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1(목)
 
  •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 조형근 저자(글), 창비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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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저자가 가진 지식이다. 어려서부터 앎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알고 싶고, 아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알려고 열심히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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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인 어휘로서 지식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의 폴란드였다. 인텔리겐치아라는 말이 여기서 탄생했다. 19세기 중후반 러시아에서 등장한 인텔리겐치아는 특기할 만하다. 그중 결의 높은 이들이 농노제와 차르 전제를 비판하면서 '인민 속으로!'(브나로드!) 들어가고 있었다. 지식과 실천을 결합하는 비판적 지식인의 또 하나의 원형이라 하겠다. 귀족이나 부르주아 출신이면서 자기 계급에 맞서는 운명을 걷게 된 이들 인텔리겐치아의 삶에는 어떤 슬픔의 정조가 배어 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일리야 레핀의 1880년대 작품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에 그 느낌이 선연하다. 가족이 머무는 단란한 거실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초췌한, 하지만 형형한 눈빛의 지식인풍 남성이 막 들어서는 중이다. 갑자기 시베리아 유형이 풀리면서 등장한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 인물을 바라보는 어머니, 부인, 아이들, 하녀들의 반응이 저마다 극적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 이 시점에 그가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기쁨도 당혹도 아닌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저 찰나의 정지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모른다. 비판적 인텔리겐치아가 걷는 길이 그랬던 것처럼(p. 36).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에게 추방과 주변화라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것과는 달리,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프랑스에서 등장한 지식인에게는 가시밭길 뒤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 다.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이 시기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유태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가 독일에 기밀정보를 누설한 반역자로 낙인찍힌 사건이 일어났다. 군사재판은 그에게 최종 유죄를 선고했다. 반유태주의에 사로잡힌 군부는 따로 진범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드레퓌스에게 반역자의 누명을 씌웠다. '진실'을 구하기 위해 일군의 사람들이 나섰다. 에밀 졸라 Emile Zola를 비롯한 문필가, 언론인, 교수, 의사 등이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서명하고 행동에 나섰다. 지식인이라는 집단이 출현한 시기다. 프랑스 사회가 두쪽으로 갈라졌다. 에밀 졸라는 유죄 선고를 받고 망명에 올라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진실이 승리했다. 진범이 잡혔고 드레퓌스는 명예를 회복했다. 지식인들이 승리했지만 최종적인 승자는 공화국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대혁명 이래 100년을 넘게 이어온 왕당파, 보수파의 반격을 종식시켰다. 혁명이 완성됐다. 지식인의 손으로. 그들의 펜으로! 이렇게 등장한 지식인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 사르트르의 입을 빌려서 생각해보자. 사(p. 37)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라는 집단은 지적 능력에 관계되는 일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획득한 후에,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자신들의 명성을 남용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이다. 친절하게 좋은 사례까지 덧붙여준다. 핵무기 제조를 위해 핵분열을 연구하는 이들은 학자일 뿐이다. 이 학자들이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에 놀란 나머지, 핵폭탄의 사용을 억제하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회합을 갖고 선언문에 서명할 때 그들은 지식인이 된다. 첫째, 그들은 폭탄을 연구하고 제조한다는 자신들의 임무와 권한을 넘어서 폭탄의 용도에 대해 판단하는 일에 개입하고 있다. 둘째, 그들은 사람들이 인정해준 그들의 명성 또는 권한을 이용해서 여론에 압력을 가한다. 셋째, 그들은 폭탄의 안전에 대한 기술적 우려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최상의 기준으로 취하는 가치체계를 명분으로 폭탄의 사용을 반대한다. 지식을 토대로 하되, 직분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사회에 대해 비판적 발언과 행동을 수행하는 집단이라는 지식인 집단의 특징이 여기서 뚜렷해진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그 누구도 지식인에게 무언가를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지위고, 스스로 걸머지는 책무다. 지식(p. 38)인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 없는 존재다. 해방을 위한 지식인의 과업은 무엇인가? 민중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민중 속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현상과 맞서 싸우는 일이다. 뿌리까지 내려가서 비판적으로 되는 것, 즉 급진적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지식인의 임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사르트르가 강연을 하던 1960년대 중반은 이런 지식인상이 절정에 도달한 때였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지식인은 반전과 평화, 노동자와 인민의 권리와 해방을 외치며 지식인적 실천에 앞장섰다. 사르트르가 말하듯 지식인은 자신의 고유한 목표, 그러니까 지식의 보편성과 사유의 자유, 즉 진리를 위해 싸웠다. 그 목표가 노동계급과 인민의 해방이라는 목표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쓰고 서명하고 토론하고 행진했다. 지식인의 신화시대라 할 만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죽었다(p. 39).

