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6(일)
 
  • 슬픔의 방문-장일호 저자(글), 낮은산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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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기사들로 ‘바이라인’을 각인시킨 〈시사IN〉 기자 장일호의 첫 책을 선보인다. “통째로 한 편의 시 같다”, “이것이 뉴스스토리다”라는 찬사와 함께 오래도록 회자되는 그의 기사들은 유통기한이 없다. 현실에 발 딛고 선 문장들은 단단함이 지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문화팀, 사회팀, 정치팀을 두루 거쳐 오며 그가 가장 오래 머문 현장은 세상에서 밀려난 장소들이었으며, 가장 마음을 기울인 사람들은 세상이 눈감은 이들이었다. 그는 기자의 일이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하는 일이라며 한탄하지만, 그의 손에 단단히 쥐인 물음표는 서늘한 현실을 바닥까지 파헤쳐 기어이 한 줌의 온기를 품은 마침표를 건져 올리곤 했다. 장일호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슬픔”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마침표이다.-교보문고.

 

에세이는 저자가 많이 노출되는 장르의 글쓰기다.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갓 태어난 조카를 안고 가난의 대물림을 떠올리며 운 것은 큰 공감을 일으켰다.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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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p. 54).

 

"누나, 나는 잘해 보려고 했던 일인데 매번 이런 식이야."(p. 73). 나는 그 말에 아직도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세상은 모르는 그 애의 최선을 나는 안다. 다만 공업고등 학교를 나와 비정규 노동의 틈새를 전전해 온 30대 중반의 남성은 작은 ‘성공’조차 쉽지 않았을 뿐이다. ” 문제 해결을 위해 뭔가를 하려 할 때 대단히 많은 벽에 부딪친다“는 점은 가난이 가진 질긴 속성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는 드물게 장벽이 없는 공간이었다. 가끔 이긴 하지만 성취감을 줬다. 청소년기에는 게임이 그 역할을 했었다. 나는 내 동생의 노동을 딛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동생 삶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글만 바쁘게 쓰고 있다는 자괴가 몰려왔다. 세상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동생이 2012년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주변이 모두 당혹해할 정도로 오래 통곡했다. 2.9kg의 조그만 아이를 처음 안고서 터뜨린 울음을 한동안 나조차 해(p. 74)석하지 못했다. 그건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가 살아갈 많은 날이 안쓰러웠다. 앞으로 '당할' 일들이 떠올라 고통스러웠고, 무서웠고, 서러웠다.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경험해야 할 모든 일들이 먼저 경험한 내게 무게로 다가와 나를 짓눌렀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 부모의 가난이었다. 나는 우리의 가난을 늘 대수롭지 않아 했지만, 그건 사실 가난이 삶의 많은 것을 결정하는 대수로운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핏덩이'는 내가 가난 때문에 늘 상처받는 사람이라는 걸 상기시켰다(p. 75).

 

신앙이 엄마를 버티게 했다는 건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할머니 덕분이었다. 2011년 최저 생계비 취재를 위해 한 달간 서울 달동네에 들어가 살았을 때였다. 바로 옆방인 노부부의 집에서는 자주 나지막한 찬송가가 들려왔다. 얇디얇은 벽을 타고 무람없이 공유되는 소리야말로 가난의 맨얼굴이었다. 여름의 끝이었고, 한 달간의 취재가 끝나고 짐을 싸던 내게 할머니는 미숫가루 한 사발을 들고 왔다. "아가씨, 교회 다녀?(p. 144)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 대답 대신 나는 물었다.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왜 교회에 다니세요?" 할머니가 지긋이 웃었다. "교회에서는 내가 평생 들어 보지 못했던 예쁜 말만 해 줘." 맥이 풀렸다. 그 할머니도, 어쩌면 엄마도 교회가 아니었다면 삶의 비참을 견딜 수 없었겠구나. 나는 할머니에게 교회에 다니겠다는 약속 대신 "저도 예수를 믿어요"라고 대답했다. 다만 나는 할머니도, 엄마도 아니었기 때문에 삶의 비참을 다르게 견디고 싶었을 뿐이다(p 145).

 

10년을 일하면 한 달을 유급으로 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연차도 다 소진해 본 적 없었다. 안식월 요건을 채우고도 쓸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일이 좋아서 그랬다. 좋았다기보다 불안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했다는 것도. 그 모든 것은 '좋아한다' 안에 뒤죽박죽(p. 242)담겨 있는 감정이기도 했다.

건강검진 결과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놀라지 않았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안도였다.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다. 그다음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가 떠올랐다. 뇌과학자인 그는 뇌졸증 증상을 경험하고 일시적으로 황홀한 상태에 빠진다.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진 과학자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마음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암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나는 암 덕분에 내가 앞으로 쓰게 될 글이 넓고 깊어질 가능성을 떠올렸다. '의료화'된 사회의 최전선에서 질병 경험이 한 개인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 암 경험자가 어떤 낙인과 차별을 경험할지 등을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그러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조금은(p. 243)기대되기도 했다(p.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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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19】 세상살이는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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