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6(일)
 
  •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질 볼트 테일러 저자(글) · 장호연 번역, 윌북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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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뇌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어느 날 그는 찌르는 듯한 두통으로 아침을 맞는다. 일상적 활동을 하려 하지만 옷을 입기도, 목욕을 하기도, 전화를 걸기도 어렵다. 찾아온 건 중증 뇌출혈.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진행 과정을 꼼꼼히 관찰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대수술을 받고 8년간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친다. 이 책은 그가 뇌과학자로서 뇌질환을 겪으며 자신이 느낀 것, 경험한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담백하게 써내려간 기록이다.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지닌 힘을 역설한 그의 이야기는 TED 무대에 소개되어 500만 조회수 인기 강의가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소개되어 환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다.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그의 이야기는 ‘뇌에 대한 가장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기록물’이자 ‘무너짐과 일어섬’을 겪은 한 사람의 투쟁기다. 우리가 알아야 할 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실화로,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교보문고.


뇌와 뇌졸증에 대해 흥미롭게 읽었다. 뇌에 대한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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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내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부위에서 빠른 차도를 보였다. 이후 회복까지는 몇 년이 걸렸지만, 일부 뇌 부위는 말짱해서 현재 순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해석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뇌졸중 전후의 가장 큰 변화라면 머릿속에 인상적인 침묵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예전처럼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막혀버린 것이었다.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도 막혀버렸다. 그 대신 그림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순간순간 들어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그 경험에 대해서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p. 66).


넷째 날까지도 뇌가 가급적이면 자극을 피하려 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렇다고 우울했다는 뜻은 아니다. 뇌가 감각의 과부하에 걸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p. 82)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뇌라고 판단했다. 불행히도 뇌졸중 환자들은 대부분 원하는 만큼 잠을 푹 잘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내 경우 수면이야말로 뇌가 새로운 자극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의 뇌는 물리적으로 손상된 상태여서 감각계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운 게 분명했다. 방금 경험한 일을 이해하려면 뇌가 조용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수면은 파일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파일을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사무실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조직하고 처리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p. 83).


의사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뇌졸중이 일어나고 6개월 안에 능력을 되찾지 못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 경우에는 뇌졸중 이후로 8년 동안 뇌의 학습 및 기능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8년이 지났을 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는 외부 자극을 기반으로 세포의 연결 구조를 바꾸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런 뇌의 '가소성'이 잃어버린 기능을 되찾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나는 뇌가 꼬마들이 여럿 뛰어노는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여러분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놀이터를 보면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정글짐에 원숭이처럼 매달린 아이들도 보인다. 모래로 장난치는 아이들도 있다.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다. 뇌의 서로 다른 세포 집단처럼 말이다. 정글짐을 없앤다고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섞여 또 다른 놀이를 계속한다. 뉴런도 마찬가지다.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뉴런의 기능을 지우면, 이 세포들은 자극이 없어서 죽거나 다른 할 일을 찾는다. 가령 시각의 경우, 한쪽 눈에 안대를 씌워 시각피질 세포로 들어오는 자극을 막으면, 이 세포들은 인접 세포들과 접촉하여 다른 할 일이 없는지 알아 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뇌의 가소성을 믿고, 그것의 성장과 학습 및 회복의 능력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세포의 물리적 치유 과정에서,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뇌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 필(p. 108)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뇌의 에너지는 수면으로 채워졌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에너지 자극이 감각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빛의 입자들이 망막 세포를 자극하고, 음파가 고막을 혼란스럽게 때려서 금세 기진맥진했다. 그러면 뉴런들은 뇌의 요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들어오는 정보를 금방 놓쳐버리곤 했다. 자극은 정보를 처리할 만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나의 뇌는 보호받아야 할 상태였다. 따라서 소음으로 들리는 불쾌한 감각 자극에서 멀어져야 했다. 뇌졸중을 겪은 후 여러 해 동안 뇌의 수면 욕구를 무시할 때마다 감각계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러면 정신적 • 육체적 탈진이 이어졌다. 내가 만약 일반 재활 센터에 머물면서 리탈린(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처방약)을 복용하고, 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다른 사람의 스케줄에 맞춰 재활 프로그램을 따라야 했다면, 아마 정신이 더 멍해져서 회복하려는 노력을 덜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회복 과정에서 수면의 치유력이 정말로 중요했다. 전국의 재활 시설에서 다양한 방법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수면, 수면, 수면의 효과를 열렬히 옹호한다. 더군다나 학습하고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에는 충분한 수면이 보장되어야 한다(p. 109).


