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1(목)
 
  • 착취 도시, 서울 - 이혜미 저자(글), 글항아리 ·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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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나는 서울 출생으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서울특별시”라고 주소를 적을 때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돈이 없어서 쪽방으로 몰리거나, 혹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이 쪽방같은 원룸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다. 날 때부터 집을 갖고 태어나는 달팽이보다 못한 것이 요즘 대부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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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쪽방은 개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겨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은 보일러도 없어 난방이 되지 않았다. 공동수도에서는 냉수만 쏟 아졌다. 타지에 사는 건물주는 안전 관리는커녕 기본적인 수선 의무도 다하지 않아, 행정 당국에서 세금을 들여 땜질식 수리를 해주고 인근 교회나 쪽방상담소에서 뻗는 온정의 손길로 어설프게 사람이 사는 거처의 형상을 갖춰가는 곳. 이런 곳에서 세입자는 노숙을 겨우 면한 대가로 매달 22만 8188원(서울시 평균)을 세로 낸다. 폐가에 가까운 건물의 수리는 당국의 세금으로 하고, 세입자에게 받는 면적 대비 월세는 강남 타워팰리스 월세의 수배에 이르는 쪽방, 그 이면에서는 세를 모은 건물주들이 빌딩을 세우고도 남을 부를 증식하는 이 황당한 상황이 창신동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p. 48).

 

쪽방촌 주민 가운데 4명 중 1명(27퍼센트)은 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다. 가난하고 병들어 소비를 하고 노동할 쓸모가 없으면 구조에 부담이 되는 비용으로 바라보는 사회 에서 이들이 건강한 심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안전망이 되어주는 '관계'라도 있으면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 건져내줄 수 있으련만, 쪽방촌 주민 가운데 75.5퍼센트가 '가족 중 연락할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 1년 동안 쪽방촌에 사는 자신을 방문한 가족이나 친지가 전혀 없는 비율도 61.1퍼센트에 달했다(p. 66).

 

2010년 여름, 캘린더상 계절은 가을이었으나 날씨는 폭염에 가깝게 더워서 냉면 한 그릇이 간절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월세를 내고 나니 통장에 잔고가 300원뿐이었다. 근 10년 전엔, 후불 교통카드가 없어 매번 일정 금액을 충전해야 했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과외 수업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 덩그러니 앉아 묘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원룸이 있던 서대문구 연희동 북쪽 끄트 머리까지는 마음먹고 걸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녹아내릴 듯 더웠고, 걷기에는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30분을 가만히 앉아 있었을까. 그때 일을 하고 있었을 고향의 엄마에게 SOS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만 원만 보내줘. 잠깐 돈이 부족하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으로 문자를 보냈을지 짐작할 리 없는 엄마는 1만 원을 '딱' 맞춰 입금해줬다. 통장에 돈이 입금되자마자 근처 김밥천국에서 냉면을 한 그릇 해치웠다.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나 자신이 불쌍해 길 한복판에서 눈물이 터질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통장 잔고가 4000원가량 남았다. 나의 가난과 직면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p. 127).

 

청년 주거는 한국 사회가 앓는 문제를 다면적으로 품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나 다름없다. 기성세대 건물주가 청년 세대 세입자에게서 폭리를 취하고 그들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또,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고향에 있는 부모의 돈으로 주거 비용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서울로의 쏠림'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또는 '서울에 사는 것이 스펙'이라는 관용어처럼, 청년 안에서도 서울 출신 중산층 청년과 지방에서 올라온 도전자 청년이 분화(p. 144)할 것이다. 여러 측면이 있지만 결국 본질은 가지지 못한 자는 애면글면하며 계단 하나를 올라서지 못하고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비정한 도시의 면모다. "과거에는 이렇게까지 잔인한 방식으로 착취하진 않았어요.

사회가 이렇다보니 결국 청년들이 못 살겠다며 저출생 등으로 반응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울 지역 청년 주거빈곤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겁니다." (최은영 한국도 시연구소 소장) "'민달팽이 유니온'은 대학생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태 조사를 벌여요. 그런데 최근 들어 주관식 답변에 '청년 피 빨아 먹는 임대업자' 같은 표현이 출현하는 빈도가 잦아졌어요. 저는 청년 세대의 분노가 어느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청년들의 주거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p.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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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집 하나 마련하기도 어려운 인생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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