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0(화)
 
  • 리커넥트 - 장재열 저자(글), 저스피스 · 2025년


9791198774798.jpg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단절과 고립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을 경험한 저자가 어떻게하면 그것을 벗어나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다룬 책이다.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신문사로고1.jpg

 

낄낄거리며 웃는 A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렇게 쿨하고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니. A는 어떤 계기로 이렇게나 달라진 걸까요?

"너 진짜 달라졌다."

"음, 아니. 달라졌다기보다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이게 너야?"

"응,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럼 나랑 만나던 때의 너는?"

"음.... 그것도 나긴 하지. 그리고 그때는 그 모습만이 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동굴에 들어가는 때가 오잖아. 그럴 땐 누구나 무기력하고 어둡고 그게 내 성격인 것만 같지. 왠지 평생 그렇게 살 것만 같고. 근데 '그럴 것 같은 거'랑 '진짜 그런 거'랑은 다른 거 알지? 그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내 본성도 아니더라고. 그때의 '상태'였던 것뿐이지."(p. 57).

 

가스라이팅이 진짜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의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안 하던 짓을 하게 만드는 것도 무섭지만, 진짜 무서운 건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는 거예요. '너도 이상하니까 그런 걸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니야?'라고 쉽사리 생각해버리는 거죠(p. 152).

 

부탁받지 않은 조언은 폭력이다

적극적 경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질문'이라면, 가장 자제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바로 '조언'인데요. 특히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조언이에요. "제가 부탁한 적 없는데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조언은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고립 당사자인 인아 씨가 제게 이 말을 했을 때, 저는 지나간 수많은 상담 사례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부탁한 적도 없는 '조언' 속에서 살아왔을까요. '다 너 잘되라는 호의'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 지금 내 상황에서 실행할 여력이 없는 조언이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내 의지 부족이 되 고, 내 생각과 다른 조언이라서 거부하면 '똥고집'이 되어버리는 상황(p. 262).

이상하지 않나요? 특히 동아시아 유교 문화에서 이런 '호의를 가장한 폭력'은 더 빈번히 발견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어쩌면 통제 욕구와도 맞닿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애정의 척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미국의 심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 Drana Baummod는 부모와 자녀 관계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애정과 통제는 분명히 다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각각의 정도에 따라 부모의 양육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는데요. 바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낮은 '무시적 양육 형태', 애정은 높지만 통제는 낮은 '허용적 양육 형태', 애정과 통제가 모두 높은 '권위 있는 양육 형태', 애정은 낮지만 통제는 높은 '독재적 양육 형태'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형태는 바로 마지막 '독재적 양육 형태'예요. 이름이 주는 인상이 너무 강한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인 위계가 분명하고, 자녀에게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하지만 그 이유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녀의 심리적 반응이나 요청에는 둔감한 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존중감이 낮은 건 물론 강한 죄책감을 형성시킨다고 하지요. 부모의 기대와 요구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알지는(p. 263) 못하기에 의무감 또는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애쓰게 되고,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 환경의 영향일까요? 사회적 고립에 대해서 OECD 국가 간의 비교를 한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통계청에서 2019년 발행한 〈사회적 고립의 현황과 결과〉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시사점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사회적 고립을 겪는 사람에게 설문을 해 봤어요. 독일, 미국, 일본에서 '나는 어려울 때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 비율은 5~12퍼센트 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20퍼센트를 훌쩍 넘깁니다.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네 배까지 차이 나는 거예요. 사회적 고립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 많은 사례자들이 이렇게 말하지요.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응원이나 지지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도리어 실망감을 표현하거나 '원 치 않는 조언'을 건네는 것이 두려워서라고요. 하지만 조언을 건네온 당신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지라 생각해서 행동해온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이 책을 중반 이상 읽어온 우리에겐 이제 '조언'이라는(p. 264) 선택지 외에도 '질문', '적극적 경청', '곁에 있어 주기' 같은 많은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조언이 문득 목까지 차올랐을 때, 잠깐만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 고, 도울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무엇일지요(p. 265).

 

KakaoTalk_20230718_085629599.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북토크】 단절 사회에서 다시 연결하는 삶으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