몸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는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분이 어떨지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뇌졸중 이후로 계단을 깡충깡충 뛰면서 오르는 상상을 매일 했던 것이다. 예전에 마음껏 계단을 오르내리던 때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이 장면을 계속 되돌려보며, 해당 회로를 깨어 있게 했다. 그 때문에 결국 내 몸과 마음 이 서로 협력해서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p. 127).


뇌출혈이 안겨준 가장 큰 축복은 순수함과 내적 기쁨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를 회복하고 강화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뇌졸중 덕분에 나는 다시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세상을 마음껏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절박한 위험이 없어서 세상을 안전하게 느꼈고, 마치 내 집 뒤뜰인 것처럼 걸었다. 오른쪽 뇌가 움직일 때 우리는 인류의 가능성이라는 직물을 이루고 있는 색실들이다. 삶은 축복이며, 우리 모두 현재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내 우뇌의 성격은 모험심이 강하고, 풍요로움을 찬양하며, 사교에 능하다. 비언어적 소통에 탁월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아내 감정이입에 능숙하다. 또한 감정의 몰입이 일어나 우주와 하나됨을 느끼게 한다. 나의 종교적 마음이 머무는 곳도 우뇌에 있다. 덕분에 나는 현명한 관찰자가 된다. 직관과 고차원적 의식이 여기서 생긴(p. 141)다. 오른쪽 뇌는 항상 현재형이며 시간 감각이 없다. 우뇌의 타고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낡은 정보가 담긴 파일을 새롭게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나는 유년기 내내 호박을 먹지 못했다. 그런데 우뇌 덕분에 기꺼이 호박에 재도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호박을 아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좌뇌로 판단을 내린 후에는 파일 업데이트를 위해 선뜻 오른쪽으로(우뇌의 의식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을 한번 내리고 나면 그 결정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깨닫기로 지배욕이 강한 좌뇌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제한적인 두개골 공간을 개방적인 우뇌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오른쪽 뇌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틀에서 벗어나 사고한다. 틀을 만든 장본인인 좌뇌가 세운 규칙과 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일을 시도한다. 혼란이 창의적 과정의 첫 단계임을 잘 안다. 근운동 감각이 뛰어나고 기민하며, 육체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사랑한다. 내 세포들이 직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보내는 미묘한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며, 촉감과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 우뇌는 자유를 찬양하며, 과거에 발목이 잡히거나 미래에 일어날 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삶과 세포들의 건강을 존중한다. 그리고 내 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회의 일원인 당신의 몸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며, 이 땅의 모든 생명에 관심을 갖는다(p. 142).


내가 회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왼쪽 뇌의 부위가 있다. 비열하게 굴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좌뇌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치솟고 이마가 부어올라 두통이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동으로 머릿속에 재생하는 오래된 감정 회로 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았다(p. 146).  회복 과정 중에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비꼬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내 성격을 담당하는 부위가 상처받은 왼쪽 뇌의 자아 중추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부위는 나를 지독한 패배자로 만들고, 원한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복수를 꾸미게 한다.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 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p. 147).


