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기행-사막과 홍해를 건너 에티오피아에서 터키까지, 박종만 저 | 효형출판 | 2007년

자연, 인간, 커피를 블렌딩한 ‘아주 특별한 기행’
《커피기행》은 커피를 생업으로 삼아온 박종만 커피박물관 관장이 쓴 ‘커피 로드coffee road’에 관한 기록이다. 커피 로드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커피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까지 퍼져나가는 길을 가리킨다. 이 땅에 커피나무를 재배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박종만 관장은 우리 커피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북한강변에 커피박물관을 열고 커피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 첫걸음으로 커피의 기원과 초기 전파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커피탐험대를 결성하고 2007년 2월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책은 그 결과를 책으로 담은 것이다. 우선 탐험대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아프리카 최고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케냐 커피산업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그리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자 20세기 초 이곳에서 커피농장으로 성공을 꿈꾸었던 덴마크 소설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흔적을 살펴본다. ‘킬리만자로 커피’의 생산지로 알려진 탄자니아에서 탐험대는 커피위원회를 무작정 방문하여, 현지 농부의 손을 떠난 커피가 정부에 의해 어떻게 등급별로 관리되고 국외로 수출되는지 취재한다. 그리고 바리스타 챔피언대회가 열린 에티오피아에서 우연히 일본 UCC커피의 우에시마上鳥 사장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커피의 고향 짐마와 70년 전통의 옥사데이 커피회사를 둘러 본 탐험대는 19세기 말 랭보가 낙타 카라반으로 커피를 실어 나른 길을 따라 사막과 홍해를 건너 예멘의 모카 항으로 향한다.-예스24.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기회가 있을 때 커피를 먹는다. 밖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먹은 적이 없다. 커피 리브레를 통해 원두를 배달해 먹는데 맛이 좋다. 우연히 커피에 대해 알고 싶어 읽었다. 그런데 20년 전 책이라 최근 책도 찾아 보고 싶다.

커피가 탄생하기까지
8세기 에티오피아의 카파(Kafa, 지금의 짐마Jimma시), 그곳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양을 몰던 소년 칼디Kaldi는 이름 모를 나무의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뛰노는 양을 보며 의문에 빠졌다. 무엇이 양들을 저토록 신이 나게 만들었을까? 칼디는 직접 그 열매를 따서 조심스럽게 입 안에 넣었다. 쌉싸래한 맛을 혀끝까지 몰고 들어온 그 열매는 곧 칼디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열매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온 칼디는 마을의 수도승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다. 밤마다 고된 고행으로 졸음과 싸우던 수도승에게 이것은 구원의 열매였다. 칼디가 발견한 이 ‘하늘의 선물’이 바로 커피다(p. 12).
하늘은 푸르고 흙은 붉다. 까만 피부의 케냐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는 자연 그 자체다. 자연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나를 알 수 없는 그 어떤 먼 곳으로 이끌어간다. 오래전 여행 중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겨우 먼발치에서 들었던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의 연주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한두 소절만을 부탁했지만 노래는 쉽게 끊이질 않았다. 노랫말을 물어보니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커피농장은 즐거움과 고난이 교차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간절한 희망의 땅이기도 한 것이다. 케냐 농부들은 아침 8시에 나와서 저녁 6시 반까지 일하지만 대우는 썩 좋지 않다. 하루 100케냐실링의 돈을 받는데, 79케냐실링이 약 1달러 이므로 우리 돈 1000원이 조금 넘는 셈이다. 우리 눈으로 봤을 때는 100 케냐실링은 큰돈이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돈이다. 이마저 벌지 않으면 구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이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다(p. 39).
출발하기 전 되뇌었던 아프리카 속담을 떠올린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 가려면 굽이 돌아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지부티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p. 188).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이고 그 야생커피를 처음으로 경작한 곳이 예멘이다. 800년경 에티오피아의 '가파' 지방에서 발견된 ‘분’은 이슬람 수도사에 의해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포함한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초기에는 종교적 논란으로 이슬람 사원 뜰에서 비밀리에 재배되던 커피가 수도승에게 잠을 쫓는 약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비로소 이슬람 제국의 성스러운 음료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카파'에서 온 ‘분’을 아랍 사람들이 그들 발음으로 '카하와Qahwah‘ 라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기독교 사회에서는 1605년 교황 클레멘트 8세에 의해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서 커피는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게 된다.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모든 커피는 예멘의 모카 항으로부터 수입 됐다. 수도 사나Sanna에서 재배된 예멘 커피와 지부티 항을 통해 들어온 에티오피아 커피가 이곳 모카 항에 모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 사람들은 예멘 커피와 에티오피아 커피의 구분없이 모두 모카라 일컫어졌고,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고 있다. 하지만 굳이 따져 말하자면 '에티오피아 모카', '예멘 모카'가 맞는 말이다. 이후로는 친근함과 편리성을 내세워 '커피' 자체를 뜻할(p. 202)때도 '모카A cup of Mocca 라 불렀다. 인도의 자바Java에서 커피가 재배 된 뒤로는 커피를 '자바A cup of Java' 로 부르기도 했다. 19세기가 될 때까지 영화를 누리던 모카 항은 커피의 주요 생산국이 남미와 아프리카로 확대되면서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p. 204).
모카커피의 본고장 예멘에서도 제대로 된 모카커피는 맛볼 수 없었다. 모순이지만 현실이다. 예멘 사람들에게 커피는 카트와 밀크티에 밀려 한참 뒤쳐져있다. 예멘에서 커피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는 비싼 커피 값 때문만은 아니다. 카트를 씹고 나서 찬물로 입안을 헹구고 밀크티를 마시면서 저녁 기도를 드리는 그들의 이슬람 문화가 주요 원인이다. 농민들도 너나없이 커피농사를 마다하고 카트를 심는다. 커피보다 몇 배(p. 212) 높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이토록 카트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는 카트를 마약에 비유한다. 그 옛날 기독교 사회에 서 '이교도의 사악한 음료'라며 커피를 배척했음을 떠올리면 역사의 아이러니다(p. 213).
에티오피아와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는 메카와 메디나에서 잠을 쫓는 약으로 명성을 날리면서 이슬람 제국 전체로 퍼져나간다. 커피는 이슬람교의 물결을 타고 이집트, 시리아를 거쳐 동서 문명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에 와서 문화로 꽃을 피웠다. 카흐베하네Kahvehane라 불리는 터키의 커피점은 체스, 노래와 춤, 잡담이 오가는 사교적 · 상업적 장소를 넘어 정치 토론의 장으로도 이용되었다(p. 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