 

20대 남성의 보수화라는 현상은 단지 청년세대 남성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사회적 균열이 동반되어 있다. 첫째, 청년 세대에서 젠더 대결의식이 격화되면서 일부 청년 남성이 두드러지게 반여성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이들은 할당제를 포함한 각종 여성 우대 정책에 의해 자신들이 역차별받고 있다고 믿는다. 둘째, 이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기성세대인 86세대가 성장의 과실을 모두 누린 다음, 청년세대에게 돌아갈 상승의 사다리를 치워버렸다고 믿는다. 여기에 셋째 항목이 추가된다. 기득권이 된 진보 86세대 남성들은 성불평등 시대에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마음껏 누린 다음, 이제는 성평등을 내세우며 현재 청년세대 남성을 희생양 삼아 그 죄의식을 덜어내려고 한다. 기득권도 유지하고, 좋은 남자도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기성세대 중에서도 특히 진보 586세대, 그러니까 나 같은 부류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는 이유다(p. 68).

 

다른 한편으로 이 현상은 역설적이다. 조사들은 능력주의 신념을 강화하고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흐름이 주로 경제적 상층에 속하는 청년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보수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하층의 20대는 상층보다 진보적 의제에 대해 친화적이다. 20대 남성 안에서도 경제적 계층의 차이에 따라 생각이 크게 다르다. 물론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통계적인 추정일 뿐 현실 자체는 아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20대 남성이라는 단일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20대 남성 보수화라는(p. 78) 현상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나 자신이 속한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싶다. 20대 남성이라는 범주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86세대라는 범주도 남용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후반에 386세대라는 말이 처음 출현했을 때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매우 좁았다. 이 시기에 30대가 된,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이들은 동세대 집단 중 어느 정도나 될까? 사회학자 신진욱이 『그런 세대는 없다』 (개마고원 2022)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한줌에 그친다. 1980년대 동안 학령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자는 겨우 12%다. 386세대라는 말은 그중에서도 소위 '메이저 대학' 출신의 운동권을 주로 가리켰다. 그야말로 한줌이다. 이들은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절정기부터 마지막 시기에 걸쳐 대학을 졸업하고, 비교적 쉽게 전문직과 화이트칼라로 노동시장에 진입했다. 벤처기업 전성기에 큰돈을 벌기도 했고, 문화산업 팽창기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상승의 혜택을 입은 이도 꽤 있다. 정치나 사회운동에 뛰어든 이들 중에(p. 79)는 세 차례의 민주당 계열 정부를 거치며 두루 요직을 차지한 이들도 적지 않다. 지방정부까지 따지면 훨씬 많다. 중산층에서도 상위로 분류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안에서는 한갖 말석에 있을 뿐이지만, 나 또한 그 혜택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기득권이 맞다. 하지만 극소수다. 50대라는 세대 전체로 보면 10명 중 7명은 판매•서비스직, 생산직, 단순노무직 종사자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던 이들도 일찍이 퇴직해서 치킨집을 몇번쯤 차렸다가 말아먹었을 시간이 지났다. 이 소수의 메이저 대학 운동권 출신이 기득권이 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나 자신도 부족하나마 일익을 맡아왔다. 나의 뼈 아픈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청년세대 남성들이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 86세대에게서 초래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한국자본주의의 저성장과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이들이 만들어낸 건 아니다. 그 추세는 이들이 기득권에 편입되기 훨씬 전부터, 훨씬 높고 강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잘못이라면 그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어느덧 그 체제의 일부가 되었다는 데 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생애에 걸쳐 단 한번도 기득권이 되어본 적 없이 열심히 살아 온 우리 세대의 절대다수는 기득권이라는 비판을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20대 남성이 겪는 고통의 원으로 지목되(p. 80)어 황당하기도 하고 분노도 치미는 기득권 86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20대 남성 보수화를 이끄는 것이 중상층 이상의 부유한 20대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20대 남자 개새×론' 같은 데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답이 아니다. 20대 남성이야 어떻든 우리가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20대 남성에게 '찌질하다'고 힐난하기 전에, 우리가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희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답해야 한다(p. 81).