집중하는 인간의 뇌보다 더 막강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언어를 통해 우리의 왼쪽 뇌는 몸의 치료와 회복을 지시(혹은 방해)할 수 있다. 언어와 자아를 담당하는 왼쪽 뇌는 50조 개의 분자적 지성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응원단장과도 같다. 내가 세포들에게 주기적으로 '잘하고 있어!'라고 격려를 보내면, 세포들은 치료 환경을 강화하는 진동을 몸 속에서 만들어낸다. 세포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중증 정신병의 모든 징후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포가 어떤 세포와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만큼 주고받는가가 정신질환 발병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 뇌 연구는 정신병의 바탕이 되는 신경 회로의 이해에(p. 161)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 건강을 효과적으로 돌보도록 도와줄 방법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치료 방법에는 처방약을 통해 뇌세포를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법, 심리 치료를 통해 인지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가 볼 때 의료적 치료의 목적은 공통된 현실을 공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불행히도 정신 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의 60퍼센트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 방법을 찾지 않고 약물이나 음주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약이나 술을 찾는 경우에도 현실 공유 능력을 해치고, 건강에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p. 162).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나도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 몸에 차오르는 감정에 대한 반응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지적 사고를 모니터하(p. 176)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 감정을 지각할 때 내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생화학 물질이 나를 사로잡 다가 풀어주는 데 9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각성이 내가 뇌졸중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분노, 질투, 좌절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복잡한 회로가 적극적으로 돌아가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친숙하고 마치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된 듯 느껴지는 데에 있다. 습관적으로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것만큼이나 행복 회로를 가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사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행복은 오른쪽 뇌의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이다. 따라서 이 회로는 항상 돌아가고 있고 우리는 언제든 여기에 접속할 수 있다. 반면 분노 회로는 항상 돌아가지 않으며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이 생리적 반응이 혈류에서 빠져나가면 곧바로 다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서로 다른 회로가 몸 안에서 가동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파악하고 나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이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정말 질색이다. 이런 감정이 나를 덮치면 소름 끼칠 만큼 불편하다. 생리적으로 이런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회로에 정기적으로 접속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p. 177).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 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공포 • 분노 반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으며, 걸핏하면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회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만 한다. 유쾌한 기분을 좋아하므로 나의 기쁨에 응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앞서 말했듯이 신체의 고통은 우리 몸 어딘가에 조직이 손상되었음을 뇌에 알려줘서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리 현상이다. 우리는 고통의 감정 회로에 접속하지 않고도 신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몹시 아플 때 얼마나 용감 해지는지 잘 안다. 부모들은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 회로에 시달리지만, 아이들은 부모 같은 부정적 감정을 겪지 않고도 꿋꿋하게 병에 적응한다. 고통을 몸으로 겪는 것은 선택이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인지적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픈 아이들은 자신의 병을 견디는 것보다 부모가 슬퍼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다. 아픈 사람이 누구든 마찬가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방문할 때는 여러분이 어떤 회로를 자극하는지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의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p. 178).


옮긴이의 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

이 작은 책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에 걸렸다가 8년의 회복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되찾은 사람이 쓴 기록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 중에는 뇌졸중에 걸린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이거나 앞으로 닥칠지 모를 뇌졸중의 위험에 대비해 정보를 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뇌졸중을 겪고 이를 극복한 사람이 직접 쓴 책이니 만큼 무엇보다 믿을 만하다. 뇌졸중 증상은 어떤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치료해야 하는지,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도와줘야 하는지 등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지는 못했을 터, 이 책의 저자인 질 볼트 테일러는 신경해부학을 전공한 뇌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정신분열증을 앓는 오빠를 보(p. 208)며 자라 뇌의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전미정신질환자협회의 입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뇌 기증 문화를 선도해왔다. 이렇듯 누구보다 뇌질환에 관심이 많고 뇌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녀가 정작 자신의 뇌가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걸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뇌졸중 발병으로 인해 인 력이 단계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과학자의 눈으로 추적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복잡한 신경 프로그램들이 하나하나 망가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해체되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뇌질환의 사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를 소개하는 뇌과학 책들은 그동안 국내에도 꽤 소개되었지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몸소 체험한 사례를 소개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유아기로 돌아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발달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했다는 점이다. 걷는 법, 말하는 법, 읽는 법, 숫자 세는 법, 색깔 보는 법 등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을 그녀가 고통스럽게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신경 차원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질 볼트 테일러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차이다. 그녀는 좌뇌에 출혈이 일어나 언어 능력은 물론 기억 능력조차 잃었다. 순차적 사고도 불가능해져서 경험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순간이 고립된 채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뇌(p. 209)가 활개를 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평온하고 차분한 의식이 밀려들면서 열반과 같은 희열에 빠져들었다. 한 마디로 좌뇌의 '행하는' 의식이 밀려나고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이 부각된 것이다. 회복 과정 중에 저자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회복의 필요성을 끊임 없이 확인하는 일이었다. 세상과의 끈이 하나둘 풀리면서 거대한 희열과 영원한 우주의 흐름을 느끼자 그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고 한다. 그만큼 마음의 평화는 유혹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누구든 언제라도 이와 같은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좌뇌의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우뇌의 의식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힘이었고, 이 책의 원제가 '뇌졸중이 내게 안겨준 통찰My Stroke of Insight' 인 이유다. 이렇듯 뇌졸중은 그녀에게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 역시 부정적인 회로를 잠재우고 기쁨의 회로에 접속하며 순간순간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뇌의 신비를 소개 하는 책은 많지만 뇌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뇌과학 책은 흔치 않다.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진 두 개의 뇌를 평화롭게 조화시키는 방법, 이것이 바로 마음의 건강을 누리는 지혜이자 '이 책이 내게 안겨준 통찰'이다. 이렇게 멋진 책을 번역할 기회를 준 윌북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장호연(p.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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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22】 뇌과학자가 겪은 뇌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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