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케이틀린 도티 저자(글) · 임희근 번역, 반비 · 2020년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시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본 적은? 늙고 병든 몸이 요양원과 병원을 거쳐 시체가 되고, 영안실, 장례식장, 무덤과 화장터에 이르러 해체되는 과정은 모두 일상과 유리되어 있다. 다들 죽음에 관한 것은 멀리하지만, 젊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애쓴다. 운동과 식이요법, 기능성 식품을 부지런히 챙기는 것은 죽음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함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쉽다. 그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 충분히 숙고할 새도 없이, 장례업계의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죽음을 회피하는 것은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할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직시할 것을 권하며, 저자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독자를 시체들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20대에 여성 장의사로서 장례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책에는 화장터에서 일하며 죽음과 함께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체 한 구 한 구에 얽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시신을 운반하고 화장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와 함께 재로 가득한 화장장을 거니는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문장 곳곳에 위트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카고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저자는 역사와 종교,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죽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유한다.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유쾌하고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전한다. 매순간,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시신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시체 박스 확인부터 씻기고 화장하고 분쇄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냈다. 유쾌한 태도 속에서도 진지함을 놓지 않는 내용의 깊이가 '더 나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이끈다. 현재의 죽음 의례는 과연 최선의 것인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들을 하며 읽는다면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교보문고.
흥미로게 읽었다. 우리는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 있으나 피할 수는 없다. 내 가족이,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 이후 장례에 대해 많은 생각과 변화,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인 남북전쟁이 터진다. 1862년 9월 17일의 앤티텀 전투가 있었던 날은 남북전쟁(과 미국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이라는 영예 아닌 영예를 지닌 하루다. 그날 하루에만 전장에서 2만 3000명이 죽었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들의 시신은 마찬가지로 퉁퉁 불은 말과 노새 사체 틈에서 잔뜩 부어올랐다. 나흘 후 펜실베이니아 137연대가 와서, 연대장이 병사들에게 시체를 파묻을 때 독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 당시, 술에 취한 채 그 작업을 할 수 있게 허용한 주는 미국 전체에 꼭 한 주밖에 없었다.
남북이 4년간 싸우는 동안, 군인 가족 중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은 아들과 남편을 찾아올 도리가 없었다. 시신들을 기차로 운송할 수야 있었지만, 며칠만 남부의 여름 더위에 노출되 면 망자들은 극심한 부패 단계에 들어갔다. 햇볕 속에 버려진 시체에서 나는 냄새는 그저 후각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합군 소속 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빅스버그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북 양측은 뜨거운 태양 아래 부패해가는 시신의 악취 때문에 짧은 휴전을 선포했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 마일에 걸쳐 시체를 운송한다는 것은 열차 기관사들에게 악몽이었다. 철도청은 비싼 철제관에 담겨 밀봉된 시체 외에는 운송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 이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p. 123).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돈을 낼 수만 있다면 방부처리라고 알려진 새 보존 처리를 전장에서 바로 해주겠다는, 기업가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일을 찾아 소규모 분쟁과 전투마다 따라다녔으니, 이들이 미국 최초의 '앰블런스 쫓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나머지 서로의 천막을 불태운다는 얘기도 들리고, 지역 신문에 "우리가 손댄 시체는 절대 검게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들은 방부 처리 서비스의 효율성을 선전하기 위해, 무명의 용사 중에서 몇 구를 뽑아 실제로 보존 처리해서 이 시체들을 전시하곤 했다. 자신들의 재능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고 천막 밖에 양발이 보이게 시신을 괴어놓기도 했다. 전장에서 방부처리하는 천막들 속에는 종종 통 두 개 위에 나무 판대기 하나만 걸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방부처리사들은 새로 죽은 사람의 동맥 시스템 속에 화학물질을 주입했다. 그 화학물질은 "비소, 염화아연, 염화수은Ⅱ, 알루미늄 염, 아세트산 납, 각종 염, 알칼리, 산"을 그들만의 비법으로 특별히 섞어 만든 것이었다. 