 

기억도 생생한 일이지만, 유가족 김영오 씨(유민 아빠)가 단식투쟁을 하던 2014년 9월 6일에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자유 청년연합 회원들이 이른바 '폭식투쟁'을 벌였다. 참담한 일이었다. 이어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라는 단체가 등장, 유가족과 반정부 선동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부를 대신해 추모의 노란리본을 직접 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분명히 확인하고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이 모든 공격이 희생자 가족들이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보이지 않던 사고 직후부터 과감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야당은 오히려 세월호 사건 개입에 극도로 신중하게 대응했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반면 보수세력은 세월호를 빌미로 정치적 내전을 벌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p. 110).

 

레이건과 공화당의 승리는 1932년 뉴딜연합에 기초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승리 이래로 가장 광범위한 정치적 연합에 기초한 승리였다. 루스벨트의 승리를 뒷받침한 것은 자유주의연합이 아니라 뉴딜연합으로 불렸다. 반면 레이건을 당선 시킨 세력은 '보수주의연합'이라고 불렸다. 이 노골적인 보수주의 표방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연합은 극우파, 복음주의자, 자유 지상주의자, 민중주의자, 호전주의자, 군비 축소를 주장하는 구파 보수주의자 등 심하게 이질적인 신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컨대 정부가 도덕심판소가 되기를 요구하는 도덕적 다수파 복음주의 운동가들과, 개인 가족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을 혐오하는 자유지상주의자는 상극이었다. 신보수주의는 마치 잡종 키메라처럼 무대에 등장했다. 니스벳은 『보수주의』에서 이 기묘한 혼란을 이렇게 표현했다(p. 128). "동화에 나오는 요술거울이 오늘의 워싱턴에 실제로 등장한다 면, '그 모든 이들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운 보수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각양각색의 대답을 위해 차라리 일종의 국가적 복권제도를 만드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니스벳은 이제 보수주의가 더이상 버크적 전통으로 귀속되는 본래의 보수주의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키메라 보수주의는 버크 대신 하이에크를 구루로 섬기고, 절제와 균형에 대한 온건한 설교 대신 '자유'와 '도덕'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깃발을 치켜들었다. 자유시장과 그리스도교적 도덕•가치가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실체적 목표가 되었다.

