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8(수)
 
  • 대통령의 염장이 - 유재철 저자(글), 김영사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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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오만가지 직업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씻고 관에 모시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한다. 과거에는 가족이 이웃이 했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한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언젠가 나도 죽으면 누군가 내 몸을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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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염은 네 손으로 해줘."

실없는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한다. 실제로 죽은 친구의 시신을 두 번 염해본 후, 다시는 내 손으로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친구의 시신 앞에서는 아무리 명장이라도 직업정신이나 사명감을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습할 때 나는 냉정한 편이다. 빈틈없이 제대로 예를 갖춰 고인을 보내드리려면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눈앞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장례를 이끌어야 할 장례지도사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p. 28)

 

이를 지켜보는데, 문득 삼성 측에서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했는지 궁금해졌다. 의식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에게 다가가, 큰일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고 전한 뒤, 어떻게 나를 부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무가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부터 나를 주목해왔고, 회장님이 쓰러진 직후부터 실무적인 검토를 해왔다고 대답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대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평소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런데 잘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내 자식들. 이 아이들의 첫 세상은 아버(p. 156)지인 나였다.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운 아이들이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대해 차고 넘치게 배운다. 그래도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들에게 삶의 거울과도 같다.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혹은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치 척도 같은 존재다.

젊었을 때는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수십 년을 죽음과 대면해오면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잘 살기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와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많다. 생기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살아 있는 데도 생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 을 쏟을 때 생기가 돌고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대통령 염장이'라고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자랑거리로 삼진 않는다. 다만 고인이 어떤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한 자를 편안하게 보내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듯하다(p. 157).

 

30여 년 세월을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수천 건의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죽음을 가까이, 그리고 빈번히 접하는 나로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지기수로 느낀다. 영혼의 무게를 느끼기에 스스로 생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한 맺힌 죽음을 위로하는 제사에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다(p. 170).

 

핑계 없는 무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다. 죽음의 사연을 알고 나면 로봇이 아닌 이상 고인에게 마음이 쓰인다. 장례지도사가 마음이 여리면 쉽게 겁을 먹고, 유족이 울면 따라 울기도 한다. 장례지도사에게 장례식장은 일터다.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고인을 돈으로 보는 사람은 장례지도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례지도사는 한 인생의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대신 해준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몇 건의 장례를 치렀는지, 이것으로 얼마나 벌었는지, 목표 수익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염장이라 할 수 없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예'는 사라지고 '일'만 좇게 된다. 나는(p. 173)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염습하는 것은 몇 가지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명감이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고 한 달도 하지 못 하는 것이 장례지도사, 염장이의 일이다(p. 174).

 

염습이 천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잘못해왔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나 왕비가 승하하면, 염습은 내관들과 여관들의 몫이었다. 한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직접 염습했다. 그래서 그때는 아들은 물론 딸에게도 염습을 가르치는 집안이 많았다. 그런데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갑자기 많이 죽거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시신을 발견했을 때, 이를 처리하기 위해 다리 밑의 걸인을 불러다가 돈 몇 푼 쥐여주고 염습을 시켰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니, 직업 정신이나 장인 정신은 물론이고 애틋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맨정신으로는 어려우니 술 한 잔 들이켜고 마구 잡이로 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귀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뻔하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염사를 천하게 여겼고, 염하는 것이 천박한 일로 되어버렸다. 염습은 절대 천한 일이 아니다. 산파가 한 인생을 두 손으로 받아 줬다면, 염사는 한 인생을 갈무리하여 두 손으로 보내주는 사람이다. 인생사에 꼭 필요한 일이다. 염습에 예법이 존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p. 178).

 

이 일을 시작한 무렵,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염사들이 하나같이 노잣돈에 눈먼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들에게서도 지식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내가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을 해나가면서 나는 여러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러 절차나 형식을 배운 대로 하고 있자니, 문득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것이 꼭 필요한 절차인지, 하나하나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장 레를 관행대로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전통 장례란 무엇인지, 전통에서 되살릴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바른 제례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고인을 위한 마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움의 길을 다시 찾아나섰다. 어찌 보면 염습은 하나의 기술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쌓다 보면 능숙해진다. 염습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염쟁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직 돈벌이에 치중해서 염하는 사람을 '염장이'가 아닌 '염쟁이'라 칭해왔다. 이 일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잘못된 관행을 고치거나 더 나은 장례문화를 이끌 수 없다. 요즘은 염사를 '장례지도사'라고 부른다. 이름이 그럴듯하게 바뀌었지만, '정신'이 담기지 않은 그저 그런 기술자처럼 일했다가는(p. 186) '염쟁이'가 허울 좋게 이름만 바꾼 것과 다름없다. 기술에 정신을 담는 '염장이'가 되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의 마지막 의례를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염장이의 손에 달려 있지 않겠나(p. 187).

 

옛날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병을 죄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죄를 지어 병에 걸린 것처럼, 병명을 말하기 수치스러워하곤 했다. 특히 에이즈 같은 전염병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병이 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것처럼 내려지는 게 아니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가 아닌 측은지심이다. 그리고 염장이 건강도 생각해주시길(p. 214).

 

연명치료는 가족들이 원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이 없는 노부모를 바로 떠나보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가족이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 등의 이유로 죽음을 앞둔 이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한다. 살아 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죽음을 앞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연명치료를 받는 중환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개중에는 드물지만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연로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가족들이 연명을 원하면 의료 장치에 의존해 1년이고 2년이고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모습으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결국 장례를 치르는 수순을 밟는다. 그에 따르는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이 환자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치료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치료다. 가족의 연명치료를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환자에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에 자신의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고 미리 밝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p. 230)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법 시행 3년 반 만인 2021년 8월, 전 국민 중 2.2%에 해당하는 100만 명가량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p. 231).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인생인데 우리는 '내일'이 당연할 줄 알고 살아간다. 나는 사고의 순간 까딱하면 '내일'을 맞지 못할 뻔했다. 후회 없이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라는데, 우리는 매일 후회할 일을 하며 산다. 죽기 전에는 후회할 일을 청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죽음의 기로에 서보니, 매일 후회할 일을 반(p. 249)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 250).

 

병에 걸려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혹시 정신적으로 충격받을까봐,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릴까봐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병명을 감추기도 한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진짜 위하는 일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멋대로 빼앗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에게도 본인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려줌으로써, 시간과 기운이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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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사후,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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