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0(화)
 
  • 드라마 만드는 사람 - 송진선 저자(글), 알에이치코리아 ·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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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최근에 본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 정도이다. 드라마를 안 본지 오래됐다.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봐야한다는 것도 싫고, 별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쨌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기획 피디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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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작품 하나는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미가 부여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과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 한순간에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작품도 많다. 노력을 덜 해서라기보다는 부족해서다. 닿지 못해서이고, 노련하지 못해서다. 경력자와의 작업이라고 해서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완전한 제작 환경에 있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 들끼리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모두가 잘 될 거라고 확신한 것들이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기도 하고, 유치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내팽개쳤던 것들이 때론 생명(p. 6)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정답을 찾는 데 능숙해지기는커녕 그저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란 것을 배우게 된다(p. 7).

 

대본 개발

6부작이나 8부작 미니시리즈의 경우, 전체 대본을 완성한 뒤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보다 긴 장편 시리즈일 경우, 절반 정도의 대본을 기반으로 제작을 시작하되, 현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드라마는 대본 그대로 찍어내는 고정된 조각이 아니라, 배우의 컨디션, 날씨, 계절, 장소, 예산, 시간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 위에 떠 있는 유기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지막 화 대본까지 완성했더라도 촬영 현장에서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부분적으로 수정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촬영된 장면들은 편집된 결과물 안에서 감정선이 끊기고 어긋나 보이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드라마(p. 37)는 줄거리보다 감정의 연결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한 장면의 대사와 리액션을 고치면, 앞선 장면의 감정 설정도 따라 바뀌어야 하고, 뒤따르는 행동과 선택도 새롭게 정렬해야 한다. 이 연쇄적인 조정은 결국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는 창작자만이 해낼 수 있다. 그러니 대본이 아무리 잘 쓰였다고 해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쉽게 균열을 일으킨다.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감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기획 단계에서 프로듀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점이다. 작가가 캐릭터의 변화를 끝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작품의 중심을 함께 잡고, 연출과도 긴밀하게 호흡하며, 드라마의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 이 작업 없이 뛰어난 몇몇 장면만으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탄생하기는 어렵다.

박경수 작가는 〈추적자〉 대본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행 서사에서 극적 상황이 주어지면, 이야기의 속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액션과 리액션이 반복되며, 이야기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p. 38)전개되고.."

드라마는 결국 창작자가 캐릭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동력에 의해 창작자가 이끌려가는 어떤 경험이라고 느껴졌다. 인물의 선택과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드라마란, '결말'이 아닌 '경로'로 기억되는 이야기다. 시청자는 마지막 장면보다도,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어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곡선을 따라왔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렇기에 대본 개발은, 기획이 세운 뼈대에 감정의 혈류를 돌게 하고, 인물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 인물이 현실처럼 숨 쉬고, 움직이고,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순간까지, 작가와 연출, 그리고 프로듀서가 함께 호흡해야 한다(p. 39).

 

결국, 관찰과 기록은 '양'을 만드는 습관이다. 많은 것을 보고, 남기고, 돌아봐야 비로소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나는 '양이 질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데, 단순히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 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 대중이 반응하는 정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들에 대한 누적된 감각이 쌓여야 비로소 판단 기준이 생긴다는 말이다. 예전엔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편협한 확신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도 전혀 다르게 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원작이 엉성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그 작품 안에서 감정의 동선을 읽어내고, 구조를 잡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획은 어느새 가능성 있는 설계가 된다(p. 58).

 

나는 "영감이 올 때만 쓴다"는 말로 책임을 미루는 작가와는 함께하기 어렵다. 책상 앞에 고집스레 앉아 인물의 감정을 묻고 듣고 다시 답하려 애쓰는, 그런 집요한 시간이 쌓일 때만 모호한 이야기 속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작가, 그리고 함께 점검하는 프로듀서. 그 두 사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이야기가 완성된다(p.111).

