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 좀 많습니다-윤성근 저자(글), 이매진 · 2015년

《책이 좀 많습니다》는 내 옆에 있고 우리 동네 사는 평범한 애서가 23명의 이야기다. 넓고 좋은 아파트를 책들에게 내주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 사는 사람, 도깨비 책이나 고양이 책 등 어느 한 분야만 모으는 책 수집가, 유명인 못지않은 큰 서재를 가진 사람부터 책 없이 못 사는 ‘책 바보’까지. 수의사, 번역가, 대학생, 회사원, 교사, 백수 등 하는 일도 다 다르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책 읽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인 애서가들이 꼭꼭 숨겨놓은 자기만의 서재를 이상북지기 윤성근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글마다 ‘함께 읽고 싶은 책 이야기’를 덧붙였다.-교보문고.
헌책방을 통해 자기만의 글쓰기를 하는 이 작가의 책은 흥미롭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다 자기가 살 구석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도대체 어쩌면 이렇게도 책 모으기를 좋아하고 책 읽기 또한 즐길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책을 사랑하면 된다. 책을 정말 사랑하니까 한시라도 책하고 떨어지기 싫은 것이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고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이, 책이란 곧 평생을 함께하는 사랑하(p. 16)는 연인 같다고 그이는 말한다. 허섭 씨가 책 읽는 방법은 유별나다. 어떤 책에 한번 관심이 생기면 거기에 관련한 책은 직성이 풀릴 때까지 사 모아서 읽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읽자는 생각이 들면 월탄 박종화는 물론이고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이 쓴 것까지 다 사서 읽는다. 심지어 일본 사람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그린 60권짜리 만화책 《전략 삼국지》 세트도 갖춰 읽었다. 이렇게 폭넓게 읽으면 책에서 얻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알고 싶은 분야의 책 몇 권만 읽고서 쉽게 단정하고, 자기 지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 좁게 쌓아 올린 지식은 높아질수록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불면 한꺼번에 무너진다(p. 17).
책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은 책장도 재미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에도가와 란포의 책들, 기기묘묘한 미스터리들이 가득한 파란씩 책장을 보고 있으면 아무도 없는 밤중에 그 책들이 사람처럼 걸어 나와 자기들끼리 서로 문제를 내고 풀고 하면서 장난을 칠 것만 같은 우스운 생각이 든다. 책장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글자만 빼곡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삶을 재미있게 만들고, 때로는 웃고 울게 하면서 내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힘을 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풀어내지 못할 문제가 무엇이 있을까?(p. 48).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집에 있던 책을 많이 정리했다. 전에 보던 고전 문학과 한문학, 역사 쪽 책을 정리하니 5000권 가까이 되던 책이 반 정도로 줄었다.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홀가분했다. “한 사람이 갖고 있기에는 2000~-3000권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더 많으면 솔직히 관리도 안 되고, 거의 수집 자체가 목적이 돼버리거든요.” 최성희 씨는 말을 마칠 때마다 허허 하고 웃으면서 이제 책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저도 대학 다닐 때는 지독한 책 중독이었거든요. 청계천을 비롯해서 서울 시내에 안 가본 헌책방이 없을 정도로 늘 돌아다녔고요, 종로5가 도매 상가에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샀어요. 얼마나 다녔는지 거기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책을 많이 사면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오히려 걱정하는 말을 할 정도였죠.” 너무 많은 책을 갖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무슨 책을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이미 산 책을 또 사는 경우도 많았는데, 몇천 권씩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래서 욕심을 좀 덜기로 했다. 책은 결국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갖춰야 한다는 게 최성희(p. 119)씨 생각이다. 오랫동안 책을 껴안고 살면서 2000~3000권 정도가 적당 하다고 느꼈고, 나머지는 큰마음을 먹고 얼마 전에 처분했다(p. 120).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어릴 때 본 책 얘기를 꺼낸다.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위인 전집'은 아직도 내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한 권 한 권 내용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보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신체 리듬에 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놓으(p. 124)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지, 인문학 연구자가 아니라 몸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되더라도 거기서 직관의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많은 게 참 중요합니다.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할 게 자기 집에 얼마나 많은 책을 쌓아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도서관을 많이 지을 수 있게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최성희 씨에게 공부라는 것은 삶의 리듬이나 마찬가지다. 등산하 는 사람이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말하듯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공부라기보다는 삶을 위한 공부인 셈이다. 멋지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는 공부가 아니요. 공부를 마친 다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공부는 늘 그렇게 하는 것이고, 공부해서 얻는 것은 결국 삶을 이해하는 겸손한 직관이다(p. 125).
이종민 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영도다. 그중에서도 《드래곤 라자》를 첫손으로 꼽는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금세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종민 씨는 읽은 책을 다시 읽고 싶으면 2년을 기다린 다음 읽는다. 자기만의 기준이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드래곤 라자》를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는 알 수 없던 깊은 내용과 철학에 크게 감탄했다. 고등학생이 돼 또 읽은 《드래곤 라자》는 더 큰 충격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 책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자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읽어도 자꾸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듯한 책이 바로 이영도 의 《드래곤 라자》다(p. 139).