장의업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직도 방부처리의 수호성인으로 취급받는 토머스 홈스 박사는 남북전쟁 기간 동안 본인이 4000구가 넘는 죽은 병사들을 구당 100달러를 받고 방부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화학물질과 주입이라는 이 고상한 방법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할인 행사도 있었으니, 이는 내장 기관들을 몽땅 들어내고 몸의 빈 구멍을 톱밥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체를 더럽히는 짓은 신•구교 전통에(p. 124)서 모두 죄로 여겨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 그것이 종교적 이념을 이겨낼 때도 있었다(p. 125).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빻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 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이다. 문화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격적이고 우리의 개인적인 의미망에 도전하는 힘을 지닌 죽음 의례가 있다. 와리족이 동족의 살을 구워먹는 풍습부터 티베트 승려가 죽어서 독수리 부리에 갈기갈기 찢기는 것, 클리프의 긴 은빛 투관침으로 내장을 뚫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와리족의 행동과 티베트인이 고인의 시신을 갖고 한 일을 브루스가 클리프에게 한 일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믿음이다. 와리족은 신체를 온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몸에서 영혼이 떠난 다음에는 그 몸이 다른 존재들을 지탱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북미 사람들은 시체에 방부처리를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어떤 믿음도 갖지 않는다. 그것(p. 130)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의례가 아니라, 장례 비용 청구서에 가욋돈 900달러를 얹는 짓일 뿐이다. 만약 브루스 같은 장사꾼이 자기 친어머니한테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이 방부처리라면, 왜 우리는 아무에게나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궁금했다(p. 131).
영아 화장은 성인 화장과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다. 혹시 이름이 있다면, 우리는 아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종종 아기들의 이름은 그저 '존슨네 아기' 혹은 '산체스네 아기' 이런 식으로 라벨이 붙여진다. 그들에게 완전한 이름이 있는데, 심지어 원래 이름인 'Caitine'을 잘못 적어 'KateLynne'으로 쓰는 식으로 뭔가 고약한 일이라도 있으면 더 슬프다. 완전한 이름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그 부모들이 얼마나 바랐는지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을 성인의 경우처럼 불타는 화장로에 깨끗하게 집어 넣을 만한 도구는 없다. 당신이 화장로를 작동시키는 직원이라면 그 속에 완벽히 던져야 한다. 당신 손을 떠나 레토르트 천장에서 쏟아지는 불길 속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아기, 그 아기가 올바른 장소에 착륙하도록 확실하게 던져야만 한다. 연습을 하면 아주 잘할 수 있게 된다. 아기 화장은 보통 하루 일과가 끝나갈 때 한다. 그쯤 되면 화장하는 방에 죽 늘어선 벽돌들이 너무 뜨거워서 작은 아기들은(p. 141) 가만두어도 저절로 화장이 된다. 마이크가 내게 하루 일과가 끝 나기 전에 성인을 화장하는 대신 "아기를 두 명쯤 해치우라"고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다. 성인은 화장 자체와 냉각 과정을 포함하면 재가 되기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아기들은 화장하는 데 20분이면 된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좋아, 케이틀린. 뭐라고? 지금 3시 15분이라고? 5시 전에 아기 다섯 명은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자 해보자고, 5시 전에 다섯 명.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거야!” 듣기 끔찍한가? 물론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태아 하나하나, 살고 싶었지만 그 작디작은 삶을 낭비해버린 아이를 두고 슬픔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만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다 끝내 병원의 그 안전 요원같이 되고야 말 것이다. 유머는 없고 두려움만 가득 한 사람(p. 142).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기도 전에 어둠이 깔렸다. 서쪽으로 가는 I-10 고속도로의 네 차선은 팜스프링스를 지나가는 데, 차선마다 귀가하는 일요 행락객들의 차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맨 왼쪽 차선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를 유지하며 폭스바겐을 몰(p. 306)고 있었다. 갑자기 차의 왼쪽 뒷부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깜박이를 켜고 가운데 차선으로 들어가며 운도 지지리 나쁘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바람 빠진 타이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베어링이 헐거워졌고, 바퀴 전체가 축에서 벗어나 헛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볼트까지 뚝 부러져나가 차바퀴가 있던 곳에는 커다란 구멍만 남고 말았다. 세 바퀴만 달린 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차는 아무렇게나 굴러갔다. 네 차선을 가로질러 나선형을 그리며, 생금속이 아스팔트 바닥을 득득 긁자 흙먼지 스파크가 일었다. 폭스바겐이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죽음의 무도를 추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했다. 차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우웅 울리는 정적만 있었다. 계속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이 주변의 흐릿한 풍경 속에 어지럽게 펼쳐졌다. 