 

원작을 기반으로 작업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작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균형 감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 상대방의 시선에서 한 번 더 상상해 보고, 동의할 수 없는 지점에서도 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 그렇게 생각을 보태고 변주하다 보면, 결국은 하(p. 128)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며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협업의 묘미이고, 원작 기반 제작이 단순한 번안 작업이 아닌 '새로운 창작'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p. 129).

 

나는 어떤 프로젝트든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고, 무엇보다 '마음'을 들인다. 그리고 나는 내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몰입하지 않으면 해낼 자신이 없어 더 집중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배움과 깨달음이야말로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합리적인 워라밸을 추구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한 만큼 요구하고 돌려받는 프로듀서들을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는 걸까? 턱없이 부족한 보상에도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과정이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좋은 결과'가 따라주지 않으 면 그 모든 노력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노력한다. 내가 함께한 작가와 이야기, 함께한 시간과 관계가 모두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도록(p. 161).

 

결국 좋은 이야기는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어디서 바라봤느냐'에 달렸다. 이미 다뤄진 이야기라도, 그 인물의 다른 면에서, 다른 자리에서, 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시 살아나는 감정이 있다.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던 주변 인물에게, 진부한 관계 속 숨겨진 결핍에서, 클리셰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감정에서 말이다. 그런 새로운 시선을 찾기 위해 나는 꾸준히 관찰하고, 읽고, 질문한다. 삶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고, 감정의 결을 들여다본다. 그런 감정들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나보다 훨씬 깊은 통찰을 가진 창작자(p. 172)들과 함께 고민한다. 가볍지 않게, 무겁지도 않게, 단단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로 오늘의 우리를 말하고 싶다(p. 173).

 

세계의 책장 앞에서

기획자라는 직업의 특권 중 하나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원고를 먼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추천 리스트를 먼저 받아보고, 이 책이 영상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사람들이 어떤 감정에 반응할지, 어떤 세계를 궁금해할지, 그 미세한 흐름을 먼저 포착해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들어야 할 이야기'로 꿰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해외에서의 출판-기획 협업은 더 긴밀하고 이르게 진행된다. 한번은 출판 에이전시 대표님의 초대로 영국의 주요 출판(p. 180)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출판 시장 중 하나인 그 곳에서 한 권의 소설이나 논픽션이 어떻게 유럽과 북미의 제작사, 할리우드 에이전시의 책상 위를 오가며 주목받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매일 밤 수백 권의 출판 리스트를 검토하고,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미팅을 소화하며, 단 한 권의 가능성을 발굴하려 애쓰는 에이전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분야만 다를 뿐,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내가 매일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나라의 지성 트렌드를 짚어내는, 열정적인 여성 에이전트들과 함께한 경험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원작을 고르는 일은 지금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붙잡아 기획자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내가 찾고 있던 감정의 결이 어떤 원작 속 리듬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눈앞에서 전구가 켜지는 듯한 경험이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 아직 값이 매겨지지 않은 감정, 아직 시작되지 않은 서사를 누구보다 먼저 만날 수(p. 181)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의 기획과 시선으로 새롭게 구현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획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자 보람이 아닐까? 세상은 넓고, 아직 기획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끝없이 흩어 져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은, 결국 기획자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에 비례 한다(p. 182).

 

