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 김민석 저자(글), 지식의숲 · 2023년
무연고사망자의 장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아무도 애도하는 자 없이 소멸된다. 그것을 국가적으로 책임 맡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가운데 장례도 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에 665명, 2021년에 856명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2022년에는 1,000명을 넘겼다. 나눔과나눔은 이 모든 장례를 지원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파도가 들이닥칠 것을 예감했다. 파도는 조금씩, 하지만 꾸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자연히 소멸될 잠깐의 파문 따위가 아니라 는 듯이(p. 5).
무연고사망자는 누구일까?
'무연고사망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아무런 연고 없이 죽을 수 있을까? 부모 없이 태어나는 사람도 있나? 가족은 그렇다 쳐도, 친구나 지인 없이 평생을 살 수도 있나?
사람들은 무연고사망자라는 단어에 막연한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뜻을 가졌는지는 잘 모른다. "고독사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르는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심지어는 논문을 쓰기 위해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찾아온 학자들조차 무연고사망자에(p. 18)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는 걸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경우가 존재한다.
1. 연고자가 없는 경우
2.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으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례를 통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경우'를 뜻한다. 고인은 가정을 꾸리지 못한 고아일 수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일 수도 있다. 혹은 너무 오래 살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그 어떤 가족보다 오래 살아서 고인의(p. 19) 장례를 치러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백세가 넘어 돌아가신 분의 제적동본에 손자와 손녀까지 모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경우, 이분은 무연고사망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고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백골 상태 혹은 사망한 뒤 너무 늦게 발견되어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하면, 신원 확인이 어렵기에 그 가족 역시 찾을 길이 없다.
세 번째,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고인의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연고자가 있음에도, 가족 관계 단절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해 명시적인 '거부'를 하는 경우이다. 또한 장례 의사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내고 14일이 지날 때까지 연고자가 답을 하지 않는 경우, 행정주체는 '기피'로 이해하고 시신처리위임서를 받은 것과 동일하게 행정 처리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 또는 기피하는 경우는 전체 무연고사망자 통계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가족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거나, 가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세상에 혼자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 된 '연고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이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연고자의 범위를 사촌까지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촌 조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내어 줄 수 있기에, 당연히 사촌은 내 연고자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법률이 정하는 연고자의 범위는 훨씬 협소하다.
가. 배우자 나. 직계비속 다. 직계존속 라. 자녀를 제외한 직계비속 마. 부모를 제외한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카와 나는 가족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카는 나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나처럼 연고자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p. 21)다 많다. 삼촌이나 이모, 혹은 조카의 장례를 치르려고 할 때 경찰과 장례식장, 지자체에서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라고 하면서 막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하니까 말이다.
이쯤 되자 '장례 치르기 너무 힘든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안 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내 계획은 이렇다. 결혼은 하고 싶지만 자녀를 낳아 양육할 생각은 없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 자녀 없이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면 나에게 남은 법률상 가족은 배우자와 동생뿐이다. 만약 그 둘보다 빨리 죽는다고 해도 그들이 내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 장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 경우의 수를 따져 봤다.
첫째, 부모님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부모님은 나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충분할뿐더러 형제자매도 많기에 모든 절차와 비용을 두 분이서만 책임질 필요가 없다.
둘째,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를 두고 사망할 경우, 만약 평군 수명까지 생존한다면 법률혼 관계의 배우자가 있어야 하고, 배우자보다 빨리 사망해야 한다(p. 22).
셋째, 자녀를 두고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먼저 사망하더라도 자녀가 남아 있다면 무연고사망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넷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없거나 모두 사망할 경우, 나는 동생보다 먼저 사망해야 한다.
만약 위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나는 사망 전에 평균 장례 비용에 준하는 돈(2018년 기준 1,380만 원)만 마련해 두면 된다. 단,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병원비를 모두 납부해야 하는데, 이때 병원비 정산에 무리가 없도록 최대한 빨리 사망 하거나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장례를 치러 줄 만큼 연고자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내가 사망할 때까지.
내가 어머니, 아버지보다 오래 살 확률이 높을 것이니,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내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동생 한 명뿐이다. 앞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 하고, 결혼을 해도 자녀를 양육할 마음이 없기에 배우자나 동생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는 한 나는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이야 동생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만약 미래에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떨어진다면, 나에게 남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가족은 아무도 없게 된다. 그러나 설령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도 돈이 없으면 아무(p. 23)것도 할 수 없다.
'아, 지금 내 예금 계좌에 얼마가 있더라?' 정리를 다 하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의 여부가 삶의 마지막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혼 인구와 자녀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제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즉 장례에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연고사망자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노인이 된다면 사회는 전례 없는 무연고사망자의 숫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일은 너무 쉽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지금의 제도와 사회적 편견은 사망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이름 앞에 '무연고'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연고사망자는 낡은 '가족주의'와 공공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장례' 라는 영역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시대의 피해자이다. 고인에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죽음 이후(p. 24)에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신은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라고 무심히 낙인을 찍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제도라고 하면서. 그 낙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오랫동안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무연고사망자는 애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하는 것, 그게 나눔과나눔이 하는 일이다(p. 25).
나는 외부에서 강의를 할 때 마지막으로 이 주제를 꺼낸다. '만약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공영장례의뢰 공문이 접수된 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장례를 치러야 할까?' 그럴 때 사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 장례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차(p. 230)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에 언급된 고인들 중 무결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 모두에게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도받을 권리가 있다는 나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질문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기려고 한다(p. 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