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11(토)
 
  • 각자도사 사회 - 송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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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은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함”을 말한다. 그러면 각자도사(各自圖死)란 역으로 “제각기 죽을 방법을 꾀함”이다. 물론 이 말은 저자가 만든 조어(造語)이다.

 

복지사회를 자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각자도생해야하는 현실도 버거운데 이제 각자도사해야한다. 의료인류학자라는 생소한 직업의 저자는 이 책에서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한다. 나도 어떻게 노후를 보내고 죽어야 할지를 자주 생각할 나이가 됐다.

 

삶의 질과 관련 없는 비위관 삽입

내 눈길을 끈 건 노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1층 어르신들은 입을 통해서 먹지 않았다. ‘콧줄’이라 불리는 비위관 삽입을 통해서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았다. 비위관 삽입은 환자의 코를 통해 식도를 지나 위까지 삽입하는 관으로 음식물이나 약물을 투여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더불어 늘어난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일상적 의료행위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건 비위관 삽입이 어디까지나 '의학적 시술'이라는 점이다. 이 시술이 상당 기간 진행된 퇴행성 신경질환(예컨대 알츠하이머병)과 연하곤란(삼킴 장애)을 겪고 있는 와상(臥床)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의학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미비하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비위관 삽입을 결정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와 삶의 질을 ‘충분하게’ 향상시키지 않고 수명만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 시술은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위관 삽입에 대해 입소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노숙 생활을 하다가 아픈 몸으로 길에서 발견되고, 응급실을 거쳐 요양원으로 들어온 노인들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어르신들이 그 의료행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의사를 밝히면서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들에게는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줄 가족이나 지인도 없는 상황이다. 온갖 윤리적 수사로 뒤덮인 그 돌봄의 대상은 노인들의 생명 그 자체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는 정해진 시간에 콧줄을 통해서 노인들에게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고, 기저귀를 관리하며, 욕창을 예방한다. 숨 쉬고 먹는 콧구멍을 가진 존재로 전락한 노인들은 10여 년간의 조용한 와상 생활 끝에 '자연사' 한다. 이렇게 간호사와 요양보호사는 무연고 노인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있다. 이 '생명 존중'이 곧 요양원의 운영 원리이고 질서다. 

한 노인요양원 간호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는데, 그때 여기 노인들처럼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해서 비위관 삽입을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간호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저는 절대 싫어요. 저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나이가 좀 더 들면 사전의료의향서를 꼼꼼하게 써놓을 생각이에요. 가족들에게도 내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해놓아야죠."(p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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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각자도생”도 모자라 “각자도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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