세상에 책은 많다. 죽을 때까지 읽어도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독자들은 이제 무슨 책을 읽을지보다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책을 읽는 일은 책을 쓰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 대형 서점에 가면 마치 사막 에 온 것처럼 책이 끝도 없이 널려 있어 숨이 막힌다. 어떤 사람은 이(p. 140)런 풍경이 막막하게 느껴져서 더 책을 안 읽게 된다. 그럴 때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왜,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p. 141).
말 나은 김에 여행 이야기를 더 들어본다. 정무송 씨는 여행하고 책을 거의 같은 의미로 보고 있는 듯하다. 여행을 할 때는 늘 책을 갖고 가고, 여행 가서 책을 읽지 않으면 여행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행 갈 때는 주로 철학 책이나 고전을 가져가요. 니체나 도스토 옙스키, 동양 고전도 좋아요. 그런 책들을 여행지에서 읽으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두껍지 않은 책 몇 권을 배낭에 넣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책을 펼쳐서 읽으면 이해가 잘돼요.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히말라야 어느 곳을 여행하다가 읽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서울 같은 도시에서, 깔끔하게 정돈된 북카페에서 읽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꼭 수준 높고 어려운 책일 필요는 없어요.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데, 지금은 제목도 기억이 안 나요. 카트만두에 갔을 때 어느 허름한 여행자 숙소에 묵었어요. 거기 로비에 책이 몇 권 보이는데, 한글로 된 책이 한 권 있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방으로 가져와서 읽어보니 조선족 작가가 쓴 추리소설 비슷한 거예요. 솔직히 내용은 진짜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별로 좋지 않았지만, 바로 내가 있는 곳, 타멜 거리의 분위기하고 소설 내용이 미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게 바로 여행하면서 책 읽는 재미죠”(p. 180).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깊게 파는 것보다 얕고 넓게 아는 걸 좋아해요. 안 그래도 알고 싶은 게 많은데, 깊이 있게 들어가게 되면 다른 것들을 놓치기가 쉽거든요.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고 다른 쪽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프로가 되지 않을 거라면 관심 있는 분야를 되도록 폭넓게 보는 게 좋아요.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세상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넓고 다양하거든요. 살아 있는 동안 그 모든 걸 이해하는 건 둘째 치고, 경험해보는 것도 불가능할 거예요. 그러니까 얕은 지식이라도 되도록 넓게 펴서 알고 싶은 거죠”(p. 182).
좋아하는 책만 가려서 읽는다고 하지만 책장에는 꽤 다양한 책들이 있다. 이런 책을 다 어떻게 알고 사서 읽는 걸까? 사람들이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매일 쏟아져 나오다시피 하는 새 책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골라 읽어야 할까? 임 씨가 알려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좋아하면 일단 만화를 보는 거죠. 저도 어릴 때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집에 《캔디 캔디》가 있었는데, 그 책은 어머니도 좋아하셔서 둘이 같이 봤어요. 어머니는 제가 만화책 보는 걸 말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함께 봤죠. 심지어 《드래곤 볼》 해적판도 구해서 함께 봤을 정도니까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명랑 소설 같은 걸 읽다가 조금씩 무게가 있는 책들로 발전한 거예요. 무엇보다 어릴 때 가정 환경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동화책을 보고 있으면 책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거든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책이랑 친해지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도 책 읽기가 쉽지 않죠. 무엇이든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하면 그 책 본문에 나온 책이라든지, 참고 문헌이나 주석 같은 데 또 다른 책이 소개돼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책을 찾아서 읽으면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쉽게 알 수 있어요."(p. 213).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에요. 읽다보면 힘들기도 하고요. 한 번에 50쪽에서 100쪽 정도 읽으면 힘이 빠져요. 그럴 때는 쉬었다 읽기도 하고, 읽은 내용을 잊어버려서 앞쪽을 다시 보기도 해요. 그렇게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린데, 그래서 천천히 곱씹으며 볼 수 있는 유럽 소설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해요. 여전히 한국 사람들은 유럽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는 사람 중에 시나리오를 공부하다가 사정이 생겨 그만두고 회사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미셸 우엘벡 책을 빌려줬는데요, 읽지 않더라고요. 재미가 없대요. 일본 추리소설은 만날 때마다 매번 바꿔 들고 다니면서 말이죠······." 책을 천천히 읽어 호흡이 느린 단점을 보완하려고 선택한 책 읽기 방법은 동시에 여러 권 읽기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잡지나 신문 따위도 중간에 섞어서 그때그때 돌려 읽으면 힘을 빼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다고 한다(p. 240).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 책을 서너 권씩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어요. 어릴 때는 집중력이 높아서 한 권 잡으면 끝까지 한번에 끝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 이 책 읽다가 힘들면 다른 책 좀 읽고,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읽으면 어렵고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애써 붙들고 있는 것보다 힘도 덜 들고 좋아요. 책을 여러 권 읽을 때도 있고, 소설과 잡지를 함께 보거나 소설을 읽다가 영어 단어를 외울 때도 있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스스로 알맞게 호흡을 조절하는 훈련이 돼요."(p. 241).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읽는데, 그건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고 볼 때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몸에 해로우니까요. 이것저것 기웃거리면서 많이 읽어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걸려서 보게 되는 것도 책 읽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책들이 자기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p. 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