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8(수)
 
  •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에디트 에바 에거(위즈덤하우스 ·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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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 제목은 CHOICE다.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 남은 자가 말하는 이야기는 큰 감동을 주었다. 모처럼 깊은 울림을 가졌다. 일독을 권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출간된지 얼마 안 된 책인데 벌써 절판됐다. 다행히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을 수 있었다. 꼭 보시기를. 책을 읽은 전후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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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에거 박사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잊지 못할 이야기와 그녀의 내담자들이 변화된 이야기들을 섞어서 들려준다. 그녀의 생존 이야기가 지금껏 나온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극적이고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지 그녀의 이야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열렬히 이 책을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에거(p. 9)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매우 많은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므로 그녀의 책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 있어서 다른 홀로코스트 회고록만큼 중요하면서도 한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목표는 바로 우리 각자가 자기의 마음 감옥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마음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에거 박사의 임무는 우리가 자기 마음 감옥의 간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해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p. 10).

 

상담실 소파에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던 미 육군 대위는 내가 마침내 알게 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우리가 우리의 진실과 이야기를 억지로 숨길 때, 비밀들은 그것 자체로 트라우마가 되고 그것 자체로 감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수용하기 거부하는 것들은 고통을 줄여주기는커녕 감옥의 벽돌 담장과 쇠창살처럼 우리를 감옥에 가두 고 절대 탈출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자신에게 자신의 상실, 상처(p. 22), 실망을 애도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이것들을 계속 다시 체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자유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놓여 있다. 자유는 우리가 용기를 모아 감옥을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벽돌 하나씩 하나씩 말이다(p. 23).

 

기억은 신성한 토양이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기억 속에서 나의 분노와 죄책감, 슬픔은 오래된 뼈 더미를 탐색하는 굶주린 새들처럼 계속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기억 속에서 나는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는다. 왜 나는 살아남았을까? 나는 일곱 살이고 부모님은 만찬을 열고 있다. 부모님이 물 주전자를 다시 채워오라며 나를 밖으로 보낸다. 주방에 있는 내게 부모님이 농담하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애를 안 낳을 수도 있었지요."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가족이 이미 완벽한 가족이었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딸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이 있었다. 나는 불필요하고, 잘나지 않고, 나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이렇게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인생의 사실들을 잘못 해석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마음대로 추정하고 다시 확인해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 되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미 믿고 있는 내면의 특정한 신념을 강화한다(p. 41).

 

춤을 추면서 나는 평생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는다. 어떠한 기적 같은 은총이 내게 이러한 통찰을 허용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이 통찰은 공포의 순간이 끝난 이후에도 나의 목숨을 수도 없이 살릴 것이다. 나는 알 수 있다. 그날 아침에 엄마를 살해한 노련한 살 인마 멩겔레 박사가 나보다 더 가련하다는 사실을. 나는 마음속이 자유롭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오히려 그가 나보다 더 감옥에 갇혀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우아한 스플릿으로 댄스 루틴을 끝내면 서 기도를 한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나는 그가 나를 살해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를, 그를 위해서 기도한다(p. 84).

 

우리가 삶을 견뎌낼 수 있도록 고유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막사 안에서 미인대회를 연다. 우리는 회색의 볼폼 없는 드레스와 거무죽죽한 속옷을 입고서 모델처럼 자세를 취한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어깨에서 나온다'라는 헝가리 속담이 있다. 그 누구도 마그다 언니만큼 멋지게 자세를 취하지 못한다. 마그다 언니가 결국 미인대회에서 우승한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잠자리에 들 준비가 되지 않았다. "더 재밌는 대회가 있어" 마그다 언니가 제안한다. "누가 최고의 가슴을 가졌을까?" 우리는 어둠 속에서 옷을 벗고 가슴을 내밀고서 행진을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무용실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다. 나는 내 복근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기 위해 아빠에게 배를 때려보라고 부탁했었다. 심지어 나는 아빠를 양팔로 들어 올려 옆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나는 얼어붙을 것 같은 막사 안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걸으면서도 아직 그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한때 엄마의 동그랗고 풍만한 가슴을 부러워하고 나의 작은 가슴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유럽을 대상으로 가슴을 뽐내야 할 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모델처럼 자신감 넘치게 걷는다. 그리고 대회에서 우승한다! "유명한 내 동생" 마그다 언니가 잠에 빠져들기 전에 내게 속삭인다. 우리는 공포에서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수 있다. 슬픔과 두려움에 젖어 비통해하고 적개심을 품고 무감각해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아이 같은 부분, 적극적이고 호기심 많은 부분, 천진난만한 부분을 잃지 않고 유지할 것인지(p. 88).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한 소녀와 알고 지냈는데 그 아이는 몸이 매우 안 좋고 나날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그 아이가 죽은 채로 침상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매일 죽을 사람과 살 사람을 가르는 선발 라인에 설 때마다 그 아이가 죽음을 선고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아이는 하루를 살아 내기 위해 매일 아침 온 힘을 그러모았고 선발 라인에서 젤레 박사의 손가락 지휘봉 앞에 설 때마다 생기 있는 눈빛을 유지했다. 그러고선 밤이면 숨을 혈떡이며 침상에 쓰러졌다.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계속 버틸 수 있는지 물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해방될 거라고 들었어." 그 아이가 말했다. 그 아이는 머리맡에 꼼꼼하게 그린 달력을 두고서 해방의 날까지 남은 날짜를 세고, 그런 다음 남은 시간을 셌다. 살아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은 채로.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찾아왔지만, 우리의 해방자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 죽었다. 나는 그동안 그 아이 마음속 희망의 목소리가 그 아이를 살아남게 지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망을 잃게 되자 더는 살아갈 수가 없게 됐다.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나치 친위대, 카포, 동료 수감자들)은 매일 매 순간, 점호시간부터 하루가 끝날 때까지, 선발 라인에 설 때부터 식사를 배급받을 때까지 내게 절대 살아남은 채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가지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대신할 내면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상황은 일시적이야!’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만약 오늘 살(p. 90)아남는다면 내일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p. 91).

