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0(화)
 
  • 세습 중산층 사회 - 조귀동 저자(글), 생각의힘 ·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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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말한다. 소위 말하는 상류층 - 단지 돈이 많은 계층이다 - 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세습한다. 이는 주로 교육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통해 이뤄진다. 그럴수록 하류층 - 단지 돈이 적은 계층이다 - 은 중산층에 진입하기가 어렵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개천이 복개공사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다수의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한다. 어찌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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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만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는다

20대 가운데 노동시장의 '내부자'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번듯한 또는 '괜찮은 decent' 일자리를 초임 기준 월 300만 원 이상을 주는 일자리라고 한다면, 2017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 7만 2,000명만이 내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p. 38)는 동일 연령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의 11.4 퍼센트 정도로 추산된다.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전체 취업자(자영업자 포함) 가운데 1차 노동시장의 종사자라고 추정되는 비율인 16.5퍼센트보다 턱없이 낮은 수치다. 지금의 20대들은 이 전보다 훨씬 더 중산층이 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p. 39).

 

결국 지금의 20대는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을 이전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 경쟁 과정에서 성별, 계층별, 학력별, 거주 지역별로 누가 더 '기회'를 많이 잃는지 그리고 누가 '선방'하는 지에서 그들의 운명은 갈린다. 중산층 또는 중상위층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 '명문대' 졸업장을 요구하는 고급 사무직 또는 전문 기술직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 90년대생의 세계에서 부모 세대가 대졸 사무직으로 중산층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자녀 세대인 그들이 명문대 졸업장을 받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지방 국립대를 졸업해서 지방에 위치한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거나 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p. 86) 전자 산업 대기업 생산직으로 서울의 대졸 화이트칼라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얻는 삶의 기회는 오늘날 20대에게는 거의 존재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p. 87).

 

여러 차례 언론 기사로 알려졌다시피 사교육 산업은 80년대 학번 운동권들의 호구지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의 대치동을 만들었다. 시작은 1992년 서울 시내 중고교 재학 생의 학원 수강 허용과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실시였다. 「신동아」 2018년 10월호의 '사교육 철옹성 대치동' 기사는 수능이 "기존의 암기식 학력고사와 달리 학생의 사고력, 논리력, 비판 능력 등을 평가 대상으로 삼"으면서 "대학 시절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토론과 세미나를 반복한 운동권 출신에게 최적화된 입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고 서술한다. 대치동이 한국 교육산업의 실리콘밸리 같은 입지를 확고히 한 결정적 계기는 2000년대 초에 이루어진 '쉬운 수능'과 '논술 강화'였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그나마 변별력 있는 논술 비중을 늘리면서 전직 운동권 출신들이 대학교 재학 당시 '세미나(사회과학 서적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의식화하는 학습 과정)' 하듯 학생들을 가르치는 논술학원이 급격히 세를 불려나갔다. 대학의 수시 전형 확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치동 논술(p. 128) 학원계의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장민성 씨의 유레카논술학원처럼 프랜차이즈를 내며 기업화를 시도한 곳이 생겨나던 것도 이 시점이다. 손주은, 이범, 故 조진만 씨 등이 2000년에 세운 메가스터디는 스타 강사와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확산에 힘입어 2000년대 초중반 급성장한다(p. 129).

 

흔히 이야기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다'는 속설은 정말로 참이다. 양육 환경이 좋은, 즉 부모가 경제력이 있고 학력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도 뒷받침되는 계층 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인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능력도 다른 계층의 자녀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리고 비인지적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가 등을 통한 교육 투자 는 결실을 맺는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p. 144).

 

정상가족 형성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독립적 20대'라는 개념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특히 중산층에게 '가족주의'는 정상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다. 자신의 정상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취약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가족(주로 부모)이 제공하는 자원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표현대로 오늘날의 20대는 "가족을 만들 수도, 가족을 떠날 수도 없는" 개인이다. 그들은 가족을 만들어야 하는 사회적 압력에 직면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현재의 가족과 미래의 가족 모두를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족을 만들려고 시도하든 그 시도를 단념하든 언제건 현재의 가족에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이는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을 전제로 하는 현재 20대 담론의 주된 접근방식 과 달리, 재생산을 위한 보급기지 또는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의 제공처로서 그들에게 가족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중산층에서는 동류혼(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행위)이 많아 졌는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p. 154).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 증가가 주로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모듈화의 영향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완성차 부문의 고용은 외환위기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며 부품 부문의 고용 확대에 의해 자동차산업의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또 현대차가 2000년대 중반 해외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부품 부문 고용 확대의 원인이다. 국내 생산설비를 늘린 것은 1996년 현대차 아산공장 건설과 2013년 기아차 광주 공장 증설이 마지막이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완성차용 부품 가운데 다수가 국내에서 만들어진다. '귀족 노조'라고 비난받기까지 하는 완성차 조립공장 정규직 일자리가 2000년 이후 뚝 끊긴 건 노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듈화는 품질 개선과 생산 효율 개선을 위해 현대차 경영진이 내린 결정이었다. 또 해외 공장 증설도 현대차의 해외 진출과 현대차의 주력 시장이 한국에서 먼 미국이나 유럽이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하지만 50~60년대생이 주력이었던 현대차 생산직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가 자동차 공장의 탈숙련화와(p. 210) 그에 반대급부처럼 이루어진 블루칼라 기능공 역할 축소- 화이트칼라 엔지니어 역할 강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블루칼라에서 '번듯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길이 끊기게 된 것이다(p. 211).

 

지금의 문제가 '세습 중산층의 독주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세대 간 양보론과 교육의 공정성 확보론만큼 그들의 영향력과 독주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세대와 공정 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여 '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숨기면서 적당히 양보하는 척하며 실질적인 손실을 보지 않는 노회한 86식 정치 투쟁의 구호가 한국 사회를 뒤덮는 양상이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대로 관철되고, 유지되는 2019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 그 자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니라 의무와 공평이 아닐까.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 사회적 의무 부담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가장 분명하게 요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 equality of opportunity 이다. 단순히 입시제도의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90퍼센트도 상위 10퍼센트 수준의 기회를 갖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OECD, IMF, 세계은행 등에서 나오는 관련 보고서에서 으레 등장하는 표현이라 식상해 보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급진적인 주장이 가능해 보인다. 가령 기회의 평등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영유아기에서부터 공공 보육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p. 291)은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이 매우 어린 시기부터 이루어짐을 보일 수 있으며, 교육 과정이나 교육 재정 구조 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최소 수준 social minimum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확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부조하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 의 자녀들이 '다음 세대'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영영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노동시장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상위 10퍼센트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 심상정 의원실이 지난 2018년 9월에 공개한 2016년 근로소득 1000분위(0.1 퍼센트 단위)별 급여와 결정세액(실제로 납부한 근로소득세액)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급여는 연 7,200만 원이었는데 연말정산 등을 감안한 실효세율은 5.76퍼센트에 불과했다. 실효세율이 10퍼센트를 넘기 위해서는 연 1억 500만 원 이상을 벌어 상위 3.2퍼센트 내에 진입해야 했다. 흔히 이야기되는 상위 1퍼센트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연1억 4,700만 원을 버는데, 그중 15.6퍼센트를 세금으로 냈다. 결과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상위 1~10퍼센트를 대상으로 걷을 여력이 충분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불평등이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p. 292)의 격차뿐만 아니라 상위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심각한 격차 문제에 기인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세습 중산층은 그 격차를 '능력의 차이'로 포장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계층 지위를 물려주고자 노력한다. 그 불평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사회적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 해결의 단초가 있을 것이다(p.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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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한국은 강고한 계급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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