신보수주의의 성립과 키메라적 잡종화의 과정에서 보수주의는 '자유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함으로써 자유시장의 '형이상학'으로 퇴화했다. 원래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유시장은 오랫동안 골 칫거리였다. 사적 소유권의 정당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보수주의 자들도 자유시장을 옹호했다. 동시에 이성중심주의에 맞서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인간이 오직 합리적•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 즉 경제적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자유시장론자들의 교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매매되어서는 안 될 가치들을 상품화함으로써 우리의 정서(p. 129)적 애착을 소멸시키는 리바이어던 같은 존재였다. 보수주의자에게 시장은 다루기 힘든 난제였다. 드디어 타협이 이루어졌다. 하이에크를 경유하며 자유시장을 조상과 이웃들의 지혜가 축적된 빛나는 '전통'으로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전통은 단지 임의적 관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행동을 타인의 행동에 맞추려고 하다가 생긴 여러 시행착오의 잔여물이 담긴 축적물이다. 자유시장도 무엇을 생산하고 교환할지에 대한 자유로운 정보교환의 과정이자 축적물로 간주된다. 전통이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조정 문제를 둘러싼 자생적 해법인 것처럼, 자유시장은 생산과 교환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화해 온 자생적 질서이자 조상과 우리 지혜의 축적물로 찬미된다. 이 지혜의 교환과 축적을 위해 시장의 자유는 옹호되어야만 한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제약의 필요성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장이 전통과 마찬가지로 축적된 자생적 질서라면 그런 제약은 관습, 법, 도덕 등의 형태로, 요컨대 전통의 형태로 이미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축적된 지혜를 위협할 별도의 입법, 명령은 불필요하다. 현대 서구의 보수주의는 더이상 자유시장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지 않는다. 자유시장론자의 합리적 개인주의를 여전히 수긍하지 않은 채,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을 지키고 보전해야 할 '전통'으(p. 130)로, 그에 더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미래'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서구 보수주의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와 함께 시장을 새로운 종교로, 보편적 가치로 섬기는 형이상학의 길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우파의 혁신 프로젝트와 뉴라이트 운동 한국에는 합리적 보수의 기본 전제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흔히 제기된다. 두가지 이유가 꼽히곤 한다. 첫째, 한국 정치사회를 지배한 우파는 오랫동안 폭력적 배제에 기초해 권력을 독점해왔다. 레이건과 대처 세력이 추진해야 했던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전략이 한국의 지배세력에게는 불필요했다. 둘째, 정당성 없는 지배세력의 장기집권 아래, 한국사회에는 보수 할만한 가치 있는 전통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보수할 것 없는 보수주의는 형용모순이다. 역으로 한국에서 합리적 보수의 출현 여부는 보수해야 할 참된 전통의 '발견 · 발명'과 '보급 · 확산'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보수를 둘러싼 담론이 본격화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제도적 민주화의 진전, 진보적 시민사회운동의 강화, 특히 대북 화해 정책의 진행 등과 맞물리면서 기존 지배세력은 심대한 위기감을(p. 131) 느끼게 되었고, 보수주의 이념에 대한 고민이 비로소 시작됐다. 바로 이 시점에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부상한 뉴라이트의 궤적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p. 132).

 

대면 예배를 강행한 일부 개신교에 대한 대중의 분노, 특히 진보 쪽의 비난 역시 비합리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종교시설발 집단감염의 대다수를 개신교가 차지한 것은 맞다. 분노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문제는 분노의 크기다. 개신교계 여론조사기관인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표한 '코로나19 정부 방역 조치에 대한 일반국민 평가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코로나19 확진자의 44% 정도가 개신교회발이라고 믿는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감염원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회발 확진자는 11%였다. 저지른 것 이상의 비난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된다면 자신들이 비난하는 이른바 '기레기'와 무엇이 다른가?(p. 166).

 

행복경제학을 향한 가장 본질적인 의문은 과연 행복이 우리 삶의 궁극 목적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왕이면 날씨가 좋길 바라지만, 좋은 날씨가 우리 삶의 목적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는 여러 종류의 날씨가 있고, 때로는 비와 천둥이, 때로는 태풍이 필요하다. 삶은 복잡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한 삶보다는 바람직한 삶이나 올바른 삶을 추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삶을 추구한다. 각각은 겹치면서도 다르고, 때로는 상충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불편함을 무릅쓰는 내부고발자가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개인적 행복을 희생하면서 공적 목표에 헌신하는 이들이 있는 까닭이다. 주류의 견해에 반대하고 상식을 불편하게 하는 소크라테 스형 비판가들이 나오는 사정이다. 사람들이 단지 행복한 삶만(p. 230)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사실은 행복이든 무엇이든 삶에 목적이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의문스럽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하고, 삶은 이유 없는 출발일 뿐이다. 삶을 행복을 위한 '과업'으로 설정하는 것은 근대 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다. 국가나 공동체가 개인의 삶에 모델을 제시하고 강요하던 시대에 비해 이것이 진보임은 맞다. 문제는, 행복을 성취해야 할 개인적 삶의 과업으로 제시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와의 관련성에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행복경제학이 자유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계적 선'이라는 문제 의식 속에서 행복경제학은 '바람직한 상태'를 향한 지향과 만나려 한다. 거기서 좀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호혜적으로 협력하는 세상에 대한 지향과, 시장이 초래하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결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은 둘이 아니다. 같이 가야 한다(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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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부러운 것 중 하나, 세상을 보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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