 

"입술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묻는다. "엄마는 내 입술을 싫어했어. 한번은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내 눈을 칭찬하자 엄마가 덧붙였어.'네, 아름다운 눈을 가졌지요. 하지만 저 두꺼운 입술 좀 보세요.'" 생존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살아남기 위해 투쟁할 때는 '하지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제 '하지만'이 우르르 몰려온다. 우리에겐 먹을 빵이 있다. '그래, 하지만 무일푼이지.' 살이 붙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 하지만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너는 살아남았어. '그래,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었지.'(p. 151).

 

"나는 의사가 될 거야." 그가 말한다. 고귀한 청년이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산송장에 불과했다. 그는 살아남았고 그는 치유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것이다. 그의 포부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 한편으로 너무나 놀랍다. 그는 꿈을 간직한 채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왔다. 불필요한 위험을 떠안은 것처럼 보인다. 굶주림과 잔혹 행위를 체험한 지금조차도 나는 편견에 의해 꿈이 파멸되는 일이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얼마나 커다란 고통을 주는지 잘 기억한다. 코치 선생님이 올림픽 훈련팀에서 나를 제외했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외할아버지가 재봉틀을 만드는 회사인 싱어 컴퍼니에서 퇴직한 후, 자신의 연금수표가 나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기억하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다른 일에 대해서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첫 연금수표를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우리는 벽돌공장으로 추방되었다. 몇 주일 후,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 다. 나는 부질없는 일을 꿈꾸고 싶지 않다(p. 153).

 

클라라 언니가 이제 나의 엄마다. 언니는 사랑과 천부적 권한에서 그렇게 한다. 또한, 언니는 죄책감에서 그렇게 한다. 클라라 언니는 아우슈비츠에 있지 않았고 그러므로 우리를 보호해줄 수 없었다. 클라라 언니는 이제 우리를 보호해준다. 클라라 언니는 모든 요리를 혼자 다 한다. 언니는 마치 내가 아기인 것처럼 숟가락을 들고 내게 음식을 떠먹여 준다. 나는 클라라 언니를 사랑한다. 나는 품에 안기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게 좋다. 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히기도 한다. 언니의 친절은 내게 숨 쉴 구멍을 남기지 않는다. 언니는 보답으로 내게 뭔가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사도 감탄도 아니다. 더 깊은 무언가다. 나는 클라라 언니가 자신의 목적의식 때문에 내게 의지한다고 느낀다.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보살피면서 클라라 언니는 왜 자신이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다. 나의 역할은 살아 있을 만큼 어느 정도 건강하면서도 언니를 필요로 할 만큼 어느 정도 무력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남은 이유다(p. 169).