오래 기억될 첫 실패

칸 영화제는 영화인의 축제다. 드라마를 만드는 나는 늘 그 풍경의 바깥에 있었다. 개인 배지를 받기 위해 이력서를 내고 심사를 거쳐야 하는 이곳에서, 내 목적은 '칸 마켓'에 참가한 전 세계 제작자들과의 미팅을 통해 하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칸에 도착하자마자 오전과 오후는 마켓 미팅으로, 저녁엔 미국 회사와의 줌 미팅으로 가득 찼다. 현지에서 만난 스위스 음악가, 프랑스 다큐 감독, 파리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 연출가 등 다양한 파트너 후보들과의 약속도 출장 전부터 계획 되어 있었다. 잠과 싸우고, 언어와 싸우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작품의 '가능성'으로 설득하는 싸움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실수 없이 응대해야 한다는 부담감. 칸(p. 187)에서의 5일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꽉 찬 일정이었다. 파리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시차에 적응됐지만, 그 여유도 잠시였다.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숙소에 짐을 풀고, 새벽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출발을 그려보았던 그날, 호텔 베드버그에게 물린 자국이 목과 팔, 다리에 퍼지기 시작했다. 상처는 붓고, 간지러움은 심해졌다. 전염성이 있을지 모르니 함께하기로 했던 프랑스 에이전시에 미팅 연기를 요청했고, 나는 옷을 세탁하고, 트렁크를 소독하고, 숙소를 살균하는 데 하루를 보냈다. 몸은 지쳐 있었고, 머릿속은 계약서 문제로 복잡했다. 원작 계약은 마무리됐지만, 공동제작을 위한 부속 합의서 작성은 에이전시의 일정 문제로 미뤄진 상태였다. 칸 영화제가 끝난 뒤에야 조건 조율이 다시 시작됐다. 에이전시는 원작이 웹툰 형식이라 매력적이지만 정리하기 어렵다며, 내가 미리 작성해 두었던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 파일들을 요청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공유한 시놉시스의 한 문장을 계기로, 에이전트는 세계관을 새로 정리 하고 주인공 설정까지 각색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고는(p. 188) 자신이 실질적인 '창작 기여'를 했으니 크레딧을 표기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제작사와 연결된 한 감독이 흥미를 보이자, 에이전시는 "내가 정리한 시놉시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앞으로 모든 해외 커뮤니케이션과 자료 정리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로 제시했다. 처음에는 '첫 시도이니 경험 삼아 겪어보자'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점점 에이전시의 요구는 단순한 협력 범위를 넘어섰다. 사실 우리는 이제 막 부속 합의서를 통해 '함께 해보자'는 첫걸음을 내디딘 단계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자료에서 영감을 얻어 일부 비틀어 만든 시놉시스를 근거로 크레딧을 주장하는 일은 제작자나 창작자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상대가 무엇을 만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 신뢰가 생긴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는 언뜻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선택과 집중은 타인에게도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경력은 단(p. 189)순한 이력이 아니라 신뢰의 근거다. 그 에이전트가 실력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잦은 조건 변경과 말 바꾸기를 보며,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에이전시와의 부속합의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속상했다. 함께 잘해보자는 순수한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나의 아쉬움을 전하자, 에이전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정리한 새로운 시놉시스로 다른 영화를 만들면 돼"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함께 할 '일'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사람은 좋을 수 있지만, 일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p. 190).

 

늘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요즘 의식적으로 시도해 보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빈둥거리기다.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기'는 연습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래도록 머릿속을 가득 채워온 창작의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의 틈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쫓기지 않고, 감정을 비워내는 연습. 생각의 끈을 끊어내고, 흘러가도록 두는 훈련. 그렇게 텅 빈 자리에야 비로소 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획이란 일이 결코 경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력은 때때로 기회가 되지만, 그 기회가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매번 새로 운 마음으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멈추어서 사람을 보고 말하고 듣는다. 그 틈으로 일부러 차단하고 무시해 왔던 생활의 작은 갈등들이 다시 스며든다. 섬세하지 못했던 관계와 일들에 다시금 천천히 눈이 간다. 그동안 '생각'이 나를 얼마나 가로막고 있었(p. 202)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가족이 느끼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어떤 감정이 밀려들 때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을 달래주는 음악을 든고,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영화를 본다. 설령 모든 노력이 어떤 결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내 편으로 두려고 한다. '빈둥거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오랜 창작자의 체력이니까. 빈둥거리며 생각과 마음을 비워낸 내가, 또 다른 문화적 흐름과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생각만은 부디 늘 새롭고 싱싱하기를. 그 기운을 안으로 들이고, 다시 창작의 근육을 움직이길 바란다(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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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다른 직업의 사람을 통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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