5만이 넘는 채널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은 10등도 구독자가 20만이 넘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관심과 시장을 형성할 만큼 애호의 힘은 강력합니다. 제가 미처 몰랐던 것은 10년이 아니라 5년 만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었 습니다. 몰입의 정도와 기세에 따라 내 일의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2015년에 처음 곤충을 다룬 유튜브를 시작해 5년 만에 구독자 100만이 넘은 분이 있습니다. 큰 기업과 콜라보도 하고요. 곤충도 하나의 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거죠. 곤충만 있을까요? 파충류도 됩니다. 파충류를 키우며 업장도 운영하는 어떤 분은 2015년에 유튜브를 시작해 6년 만에 70만 구독자를 모았습니다. 고양이, 그다음에 곤충, 파충류처럼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는데 우린 뭘 하고 있었을까요. 어릴 때는 개미 같은 곤충을 보고 만지는 게 놀이였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죠. 내가 언제 이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엔가 이렇게 루틴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곤층을 좋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뜰 것 같은 아이템을 하나 골라잡으라는 게 아니에요. 각자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p. 256)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고,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할 것 같아요. 어릴 적 좋아했던 것이 있는데 그걸 잊고 어느 순간엔가 사회적 압력과 남들의 기대에 치여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내 꿈을 찾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곤충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곤충학자가 될 필요도 없죠. 일단은 그냥 좋아하면 됩니다. 그게 업이 될 수도 있고, 산업으로 커질 수도 있고, 학문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그냥 개인의 애호가 될 수도 있겠죠. 그건 개인의 선택입니다(p. 2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