 

어느 날 오후, 거비가 내 등을 진찰한다. 그는 내가 배를 대고 엎드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내게 말해준다. 에릭은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대. 거비가 말한다. "에릭은 1월에 죽었대. 수용소가 해방되기 하루 전에." 나는 통곡한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슬픔이 매우 심하게 불타올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오직 목에서 신음만 들쭉날쭉 나올 뿐 이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나날들에 대해, 그가 겪은 고통에 대해, 그의 몸이 스러질 때 그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에 대해 명확히 생각하거나 물을 수가 없다. 나는 그를 잃은 슬픔과 부당함에 온 몸과 온 마음이 잠식되어 있다. 만약 에릭이 몇 시간만 더 버텼더라면, 혹은 몇 숨이라도 더 쉬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함께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목소리가 쉴 때까지 테이블에 엎드려 꺽꺽거리며 신음 한다. 충격이 가시면서 나는 사실을 알게 된 고통이 신이 내린 자비일 수 있다고 문득 이해하게 된다. 나는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p. 171)히 알지 못한다. 에릭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오랜 통증에 시달린 후에 병명을 진단받는 느낌이다. 나는 고통의 이유를 정확히 짚을 수 있다. 무엇을 치유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진단이 치료는 아니다. 나는 이제 에릭의 목소리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뚜렷이 기억나는 말들, 함께 품은 희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p. 172).

 

나는 어떻게 프랭클이 얼음같이 찬 어둠을 뚫고 작업장으로 행군 하는지를 읽는다. 추위는 혹독하고 보초병들은 잔인하고 수감자들은 비틀거린다. 육체적 고통과 비인간적인 부당함 가운데서, 프랭클은 아내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본다. 한겨울임에도 그의 가슴은 활짝 사랑의 꽃이 핀다. 그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이 열린다. 나는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책에서 내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 안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 어둠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빛을 밝히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1966년 가을,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나는 프랭클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인 이 부분을 읽는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매 순간은 선택이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불만스럽고 제한적이든 고통스럽든 억압적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마침내 나는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p. 280).

 

대부분 사람은 독재자(자비롭다고 하더라도)를 원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우산 아래에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몸이 젖고 있다고 불평하며 일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외부에 초점을 맞추고 내다보며, 현재 상황에 대해 책망할, 혹은 자신의 목적, 운명, 가치를 대신 결정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다(p. 363).

 

"그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줘야 할까요? 내가 무엇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게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내가 물었다. "희망입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리고 용서입니다. 만약 군목들이 이것에 관해 말할 수 없다면, 만약 우리가 이것에 관해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저인가요?" "희망과 용서에 관해 종교인이나 신학자에게 강연을 들을 수도 있겠지요." 데이비드가 설명했다. "하지만 당신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굶주린 채 죽음을 맞이하도록 방치되었을 때조차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러 한 종류의 신뢰성을 가진 사람은 당신밖에 알지 못합니다."(p. 368).

 

나는 어제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여기에 온 것이 건강한 종류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마땅한 벌을 내리고 보복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베르크호프의 절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복수는 나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히틀러의 옛집이 있던 자리에 서서 그를 용서했다. 이것은 히틀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이었다. 나는 평생 정신적, 영적 에너지를 있는 힘껏 쏟아 히틀러를 내게 묶어놓게 만든 나의 내면을 떠나보내고 놓아주었다. 내가 그 분노에 계속 매달리(p. 375)는 한 나는 고통스러운 과거에 갇힌 채, 나의 슬픔 안에 갇힌 채 히틀러와 영원히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용서하는 것은 슬퍼하는 것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그런 다음 다른 과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삶을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 현재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가 600만 명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삶, 내가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쟁취하고자 하는 삶을 파괴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군목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선다. 그들이 내게 따뜻한 박수갈채를 보낸다. 나는 무대에 조명을 받고 서 있으며 내가 앞으로 이토록 고무되고 이토록 자유롭다고 느끼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히틀러를 용서하는 일이 내가 할 일 중 가장 힘든 일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한다. 용서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내가 아직 대면하지 않은 누군가다. 바로 나 자신이다(p. 376).

 

마지막 수단으로, 나는 최면요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나는 그를 전쟁 시기로 퇴행시켰다. 전쟁 때 그는 폭격기 조종사였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모든 것을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베트남에서 저는 원하는 만큼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었어요. 또한 원하는 만큼 섹스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그가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지며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원하는 만큼 사람을 많이 죽일 수도 있었죠!" 전쟁 속에서 그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북베트남인'을 죽인 것이었다. 인간 이하의 존재를 죽인 것이었다. 나치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닌 듯이 말이다. 나치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고 있었다. 전쟁은 그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전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적과 싸우면서 얻었던, 자기 자신이 다른 민족과 다른 인종을 넘어서는 불사신 계층에 속해 있다고 느(p. 396)끼면서 얻었던 권능 감각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자신이 슬퍼하고 있는 내면, 강력하면서도 어두운 내면, 더는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을 밖으로 표출하도록 허용할 때까지, 조건 없는 사랑을 담은 상담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나는 온전해지기 위해서 그가 다시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발기불능과 자신의 힘, 자신이 상처를 입은 방식과 자신이 사람들을 해친 방식, 자신의 자부심과 자신의 수치심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망가짐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는 온전한 자아다. 치유가 흉터를 지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은 오히려 흉터를 만들 수도 있다. 치유는 상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p. 397).