차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마치 어떤 기적적인 완충제에 막혀 날 피한 듯했다. 내게는 통제력을 잃는 것보다, 현대 생활의 밀어닥치는 외로움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무 준비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불자들과 중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쁜 죽음'이라 표현한 바로 그것 말이다. 현대에 들어 나쁜 죽음이란, 차체가 끔찍하게 찌그러지며 사람의 팔다리가 산산이 떨어져 나간 형상을 띤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지도 말할 수 없다. 하던 일은 엉망진창이 된다. 고인이 어떻게 장 례를 치르길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p. 307). 내가 굴러가며 두 손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핸들을 꽉 잡고 있어도, 마음은 뚝 떨어진 저편에 가 있었다. 처음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더니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월광 소나타」가 연주되고,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차가 빙글 도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나쁜 죽음은 아니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시체와 그 시체에 집착하는 가족들과 함께 4년을 보낸 덕분에 그 순간이 초월적 경험이 되었다.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고, 격렬한 타격을 받아들이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격렬한 타격은 결코 오지 않았다. 고속도로 경계를 표시하는 쓰레기 언덕에 차가 박혔다. 교통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똑바로 앉아 생생하게 마주 보는 동안, 차들과 대형 트럭들이 아찔한 속도로 쌩하고 지나갔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아니면 여러 대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어지러운 여행을 하는 나를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치지 않았다. 전에는 내 몸이 산산조각 난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웠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혹시 산산조각 날까 하는 나의 두려움은 행여 통제력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여기에 궁극의 통제력 상실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내던져졌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p. 308).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는 잘 죽는 데 장애물이 된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과 거친 오해를 극복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지만, 얼마나 빨리 다른 문화적 편견들, 이를테면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가 최근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죽음이 그 진실을 드러낼 적기이다. 불자들은 말한다. 생각들은 뇌에 맺힌 물방울들과 같다고. 같은 생각을 계속 강화하다 보면 그 생각으로 의식 속에 새로운 물길이 뚫린다. 마치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산의 한쪽 면이 침식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세속적 지혜를 과학자들이 확인해준다. 우리의 뉴런은 항상 기존의 연결을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당신이 설령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하더라도, 그 특별한 길은 돌덩어리처럼 굳게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고 새로운 마음의 회로를 만들 책임이 있다. 나는 하와이의 한 쇼핑몰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를 보고 충격 받은 아이로 살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 죽음에 사로잡힌 삶에 항복하거나, 삼나무 숲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일보 직전인 여자가 되도록 영원히 운명 지어진 것도 아니었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정면 대결함으로써 나는 뇌의 회로를 조지프 캠벨이 "더욱 대담하고 깨끗하고 넓고 충만한 인생"이라 부른 것 쪽으로(p. 324) 바꾸어놓은 것이다(p. 325).
디테일에서는 이처럼 한국의 장례 풍습과 다른 바가 있지만 저자의 지론은 한 마디로 '죽음은 감춰야 할 일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 적 과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기존 장의사에 의해 우리는 "죽음과 실제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사람들은 말한다. 돼지에게 입술연지를 발라놓아도 여전히 돼지는 돼지라고. 시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신에 입술연지를 바르고서 시신 분장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는 시신 화장, 즉 시신 꾸미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산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희생하고 예쁘게 꾸며서 살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내보이는 것이다. 유가족도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길 원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아예 안 보는 가족들도 있다. 참관은 삶과 죽음 중 어디까지나 삶이 중요하다고 보는 관행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국에 이런 관행이 (아직은) 없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시신은 그 자체로서 존엄한 것이지, 산 자를 위한 '구경거리'가 아닌 것이다(p. 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