 

감옥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인 지금, 나는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아돌프 히틀러와 코리 텐 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우리는 증오할 능력과 사랑할 능력 모두를 가지고 있다. 어느 쪽으로-자기 내면의 히틀러에게 아니면 자기 내면의 텐 붐에게- 손을 뻗을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다(p. 402).

 

내가 엄마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럴지도. 그렇다면 나는 남은 평생을 그 가능성에 매달려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내린 것에 대해 자신을 책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특권이다. 혹은 나는 더 중요한 선택은 내가 굶주리고 겁에 질렸을 때, 우리가 사냥개들과 총들과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었을 때, 내가 열 여섯 살이었을 때 내린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선택은 내가 현재에 내리는 선택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불완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또한 나 자신의 행복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선택이다. 나의 결함을 용서하고 나의 결백을 되찾는 선택이다. 왜 내가 살아남았는지 묻기를 멈추는 선택이다. 최대한 열심히 살고, 헌신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부모님을 기리고, 부모님이 헛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선택이다. 나의 제한된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미래 세대들은 내가 겪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선택이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있는 힘껏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살아남고 번영해서 모든 순간을 이용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선택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침내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는 선택이다. 과거를 만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다음 과거를 떠나보내는 선택이다. 나는 우리가 모두 내릴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결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구원할 수 있는 삶은 있다. 바로 나의 삶이다. 내가 바로 지금 사는 이 삶, 이 귀중한 순간이다(p. 410).

 

나는 돌멩이를 내 막사가 있었던 땅 위에 놓는다. 내가 다섯 명의 다른 소녀들과 나무 침대에서 함께 잤던 곳,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연주되는 가운데 내가 두 눈을 감고 목숨을 걸고 춤을 췄던 곳이다. '그리워요.' 나는 부모님에게 말한다. '사랑해요. 영원히 사랑할 게요.' 그리고 나의 부모님과 그토록 많은 사람을 집어삼킨 광활한 죽음의 캠퍼스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나는 희생되었지만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 나는 다쳤지만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것, 영혼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 삶의 의미와 목적은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마음속(p. 411)깊은 곳으로부터 생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내게 가르쳐줄 신성한 교훈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공포의 교실에, 나는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안녕.' 나는 말한다. '고마워.'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마침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p. 412).

 

나는 아우슈비츠를 떠난다. 나는 깡충깡충 뛴다. 나는 'Arbeit mache frei' 라고 적힌 표지판 아래를 지나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웃는 듯이 느껴졌던가. 하지만 막사들과 폐허가 된 화장장들과 감시초소들과 방문객들과 박물관 경비요원을 뒤에 남기고 떠나면서, 그리고 흑철로 쓰인 글자들 아래를 깡충깡충(p. 412) 뛰어 남편에게 가면서, 나는 그 말이 진실의 불꽃으로 번쩍거리는 것을 본다. 노동은 '정말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나는 살아남았고 그래서 나는 나의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치가 의미한 노동은 아니다. 희생과 굶주림의 중노동, 탈진과 노예 상태의 중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일은 내면의 일이었다. 살아남고 번영하는 법을 배우는 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일,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할 때, 나는 더는 포로도 수감자도 아니다. 나는 자유다(p. 413).

 

2010년 여름, 나는 콜로라도주에 있는 포트 카슨 기지에 초청받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한 육군 부대의 부대원들에게 강연하게 됐다. 그 육군 부대는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나의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에 갔다. 어떻게 내가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내가 일상생활로의 귀환을 견뎌냈는지, 어떻게 내가 자유로워지기로 선택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 줘서 군인들이 전쟁 후의 삶에 더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연단으로 올라가면서 나는 잠깐 마음속에서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구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어린 헝가리인 발레 학생 출신인 내가 전쟁을 겪은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내가 아는 가장 중요한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는 사실, 가장 큰 감옥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자신(p. 474)의 주머니 안에 이미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열쇠는 기꺼이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책임을 지는 것,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 기꺼이 판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자신의 결백을 되 찾는 것,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불완전한, 그러면서도 온전한 인간 존재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p. 475).

 

나는 자신에게 묻곤 했다. '왜 나지?' '왜 내가 살아남았지?'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 '왜 나면 안 되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다음 세대에게 둘러싸인 채 무대에 서 있노라니, 찾기 힘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은 어떤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바로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나 자신의 현재 고통에 맞서 싸우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자유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서 나온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현재 존재하는 기적들을 발견하는 데에서 나온다(p.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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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말하는 인생론-“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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